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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리와인더 - 1부34장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23:30 893회 0건
* 타임 리와인더 (Time Rewinder)
- 이 소설은 소.라.넷(sora.net) 작가 "상상의신비"가 연재 중인 작품입니다.
무단 불펌을 삼가해 주시길 부탁드리며, 퍼가시더라도 출처와 작가명을 꼭 남겨주십시오.
창작가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자 도리입니다.


* 1부 34장


아마도 그 순간의 서연이는 내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용기를 발휘했던 것일 터였다. 굉장히 역설적이게도 서연이가 나에 대한 "완전한 소유욕"을 포기한 바로 그 순간에, 나는 서연이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히 실감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몸을 섞도록 돕겠다는 것은 어쩌면 용기 이상의 그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행위가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섹스로 시작해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와버린 마당에 더이상 무엇이 놀랍겠냐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연이의 말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 모두에게 있어 너무나도 컸다.

물론 그것은 오로지 나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에서만 비롯된 용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현주의 과거를 서연이에게 말해준 것이 결과적으로는 현명한 판단이었다는 반증인 셈이리라.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서연이는 서연이....

뼛속까지 냉정해질 수 없는 그녀가 현주에게 같은 여자로서의 동정심을 갖게 된 건 사실 내가 조금은 의도했던 부분일 수도 있었다. 다만 그 동정심이 어떤 형태로 발휘될지까지는 알지 못했기에 그녀의 대담한 발언은 나조차도 놀라게 만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뭐, 뭘 도와준다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서연이의 발언은 어쩌면 비장하다는 표현마저 어울릴 정도로, 그녀의 동정심을 그녀만의 방식으로 다듬어 낸 결정이었으리라. 심지어 현주마저, 그 복잡한 심경의 와중에도 그녀의 말에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신도 사랑하는 남자 품에 안기고 싶지 않나요? 방금 내가 그랬듯이."
"미, 미친년! 잘난 척 하지마...! 누가 그러기 싫어서...."
"무섭다고 항상 피해기만 해서는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도, 아무리 많은 남자를 만나도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일 수 밖에 없을 거에요. 스스로도 잘 알고 있잖아요."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안다고 감히 그딴 소릴 해!"

눈물도 채 마르지 않은 얼굴로 앙칼지게 소리치는 현주의 모습은 그녀가 내게 여지껏 보여왔던 순박한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러나 그 악에 받힌 모습을 마주하는 서연이는 오히려 담담해보였다.

"그래요. 난 몰라요. 하지만 당신이 가지고 있는 상처, 그걸 평생 새기고 산다는게 여자로서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는 알아요. 당신이 선배와 오랜 기간 만나면서 정신적으로 얼마나 깊어졌는지는 내가 감히 이야기 할 수 없겠지만, 솔직히 나는 당신이 정말 불쌍한 여자라고 생각했어요."
"뭐.... 부, 불쌍....?"
"내가 느끼는 이 기분, 이 행복.... 그 여자는 왜 이렇게 좋은걸 못하는 걸까. 섹스 말곤 잘 하는 것도 없는 인간이랑 사귀면서 왜 섹스를 피하려고 하는 걸까. 같은 여자로서 그게 늘 불쌍했다구요."

그 와중에도 은근히 나를 돌려까는 서연이였지만 나는 애써 못 들은척 했다.

"닥쳐!! 이 가증스러운 년....! 불쌍하다고? 겨, 결국 그걸 이용해서 너는 다른 사람의 애인과 놀아난 거잖아. 안 그래? 그래놓고는 무슨 낯짝으로 그런 소리를...."
"물론 당신의 결함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된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나도 양심이 있는 년이라 이 사람에게 빠질 수록 당신에 대한 미안함도 커질 수 밖에 없었죠. 그리고 당신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오늘에서야 알고 나니.... 내가 당신에게 정말로 못할 말을 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어치워!! 그런다고 내가 너를 용서할 것 같아?"

분을 이기지 못한 현주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서연이를 이글거리는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태연한 소감이었지만 입은 것 하나 없는 전라의 모습으로 그 분노 어린 눈길을 받아내면서도 위축되지 않는 서연이가 내 눈에는 정말로 대단해보였다.

"미안하다고? 그렇게나 양심이 있다면 당장 내 눈 앞에서 꺼져!! 다시는 나랑 오빠 앞에 나타나지 말란 말야!"
"싫어요."
"뭐...?"
"그럴 순 없어요. 당신이 불쌍하지만 내 감정도 소중하니까요."
"너, 너 지금 나 갖고 장난하는 거야?"
"아니에요. 나는 그저.... 우리 세 사람 모두가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을 뿐이에요."

현실과의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로 담담한 서연이의 대꾸 앞에 현주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볼에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감정이 폭발하는 이런 상황에서 눈 앞의 얄미운 여자와 이성적인 이야기 따위는 조금도 하고 싶지 않다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현주는 애써 서연이에게 조소 섞인 모욕을 서연이에게 가했다.

