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햇살 만큼이나 인공태양빛이 창살을 비집고 들어왔다.
밤새도록 살을 탐하며 잠한숨 이루지 못했는데 시간은 영낙없이 또 다른 하루를 위해 머리 맡에 살포시 앉아 헐덕이는 하루가 시작되었다고 말없이 그러나 나무라듯 나를 내려다 본다.
중국 정벌에 앞서 지하국의 제2인자로서의 내 역할이 충분하였는가에 대한 반성과 함께 흐트러진 전열을 가다듬기 위한 민생시찰이 어쩔 수 없이 환락과 영욕에 물든 로열층의 세계속에 묻어나며 변함없는 시간의 축을 따라 이동하고 말았구나 싶은 자학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옆자리에 이제 막 잠이든 진실의 몸을 쳐다볼 때, 여행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작은 희망을 남겨준다. 남자와 여자를 유별하다 일컬었던 많은 시간 속에 길들여졌던 날이 극복되고 오히려 여자가 남자를 지배하는 시대를 오랫동안 경험하였지만 진정으로 남자와 여자의 구분은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하국의 많은 여자들은 여성우위의 지위를 오래전부터 획득한 반면 여성상위의 징표는 그저 강한 다산능력의 표상일 뿐 미래를 짊어지고 가는 부류는 역시 여성에게 지위를 빼앗겼다 하더라도 소수 남성의 미래지향적인 발상이 지하국의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남자가 스스로의 힘을 과시하지 않고 여성을 존중해 주는 가운데 형성된 것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혁명적 여성들은 남성의 지순한 삶을 윽박지르며 이제야 비로소 여성이 힘을 과시하게 된 때라 선언한 이후를 기점으로 여성상위가 당연히 받아들여진 것이다. 하지만 더 많은 남성들은 여성들의 논리가 너무 터무니 없는 까닭은 물론 그러한 주장을 반박한다하더라도 큰 실익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여성상위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받아들이는 관용을 베푼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제 진실은 허울좋은 여성상위를 통해 성을 찬미하고 여성의 회음을 놀이기구로 활용하며 맹위를 떨치던 젊은날의 시간들조차 아까워하며 진실로 남성우월주의로 치닫고 있던 우주와 시간에 대한 절대 영역을 향해 한걸음 다가선 것이다.
여성상위를 존중해주는 지하국에서 조차 여성의 역할은 단지 아이를 많이 낳는다는 것 이외에 별다른 조짐이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 더했으나 이처럼 자연과 우주,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적 접근을 시도하는 신세대 여성들이 점차 증가하게 된다면 지구지배는 물론 우주공간에 대한 폭넓은 지배영역 확대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미치자 곤한 잠에 빠진 진실이 더욱 예뻐 보였다.
청소로봇이 방문을 노크하고 들어선다.
어지러진 이부자리를 개체생성기를 통해 분자로 분해하여 작은 상자에 보관 시킨다.
밤새도록 삐걱이며 힘들어하던 침대도 어느새 개체생성기가 자동분해하니 방안에는 잠자리의 흔적이 어느새 사라지고 정돈된 공간만 덩그런이 남아있다.
주방로봇이 방문을 열고 들어서며 식탁을 생성하고 그 위에 푸짐한 먹거리들을 만들어 놓는다. 어제 고 주지사가 자연산이라고 자랑하던 음식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 맛이겠지만 마라주에서만 가능한 자연산 음식을 맛보고 싶은 생각에 식탁을 치우라 명령한다.
상이 차려지자 마자 치우라는 명령을 받은 주방로봇은 혼비백산하여 어쩔 줄 몰라 당황한 표정을 짖는다. 아마도 주방로봇에 프로그래밍된 것이 너무 정직하여 상을 차리면 먹는다는 단순한 프로세스를 기억하기 때문에 이벤트성 명령이 발생한 것에 대한 대책이 마땅히 준비되지 않은 탓이려니 싶어 얼른 상위에 차려진 음식중 가벼운 스파케티 한 젓가락을 먹었다.
주방로봇은 그제서야 비로소 상위의 음식을 개체생성기를 통해 분해하며 상을 말끔하게 치운다. 사람을 말귀를 잘 못알아듣는 구형 로봇이 아직도 주정부의 핵심 부처에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식탁이 분해 청소되는 과정 속에 고 주지사가 들어왔다.
"각하, 식사 시간에 맞춰 오려고 서둘렀는데 벌써 끝내셨습니까?"
"아닐세. 고 주지사가 어제 맛보인 자연산이 자꾸 생각나서 입이 꺼끌거려서 상을 물렸네."
