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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리와인더 - 1부40장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23:28 924회 0건
* 타임 리와인더 (Time Rewinder)
- 이 소설은 소.라.넷(sora.net) 작가 "상상의신비"가 연재 중인 작품입니다.
무단 불펌을 삼가해 주시길 부탁드리며, 퍼가시더라도 출처와 작가명을 꼭 남겨주십시오.
창작가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자 도리입니다.


* 1부 40장


"정말 두 사람이 이걸 하루만에 준비한 거야?"

서연이는 크게 놀란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내어놓은 과제의 완성도가 그녀의 예상을 훨씬 웃돌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나와 유정이가 둘이서 과제를 해야 했다는걸 아는 그녀로서는 그 사실이 못내 미안했던 모양이지만, 그 와중에도 내가 이만한 PPT를 불과 하루만에 만들어냈다는 점에 놀라고 있었다.

"혹시 인터넷 같은데서 베껴온건 아니지?"
"야, 넌 나를 뭘로 보는거야?"
"그게.... 시간이 너무 없었으니까 그렇지."
"됐어. 수업 시작하기 전에 이거나 봐둬."

나는 서연이에게 몇 장의 A4 문서들을 건네주었다. 11포인트로 낱장마다 빼곡히 글자가 타이핑 된 종이를 받아든 서연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뭔데?"
"요점 정리 같은거야. 교수님 질문이 그 안에서 나올 것 같거든."

한층 더 놀란 얼굴이 된 서연이가 문서의 내용을 살펴보기 시작하자, 옆에서 눈치만 살피고 있던 유정이가 살며시 다가와 서연이 몰래 귓속말로 물었다. 유정이는 못내 불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충 알 수 있었지만 지금 굳이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았다.

"오빠, 어떻게 된 거에요?"
"뭐가?"
"오빠는 주말 동안 병원에 입원해있었잖아요. 그것도 나랑 같이...."

그녀의 그런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나는 주말 내도록 병원 침대에 누워있기만 했다. 게다가 그런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내내 간호를 해주었던 사람이 바로 유정이였다. 상식적으로 그녀의 입장에서는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있어 과제를 할 시간 따위는 도저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불과 어제 퇴원을 했고, 그 후로 과제를 하기 위해 만날 시간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어제 퇴원하여 집에 들어온 이후로 지금 이 강의실에 서있기까지는 불과 열두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갑자기 혼자서 완성된 과제를 들고 나타났다는 것이, 그녀에게 있어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전 교수님께 말씀드려서 발표를 조금이라도 미뤄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서연 언니도 사정이 있었고, 오빠는 입원까지 했었잖아요... 도대체 언제 과제를 한 거에요?"
"아, 뭐 그냥... 혼자 해봤는데 생각보다 금방 되더라고."

말도 안 되는 대답이었다. 유정이도 그렇게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뭐라고 더 질문을 이으려는 그녀에게 나는 낮게 속삭였다.

"지금은 그런거 신경 쓰지마. 우선 발표를 하는게 중요하니까."
"그치만... 서연 언니는 오빠가 입원했었다는 것도 모르잖아요."
"아, 그건 그냥 계속 비밀로 해줘. 서연이가 알아서 좋을 것도 없잖아."

나와 유정이가 주말 동안 과제에만 매진했다고 믿고 있는 서연이는, 내가 입원했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왜 굳이 그걸 비밀로 하려는지 유정이는 이해할 수 없는 듯 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내 의사를 거스르지는 않았다.

묻고 싶은 것이 많을 텐데 나를 존중해서 말을 아끼는 유정이의 모습이 귀여웠다. 그런데 문득, 뒤통수에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니 어느 순간부터 서연이가 무시무시한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두 사람, 뭘 그렇게 속닥거리고 있어?"

요즘들어 서연이는 부쩍 유정이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엄밀히 말해서 이전에 서연이가 현주를 향해 가끔씩 드러내곤 했던 시기심 어린 질투와는 조금 다른 형태의 질투였다. 특히나 부산에 다녀오는 동안 우리를 단둘이 내버려두었다는게 그녀에겐 못내 찝찝함으로 남았는지 그녀는 오늘따라 특히 우리를 예의주시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그런 시선에 감히 항변할 수가 없었다. 누가 뭐라해도 나와 유정이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넘어버린 것이다. 사실 서연이가 유정이에 대한 가시 돋힌 감정을 뚜렷하게 드러내게 된 데에는, 요근래 유정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미묘하게 바뀌었음을 서연이 또한 은연중에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도 있을 터였다.

여자의 직감은 무서운 법이라, 나는 서연이가 그 묘한 기류를 분명 어떤 형태로든 느끼고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그걸 내 입으로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무 것도 아냐. 유정이한테도 이것 좀 전해주느라고."

난 서연이에게 주었던 것과 같은 문서를 유정이의 손에도 들려주었다. 유정이 또한 서연이의 그런 날카로운 시선에 뭔가를 느꼈는지 순순히 문서를 받고 나로부터 조금 거리를 띄웠다. 서연이에게로 다시 돌아가니 아니나다를까 그녀가 숨을 죽이며 으르렁댔다.

"나 없는 동안 유성이랑 뭐했어?"
"뭐하긴...? 과제 했지."
"확실해?"
"그... 럼."

"무슨 그런 이상한 의심을 하느냐" 하는 투로 강하게 못 박았어야 하건만 지은 죄가 있으니 대답이 시원찮게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하늘이 조금 도왔는지 바로 그 순간 교수님이 강의실로 들어와 수업이 시작되었다. 이번 수업의 첫 순서는 우리 조의 발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연이도 진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8조의 발표부터 들어보겠네."

나는 발표자로서 차분하게 교단 위에 올라섰다. 사실 내가 아닌 서연이가 발표자를 맡는 것이 여러모로 좋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가 PPT 제작에 참여를 했을 경우의 이야기였다. 아무리 그녀가 유능하다고 한들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를 PPT를 가지고 발표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8조의 발표를 맡은 최성진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별 긴장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누구라도 같은 발표를 벌써 수차례 씩이나 반복한 상태라면야 실수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정해진 대본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듯이 나는 발표 내용을 읊었다.

"....이상으로 소수집단우대정책에 대한 8조의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단 한 글자의 말실수도 하지 않은채 나는 발표를 끝맺었다. 서연이와 유정이가 나를 놀란 눈으로 보고 있긴 했지만 그것조차도 사실 내겐 별 감흥이 없었다.

"흠...."