"넌 그저 창녀처럼 몸만 섞는 년일 뿐이니 그딴 말을 할 수 있는거겠지.... 넌 오빠를 사랑하지 않는 거야. 사랑한다면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어. 사랑은 나눌 수 있는게 아니니까."
"방금 내가 선배와 몸을 섞는 모습을 보면서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나요? 당신 눈에는 내가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의 손길에 그저 쾌락만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나요?"

너무도 직접적이고 당돌한 서연이의 질문 앞에 현주도 일순 할 말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아무리 부정할래야 서연이가 보여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도저히 현주는 흉내낼 수 없는 여자로서의 진솔한 단면임을 그녀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자신은 할 수 없는 모습이기에 그것이 더욱 절절한 형태로 마음 속에 새겨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분명 행복했어요. 그건 사랑하는 여자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에요. 몸으로 대화할 수 없다는건 사랑의 한 형태를 취할 수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니까요. 그래서 나는 당신도 그걸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우, 웃기지마.... 네가 왜.... 네가 무슨 이유로 나를...."

그러자 서연이는 마치 자조하듯이 옅은 웃음을 지었다.

"당신 앞에서 나는 죄인이니까요."

말문이 막힌 듯 현주가 서연이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대꾸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과 너무도 다른 모습의 타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녀 자신도 알 수가 없었기에.

"내가 당신에게 지은 죄를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는 길은, 당신도 나처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 사람과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우리 세 사람이 그나마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이해할 수 없어.... 나는 절대로 너를 이해할 수 없어. 너도 여자면서.... 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너, 너는 사랑하는 남자를 나눈다는게 아무렇지도 않아?"
"물론 나도 흡족하진 않아요. 하지만...."

서연이는 그 차분한 한 쌍의 눈동자를 들어 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신기하게도 서연이가 나를 바라보자 현주도 덩달아 그 눈물 젖은 그렁그렁한 눈을 내게로 옮기는 것이었다. 그렇게 두 여인의 시선이 내게 동시에 꽂혔다.

"저런 욕심 많은 못난 인간을 사랑해버렸으니 어쩌겠어요."
"........"

아마도 현주는 서연이의 말을 온전히 납득했다거나, 자신의 가치관으로 그것을 쉬이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서연이의 마음이, 그녀가 하고 있는 하나하나의 말들이, 결코 마음에 없는 허언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같은 여자로서 현주의 마음에도 느껴진 것 같았다.

현주는 차마 서연이에게 대꾸하는 것조차 잊고 그저 나를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것은 사실 현주가 얼마나 여린 심성의 소유자인지를 말해주는 모습이기도 했다. 아무리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다르다 하더라도 그녀가 서연이의 방식을 이해해주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연이의 마음이 진심이라는걸 느꼈기 때문에, 그녀는 더이상 서연이를 모욕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지켜보고만 있었던 나는 이것이 서연이가 나에게 넘겨주는 바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결국 이것이 내가 매듭 지어야 할 문제라는걸 그녀는 알고 있다는 뜻이리라. 서연이에게는 다른 모든 것이 다 고마웠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그 사려깊음이 정말로 고마웠다.

"현주야."

나는 현주의 멍한 두 눈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보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이제와서 더이상 구구절절한 말로 용서를 구하거나 변명하지는 않을게. 그냥.... 나한테 한번만 기회를 주면 안 될까? 나는 너희 둘 모두와 행복하고 싶어. 우리 그렇게 사랑해보면 안 될까?"
"........"

그 때 문득, 그녀에게 처음으로 고백했던 그날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생각해보면 이것이 내가 현주에게 던지는 두 번째 고백일지도 모르기 때문일까.

처음 그녀에게 고백했을때 나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당당히 용기내어 내 마음을 전했고, 그녀가 그것을 받아주어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져버렸다. 이것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축복이나 환호를 받을 수 있는 그런 멋지고 순수한 고백이 아니었다. 추잡하고 구질구질한 욕심만을 진솔하게 드러낸 알맹이 하나만이 남겨진 고백일 뿐이었다.

마치 한참 전에 벗어던졌어야 할 껍데기를 이제야 벗은 듯한 느낌이었다. 좋은 남자친구로 보이려는 허울도, 굳이 그럴 싸한 말로 그것을 꾸며보려는 몸부림도 모조리 치워버렸기 때문이었다. 남은 것은 현주가 받아줄 것인지 말 것인지의 선택 뿐이었고,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나는 그것을 존중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나, 나는...."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현주의 입이 열렸다. 그녀의 입에서 어떠한 말이 나오더라도 결코 타임 리와인더를 사용하지는 않으리라고 나는 마음 속으로 내 자신에게 되뇌고 있었다.

"나는... 잘 모르겠어... 정말로 잘 모르겠다구.... 흐... 흐흑... 흑..."

