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임 리와인더 (Time Rewinder)
- 이 소설은 소.라.넷(sora.net) 작가 "상상의신비"가 연재 중인 작품입니다.
무단 불펌을 삼가해 주시길 부탁드리며, 퍼가시더라도 출처와 작가명을 꼭 남겨주십시오.
창작가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자 도리입니다.
* 1부 33장
전화를 받는 현주의 목소리에는 무척 힘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내 전화를 피하지는 않았다. 잠깐 시간을 낼 수 있겠냐는 내 의미심장한 질문에서부터 아마 그녀도 나의 용건을 대충 눈치챈 듯, 딱딱하면서도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통화 내용은 그게 전부였다.
그 후로는 1초가 1시간처럼 느껴지는 초조한 기다림의 시간이 엄습했다. 모순적이게도 서연이의 입에서 승낙의 말이 떨어진 그 순간부터, 나는 현주에게 좋은 남자가 되고자 하는 가증스런 희망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말았다. 이제는 돌이킬래야 돌이킬 수도 없다는걸 알고 있기 때문일까. 그녀의 부탁을 들어줌으로써 나는 되려 그녀에게 더욱 심한 비수를 꽂으러 달려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내가 되돌릴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시간 뿐.... 하지만 시간만으로는 이미 여기까지 와버린 나의 마음을, 서연이의 마음을, 그리고 현주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었다. 우리 세 사람 모두가, 이것을 없었던 일로 만들 마음이 없기 때문이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었지만 그것은 너무도 뚜렷하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고, 그 상상이 마침내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 아마도 우리 세 사람의 관계가 어떠한 형태로든 분명해질 것임을 나는 짐작하고 있었다.
"서연아, 옷 안 입어?"
서연이는 춥지도 않은지 옷을 입을 생각도 않고 알몸으로 침대에 누워 뭔가를 곰곰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전라의 모습으로 누워있는 서연이는 마치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지만 그런 과분한 미적 감상에 빠지기에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 각박한 듯, 오히려 그런 모습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더욱 생생히 예고하는 듯하여 괜히 나는 혼자서 더욱 불안해지곤 했다.
"괜찮아. 어차피 곧 벗어야 할 거 아냐?"
"......."
서연이가 나름대로 강단 있고 당돌한 성격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위험할 정도로 예측 불가능한 상황 앞에서 이 정도로 태연할 수 있다는건 여자로서 조금 심하지 않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걱정이란게 없는 걸까? 이 경우에는 오히려 서연이가 불안해하고 내가 그녀를 안심시키고 있어야 하는거 아니겠냔 말이다.
물론 서연이도 아무렇지도 않은 기색은 아니었다. 침대에 누운 채 그녀는 두 눈을 깜빡거리며 자꾸만 뭔가를 생각하는 듯 보였고, 이따금씩 몸을 뒤척거리며 깊은 고민에 잠기곤 했다. 아무래도 역시 긴장이 되는건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옷을 입지 않는 것도 일부러 이런 상황을 최대한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려는 시도였을까.
"나 잠깐 나갔다 와도 돼?"
이 상황에서 서연이를 홀로 내버려두고 자리를 비운다는게 썩 좋은 일 같지는 않았지만 바깥 바람이라도 쐬어야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될 것 같았다. 다행히 서연이는 별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 생각해야 할 문제가 많은 듯 싶었다.
현관으로 나와서 바깥 공기를 쐬었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별 도움이 되진 않았다. 하긴 이게 다른 것으로부터 위안을 삼을 수 있을 만한 문제도 아니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몸으로 부딪혀서 결론을 끄집어내야만 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순간에 왜...."
왜 하필 이런 때에 저 여자가 내 눈에 보이는 걸까? 존재 자체만으로 미스터리한 느낌을 유발하는 옆집 여자가 이 타이밍에 나타난 것이 솔직히 썩 반갑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마음을 그녀가 더 헤집어 놓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보고 있지는 않았다.
"어딜 보고 있는거지?"
옆집 여자는 현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가만히 서서, 어느 한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모습을 천천히 살펴보던 나는 굉장히 이질적인 기분을 느꼈다. 적어도 내가 봐왔던 바로는 그녀가 바깥에 나왔을 때면 바로 여기 이 자리, 현관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대부분이었기에 이렇게 그녀가 다른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조금 더 깊이 생각을 해보면 그녀의 등장은 언제나 나와 어느 정도의 연관성을 맺고 있었다. 쉽게 말하면 그녀가 내 눈 앞에 나타난다는 것은 곧 그녀가 나에게 용무가 있음을 의미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녀와의 만남은 짧건 길건 항상 무언가를 남겨왔었다. 때로는 긴 메시지로, 때로는 지나가는 듯한 짧은 인사말로, 그리고 때로는 물체라는 뚜렷한 형태로. 그리고 그것들은 항상 직, 간접적인 형태로 나에게 영향을 미치곤 했다. 돌이켜보면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은 곧 그녀와 나의 상호작용을 의미해왔던 것이다.
왜 새삼스럽게 그걸 이 순간에 뚜렷하게 인식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단 하나 뚜렷하게 알 수 있는 점은,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 이외의 용무로 그녀가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이었다. 논리적으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나는 본능으로 그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나 이외의 다른 무언가에 신경을 쓰고 있는 모습을 한발짝 떨어져서 제3자의 눈으로 보고 있는 기분은, 정말이지 무척 이질적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뭐... 하세요?"
나는 그녀에게 엮이지 말아야한다는 생각도 잊고 나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 무엇이 "나에 대한 용무" 이외의 일로 그녀를 내 눈앞에 나타나게 만들었는지, 본능이 호기심을 호소하고 있었다. 내 목소리를 들은 그녀는 조금도 놀란 기색 없이 메마른 눈을 서서히 올려 나를 마주보았다.
"그냥, 옛날 생각."
감정의 고조가 전혀 없는 목소리로 그녀는 답했다. 그녀의 말과 분위기는 퍽 감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지만.... 지극히 실례되게도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 그녀에게 있어서는 썩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옆집 여자는 다시 시선을 옮겨 하염없이 한 곳만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녀의 시선을 좇아 그녀가 보고 있는 곳을 응시했다.
"주차장엔 왜요?"
그녀가 보고 있는 곳은 대단한 것도 아닌 원룸 지하에 조그맣게 마련되어 있는 입주자들 전용 주차장이었다. 입주자들 몇몇의 차를 보관하기에 그리 넓지도, 좁지도 않은.... 그런 평범한 장소. 아무리 봐도 그 허름하고 초라한 공간이 옆집 여자의 흥미를 끌 것 같은 공간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어...! 잠깐만요."
하지만 그녀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성큼 걸음을 옮겨 뚜벅뚜벅 주차장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잡다한 생각과 고민들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그녀를 쫓아가고 있는 나를 내 자신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럴 때가 아닌데....
"여기에 뭐가 있길래 그래요?"
나의 꾸준한 질문들이 오히려 그녀로 하여금 행동을 유발하는 촉진제라도 되는듯, 그녀는 내 의문을 받을수록 더욱 뚜렷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말도 없이 걸음을 옮기던 그녀가 비로소 어느 한 곳에서 멈추어섰다. 주차장 한 곳에 얌전히 세워져 있는.... 한 대의 오토바이 앞이었다.
"이건...."
나 또한 두 번이나 올라타 본 적이 있는 그것을 내가 못 알아볼 리는 없었다. 그것은 유정이의 오토바이였다. 옆집 여자는 그 앞에 멈춰 서서 한동안 그것을 골동품이라도 되는 마냥 애잔하게 내려다보았다. 메마르기만 했던 그녀의 두 눈동자에 형용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건물에 새 입주자가 생긴 것 같던데."
그녀는 틀림없이 유정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왜 하필 이런 순간에 옆집 여자에 대한 나의 인식이 평소보다 한층 더 뚜렷하게 앞서나가는지는 몰라도 나는 과거의 어느 때보다 그녀에게 깊이 있게 몰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면 그녀는 유정이에 대한 일에 늘 반응하곤 했었다. 특히 그녀가 내 뺨을 때렸던 일은 잊을래야 잊지도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구태여 그녀에게 캐묻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넓고 막막한 모래사장에서 고작해야 바늘 하나 찾는 정도의 질문 정도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알 수 있는 것만을 묻고 답하는, 표현하자면 그녀와 나의 관계는 그런 형태였다.
"그래요. 이사를 오긴 했죠."
"너 그거 알아? 그 여자애 진짜 바보야."
난데없는 한 마디에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뜬금이라곤 전혀 없는 유정이에 대한 험담에 나는 심지어 조금 화가나기까지 해서 그녀에게 따져묻고 말았다.
"유정이가 왜요?"
옆집 여자는 내 언짢은 기색에도 아랑곳 않고 오토바이의 안장을 한번 손 끝으로 쓰윽 훑어내리더니, 역시나 알지도 못할 소리를 끝에 남겼다.
"자기가 바보라는걸 모르거든. 죽을 때 까지...."
"네....?"
허망한 나의 반문 소리가 주차장에 울렸지만 이번에도 그녀는 뚜렷한 설명을 남기지 않고 그대로 사라지려는 듯, 걸음을 떼었다. 나는 화가 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해서 그녀에게 따라붙으며 억지로 대화를 이었다.
"자, 잠깐만요! 무슨 뜻이에요? 다른건 몰라도 이건 설명을 해줘야 할 거 아니에요."
"너무 뚜렷한 스포일러는 나쁜 짓인거 몰라?"
"그럼 애초에 신경 쓰일 얘기를 왜 꺼내는 거에요?"
"미안. 애태우는게 내 취미라서."
얼이 빠져 있는 나를 두고 그녀는 또 그렇게 사라져버린다. 미스터리한데다 제멋대로이기까지 한 그녀는 항상 나에게 이런 식으로 무언가를 남긴다. 그걸 풀어보는 것은 나의 몫이지만 그녀는 열쇠를 주지 않는다. 다만 그녀는 내게 남길 뿐이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그녀가 사라짐과 동시에 신기하게도 잊고 있었던 현실의 감각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라는, 머리 속에서만 계속 떠올라왔던 그 생각이 그녀가 사라짐으로 인해 뚜렷한 현실이 되어 나를 문득 일깨웠다.
"아 참! 서연이.... 현주...."
화들짝 놀란 나는 다짜고짜 달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걸 잊고 있었는지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화가 날 지경이었다. 달음박질로 순식간에 내 방 앞까지 달려올라간 나는 숨을 헐떡이며 심호흡을 했다.
문을 열어젖히기 전에, 괜히 시계를 한번 내려다보았다. 시간은 7시 22분.... 손목 시계를 문지르며 상의 안주머니를 나도 모르게 더듬고 있었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타임 리와인더가 오늘은 왠지 모르게 신경이 쓰였다.
*
채 시작도 하기 전에, 상황은 이미 총체적으로 난국이 되어 있었다. 방 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첫발을 딛는 순간부터 골이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현주가 이미 와있었던 것이다.
"젠장... 바보 같이."
설마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상황이 이렇게 될 거라고는 예상을 할 수 없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불편한 상황은 전적으로 내가 초래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방 안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침대 위에서 이불로 몸을 가린채 무릎을 양팔로 감싸고 기대 앉아있는 서연이와, 테이블 의자에 애매하게 앉아 그녀를 애써 쳐다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리고 있는 현주.
