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임 리와인더 (Time Rewinder)
- 이 소설은 소.라.넷(sora.net) 작가 "상상의신비"가 연재 중인 작품입니다.
무단 불펌을 삼가해 주시길 부탁드리며, 퍼가시더라도 출처와 작가명을 꼭 남겨주십시오.
창작가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자 도리입니다.
* 1부 32장
그 후로 현주를 어떻게 돌려보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녀가 내게 심어준 어느 한 부분의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인지 그것을 제외한 기억이 옅어져버린 느낌이었다. 다음날 침대에서 눈을 뜬 나는 한참 동안 무거운 눈꺼풀을 끔뻑거리며 생각과 몽상의 사이에서 오랫동안 허우적거렸다.
현주는 진심이었을까? 그녀가 던진 그 한 마디만이 기억 속에 남아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그녀가 얻고자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진 모르겠지만 내가 그걸 이해할 수 있다한들, 서연이가 그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또한 미지수였다. 세상 어느 여자가 다른 여자가 보는 앞에서 성관계를 갖고 싶어할까.
"하긴... 그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더욱 오래, 더욱 깊이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을 반으로 나눈다는 것. 그 또한 마찬가지로 세상 누가 보더라도 결코 정상적이지 못한 그릇된 사랑의 관념임이 분명하다. 남 말을 할 처지가 아닌 것이다. 다만 서로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길 바라는 것 뿐.
내가 먼저 현주에게 이야기를 꺼낸 이상 나 또한 그녀의 부탁을 들어줘야만 한다. 그래야만 내가 이 그릇되고 이기적인 관념을 그녀에게 내세움에 있어 조금이나마 떳떳할 수 있을 것이니. 설사 그것이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 말을 따라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서연이에게는 대체 어떻게 이야길 꺼낸단 말인가?
"젠장... 학교나 가자."
어쩌면 나는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어린애처럼 억지를 부리고 있는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가지기 위해서 무언가를 버리는건 당연한 이치인데, 마치 그 당연한 것을 인정하지 못해서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 기분은 그랬다.
학교로 가는 길에도 계속 멍하니 딴생각만 하고 있었다. 운전을 할 기분이 아니라서 모처럼 버스를 탔는데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뜻밖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선배~!"
누가 나를 부르건 말건 귓전에 울리는 소리를 신경쓰지 않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내 등을 탁 하고 치는게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뜻밖의 인물이 있었다. 아무래도 이 년이 요새 나를 스토킹이라도 하나보다.
"버스에서 내릴 때부터 계속 불렀는데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 거에요?"
"너 뭐야?"
"뭐냐니요?"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듯, 생글생글 웃는 예진이의 얼굴을 보니 조금 어이가 없었다. 불과 어제 서연이에게 그런 말을 들어놓고 또 나한테 왜 이러는거지?
"왜 자꾸 친한 척이야?"
"왜요? 싫으세요?"
"싫고 좋고가 문제가 아니라...."
문득 서연이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확실하게 말했으면 되는걸 왜 바보같이 쩔쩔매고 그러냐며, 나를 핀잔주던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니 자연스럽게 현주의 얼굴까지 덩달아 떠올라 골치가 더욱 아파졌다. 좌우지간 지금은 예진이의 상대를 해줄 기분이 아니었다.
"나 서연이랑 사귀는거 맞아. 네가 궁금해하던거 알았으면 됐지 왜 자꾸 추근덕거리는거야?"
"섭한 소리 하시네요. 전 그냥 선배랑 조금 가까워지고 싶은 것 뿐인데요. 서연이가 선배랑 사귄다고 해서 내가 선배랑 친해지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나요?"
"네가 왜 갑자기 나랑...."
서로 인사조차 하지 않았던 애가 갑자기 친해지겠다며 달라붙는 것이 액면 그대로 순수하게 느껴질 리는 없었다. 그녀가 서연이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나에게 접근했던 것이라면 이제는 그럴 이유가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뭔가를 캐내려는 듯한 기색이었고, 나는 그 점이 수상했지만 굳이 그걸 궁금해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음... 글쎄요. 호기심이랄까?"
고민하는 표정으로 입술에 한 손가락을 갖다 대는 예진이. 나는 애써 무시하며 가던 길을 재촉했지만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따라붙으며 쉴 새 없이 조잘거렸다.
"선배도 알다시피 제가 호기심을 도저히 못 참는 성격이거든요. 그런데 사실 두 사람이 진짜로 사귀는 사이라는걸 알고 나니까 더더욱 호기심이 생기지 뭐에요? 호호."
"호기심이라니?"
"걔가 원래 남자 보는 눈이 무진장 높은 애거든요. 예전에만 해도 서연이가 선배한테 아무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불쑥 사귀고 있다고 하니.... 선배의 어떤 매력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저도 무척 궁금하달까요? 서연이는 거기에 대해서 저한테 아무 말도 해주질 않거든요. 혹시 선배가 좀 말해주실래요? 헤헤."
최근 여자관계로 인해 더없이 예민해져 있었던 신경이 더욱 지끈거리는 느낌이었다. 더이상 여기에 다른 쓸 데 없는 문제를 굳이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이든간에, 서연이와 나 사이에 다른 무언가가 또 끼어드는 것만은 극구 사양하고 싶었다.
"너 호기심으로 한번 제대로 망해봐야 정신 차릴래?"
비록 이 년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내 말은 제법 뼈가 있는 소리였다. 나와 서연이의 급격한 관계 진전을 생각하면 사실 보통 사람은 도저히 납득을 할 수 없는 계기로 가까워진거나 다름이 없으니 서연이도 아마 예진이에게 어떠한 말도 해줄 수가 없었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으로 흥한자, 호기심으로 망한다."는 간단한 법칙을 망각하고 계속해서 까불어대는 예진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울컥 짜증이 치미는게 사실이었다. 아마 마음만 먹는다면 나와 서연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 년이 직접 스스로의 몸뚱이로 느낄 수 있도록 본 때를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도저히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쩔 수 없잖아요? 원래 저는 궁금한건 도저히 못 참는 여자라서요. 호호."
아무 것도 모르는 주제에 정말이지 잘도 까불거린다. 언젠가 한번 쓴 맛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만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현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현아 또한 내게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게서 재미있는 냄새가 난다며 호기심을 보이고 다가오던 그녀.... 하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현아의 얼굴이 떠오르니 자연스럽게 현주의 얼굴까지 덩달아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이상하게도 지금은 모든 문제가 서연이와 현주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져버리는 기분이었다. 이것 하나만 해결되면 모든 근심이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오토바이의 엔진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어머, 그 때 같이 견학갔던 그 1학년 여자애 아니에요?"
굳이 예진이가 옆에서 떠들지 않아도 캠퍼스를 가로질러 올라가는 저 오토바이가 유정이의 것임을 나도 알 수 있었다. 헬멧조차 쓰지 않은 채 풍성한 머리카락을 나풀거리며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그녀. 나를 본 것인지 못 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뒷모습을 보니 괜히 더욱 마음 속이 복잡해졌다. 어제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사는 잘 했으려나...."
그러고보니 이제 유정이와 나는 서로 이웃이나 다름이 없었다. 등교시간이 겹칠줄 알았다면 아침에 나올 때 연락이라도 해볼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잊어버렸다. 오늘 같은 기분이었다면 아마 알았더라도 연락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 참, 그리고 나는 저 오토바이 타는 애랑 성진 선배가 무슨 사이인지도 꽤 궁금해요."