기어이 혼란의 끝에 또다시 눈물을 떨구고 마는 그녀였다. 하기야 그녀라고 해서 이런 순간에 눈물을 보이고 싶어서 보이는 것은 아닐 것이었다. 다만 무슨 말을 해야할지 스스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 뿐.

나는 흐느끼는 현주의 몸을 번쩍 안아들어, 불과 조금 전까지 내가 서연이와 정사를 나누었던 침대 위로 그녀를 내려놓았다. 내 의도를 느낀 것인지 현주가 퉁퉁 부은 눈을 치켜뜨며 목이 메인 목소리로 앙칼지게 소리쳤다.

"흐... 흐흑... 흑.... 뭐하는 짓거리야!"
"가만히 있어."
"뭐... 뭐?"

얼빠진 표정을 못본체 하며 나는 마치 동물처럼 현주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혀로 핥아서 닦았다. 찝찔한 맛이 혀끝으로 느껴지면서 현주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나를 밀쳐내려고 발버둥을 치는게 느껴졌다.

"싫어... 하지마! 뭐하는 거야...."
"서연이랑 하는 모습 봤잖아. 이제 너랑 하는 모습도 서연이한테 보여주고 싶어."

서연이와의 비정상적인 섹스가 나를 다시 난봉꾼으로 만들어놓았다고 해도, 사실 이 상황에서 현주에게 태연하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건 타임 리와인더의 존재 여부를 떠나서 여간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다만 이젠 복잡한 생각 없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식대로 밀어부치고 싶을 뿐이었다

"싫어! 난 그런 말도 안 되는 관계 인정 못 해.... 그런건 말도 안 된단 말이야...."
"말이 안 되는 대화는 몸으로 풀어야 하는 거야. 우리도 한번쯤은 솔직하게 몸으로 대화해보자."
"나, 난 그런거 못해...! 난 저 여자랑은 다르단 말이야...."

막무가내로 밀어부치려고만 하는 내 모습이 무모해보였는지 잠자코 지켜보던 서연이가 말없이 나와 현주 사이에 슬며시 끼어들었다. 마치 엄마가 어린 딸아이를 달래듯이 서연이는 현주의 얼굴을 매만지며 나지막히 말했다.

"뚝 그쳐요."
"훌쩍... 뭐, 뭐라구...?"
"울지도 말고, 화내지도 말고, 그냥 이 순간에만 집중해봐요. 난 섹스를 할 때 그런 기분으로 즐겨요. 당신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머, 멋대로 착각하지 마...!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이 남자가 당신의 희망이었으니까요."

그 상황과 입장에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서연이의 자상한 손길이 현주의 어깨를 감쌌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현주는 그 손을 차마 뿌리치지 못했다. 그만큼 그 말이 현주에게 의미하는 바가 컸기 때문이었을까....

"여기서 이렇게 또 한번 상처 받기만 하고 끝나버린다면 당신은 아마 평생 그 상처를 고치지 못할 거에요. 나도, 선배도, 그리고 당신 스스로도.... 여기 있는 모두가 그걸 원하지 않잖아요. 오늘 이 시간이 지나가고 나서 당신이 결국 이별을 선택한다해도 좋아요. 다만 지금만큼은 다른 것 전부 잊어버리고 상처를 치료해보자구요."
"치....료?"

여전히 얼굴에 눈물자국을 엉망으로 칠한 채로, 그리고 여전히 서연이를 미움 가득한 두 눈으로 올려다보면서도 마치 현주는 어린아이처럼 그 말을 홀린 듯이 따라 되뇌었다. 그런 현주에게 서연이는 고개를 끄덕여주며 조심스럽게 현주의 옷을 하나하나씩 벗겨내리기 시작했다.

"아, 아니... 잠깐만... 이, 이러지 마...."

그 순간의 현주의 모습은 마치 연약한 병아리가 사람의 손길을 피하려는 것만 같았다. 두렵지만 감히 그 손길에 저항하지는 못하는 약하디 약한 병아리처럼.... 현주는 몸을 떨면서도 서연이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했다.

"무섭다고 생각하니까 무서운 거에요. 아무 생각하지 말고 좋은 것만 떠올려요. 오로지 이 순간의 느낌에만 집중하는 거에요. 그러면 다른 것들은 금방 머리 속에서 지워질 거에요. 힘들면 눈을 감아도 괜찮아요...."

최면을 건다는게 이런 느낌일까? 별다른 장치도 의식도 없는, 그저 어린아이를 달래는 것 같은 나지막하고 자상한 속삭임 겨우 몇 마디에 현주가 오들거리면서도 바보처럼 눈을 꼭 감는게 보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나로서는 그게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마치 그 순간의 우리 세 사람은 어떤 논리나 합리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그것을 굳이 머리로 이해하려 들지 않고 서연이와 호흡을 맞추어 조심스럽게 서연이가 걷어낸 옷을 젖히고 현주의 몸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으흑..."