지난 시간에 예진이네 7조가 몸소 보여주었듯이, 이 발표는 발표자의 역량 뿐만이 아니라 조원들 간의 협력 부분을 더 크게 평가하는 과제였기 때문에 내가 발표를 잘한다고 해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연이와 유정이도 바로 그 부분을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얼굴은 다소 긴장으로 굳어져 있는 듯 했다. 아니나다를까 잠시 뜸을 들이던 교수님의 눈길이 내가 아닌 서연이와 유정이에게로 돌아갔다.

"잘 들었네. 발표 내용도 좋고 PPT의 구성도 빠짐없이 충실하군. 특히 인종별 우대정책을 논하는 문제에서 샌델의 견해를 인용한 것이 인상적이었네. 물론 발표자인 자네가 내용을 잘 전달하기도 했고.... 그런데 나는 자네를 제외한 다른 조원들도 이 내용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는지가 궁금하군. 왠지 자네의 발표에서도 지난 시간의 7조와 비슷한 느낌이 나거든."

예진이네 조를 거의 궤멸시키다시피 처참하게 박살낸 교수님의 날카로운 눈빛이 나를 훑었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을 해나갔다.

"물론 다른 두 조원들도 충분히 내용에 대해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단지 발표를 맡았을 뿐 저희 조는 공평한 논의를 거쳐서 과제를 완성했기 때문입니다."
"오, 그런가?"

오히려 내가 너무 자신있게 대답을 하니 교수님은 약간 의외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서연이의 표정은 더욱 긴장으로 굳어졌다. 하긴 지금부터 대답을 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 그녀들이었기 때문에 서연이는 내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무척이나 어이없는 것 같았다.

나는 서연이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로 눈빛을 전했지만 그녀가 그걸 알아챘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럼 거기 앞자리의 왼쪽 여학생에게 질문을 하겠네. 8-1번 페이지에서 설명된 인종분리정책에 대한 드워킨의 견해를 한번 설명해보게나."

교수님의 지목을 받은 서연이가 순간 움찔했다. 하지만 천천히 교수님의 질문을 듣던 서연이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두 눈을 깜빡였다. 그녀의 시선이 아주 잠깐동안, 내가 수업 전에 그녀에게 주었던 A4 문서에 머물렀다.

"아.... 드워킨은 분리주의 시대에 특정 인종을 배제한 행위는 어떤 인종이 다른 인종에 비해 유전적으로 더 가치 있다는 사고방식에 기초한 반면, 소수집단우대정책에는 그러한 편견이 없음을 지적했습니다. 소수집단우대정책이 주장하는 내용은 소수의 특성이 사회적으로 유용한 특성이 될 수 있다는 논리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920년대와 30년대에 일부 아이비리그 대학이 공식, 비공식적으로 채택한 반유대적 할당제를 통해서 이러한 논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비록 떨리는 목소리이긴 했지만 서연이가 차분하게 질문에 대한 내용을 대답하자 교수님은 턱을 매만지며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교수님은 유정이에게도 질문의 화살표를 돌렸다.

"그럼 그쪽의 1학년 여학생에게 묻겠네. 권리에 대한 공개담론에서 도덕적, 종교적 신념을 배제해야 하는 이유를 롤스의 시각으로 설명해보게."

유정이 또한 서연이와 마찬가지로 지목을 받았을 때에는 긴장하는 듯 했지만, 교수님의 질문을 듣고 나서는 시선이 잠깐 책상 위에 머물렀다. 그녀에게도 마찬가지로 내가 미리 전해주었던 문서가 책상 위에 놓여있었던 것이다.

"그건.... 합리적 다원주의를 존중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성적 사고력이 뛰어난 양심적인 사람이 자유로운 토론 뒤에도 같은 결론에 이르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롤스의 견해입니다. 이 주장에 따르면 자유주의적 중립을 옹호하는 이유는 도덕적, 종교적 이견에 직면했을 때 관용을 베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정치적 자유주의는 서로 다른 도덕적, 종교적 교리 사이에서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러한 교리들이 이견을 보이는 도덕적 주제는 다루지 않음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후에도 교수님의 간헐적인 질문이 몇 차례 이어졌다. 하지만 그 때마다 두 사람은 별다른 막힘 없이 질문에 대한 답을 했고,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물론 나와는 다르게 두 사람의 표정은 제대로 된 대답을 하면서도 점점 더 의아해지고 있었지만 다행히 교수님은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8조는 칭찬을 하지 않을 수가 없군. 조원들 모두가 내용에 대해 충분히 이해를 하고 있는 것 같네. 심지어 내가 어떤 질문을 할지도 미리 알고 있는 것 같으니 더이상 물어보는게 의미가 없겠구먼."

꽤 길었던 응답의 시간이 지나가고 마침내 교수님이 질문을 멈추었다. 평가지에 우리 조의 점수를 매겨넣은 교수님이 고개를 들더니 짧고 뭉툭한 박수를 쳤다.

"8조에게는 전원 A를 주겠네. 이 수업에서 봤던 조들 중에서는 가장 뛰어났던 것 같군. 다른 조들도 보고 본받았으면 하네. 이만 내려가도 좋아."

강의실의 학생들이 시기와 경탄 어린 박수를 쳐댔다. 뿌듯한 마음으로 교단 위를 걸어 내려가는데 멀리서 울상이 되어있는 예진이의 얼굴이 보였다. 약간은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 그런데 최성진 학생. 자네는 참으로 실전에 강한 것 같군."
"예?"

그 때 교수님이 문득 나를 불러세웠다. 반복했던 시간들 중에서 이 대목은 처음 겪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순간 여유를 잃고 긴장하고 말았다. 어쩌면 시간을 한번 더 되감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말이다.

"사실 지난 학기부터 자네의 시험 성적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네. 자네는 평상시 수업 시간에는 교과 내용에 대해서 그리 깊이있는 이해도를 보이지 않는데, 유독 시험에서는 완벽한 답안을 작성해서 날 놀라게 하더군. 개인적으로 자네의 그런 능력이 좀 흥미롭다네. 시험에 타고난 체질일 수도 있고, 흔히들 말하는 천재형 인간일 수도 있겠지. 좌우지간 졸업까지 열심히 하게나."
"아, 예... 감사합니다."

그 때 마음 속으로 나는 조금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흡사 도둑이 제발을 저리는 것과 같은 기분이겠지....

교수님은 구태여 더이상 추궁을 하거나 따져묻지는 않았다.
나로서는 다행스런 일이었다.


*


"어떻게 된 거야?"
"뭐가?"
"어떻게 교수님이 질문할 내용을 미리 다 알고 있었던 거냐구."