"뭐라구?"
애써 유정이에 대한 일을 잠시 잊어버리려고 하는 내게, 예진이가 시덥잖은 말을 지껄였다.
"저 눈치 빠른거 아시잖아요. 내가 보기에 선배는 저 애랑도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헤헤, 아니에요?"
대꾸할 필요도 없는 말이었지만 사실 대꾸할 말이 궁색해지는 질문이기도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교문에서부터 떼어버리고 올걸 그랬나보다.
"너 그러다 진짜 혼날 수도 있어. 이제 그만 귀찮게 해."
나름대로 위협을 담아서 던진 말이었지만 그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뭐라고 대꾸를 하기도 전에 나는 예진이를 무시하고 애써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여전히 등 뒤에서는 나를 바라보는 그 계집애의 시선이 느껴지고 있었다.
*
아무래도 여자의 마음이라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한 모양이었다. 물론 나도 그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막상 그것을 대할 때면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지 막막해져버린다. 나와 현주의 앞에서 쿨한 모습으로 그렇게 사라졌던 서연이였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은 어제와는 사뭇 달라보였다.
"서연아.... 너 많이 화났구나."
"화 안 났어."
감정 표현에 솔직한 그녀의 성격으로 짐작하건대, 화나지 않았다는 그녀의 말은 역설적으로 그녀가 지금 많이 화났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미안해. 어제 그렇게 가고나서 기분 많이 안 좋았지?"
"화 안 났다니까. 그래서 그 뒤로 무슨 얘기 했는데?"
나직한 목소리와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는 냉랭한 태도가 그녀의 기분을 대변하고 있었다. 나는 그래서 더욱 조심스러웠다. 솔직하게 현주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까 싶었지만 지금은 좋은 타이밍이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우물쭈물 거리다보니 어느새 수업이 시작되어버렸다.
- 빨리 말해. 무슨 얘기 했어?
서연이는 그 언젠가처럼 문자를 보내듯이 노트 한 구석에 글씨를 써서 내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을 글로 표현할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그래서 마치 동문서답처럼 전혀 상관없는 대답을 밑에 달아주었다.
- 학교 마치고 방에 올래?
그러자 서연이가 즉각 못마땅한 얼굴로 답을 달았다.
- 왜 말을 돌려?
- 어제 못 놀았잖아.
그녀의 표정이 샐쭉해졌지만 영리한 여자답게 굳이 더 캐묻지는 않았다. 지금은 이야기하기 난처하다는걸 나름대로 눈치챈 것 같았다.
오늘은 서연이와 시간표가 그리 겹치는 날이 아니었기에 첫 수업 이후로 나는 서연이와 서로 떨어져야만 했다. 그녀가 다른 수업을 들으러 가버리자 나는 퍽 허전해졌다. 사실 서연이는 내 연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학교 내에서 거의 유일무이한 내 점심 파트너이기도 했기 때문에 당장 그녀가 없으니 같이 밥을 먹을 사람조차 없었다.
물론 혼자 밥을 먹는 것쯤은 이미 익숙한 일이긴 했다. 그러나 학생 식당에 혼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려니 그동안 서연이가 나를 배려해서 매일 같이 밥을 먹어주었다는게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빈약하다못해 비루한 인간관계에 회의감마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오빠, 같이 먹어도 되나요?"
고개를 들어보니 유정이가 식판을 들고 눈을 깜빡이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유정이도 은근히 아웃사이더과였지. 나와는 다르게 그녀가 왜 교우관계가 빈약한지는 좀체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근래들어 이상하게 하늘이 나를 갖고 장난을 치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들곤 한다. 하필 이 순간 유정이라니.... 솔직히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반갑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정이라면 내가 대놓고 거절하지 못할 것임을 내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으, 응."
사실은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나는 맞은 편의 자리를 그녀에게 내어주었다. 내게 있어 유정이가 가지는 의미를 과연 그녀가 의식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녀는 지금 나를 아주 제대로 곤란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사는... 잘 했어?"
"그럭저럭이요. 한번만 더 옮기면 될 것 같아요."
"그렇구나. 주말엔 꼭 도와줄게."
"네."
약간은 뻔한 대화가 오고 갔다. 오늘따라 그녀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어딘지 뻣뻣하다는걸 유정이도 느꼈던 걸까? 그녀는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오빠, 사실은.... 어제 싸우는거 봤어요."
"응?"
"보려고 봤던건 아닌데.... 원룸 입구에서 우연히 봤어요. 어제 싸우던 그 여자분이 오빠 여자친구인거죠?"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사실 유정이가 현주와 다투던 내 모습을 봤을지 속으로 궁금하긴 했었는데, 역시나 봤던 거구나.... 하긴 상당히 소란스러웠으니 당연한 걸지도.
하지만 그보다도 뭔가 유정이에게만은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여버렸다는 기분이 들어 묘하게 부끄러워졌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러한 고민들이 유정이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묻고 싶었지만, 또 한편으론 결코 유정이에게만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기분도 들었다.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다.
"으, 응..."
죄를 짓는 것도 아닌데.... 대답이 궁색하게 나온다. 하지만 유정이는 역시나 평소처럼 담담한 얼굴이었다.
"괜찮아요?"
왠지 그녀의 질문은 무척 함축적으로 들렸다. 너무나도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글... 쎄..."
내가 서연이와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사실 반쯤은 유정이의 덕이기도 했다. 유정이가 내게 계기를 심어주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도 나와 서연이는 흐지부지하고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 선택의 결과로 나는 결국 현주와 부딪히게 되었다. 어쩌면 유정이는 처음부터 그걸 예상했을까?
"서연 언니랑은 잘 해결되신 건가요?"
난처해하는 내 기색을 살핀 것일수도 있지만 그녀는 또 일부러 다른 질문을 던졌다. 어쩌면 그 질문이 앞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거라 생각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만약 어제 유정이가 강의실에서 서연이의 모습을 봤더라면 굳이 그걸 물을 필요도 없었을 텐데.
"뭐... 아직도 해결 중인 셈이지."
그걸로 대답이 되었는지 유정이는 더이상 캐묻지 않았다. 우리는 평소와는 다르게 약간은 무겁고 어색한 공기 속에서 식사를 마쳤다. 밥을 먹고 나서 서로 수업을 들으러 헤어질 때 유정이는 문득 이런 말을 남겼다.
"고민이 많아 보여요 오빠. 뭐가 되었든 간에 모두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네요."
진심일까...? 내가 서연이나 현주와 더욱 깊어질수록 반대로 유정이와는 더 멀어질 수 밖에 없다는걸 유정이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내가 잘 되길 바라는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한심한 걸까? 내심으로 유정이와의 관계 또한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게 스스로도 신기했다.... 이미 충분한 고민을 안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서연이, 현주, 현아, 유정이.... 머릿 속이 너무도 복잡했다. 희미하고, 옅고, 난잡한 관계들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을 확실하게 만들고 싶었지만 뚜렷한 것이 너무도 부족했다. 하나라도 무언가 확실해지면 좋겠다고.... 마음 속으로부터 나는 갈망했다.
*
아마도 단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서연이와의 만남이 대부분 섹스를 동반한다는 사실이었다. 내 기억 속에서 그녀와의 만남은 늘 한결같이 뜨거웠고, 정열적이었다. 그녀는 현주와는 달랐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녀를 소중히 여기게 된 걸까? 현주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여자이기 때문에?