내가 살면서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불편하고 어색한 공기가 이 좁디 좁은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두 여자 사이에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분위기가 깔려있었지만 느낌으로 보건대 여지껏 두 사람은 단 한마디도 대화를 나누지 않은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늦게 와?"
"아... 미안."
서연이의 책망어린 질문에 바보같이 사과를 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 나의 맥 없는 모습이 현주를 더욱 분노하게 했는지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아무 말도 않고 나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세상에.... 이건 정말이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기분이었다. 마치 숨을 쉴 수 없는 물감옥 안으로 기어들어가는 것 같았다. 예상은 했지만 이 불편함과 어색함을 넘어서 괴롭기까지 한 분위기 속에서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도저히 감도 잡히질 않았다....
"안되겠다... 우선 상황이라도 좀 바꿔서...."
우선은 타임 리와인더를 사용해서 조금이라도 상황을 낫게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최소한 내가 없는 상태에서 서연이와 현주가 대면하게 되는 이런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상황을 주도할 타이밍을 놓쳐버리고나니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이 참기 힘들 정도로 바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안주머니에 손을 뻗은 것과, 서연이가 몸을 일으킨 것은 그야말로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읏!"
알몸으로 벌떡 몸을 일으킨 서연이가 그대로 침대에서 내려오더니 내게로 다가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행동을 보였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현주가 보는 앞에서, 보란 듯이 내게 성큼 다가와 나를 끌어안고 입술을 덮친 것이었다.
"으읍...."
너무 당황한 나머지, 입술과 입술이 포개어졌음에도 그 사이를 비집고 당황하는 내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물론 서연이와 내가 키스를 하는 것 자체는 별로 놀랍지 않은 일이었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현주가 이렇게 두 눈을 뜨고 보는 앞에서 아무 거리낌도 없이 이렇게 과감하게 행동으로 나서는 서연이의 돌발성이 여간 당황스러운게 아니었던 것이다.
상상과 현실은 엄연히 다른 법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머리 속으로 수없이 고민만 해왔던 문제를 서연이는 나보다 한발 앞서 행동으로 보이고 있었다. 그것은 실천력이라고 표현하기도 힘들 정도로 과감하고 저돌적인, 전혀 다른 차원의 용기였다.
"뭐, 뭐하는 짓이야!"
나는 물론이고 현주조차도 서연이의 너무도 갑작스러운, 더군다나 알몸 상태로 퍼부은 입술 세례에 할 말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녀는 한동안 멍하니 아무 말도 못하고 바라보기만 하다가 한참이 지난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가슴팍에 닿은 서연이의 알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걸 눈치 챌 수 있었다. 하지만 내게서 입술을 떼고 현주를 바라보는 서연이의 시선과, 그 뒤를 이어 나온 그녀의 목소리는 그 떨림과는 다르게 너무도 태연자약했다.
"섹스하는걸 보러 왔던게 아니었나요?"
"뭐, 뭐....?"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너무도 당돌하고 뻔뻔한 서연이의 모습 앞에 현주는 완전히 말문이 막힌 것 같았다.
"겨우 키스 가지고 놀랄 것 없잖아요. 질질 끌어봤자 불편하기만 할 텐데, 나는 지금 당장 시작하고 싶어요."
"......."
그 순간의 서연이는 정말이지 무서울 정도였다. 그녀 특유의 당찬 성격이 매번 내 예상을 뛰어넘어왔음은 인정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만큼 충격적이었던 적은 없었다. 그 저돌적인 발언 앞에 현주는 물론이고 나조차도 얼이 빠지고 말았다. 그 차갑게 내려앉은 분위기 속에서 오직 서연이만이 당당하게 상황을 주도해나가고 있었다.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그녀가 대신 해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괜찮죠?"
"......."
쐐기를 박는 서연이의 질문에도 현주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서연이 또한 굳이 대답을 기다릴 마음이 없는듯, 나를 강제로 거의 침대에 밀치다시피 하며 넘어뜨려버렸다.
"서, 서연아..."
내가 처음에 서연이와 관계를 가졌을 때와는 아예 상황이 역전되어버린 듯한, 그야말로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모습이었다. 엉거주춤하게 침대 위에 쓰러진 내가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자니 그녀가 정말로 강간이라도 하려는듯 나를 깔고 그 위에 올라타버렸다.
"자, 잠깐."
그 기세에 눌린 내가 꼴사납게도 당황하며 그녀를 제지하려들자 서연이가 어깨를 찍어누르며 귓가에 대고 말했다.
"꼼짝 말고 가만히 있어. 내가 리드하는대로 따라오기로 했잖아. 잊었어?"
"아...."
그녀가 내걸었던 조건은 이런걸 위함이었을까? 그제야 비로소 내가 그녀에게 약속한 것이 어느 정도의 무게감을 지니는지를 실감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서연이는 나보다 더 이런 상황을 뚜렷하게 예측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정말로 그렇다고 한다면 그녀는 정말로 무서울 만큼 대단한 여자였다....
"내가 이끄는대로, 시키는대로 순순히 따라와야만 해. 만약 그렇게 못한다면 나도 자기를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거야. 알겠어?"
불과 30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서연이의 주인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서연이가 나의 주인이나 다름이 없었다. 나는 찍소리도 내뱉을 엄두를 못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러자 옆에서 현주가 어안이 벙벙해져 기가 찬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자, 자기...? 자기라고?"
서연이가 나를 부르는 호칭이 어지간히도 혐오스럽게 들렸나보다. 나는 현주가 누군가를 그렇게 증오의 눈길로 노려볼 수 있다는걸 그 순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야말로 서연이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서연이보다 훨씬 긴 시간을 만나오면서도 현주는 여지껏 오빠 이외의 호칭으로 나를 불러본 적이 없었다.
"그래요. 뭐가 잘못되었나요?"
"니, 니가 뭔데.... 얼마나 오래 만났다고...."
"시간보다는 깊이가 중요하겠죠. 인정하기 싫겠지만 몸으로 대화할 수 있다는건 그만큼 더 빠르게 깊어질 수 있다는 뜻이에요."
심할 정도로 현주의 자존심을 무참하게 깔아뭉개는 서연이의 신랄한 한 마디.... 현주의 과거를 들려준 것으로 인해 서연이가 같은 여자로서의 동정심을 발휘할 거라고 생각했던건 내 착각이었을까? 말로는 도저히 상대가 안되겠다 싶을 만큼 그녀는 현주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뻔뻔한 년.... 니가 자랑하는 그 몸뚱이가 얼마나 대단한지 지켜볼거야."
현주의 그 표독스런 눈빛만 보면 그녀가 당장 달려들어 서연이를 찢어발겨도 이상할게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주는 부르르 떨리는 손을 움켜쥐면서도 애써 분노를 삭히며 일으키려던 몸을 다시 의자에 앉혔다. 한술 더 떠서 서연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나를 향한 애무를 해나가기 시작한다.
"서, 서연아..."
참으로 우습게도 나는 마치 순결을 빼앗기는 숫처녀라도 되는 듯이, 나를 범하려는 서연이의 얼굴을 겁에 질린 토끼처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서연이는 타인의 눈 앞에서 알몸을 내보이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혹은 그렇게 보이려는 듯 애를 쓰며, 내 목 언저리에 고개를 박고는 목덜미와 귓볼을 끈적하게 물고 당겼다.
그녀의 한 손이 내 얼굴과 머리를 쓰다듬는 것과 동시에 나머지 손이 능수능란하게 내 목 아래를 더듬어나갔다.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내 티셔츠를 걷어올리고 속살을 쓸어올리는 서연이의 손길 앞에 현주의 표정이 한층 더 망연자실해졌다. 이중적이게도 몸으로는 서연이의 애무를 받으면서, 눈으로는 현주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
끔찍할 정도의 침묵 속에서 오직 서연이의 손과 입만이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팔을 들어올리라고 지시하고는, 손쉽게 내 몸에서 티셔츠를 벗겨내버렸다. 사과 껍질을 벗겨내는 것보다 더 간단하게 나를 벗은 몸으로 만들어버리는 서연이의 모습을 현주는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 상황은 나와 현주 둘 모두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읏...!"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느낌과 이율배반적인 감정들이 몸뚱이에 가해진 자극과 동시에 희미해진다. 서연이가 내 젖꼭지를 입에 물었다. 처음으로 섹스 이전의 전희가 나의 주도 아래에서가 아닌 그녀의 주도 아래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마치 내가 평소에 그녀의 젖가슴을 탐하듯 서연이는 내 가슴을 물고 빨아댔다.
여자와는 달라서 성감대를 자극받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리만치 자극이 심했다. 통상적인 흥분은 아니었다. 오히려 현주의 시선 앞에서 이런 꼴로 서연이에게 애무를 받는다는 사실을 자꾸만 의식하고 있는 탓에 순수한 의미에서의 흥분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배덕한 상황에 놓였기 때문에 느낄 수 밖에 없는 초유의 감각이란게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그것은 젖꼭지를 통해서 느껴지는 자극 자체에 힘입은 흥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앗...."
예고도 없이 서연이의 손이 불쑥 남하하여 내 바지 속으로 사정없이 파고들자, 처음으로 보지를 유린 당하는 소녀처럼 반사적으로 다리를 오므리는 나였다. 하지만 서연이는 조금도 봐주지 않고 바지를 팬티 채로 내려버린 다음 두 다리를 힘으로 열어젖혔다.
나는 허무하리만치 순식간에 알몸이 되었다. 내가 서연이를 너무도 손쉽게 알몸으로 만들던 것과 비슷하면서도 한편으로 너무도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현주는 이제 완전히 전라가 되어버린 한 쌍의 남녀를, 알몸으로 뒤엉켜 있는 자신의 남자친구와 다른 여자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으윽!"
소리라고는 간헐적으로 터져나오는 나의 당황스런 신음성이 오로지 전부였다. 그 외엔 분주하게 움직이는 서연이의 몸짓과 애무 뿐이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서연이는 냅다 나의 자지를 입에다 성큼 물어버린다. 현주의 시선 앞에 커질 생각도 못하고 쪼그라들어 있던 내 자그마한 물건이 서연이의 입에 소시지처럼 쏙 물려들어갔다.
크기가 작은 상태인 만큼 표면에 가해지는 자극은 더욱 민감했다. 발기도 되지 않아 자그마하게 대롱거리고 있던 나의 물건이 서연이의 입 속에서 마치 희롱당하는 장난감처럼 이리 굴려지고 저리 굴려지면서 처참하게 유린당했다. 번데기나 다름없는 물건이 서연이의 입 안에서 헤엄칠 때마다 나는 강제적으로 가해지는 찌릿한 감각에 몸을 떨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을 고스란히 현주에게 보여야만 했다.
"아으윽..."
당황스럽고, 짜릿했고, 부끄러웠다. 모순적이게도 이 세가지가 너무도 뚜렷하게 뒤죽박죽 얽혔다. 멍하니 이 꼴을 바라보고 있는 현주의 시선 앞에 꼴불견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서연이를 제지하지 못하고 그녀가 나의 좆을 마음껏 유린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막대사탕이라도 빨아먹듯이 그녀는 철저하게 내 자지를 빨아 서서히 세워나갔다. 내가 어떤 기분을 느끼던, 현주가 내게 어떤 시선을 보내던, 강압적으로 성기에 가해지는 혀의 놀림이 내 기둥을 조금씩 뻣뻣하게 만들고 있었다. 마음과는 상관없이 이미 내 쪼글쪼글했던 물건은 서연이의 입속에서 하나의 기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하아..."
