제 6 부 - 기밀 유출
시내 모처의 안가에서 주한 미 대사관 참사관 하우스만과 성민이 마주 앉아 있다.
하우스만이 안경을 낀 채 성민이 내민 서류를 살펴보고 있다.
‘LTM 사업’이라.. 무얼 의미하는 건가?
L.T.M… L.T.M 이라..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하우스만이 성민을 보고 말한다.
“일단 당신이 한 일은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지..”
“그럼, MS사 납품 건은 문제가 없습니까?”
“당연하지.. 만에 하나 당신이 이번 일을 외부에 발설하면 당신은 끝장이야.
당신의 사업도 사업이지만 당신의 목숨도 보장 못해.”
“암요. 제 기억에서 이번 일을 아예 지워버리겠습니다.”
“그 여자의 뒷처리도 잘하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참, 그 여자가 이런 말도 했습니다. 남편의 이야기로는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세계가 깜짝 놀랄 일이
생긴다고요.”
“그래?”
성민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하우스만을 향해 몇 번이고 절을 하고는 밖으로 나간다.
성민이 MICRO SOFT사의 지원으로 기존 윈도우 프로그램을 뛰어넘는 획기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MICRO SOFT사에 독점으로 남품하면서 회사가 일취월장으로 발전하고 있을 때
주한 미 대사관의 참사관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회사로 찾아 왔다.
자신들이 추진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 당신이 좀 도와줘야겠다면서..
처음에는 자신이 그냥 일개 사업가일 뿐이라며 단도직입하에 거절하였으나
당신이 만일 협조하지 않으면 MICRO SOFT 사와의 거래를 중단시킬 수 밖에 없다며
협박을 해왔다.
하지만, 그런 말을 믿기에는 너무 황당하여 무시를 하고 말았는데 얼마 후 MICRO SOFT사의
한국담당 중역이 자신을 찾아와서 그 사람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거래처를 다른 곳으로
바꾸겠다고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승낙을 하고 말았다.
그 사람의 요구사항은 통일안보수석인 박 성수휘하에 민 동혁이라는 심복이 있는데 그 사람의 하는 일을
캐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인적사항과 가족관계, 특히 그 사람 부인의 성격과 사람 됨됨이..
또, 그 여자의 매일매일의 일과에 대한 자료를 성민에게 넘겨 주면서 그 여자를 이용하라고 했다.
처음 무궁화 클럽에서 지연을 만났던 것도, 그 이후에 지연를 계속 만나 육욕의 노예로 만든 것도..
그리고, 지연을 통해 남편의 서류를 빼돌리게 만든 것도 다 사전에 계획된 일이었다.
이제 목표는 달성했으니, 지연의 이용가치는 없어진 것이다.
이젠 지연을 처리해야 하는데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그렇다고 지연을 없애버리기에는 너무 위험부담이 크다.
만일 들통이 나서 살인죄로 걸리면 모든 게 허사가 되어 버린다.
일단은 좀 생각을 해봐야 될 것 같다.
주한 미 참사관인 하우스만이 미 대사관내 밀실에서 검정색 양복을 입은 젊은 미국인 하나와
탁자를 가운데에 두고 앉아 있다.
탁자 위에는 성민이 넘겨 준 서류가 놓여져 있다.
젊은 미국인이 하우스만에게 입을 연다.
“캡틴, L.T.M 사업이란 말은 북한의 반체제 단체인 ‘민투련’에 대한 지원사업을 뜻하는 말입니다.”
“어째서 그렇지?”
“L.T.M을 거꾸로 하면 M.T.L.이 됩니다.
한국식 말의 앞 글자를 영어 스펠링으로 표기한 것입니다.
즉, 민(M), 투(T), 련(L) 이란 말입니다.”
“음.. 그런가?”
“그리고, 여기 항목을 보면 불도져란 말은 탱크를 뜻하는 말이며, 천체 망원경이란 미사일을 말하고,
석유는 경비를 뜻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항목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설명을 한다.
젊은 미국인은 한국 내 CIA 요원으로 암호 분석 전문가인데 하우스만이 성민에게서 받은
서류를 해석하라고 시킨 것이다.