"아응!"
서연이의 신음소리가 희미하게 메아리쳤다. 좁은 자취방을 가득 울릴 만큼 큰 소리였기에 분명 옆집 여자가 있다면 이를 듣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별로 신경 쓰이진 않았다.
섹스가 시작되고나니 방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냉랭하고 뾰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그녀가 언제 그랬냐는 듯 열중하기 시작했다. 얼핏 단순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섹스에 대해서는 진솔한 모습을 보이는 그녀였지만 나는 그녀의 그런 부분을 싫어할 수가 없었다. 그 단순함과 진솔함이 어찌보면 우리를 이어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기분 좋아?"
"몰라.... 대답하기 싫으니까 일부러 섹스로 때우려는거지? 어제 무슨 얘기 했는지 얼른 말해줘."
"그런거 아냐. 이따가 다 말해줄게."
"약속한 거야. 은근슬쩍 넘길 생각 하지 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를 움직였다. 그러자 이미 그녀의 보지에 꽂혀있었던 내 물건이 꿈틀거리며 속에서 펌핑을 하기 시작했다. 서연이가 몸을 꼬으며 언제나처럼 뜨거운 숨결을 뱉는다.
"하아... 깊이 들어왔어."
"서연아... 나 물어볼게 있는데."
"뭔데...."
그녀의 표정은 "이 좋은 순간에 지금 꼭 그걸 물어야겠냐" 하는 표정이었다. 한창 달구어지려고 하던 차에 산통을 깨버린 나를 그녀는 못마땅하게 바라보면서도 내 질문을 들어주려는 기색이었다.
"만약에 우리가 이렇게 섹스하는거.... 다른 사람이 보고 있다면 무슨 기분이 들 것 같아?"
"뭐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인지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당연히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겠지. 나 또한 이런걸 물어봐야 할 일이 생길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으니.
"말이라고 해? 당연히 싫지."
"시, 싫어?"
"당연하지. 그럼 자기는 그런게 좋아?"
하기사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이 지켜본다는게 좋을 리는 없었다. 물론 그것도 일종의 성적 자극이 될 수는 있겠지만 서연이가 그런 의미로 내 질문을 이해한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그냥 물어본거야."
넌지시 던져본 질문의 결과가 좋지 않자 나는 이내 그것을 머리 속에서 지우고 섹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서연이와의 섹스는 오로지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지금 이러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더더욱 좋았다. 뒷일이야 어쨌건 지금은 여기에 집중하면 된다....
"으응! 으으응... 하응! 아아응!"
허리놀림에 힘이 들어갈수록 질컥거리는 물소리는 한층 더 또렷해지고 있었고, 서연이의 신음소리가 더 높아져갔다. 이미 꽤 오랜 시간 좆질을 해댔다. 정상위로 한참을 박아대다보니 서서히 절정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간질간질한 사정기가 치밀어오르는 이 순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머리 속을 새하얗게 비워주어야 하건만, 정말 이상하게도 하필 그 순간 딴 생각이 비집고 들어왔다.
"이 좋은걸 왜 현주랑은 못하는 걸까...?"
얄궂게도 하필 절정의 순간에 다른 생각이 떠올라 사정의 기미가 다소 가라앉고 말았다. 서연이도 조금은 의아한 눈치였다. 나와의 잦은 섹스로 인해서 이제는 나 뿐만이 아니라, 그녀 또한 나의 몸에 대해서 상당히 깊은 수준으로 파악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절정에 오르기 전에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를 이미 꿰고 있는 그녀로서는, 분명 사정을 했어야 할 타이밍에 주춤거리는 것을 보고 평소와는 다르다고 느낀 것 같았다.
"내가 위에 올라갈래."
멈칫하는 나의 반응을 느낀 그녀가 나를 눕히고는 그 위에 기승위로 올라탔다. 어쩌면 내 상태를 눈치채고는 내가 딴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드려는 그녀만의 당돌한 수작일지도 몰랐다. 오직 서연이이기에 가능한 우리만의 진솔한 몸의 대화였다.
"으흑!"
기마를 타듯이 올라탄 서연이가 순식간에 내 자지를 한 손으로 움켜쥐고는 자신의 구멍 속으로 내 물건을 조준시켜 쑤욱 밀어넣어버렸다. 그녀의 조갯살을 가르고 질척한 질벽을 단숨에 뚫은 물건이 안쪽에 단단히 박혔다. 그러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뾰족한 탄성을 질렀다.
"좋아...?"
이번엔 서연이가 내게 묻는다. 나는 희미하게 눈을 뜬 채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결코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딴 생각을 해."
역시나 그녀는 내 상태를 눈치채고 있었던 듯.... 정곡을 찔러 물었다. 하긴 이렇게 몸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굳이 언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의 속내 쯤은 읽을 수 있어야 정상이었다. 나 또한 그녀가 서운해하고 있다는걸 알 수 있지 않은가.
"미안해... 집중할게."
고맙게도 그녀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샅샅이 당장 캐묻지 않았다. 그녀로서도 이 순간이 지나간 후에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단순히 지금의 즐거움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으응! 흐응! 아아응!!"
나는 다시 한번 좆질에 박차를 가해, 방금 전에 놓아버렸던 절정으로의 끈을 다시 부여잡고 오르가즘을 향해 달려갔다. 허리에 올라탄 서연이의 어깨를 한팔로 두르고는 내 가슴 위로 그녀의 몸을 포개어 눕혔다. 그리고는 어깨에 두른 손을 사정없이 아래로 찍어내려가며 동시에 허리를 힘껏 위로 쳐올렸다.
푸욱푸욱 조갯살을 잘도 헤집고 들어가는 아늑한 느낌과 함께 다시금 질컥거리는 음탕한 물소리가 방 안 가득히 울렸다. 격정을 참지 못하고 우리는 텔레파시라도 통한듯 서로에게 입을 맞추었다. 피부만 만져도 서로가 뭘 원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겹쳐진 입술 틈새로 혀가 얽혔고, 서로의 침이 끈적끈적하게 입 안을 넘나들었다.
"흐으윽! 아으응! 하으으응!!"
키스와 삽입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으니 이루 말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랫입과 윗입을 동시에 맞추어가며 우리는 그렇게 하나가 되고 있었다. 몸으로 대화가 가능하기에 나눌 수 있는 원색적이고 뚜렷한 형태의 사랑이었다. 자기가 보는 앞에서 서연이와 섹스를 해보라고 했던 현주의 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은 결코 할 수 없는 이러한 사랑의 모습을 그녀가 눈 앞에서 목도하게 되면 과연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으윽!"
꼴사납게 또 딴 생각을 하느라 사정의 순간을 놓쳐버릴 뻔 했지만 용케 탈선하지 않고 그대로 곧장 서연이의 따뜻한 보지 안에 좆물을 울컥 토해냈다. 서연이도 몸을 바르르 떨며 쾌감의 순간을 즐기는 것 같았다. 속옷과 옷가지가 아무렇게나 주변에 던져진 난잡한 침대 위에서 우리는 그렇게 서로 절정을 맞이했다.
"하아아...."
여느 때처럼 나는 서연이가 후희를 즐길 수 있도록 그녀의 몸을 천천히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그녀 또한 익숙한 듯이 내 품 안으로 안겨오며 팔베개를 베고 누웠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평소와는 다르게 내게 질문부터 던진다.