처음으로 내 입에서 당황에 의한 것이 아닌, 자극에 의한 신음성이 터졌다. 그것을 신호로 현주도 움찔한 것 같았다. 잔혹하게도 서연이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내 기둥을 빨아제끼던 입을 아래로 내려 내 불알을 샅샅히 혀 끝으로 건드리기 시작했다. 꼴사납게 허공에서 대롱거리던 불알 표면에 혀가 닿자 찌르르 하는 감각이 척추를 타고 울렸다. 마치 청소라도 하듯이 서연이는 주름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그것을 핥아나갔다.
"........"
현주가 싸구려 포르노 따위나 보면서 홀로 남몰래 연습한 것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현주로서는 아마 직접 눈으로 보는 것조차 처음일 능수능란하고 끈적끈적한 펠라치오였다. 물론 현주의 언니에 비한다면 서연이의 그 기술조차도 한참은 부족할 테지만 이미 그것만으로도 현주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경지였다. 자신은 흉내조차 내지 못할 여인으로서의 농염한 모습 앞에 현주가 참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이 보였다.
어쩌면 그녀에게는 충격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연이는 한없이 잔인하게도 그녀에게 여유라고는 손톱만큼도 주질 않았다. 불알을 애무하던 그녀의 혀가 더더욱 밑으로 깊숙히 내려가더니, 심지어는 나조차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으로 파고들었다.
"이... 이럴 수가...."
속으로 나는 경악을 삼켰다. 현아에게 항문을 애무 받아본 적은 있지만 그래도 서연이는 어디까지나 현아와는 다르지 않은가. 현아에게 후장 애무를 받으면서 서연이에게도 이런걸 시켜보면 어떨까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 적은 있었지만 그게 지금 이 순간, 하필이면 현아의 동생이 보는 앞에서 이런 식으로 재현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평소의 서연이 수준을 한참 뛰어넘는, 나로서도 처음 겪어보는 서연이의 과감한 애무 앞에 나는 이 상황에서 도저히 불가능할 것만 같은 격한 자극을 느끼고는 허리를 움찔거렸다. 그러면서도 나는 희미하게 뜬 실눈으로 현주의 표정을 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을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런 애무는 포르노에서조차 아직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남성의 항문을 여성이 혀 끝으로 간질이는, 그 원색적이고 적나라한 형태의 애무 앞에 그녀는 아예 넋이 나가버린 것 같았다. 게다가 그런 애무를 다른 여자로부터 받는 사람이 다름 아닌 자신의 남자친구라는 사실이 그녀를 공황 상태에 빠뜨린 것 같았다.
"저,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속으로 나는 불안해졌다. 현주의 상태가 너무도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여 이대로 두어도 될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이것이 물론 어디까지나 현주의 부탁에서부터 비롯된 상황이긴 하지만 그 결과가 현주에게 또 하나의 커다란 상처를 남기는 것 뿐이라면 나로서는 도저히 못 할 짓이었다.
"뭘 걱정하는거야....? 만약 그럴 것 같으면 시간을 감아버리면 돼. 지금은 마음 편하게 이 상황에 집중하면 되는 거야. 그래, 그러면 돼...."
나에게는 타임 리와인더가 있다. 상황이 아무리 최악으로 흘러가더라도 나에겐 최후의 보루가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러한 믿음의 받침대가 없었다면 나는 이 상황을 도무지 이어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서서히 육체에 가해지는 성적인 자극과, 최후의 수단에 대한 믿음에 힘입어 나는 그렇게 조금씩 흥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게다가 서연이는 현주 뿐만이 아니라 내게도 도저히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열정적으로 항문을 애무하던 그녀는 이제 내 몸 위에 거꾸로 올라타, 내게 69 애무를 강요하고 있었다. 거리낌 없이 내 앞에 자신의 보지와 항문을 내벌리고 올라타 엎드리는 서연이의 몸짓 앞에 현주가 또 한차례 굳어진 것은 당연했다.
나도 모르게 서서히 몸이 달구어지고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해서 내가 주도적으로 뭔가를 하기에는 아직 약간 망설여질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는 서연이가 모든 것을 리드해왔지만 그녀는 처음으로 내가 "직접" 뭔가를 하기를 종용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그녀는 다시 내 자지를 덥썩 입에 물며, 혀 끝으로 내게 얼른 행동을 보이라는 신호를 넣고 있었다.
그것이 명령이었든 재촉이었든, 그런 것은 이미 중요한게 아니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서연이의 음부에 고개를 처박고는 그녀의 보지를 핥아올리기 시작했다. 마치 짐승처럼 69 오랄을 시작하는 우리를 현주가 어떻게 보고 있을지 계속 신경이 쓰였지만, 일이 잘못되더라도 나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단 하나의 사실만을 나는 주문처럼 스스로에게 계속 되뇌이고 있었다.
"너... 너무해...."
얼핏 현주가 나지막히 흐느끼듯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서연이의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박고 있느라 그녀의 표정을 더는 살피지 못했다. 거의 반쯤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며 서연이의 보지에서부터 항문까지를 세차게 혀로 핥았다. 그러자 서연이가 몸을 꼬며 신음을 흘렸다.
"아응!"
그녀는 자신의 달뜬 모습을 굳이 현주에게 적나라하게 내보이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볼 테면 보라는 식인 것 같았다.... 아마 평소대로의 섹스였다면 나는 이게 시작일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서연이는 오랜 시간에 걸친 전희를 즐겼고, 나 또한 그녀를 뜨겁게 끓이는 과정이 싫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뜻밖에도 스스로 몸을 일으키더니, 이번엔 내 사타구니에 자리를 잡고 올라탔다. 그녀의 의도를 눈치챈 나는 머뭇거리며 물었다.
"벌써....?"
"괜찮아... 바로 넣어."
이렇게 짧은 전희는 그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연이는 급하게 느껴질 만큼 삽입을 재촉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과정이야 어찌되었건 간에 나는 그녀의 리드를 따라주어야만 했고, 또한 이것이 현주의 부탁임을 스스로에게 계속 인식시켰다.
"으흑!"
평소만큼 충분히 애액이 흐르질 않아 조금은 뻑뻑하게 느껴지는 조갯살을 가르고, 내 귀두가 틀어박혔다. 이렇게 뻑뻑해서 괜찮을까 싶었지만 서연이는 무리한다 싶을 만큼 허리를 움직여 구태여 자신의 몸 속으로 내 기둥을 더욱 깊숙히 받아들였다.
"하아아...."
거의 억지로 우겨넣다시피 하여 우리는 서로 연결되었다. 마침내, 기어코.... 다른 여자와 한 몸이 되어버린 내 모습을 보며 현주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애써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그쪽으로 돌리지 않았다.
"하아... 하아아...."
질감이 건조한 구멍 안쪽을 내 물건이 파고들자, 나는 이대로 괜찮을지를 걱정했지만 서연이는 자신이 직접 몸을 움직여가며 피스톤질을 해나가고 있었다. 현주가 오기 전에 나누었던 섹스에서 그녀가 보여주었던 기승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바보가 아니었다. 서연이와 숱한 섹스를 해왔기 때문에 나는 지금 그녀가 즐기고 있지 않다는걸 알 수 있었다. 섹스를 즐기는 상태의 서연이는 결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는 주도하기보다는 주도 받기를 즐기는 여자였고, 충분한 전희에 행복해하는 여자였으며, 이러한 통증을 감내하면서까지 억지로 섹스를 이어나가려 하는 여자가 아니었다.
굳이 서연이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피부에 닿는 육체의 감각만으로도 나는 그녀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결코 내 눈에 보일 만큼 표정을 찡그리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가 지금 아픔을 감수하고 있다는걸 느낄 수 있다. 아픔을 감수하면서 서연이가 나와 섹스를 한다면, 그것이 현주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처음으로, 나는 서연이의 얼굴에서 현주의 얼굴을 겹쳐보았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순간 나의 세상이 아주 잠깐동안.... 정지한 듯이 얼어붙었다.
*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지만, 비로소 그 순간이 되어서야 나는 서연이가 나와의 섹스를 리드하겠다고 말한 의도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그녀 자신의 쾌락을 위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결코 나에 대한 모방 따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망설일 수 밖에 없는 나를 위해서 그녀 자신이 그것을 감수한 것일 뿐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도 바보 같을까? 이렇게 해서 내가 도대체 현주에게, 서연이이게 무엇을 남길 수 있단 말인가. 단지 현주의 부탁을 들어주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진정 두 사람을 공평하게 사랑하겠다면 지금의 내 행동은 비겁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진정으로 두 사람을 위하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사랑을 반으로 나눈다니, 있는 그대로 사랑하겠다느니 하는 말을 지껄일 수 있을까. 나는 정말 이기적인 놈이었다.
지금만큼은 그래서는 안 된다. 이왕 솔직해지기로 마음 먹은 거라면, 그리고 나만의 가치관으로 두 사람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거라면 내가 지금 이러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서연이는 서연이답게, 현주는 현주답게 사랑해주어야만 한다. 우습게도 서연이가 주도한 섹스는 내게 그 사실 하나만을 심어준 것이나 다름 없었다.
비로소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내 몸 위에 올라타 허리를 움직이고 있는 서연이를 아랑곳 하지 않고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왜 그래....?"
나는 그녀의 대답을 듣지 않고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에 벗어놓은 옷가지들을 더듬었다. 타임 리와인더는 여전히 주머니 한 구석에 잘 잠들어 있었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너희 둘 다...."
왠지 과거의 어느 순간이 겹쳐보인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두 여자를 내버려두고 복도로 나왔다. 손목 시계를 내려다보니 다행히도 8시 22분이 어느덧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염 없이 그 자리에서 서성이던 나는 시간이 되자마자 타임 리와인더의 바늘을 한 칸 옮겼다. 그리고 요동치는 듯한 느낌이 지나간 이후에 다시 내가 방 문 앞에 섰을 때는, 시간이 다시 7시 22분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까보다 더욱 뚜렷한 손길과, 그리고 한편으론 아까와는 다른 마음으로, 나는 다시 문을 열었다.
*
"아흐윽!"
이번에도 어김없이 서연이는 내게 69 애무를 종용해왔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기억 속에는 이미 없을 아까 전과는 다르게.... 아주 힘찬 몸짓으로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박고는 그녀의 음부를 게걸스럽게 핥아올렸다.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뜨겁고, 추잡하고, 원색적인 혀의 움직임으로.
"하, 하아...."
서연이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저돌적인 움직임으로 나와의 섹스를 주도하려 했지만 나는 그 이상의 과감한 반응으로 그녀의 애무에 응수하고 있었다. 서연이로서도 예상하지 못한 내 용감한 반응에 그녀는 내심 놀라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그럴 수 밖에 없으리라.
"아응! 으으응! 하... 으응!"
현주가 오기 전에 둘이서만 나누었던 섹스와 똑같은....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뜨겁게 나는 서연이의 보지를 샅샅이 애무해나갔다. 혀로 공알을 굴려주면서 서연이가 그토록 좋아하는 애널에 대한 자극도 잊지 않았다. 혀 끝으로 클리토리스를 애무하며 손가락을 세워 그녀의 항문을 자극해주니 서연이가 역시나 반응을 보인다.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섹스를 한다는 그 사실조차 무마시켜버릴 만큼 나는 저돌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의 남자친구였던 사내가 다른 여자의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박고 보지와 항문을 애무하는 모습이 현주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물론 나는 서연이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기에 그녀의 표정을 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더이상 현주의 반응을 신경쓰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제 나는 현주가 아닌 서연이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이 방 안에서 오직 나는 서연이와 함께 있을 뿐이었다. 의식적으로 나는 이 좁디 좁은 공간 안에서 현주의 존재를 잠깐 동안 머리 속에서 지웠다.