가슴을 슬며시 움켜쥐자 현주가 역시나 움찔거리며 긴장이 가득한 신음성을 토했다. 그 신음 하나만으로도 서연이는 나보다 더욱 현주의 상태를 잘 파악한 것 같았다. 그녀가 내 손을 슬며시 밀어내며 현주의 몸 위에 내 대신 올라탔다. 나는 그저 숨을 죽이고 현주의 위에 올라간 서연이의 알몸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긴장할 것 없어요."

서연이가 또한번 현주의 귀에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내 손을 대신해서 그녀의 가슴을 다시 살짝 움켜쥐었다. 현주가 놀라서 감았던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신기하게도 방금 전처럼 기겁한 신음을 지르지는 않았다. 남자이 손길이 아니기 때문일까?

"남자든 여자든 몸은 솔직한 법이에요. 하지만 여자의 몸에는 남자보다 훨씬 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죠. 어디를 어떻게 자극 받는게 좋은지를 알아내는 과정만이 중요할 뿐이에요. 그것만 알고나면 나머지는 신경 쓸 것 하나도 없어요."
"나... 난 몰라... 그런거...."
"걱정하지 말아요. 지금부터 내가 알아봐줄게요."

서연이는 마치 현주의 연인이라도 된 듯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은근한 손길로 현주의 온 몸 곳곳을 부드럽게 손 끝으로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 손길의 은근함이 얼마나 보는 사람의 애간장을 태우는지, 만약 내 몸으로 저 손길을 느끼고 있다면 손끝만으로도 사정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한 여자의 몸을 어루만지고 애무하는 서연이의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지만 서연이의 그런 모습에서는 남성적인 느낌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여인의 몸을 애무하는 모습에서도 여전히 서연이에게서는 서연이 특유의 여성적인 느낌이 물씬 배어나오고 있었다.

여인을 어루만지는 여인.... 그 순간의 서연이는 남자인 나를 대신하는 역할이 아니라, 오히려 순수하게 여성스러운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서 현주를 자극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보는 나를 자극시켰다. 소위 레즈비언이나 백합물에서만 볼 수 있는 그런 광경이 아닌가....

"아흐윽...!"

서연이의 보드라운 손끝이 현주의 옆구리 깊숙한 부분을 부드럽게 쓸고 내려가자 현주가 허벅지에 빳빳하게 힘을 주며 몸을 꼬았다. 하지만 서연이는 그 반응에 아랑곳 않고 다시 갈비뼈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위로 올라가 젖무덤을 움켜쥐고, 한 손으로 현주의 젖꼭지를 빙글빙글 돌리며 반대손으로는 마사지를 하듯이 상체의 곳곳을 터치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본인 스스로 전희와 애무를 극도로 즐기는 서연이였기에 여자의 몸을 어떻게 다루면 달아오르는지를 남자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받은 대로만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걸까? 그 생각이 과연 좋은 결과로 드러날지 아닐지는 두고 봐야 하는 문제겠지만 처음으로 접하는 서연이의 그런 모습에 나 또한 심장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여기가 좋아요?"
"으흑... 가, 간지러..."

옆구리의 어떤 특정한 포인트를 자극할 때마다 현주가 허리를 배배 꼬는 것을 서연이가 캐치해낸 것 같았다. 현주가 반응을 보이자 서연이는 집요하게 그 부분을 섬세한 손길로 터치하며 강약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빠르고 느리게, 그리고 강하게 약하게를 반복하며 마치 악기를 연주하듯이 옆구리를 중심으로 상체를 더듬는 서연이.

"아... 학...."

그것은 미세했지만, 분명 지금까지처럼 긴장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뻣뻣한 신음성은 아니었다. 듣고 있던 나조차 놀라서 눈을 크게 치떴다. 정말로 이런 발상이 효과를 보는 걸까....?

"좋으면 좋다고 표현을 해줘야 해요. 남자든 여자든 그래야 상대방에 대해 파악할 수 있어요."
"흑...."

여전히 흐느끼는 현주였지만 눈물을 흘리고 있지는 않았다.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이질적인 자극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심지어 나조차도 이런 서연이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이니....