서연이는 끝까지 뭔가 이상하다는 기색이었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설마하니 교수님이 사전에 질문할 내용을 내게 말해줬을리는 없으니 그냥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냥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을 정리해놓은 것 뿐이야. 교수님도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셨으니 거기서 질문을 한 거겠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심지어 질문하는 순서까지 종이에 적힌대로 똑같던데?"
"그만큼 요점을 잘 정리한 덕분이겠지 뭐."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우리는 당당히 최고점을 획득하게 되었다. 생색내고 싶진 않지만 이 모든 것이 사실 나 한 사람의 능력 덕분이었기 때문에 우쭐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서연이가 자꾸 질문을 해대자 나는 짐짓 마음 상한 척을 했다.

"좋은 점수 받았으면 됐지 왜 이상한 의심을 하고 그래. 다 좋게 끝난 거잖아. 안 그래? 과제 하느라 힘들었는데 서운하려고 그런다."
"아, 아니 나는 그냥... 신기해서 그랬지. 그런 뜻이 아니었어. 미안해."

서연이가 우물쭈물거리며 사과를 하자 나는 마음 속으로 장난기 어린 웃음이 나왔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품 안을 더듬었다. 시계의 감촉이 느껴졌다.

이 모든 것은 물론 타임 리와인더 하나로 손쉽게 이뤄낸 일이었다. 시간의 제약에 구애받지 않고 과제를 완성한 것도, 몇 번이나 시간을 되감아 교수님의 질문을 사전에 파악한 것도 이 시계가 가진 능력을 생각한다면 새발의 피만큼도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옆집 여자가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계는 여전히 내 손에 남아서 제대로 된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랬다. 그녀는 분명히 떠났다. 그러나 거기에는 의문점이 있었다.

"왜 나에게 그 기억이 없지?"

내 기억에는 공백이 생겼다. 마지막으로 그녀를 본 순간부터, 그녀가 떠났음을 인식하기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의 과정이 마치 지우개로 밀어버린 듯 지워져버렸다. 나는 그저 그녀가 떠났다는 "사실" 자체만을 인식하고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또 한 가지 의문점은, 타임 리와인더가 더이상 "어느 시점" 이전으로는 돌아가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어느 시점이란 옆집 여자가 떠나버린 바로 그 순간이었다. 기억의 공백이 생긴 그 시점 이전으로는 시간을 되감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그것이 내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 이전으로 시간을 되감을 만한 일이 딱히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이상한 점은, 내 스스로 그 공백에 대한 뚜렷한 기억을 떠올리고자 하는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마치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인 듯이, 그렇게 되어야 할 일이 당연히 그렇게 된 듯이, 나는 그녀가 떠났음을 있는 그대로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따금씩 골목길의 모습이나, 시간이 요동치는 감각이 플래시백처럼 머릿속에 드문드문 떠오르기는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해 더 깊이 되짚어보려고 생각을 할수록 나의 뇌는 그것을 거부하듯이 옆집 여자에 대한 모든 연상작용을 차단해버렸다.

내 스스로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감각이긴 했지만, 나는 옆집 여자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굳이 뒤집어 생각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내 주변에 있을 때에 비해 기분만큼은 더 뚜렷하고 명료해진 것 같았다.

"그래. 오히려 잘된 일이지. 위협적인 사람이 없어진 셈이니까.... 이제 타임 리와인더의 능력을 한층 더 활용해서 즐겁게 살기만 하면 되는 거야. 괜한 눈치 볼 것 없이 말이야."

뭐랄까, 그녀가 사라진 지금에서야 생각해보자면 그녀는 나에게 일종의 족쇄였던 것 같았다. 타임 리와인더의 무분별한 활용을 제한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 같은 것이었을까....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떠났지만, 타임 리와인더는 여전히 내게 남아있다. 내게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사실이었고, 또 그것만이 유일하게 중요한 사실이었다.

풀리지 않은 의문은 남았으나 무의식이 그것에 대해 떠올리기를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만은 예전보다 더욱 편안해졌다. 뿐만 아니라 타임 리와인더를 한층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기에 심지어 지금의 상황이 즐겁기까지 했다.

"그런데 왜 자꾸 그녀를 옆집 여자라고 부르고 있는 걸까? 그녀에게도 어떤 이름이 있었던 것 같은데...."

또 한차례 그녀에 대해 떠올리려고 하니 어김없이 머릿속 깊은 곳에서 그 생각을 차단해버린다. 보호막에 튕겨나오듯 나는 생각의 늪에서 도로 빠져나와 어느새 현실로 되돌아와 있었다. 미심쩍은 기분조차도 얼마 지나지 않아 모조리 잊혀져버렸다.

"오빠, 괜찮아요?"

텅 비어버린 기억에 대해 떠올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걸음이 약간 비틀거렸는지, 뒤에서 따라오던 유정이가 놀라 나를 부축했다. 내가 입원했었다는걸 알고 있는 유정이로서는 여전히 내 상태가 불안해보였나보다.

"아, 괜찮아. 그냥 잠시 어지러워서."
"조심해요. 혹시 아직도 몸이...."

거기까지 말하던 유정이가 문득 아차싶어 서연이의 눈치를 살폈다. 서연이에겐 이 사실을 비밀로 해야 한다는걸 깨달았기 때문도 있었지만, 내 옆구리에 한 팔을 두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서연이가 좋게 볼 리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서연이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예민하게 불쾌함을 드러내고 나섰다.

"지금 뭐하는 거야?"
"네?"

짐짓 화가 난 서연이의 목소리를 듣고 유정이가 고개를 들었다. 차갑게 정색을 얼굴로 서연이가 유정이를 쏘아보고 있었다.

"지금 뭐하는 거냐구. 왜 남의 남자 몸에 함부로 손을 대?"
"언니.... 그게 아니라...."

당황한 유정이가 웅얼거렸지만 서연이는 들을 생각도 없이 성큼 다가와 내 몸에 닿은 유정이의 손을 치워내버렸다. 그 쌀쌀맞은 태도 앞에 유정이는 물론이고 나조차도 굳어질 수 밖에 없었다.

"나 없는 동안 두 사람이 과제하느라 힘들었던건 정말 미안하고, 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이제 두 사람이 지나치게 가깝게 지내지는 말아줬으면 좋겠어. 난 솔직히 말하면 네가 정말 거슬리거든."
"......"

서연이가 유정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는건 알았지만 그걸 이렇게 면전에서 대놓고 드러낼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녀는 우리 과의 학회장이 아닌가....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어가는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든 그녀를 말려보려고 했지만 서연이는 내친김에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쏟아내고 있었다.