하우스만의 눈에서 광채가 번뜩인다.
‘그럼, 청와대 비서실에서 북한의 ‘민투련’ 단체를 지원하고 있단 말이군.
그리고, 얼마 안 있으면 세계가 깜짝 놀랄 일이 생긴다고?
이거야 말로 기대 이상으로 대어가 걸렸는데..’
하우스만이 밀실에서 나와 자신의 방으로 가서 청와대 비서실로 전화를 한다.
“미 대사관의 참사관인데 박 성수 수석 부탁합니다.”
잠시 후, 박 수석이 전화를 받는다.
“박 수석님, 미 대사관의 하우스만입니다.”
”아.. 예. 무슨 일로 전화를 다 주시고..”
”오늘 좀 만났으면 해서요. 어디 조용한데서 만났으면 하는데..”
“글쎄요. 제 스케줄이 어떻게 될지 한번 알아보고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아주 중요한 정보를 입수했는데, 박 수석님께 꼭 확인을 해봐야 될 것 같아서요.”
“중요한 정보라뇨?”
“전화상으로는 말씀드리기가 곤란하고 직접 만나야 할 것 같은데..”
“그럼, 그러죠. 어디서 만나면 될까요?”
“용산에 있는 미군기지에서 이태원쪽으로 조금 더 오시면 도로 우측 편에 ‘마이애미 클럽’이 있는데
입구에서 제임스를 찾으면 됩니다. 시간은 오후 일곱시로 하죠.”
“예, 알았습니다.”
전화를 끊고 난 뒤 성수는 생각이 잠긴다.
‘늙은 세파트가 무슨 정보를 입수했다는 것인가?
혹, ‘광개토 프로젝트’에 대한 기밀이 새어 나간 것은 아닌가?’
성수는 오후 여섯시를 조금 지나 청와대 비서실을 나선다.
여섯시 오십분 경에 하우스만이 말한 ‘마이애미 클럽’에 도착하여 입구에서 제임스를 찾으니
종업원이 이층의 한쪽 구석에 있는 룸으로 안내를 한다.
룸 안으로 들어서니 하우스만이 미리 와서 좌석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성수에게 손을 내민다.
“어서 오십시오, 박 수석님.”
성수 역시 손을 내밀어 하우스만의 손을 잡는다.
테이블에는 양주와 안주가 놓여져 있다.
하우스만과 성수가 좌석에 마주 앉고 하우스만이 종업원에게 눈짓을 해서 보낸다.
하우스만이 성수를 향해 입은 연다.
“이곳은 저희 대사관 직원들이 필요할 때 한번씩 이용하는 곳인데, 보안유지가 철저히 되는 곳이니
안심하시고 이야기를 나누어도 될 것입니다.
오늘 나누는 이야기는 수석님과 저만 알 것 입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
아마도 이 방에는 도청장치가 되어 있을 것이다.
성수가 입을 연다.
“입수하신 정보라는 게 무엇입니까?”
“일단 목이나 축이고 이야길 하죠.”
하우스만이 자신의 잔과 성수의 잔에 양주를 따른다.
성수가 독한 양주를 한 입에 털어 넣는다.
하우스만이 양주 잔을 돌려가며 음미하듯이 마시더니 성수에게 이야길 한다.
“수석님, 청와대 비서실에서 북한의 ‘민투련’ 단체를 지원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는데
사실입니까?”
성수가 깜짝 놀라 하우스만을 바라보며 말한다.
“도대체 그런 정보를 어디서 입수했는지 몰라도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그래요? 부인하신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하우스만이 품에서 서류를 꺼낸다.
지연이 성민에게 넘겨준 바로 그 서류다.
성수가 그 서류를 들고 뚫어질 듯이 바라본다.
‘자신의 심복인 민 동혁이 기안을 해서 자신에게 일차 보고를 했던 그 서류다.
아직 자신이나 대통령이 재가를 하지 않았던 이 서류가 어떻게 이 자의 손에 넘어 갔을까?’
한참동안 그 서류를 들여다보던 성수가 말한다.