누가 봐도 서연이는 남성의 애무를 모방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제아무리 전희에 능숙한 남성이라 해도 저런 식으로 애무를 하기는 힘들다. 남성에게 있어 섹스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의 성욕 충족, 상대방을 배려해서 전희에 신경을 쏟는다 해도 결국 그 목적은 본인의 욕구 충족이기 때문에 언제까지고 끝없이 여성을 위한 애무만을 계속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서연이의 애무는 그런 느낌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녀는 자신의 욕구 충족이 아닌 오로지 현주의 몸에 가해지는 자극과 반응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 언젠가 내가 서연이의 몸 전체를 헤집으며 성감대를 찾기 위해 열을 올렸던 순간에도 비슷한 상황이었겠지만, 그녀는 그 때의 나보다 한층 더 열심인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신중하고 섬세했다. 남자들이 으레 떠올리기 쉬운 여성의 성감대인 젖가슴이나 음부만이 아니라 온 몸 전체의 사소하고도 세밀한 부분 하나하나에서 현주의 성감대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듯 했다. 목덜미나 옆구리, 무릎과 같은 민감한 부분 뿐만이 아니라 그야말로 나신 전체를 능수능란하게 넘나들며 마치 한 여인의 몸을 탐험하듯이 현주의 몸을 더듬어나갔다. 어느새 현주의 옷은 모두 벗겨져 그녀 또한 나신이 되어있었다.

나는 내 침대 위에서, 나를 사랑하는 두 여인이 알몸으로 뒤섞이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하흑...!"

서연이가 현주의 젖꼭지를 살짝 배어물었을 때, 현주는 물론이고 나조차도 다시 한번 크게 놀라고 말았다. 손 뿐만이 아니라 입까지 써가면서 애무를 감행할 줄이야.... 하지만 서연이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쉴 새 없이 그 보드라운 입술과 혀를 이용해 현주의 유방과 옆구리, 겨드랑이를 샅샅이 핥고 빨아댔다.

"으, 으응...! 그, 그만... 간지러워...."

어쩔 줄 몰라하는 현주였지만 그 말의 음색에서는 아까와 같은 앙칼진 거부 반응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낯선 감촉에 대한 경계심만으로 당황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서연이는 지금 내가 보는 앞에서 마법이라도 쓰고 있는 걸까?

서연이의 애무는 그야말로 오랫동안, 정말로 오랫동안 이어졌다. 욕구를 풀겠다는 목적이 없기 때문인지 마음만 먹으면 언제까지고 그 기나긴 애무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그 끝없이 이어지는 길고 긴 애무를 하나도 빠짐없이 내 눈에 새겨넣고 있었다. 결코 조금도 지루하거나 하지 않았다.

"세상에...."

그렇게 아무 움직임도 없이 두 여인의 몸이 뒤섞이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서 있었을까. 다리가 아프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때쯤 나는 호기심에 현주의 가랑이 사이로 수풀 근처를 아주 조심스럽게 은근히 더듬어보았다. 믿을 수 없게도 여태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었던 끈끈한 액체가 그곳을 찔끔찔끔 덮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노력해도 볼 수 없었던 현주의 애액이었다.

"믿을 수 없어...."

현주에게는 내가 몰랐던, 그리고 그녀 스스로도 몰랐던 동성애의 기질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이것은 정말 순수하게 서연이의 손짓에 대한 육체의 솔직한 반응일 뿐일까? 어느 쪽이든 처음으로 접하는 현주의 달아오르는 모습 앞에 보는 나조차 시각 하나만으로 흥분되고 있었다.

"아흑... 이, 이상해...."

현주가 몸을 배배 꼬으며 여지껏 내게 보여준 적도 없는 반응을 보였다. 허벅지를 바들거리며 허리를 비트는 현주의 모습은 내가 평소에 보아왔던 모습보다도 훨씬 더 여성스럽게, 그리고 훨씬 더 요염하게 보였다.

"아악!"

그 순간 처음으로 현주가 뾰족한 비명을 질렀다. 내심 안도하며 보고 있었던 나는 다시 철렁하는 기분을 느끼며 현주의 안색을 살폈다. 그러나 서연이는 여전히 너무도 차분한 얼굴로 현주에게 묻는다.

"아파요?"
"으, 응.... 거, 거긴...."

마침내 서연이의 손이 아랫배를 넘어 수풀 안쪽의 동굴 입구 근처까지 다다른 모양이었다. 하초들 사이로 감추어져 있는 음순의 날개 사이로 모습을 감춘 서연이의 왼손이 보였다. 손가락을 밀어넣은 모양이었다.

"제대로 말해봐요. 정말 아픈 거에요?"
"그, 그렇다니까.... 거기는...."
"그럴 리가 없어요. 왜냐면 아직 넣지도 않았는걸요."
"뭐...?"

서연이가 태연하게 왼손을 들어 아직 들어가지도 않은 자신의 다섯 손가락을 현주 앞에 펼쳐보였다. 손가락을 넣은게 아니었던 것이다. 현주 자신도 깜짝 놀랐는지 표정에 얼이 빠져 서연이의 손을 마냥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아픈게 아니에요. 당신은 그저 이 곳을 건드리면 아플 거라고 생각하고 시작도 하기 전에 굳어있는 것 뿐이에요. 그러니까 섹스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죠."
"........"
"마음 편하게 먹고 천천히 받아들여봐요. 절대로 아프게 하지 않아요. 남자의 커다란 물건도 받아들이라고 있는 곳인데 내 손가락 하나 정도 들어간다고 아플 리가 없잖아요."
"으흣....!"