"두 사람이 오빠동생하며 지내는 것까진 뭐라고 안할게. 하지만 지금처럼 둘이 특별한 사이라도 되는 것처럼 구는건 그만뒀으면 해. 내가 여자친구로서 말하는 거니까 유성이 너도 이해해 줄 수 있지?"

똑 부러지는 그녀의 모습을 나는 좋아해왔지만 지금만큼은 그런 면모가 무서울 정도였다. 차가워진 분위기 속에서 대꾸할 말도 찾지 못하고 서연이의 시선을 피하기만 하던 유정이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네.... 죄송해요."

죄송하다는 말은 유정이의 입에서 나왔지만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건 내 쪽이었다.

그 말을 하면서 유정이는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아마도 그건 내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지금의 내가 놓여있는 이런 복잡한 관계가 어딘가 잘못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나는 유정이에게 죄를 짓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음이 불편했다.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하지?"

그러나 아무래도 유정이에 대한 죄책감만은 아닌 것 같았다. 유정이의 얼굴을 보니 내가 미처 떠올리지 못한 뭔가가 굳게 닫힌 무의식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왜 자꾸...."

왜 자꾸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옆집 여자의 모습이 유정이를 통해서 보이는 걸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분명 내게 무척 중요한 것이었지만, 난 그걸 끝내 떠올려내지 못했다.




*



현주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그녀와 단둘이 오랜만에 데이트를 하는 것은 오랜만이었기에 나는 그녀의 집 앞까지 찾아가기로 했다.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찾아가 그녀를 놀래켜 줄 마음이었다. 현주를 보기 위해 그녀의 집까지 가는 길이 왠지 이전보다 더 즐겁게 느껴졌다.

다자연애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겠지만, 어떤 한 사람에게서 얻지 못하는 부분을 다른 사람이 채워줄 수 있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두 사람 모두에게 충실할 수 있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A가 채워주지 못하는 것을 B가 채워줌으로써 B는 물론이고 A와의 관계 또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논리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지극히 이론적인 차원에서의 이야기일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실제로 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서연이의 존재는 나와 현주의 관계를 이전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들었다. 아니, 사실 지금 나와 현주의 관계를 이전보다 더 나아졌다고 말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예전과 다른 방식의 사랑을 찾기로 한 의견에 서로 동의할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사랑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나 또한 일정 부분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현주를, 또는 서연이를 내 소유로만 두려고 했었다. 내가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은 허용하면서, 모순적으로 그녀들은 오직 나만을 바라보게끔 욕심을 부린 것이다.

나는 만약 현주가 나와의 이런 관계를 이어나가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마음이 생긴다면 그 마음을 존중해 줄 것이라 결심했다. 그녀의 성격에 그럴 일이 생길 것 같진 않지만, 그녀도 나로 인해 조금씩 바뀌는 중이지 않은가.

현주가 내게 진솔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을 수 있다면 나 또한 그 마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요즘들어 느끼고 있었다. 내가 그랬듯이 현주도 내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고 싶어할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현주야, 안에 있어?"

밑에서 기다리지 않고 구태여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초인종을 누른 데에는, 물론 현주를 놀래켜주려는 의도도 있긴 했지만 나의 짖궂은 장난기도 한 몫을 했다. 운이 좋으면 현아의 얼굴을 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현아가 사무치게 그리웠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는 그녀의 반응이 궁금할 따름이었다. 내가 현주와 헤어지는 줄 알고 내게 악담을 퍼부었던 그녀가, 지금의 상황에서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그것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사실을 알고도 나와 계속 만나기로 마음 먹은 동생의 결정을, 현아는 언니로서 존중해줄까, 아니면 여전히 나에 대한 미움을 드러낼까.

"그러고보면 현주가 아직 모든 사실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건 아니구나."

그녀는 현아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도 아직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초인종 너머로 한 여인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 .... 성진 씨?

솔직히 기대를 하긴 했지만 설마하니 대문 앞에서부터 현아와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다. 괜히 멋쩍은 기분이 들어 나는 대답도 못하고 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다행히 현아는 구태여 더 길게 이야기를 끌지 않았다. 잠시 문 밖에 서있으려니 곧이어 현관문이 열렸다. 현아가 서있었다. 언제나 알몸의 반 정도를 노출하고 다니던 차림새와는 다르게 오늘은 옷을 제대로 갖춰입은 모습이었다.

현관문이 열릴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싶더니 방금 전에 옷을 껴입은 것 같았다. 더이상 내게 노출스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다는 걸까? 재미있는 반응이었다.

"안녕하세요, 현아 씨."

아무렇지 않은척 하려고 나는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대답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안쪽으로 들어가버렸다. 허락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녀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섰다.

아무래도 그녀는 나에게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기로 마음 먹은 것 같았다. 하기사 그녀 입장에서는 내가 얼마나 꼴보기 싫겠냔 말이다. 화를 내는 것보다도 이렇게 무심하게 구는 편이 그녀가 지금 내게 할 수 있는 최선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현주와 약속이 있어서요. 데리러 왔어요."

일부러 그녀에게 현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그녀를 곯리는 것처럼 여겨져, 나는 그녀가 싫어할 것임을 알면서도 그 말을 꺼냈다. 내심 그녀가 내 말을 무시하겠거니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그녀는 뒤돌아보며 대답을 했다.

"오늘 현주랑 연락 안해보셨나요?"
"네? 아... 어제 시간 약속만 잡고 오늘은 따로 연락을 하지 않았어요. 왜요?"
"현주 오늘 아파요. 지금도 방 안에만 누워있는걸요."
"네에?"

생각도 못한 사실에 내가 놀라 대답하자 현아의 시선이 더더욱 곱지 않게 변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있었냐는 눈빛이었다. 일부러 현주를 놀래키기 위해 미리 연락을 하지 않고 찾아온 것이 오히려 문제였다. 설마하니 아팠을 줄은....

"현주도 지금 정신이 없어서 연락을 못한 것 같은데. 들어가보세요. 난 성진 씨가 병문안을 온거라 생각했는데요."
"모, 몰랐어요. 미안해요."
"내게 사과할 필요 없어요."

지극히 쌀쌀맞은 대답이었다. 여자친구가 아프다는 것조차 모르는 남자의 모습이 곱지 않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말이다. 하물며 그 여자친구가 자신의 동생이라면 더더욱.

"현주야...?"