있는 그대로, 망설임 없이 솔직하게. 그거면 된다.
"하.. 하으윽! 하흐윽!!!"
두 구멍을 동시에 공략하는 나의 몸짓 앞에 서연이의 신음성이 거칠게 흐트러졌다. 69로 빨아제끼던 그녀의 몸을 이제는 침대에 반듯하게 눕혀놓고는, 내가 그 위에 올라타 키스를 퍼부으며 한 손으로는 그녀의 젖가슴을, 나머지 손으로는 여전히 이어서 그녀의 보지와 항문을 넘나들며 애무를 가해주었다.
정신 없이 젖꼭지를 만지고, 클리토리스를 굴리다가, 항문 근처를 간질이고, 입술을 물고 빨던 혀가 아래로 내려와 목덜미, 가슴, 배꼽, 하초를 지나 다시 가랑이 사이에 고개를 박고 오랄 애무를 이어간다. 끝도 없이 계속되는 애무가 얼마나 오랜 시간 이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동안 현주의 얼굴을 단 한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하... 하아아... 하아... 자... 자기야.... 내... 내가 리드한다고 했잖아...."
"시끄러워. 엉덩이 더 들어."
아까의 무서웠던 서연이 모습은 어느새 온데간데 없었다. 마치 투정처럼 울상을 지으며 칭얼거리는 서연이의 엉덩짝을 나는 강제로 밀어젖혀올리며 그녀의 다리를 양쪽으로 활짝 벌렸다.
충분한 애액으로 듬뿍 젖어 탐스럽게 번들거리는 음순의 빛깔을 보니 그제서야 마음이 흡족해진다. 바로 이 기분을 느껴야만 서연이와 나의 관계가 성립할 수 있다. 왜 그 간단한 사실을 망각했던 걸까.
비로소 나는 내가 처음 서연이를 취했을 때의, 그 아무 생각 없고 거침 없던 난봉꾼으로 돌아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게 과연 도덕적으로 바람직할지 아닐지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런 평가는 타인이 내려줄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으으으읏....!!!"
역시나 서연이는 주도하기보다는 주도 받기를 원하는 여자였다. 삽입할 때의 신음소리부터가 확연히 다르지 않은가. 아까와는 다르게 축축히 젖은 질구를 부드럽께 뚫고 가르며 내 자지가 그녀의 보지 안에 빨려들어갔다. 마치 제 단짝을 만난 듯이 내 자지가 그제서야 용트림을 하며 그녀의 따뜻한 질 속에서 몸부림쳤다.
"좋아?"
"으.. 으응! 좋아!"
평소와 다름없는 내 모습에, 그녀 또한 내게 기대며 평소와 다름 없이 마음껏 흥분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누가 보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더이상 중요한 것이 아닌 듯 했다. 의무감으로 섹스를 리드해나가던 아까의 모습과는 다르게 서연이가 본연의 모습 그대로 귀엽게 흥분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 한 구석이 뿌듯해왔다.
"하아... 하아앙! 아아아앙!! 조.. 좋아!! 자기야...."
현주가 보고 있다는 것도 잊은채.... 서연이는 언제나처럼 열정적으로 쾌감을 표하며 허리를 비틀고 몸을 꼬으며 나의 물건을 온 몸으로 받아들인다. 아니, 어쩌면 현주가 보고 있기 때문에 더욱 여봐란 듯이 흥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역시나 서연이의 안에는 약간의 변태 성향이 내재하는 듯, 내가 그녀에게 있어 안정적인 버팀목이 되어주자 그녀는 오히려 현주의 존재로 인해 더더욱 마음껏 달아오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기야...! 더 세게 안아줘... 더 세게.... 더 깊이.... 하아아앙...!!"
그것은 승리감의 과시였을까, 아니면 그 역시 하나의 또다른 성적 흥분의 형태였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서연이는 현주의 눈 앞에서 달아오르고 있었다. 보란 듯이, 부끄러울 것도 없다는 듯이....
정상위로 내 좆질을 한껏 받아들이며 그녀는 마치 한 마리의 강아지처럼 발랑 다리를 벌리고 쾌감에 들떠가고 있었다.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것이 실제로 성적 흥분을 더 끌어올릴 수 있을지 없을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것이 그녀의 흥분을 방해하지 못한다는 것만큼은 이제 분명해보였다.
격정을 이기지 못한 그녀가 두 팔을 뻗어 내 얼굴을 한껏 끌어안으며 격정적으로 키스를 퍼부었다. 불과 아까전에 현주가 오기 전, 나는 서연이와 이 자세로 교미를 하면서 현주가 이 광경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지를 혼자서 상상했었다.... 그런데 그 상상은 지금 비로소 정확하게 현실이 되었다.
아랫입과 윗입이 동시에 맞추어지며 나와 서연이는 꼭 맞는 한 쌍의 조각처럼 한 몸이 되어가고 있었다. 키스와 삽입을 동시에 이루어가는 우리의 몸은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세세한 박자 하나 놓치지 않고 서로를 뜨겁게 만들고 있었다. 푸욱푸욱 보지에 꽂히는 원색적인 내 좆질의 소리와 더불어 음탕한 씹물소리가 왈칵왈칵 방 안을 가득히 메워나갔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의 여파에 현주가 있었다.
질컥질컥질컥....!!! 퍼억퍼억퍼어억!!!
서연이의 아랫도리에 내 허벅지가 부딪히며 음란하고 적나라하기 짝이 없는 살 섞는 소리가 마치 스테레오처럼 울렸다. 더이상 현주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조차도 내 머리 속엔 없었다. 그저 이 행위에 집중할 뿐이었다.
"아하아아악! 아으으응!!!! 아아아아아...!!!!!"
자세를 바꾸었다. 이제 나는 서연이를 개처럼 엎어놓고 뒤에서 후배위로 그녀의 속살을 가르고 있었다. 찰진 엉덩이에 좆질을 할 때마다 그녀의 탱글하고 빵빵한 엉덩이에 내 사타구니가 부딪히면서 음란한 섹소리는 한층 더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정상위보다 한층 더 동물적이고 원색적인 체위의 섹스. 현주와는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던 섹스의 꽃이었다. 짐승이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서연이의 엉덩이를 거칠게 쳐올려가는 내 시선은 오로지 흔들리고 뭉개지는 서연이의 두 엉덩이에만 박혀있었고, 서연이도 현주를 의식하지 않으며 침대 시트에 고개를 처박고는 마구 몸을 흔들어대며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흐으윽!! 흐으으으으윽!!! 아으으으으으응!!!!! 나... 나 갈 것 같아....!!!"
"하아... 하아아.... 사랑한다고 말해봐."
엉덩이와 허리를 바들바들 떨어대는 서연이의 유방을 잡아 짓뭉개며 그녀에게 요구하자 착하게도 서연이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격정적으로 내 말에 복종했다.
"사랑해...!! 사랑해.... 자기 밖에 없어.... 너무 좋아...."
"내가 현주를 사랑해도 너는 나만 사랑할 거지?"
"으... 으응....!"
뭐 물론 서연이 성격에 꼭 그럴 것 같진 않지만.... 그녀는 고맙게도 지금 내게 꼭 필요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상이라도 내리듯이 한팔을 쭉 뻗어 그녀의 자그마한 얼굴을 쥐고는, 우악스럽다 싶을 정도로 거칠게 돌려 서연이의 얼굴이 현주를 똑바로 향하게끔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현주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다.
"자, 이제 네 모습을 현주에게 보여줘. 네가 얼마나 행복해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란 말야."
"하아... 하아아...!! 아아아응...!!!"
"네 입으로 현주에게 말해줘. 내 자지가 좋다고. 내 자지에 박힐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해."
"자.. 자지.. 자지 좋아... 성진 선배 자지가 너무 좋아....!!! 행복해...."
"이 좋은걸 못하는 현주가 불쌍하지 않아?"
"으응... 불쌍해...."
"그러니까 네가 이해해줘야 해. 알겠어?"
"으응...!"
그야말로 어린애를 다루듯이, 어찌보면 노예를 다루듯이 그녀를 내 허리놀림 아래 철저히 복종시키는 내 모습을.... 아마도 현주는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쾌감과 열에 들떠 일그러져있는 서연이의 망가진 얼굴을 현주에게 고스란히 내보이면서, 서연이가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도록 허락하지 않은채, 나는 그녀의 얼굴을 한 손으로 움켜쥔 채로 그녀의 보지 안에 그대로 사정했다.
"하아아아으으흑....!!!!!"
뾰족하고 긴 서연이의 신음소리가 방 안 가득 울리고, 나 또한 절정에 오르며 나는 그 순간에도 서연이의 얼굴을 움켜쥔 채로 현주에게 내보이고 있었다. 정액을 서연이의 보지 안에다 울컥 토해내면서 나는 비로소 현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얼굴이 마주쳤고, 두 눈이 마주쳤고, 그 후에 눈동자가 마주쳤다.... 현주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나를 그대로 꿋꿋이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현주의 눈을 마주보며 서연이의 질 속에 있는 힘껏 정액을 뿌렸다.
*
"하아...."
한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한 기분이었다. 방 안은 고요한 정적에 휩쌓인 채였지만, 그 격한 열기의 흔적들은 고스란히 남아 그것이 꿈이 아니었음을 우리 세 사람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절정의 여운을 즐기는 것도 잊은채, 나는 몸을 일으켜 현주를 보았다.
"현주야."
"........"
고개를 숙여버린 얼굴 위로 그녀의 머리칼이 흘러내려 이제 더이상 그녀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의자에 앉은 현주는 마치 충격적인 공포 영화라도 보고 난 듯이, 두 다리를 꽉 오므리고 무릎 위에 손을 얹고는 온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내가 비로소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오히려 나의 시선을 피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려고 손을 뻗으려 했다. 팔을 들어올리는 것만으로 현주는 움찔하며 놀라는 듯 했지만 내가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나보다 먼저 움직인 사람은 바로 서연이였다.
"이리 와요."
"어....?"
전라의 서연이가 현주에게로 다가가 부드럽게 어깨를 감쌌다. 낯선 여자의 손길에 어깨에 닿자 현주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머리칼이 걷힌 그녀의 얼굴에서는 눈물 한방울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이리 오라구요. 당신도 할 수 있어요."
"뭐....?"
현주가 무슨 소리냐는 듯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을 들어 서연이의 얼굴을 보았다. 서연이를 보는 현주의 눈에는 이제 증오마저 없었다. 마치 모든 감정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듯이, 그녀는 백치가 되어버린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백지장 같은 현주의 모습에다 대고, 서연이는 결코 가볍지 않은 한 마디를 그렇게 건넸다.
"도와줄게요."
눈물로 엉망이 된 현주의 얼굴이, 마치 부서지는 물결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 다음 화에 계속 -
지난 화에 많은 분들이 격려의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
33장을 조금 빠르게 업데이트 해 본 것은 평일이 되면 또 바빠질 테니 주말에 힘을 내본 것도 있지만
격려에 보답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기 때문도 있었습니다
우울한 모습을 보여드렸으니 이번 화는 많은 분들이 조금 더 즐거운 마음으로 보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항상 감사합니다
- 이 소설은 소.라.넷(sora.net) 작가 "상상의신비"가 연재 중인 작품입니다.