서연이가 현주를 어르고 달래며 중지 손가락을 세워 현주의 질 입구 부근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미세하지만, 아주 조금씩 천천히 애액이 배어나오고 있었던 현주의 그곳에 서연이의 손가락이 닿자 현주가 처음으로 이질적인 신음소리를 뱉었다. 비록 아주 희미하긴 했지만 그것은 분명 달뜬 숨결이 느껴지는 소리였다.

"나... 나 어떡하지... 어떡하면 좋지...."

현주는 마치 실성한 듯이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런 현주를 서연이는 하나하나 달래주겠다는 듯이 천천히 안심시킨다.

"힘들면 다시 눈을 감아요. 보고 있지만 않으면 생각보다 부끄럽지 않을 거에요. 그저 감각에만 집중해봐요."
"........"

어떤 의미로 그것은 정말 마법이자, 기적이었다. 그토록 서연이에게 증오 어린 눈길을 보냈었던 현주가, 마치 정말로 갓난 아이라도 된 듯이 서연이의 말에 따라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린다. 물론 현주는 내가 그녀와 섹스를 시도했을 때에도 그렇게 두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과 그 때의 모습 사이에는 분명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어때요? 좀 괜찮죠?"
"흐읏....!"

서연이가 다시 현주의 보지 입구를 간질이기 시작하자 현주 또한 다시금 그 미세하지만 달뜬 신음성을 뱉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들어보는 현주의 신음소리가, 내가 아닌 서연이에 의해서일거라곤 어찌 상상이나 했을까.

"이것 봐요. 몸은 솔직한 법이랬잖아요. 당신 그곳이 이렇게 젖어들고 있는 걸요."
"거,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에요. 이것 봐요."

서연이는 보란 듯이 자신의 중지 손가락에 묻은 현주의 애액을, 마치 꿀이라도 바르는 듯 현주의 보지 입구에 살며시 펴발랐다. 미끌한 자신의 씹물이 보지 입구를 물들이자 현주가 숨 넘어가는 소리를 삼키며 허리를 비틀었다.

"마... 말도 안 돼.... 흐윽!"
"그렇지 않아요. 이게 자연스러운 거에요."

어린아이에게 당연한 것을 가르쳐 주는 것처럼 타이르는 서연이. 그 모습은 엄마와 딸아이의 느낌도 아니었고, 언니와 동생의 느낌도 아니었다. 내가 아는 표현 중에서는 두 사람의 모습을 형용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분명 두 여인이 지금 서로 교감하고 있단 것이었다.

"하.. 하학...."

현주가 별안간 뜨거운 숨을 뭉텅이로 뱉었다. 서연이가 이번에야말로 손가락을 길게 세워 현주의 몸 안쪽으로 밀어넣은 것이었다. 신중한 서연이의 표정을 보아 그녀로서도 여기까지 오는 데에 수도 없이 망설임과 과감함 사이에서 고민한 것 같았다.

"생각보다 아프지 않죠?"
"으, 응...."

이제 현주는 정말로 순진하고 착해빠진 어린 꼬마라도 된 것처럼, 묻는 말에 고분고분하게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러자 서연이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곧게 편 손가락을 앞뒤로 빼냈다 다시 밀어넣으면서 순식간에 피스톤 운동으로 넘어갔다. 한번 넣었을 때에 보지가 완전히 손가락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파고 들어가는게 좋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생각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하아아...!"

중지 손가락이 끝까지 몸 속에 틀어박히자 현주가 경악하면서도 오묘한 숨결이 섞인 탄성을 질렀다. 그러나 서연이는 이제 현주를 가만히 쉬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빠른 속도로 손가락에 의한 피스톤 운동을 가하며 현주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아... 아흣! 하.. 하악! 아악! 하으윽!"

다발적이고 소란스러운 신음소리였다. 서연이의 손가락이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거기에 맞춰서 꼬박꼬박 신음을 터뜨리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실로 오랜 세월만에, 비로소 그 금기의 구멍 속으로 가해지는 이질적인 자극 앞에 현주의 온 세포 하나하나가 모두 반응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아... 아흑! 이.. 이상해...! 내 몸이 이상해...! 나, 난 레즈도 아닌데... 왜.... 왜 이런.... 하아악....!"

스스로도 그런 반응을 납득할 수 없는 듯 여전히 계속해서 웅얼거리는 현주였지만 서연이는 그녀에게 틈을 주지 않고 애무를 강행해나갔다. 정신없이 넋을 잃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던 나였지만 다음 순간 서연이가 보인 행동은 그런 나를 더욱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꺄악!"