나는 예전에 들어와 본 적이 있는 현주의 방 안으로 살며시 발을 딛었다. 쥐 죽은듯 조용한 방 안에서 현주가 침대에 얌전히 누워있었다. 색색거리는 숨소리만이 그녀가 잠들어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살금살금 다가가 이마에 손을 얹으니 불렀을 때도 반응이 없던 그녀가 천천히 닫혀있던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초점이 잡히지 않는 멍한 눈동자가 내 얼굴에 머물렀다.

"오빠...."
"으응. 나야."

몇 차례 눈을 끔뻑거리던 현주가 이윽고 탄식 어린 우는 소리를 내뱉었다.

"아이 참...."
"왜 그래?"
"또 자던 얼굴 보여버렸잖아. 민낯 보여주는 거 싫다고 했는데."

아프다면서도 별 시덥잖은 걱정을 다 하는 현주였다. 지금 그녀가 누워있는 바로 이 침대 위에서 민낯으로 끌어안고 잠들 뻔.... 한 적도 있는데 말이다. 사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분명 좋은 기억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별 상관없었다.

"그런건 신경쓰지 마. 그런데 어디가 아픈 거야?"
"별거 아니야. 그냥... 음..."

그녀는 별로 설명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뒤이어 방으로 들어온 현아의 한 마디가 모든 것을 설명해주었다.

"그냥 생리통이에요."
"언니!"

언제 들어왔는지 모를 현아 때문에 놀랐고, 또 아픈 와중에도 소리를 버럭 지르는 현주의 목청 때문에 또 한번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역시나 현아는 그런 동생의 시선을 아랑곳 않고 받아넘겼다.

"너무 걱정할 것 없어요. 현주는 한번씩 이렇게 생리통을 심하게 앓는 편이니까. 약도 먹었으니 제대로 쉬기만 하면 곧 나아질 거에요. 그러니까 성진 씨는 방해되지 않게 오늘은 이만 가주는게 좋을 것 같은데요."

미운 가시가 단단히 박혀있는 말투에 나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현주 또한 그런 언니의 모습이 불안한지 일부러 내 손을 더욱 끌어당기며 칭얼댔다.

"시, 싫어. 오빠랑 더 있을래. 오늘 원래 데이트 하기로 했는데...."

그러자 등 뒤에서 현아가 "쯧" 하고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현아 입장에서는 내 어디가 좋아서 저러는건지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아니야 현주야. 너 몸도 아픈데 오늘은 그냥 갈게. 대신 너 좀 괜찮아지면 내일이나 모레 다시 데이트하면 되잖아."
"진짜? 그럼 내일 다시 올 거야?"
"그래. 너만 괜찮아지면"
"알았어. 오빠 나랑 약속했다?"
"알았어."

병을 앓는 여인은 아름답다더니 생리통이긴 했지만 아파서 어린 아이처럼 칭얼대는 현주의 모습은 왠지 평소보다 더 귀엽게 느껴졌다. 다행히 내일 다시 오겠다고 철썩같이 약속을 하고 나니 현주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약기운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현아는 방에서 나가고 없었다. 현주를 다시 재워놓고 나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방 밖으로 나왔다. 거실 쪽으로 나가니 방금 전에 내가 보았던 것과는 다른 옷차림으로 갈아입고 나온 현아가 보였다. 유독 고급스럽고 세련된 차림으로 온몸을 치장한 모습이었다. 이제보니 화장도 새로 한 것 같았다.

"예쁘게 꾸미고 어딜 가려는 거에요?"
"신경 쓰지 말아요."

또 "고객"을 만나러 가는 걸까. 하지만 왠지 남자의 욕구를 지나치게 자극하는 그녀의 고급스러우면서도 외설적인 옷차림을 보니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구석이 있었다.

"혹시 요새도 지환이 그 놈을 만나고 있는건 아니겠죠?"

현아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말없이 하이힐을 신는 그녀에게로 다가가 억지로 그녀의 어깨를 잡아 내 쪽으로 돌려세웠다. 난데없는 거친 행각에 그녀가 눈을 날카롭게 뜨며 버럭 화를 냈다.

"무슨 짓이에요!"
"말해봐요. 요새도 지환이 그놈에게 노리개처럼 굴려지고 있나요?"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잖아요? 그리고 노리개처럼 구르는게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갖고 노는 거에요."
"글쎄요. 그건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요."
"집어치워요. 당신과 그런 문제로 떠들고 싶지 않아요."

나를 피하듯이 문을 열고 나서려는 현아를, 나는 다시 잡아세웠다. 억지로 등 뒤에서부터 그녀의 가느다란 몸을 껴안아 번쩍 들어올렸다. 있는 힘껏 버둥거리는 현아의 몸짓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를 안아들어 그대로 현아의 방까지 옮겼다.

하이힐을 신은채로 몸이 공중에 붕 떠, 그녀는 내 손에 의해 강제로 자신의 방까지 다시 되돌아오고 말았다. 한 손으로 그녀의 방 문을 단단히 닫고는 나는 그녀를 현아 자신의 침대 위에 내동댕이치듯 내려놓았다.

"뭐, 뭘 어쩌려는거죠...?"
"바른 대로 말하기 전까진 여기서 못 나갈 거에요."

옆집 여자가 떠나면서 타임 리와인더를 사용하는데에 한층 더 거리낌이 없어진 나는, 지금껏 지니고 있었던 최소한의 고삐마저 놓아버린 기분이었다. 마음 내키는대로 행동함에 있어 더욱 망설임이 없어진 나는 현아를 궁지로 몰아가는데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

"그만 둬요. 현주가 깨기라도 하면...."
"그러니까 고분고분하게 굴어요. 동생이 이런 모습 보는거 원치 않죠? 아니면 지금이라도 현주를 깨워서 당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낱낱이 보여주도록 할까요?"

차갑게 식은 현아의 두 눈이 나를 찢어버릴 듯이 노려보았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는 내게 악담을 퍼부었다.

"쓰레기 같은 인간...."
"당신이 하나 잊고 있는게 있는데, 예전에도 나는 쓰레기였어요. 여자친구의 언니와 죄책감 없이 즐겁게 섹스를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때는 당신이 나를 쓰레기라고 부르지 않았죠. 당신의 잣대는 정말 애매하지 않나요?"

나는 바닥에 허물어진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그녀의 옷을 외투에서부터 한꺼풀씩 벗겼다. 코트가 벗겨져나가자 그녀가 앙칼지게 내 손을 뿌리치며 소리를 지르려 했다. 하지만 몇 발짝 떨어지지 않은 방에 현주가 자고 있다는걸 떠올리고는 소리가 반쯤 나오다 말고 다시 기어들어가 버렸다.