"아까 왜 그런거 물어봤어?"
"응?"
"누가 보고 있으면 어떻겠냐고 물어본거 말야. 솔직하게 말해. 이유가 있으니까 물어본 거 아니야?"
여자의 직감인지, 아니면 단순히 영리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 서연이는 내게 정말로 고마운 여자였다. 어떻게 꺼낼지 감조차 잡히질 않는 문제를 이렇게 털어놓을 수 있게 만들어주니 말이다.
"사실은...."
나는 현주가 내게 했던 말을 서연이에게 들려주었다. 내가 이야기하는 동안 서연이는 내 품에 얌전히 안겨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말이 끝났음에도 서연이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아, 아무래도 힘들겠지?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섹스를 한다는건...."
"........"
나는 서연이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뒤로도 꽤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초조하게 기다린 침묵의 시간 끝에 결국 그녀가 입을 떼었고, 나는 대답을 듣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좋아."
"뭐?"
잘못 들었나 싶어서 품 안에 안긴 서연이의 표정을 내려다보았지만, 그녀가 농담을 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좋다구. 그 여자친구 말대로 해보자."
서연이의 입에서 현주를 "여자친구"라고 지칭하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이미 그 대화는 서연이가 나의 여자친구라는 것을 그 자체로 가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주를 다른 말로 지칭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런 난잡한 관계를 내 스스로 자초했다는 것이 못내 자책감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 보는거... 싫다며?"
"다른 사람이 아니잖아? 이 경우에는."
그녀에 대답에 나는 놀랐다. 현주의 문제를 어떠한 형태로든 해결하지 않고서는 나도 서연이도 결코 마음 편하지 못할 것임을 그녀도 분명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 말도 안 되는 부탁에 선뜻 응해주는 서연이의 모습은 정말이지 내 예상 밖이었다.
"그 여자친구가 그걸 원한다면 보여줘도 딱히 상관은 없어."
"괜찮겠어?"
"물론 내키는건 아니지. 그래도 계속 이렇게 흐지부지하는 자기 모습 보는 것 보단 깔끔하게 해결을 보는게 나도 차라리 좋겠어. 여자친구 쪽에서 그걸 원했다고 하니까 그렇게 해주고 나면 어떻게든 결론이 날 거 아냐."
돌이켜보면 매번 나는 서연이가 보여주는 생각 이상의 담대함에 놀라고는 했었지만, 지금은 또 다른 의미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부탁까지 못 이겨 들어줄 정도로 정말 그녀는 나를 그렇게 사랑하는걸까? 아니면 단순히 현주가 보는 앞에서 관계를 가지는 모습을 보여주어 승리감을 과시하고 싶은 걸까?
사실 나는 어느 쪽이든 상관이 없었다. 현주의 부탁을 들어줄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것이 현주의 마지막 부탁이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왜 그걸 굳이 보고 싶어하는지는 도무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게...."
그러고보니 서연이가 현주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부분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거 서연이도 알 것은 알아야 했다. 털어놓기에 지금보다 더 좋은 순간은 없었다.
나는 서연이에게 그간 미루어왔던 현주의 과거를 모두 이야기해주었다. 현주가 과거에 겪은 강간에서부터, 그녀 내면에 자리잡은 성에 대한 트라우마와 그로 인한 우리의 관계까지 모조리.... 마치 현주의 치부를 내가 함부로 타인에게 드러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한마디 한마디를 뱉을때마다 왠지 모를 죄책감이 치솟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애써 이야기를 끝까지 마쳤다.
혹시나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서연이가 현주에 대한 동정심을 발휘해서 무언가 대답을 바꾸거나, 아니면 새로운 방향으로의 해결책을 제안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내심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주의깊게 이야기를 모두 듣더니, 잠시 고민의 시간을 가졌을 뿐 굳이 대답을 바꾸지는 않았다. 다만 그녀는 한 마디를 더 붙였다.
"조건이 있어."
"조건...?"
현주의 과거를 알게 된 것이 서연이에게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나로서는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상황에서의 주도권은 더이상 내가 아닌 서연이의 손에 있었다.
"여자친구가 보는 앞에서 하는 대신에, 섹스는 내가 리드할거야."
"그게... 전부야?"
"응. 그럴 수 있어?"
생각이 필요한 문제이긴 했지만 나로서는 생각할 여지가 없기도 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불러."
"뭐?"
넋을 놓고 있는 내게 서연이가 못을 박듯이 힘주어 다시 한번 말했다.
"부르라구. 지금 당장."
- 다음 화에 계속 -
오전 중으로 올린다는 것이 조금 늦어졌습니다 ㅠ.ㅠ 죄송합니다
정신없이 올리느라 분량이 조금 짧네요... 다음 33장은 분량을 길게 내겠습니다
오래 기다리시게 하여 죄송하고 뜻깊은 현충일 모두 보람차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 악플러에 대해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요며칠 악플 때문에 신경이 조금 쓰였습니다
글을 쓰다보면 물론 이런저런 댓글을 보게 되고 저 또한 마냥 좋은 칭찬만 들어가며 글을 쓰겠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기에 저는 웬만해서는 절대 독자님들의 댓글을 지우지 않습니다.. 가끔은 눈쌀 찌푸려지는 일이 간혹 하나둘씩 생기더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적어도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비난을 받는 것만큼은 참을 수가 없네요
제가 소라에서 글을 쓰는 이유는 이곳이 다른 어떤 곳보다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지난화의 댓글 중 "이런 사이트에나 어울릴 만한 글"이라는 표현을 보고 솔직히 기분이 많이 언짢더군요
처음으로 댓글 신고를 해서 댓글을 지워버렸습니다
혹시나 그 댓글을 쓰신 분이 보고 계신다면 묻겠습니다
"이런 사이트"라고 비방하시면서 굳이 소라에 들어와 글을 보시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물론 이 글에서 표현되고 있는 성에 대한 관념은 사회적으로 정상이 아니며 그것은 당신 뿐만이 아니라 이 글을 보고 계시는 독자분들도 다 알고 계시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른 곳이 아닌 소라넷인만큼 적어도 성에 관련해서는 "이러한 관념도 있을 수 있다"라는 것을 표현함에 있어 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대중적으로 올바르고 정상적인 가치관이나 관념으로만 글을 써야 한다면 왜 굳이 소라넷에서 글을 쓰겠습니까? 다자연애 뿐만이 아니라 강간, 근친, NTR 등의 장르 역시 인간의 다양한 관념에 의해 얼마든지 소설로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구역질난다"는 이유로 비난하실 생각이라면 굳이 이 글을 보지 마세요.
저는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에 비판을 얼마든지 수용합니다만 기본적인 예의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람에게 "비판"도 아닌 "비난"을 받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본인의 가치관에 맞지 않다면 악플을 남길 것이 아니라 글을 보지 마세요. 당신께 이 글을 보라고 부탁한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악플이라는 것에 크게 신경을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이런 사람들 몇몇 때문에 많은 작가분들이 소라넷을 뜨셨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기도 하고 해서 감정적인 글을 남겼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제가 그들에게 바라는건 아무리 얼굴 보이지 않는 인터넷이라고 해도 부디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자는 겁니다. 성인사이트에 드나들 정도라면 나이는 그만큼 갖추었다는 뜻일 테니까요.