서연이가 현주의 보지에 얼굴을 들이밀고는 그녀의 음부를 혀로 핥기 시작한 것이었다. 난데없이 서연이가 입으로 자신의 성기를 애무하기 시작하자 현주가 울상이 되어 그녀의 머리를 향해 두 팔을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연이는 아랑곳 않고 현주의 음부 전체를 혓바닥으로 쓸어올리면서 한편으로는 깊숙히 꽁꽁 감추어진 현주의 공알을 빨아세우려고 혀를 가끔씩 퉁겨올리곤 했다.

"저건...."

가만히 보고 있던 나는 그 혀의 놀림이 내게는 무척이나 익숙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서연이가 하고 있는 그 애무의 방식은, 그동안 내가 서연이에게 했던 구강 애무의 형태를 그대로 닮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연이는 내가 그녀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현주를 애무하고 있었다.

"아흑... 흑... 안 돼... 기분이 이상해... 내, 내 몸이...."

서연이가 현주의 보지를 빨면서 방 안에는 순식간에 쩝쩝거리는 적나라한 타액소리가 가득 울려퍼졌다. 남녀가 서로의 성기를 빨 때만 나는 소리라고 생각했던 그 음란하고 노골적인 소리가, 이런 광경과 더불어 울려퍼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 이질적인 괴리감 앞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흑... 하... 흐윽! 하아아아...!! 아아앙... 아아아아... 하아아아앙!!"

점점 더 높아져가던 현주의 신음소리가 절정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 때쯤, 나는 그녀의 안쪽에서 터져나온 애액의 뭉텅이가 서연이의 입안을 적시는 모습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


방 안에는 다시금 고요한 적막이 찾아왔다. 방금 전에 내가 목격한 비현실적인 두 여인의 행위는 잠시나마 이 세상의 모든 시간을 멈춰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침대 위에서 숨을 헐떡이는 현주의 가파른 호흡소리만이 그 정적을 깨주는 유일한 소리였고, 실제로 가장 먼저 침묵을 깨뜨린 사람도 그녀였다.

"미, 믿을 수 없어.... 나... 나 레즈였던 거야....?"

울상을 지으며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는 현주의 모습이 왠지 불쌍하다기보단 귀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감상이었지만 서연이가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니 그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았다.

"글쎄요. 그런게 중요한건 아니잖아요."
"나, 나한테 왜 그런걸....?"

과거의 그 끔찍했던 경험 이후 자신에게서 처음으로 성적 경험을 이끌어낸 상대가 남자도 아닌 여자라는 것이, 현주에게 있어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인 것 같았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그녀가 방금 서연이의 손에 의해 한차례 절정에 오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여지껏 나는 물론이고, 그 어느 남자도 불가능했던 일을 서연이가 해낸 것이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상처.... 나는 그게 남자에 대한 트라우마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그런 일을 당한다면 어떤 기분이었을지 생각해 봤죠. 당신은 섹스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아마도 남자라는 동물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생겨버린 걸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
"그럼에도 당신이 성진 선배나 다른 남자들을 만나면서 살아왔던건 당신 스스로도 남자에 대한 거부감을 지니고 있다는걸 내심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걸 벗어나려고 노력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니 당신이 느끼지 못하는 성에 대한 감각을 내가 찾아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여자인 내게는 별 거부감이 없을 테니까요...."

자신을 한차례 절정으로 올려버린, 남자도 아닌 여자를 차마 두 눈으로 마주볼 용기가 나지 않는지 이제 현주는 제대로 서연이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서연이도 담담하게 설명을 하고 있었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조금은 현주와의 대화를 쑥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서연이는 어디까지나 서연이, 그녀는 역시나 남자를 좋아하는 주서연이지 알맹이 자체가 레즈비언이 아니기 때문에 그 흉내를 잠깐 내본 것이 못내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대범한 척 하기는 했어도 역시 그녀도 내심으론 힘들었다는 뜻일 터였다. 나도 현주도 서연이의 그러한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뭔가 말로 표현 못할 기분이 솟는 것을 느꼈다. 특히 현주는 이제 정말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는 기색이었다.

"그리고 지금이라면 아마도 성진 선배와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애써 쑥스럽게 고개를 돌리며 그렇게 말을 매듭 짓는 서연이였다. 역시나 마지막을 내게 넘겨주려는 것 같았다.

나는 현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현주 역시 서연이를 마주볼 용기가 나지 않았기에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허공에서 우리의 시선이 마주쳤다. 과연 서연이의 말마따나 지금이라면 내가 현주와 관계를 맺는 것이 가능할까....?

"네가 정 싫다면 억지로 하자는 말은 않을 거야.... 하지만 네가 결국 나를 떠나더라도 내가 너를 낫게 해줄 수 있다면 그것만은 해주고 싶어."

현주가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내 시선을 피하더니, 마침내 고개를 다시 내 쪽으로 돌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았어... 해볼게."
"괜찮아?"

생각보다 현주가 순순히 응해서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여기서 끝내면 정말로 평생 못할 테니까.... 오빠 말대로 딱 한번만 해보자."