“글쎄요. 이 서류를 어디서 입수하셨는지 몰라도 이 서류가 청와대 비서실과 관련이 있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고 또, 이 내용과 ‘민투련’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서류의 어느 곳에도 청와대 비서실이라는 글자가 단 한 글자도 들어 있지 않았다.
하우스만 여유만만한 미소를 흘리더니 말한다.
“부인하실 줄 알았습니다.
우리 미국의 정보력을 너무 우습게 보시는 것 아닙니까?
내가 설명을 한번 해 볼까요?
여기 서류의 L,T,M 이란 말은 ‘민투련’ 이란 말이고, 불도져는 탱크, 천체 망원경이란 미사일을
뜻하는 것 아닌가요?
혹, 내가 잘못 해석이라도 한 건지..”
하우스만의 말 그대로 사실이다.
그렇게 보안유지에 신경을 썼건만..
심지어는 보안을 위해 중요서류는 해킹을 우려해서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수기로 작성하여
보고를 하곤 했다.
이번 민 동혁이 책임을 맡고 있는 ‘민투련’ 지원 건도 민 동혁이 직접 수기로 작성하여
혹시 모를 비서실 내부의 유출을 우려하여 자신이 직접 들고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민 동혁이 납치를 당했다면 모를까? 그렇지도 않은 데 어떻게 이 서류가 저 자의 손에 들어 갔을까?
오늘만해도 민동혁의 거동에는 전혀 수상한 점이 없었다.
일단은 시간을 벌어 대처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한동안 말이 없던 하우스만이 다시 입을 연다.
“우리는 이번 일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 들이고 있습니다.
아직 워싱턴에 보고하지는 않았지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곧 보고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전에 내가 박 수석을 만난 것은 이번 사안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사실을
알고 싶어서 입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제가 무어라고 말씀 드리기가 곤란하군요.
윗 분과 상의해서 연락 드리겠습니다.”
다음 날, 성수는 비서실로 출근을 하자마자 자신의 비서를 부른다.
이제 스물 여덟의 독신녀인 한 지영이 성수의 집무실로 들어온다.
“한 비서, 요즘 민 동혁 비서관에게 평소와 다른 점은 없었어?”
“별 다른 점은 없었는데요.
참, 얼마 전에 민 비서관님이 아침에 늦게 출근한 적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제일 먼저 출근을 하시던 분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늦게 출근을 해서 좀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읍니다만..”
“그래? 나가서 민 비서관을 찾아서 데리고 와.”
“알았습니다.”
잠시 후, 노크소리가 들리고 민 동혁이 들어온다.
“수석님, 찾으셨습니까?”
“민 비서관, 얼마 전에 자네가 기안을 한 ‘L.T.M 사업’에 대한 서류, 지금 가지고 있는가?”
“예, 가지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오늘쯤 정식 결재를 올리려고 합니다만..”
“그 서류의 복사본이 유출됐어.”
“예? 그럴리가요. 제가 계속 그 서류를 가지고 다녔었는데요.”
“어제 미 대사관의 하우스만을 만났는데 그 서류를 내게 보여줬어.”
“아니, 어떻게 그 서류가 그 자의 손에..”
“한번 잘 생각해봐. 얼마 전에 자네가 아침에 늦게 출근을 했다면서?”
“그랬죠. 그날 따라 이상하게 늦잠을 자서..”
“그 전날 저녁에 무슨 일 없었어?”
“특별한 일은 없었는데요.”
“잘 생각해봐, 사소한 일이라도..”
“그날 바로 집으로 퇴근을 했고, 와이프가 준 녹용을 마시고 잔 것 밖에 없는데..”
성수의 눈이 커진다.
“자네, 평소에도 녹용을 마시는가?”
“아니요, 원래 건강체질이라 마시지 않읍니다만, 그날 따라 와이프가 요즘 내가 일 때문에 과로를 한다고
녹용을 지어 왔다더군요.”
“그 녹용에 뭔가 약을 탔던 모양이군. 수면제를 탔거니..”
“설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 와이프가..”
“요즘 자네 부부사이 문제 없어?”
“별다른 문제는 없습니다. 요즘 매일 늦게 퇴근을 하다 보니 와이프를 자주 안아주지 못해
거기에 불만이 조금 있는 눈치긴 한데..”