무단 불펌을 삼가해 주시길 부탁드리며, 퍼가시더라도 출처와 작가명을 꼭 남겨주십시오.
창작가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자 도리입니다.
* 1부 33장
전화를 받는 현주의 목소리에는 무척 힘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내 전화를 피하지는 않았다. 잠깐 시간을 낼 수 있겠냐는 내 의미심장한 질문에서부터 아마 그녀도 나의 용건을 대충 눈치챈 듯, 딱딱하면서도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통화 내용은 그게 전부였다.
그 후로는 1초가 1시간처럼 느껴지는 초조한 기다림의 시간이 엄습했다. 모순적이게도 서연이의 입에서 승낙의 말이 떨어진 그 순간부터, 나는 현주에게 좋은 남자가 되고자 하는 가증스런 희망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말았다. 이제는 돌이킬래야 돌이킬 수도 없다는걸 알고 있기 때문일까. 그녀의 부탁을 들어줌으로써 나는 되려 그녀에게 더욱 심한 비수를 꽂으러 달려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내가 되돌릴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시간 뿐.... 하지만 시간만으로는 이미 여기까지 와버린 나의 마음을, 서연이의 마음을, 그리고 현주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었다. 우리 세 사람 모두가, 이것을 없었던 일로 만들 마음이 없기 때문이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었지만 그것은 너무도 뚜렷하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고, 그 상상이 마침내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 아마도 우리 세 사람의 관계가 어떠한 형태로든 분명해질 것임을 나는 짐작하고 있었다.
"서연아, 옷 안 입어?"
서연이는 춥지도 않은지 옷을 입을 생각도 않고 알몸으로 침대에 누워 뭔가를 곰곰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전라의 모습으로 누워있는 서연이는 마치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지만 그런 과분한 미적 감상에 빠지기에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 각박한 듯, 오히려 그런 모습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더욱 생생히 예고하는 듯하여 괜히 나는 혼자서 더욱 불안해지곤 했다.
"괜찮아. 어차피 곧 벗어야 할 거 아냐?"
"......."
서연이가 나름대로 강단 있고 당돌한 성격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위험할 정도로 예측 불가능한 상황 앞에서 이 정도로 태연할 수 있다는건 여자로서 조금 심하지 않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걱정이란게 없는 걸까? 이 경우에는 오히려 서연이가 불안해하고 내가 그녀를 안심시키고 있어야 하는거 아니겠냔 말이다.
물론 서연이도 아무렇지도 않은 기색은 아니었다. 침대에 누운 채 그녀는 두 눈을 깜빡거리며 자꾸만 뭔가를 생각하는 듯 보였고, 이따금씩 몸을 뒤척거리며 깊은 고민에 잠기곤 했다. 아무래도 역시 긴장이 되는건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옷을 입지 않는 것도 일부러 이런 상황을 최대한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려는 시도였을까.
"나 잠깐 나갔다 와도 돼?"
이 상황에서 서연이를 홀로 내버려두고 자리를 비운다는게 썩 좋은 일 같지는 않았지만 바깥 바람이라도 쐬어야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될 것 같았다. 다행히 서연이는 별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 생각해야 할 문제가 많은 듯 싶었다.
현관으로 나와서 바깥 공기를 쐬었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별 도움이 되진 않았다. 하긴 이게 다른 것으로부터 위안을 삼을 수 있을 만한 문제도 아니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몸으로 부딪혀서 결론을 끄집어내야만 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순간에 왜...."
왜 하필 이런 때에 저 여자가 내 눈에 보이는 걸까? 존재 자체만으로 미스터리한 느낌을 유발하는 옆집 여자가 이 타이밍에 나타난 것이 솔직히 썩 반갑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마음을 그녀가 더 헤집어 놓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보고 있지는 않았다.
"어딜 보고 있는거지?"
옆집 여자는 현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가만히 서서, 어느 한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모습을 천천히 살펴보던 나는 굉장히 이질적인 기분을 느꼈다. 적어도 내가 봐왔던 바로는 그녀가 바깥에 나왔을 때면 바로 여기 이 자리, 현관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대부분이었기에 이렇게 그녀가 다른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조금 더 깊이 생각을 해보면 그녀의 등장은 언제나 나와 어느 정도의 연관성을 맺고 있었다. 쉽게 말하면 그녀가 내 눈 앞에 나타난다는 것은 곧 그녀가 나에게 용무가 있음을 의미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녀와의 만남은 짧건 길건 항상 무언가를 남겨왔었다. 때로는 긴 메시지로, 때로는 지나가는 듯한 짧은 인사말로, 그리고 때로는 물체라는 뚜렷한 형태로. 그리고 그것들은 항상 직, 간접적인 형태로 나에게 영향을 미치곤 했다. 돌이켜보면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은 곧 그녀와 나의 상호작용을 의미해왔던 것이다.
왜 새삼스럽게 그걸 이 순간에 뚜렷하게 인식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단 하나 뚜렷하게 알 수 있는 점은,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 이외의 용무로 그녀가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이었다. 논리적으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나는 본능으로 그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나 이외의 다른 무언가에 신경을 쓰고 있는 모습을 한발짝 떨어져서 제3자의 눈으로 보고 있는 기분은, 정말이지 무척 이질적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뭐... 하세요?"
나는 그녀에게 엮이지 말아야한다는 생각도 잊고 나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 무엇이 "나에 대한 용무" 이외의 일로 그녀를 내 눈앞에 나타나게 만들었는지, 본능이 호기심을 호소하고 있었다. 내 목소리를 들은 그녀는 조금도 놀란 기색 없이 메마른 눈을 서서히 올려 나를 마주보았다.
"그냥, 옛날 생각."
감정의 고조가 전혀 없는 목소리로 그녀는 답했다. 그녀의 말과 분위기는 퍽 감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지만.... 지극히 실례되게도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 그녀에게 있어서는 썩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옆집 여자는 다시 시선을 옮겨 하염없이 한 곳만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녀의 시선을 좇아 그녀가 보고 있는 곳을 응시했다.
"주차장엔 왜요?"
그녀가 보고 있는 곳은 대단한 것도 아닌 원룸 지하에 조그맣게 마련되어 있는 입주자들 전용 주차장이었다. 입주자들 몇몇의 차를 보관하기에 그리 넓지도, 좁지도 않은.... 그런 평범한 장소. 아무리 봐도 그 허름하고 초라한 공간이 옆집 여자의 흥미를 끌 것 같은 공간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어...! 잠깐만요."
하지만 그녀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성큼 걸음을 옮겨 뚜벅뚜벅 주차장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잡다한 생각과 고민들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그녀를 쫓아가고 있는 나를 내 자신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럴 때가 아닌데....
"여기에 뭐가 있길래 그래요?"
나의 꾸준한 질문들이 오히려 그녀로 하여금 행동을 유발하는 촉진제라도 되는듯, 그녀는 내 의문을 받을수록 더욱 뚜렷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말도 없이 걸음을 옮기던 그녀가 비로소 어느 한 곳에서 멈추어섰다. 주차장 한 곳에 얌전히 세워져 있는.... 한 대의 오토바이 앞이었다.
"이건...."
나 또한 두 번이나 올라타 본 적이 있는 그것을 내가 못 알아볼 리는 없었다. 그것은 유정이의 오토바이였다. 옆집 여자는 그 앞에 멈춰 서서 한동안 그것을 골동품이라도 되는 마냥 애잔하게 내려다보았다. 메마르기만 했던 그녀의 두 눈동자에 형용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건물에 새 입주자가 생긴 것 같던데."
그녀는 틀림없이 유정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왜 하필 이런 순간에 옆집 여자에 대한 나의 인식이 평소보다 한층 더 뚜렷하게 앞서나가는지는 몰라도 나는 과거의 어느 때보다 그녀에게 깊이 있게 몰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면 그녀는 유정이에 대한 일에 늘 반응하곤 했었다. 특히 그녀가 내 뺨을 때렸던 일은 잊을래야 잊지도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구태여 그녀에게 캐묻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넓고 막막한 모래사장에서 고작해야 바늘 하나 찾는 정도의 질문 정도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알 수 있는 것만을 묻고 답하는, 표현하자면 그녀와 나의 관계는 그런 형태였다.
"그래요. 이사를 오긴 했죠."
"너 그거 알아? 그 여자애 진짜 바보야."
난데없는 한 마디에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뜬금이라곤 전혀 없는 유정이에 대한 험담에 나는 심지어 조금 화가나기까지 해서 그녀에게 따져묻고 말았다.
"유정이가 왜요?"
옆집 여자는 내 언짢은 기색에도 아랑곳 않고 오토바이의 안장을 한번 손 끝으로 쓰윽 훑어내리더니, 역시나 알지도 못할 소리를 끝에 남겼다.
"자기가 바보라는걸 모르거든. 죽을 때 까지...."
"네....?"
허망한 나의 반문 소리가 주차장에 울렸지만 이번에도 그녀는 뚜렷한 설명을 남기지 않고 그대로 사라지려는 듯, 걸음을 떼었다. 나는 화가 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해서 그녀에게 따라붙으며 억지로 대화를 이었다.
"자, 잠깐만요! 무슨 뜻이에요? 다른건 몰라도 이건 설명을 해줘야 할 거 아니에요."
"너무 뚜렷한 스포일러는 나쁜 짓인거 몰라?"
"그럼 애초에 신경 쓰일 얘기를 왜 꺼내는 거에요?"
"미안. 애태우는게 내 취미라서."
얼이 빠져 있는 나를 두고 그녀는 또 그렇게 사라져버린다. 미스터리한데다 제멋대로이기까지 한 그녀는 항상 나에게 이런 식으로 무언가를 남긴다. 그걸 풀어보는 것은 나의 몫이지만 그녀는 열쇠를 주지 않는다. 다만 그녀는 내게 남길 뿐이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그녀가 사라짐과 동시에 신기하게도 잊고 있었던 현실의 감각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라는, 머리 속에서만 계속 떠올라왔던 그 생각이 그녀가 사라짐으로 인해 뚜렷한 현실이 되어 나를 문득 일깨웠다.
"아 참! 서연이.... 현주...."
화들짝 놀란 나는 다짜고짜 달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걸 잊고 있었는지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화가 날 지경이었다. 달음박질로 순식간에 내 방 앞까지 달려올라간 나는 숨을 헐떡이며 심호흡을 했다.
문을 열어젖히기 전에, 괜히 시계를 한번 내려다보았다. 시간은 7시 22분.... 손목 시계를 문지르며 상의 안주머니를 나도 모르게 더듬고 있었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타임 리와인더가 오늘은 왠지 모르게 신경이 쓰였다.
*
채 시작도 하기 전에, 상황은 이미 총체적으로 난국이 되어 있었다. 방 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첫발을 딛는 순간부터 골이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현주가 이미 와있었던 것이다.
"젠장... 바보 같이."
설마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상황이 이렇게 될 거라고는 예상을 할 수 없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불편한 상황은 전적으로 내가 초래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방 안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침대 위에서 이불로 몸을 가린채 무릎을 양팔로 감싸고 기대 앉아있는 서연이와, 테이블 의자에 애매하게 앉아 그녀를 애써 쳐다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리고 있는 현주.
내가 살면서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불편하고 어색한 공기가 이 좁디 좁은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두 여자 사이에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분위기가 깔려있었지만 느낌으로 보건대 여지껏 두 사람은 단 한마디도 대화를 나누지 않은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늦게 와?"