*


어쩌면 정말로 현주에게는 레즈비언의 기질이 내재되어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 과거의 악몽이 남긴 잔재가 결국 그녀를 그렇게 만들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그녀에게 선천적으로 그런 기질이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현주의 몸 속에 내 성기를 밀어넣기 시작한 그 순간 나는 모순적으로 그러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서연이가 현주의 몸에 남겨놓은 감각의 흔적은 생각보다 더 대단한 것이었다. 축축하게 젖어있는 미끌한 질벽이 그 어떤 짓을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나의 물건을 비로소 그녀의 몸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끔 만들어 준 것이다.

"들어갔다...!"

마침내, 비로소.... 나의 기둥이 현주의 몸 안을 가르고 그녀의 안쪽에 단단히 틀어박혔다. 나에게 있어서도 역사적인 순간이었고, 게다가 현주에게 있어서는 거의 십여년의 세월만에 처음으로 남성의 물건을 자신의 몸 안에 받아들이는 순간이기도 했다.

충분히 감상에 젖을 만한 순간이었지만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겐 여유가 없었다. 나는 행여나 현주가 다시금 거부감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최대한 부드럽게, 그러면서도 최대한 속도를 내어 곧바로 삽입을 피스톤질로 바꾸어갔다. 서서히 뒤로 빼냈다, 다시 부드럽게 안쪽으로 쑥 밀어넣는다.

"하아악....!"

그러자 현주가 깜짝 놀랄 만큼 큰 신음을 지르며 고개를 뒤로 꺾었다. 생각보다 너무도 자극적인 그 반응 앞에 나도 일순 놀랐지만, 그 덕분에 더욱 자신감이 생겨 과감하게 피스톤의 강도를 높였다.

"아악... 하악! 아아아... 하아아아아...! 아아아앙!"

허리를 튕겨올려가며 정상위로 몰입하기 시작한다. 체위를 바꿀 생각은 없었다. 숫처녀의 처녀막을 뚫듯이 나또한 덩달아 조심스럽게 좆대를 놀리고 있었다. 실제로 현주는 거의 숫처녀나 다름이 없으니....

아마도 그녀의 인생에 있어 남성과의 제대로 된 섹스는 이것이 처음일 것이다. 자세를 바꾸어 그녀에게 괜한 부담을 실어줄 필요는 없었다. 지금은 그저 "섹스는 즐거운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 자세 그대로 절정까지 치달아 그녀에게 2차 오르가즘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하아아아... 아아아앙... 하아아아앙!!! 아으아아아학!!!!"

우직하게 정상위로 묵묵히 집중한 것이 좋은 판단이었는지 피스톤의 속력이 높아질 수록 그녀의 신음소리도 점점 올라갔다. 여자는 1차로 절정에 오를 때보다 2차 오르가즘에서 더 격한 쾌감을 느끼는 법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최대한 현주의 예민한 부분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방금 전에 서연이가 내놓은 길을 따라 현주의 구멍 속을 들락거리며 그녀를 서서히 절정으로 태워갔다.

"사랑해.... 사랑해, 현주야."

허리를 쉴 새 없이 들썩거리며 나는 현주의 귓가에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푸욱푸욱 소리를 내며 자신의 몸 속에 박히는 나의 좆을 받아들이며, 현주도 정신없이 그 말에 대꾸했다.

"으... 응... 나, 나도 사랑해...."

비록 그 말이 섹스에 의한 열락에서 튀어나온 충동적인 말이라 해도 상관 없었다. 앞으로 그것을 더욱더 굳건하게 사실로 만들어나가면 되는 거니까.... 허리를 힘차게 놀려가며 좆질을 꾸준히 반복하다보니 현주의 두 다리가 어느 순간부터 내 엉덩이를 힘껏 감싸고 있었다.

"하흑... 아흐윽! 하아아아...!! 아아아앙.... 하아아아아악!!!!!"

뾰족한 신음소리와 함께 현주가 허리를 비틀며 또 한차례 절정에 오른다. 그 모습을 뇌리에 선명하게 새기며, 서연이가 보고 있다는 것도 잊은채 나 또한 황홀경에 오르며 절정을 맞이했다.

짧았지만 너무도 강렬한 기억.... 그렇게 나는 현주와 처음으로 몸의 대화를 나누었다. 만약 각각의 섹스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이 날의 섹스는 나에게, 현주에게, 그리고 서연이에게도 정말로 큰 의미를 남겼던 섹스였다. 이 날의 계기로 인해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쉬이 말할 수 없는, 우리만의 비밀스런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 다음 화에 계속 -


욕심을 부리자면 저도 사실은 이름 옆에 훈장을 달고 싶습니다 ^^...
열심히 쓰다보면 저도 우수작가의 영예를 안게 되는 날이 있을까요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시고 응원해주시니 그런 욕심까지 부리게 되는가 봅니다
독자분들게 감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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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2016-08-11
접속일 202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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