“그럼, 그거야. 자네 부인이 그 서류를 복사해서 빼돌렸어.
그렇지 않고서야 그 서류가 유출될 리가 없지.”
동혁이 경악을 해서 한참동안 말없이 서 있다.
어떻게 내 마누라가 그런 짓을..
하기야, 요즘 따라 자신을 안아달라고 칭얼대지도 않아 내심 홀가분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럼, 누군가의 마수에 걸렸다는 말인가?
동혁이 주먹을 불끈 쥔 채 부르르 떤다.
내 이년을 요절을 내리라.
도대체 무엇에 눈이 멀어 제 남편을 팔아먹고 나라를 팔아 먹는 그런 짓을 하다니..
그런 동혁을 성수가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을 한다.
“너무 흥분하지 말게.
자네 기분 같아선 당장에 달려가서 부인을 닥달하고 싶겠지만 지금 와서 자네 부인을
다그치면 뭘 하겠나?
자네가 그렇게 하면 자네 부인을 사주한 사람이 꼬리를 감출 걸세.
우선 자네 부인을 이렇게 하도록 만든 장본인을 찾아내야지.
한번 알아봐. 지원이 필요하면 말하고..”
동혁이 고개를 숙이고 굵은 눈물을 흘린다.
“아닙니다. 제가 책임지고 이번 일의 배후를 알아내겠습니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성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동혁에게 다가가 동혁의 어깨를 두드린다.
“무슨 일을 하다 보면 마가 끼이게 되어 있어.
자네의 충심은 내가 잘 알고 있네. 이번 일을 계기로 삼아 더욱 더 정진해주게.”
동혁이 나가고 난 뒤, 성수는 바로 대통령에게 찾아간다.
지금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결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성수가 노크를 하고 대통령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니 미선이 성수를 반갑게 맞이 한다.
“박 수석, 어서 와요.”
“급히 보고 드릴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래요?”
미선이 인터폰을 해서 차 두 잔을 시키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로 가서 앉는다.
“박 수석, 이리로 와서 앉으세요.”
성수가 다가가 미선의 맞은 편 소파에 앉는다.
미선은 다른 사람에게선 의자에 앉아 보고를 받지만, 성수에게만은 항상 이렇게 소파에 마주 앉아서
보고를 받는다.
대통령도 사람인지라 정을 준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여직원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 두 잔을 두 사람의 앞에 놓고 간다.
미선이 먼저 입을 연다.
“보고하실 게 무언데요?”
“각하, 미국측에서 눈치를 챘습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이번 프로젝트건 말입니다.”
미선이 소파에 묻었던 몸을 바로 세우고 찻잔을 탁자에 내려 놓은 뒤 정색을 한다.
“어디까지 말입니까?”
“아직 전체적인 것은 모르고 ‘민투련’에 대한 지원 건 정도는 알아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어요?”
“제 부하직원의 실수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대처하실 생각입니까?”
“어차피 미국측이 그냥 넘어가진 않을 테고, 무조건 잡아뗀다고 될 일도 아니니
정면돌파를 했으면 합니다.”
“어떻게요?”
“지금쯤 미 대사관 참사관인 하우스만이 워싱턴에 보고를 했을 겁니다.”
“그 CIA 책임자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공작을 해서 이번 일을 알아낸 당사자이기도 하고요.
아마도 미국측에서 우리측의 책임 있는 사람에게서 이번 일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때 제가 나서서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수도 있겠네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번 일은 우리 칠천만 민족이 원하는 일이 아닙니까?
언제까지 미국의 눈치만 보고 있을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선의 얼굴에서 안도의 빛이 나타난다.
성수가 나서면 해결이 될 것이다. 그만큼 성수를 믿고 있는 것이다.
이번 일을 계획한 사람도 또, 총괄 지휘하는 사람도 성수인 것이다.
“그건 박 수석께서 알아서 해주세요. 그리고, 이번 토요일쯤 저녁식사를 같이 했으면 하는데
시간은 괜찮으세요?”
미선이 얼굴을 붉힌다.