"아... 미안."
서연이의 책망어린 질문에 바보같이 사과를 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 나의 맥 없는 모습이 현주를 더욱 분노하게 했는지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아무 말도 않고 나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세상에.... 이건 정말이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기분이었다. 마치 숨을 쉴 수 없는 물감옥 안으로 기어들어가는 것 같았다. 예상은 했지만 이 불편함과 어색함을 넘어서 괴롭기까지 한 분위기 속에서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도저히 감도 잡히질 않았다....
"안되겠다... 우선 상황이라도 좀 바꿔서...."
우선은 타임 리와인더를 사용해서 조금이라도 상황을 낫게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최소한 내가 없는 상태에서 서연이와 현주가 대면하게 되는 이런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상황을 주도할 타이밍을 놓쳐버리고나니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이 참기 힘들 정도로 바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안주머니에 손을 뻗은 것과, 서연이가 몸을 일으킨 것은 그야말로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읏!"
알몸으로 벌떡 몸을 일으킨 서연이가 그대로 침대에서 내려오더니 내게로 다가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행동을 보였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현주가 보는 앞에서, 보란 듯이 내게 성큼 다가와 나를 끌어안고 입술을 덮친 것이었다.
"으읍...."
너무 당황한 나머지, 입술과 입술이 포개어졌음에도 그 사이를 비집고 당황하는 내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물론 서연이와 내가 키스를 하는 것 자체는 별로 놀랍지 않은 일이었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현주가 이렇게 두 눈을 뜨고 보는 앞에서 아무 거리낌도 없이 이렇게 과감하게 행동으로 나서는 서연이의 돌발성이 여간 당황스러운게 아니었던 것이다.
상상과 현실은 엄연히 다른 법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머리 속으로 수없이 고민만 해왔던 문제를 서연이는 나보다 한발 앞서 행동으로 보이고 있었다. 그것은 실천력이라고 표현하기도 힘들 정도로 과감하고 저돌적인, 전혀 다른 차원의 용기였다.
"뭐, 뭐하는 짓이야!"
나는 물론이고 현주조차도 서연이의 너무도 갑작스러운, 더군다나 알몸 상태로 퍼부은 입술 세례에 할 말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녀는 한동안 멍하니 아무 말도 못하고 바라보기만 하다가 한참이 지난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가슴팍에 닿은 서연이의 알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걸 눈치 챌 수 있었다. 하지만 내게서 입술을 떼고 현주를 바라보는 서연이의 시선과, 그 뒤를 이어 나온 그녀의 목소리는 그 떨림과는 다르게 너무도 태연자약했다.
"섹스하는걸 보러 왔던게 아니었나요?"
"뭐, 뭐....?"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너무도 당돌하고 뻔뻔한 서연이의 모습 앞에 현주는 완전히 말문이 막힌 것 같았다.
"겨우 키스 가지고 놀랄 것 없잖아요. 질질 끌어봤자 불편하기만 할 텐데, 나는 지금 당장 시작하고 싶어요."
"......."
그 순간의 서연이는 정말이지 무서울 정도였다. 그녀 특유의 당찬 성격이 매번 내 예상을 뛰어넘어왔음은 인정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만큼 충격적이었던 적은 없었다. 그 저돌적인 발언 앞에 현주는 물론이고 나조차도 얼이 빠지고 말았다. 그 차갑게 내려앉은 분위기 속에서 오직 서연이만이 당당하게 상황을 주도해나가고 있었다.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그녀가 대신 해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괜찮죠?"
"......."
쐐기를 박는 서연이의 질문에도 현주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서연이 또한 굳이 대답을 기다릴 마음이 없는듯, 나를 강제로 거의 침대에 밀치다시피 하며 넘어뜨려버렸다.
"서, 서연아..."
내가 처음에 서연이와 관계를 가졌을 때와는 아예 상황이 역전되어버린 듯한, 그야말로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모습이었다. 엉거주춤하게 침대 위에 쓰러진 내가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자니 그녀가 정말로 강간이라도 하려는듯 나를 깔고 그 위에 올라타버렸다.
"자, 잠깐."
그 기세에 눌린 내가 꼴사납게도 당황하며 그녀를 제지하려들자 서연이가 어깨를 찍어누르며 귓가에 대고 말했다.
"꼼짝 말고 가만히 있어. 내가 리드하는대로 따라오기로 했잖아. 잊었어?"
"아...."
그녀가 내걸었던 조건은 이런걸 위함이었을까? 그제야 비로소 내가 그녀에게 약속한 것이 어느 정도의 무게감을 지니는지를 실감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서연이는 나보다 더 이런 상황을 뚜렷하게 예측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정말로 그렇다고 한다면 그녀는 정말로 무서울 만큼 대단한 여자였다....
"내가 이끄는대로, 시키는대로 순순히 따라와야만 해. 만약 그렇게 못한다면 나도 자기를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거야. 알겠어?"
불과 30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서연이의 주인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서연이가 나의 주인이나 다름이 없었다. 나는 찍소리도 내뱉을 엄두를 못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러자 옆에서 현주가 어안이 벙벙해져 기가 찬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자, 자기...? 자기라고?"
서연이가 나를 부르는 호칭이 어지간히도 혐오스럽게 들렸나보다. 나는 현주가 누군가를 그렇게 증오의 눈길로 노려볼 수 있다는걸 그 순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야말로 서연이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서연이보다 훨씬 긴 시간을 만나오면서도 현주는 여지껏 오빠 이외의 호칭으로 나를 불러본 적이 없었다.
"그래요. 뭐가 잘못되었나요?"
"니, 니가 뭔데.... 얼마나 오래 만났다고...."
"시간보다는 깊이가 중요하겠죠. 인정하기 싫겠지만 몸으로 대화할 수 있다는건 그만큼 더 빠르게 깊어질 수 있다는 뜻이에요."
심할 정도로 현주의 자존심을 무참하게 깔아뭉개는 서연이의 신랄한 한 마디.... 현주의 과거를 들려준 것으로 인해 서연이가 같은 여자로서의 동정심을 발휘할 거라고 생각했던건 내 착각이었을까? 말로는 도저히 상대가 안되겠다 싶을 만큼 그녀는 현주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뻔뻔한 년.... 니가 자랑하는 그 몸뚱이가 얼마나 대단한지 지켜볼거야."
현주의 그 표독스런 눈빛만 보면 그녀가 당장 달려들어 서연이를 찢어발겨도 이상할게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주는 부르르 떨리는 손을 움켜쥐면서도 애써 분노를 삭히며 일으키려던 몸을 다시 의자에 앉혔다. 한술 더 떠서 서연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나를 향한 애무를 해나가기 시작한다.
"서, 서연아..."
참으로 우습게도 나는 마치 순결을 빼앗기는 숫처녀라도 되는 듯이, 나를 범하려는 서연이의 얼굴을 겁에 질린 토끼처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서연이는 타인의 눈 앞에서 알몸을 내보이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혹은 그렇게 보이려는 듯 애를 쓰며, 내 목 언저리에 고개를 박고는 목덜미와 귓볼을 끈적하게 물고 당겼다.
그녀의 한 손이 내 얼굴과 머리를 쓰다듬는 것과 동시에 나머지 손이 능수능란하게 내 목 아래를 더듬어나갔다.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내 티셔츠를 걷어올리고 속살을 쓸어올리는 서연이의 손길 앞에 현주의 표정이 한층 더 망연자실해졌다. 이중적이게도 몸으로는 서연이의 애무를 받으면서, 눈으로는 현주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
끔찍할 정도의 침묵 속에서 오직 서연이의 손과 입만이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팔을 들어올리라고 지시하고는, 손쉽게 내 몸에서 티셔츠를 벗겨내버렸다. 사과 껍질을 벗겨내는 것보다 더 간단하게 나를 벗은 몸으로 만들어버리는 서연이의 모습을 현주는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 상황은 나와 현주 둘 모두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읏...!"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느낌과 이율배반적인 감정들이 몸뚱이에 가해진 자극과 동시에 희미해진다. 서연이가 내 젖꼭지를 입에 물었다. 처음으로 섹스 이전의 전희가 나의 주도 아래에서가 아닌 그녀의 주도 아래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마치 내가 평소에 그녀의 젖가슴을 탐하듯 서연이는 내 가슴을 물고 빨아댔다.
여자와는 달라서 성감대를 자극받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리만치 자극이 심했다. 통상적인 흥분은 아니었다. 오히려 현주의 시선 앞에서 이런 꼴로 서연이에게 애무를 받는다는 사실을 자꾸만 의식하고 있는 탓에 순수한 의미에서의 흥분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배덕한 상황에 놓였기 때문에 느낄 수 밖에 없는 초유의 감각이란게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그것은 젖꼭지를 통해서 느껴지는 자극 자체에 힘입은 흥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앗...."
예고도 없이 서연이의 손이 불쑥 남하하여 내 바지 속으로 사정없이 파고들자, 처음으로 보지를 유린 당하는 소녀처럼 반사적으로 다리를 오므리는 나였다. 하지만 서연이는 조금도 봐주지 않고 바지를 팬티 채로 내려버린 다음 두 다리를 힘으로 열어젖혔다.
나는 허무하리만치 순식간에 알몸이 되었다. 내가 서연이를 너무도 손쉽게 알몸으로 만들던 것과 비슷하면서도 한편으로 너무도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현주는 이제 완전히 전라가 되어버린 한 쌍의 남녀를, 알몸으로 뒤엉켜 있는 자신의 남자친구와 다른 여자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으윽!"
소리라고는 간헐적으로 터져나오는 나의 당황스런 신음성이 오로지 전부였다. 그 외엔 분주하게 움직이는 서연이의 몸짓과 애무 뿐이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서연이는 냅다 나의 자지를 입에다 성큼 물어버린다. 현주의 시선 앞에 커질 생각도 못하고 쪼그라들어 있던 내 자그마한 물건이 서연이의 입에 소시지처럼 쏙 물려들어갔다.
크기가 작은 상태인 만큼 표면에 가해지는 자극은 더욱 민감했다. 발기도 되지 않아 자그마하게 대롱거리고 있던 나의 물건이 서연이의 입 속에서 마치 희롱당하는 장난감처럼 이리 굴려지고 저리 굴려지면서 처참하게 유린당했다. 번데기나 다름없는 물건이 서연이의 입 안에서 헤엄칠 때마다 나는 강제적으로 가해지는 찌릿한 감각에 몸을 떨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을 고스란히 현주에게 보여야만 했다.
"아으윽..."
당황스럽고, 짜릿했고, 부끄러웠다. 모순적이게도 이 세가지가 너무도 뚜렷하게 뒤죽박죽 얽혔다. 멍하니 이 꼴을 바라보고 있는 현주의 시선 앞에 꼴불견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서연이를 제지하지 못하고 그녀가 나의 좆을 마음껏 유린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막대사탕이라도 빨아먹듯이 그녀는 철저하게 내 자지를 빨아 서서히 세워나갔다. 내가 어떤 기분을 느끼던, 현주가 내게 어떤 시선을 보내던, 강압적으로 성기에 가해지는 혀의 놀림이 내 기둥을 조금씩 뻣뻣하게 만들고 있었다. 마음과는 상관없이 이미 내 쪼글쪼글했던 물건은 서연이의 입속에서 하나의 기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하아..."