끝으로 다른 독자분들께는 이런 글을 보여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 이 소설은 소.라.넷(sora.net) 작가 "상상의신비"가 연재 중인 작품입니다.
무단 불펌을 삼가해 주시길 부탁드리며, 퍼가시더라도 출처와 작가명을 꼭 남겨주십시오.
창작가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자 도리입니다.
* 1부 32장
그 후로 현주를 어떻게 돌려보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녀가 내게 심어준 어느 한 부분의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인지 그것을 제외한 기억이 옅어져버린 느낌이었다. 다음날 침대에서 눈을 뜬 나는 한참 동안 무거운 눈꺼풀을 끔뻑거리며 생각과 몽상의 사이에서 오랫동안 허우적거렸다.
현주는 진심이었을까? 그녀가 던진 그 한 마디만이 기억 속에 남아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그녀가 얻고자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진 모르겠지만 내가 그걸 이해할 수 있다한들, 서연이가 그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또한 미지수였다. 세상 어느 여자가 다른 여자가 보는 앞에서 성관계를 갖고 싶어할까.
"하긴... 그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더욱 오래, 더욱 깊이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을 반으로 나눈다는 것. 그 또한 마찬가지로 세상 누가 보더라도 결코 정상적이지 못한 그릇된 사랑의 관념임이 분명하다. 남 말을 할 처지가 아닌 것이다. 다만 서로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길 바라는 것 뿐.
내가 먼저 현주에게 이야기를 꺼낸 이상 나 또한 그녀의 부탁을 들어줘야만 한다. 그래야만 내가 이 그릇되고 이기적인 관념을 그녀에게 내세움에 있어 조금이나마 떳떳할 수 있을 것이니. 설사 그것이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 말을 따라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서연이에게는 대체 어떻게 이야길 꺼낸단 말인가?
"젠장... 학교나 가자."
어쩌면 나는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어린애처럼 억지를 부리고 있는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가지기 위해서 무언가를 버리는건 당연한 이치인데, 마치 그 당연한 것을 인정하지 못해서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 기분은 그랬다.
학교로 가는 길에도 계속 멍하니 딴생각만 하고 있었다. 운전을 할 기분이 아니라서 모처럼 버스를 탔는데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뜻밖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선배~!"
누가 나를 부르건 말건 귓전에 울리는 소리를 신경쓰지 않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내 등을 탁 하고 치는게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뜻밖의 인물이 있었다. 아무래도 이 년이 요새 나를 스토킹이라도 하나보다.
"버스에서 내릴 때부터 계속 불렀는데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 거에요?"
"너 뭐야?"
"뭐냐니요?"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듯, 생글생글 웃는 예진이의 얼굴을 보니 조금 어이가 없었다. 불과 어제 서연이에게 그런 말을 들어놓고 또 나한테 왜 이러는거지?
"왜 자꾸 친한 척이야?"
"왜요? 싫으세요?"
"싫고 좋고가 문제가 아니라...."
문득 서연이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확실하게 말했으면 되는걸 왜 바보같이 쩔쩔매고 그러냐며, 나를 핀잔주던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니 자연스럽게 현주의 얼굴까지 덩달아 떠올라 골치가 더욱 아파졌다. 좌우지간 지금은 예진이의 상대를 해줄 기분이 아니었다.
"나 서연이랑 사귀는거 맞아. 네가 궁금해하던거 알았으면 됐지 왜 자꾸 추근덕거리는거야?"
"섭한 소리 하시네요. 전 그냥 선배랑 조금 가까워지고 싶은 것 뿐인데요. 서연이가 선배랑 사귄다고 해서 내가 선배랑 친해지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나요?"
"네가 왜 갑자기 나랑...."
서로 인사조차 하지 않았던 애가 갑자기 친해지겠다며 달라붙는 것이 액면 그대로 순수하게 느껴질 리는 없었다. 그녀가 서연이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나에게 접근했던 것이라면 이제는 그럴 이유가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뭔가를 캐내려는 듯한 기색이었고, 나는 그 점이 수상했지만 굳이 그걸 궁금해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음... 글쎄요. 호기심이랄까?"
고민하는 표정으로 입술에 한 손가락을 갖다 대는 예진이. 나는 애써 무시하며 가던 길을 재촉했지만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따라붙으며 쉴 새 없이 조잘거렸다.
"선배도 알다시피 제가 호기심을 도저히 못 참는 성격이거든요. 그런데 사실 두 사람이 진짜로 사귀는 사이라는걸 알고 나니까 더더욱 호기심이 생기지 뭐에요? 호호."
"호기심이라니?"
"걔가 원래 남자 보는 눈이 무진장 높은 애거든요. 예전에만 해도 서연이가 선배한테 아무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불쑥 사귀고 있다고 하니.... 선배의 어떤 매력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저도 무척 궁금하달까요? 서연이는 거기에 대해서 저한테 아무 말도 해주질 않거든요. 혹시 선배가 좀 말해주실래요? 헤헤."
최근 여자관계로 인해 더없이 예민해져 있었던 신경이 더욱 지끈거리는 느낌이었다. 더이상 여기에 다른 쓸 데 없는 문제를 굳이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이든간에, 서연이와 나 사이에 다른 무언가가 또 끼어드는 것만은 극구 사양하고 싶었다.
"너 호기심으로 한번 제대로 망해봐야 정신 차릴래?"
비록 이 년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내 말은 제법 뼈가 있는 소리였다. 나와 서연이의 급격한 관계 진전을 생각하면 사실 보통 사람은 도저히 납득을 할 수 없는 계기로 가까워진거나 다름이 없으니 서연이도 아마 예진이에게 어떠한 말도 해줄 수가 없었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으로 흥한자, 호기심으로 망한다."는 간단한 법칙을 망각하고 계속해서 까불어대는 예진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울컥 짜증이 치미는게 사실이었다. 아마 마음만 먹는다면 나와 서연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 년이 직접 스스로의 몸뚱이로 느낄 수 있도록 본 때를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도저히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쩔 수 없잖아요? 원래 저는 궁금한건 도저히 못 참는 여자라서요. 호호."
아무 것도 모르는 주제에 정말이지 잘도 까불거린다. 언젠가 한번 쓴 맛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만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현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현아 또한 내게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게서 재미있는 냄새가 난다며 호기심을 보이고 다가오던 그녀.... 하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현아의 얼굴이 떠오르니 자연스럽게 현주의 얼굴까지 덩달아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이상하게도 지금은 모든 문제가 서연이와 현주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져버리는 기분이었다. 이것 하나만 해결되면 모든 근심이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오토바이의 엔진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어머, 그 때 같이 견학갔던 그 1학년 여자애 아니에요?"
굳이 예진이가 옆에서 떠들지 않아도 캠퍼스를 가로질러 올라가는 저 오토바이가 유정이의 것임을 나도 알 수 있었다. 헬멧조차 쓰지 않은 채 풍성한 머리카락을 나풀거리며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그녀. 나를 본 것인지 못 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뒷모습을 보니 괜히 더욱 마음 속이 복잡해졌다. 어제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사는 잘 했으려나...."
그러고보니 이제 유정이와 나는 서로 이웃이나 다름이 없었다. 등교시간이 겹칠줄 알았다면 아침에 나올 때 연락이라도 해볼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잊어버렸다. 오늘 같은 기분이었다면 아마 알았더라도 연락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 참, 그리고 나는 저 오토바이 타는 애랑 성진 선배가 무슨 사이인지도 꽤 궁금해요."