하나 뿐인 동생이 자신의 참모습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 그리도 두려운 걸까? 지금 상황에서 잘못을 하고 있는 쪽은 분명히 나인데도, 어쩔 수 없이 그녀가 더욱 조심스러워질 수 밖에 없는 것을 생각하면 그만큼 현아가 남성의 가학적인 취급에 길들여져 있다는 반증인 것도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그만 해요...."

그녀가 으르렁대며 이를 앙다무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의 힘 없는 저항은 거기까지였다. 겉옷과 블라우스, 치마를 억지로 벗겨낸 나는 속옷과 스타킹만을 입은 상태의 그녀를 내버려두고 그녀의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분명 그녀라면 그 물건을 평상시에도 늘 가지고 다닐 것 같았다.

"이걸 목에 차고 있는게 그렇게 좋은가요? 언제든 준비해놓을 정도로?"

그녀의 눈 앞에, 그녀의 가방에서 꺼낸 개목걸이를 흔들어보이자 현아가 시선을 피하며 주먹을 꼭 쥐었다.

"지환이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면 아마 지환이 그 놈도 당신에게 이 천박한 개목줄을 채워서 애완견처럼 마음껏 갖고 놀며 즐겼겠군요."
"닥쳐요."
"섹스할 때는 남자에게 노예처럼 수동적으로 굴려지는걸 즐기지 않나요? 평소 하던대로 노예처럼 굴어요."

저항을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걸 아는지, 아니면 저항을 하다가 동생에게 들키는 것이 싫은지, 그것도 아니라면 이런 굴욕적인 취급을 받은 것이 이미 너무도 익숙하기 때문인지 그녀는 내가 그녀의 새하얀 목에 목줄을 채우는 것을 보면서도 제지하지 못했다.

예전에 한번 그녀의 목에 목줄을 채워본 적은 있지만 다른 곳도 아닌 그녀의 집 안에서 이걸 다시 채우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하물며 지금은 현주도 있는데.... 하지만 타임 리와인더에 다시금 의존하기 시작한 나는 그야말로 막무가내였다.

애완견을 굴리듯이 개목줄을 채워 손잡이를 손에 쥐고는, 나는 허리춤을 풀어 바지를 벗어내렸다. 그 모습을 현아는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빨아."

아직은 완전히 세워지지 않은 물건을 현아의 면전에 들이밀었다. 명령형의 짧은 말이 그녀에게 있어선 복종을 강요하는 열쇠라도 되는 것인지, 방금 전까지 표독스럽게 기를 세우던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어쩌면 현주를 의식한 것일지도 몰랐다.

"어서 빨아. 동생 눈 앞에 데려가서 빨게 하기 전에."
"......"

자지는 빠는 것 정도가 그녀에게 있어선 뭐 그리 굴욕적인 일이겠는가. 그녀에게 있어서 지금 이 상황이 굴욕적인 이유는 내가 요구하고 있는 행위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동생을 빌미로 내가 이러한 행위를 강요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눈을 질끈 감은 그녀가 내 쪼그라든 자지를 입에 받아무는 것이 느껴졌다.

"하아...."

남성에게 있어 현아의 혀놀림은 그야말로 마약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녀의 펠라치오를 자주 겪어본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내가 겪었던 여자들 중 테크닉으로는 단연 최정상에 속했다. 아마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그녀보다 더 자지를 잘 빠는 여자를 만날 것 같진 않았다. 이 행위에도 점수라는걸 매길 수 있다면 그녀는 만점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지금의 기분이 어떻든, 상황이 어떻든, 그녀의 그 혀놀림은 남성의 물건을 입에 받아무는 순간 극상의 솜씨를 발휘할 수 있도록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훈련되어 왔던게 분명했다. 사실 직업만 보험설계사일 뿐이지 그녀야말로 진정 창녀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진짜 좆 빠는 것 하나는 일품이야.... 동생에게도 빠는 법 좀 가르쳐주지 그랬어."

일부러 현주를 들먹이면서까지 그녀를 그렇게 자극한 것은 내 본심이 아니었다. 그저 현아의 치부를 있는 대로 후벼파서 그녀의 변태적인 내면을 최대한 괴롭혀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현아에게 있어 상상 이상의 자극이 되었는지 그녀는 자지를 빨다 말고 증오가 한가득 담긴 눈길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 좆을 입 안 가득 정성스럽게 물고 있는 여자가, 양 볼이 부풀어오른 모습으로 그런 눈을 하고 나를 올려다보는 모습이.... 그렇게 자극적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보면 어쩔 거야? 네가 싫다고 거부할 수는 있어? 넌 노예 취급을 당하면서도 거부하기는커녕 그걸 즐기는 년이잖아. 그러면서도 동생에게는 비밀을 지키고 싶어하니 웃기는 꼴이지."
"웁... 우웁...."

기가 막히게도 그녀의 자존심을 짓밟고 깔아뭉갤수록, 오히려 그것이 그녀로 하여금 뭔가를 발휘하게 하는지 조롱을 가할수록 모순적으로 자지를 빨아당기는 현아의 혀놀림은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었다.

남자 입장에서 그녀만큼 황홀한 노예감이 또 있을까 싶었다. 정말로 놀라운 여자가 아닐 수 없었다....

"엎드려."

자지가 빳빳이 세워지다못해 충분히 적셔졌다는 느낌이 들자 나는 현아에게 침대를 가르키며 명령했다. 굴욕으로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현아는 침대에 엉거주춤 올라가 개처럼 납작 엎드렸다. 그 와중에도 동생을 의식한건지 그녀는 큰 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찌직, 하는 가학적인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내가 억지로 그녀의 스타킹을 엉덩이 부분에서부터 우악스럽게 찢어발긴 것이다. 커피색 스타킹이 풍만한 엉덩이 부근에서부터 좌우로 찢겨나가며 마치 천막의 입구가 갈라지듯 그 사이의 계곡을 내게 드러냈다.

그리고는 팬티를 아무렇게나 골반 아래로 끌어당겨 내려버렸다. 너덜너덜해진 스타킹 너머로 팬티가 허벅지 부근까지 내려가 다리에 걸렸다. 완전히 벗겨내진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오히려 걸레짝이 된 스타킹과 어설프게 벗겨진 팬티가 조화를 이루어 그 편이 훨씬 섹시하게 보였다.