“시간을 내도록 하죠.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시내 모처의 안가에서 주한 미 대사관 참사관 하우스만과 성민이 마주 앉아 있다.
하우스만이 안경을 낀 채 성민이 내민 서류를 살펴보고 있다.
‘LTM 사업’이라.. 무얼 의미하는 건가?
L.T.M… L.T.M 이라..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하우스만이 성민을 보고 말한다.
“일단 당신이 한 일은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지..”
“그럼, MS사 납품 건은 문제가 없습니까?”
“당연하지.. 만에 하나 당신이 이번 일을 외부에 발설하면 당신은 끝장이야.
당신의 사업도 사업이지만 당신의 목숨도 보장 못해.”
“암요. 제 기억에서 이번 일을 아예 지워버리겠습니다.”
“그 여자의 뒷처리도 잘하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참, 그 여자가 이런 말도 했습니다. 남편의 이야기로는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세계가 깜짝 놀랄 일이
생긴다고요.”
“그래?”
성민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하우스만을 향해 몇 번이고 절을 하고는 밖으로 나간다.
성민이 MICRO SOFT사의 지원으로 기존 윈도우 프로그램을 뛰어넘는 획기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MICRO SOFT사에 독점으로 남품하면서 회사가 일취월장으로 발전하고 있을 때
주한 미 대사관의 참사관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회사로 찾아 왔다.
자신들이 추진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 당신이 좀 도와줘야겠다면서..
처음에는 자신이 그냥 일개 사업가일 뿐이라며 단도직입하에 거절하였으나
당신이 만일 협조하지 않으면 MICRO SOFT 사와의 거래를 중단시킬 수 밖에 없다며
협박을 해왔다.
하지만, 그런 말을 믿기에는 너무 황당하여 무시를 하고 말았는데 얼마 후 MICRO SOFT사의
한국담당 중역이 자신을 찾아와서 그 사람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거래처를 다른 곳으로
바꾸겠다고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승낙을 하고 말았다.
그 사람의 요구사항은 통일안보수석인 박 성수휘하에 민 동혁이라는 심복이 있는데 그 사람의 하는 일을
캐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인적사항과 가족관계, 특히 그 사람 부인의 성격과 사람 됨됨이..
또, 그 여자의 매일매일의 일과에 대한 자료를 성민에게 넘겨 주면서 그 여자를 이용하라고 했다.
처음 무궁화 클럽에서 지연을 만났던 것도, 그 이후에 지연를 계속 만나 육욕의 노예로 만든 것도..
그리고, 지연을 통해 남편의 서류를 빼돌리게 만든 것도 다 사전에 계획된 일이었다.
이제 목표는 달성했으니, 지연의 이용가치는 없어진 것이다.
이젠 지연을 처리해야 하는데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그렇다고 지연을 없애버리기에는 너무 위험부담이 크다.
만일 들통이 나서 살인죄로 걸리면 모든 게 허사가 되어 버린다.
일단은 좀 생각을 해봐야 될 것 같다.
주한 미 참사관인 하우스만이 미 대사관내 밀실에서 검정색 양복을 입은 젊은 미국인 하나와
탁자를 가운데에 두고 앉아 있다.
탁자 위에는 성민이 넘겨 준 서류가 놓여져 있다.
젊은 미국인이 하우스만에게 입을 연다.
“캡틴, L.T.M 사업이란 말은 북한의 반체제 단체인 ‘민투련’에 대한 지원사업을 뜻하는 말입니다.”
“어째서 그렇지?”
“L.T.M을 거꾸로 하면 M.T.L.이 됩니다.
한국식 말의 앞 글자를 영어 스펠링으로 표기한 것입니다.
즉, 민(M), 투(T), 련(L) 이란 말입니다.”
“음.. 그런가?”
“그리고, 여기 항목을 보면 불도져란 말은 탱크를 뜻하는 말이며, 천체 망원경이란 미사일을 말하고,
석유는 경비를 뜻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항목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설명을 한다.
젊은 미국인은 한국 내 CIA 요원으로 암호 분석 전문가인데 하우스만이 성민에게서 받은
서류를 해석하라고 시킨 것이다.