"각하, 자연산은 맛은 덜하지만 감칠맛은 그만입니다. 다시 상을 차리도록 하죠."
주지사가 딱딱 손벽을 치자 방으로 인기척이 들어오며 몇마디 지시를 받고 곧 바로 나간다.
"각하, 저희 딸년은 맘에 드셨는지요."
"음, 대단한 여식일세. 난 이 아이를 어디든지 데리고 다니고 싶네만, 자네 생각은 어떤가?"
"영광이죠. 저희 주는 과학발달이 더딘 반면 이 아이의 타고난 자질을 키울 방도가 없던 차에 이렇게 각하께서 거둬주신다면 여한이 있겠습니까?"
"자네 설마 장인 노릇 하려고는 않겠지?"
"각하, 어찌보면 장인 노릇이 더 힘듭니다.
그냥 딸 가진 부모로써 평생 의지하고 살며 자기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보다 더큰 욕심을 어찌 부리겠습니까?"
"자네 생각이 그리 겸손하니 내 어찌 천륜을 저버릴까.
내 수많은 여자들을 거닐어 봤지만 이 아이처럼 딱 뿌러지게 의지가 굳어 몸을 허락하는 경우는 없었네.
아마도 이 아이는 내가 거두지 않는다면 평생 살아도 뜻을 펼쳐 볼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절망하며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
이런 귀한 아이를 내게 선뜻 내준 주지사 양반을 개인적으로는 장인으로 알겠네.
하지만 공식적으로 이 사실을 유포하면 자네가 민망해질걸세."
"각하, 딸 아이의 의지를 받아 주신 것으로 족합니다.
결코 각하의 장인 행세는 할 생각이 추호도 없으니 걱정 놓으십시오."
"진실아, 너도 나를 따라 세월 속을 유람하며 살아도 결코 후회 없겠느냐?"
"어르신, 저 또한 품은 맘이 깊어 기다렸던 일인데 어찌 후회하리오.
그저 어르신 발길 따라 어디로든 따라 나설 참이니 거두어 주십시오."
자연산 음식이 푸짐하게 차려진 상을 비우자마자 미련을 떨쳐 버리듯 진실을 순간이동장치에 태워 대마주로 방향을 잡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널푸른 물결은 마라주의 자랑거리지만 이 물결이 시작되는 곳은 멀리 백두산 천지로부터 흘러 오천리 민족성지를 적시며 내려온 시발점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백두 천지의 물은 북으로 넘쳐 흐르고 동으로 넘쳐 흐르며 남으로 넘쳐 흐를 때 다시 동서로 나뉘어 서쪽은 마라주에 이르고 동쪽은 대마주에 이르기 까지 지천의 총 길이는 수억만리를 족히 넘으나 마라주는 큰 바다를 이루고 대마주는 건천이 되어 흔적만 남아있어 옛부터 대마주는 우리 지하국의 영토로 관리할 것인가 아니면 볼모지로 버릴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끝이지 않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대마주는 지상 유니털로 치면 옛적 울릉도 지나 독도 지나 멀리 백제인과 신라인이 함께 경영하던 대마도의 지하 영역에 해당된다. 옛부터 대마주에 사는 지하국 백성들은 종자가 작고 노는 것이 삐딱하여 정통 지하국민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으나, 마라주 백성들이 말하기를 그들도 역시 한 조상으로 태어났으며 비록 남들과 어울리기는 싫어하나 더러는 마라주에 원정이 잦아 남같지 않으니 차별없이 대해야 한다는 민원이 극에 달하여 비록 거칠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로 여겨 이방인 취급하던 관습을 법으로 제거하고 어느새 단란한 한민족으로서 살아온지 벌써 천년이 넘었다.
"진실아, 이 곳은 여자에겐 음험하고 염치가 없는 땅이란다." 대마주의 상공을 지나며 진실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죠? 같은 지하국 백성 아닌가요?"
"맞아, 요즘 처럼 교통이 발달하여 중앙과 대마주까지 불과 10분이내에 도달할 수 있기 전까지는 이곳은 중앙 통제가 어려운 오지였단다.
통제없이 마구 살던 이곳 사람들은 자신들이 소외된 계층이라는 것에 대한 반발로 지학국의 통제를 오히려 더 받지 않으려고 한때는 독립을 선언한 적도 있었단다."
"아, 지하국으로부터 독립을요?"
"그래, 독립선언이었지."
"왜죠?"
"소외, 그것은 정말 무서운 질병에 속한단다."
"어차피 간섭받지 않고 살았을 텐데 이 독립선언을 왜 했죠?"