이제보니 그녀는 아까 신발장에서 신었던 하이힐마저 아직 벗지 못한 상태였다. 슈퍼모델급의 몸매를 가진 여자가, 하이힐과 찢어진 스타킹과 반쯤 벗겨진 팬티 차림으로 자신의 침대에서 엉덩이를 치켜든 채 엎드려있는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남성의 깊숙한 욕망을 자극했다. 혼자 보기 아까울 만큼 숨 막히는 장관이었다.

"아으윽!"

별안간 그녀가 고통으로 가득한 신음을 흘렸다. 내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엉덩이 사이의 계곡 틈새로 물건을 처박아버린 것이다. 전희는커녕 애액도 제대로 흐르지 않은 상태의 보지에 좆대가리를 박아버리자 그녀가 고통으로 몸부림치면서 시트를 꾸욱 움켜쥐었다.

- 짜아악!

하지만 나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생보지를 가르는 고통을 안겨준 것으로도 모자라 그녀의 달덩이 같은 풍만한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후려친 것이다. 탱글한 살덩이가 파도치며 그 육감적인 엉덩이의 자태를 한껏 과시했다. 찢기다 만 스타킹 조각이 여전히 그녀의 탱탱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었기에 따귀를 치는 맛이 한층 더 자극적이었다.

"아프면 씹물을 더 싸던지. 그럼 간다."

그녀의 고통에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나는 새하얀 엉덩이를 양옆에서 한쪽씩 쥐고는 더욱 힘차게 그녀의 메마른 구멍 속으로 좆대를 쑤욱 밀어넣었다. 그러자 그녀가 아픔을 참다 못해 이번에는 침대 시트를 이빨로 꽉 깨무는 것이 보였다.

그녀에게 고통을 준다는 것은.... 정말로 너무나 황홀한 즐거움이었다. 스스로 너무하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바로 이런 점이 그동안 현아에게 얽힌 수많은 남자들을 파멸로 이끌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정말로 무서운 여자였다.

"아으... 흑... 크흑...."

눈물까지 찔끔 흘리면서도 그녀는 결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이빨이 으스러지도록 시트를 세게 깨물면서도 그녀는 고통을 참고 견뎠다. 소리를 질러서 현주에게 이 모습을 보이는 것도, 내게 애걸복걸하며 매달리는 것도 그녀에게 있어선 허용되지 않는 선택이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는 나에게 이 굴욕을 어떻게 배로 갚아줄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아... 아아... 씨발년아... 넌 정말 최고야... 최고의 육변기라구. 지환이 그 새끼가 얼마나 너를 맛있게 따먹었을까. 그 놈은 기분이 째졌겠지. 죽이고 싶은 최성진의 여친을 노예로 삼았다고 생각할테니 말이야."
"아아... 아아악... 아악... 크흑..."

간헐적인 고통의 신음성을 즐기며 나는 피스톤질의 속력에 박차를 가했다. 좆을 찔러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질수록 그녀의 들썩임과 신음소리도 높아져갔다. 섹스라는걸 남녀 서로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행위로 가정한다면 이건 이미 섹스가 아니었다. 그저 노예를 희롱하는 폭력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씨발... 아직 멀었어."
"아아악!!"

좆질을 해대면서도 나는 가운데 손가락을 힘껏 세워 오밀조밀하게 입을 닫고 있는 현아의 항문에 박아넣었다. 보지가 쑤셔지는 것과 동시에 항문을 고문 당하자 그녀가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큰 소리를 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현아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자신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육체에 가해지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내색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 모습이 나로 하여금 온갖 변태적인 욕망을 부채질했다.

"똥구멍에 힘 줘."

엄하게 내려지는 명령을 듣자 현아가 굴욕으로 몸을 떨면서도 항문에 힘을 단단히 주었다. 박힌 손가락을 고정하듯이 내 중지 손가락이 그녀의 직장 안쪽에 틀어박혔다. 딱 맞는 사이즈라도 되는 것처럼 손가락을 사방에서 죄어오는 느낌이 좋았다.

"다시 힘 풀어."

구멍을 다시 벌리게 만들고는 이번엔 검지 손가락과 함께 박아넣어보았다. 애처로울 정도로 좁게 느껴지는 구멍에 두 손가락을 동시에 쑤셔넣으려니 구멍이 찢어질 듯 벌어지면서도 쉽사리 손가락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억지로 두 손가락을 쑤셔박으려는 시도에 현아도 시트를 움켜쥔 양 주먹을 더더욱 꾹 움켜쥐며 신음을 참았다.

"똥구멍 찢어지기 싫으면 힘 더 풀어."

두 손가락도 채 들어가지 않는 좁디 좁은 구멍에, 나는 한술 더 떠서 손가락 하나를 더 세워 세 손가락을 쑤셔박으려고 들이밀었다. 손가락 하나가 더 늘어나자 현아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 그만..."
"뭐?"
"그만해요... 너무 아파요..."

내가 알기로 그녀와 섹스할 때에는 서로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쓸 데 없는 대화는 필요없이 그저 시키는대로, 명령하는대로 따르면 그만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남자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었다. 만약 내가 아닌 다른 대부분의 남자를 상대하는 것이었다면 이후에 현아도 똑같이 자신의 고통을 되돌려주는 시간을 가졌을 테니.

"이런 대접 처음 겪어보는 것도 아닐 텐데 겨우 이 정도로 우는 소리를 해? 아니면 동생 남자친구에게는 이런 대접 받기 싫다 이거야?"
"......"
"예전에 네가 말했지. 내가 현주를 계속 사랑하기만 한다면 네가 몸으로 베풀 수 있는 봉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나는 아직 현주를 사랑하고 있고,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어. 그러니 너도 네가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지."

물론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긴 했지만 우리의 그 암묵적인 약속은 내가 현주를 제외한 다른 여자에게 애정을 주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하는 말은 순 억지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항변할 여유조차 주지 않고 세 손가락을 그녀의 항문 안으로 푸욱 찔러넣었다.

"아아악...! 하악... 아흐윽...!"

반쯤 옷이 벗겨져 흐트러진 아름다운 나신의 여인이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하이힐을 신은 발이 침대 위를 애처롭게 동동 구르며 여기저기에 흙자국을 남겼다. 나는 더더욱 세차게 반대손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짜악 하고 갈기며 호통쳤다.

"엉덩이 더 들어. 새끼손가락까지 쑤셔버리기 전에."

그녀가 눈물을 삼키며 강제로 후들거리는 엉덩이를 엉거주춤 들어올리자 나는 그녀의 항문 안쪽을 마치 헤집기라도 하듯이 쑤셔박은 손가락을 갈고리 모양으로 구부려 위쪽으로 힘껏 들어올렸다. 구멍째로 몸 안쪽이 들어올려지는 감각에 현아가 입을 쩍 벌리고 고통스럽게 경련했다.