하우스만의 눈에서 광채가 번뜩인다.
‘그럼, 청와대 비서실에서 북한의 ‘민투련’ 단체를 지원하고 있단 말이군.
그리고, 얼마 안 있으면 세계가 깜짝 놀랄 일이 생긴다고?
이거야 말로 기대 이상으로 대어가 걸렸는데..’
하우스만이 밀실에서 나와 자신의 방으로 가서 청와대 비서실로 전화를 한다.
“미 대사관의 참사관인데 박 성수 수석 부탁합니다.”
잠시 후, 박 수석이 전화를 받는다.
“박 수석님, 미 대사관의 하우스만입니다.”
”아.. 예. 무슨 일로 전화를 다 주시고..”
”오늘 좀 만났으면 해서요. 어디 조용한데서 만났으면 하는데..”
“글쎄요. 제 스케줄이 어떻게 될지 한번 알아보고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아주 중요한 정보를 입수했는데, 박 수석님께 꼭 확인을 해봐야 될 것 같아서요.”
“중요한 정보라뇨?”
“전화상으로는 말씀드리기가 곤란하고 직접 만나야 할 것 같은데..”
“그럼, 그러죠. 어디서 만나면 될까요?”
“용산에 있는 미군기지에서 이태원쪽으로 조금 더 오시면 도로 우측 편에 ‘마이애미 클럽’이 있는데
입구에서 제임스를 찾으면 됩니다. 시간은 오후 일곱시로 하죠.”
“예, 알았습니다.”
전화를 끊고 난 뒤 성수는 생각이 잠긴다.
‘늙은 세파트가 무슨 정보를 입수했다는 것인가?
혹, ‘광개토 프로젝트’에 대한 기밀이 새어 나간 것은 아닌가?’
성수는 오후 여섯시를 조금 지나 청와대 비서실을 나선다.
여섯시 오십분 경에 하우스만이 말한 ‘마이애미 클럽’에 도착하여 입구에서 제임스를 찾으니
종업원이 이층의 한쪽 구석에 있는 룸으로 안내를 한다.
룸 안으로 들어서니 하우스만이 미리 와서 좌석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성수에게 손을 내민다.
“어서 오십시오, 박 수석님.”
성수 역시 손을 내밀어 하우스만의 손을 잡는다.
테이블에는 양주와 안주가 놓여져 있다.
하우스만과 성수가 좌석에 마주 앉고 하우스만이 종업원에게 눈짓을 해서 보낸다.
하우스만이 성수를 향해 입은 연다.
“이곳은 저희 대사관 직원들이 필요할 때 한번씩 이용하는 곳인데, 보안유지가 철저히 되는 곳이니
안심하시고 이야기를 나누어도 될 것입니다.
오늘 나누는 이야기는 수석님과 저만 알 것 입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
아마도 이 방에는 도청장치가 되어 있을 것이다.
성수가 입을 연다.
“입수하신 정보라는 게 무엇입니까?”
“일단 목이나 축이고 이야길 하죠.”
하우스만이 자신의 잔과 성수의 잔에 양주를 따른다.
성수가 독한 양주를 한 입에 털어 넣는다.
하우스만이 양주 잔을 돌려가며 음미하듯이 마시더니 성수에게 이야길 한다.
“수석님, 청와대 비서실에서 북한의 ‘민투련’ 단체를 지원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는데
사실입니까?”
성수가 깜짝 놀라 하우스만을 바라보며 말한다.
“도대체 그런 정보를 어디서 입수했는지 몰라도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그래요? 부인하신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하우스만이 품에서 서류를 꺼낸다.
지연이 성민에게 넘겨준 바로 그 서류다.
성수가 그 서류를 들고 뚫어질 듯이 바라본다.
‘자신의 심복인 민 동혁이 기안을 해서 자신에게 일차 보고를 했던 그 서류다.
아직 자신이나 대통령이 재가를 하지 않았던 이 서류가 어떻게 이 자의 손에 넘어 갔을까?’
한참동안 그 서류를 들여다보던 성수가 말한다.