"뭐라구?"
애써 유정이에 대한 일을 잠시 잊어버리려고 하는 내게, 예진이가 시덥잖은 말을 지껄였다.
"저 눈치 빠른거 아시잖아요. 내가 보기에 선배는 저 애랑도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헤헤, 아니에요?"
대꾸할 필요도 없는 말이었지만 사실 대꾸할 말이 궁색해지는 질문이기도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교문에서부터 떼어버리고 올걸 그랬나보다.
"너 그러다 진짜 혼날 수도 있어. 이제 그만 귀찮게 해."
나름대로 위협을 담아서 던진 말이었지만 그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뭐라고 대꾸를 하기도 전에 나는 예진이를 무시하고 애써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여전히 등 뒤에서는 나를 바라보는 그 계집애의 시선이 느껴지고 있었다.
*
아무래도 여자의 마음이라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한 모양이었다. 물론 나도 그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막상 그것을 대할 때면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지 막막해져버린다. 나와 현주의 앞에서 쿨한 모습으로 그렇게 사라졌던 서연이였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은 어제와는 사뭇 달라보였다.
"서연아.... 너 많이 화났구나."
"화 안 났어."
감정 표현에 솔직한 그녀의 성격으로 짐작하건대, 화나지 않았다는 그녀의 말은 역설적으로 그녀가 지금 많이 화났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미안해. 어제 그렇게 가고나서 기분 많이 안 좋았지?"
"화 안 났다니까. 그래서 그 뒤로 무슨 얘기 했는데?"
나직한 목소리와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는 냉랭한 태도가 그녀의 기분을 대변하고 있었다. 나는 그래서 더욱 조심스러웠다. 솔직하게 현주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까 싶었지만 지금은 좋은 타이밍이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우물쭈물 거리다보니 어느새 수업이 시작되어버렸다.
- 빨리 말해. 무슨 얘기 했어?
서연이는 그 언젠가처럼 문자를 보내듯이 노트 한 구석에 글씨를 써서 내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을 글로 표현할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그래서 마치 동문서답처럼 전혀 상관없는 대답을 밑에 달아주었다.
- 학교 마치고 방에 올래?
그러자 서연이가 즉각 못마땅한 얼굴로 답을 달았다.
- 왜 말을 돌려?
- 어제 못 놀았잖아.
그녀의 표정이 샐쭉해졌지만 영리한 여자답게 굳이 더 캐묻지는 않았다. 지금은 이야기하기 난처하다는걸 나름대로 눈치챈 것 같았다.
오늘은 서연이와 시간표가 그리 겹치는 날이 아니었기에 첫 수업 이후로 나는 서연이와 서로 떨어져야만 했다. 그녀가 다른 수업을 들으러 가버리자 나는 퍽 허전해졌다. 사실 서연이는 내 연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학교 내에서 거의 유일무이한 내 점심 파트너이기도 했기 때문에 당장 그녀가 없으니 같이 밥을 먹을 사람조차 없었다.
물론 혼자 밥을 먹는 것쯤은 이미 익숙한 일이긴 했다. 그러나 학생 식당에 혼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려니 그동안 서연이가 나를 배려해서 매일 같이 밥을 먹어주었다는게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빈약하다못해 비루한 인간관계에 회의감마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오빠, 같이 먹어도 되나요?"
고개를 들어보니 유정이가 식판을 들고 눈을 깜빡이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유정이도 은근히 아웃사이더과였지. 나와는 다르게 그녀가 왜 교우관계가 빈약한지는 좀체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근래들어 이상하게 하늘이 나를 갖고 장난을 치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들곤 한다. 하필 이 순간 유정이라니.... 솔직히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반갑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정이라면 내가 대놓고 거절하지 못할 것임을 내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으, 응."
사실은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나는 맞은 편의 자리를 그녀에게 내어주었다. 내게 있어 유정이가 가지는 의미를 과연 그녀가 의식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녀는 지금 나를 아주 제대로 곤란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사는... 잘 했어?"
"그럭저럭이요. 한번만 더 옮기면 될 것 같아요."
"그렇구나. 주말엔 꼭 도와줄게."
"네."
약간은 뻔한 대화가 오고 갔다. 오늘따라 그녀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어딘지 뻣뻣하다는걸 유정이도 느꼈던 걸까? 그녀는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오빠, 사실은.... 어제 싸우는거 봤어요."
"응?"
"보려고 봤던건 아닌데.... 원룸 입구에서 우연히 봤어요. 어제 싸우던 그 여자분이 오빠 여자친구인거죠?"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사실 유정이가 현주와 다투던 내 모습을 봤을지 속으로 궁금하긴 했었는데, 역시나 봤던 거구나.... 하긴 상당히 소란스러웠으니 당연한 걸지도.
하지만 그보다도 뭔가 유정이에게만은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여버렸다는 기분이 들어 묘하게 부끄러워졌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러한 고민들이 유정이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묻고 싶었지만, 또 한편으론 결코 유정이에게만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기분도 들었다.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다.
"으, 응..."
죄를 짓는 것도 아닌데.... 대답이 궁색하게 나온다. 하지만 유정이는 역시나 평소처럼 담담한 얼굴이었다.
"괜찮아요?"
왠지 그녀의 질문은 무척 함축적으로 들렸다. 너무나도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글... 쎄..."
내가 서연이와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사실 반쯤은 유정이의 덕이기도 했다. 유정이가 내게 계기를 심어주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도 나와 서연이는 흐지부지하고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 선택의 결과로 나는 결국 현주와 부딪히게 되었다. 어쩌면 유정이는 처음부터 그걸 예상했을까?
"서연 언니랑은 잘 해결되신 건가요?"
난처해하는 내 기색을 살핀 것일수도 있지만 그녀는 또 일부러 다른 질문을 던졌다. 어쩌면 그 질문이 앞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거라 생각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만약 어제 유정이가 강의실에서 서연이의 모습을 봤더라면 굳이 그걸 물을 필요도 없었을 텐데.
"뭐... 아직도 해결 중인 셈이지."
그걸로 대답이 되었는지 유정이는 더이상 캐묻지 않았다. 우리는 평소와는 다르게 약간은 무겁고 어색한 공기 속에서 식사를 마쳤다. 밥을 먹고 나서 서로 수업을 들으러 헤어질 때 유정이는 문득 이런 말을 남겼다.
"고민이 많아 보여요 오빠. 뭐가 되었든 간에 모두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네요."
진심일까...? 내가 서연이나 현주와 더욱 깊어질수록 반대로 유정이와는 더 멀어질 수 밖에 없다는걸 유정이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내가 잘 되길 바라는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한심한 걸까? 내심으로 유정이와의 관계 또한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게 스스로도 신기했다.... 이미 충분한 고민을 안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서연이, 현주, 현아, 유정이.... 머릿 속이 너무도 복잡했다. 희미하고, 옅고, 난잡한 관계들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을 확실하게 만들고 싶었지만 뚜렷한 것이 너무도 부족했다. 하나라도 무언가 확실해지면 좋겠다고.... 마음 속으로부터 나는 갈망했다.
*
아마도 단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서연이와의 만남이 대부분 섹스를 동반한다는 사실이었다. 내 기억 속에서 그녀와의 만남은 늘 한결같이 뜨거웠고, 정열적이었다. 그녀는 현주와는 달랐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녀를 소중히 여기게 된 걸까? 현주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여자이기 때문에?