"저항, 바로 그것이란다. 같은 조상으로부터 태어나 사는 지역만 조금 다를 뿐인데도 소외된 자신들의 입지를 생각하면 화가 날만도 했었지."
"아, 소외될 바에는 독립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군요?"
"그래, 요즘이야 서로 이동하는데 불과 몇분이면 족하지만 예전에는 이 곳까지 통치하기 위해서는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한다 해도 세달은 걸려야 도착했단다. 그러니 중앙에서 누가 이 곳으로 파견나오고 싶었겠느냐."
"이곳의 풍습은 저희 주와 나란히 있어서 제가 잘 압니다."
"오, 그럼 너희 들은 서로 통교하며 잘 지내고 있느냐?"
"아닙니다. 성격이 워낙 달라 공식적인 통교 이외에는 서로 마주칠 일은 없었습니다."
"요즘처럼 지구 전체를 하나로 통합할 수 있을 정도의 교통이 발달한 지금도 그렇느냐?"
"오랜 관습 때문이지요."
"그래, 네가 파악한 대마주의 풍습은 어떤 것이 있느냐?"
"저도 주지사의 딸인 만큼 정치적인 고려를 안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마주의 경우에는 나쁜 전통이 있다하여 만나기를 꺼리는 편입니다."
"어떤 나쁜 풍습이 또 있더냐?"
"그들은 금지된상간을 잘 한다 합니다."
"악습은 사라진지 오래됐단다."
"은밀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는 공공연한 비밀인걸요."
"그래? 어떤 비밀이 있더냐?"
"말로 못합니다. 끔찍해요."
"허~, 중국을 이기는 방법으로 다산 정책을 펼친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다산 정책을 국가 시책으로 삼고는 있지만, 이곳 대마주에 그 뜻이 전달될 때 오류가 생겼다고 한다. 어떤 방법으로든 다산정책을 펼치라하였는데 부득이 이곳 사람들에게 남정네가 모자라고 여자수가 더 많은 현상이 있었단다. 보통 남자가 여자보다 많을 때 성적 균형이 맞지 않아 여러 가지 범죄가 발생하는 일반적인 현상과 달리 이곳처럼 여자가 많고 남자가 모자라는 상태가 발생한 후 다산정책을 펼치라 하니 가임여성에 비해 남성이 절대 부족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다산 정책을 펼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근친상간이 묵인된 적이 있었던 탓이란다."
"아, 국가시책을 너무 고지식하게 받아 들인 결과였군요?"
"그렇단다. 비록 이들이 남의 눈에는 비정상적으로 보일만도 하다만은 절대권력자로부터 하명받은 일을 완수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그 방법이 한때 있었던 것이란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 그런 전통이 회자되는지요?"
"그건 일부 몰지각한 자들이 있어, 그때의 맛을 잊지 않는 까닭이니라."
"그때의 맛이라니요?"
"원래 참맛이란 금지된 것을 남몰래 할 때 더 극대화 되는 것이란다."
"그래요? 금지된 것에서 더 맛이 느껴지나요?"
"법으로 금지된 영역을 정해 놓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영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억누르고 있지만 일부 사람들은 법이 정한 금역을 넘나들며 쾌락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란다."
"어르신, 정말 금지된 영역이 더 맛있는건가요?"
"모른다. 아마도 사람이 갖는 기본적인 욕망의 범위를 넘어선 쾌락을 추구하는 극단적인 사람들에게만 경험되는 현상인지라 감히 너에게 그 맛이 어떠하다고 말할 수는 없구나."
"어르신도 경험이 있나보죠?"
"아니란다. 나는 그것으로부터 쾌락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다만 다른 일에 몰두할수 없는 지극히 제한된 사고력을 가진 사람이 취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일 뿐이란다."
"금역을 침범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결국 좌절의 끝이라는 말씀이군요?"
"그렇단다. 쾌락을 찾다 찾다 더 이상의 쾌락으로 치달아 오르면 결국 금역을 침범하고 싶은 호기심이 굳게 닫힌 장벽을 허물어 버리겠지. 하지만 그 끝은 쾌락이 아니라 파멸이란다."
"왜 이곳 사람들은 금역을 넘나들며 남의 입에 회자되는 수모를 견딜까요?"
"그렇지 않다. 아주 일부의 사람들은 극한 호기심으로 그 영역을 넘었겠지만 그 것은 인간이 정한 금기가 단순히 감추려는 현상이라고 착각한 단순한 처사일 뿐이다. 오래전부터 인간이 금기한 것과 그 금기를 넘나드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경험을 떠나서 인간이 금기로 삼은 것들은 과학 이전의 진리에 속하는 영역이 많았기 때문에 뒤늦게 과학적으로 그 금기의 원인을 밝혀보았지만 먼 옛날 사람들이 생각한 금기의 영역이 진정으로 선각자적인 지적이었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는 학자들이 많단다."