처음으로 내 입에서 당황에 의한 것이 아닌, 자극에 의한 신음성이 터졌다. 그것을 신호로 현주도 움찔한 것 같았다. 잔혹하게도 서연이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내 기둥을 빨아제끼던 입을 아래로 내려 내 불알을 샅샅히 혀 끝으로 건드리기 시작했다. 꼴사납게 허공에서 대롱거리던 불알 표면에 혀가 닿자 찌르르 하는 감각이 척추를 타고 울렸다. 마치 청소라도 하듯이 서연이는 주름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그것을 핥아나갔다.
"........"
현주가 싸구려 포르노 따위나 보면서 홀로 남몰래 연습한 것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현주로서는 아마 직접 눈으로 보는 것조차 처음일 능수능란하고 끈적끈적한 펠라치오였다. 물론 현주의 언니에 비한다면 서연이의 그 기술조차도 한참은 부족할 테지만 이미 그것만으로도 현주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경지였다. 자신은 흉내조차 내지 못할 여인으로서의 농염한 모습 앞에 현주가 참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이 보였다.
어쩌면 그녀에게는 충격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연이는 한없이 잔인하게도 그녀에게 여유라고는 손톱만큼도 주질 않았다. 불알을 애무하던 그녀의 혀가 더더욱 밑으로 깊숙히 내려가더니, 심지어는 나조차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으로 파고들었다.
"이... 이럴 수가...."
속으로 나는 경악을 삼켰다. 현아에게 항문을 애무 받아본 적은 있지만 그래도 서연이는 어디까지나 현아와는 다르지 않은가. 현아에게 후장 애무를 받으면서 서연이에게도 이런걸 시켜보면 어떨까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 적은 있었지만 그게 지금 이 순간, 하필이면 현아의 동생이 보는 앞에서 이런 식으로 재현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평소의 서연이 수준을 한참 뛰어넘는, 나로서도 처음 겪어보는 서연이의 과감한 애무 앞에 나는 이 상황에서 도저히 불가능할 것만 같은 격한 자극을 느끼고는 허리를 움찔거렸다. 그러면서도 나는 희미하게 뜬 실눈으로 현주의 표정을 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을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런 애무는 포르노에서조차 아직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남성의 항문을 여성이 혀 끝으로 간질이는, 그 원색적이고 적나라한 형태의 애무 앞에 그녀는 아예 넋이 나가버린 것 같았다. 게다가 그런 애무를 다른 여자로부터 받는 사람이 다름 아닌 자신의 남자친구라는 사실이 그녀를 공황 상태에 빠뜨린 것 같았다.
"저,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속으로 나는 불안해졌다. 현주의 상태가 너무도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여 이대로 두어도 될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이것이 물론 어디까지나 현주의 부탁에서부터 비롯된 상황이긴 하지만 그 결과가 현주에게 또 하나의 커다란 상처를 남기는 것 뿐이라면 나로서는 도저히 못 할 짓이었다.
"뭘 걱정하는거야....? 만약 그럴 것 같으면 시간을 감아버리면 돼. 지금은 마음 편하게 이 상황에 집중하면 되는 거야. 그래, 그러면 돼...."
나에게는 타임 리와인더가 있다. 상황이 아무리 최악으로 흘러가더라도 나에겐 최후의 보루가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러한 믿음의 받침대가 없었다면 나는 이 상황을 도무지 이어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서서히 육체에 가해지는 성적인 자극과, 최후의 수단에 대한 믿음에 힘입어 나는 그렇게 조금씩 흥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게다가 서연이는 현주 뿐만이 아니라 내게도 도저히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열정적으로 항문을 애무하던 그녀는 이제 내 몸 위에 거꾸로 올라타, 내게 69 애무를 강요하고 있었다. 거리낌 없이 내 앞에 자신의 보지와 항문을 내벌리고 올라타 엎드리는 서연이의 몸짓 앞에 현주가 또 한차례 굳어진 것은 당연했다.
나도 모르게 서서히 몸이 달구어지고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해서 내가 주도적으로 뭔가를 하기에는 아직 약간 망설여질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는 서연이가 모든 것을 리드해왔지만 그녀는 처음으로 내가 "직접" 뭔가를 하기를 종용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그녀는 다시 내 자지를 덥썩 입에 물며, 혀 끝으로 내게 얼른 행동을 보이라는 신호를 넣고 있었다.
그것이 명령이었든 재촉이었든, 그런 것은 이미 중요한게 아니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서연이의 음부에 고개를 처박고는 그녀의 보지를 핥아올리기 시작했다. 마치 짐승처럼 69 오랄을 시작하는 우리를 현주가 어떻게 보고 있을지 계속 신경이 쓰였지만, 일이 잘못되더라도 나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단 하나의 사실만을 나는 주문처럼 스스로에게 계속 되뇌이고 있었다.
"너... 너무해...."
얼핏 현주가 나지막히 흐느끼듯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서연이의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박고 있느라 그녀의 표정을 더는 살피지 못했다. 거의 반쯤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며 서연이의 보지에서부터 항문까지를 세차게 혀로 핥았다. 그러자 서연이가 몸을 꼬며 신음을 흘렸다.
"아응!"
그녀는 자신의 달뜬 모습을 굳이 현주에게 적나라하게 내보이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볼 테면 보라는 식인 것 같았다.... 아마 평소대로의 섹스였다면 나는 이게 시작일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서연이는 오랜 시간에 걸친 전희를 즐겼고, 나 또한 그녀를 뜨겁게 끓이는 과정이 싫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뜻밖에도 스스로 몸을 일으키더니, 이번엔 내 사타구니에 자리를 잡고 올라탔다. 그녀의 의도를 눈치챈 나는 머뭇거리며 물었다.
"벌써....?"
"괜찮아... 바로 넣어."
이렇게 짧은 전희는 그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연이는 급하게 느껴질 만큼 삽입을 재촉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과정이야 어찌되었건 간에 나는 그녀의 리드를 따라주어야만 했고, 또한 이것이 현주의 부탁임을 스스로에게 계속 인식시켰다.
"으흑!"
평소만큼 충분히 애액이 흐르질 않아 조금은 뻑뻑하게 느껴지는 조갯살을 가르고, 내 귀두가 틀어박혔다. 이렇게 뻑뻑해서 괜찮을까 싶었지만 서연이는 무리한다 싶을 만큼 허리를 움직여 구태여 자신의 몸 속으로 내 기둥을 더욱 깊숙히 받아들였다.
"하아아...."
거의 억지로 우겨넣다시피 하여 우리는 서로 연결되었다. 마침내, 기어코.... 다른 여자와 한 몸이 되어버린 내 모습을 보며 현주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애써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그쪽으로 돌리지 않았다.
"하아... 하아아...."
질감이 건조한 구멍 안쪽을 내 물건이 파고들자, 나는 이대로 괜찮을지를 걱정했지만 서연이는 자신이 직접 몸을 움직여가며 피스톤질을 해나가고 있었다. 현주가 오기 전에 나누었던 섹스에서 그녀가 보여주었던 기승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바보가 아니었다. 서연이와 숱한 섹스를 해왔기 때문에 나는 지금 그녀가 즐기고 있지 않다는걸 알 수 있었다. 섹스를 즐기는 상태의 서연이는 결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는 주도하기보다는 주도 받기를 즐기는 여자였고, 충분한 전희에 행복해하는 여자였으며, 이러한 통증을 감내하면서까지 억지로 섹스를 이어나가려 하는 여자가 아니었다.
굳이 서연이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피부에 닿는 육체의 감각만으로도 나는 그녀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결코 내 눈에 보일 만큼 표정을 찡그리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가 지금 아픔을 감수하고 있다는걸 느낄 수 있다. 아픔을 감수하면서 서연이가 나와 섹스를 한다면, 그것이 현주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처음으로, 나는 서연이의 얼굴에서 현주의 얼굴을 겹쳐보았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순간 나의 세상이 아주 잠깐동안.... 정지한 듯이 얼어붙었다.
*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지만, 비로소 그 순간이 되어서야 나는 서연이가 나와의 섹스를 리드하겠다고 말한 의도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그녀 자신의 쾌락을 위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결코 나에 대한 모방 따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망설일 수 밖에 없는 나를 위해서 그녀 자신이 그것을 감수한 것일 뿐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도 바보 같을까? 이렇게 해서 내가 도대체 현주에게, 서연이이게 무엇을 남길 수 있단 말인가. 단지 현주의 부탁을 들어주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진정 두 사람을 공평하게 사랑하겠다면 지금의 내 행동은 비겁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진정으로 두 사람을 위하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사랑을 반으로 나눈다니, 있는 그대로 사랑하겠다느니 하는 말을 지껄일 수 있을까. 나는 정말 이기적인 놈이었다.
지금만큼은 그래서는 안 된다. 이왕 솔직해지기로 마음 먹은 거라면, 그리고 나만의 가치관으로 두 사람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거라면 내가 지금 이러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서연이는 서연이답게, 현주는 현주답게 사랑해주어야만 한다. 우습게도 서연이가 주도한 섹스는 내게 그 사실 하나만을 심어준 것이나 다름 없었다.
비로소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내 몸 위에 올라타 허리를 움직이고 있는 서연이를 아랑곳 하지 않고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왜 그래....?"
나는 그녀의 대답을 듣지 않고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에 벗어놓은 옷가지들을 더듬었다. 타임 리와인더는 여전히 주머니 한 구석에 잘 잠들어 있었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너희 둘 다...."
왠지 과거의 어느 순간이 겹쳐보인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두 여자를 내버려두고 복도로 나왔다. 손목 시계를 내려다보니 다행히도 8시 22분이 어느덧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염 없이 그 자리에서 서성이던 나는 시간이 되자마자 타임 리와인더의 바늘을 한 칸 옮겼다. 그리고 요동치는 듯한 느낌이 지나간 이후에 다시 내가 방 문 앞에 섰을 때는, 시간이 다시 7시 22분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까보다 더욱 뚜렷한 손길과, 그리고 한편으론 아까와는 다른 마음으로, 나는 다시 문을 열었다.
*
"아흐윽!"
이번에도 어김없이 서연이는 내게 69 애무를 종용해왔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기억 속에는 이미 없을 아까 전과는 다르게.... 아주 힘찬 몸짓으로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박고는 그녀의 음부를 게걸스럽게 핥아올렸다.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뜨겁고, 추잡하고, 원색적인 혀의 움직임으로.
"하, 하아...."
서연이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저돌적인 움직임으로 나와의 섹스를 주도하려 했지만 나는 그 이상의 과감한 반응으로 그녀의 애무에 응수하고 있었다. 서연이로서도 예상하지 못한 내 용감한 반응에 그녀는 내심 놀라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그럴 수 밖에 없으리라.
"아응! 으으응! 하... 으응!"
현주가 오기 전에 둘이서만 나누었던 섹스와 똑같은....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뜨겁게 나는 서연이의 보지를 샅샅이 애무해나갔다. 혀로 공알을 굴려주면서 서연이가 그토록 좋아하는 애널에 대한 자극도 잊지 않았다. 혀 끝으로 클리토리스를 애무하며 손가락을 세워 그녀의 항문을 자극해주니 서연이가 역시나 반응을 보인다.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섹스를 한다는 그 사실조차 무마시켜버릴 만큼 나는 저돌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의 남자친구였던 사내가 다른 여자의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박고 보지와 항문을 애무하는 모습이 현주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물론 나는 서연이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기에 그녀의 표정을 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더이상 현주의 반응을 신경쓰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제 나는 현주가 아닌 서연이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이 방 안에서 오직 나는 서연이와 함께 있을 뿐이었다. 의식적으로 나는 이 좁디 좁은 공간 안에서 현주의 존재를 잠깐 동안 머리 속에서 지웠다.