"아응!"
서연이의 신음소리가 희미하게 메아리쳤다. 좁은 자취방을 가득 울릴 만큼 큰 소리였기에 분명 옆집 여자가 있다면 이를 듣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별로 신경 쓰이진 않았다.
섹스가 시작되고나니 방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냉랭하고 뾰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그녀가 언제 그랬냐는 듯 열중하기 시작했다. 얼핏 단순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섹스에 대해서는 진솔한 모습을 보이는 그녀였지만 나는 그녀의 그런 부분을 싫어할 수가 없었다. 그 단순함과 진솔함이 어찌보면 우리를 이어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기분 좋아?"
"몰라.... 대답하기 싫으니까 일부러 섹스로 때우려는거지? 어제 무슨 얘기 했는지 얼른 말해줘."
"그런거 아냐. 이따가 다 말해줄게."
"약속한 거야. 은근슬쩍 넘길 생각 하지 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를 움직였다. 그러자 이미 그녀의 보지에 꽂혀있었던 내 물건이 꿈틀거리며 속에서 펌핑을 하기 시작했다. 서연이가 몸을 꼬으며 언제나처럼 뜨거운 숨결을 뱉는다.
"하아... 깊이 들어왔어."
"서연아... 나 물어볼게 있는데."
"뭔데...."
그녀의 표정은 "이 좋은 순간에 지금 꼭 그걸 물어야겠냐" 하는 표정이었다. 한창 달구어지려고 하던 차에 산통을 깨버린 나를 그녀는 못마땅하게 바라보면서도 내 질문을 들어주려는 기색이었다.
"만약에 우리가 이렇게 섹스하는거.... 다른 사람이 보고 있다면 무슨 기분이 들 것 같아?"
"뭐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인지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당연히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겠지. 나 또한 이런걸 물어봐야 할 일이 생길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으니.
"말이라고 해? 당연히 싫지."
"시, 싫어?"
"당연하지. 그럼 자기는 그런게 좋아?"
하기사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이 지켜본다는게 좋을 리는 없었다. 물론 그것도 일종의 성적 자극이 될 수는 있겠지만 서연이가 그런 의미로 내 질문을 이해한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그냥 물어본거야."
넌지시 던져본 질문의 결과가 좋지 않자 나는 이내 그것을 머리 속에서 지우고 섹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서연이와의 섹스는 오로지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지금 이러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더더욱 좋았다. 뒷일이야 어쨌건 지금은 여기에 집중하면 된다....
"으응! 으으응... 하응! 아아응!"
허리놀림에 힘이 들어갈수록 질컥거리는 물소리는 한층 더 또렷해지고 있었고, 서연이의 신음소리가 더 높아져갔다. 이미 꽤 오랜 시간 좆질을 해댔다. 정상위로 한참을 박아대다보니 서서히 절정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간질간질한 사정기가 치밀어오르는 이 순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머리 속을 새하얗게 비워주어야 하건만, 정말 이상하게도 하필 그 순간 딴 생각이 비집고 들어왔다.
"이 좋은걸 왜 현주랑은 못하는 걸까...?"
얄궂게도 하필 절정의 순간에 다른 생각이 떠올라 사정의 기미가 다소 가라앉고 말았다. 서연이도 조금은 의아한 눈치였다. 나와의 잦은 섹스로 인해서 이제는 나 뿐만이 아니라, 그녀 또한 나의 몸에 대해서 상당히 깊은 수준으로 파악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절정에 오르기 전에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를 이미 꿰고 있는 그녀로서는, 분명 사정을 했어야 할 타이밍에 주춤거리는 것을 보고 평소와는 다르다고 느낀 것 같았다.
"내가 위에 올라갈래."
멈칫하는 나의 반응을 느낀 그녀가 나를 눕히고는 그 위에 기승위로 올라탔다. 어쩌면 내 상태를 눈치채고는 내가 딴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드려는 그녀만의 당돌한 수작일지도 몰랐다. 오직 서연이이기에 가능한 우리만의 진솔한 몸의 대화였다.
"으흑!"
기마를 타듯이 올라탄 서연이가 순식간에 내 자지를 한 손으로 움켜쥐고는 자신의 구멍 속으로 내 물건을 조준시켜 쑤욱 밀어넣어버렸다. 그녀의 조갯살을 가르고 질척한 질벽을 단숨에 뚫은 물건이 안쪽에 단단히 박혔다. 그러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뾰족한 탄성을 질렀다.
"좋아...?"
이번엔 서연이가 내게 묻는다. 나는 희미하게 눈을 뜬 채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결코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딴 생각을 해."
역시나 그녀는 내 상태를 눈치채고 있었던 듯.... 정곡을 찔러 물었다. 하긴 이렇게 몸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굳이 언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의 속내 쯤은 읽을 수 있어야 정상이었다. 나 또한 그녀가 서운해하고 있다는걸 알 수 있지 않은가.
"미안해... 집중할게."
고맙게도 그녀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샅샅이 당장 캐묻지 않았다. 그녀로서도 이 순간이 지나간 후에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단순히 지금의 즐거움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으응! 흐응! 아아응!!"
나는 다시 한번 좆질에 박차를 가해, 방금 전에 놓아버렸던 절정으로의 끈을 다시 부여잡고 오르가즘을 향해 달려갔다. 허리에 올라탄 서연이의 어깨를 한팔로 두르고는 내 가슴 위로 그녀의 몸을 포개어 눕혔다. 그리고는 어깨에 두른 손을 사정없이 아래로 찍어내려가며 동시에 허리를 힘껏 위로 쳐올렸다.
푸욱푸욱 조갯살을 잘도 헤집고 들어가는 아늑한 느낌과 함께 다시금 질컥거리는 음탕한 물소리가 방 안 가득히 울렸다. 격정을 참지 못하고 우리는 텔레파시라도 통한듯 서로에게 입을 맞추었다. 피부만 만져도 서로가 뭘 원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겹쳐진 입술 틈새로 혀가 얽혔고, 서로의 침이 끈적끈적하게 입 안을 넘나들었다.
"흐으윽! 아으응! 하으으응!!"
키스와 삽입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으니 이루 말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랫입과 윗입을 동시에 맞추어가며 우리는 그렇게 하나가 되고 있었다. 몸으로 대화가 가능하기에 나눌 수 있는 원색적이고 뚜렷한 형태의 사랑이었다. 자기가 보는 앞에서 서연이와 섹스를 해보라고 했던 현주의 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은 결코 할 수 없는 이러한 사랑의 모습을 그녀가 눈 앞에서 목도하게 되면 과연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으윽!"
꼴사납게 또 딴 생각을 하느라 사정의 순간을 놓쳐버릴 뻔 했지만 용케 탈선하지 않고 그대로 곧장 서연이의 따뜻한 보지 안에 좆물을 울컥 토해냈다. 서연이도 몸을 바르르 떨며 쾌감의 순간을 즐기는 것 같았다. 속옷과 옷가지가 아무렇게나 주변에 던져진 난잡한 침대 위에서 우리는 그렇게 서로 절정을 맞이했다.
"하아아...."
여느 때처럼 나는 서연이가 후희를 즐길 수 있도록 그녀의 몸을 천천히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그녀 또한 익숙한 듯이 내 품 안으로 안겨오며 팔베개를 베고 누웠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평소와는 다르게 내게 질문부터 던진다.