그 상태에서 멈추지 않고 나는 몇 차례나 더 세 손가락을 항문 안쪽에서 구부려가며 그녀의 항문 구석구석을 있는대로 유린했다. 손가락이 굽혀질 때마다 그녀는 엉덩이가 쪼개지는 것 같은 고통에 몸부림쳤고, 그 때마다 비명을 삼키기 위해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몸에 걸쳐진 온갖 고급스러운 장식들이 그녀가 흘린 땀으로 젖어드는 것을 보니 무척 야릇했다. 새끼손가락까지 밀어넣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목적 없는 고문을 위해 시작한 행동은 아니었기에 나는 그녀의 항문에서 세 손가락을 뽑았다.

"커... 흑...."

손가락이 뽑혀나가자, 안쪽에서 휘저어 질 때와는 다른 느낌의 고통이 엄습하는지 그녀가 울음을 삼켰다. 나는 그녀의 구멍 안쪽을 사정없이 헤집었던 세 손가락을 그녀의 입에 들이밀며 명령했다.

"빨아."

자신의 항문을 한참 쑤셔댔던 손가락을 입에 받아무는 느낌은 과연 어떨까. 여전히 고통으로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구역질을 참아가며 지저분한 손가락을 입에 무는 현아를 나는 냉정히 내려다보았다.

결국 마무리는 애널 삽입으로 끝냈다. 세 손가락으로 확장된 항문에 좆을 틀어박았을 때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또 한차례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반쯤 새어나온 비명을 애처롭게 두 손바닥으로 틀어막고, 그녀는 그 자세 그대로 내가 사정을 하기까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아악... 아아악... 하윽... 크흐윽.... 하으윽...."
"아아... 하아... 싸... 싼다..."

똥구멍에 펌프질을 한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서 사정기가 치밀어올랐다. 널찍하게 확장을 시켜놓았다고는 해도 항문의 조임은 보지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자지를 끊어낼 듯한 조임 앞에 내 자지는 결국 부르르 몸부림치며 그녀의 직장 안쪽에 뜨거운 좆물을 울컥 토해냈다.

"아아악...!!"

사정 하는 순간 허리에 온 힘을 다해 있는 힘껏, 내가 박아넣을 수 있는 가장 깊숙한 곳까지 자지를 때려넣었기 때문에 내가 절정에 오르는 순간 현아는 반대로 가장 심한 통증을 느끼고 시트에 얼굴을 처박았다.

"흐윽... 흑..."
"하아아...."

흐느끼는 현아의 울음소리를 후희 삼아 나는 그녀의 똥구멍에서 좆을 뽑았다. 현아는 자세를 바꿀 생각도 하지 못하고 후배위 자세를 유지한 채 여전히 엉덩이를 바들바들 떨며 엎드려있었다.

좆을 뽑고 나니 잠시 후에 현아의 항문 안쪽에서 고여있던 좆물이 넘실거리며 똥구멍 밖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흘러내린 좆물은 계곡을 타고 내려와 보지털 가닥에 맺혔다가, 침대 위로 뚝 하고 떨어졌다.

"현주가 볼 수도 있으니까 나중에 알아서 이불 빨래해."
"......"

옷이 찢겨져 엉덩이를 벌린채, 처참하게 유린당한 두 구멍을 드러내고 있는 현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애완견도 저런 취급을 받지는 않을거란 생각이 들어 뒤늦게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 말을 현아에게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망설였다. 하지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제 그렇게 살지마."

내가 말해놓고도 정말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 또한 그녀를 유린했던 수많은 남자들과 다름 없이 그녀를 노리개 취급해놓고는, 무슨 염치로 이런 말을 한단 말일까. 역시나 현아는 지극히 예상 그대로의 대답을 했다.

"당신은.... 내게 그런 말 할 자격이 없어."

물론 그건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달리 또 누가 현아에게 이런 말을 하겠는가.


*


그 날 밤에 현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데이트를 깨버려서 미안하다며, 그녀는 다분히 그녀다운 말들을 했다. 내일로 미루어진 데이트 약속을 다시 잡으며 나는 그녀에게 넌지시 물었다.

"우리 내일 호텔에서 놀아볼래?"
- 호... 텔? 갑자기 웬 호텔?

현주는 무척 의아한 목소리였다.

"그냥.... 너랑 분위기 있는 곳에 가보고 싶어서. 왜? 안 내켜?"
- 아니, 그건 아니지만....

현주는 나름대로 혼자 생각에 잠긴 모양이었다. 최근의 일들을 통해서 내가 현주의 불감증을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걸 현주도 알고 있기에, 그녀는 내심 이러한 제안 역시 그 일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 그래, 좋아.

그녀 또한 바뀌기 시작한 자신의 모습을 이대로 놓고 싶지 않았는지 조금은 의욕 있는 목소리로 내 제안에 승낙했다. 전화를 끊고나서 나는 잠깐 동안 현아의 얼굴을 떠올렸다.


- 다음 화에 계속 -


40장... 너무 오래걸렸지요? ㅠㅠ
확인해보니 39장과 40장 사이에는 무려 3주라는 시간이 걸렸네요
그간 게시판이나 쪽지를 통해 소식을 궁금해하셨던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많은 분들이 연중에 대해 걱정을 하셨더라구요
절대 연중 아닙니다
다만 이전 글에서도 몇번 말씀드렸듯이 이직을 하고 나서 새직장에 적응하는 과정으로
정신이 없는 시기인지라.... 독자분들께 정중히 양해를 구할 수 밖에 없네요

타임 리와인더 1부는 50장~60장 내외로 마무리가 될 것 같고,
저는 늦어도 9월 초까지는 1부 마무리를 지을 생각입니다.
그러니 연중에 대해서는 우려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생업 때문이라곤 하지만 제 글을 기다려주신 독자님들 생각을 하면
저도 마음이 아프고 송구스럽네요
보답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주 토요일에서부터 다음주 월요일 (8월 1일~8월 3일)
까지는 하루에 1편씩 연재를 하려고 합니다
다행히 이번 주말에는 여유가 생길 것 같아서 대부분의 시간을 글쓰기에 할애해보려고 합니다

연재주기가 들쭉날쭉이라 정말 면목이 없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1부 완결을 향해 가고 있는 만큼 믿고 기다려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더운 날씨에 다들 건강 유의하시고, 주말에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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