"어르신께서는 이곳에서도 다른 여자를 취할 건가요?"
"답하기 곤란한 질문 이구나."
순간이동장치는 진실과 대마주의 풍습에 관한 얘기를 주고 받는 짧은 시간 속에 어느덧 주지사 관저 상공에 도달해 있었다.
밤새도록 살을 탐하며 잠한숨 이루지 못했는데 시간은 영낙없이 또 다른 하루를 위해 머리 맡에 살포시 앉아 헐덕이는 하루가 시작되었다고 말없이 그러나 나무라듯 나를 내려다 본다.
중국 정벌에 앞서 지하국의 제2인자로서의 내 역할이 충분하였는가에 대한 반성과 함께 흐트러진 전열을 가다듬기 위한 민생시찰이 어쩔 수 없이 환락과 영욕에 물든 로열층의 세계속에 묻어나며 변함없는 시간의 축을 따라 이동하고 말았구나 싶은 자학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옆자리에 이제 막 잠이든 진실의 몸을 쳐다볼 때, 여행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작은 희망을 남겨준다. 남자와 여자를 유별하다 일컬었던 많은 시간 속에 길들여졌던 날이 극복되고 오히려 여자가 남자를 지배하는 시대를 오랫동안 경험하였지만 진정으로 남자와 여자의 구분은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하국의 많은 여자들은 여성우위의 지위를 오래전부터 획득한 반면 여성상위의 징표는 그저 강한 다산능력의 표상일 뿐 미래를 짊어지고 가는 부류는 역시 여성에게 지위를 빼앗겼다 하더라도 소수 남성의 미래지향적인 발상이 지하국의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남자가 스스로의 힘을 과시하지 않고 여성을 존중해 주는 가운데 형성된 것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혁명적 여성들은 남성의 지순한 삶을 윽박지르며 이제야 비로소 여성이 힘을 과시하게 된 때라 선언한 이후를 기점으로 여성상위가 당연히 받아들여진 것이다. 하지만 더 많은 남성들은 여성들의 논리가 너무 터무니 없는 까닭은 물론 그러한 주장을 반박한다하더라도 큰 실익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여성상위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받아들이는 관용을 베푼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제 진실은 허울좋은 여성상위를 통해 성을 찬미하고 여성의 회음을 놀이기구로 활용하며 맹위를 떨치던 젊은날의 시간들조차 아까워하며 진실로 남성우월주의로 치닫고 있던 우주와 시간에 대한 절대 영역을 향해 한걸음 다가선 것이다.
여성상위를 존중해주는 지하국에서 조차 여성의 역할은 단지 아이를 많이 낳는다는 것 이외에 별다른 조짐이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 더했으나 이처럼 자연과 우주,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적 접근을 시도하는 신세대 여성들이 점차 증가하게 된다면 지구지배는 물론 우주공간에 대한 폭넓은 지배영역 확대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미치자 곤한 잠에 빠진 진실이 더욱 예뻐 보였다.
청소로봇이 방문을 노크하고 들어선다.
어지러진 이부자리를 개체생성기를 통해 분자로 분해하여 작은 상자에 보관 시킨다.
밤새도록 삐걱이며 힘들어하던 침대도 어느새 개체생성기가 자동분해하니 방안에는 잠자리의 흔적이 어느새 사라지고 정돈된 공간만 덩그런이 남아있다.
주방로봇이 방문을 열고 들어서며 식탁을 생성하고 그 위에 푸짐한 먹거리들을 만들어 놓는다. 어제 고 주지사가 자연산이라고 자랑하던 음식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 맛이겠지만 마라주에서만 가능한 자연산 음식을 맛보고 싶은 생각에 식탁을 치우라 명령한다.
상이 차려지자 마자 치우라는 명령을 받은 주방로봇은 혼비백산하여 어쩔 줄 몰라 당황한 표정을 짖는다. 아마도 주방로봇에 프로그래밍된 것이 너무 정직하여 상을 차리면 먹는다는 단순한 프로세스를 기억하기 때문에 이벤트성 명령이 발생한 것에 대한 대책이 마땅히 준비되지 않은 탓이려니 싶어 얼른 상위에 차려진 음식중 가벼운 스파케티 한 젓가락을 먹었다.
주방로봇은 그제서야 비로소 상위의 음식을 개체생성기를 통해 분해하며 상을 말끔하게 치운다. 사람을 말귀를 잘 못알아듣는 구형 로봇이 아직도 주정부의 핵심 부처에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식탁이 분해 청소되는 과정 속에 고 주지사가 들어왔다.