"아까 왜 그런거 물어봤어?"
"응?"
"누가 보고 있으면 어떻겠냐고 물어본거 말야. 솔직하게 말해. 이유가 있으니까 물어본 거 아니야?"
여자의 직감인지, 아니면 단순히 영리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 서연이는 내게 정말로 고마운 여자였다. 어떻게 꺼낼지 감조차 잡히질 않는 문제를 이렇게 털어놓을 수 있게 만들어주니 말이다.
"사실은...."
나는 현주가 내게 했던 말을 서연이에게 들려주었다. 내가 이야기하는 동안 서연이는 내 품에 얌전히 안겨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말이 끝났음에도 서연이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아, 아무래도 힘들겠지?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섹스를 한다는건...."
"........"
나는 서연이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뒤로도 꽤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초조하게 기다린 침묵의 시간 끝에 결국 그녀가 입을 떼었고, 나는 대답을 듣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좋아."
"뭐?"
잘못 들었나 싶어서 품 안에 안긴 서연이의 표정을 내려다보았지만, 그녀가 농담을 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좋다구. 그 여자친구 말대로 해보자."
서연이의 입에서 현주를 "여자친구"라고 지칭하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이미 그 대화는 서연이가 나의 여자친구라는 것을 그 자체로 가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주를 다른 말로 지칭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런 난잡한 관계를 내 스스로 자초했다는 것이 못내 자책감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 보는거... 싫다며?"
"다른 사람이 아니잖아? 이 경우에는."
그녀에 대답에 나는 놀랐다. 현주의 문제를 어떠한 형태로든 해결하지 않고서는 나도 서연이도 결코 마음 편하지 못할 것임을 그녀도 분명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 말도 안 되는 부탁에 선뜻 응해주는 서연이의 모습은 정말이지 내 예상 밖이었다.
"그 여자친구가 그걸 원한다면 보여줘도 딱히 상관은 없어."
"괜찮겠어?"
"물론 내키는건 아니지. 그래도 계속 이렇게 흐지부지하는 자기 모습 보는 것 보단 깔끔하게 해결을 보는게 나도 차라리 좋겠어. 여자친구 쪽에서 그걸 원했다고 하니까 그렇게 해주고 나면 어떻게든 결론이 날 거 아냐."
돌이켜보면 매번 나는 서연이가 보여주는 생각 이상의 담대함에 놀라고는 했었지만, 지금은 또 다른 의미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부탁까지 못 이겨 들어줄 정도로 정말 그녀는 나를 그렇게 사랑하는걸까? 아니면 단순히 현주가 보는 앞에서 관계를 가지는 모습을 보여주어 승리감을 과시하고 싶은 걸까?
사실 나는 어느 쪽이든 상관이 없었다. 현주의 부탁을 들어줄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것이 현주의 마지막 부탁이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왜 그걸 굳이 보고 싶어하는지는 도무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게...."
그러고보니 서연이가 현주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부분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거 서연이도 알 것은 알아야 했다. 털어놓기에 지금보다 더 좋은 순간은 없었다.
나는 서연이에게 그간 미루어왔던 현주의 과거를 모두 이야기해주었다. 현주가 과거에 겪은 강간에서부터, 그녀 내면에 자리잡은 성에 대한 트라우마와 그로 인한 우리의 관계까지 모조리.... 마치 현주의 치부를 내가 함부로 타인에게 드러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한마디 한마디를 뱉을때마다 왠지 모를 죄책감이 치솟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애써 이야기를 끝까지 마쳤다.
혹시나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서연이가 현주에 대한 동정심을 발휘해서 무언가 대답을 바꾸거나, 아니면 새로운 방향으로의 해결책을 제안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내심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주의깊게 이야기를 모두 듣더니, 잠시 고민의 시간을 가졌을 뿐 굳이 대답을 바꾸지는 않았다. 다만 그녀는 한 마디를 더 붙였다.
"조건이 있어."
"조건...?"
현주의 과거를 알게 된 것이 서연이에게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나로서는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상황에서의 주도권은 더이상 내가 아닌 서연이의 손에 있었다.
"여자친구가 보는 앞에서 하는 대신에, 섹스는 내가 리드할거야."
"그게... 전부야?"
"응. 그럴 수 있어?"
생각이 필요한 문제이긴 했지만 나로서는 생각할 여지가 없기도 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불러."
"뭐?"
넋을 놓고 있는 내게 서연이가 못을 박듯이 힘주어 다시 한번 말했다.
"부르라구. 지금 당장."
- 다음 화에 계속 -
오전 중으로 올린다는 것이 조금 늦어졌습니다 ㅠ.ㅠ 죄송합니다
정신없이 올리느라 분량이 조금 짧네요... 다음 33장은 분량을 길게 내겠습니다
오래 기다리시게 하여 죄송하고 뜻깊은 현충일 모두 보람차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 악플러에 대해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요며칠 악플 때문에 신경이 조금 쓰였습니다
글을 쓰다보면 물론 이런저런 댓글을 보게 되고 저 또한 마냥 좋은 칭찬만 들어가며 글을 쓰겠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기에 저는 웬만해서는 절대 독자님들의 댓글을 지우지 않습니다.. 가끔은 눈쌀 찌푸려지는 일이 간혹 하나둘씩 생기더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적어도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비난을 받는 것만큼은 참을 수가 없네요
제가 소라에서 글을 쓰는 이유는 이곳이 다른 어떤 곳보다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지난화의 댓글 중 "이런 사이트에나 어울릴 만한 글"이라는 표현을 보고 솔직히 기분이 많이 언짢더군요
처음으로 댓글 신고를 해서 댓글을 지워버렸습니다
혹시나 그 댓글을 쓰신 분이 보고 계신다면 묻겠습니다
"이런 사이트"라고 비방하시면서 굳이 소라에 들어와 글을 보시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물론 이 글에서 표현되고 있는 성에 대한 관념은 사회적으로 정상이 아니며 그것은 당신 뿐만이 아니라 이 글을 보고 계시는 독자분들도 다 알고 계시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른 곳이 아닌 소라넷인만큼 적어도 성에 관련해서는 "이러한 관념도 있을 수 있다"라는 것을 표현함에 있어 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대중적으로 올바르고 정상적인 가치관이나 관념으로만 글을 써야 한다면 왜 굳이 소라넷에서 글을 쓰겠습니까? 다자연애 뿐만이 아니라 강간, 근친, NTR 등의 장르 역시 인간의 다양한 관념에 의해 얼마든지 소설로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구역질난다"는 이유로 비난하실 생각이라면 굳이 이 글을 보지 마세요.
저는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에 비판을 얼마든지 수용합니다만 기본적인 예의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람에게 "비판"도 아닌 "비난"을 받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본인의 가치관에 맞지 않다면 악플을 남길 것이 아니라 글을 보지 마세요. 당신께 이 글을 보라고 부탁한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악플이라는 것에 크게 신경을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이런 사람들 몇몇 때문에 많은 작가분들이 소라넷을 뜨셨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기도 하고 해서 감정적인 글을 남겼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제가 그들에게 바라는건 아무리 얼굴 보이지 않는 인터넷이라고 해도 부디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자는 겁니다. 성인사이트에 드나들 정도라면 나이는 그만큼 갖추었다는 뜻일 테니까요.
끝으로 다른 독자분들께는 이런 글을 보여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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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1-26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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