“글쎄요. 이 서류를 어디서 입수하셨는지 몰라도 이 서류가 청와대 비서실과 관련이 있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고 또, 이 내용과 ‘민투련’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서류의 어느 곳에도 청와대 비서실이라는 글자가 단 한 글자도 들어 있지 않았다.
하우스만 여유만만한 미소를 흘리더니 말한다.
“부인하실 줄 알았습니다.
우리 미국의 정보력을 너무 우습게 보시는 것 아닙니까?
내가 설명을 한번 해 볼까요?
여기 서류의 L,T,M 이란 말은 ‘민투련’ 이란 말이고, 불도져는 탱크, 천체 망원경이란 미사일을
뜻하는 것 아닌가요?
혹, 내가 잘못 해석이라도 한 건지..”
하우스만의 말 그대로 사실이다.
그렇게 보안유지에 신경을 썼건만..
심지어는 보안을 위해 중요서류는 해킹을 우려해서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수기로 작성하여
보고를 하곤 했다.
이번 민 동혁이 책임을 맡고 있는 ‘민투련’ 지원 건도 민 동혁이 직접 수기로 작성하여
혹시 모를 비서실 내부의 유출을 우려하여 자신이 직접 들고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민 동혁이 납치를 당했다면 모를까? 그렇지도 않은 데 어떻게 이 서류가 저 자의 손에 들어 갔을까?
오늘만해도 민동혁의 거동에는 전혀 수상한 점이 없었다.
일단은 시간을 벌어 대처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한동안 말이 없던 하우스만이 다시 입을 연다.
“우리는 이번 일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 들이고 있습니다.
아직 워싱턴에 보고하지는 않았지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곧 보고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전에 내가 박 수석을 만난 것은 이번 사안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사실을
알고 싶어서 입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제가 무어라고 말씀 드리기가 곤란하군요.
윗 분과 상의해서 연락 드리겠습니다.”
다음 날, 성수는 비서실로 출근을 하자마자 자신의 비서를 부른다.
이제 스물 여덟의 독신녀인 한 지영이 성수의 집무실로 들어온다.
“한 비서, 요즘 민 동혁 비서관에게 평소와 다른 점은 없었어?”
“별 다른 점은 없었는데요.
참, 얼마 전에 민 비서관님이 아침에 늦게 출근한 적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제일 먼저 출근을 하시던 분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늦게 출근을 해서 좀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읍니다만..”
“그래? 나가서 민 비서관을 찾아서 데리고 와.”
“알았습니다.”
잠시 후, 노크소리가 들리고 민 동혁이 들어온다.
“수석님, 찾으셨습니까?”
“민 비서관, 얼마 전에 자네가 기안을 한 ‘L.T.M 사업’에 대한 서류, 지금 가지고 있는가?”
“예, 가지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오늘쯤 정식 결재를 올리려고 합니다만..”
“그 서류의 복사본이 유출됐어.”
“예? 그럴리가요. 제가 계속 그 서류를 가지고 다녔었는데요.”
“어제 미 대사관의 하우스만을 만났는데 그 서류를 내게 보여줬어.”
“아니, 어떻게 그 서류가 그 자의 손에..”
“한번 잘 생각해봐. 얼마 전에 자네가 아침에 늦게 출근을 했다면서?”
“그랬죠. 그날 따라 이상하게 늦잠을 자서..”
“그 전날 저녁에 무슨 일 없었어?”
“특별한 일은 없었는데요.”
“잘 생각해봐, 사소한 일이라도..”
“그날 바로 집으로 퇴근을 했고, 와이프가 준 녹용을 마시고 잔 것 밖에 없는데..”
성수의 눈이 커진다.
“자네, 평소에도 녹용을 마시는가?”
“아니요, 원래 건강체질이라 마시지 않읍니다만, 그날 따라 와이프가 요즘 내가 일 때문에 과로를 한다고
녹용을 지어 왔다더군요.”
“그 녹용에 뭔가 약을 탔던 모양이군. 수면제를 탔거니..”
“설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 와이프가..”
“요즘 자네 부부사이 문제 없어?”
“별다른 문제는 없습니다. 요즘 매일 늦게 퇴근을 하다 보니 와이프를 자주 안아주지 못해
거기에 불만이 조금 있는 눈치긴 한데..”