있는 그대로, 망설임 없이 솔직하게. 그거면 된다.
"하.. 하으윽! 하흐윽!!!"
두 구멍을 동시에 공략하는 나의 몸짓 앞에 서연이의 신음성이 거칠게 흐트러졌다. 69로 빨아제끼던 그녀의 몸을 이제는 침대에 반듯하게 눕혀놓고는, 내가 그 위에 올라타 키스를 퍼부으며 한 손으로는 그녀의 젖가슴을, 나머지 손으로는 여전히 이어서 그녀의 보지와 항문을 넘나들며 애무를 가해주었다.
정신 없이 젖꼭지를 만지고, 클리토리스를 굴리다가, 항문 근처를 간질이고, 입술을 물고 빨던 혀가 아래로 내려와 목덜미, 가슴, 배꼽, 하초를 지나 다시 가랑이 사이에 고개를 박고 오랄 애무를 이어간다. 끝도 없이 계속되는 애무가 얼마나 오랜 시간 이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동안 현주의 얼굴을 단 한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하... 하아아... 하아... 자... 자기야.... 내... 내가 리드한다고 했잖아...."
"시끄러워. 엉덩이 더 들어."
아까의 무서웠던 서연이 모습은 어느새 온데간데 없었다. 마치 투정처럼 울상을 지으며 칭얼거리는 서연이의 엉덩짝을 나는 강제로 밀어젖혀올리며 그녀의 다리를 양쪽으로 활짝 벌렸다.
충분한 애액으로 듬뿍 젖어 탐스럽게 번들거리는 음순의 빛깔을 보니 그제서야 마음이 흡족해진다. 바로 이 기분을 느껴야만 서연이와 나의 관계가 성립할 수 있다. 왜 그 간단한 사실을 망각했던 걸까.
비로소 나는 내가 처음 서연이를 취했을 때의, 그 아무 생각 없고 거침 없던 난봉꾼으로 돌아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게 과연 도덕적으로 바람직할지 아닐지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런 평가는 타인이 내려줄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으으으읏....!!!"
역시나 서연이는 주도하기보다는 주도 받기를 원하는 여자였다. 삽입할 때의 신음소리부터가 확연히 다르지 않은가. 아까와는 다르게 축축히 젖은 질구를 부드럽께 뚫고 가르며 내 자지가 그녀의 보지 안에 빨려들어갔다. 마치 제 단짝을 만난 듯이 내 자지가 그제서야 용트림을 하며 그녀의 따뜻한 질 속에서 몸부림쳤다.
"좋아?"
"으.. 으응! 좋아!"
평소와 다름없는 내 모습에, 그녀 또한 내게 기대며 평소와 다름 없이 마음껏 흥분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누가 보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더이상 중요한 것이 아닌 듯 했다. 의무감으로 섹스를 리드해나가던 아까의 모습과는 다르게 서연이가 본연의 모습 그대로 귀엽게 흥분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 한 구석이 뿌듯해왔다.
"하아... 하아앙! 아아아앙!! 조.. 좋아!! 자기야...."
현주가 보고 있다는 것도 잊은채.... 서연이는 언제나처럼 열정적으로 쾌감을 표하며 허리를 비틀고 몸을 꼬으며 나의 물건을 온 몸으로 받아들인다. 아니, 어쩌면 현주가 보고 있기 때문에 더욱 여봐란 듯이 흥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역시나 서연이의 안에는 약간의 변태 성향이 내재하는 듯, 내가 그녀에게 있어 안정적인 버팀목이 되어주자 그녀는 오히려 현주의 존재로 인해 더더욱 마음껏 달아오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기야...! 더 세게 안아줘... 더 세게.... 더 깊이.... 하아아앙...!!"
그것은 승리감의 과시였을까, 아니면 그 역시 하나의 또다른 성적 흥분의 형태였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서연이는 현주의 눈 앞에서 달아오르고 있었다. 보란 듯이, 부끄러울 것도 없다는 듯이....
정상위로 내 좆질을 한껏 받아들이며 그녀는 마치 한 마리의 강아지처럼 발랑 다리를 벌리고 쾌감에 들떠가고 있었다.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것이 실제로 성적 흥분을 더 끌어올릴 수 있을지 없을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것이 그녀의 흥분을 방해하지 못한다는 것만큼은 이제 분명해보였다.
격정을 이기지 못한 그녀가 두 팔을 뻗어 내 얼굴을 한껏 끌어안으며 격정적으로 키스를 퍼부었다. 불과 아까전에 현주가 오기 전, 나는 서연이와 이 자세로 교미를 하면서 현주가 이 광경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지를 혼자서 상상했었다.... 그런데 그 상상은 지금 비로소 정확하게 현실이 되었다.
아랫입과 윗입이 동시에 맞추어지며 나와 서연이는 꼭 맞는 한 쌍의 조각처럼 한 몸이 되어가고 있었다. 키스와 삽입을 동시에 이루어가는 우리의 몸은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세세한 박자 하나 놓치지 않고 서로를 뜨겁게 만들고 있었다. 푸욱푸욱 보지에 꽂히는 원색적인 내 좆질의 소리와 더불어 음탕한 씹물소리가 왈칵왈칵 방 안을 가득히 메워나갔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의 여파에 현주가 있었다.
질컥질컥질컥....!!! 퍼억퍼억퍼어억!!!
서연이의 아랫도리에 내 허벅지가 부딪히며 음란하고 적나라하기 짝이 없는 살 섞는 소리가 마치 스테레오처럼 울렸다. 더이상 현주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조차도 내 머리 속엔 없었다. 그저 이 행위에 집중할 뿐이었다.
"아하아아악! 아으으응!!!! 아아아아아...!!!!!"
자세를 바꾸었다. 이제 나는 서연이를 개처럼 엎어놓고 뒤에서 후배위로 그녀의 속살을 가르고 있었다. 찰진 엉덩이에 좆질을 할 때마다 그녀의 탱글하고 빵빵한 엉덩이에 내 사타구니가 부딪히면서 음란한 섹소리는 한층 더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정상위보다 한층 더 동물적이고 원색적인 체위의 섹스. 현주와는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던 섹스의 꽃이었다. 짐승이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서연이의 엉덩이를 거칠게 쳐올려가는 내 시선은 오로지 흔들리고 뭉개지는 서연이의 두 엉덩이에만 박혀있었고, 서연이도 현주를 의식하지 않으며 침대 시트에 고개를 처박고는 마구 몸을 흔들어대며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흐으윽!! 흐으으으으윽!!! 아으으으으으응!!!!! 나... 나 갈 것 같아....!!!"
"하아... 하아아.... 사랑한다고 말해봐."
엉덩이와 허리를 바들바들 떨어대는 서연이의 유방을 잡아 짓뭉개며 그녀에게 요구하자 착하게도 서연이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격정적으로 내 말에 복종했다.
"사랑해...!! 사랑해.... 자기 밖에 없어.... 너무 좋아...."
"내가 현주를 사랑해도 너는 나만 사랑할 거지?"
"으... 으응....!"
뭐 물론 서연이 성격에 꼭 그럴 것 같진 않지만.... 그녀는 고맙게도 지금 내게 꼭 필요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상이라도 내리듯이 한팔을 쭉 뻗어 그녀의 자그마한 얼굴을 쥐고는, 우악스럽다 싶을 정도로 거칠게 돌려 서연이의 얼굴이 현주를 똑바로 향하게끔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현주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다.
"자, 이제 네 모습을 현주에게 보여줘. 네가 얼마나 행복해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란 말야."
"하아... 하아아...!! 아아아응...!!!"
"네 입으로 현주에게 말해줘. 내 자지가 좋다고. 내 자지에 박힐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해."
"자.. 자지.. 자지 좋아... 성진 선배 자지가 너무 좋아....!!! 행복해...."
"이 좋은걸 못하는 현주가 불쌍하지 않아?"
"으응... 불쌍해...."
"그러니까 네가 이해해줘야 해. 알겠어?"
"으응...!"
그야말로 어린애를 다루듯이, 어찌보면 노예를 다루듯이 그녀를 내 허리놀림 아래 철저히 복종시키는 내 모습을.... 아마도 현주는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쾌감과 열에 들떠 일그러져있는 서연이의 망가진 얼굴을 현주에게 고스란히 내보이면서, 서연이가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도록 허락하지 않은채, 나는 그녀의 얼굴을 한 손으로 움켜쥔 채로 그녀의 보지 안에 그대로 사정했다.
"하아아아으으흑....!!!!!"
뾰족하고 긴 서연이의 신음소리가 방 안 가득 울리고, 나 또한 절정에 오르며 나는 그 순간에도 서연이의 얼굴을 움켜쥔 채로 현주에게 내보이고 있었다. 정액을 서연이의 보지 안에다 울컥 토해내면서 나는 비로소 현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얼굴이 마주쳤고, 두 눈이 마주쳤고, 그 후에 눈동자가 마주쳤다.... 현주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나를 그대로 꿋꿋이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현주의 눈을 마주보며 서연이의 질 속에 있는 힘껏 정액을 뿌렸다.
*
"하아...."
한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한 기분이었다. 방 안은 고요한 정적에 휩쌓인 채였지만, 그 격한 열기의 흔적들은 고스란히 남아 그것이 꿈이 아니었음을 우리 세 사람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절정의 여운을 즐기는 것도 잊은채, 나는 몸을 일으켜 현주를 보았다.
"현주야."
"........"
고개를 숙여버린 얼굴 위로 그녀의 머리칼이 흘러내려 이제 더이상 그녀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의자에 앉은 현주는 마치 충격적인 공포 영화라도 보고 난 듯이, 두 다리를 꽉 오므리고 무릎 위에 손을 얹고는 온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내가 비로소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오히려 나의 시선을 피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려고 손을 뻗으려 했다. 팔을 들어올리는 것만으로 현주는 움찔하며 놀라는 듯 했지만 내가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나보다 먼저 움직인 사람은 바로 서연이였다.
"이리 와요."
"어....?"
전라의 서연이가 현주에게로 다가가 부드럽게 어깨를 감쌌다. 낯선 여자의 손길에 어깨에 닿자 현주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머리칼이 걷힌 그녀의 얼굴에서는 눈물 한방울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이리 오라구요. 당신도 할 수 있어요."
"뭐....?"
현주가 무슨 소리냐는 듯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을 들어 서연이의 얼굴을 보았다. 서연이를 보는 현주의 눈에는 이제 증오마저 없었다. 마치 모든 감정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듯이, 그녀는 백치가 되어버린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백지장 같은 현주의 모습에다 대고, 서연이는 결코 가볍지 않은 한 마디를 그렇게 건넸다.
"도와줄게요."
눈물로 엉망이 된 현주의 얼굴이, 마치 부서지는 물결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 다음 화에 계속 -
지난 화에 많은 분들이 격려의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
33장을 조금 빠르게 업데이트 해 본 것은 평일이 되면 또 바빠질 테니 주말에 힘을 내본 것도 있지만
격려에 보답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기 때문도 있었습니다
우울한 모습을 보여드렸으니 이번 화는 많은 분들이 조금 더 즐거운 마음으로 보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항상 감사합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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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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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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