“그럼, 그거야. 자네 부인이 그 서류를 복사해서 빼돌렸어.
그렇지 않고서야 그 서류가 유출될 리가 없지.”
동혁이 경악을 해서 한참동안 말없이 서 있다.
어떻게 내 마누라가 그런 짓을..
하기야, 요즘 따라 자신을 안아달라고 칭얼대지도 않아 내심 홀가분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럼, 누군가의 마수에 걸렸다는 말인가?
동혁이 주먹을 불끈 쥔 채 부르르 떤다.
내 이년을 요절을 내리라.
도대체 무엇에 눈이 멀어 제 남편을 팔아먹고 나라를 팔아 먹는 그런 짓을 하다니..
그런 동혁을 성수가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을 한다.
“너무 흥분하지 말게.
자네 기분 같아선 당장에 달려가서 부인을 닥달하고 싶겠지만 지금 와서 자네 부인을
다그치면 뭘 하겠나?
자네가 그렇게 하면 자네 부인을 사주한 사람이 꼬리를 감출 걸세.
우선 자네 부인을 이렇게 하도록 만든 장본인을 찾아내야지.
한번 알아봐. 지원이 필요하면 말하고..”
동혁이 고개를 숙이고 굵은 눈물을 흘린다.
“아닙니다. 제가 책임지고 이번 일의 배후를 알아내겠습니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성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동혁에게 다가가 동혁의 어깨를 두드린다.
“무슨 일을 하다 보면 마가 끼이게 되어 있어.
자네의 충심은 내가 잘 알고 있네. 이번 일을 계기로 삼아 더욱 더 정진해주게.”
동혁이 나가고 난 뒤, 성수는 바로 대통령에게 찾아간다.
지금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결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성수가 노크를 하고 대통령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니 미선이 성수를 반갑게 맞이 한다.
“박 수석, 어서 와요.”
“급히 보고 드릴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래요?”
미선이 인터폰을 해서 차 두 잔을 시키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로 가서 앉는다.
“박 수석, 이리로 와서 앉으세요.”
성수가 다가가 미선의 맞은 편 소파에 앉는다.
미선은 다른 사람에게선 의자에 앉아 보고를 받지만, 성수에게만은 항상 이렇게 소파에 마주 앉아서
보고를 받는다.
대통령도 사람인지라 정을 준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여직원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 두 잔을 두 사람의 앞에 놓고 간다.
미선이 먼저 입을 연다.
“보고하실 게 무언데요?”
“각하, 미국측에서 눈치를 챘습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이번 프로젝트건 말입니다.”
미선이 소파에 묻었던 몸을 바로 세우고 찻잔을 탁자에 내려 놓은 뒤 정색을 한다.
“어디까지 말입니까?”
“아직 전체적인 것은 모르고 ‘민투련’에 대한 지원 건 정도는 알아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어요?”
“제 부하직원의 실수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대처하실 생각입니까?”
“어차피 미국측이 그냥 넘어가진 않을 테고, 무조건 잡아뗀다고 될 일도 아니니
정면돌파를 했으면 합니다.”
“어떻게요?”
“지금쯤 미 대사관 참사관인 하우스만이 워싱턴에 보고를 했을 겁니다.”
“그 CIA 책임자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공작을 해서 이번 일을 알아낸 당사자이기도 하고요.
아마도 미국측에서 우리측의 책임 있는 사람에게서 이번 일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때 제가 나서서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수도 있겠네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번 일은 우리 칠천만 민족이 원하는 일이 아닙니까?
언제까지 미국의 눈치만 보고 있을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선의 얼굴에서 안도의 빛이 나타난다.
성수가 나서면 해결이 될 것이다. 그만큼 성수를 믿고 있는 것이다.
이번 일을 계획한 사람도 또, 총괄 지휘하는 사람도 성수인 것이다.
“그건 박 수석께서 알아서 해주세요. 그리고, 이번 토요일쯤 저녁식사를 같이 했으면 하는데
시간은 괜찮으세요?”
미선이 얼굴을 붉힌다.
“시간을 내도록 하죠.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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