"각하, 식사 시간에 맞춰 오려고 서둘렀는데 벌써 끝내셨습니까?"
"아닐세. 고 주지사가 어제 맛보인 자연산이 자꾸 생각나서 입이 꺼끌거려서 상을 물렸네."
"각하, 자연산은 맛은 덜하지만 감칠맛은 그만입니다. 다시 상을 차리도록 하죠."
주지사가 딱딱 손벽을 치자 방으로 인기척이 들어오며 몇마디 지시를 받고 곧 바로 나간다.
"각하, 저희 딸년은 맘에 드셨는지요."
"음, 대단한 여식일세. 난 이 아이를 어디든지 데리고 다니고 싶네만, 자네 생각은 어떤가?"
"영광이죠. 저희 주는 과학발달이 더딘 반면 이 아이의 타고난 자질을 키울 방도가 없던 차에 이렇게 각하께서 거둬주신다면 여한이 있겠습니까?"
"자네 설마 장인 노릇 하려고는 않겠지?"
"각하, 어찌보면 장인 노릇이 더 힘듭니다.
그냥 딸 가진 부모로써 평생 의지하고 살며 자기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보다 더큰 욕심을 어찌 부리겠습니까?"
"자네 생각이 그리 겸손하니 내 어찌 천륜을 저버릴까.
내 수많은 여자들을 거닐어 봤지만 이 아이처럼 딱 뿌러지게 의지가 굳어 몸을 허락하는 경우는 없었네.
아마도 이 아이는 내가 거두지 않는다면 평생 살아도 뜻을 펼쳐 볼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절망하며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
이런 귀한 아이를 내게 선뜻 내준 주지사 양반을 개인적으로는 장인으로 알겠네.
하지만 공식적으로 이 사실을 유포하면 자네가 민망해질걸세."
"각하, 딸 아이의 의지를 받아 주신 것으로 족합니다.
결코 각하의 장인 행세는 할 생각이 추호도 없으니 걱정 놓으십시오."
"진실아, 너도 나를 따라 세월 속을 유람하며 살아도 결코 후회 없겠느냐?"
"어르신, 저 또한 품은 맘이 깊어 기다렸던 일인데 어찌 후회하리오.
그저 어르신 발길 따라 어디로든 따라 나설 참이니 거두어 주십시오."
자연산 음식이 푸짐하게 차려진 상을 비우자마자 미련을 떨쳐 버리듯 진실을 순간이동장치에 태워 대마주로 방향을 잡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널푸른 물결은 마라주의 자랑거리지만 이 물결이 시작되는 곳은 멀리 백두산 천지로부터 흘러 오천리 민족성지를 적시며 내려온 시발점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백두 천지의 물은 북으로 넘쳐 흐르고 동으로 넘쳐 흐르며 남으로 넘쳐 흐를 때 다시 동서로 나뉘어 서쪽은 마라주에 이르고 동쪽은 대마주에 이르기 까지 지천의 총 길이는 수억만리를 족히 넘으나 마라주는 큰 바다를 이루고 대마주는 건천이 되어 흔적만 남아있어 옛부터 대마주는 우리 지하국의 영토로 관리할 것인가 아니면 볼모지로 버릴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끝이지 않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대마주는 지상 유니털로 치면 옛적 울릉도 지나 독도 지나 멀리 백제인과 신라인이 함께 경영하던 대마도의 지하 영역에 해당된다. 옛부터 대마주에 사는 지하국 백성들은 종자가 작고 노는 것이 삐딱하여 정통 지하국민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으나, 마라주 백성들이 말하기를 그들도 역시 한 조상으로 태어났으며 비록 남들과 어울리기는 싫어하나 더러는 마라주에 원정이 잦아 남같지 않으니 차별없이 대해야 한다는 민원이 극에 달하여 비록 거칠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로 여겨 이방인 취급하던 관습을 법으로 제거하고 어느새 단란한 한민족으로서 살아온지 벌써 천년이 넘었다.
"진실아, 이 곳은 여자에겐 음험하고 염치가 없는 땅이란다." 대마주의 상공을 지나며 진실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죠? 같은 지하국 백성 아닌가요?"
"맞아, 요즘 처럼 교통이 발달하여 중앙과 대마주까지 불과 10분이내에 도달할 수 있기 전까지는 이곳은 중앙 통제가 어려운 오지였단다.
통제없이 마구 살던 이곳 사람들은 자신들이 소외된 계층이라는 것에 대한 반발로 지학국의 통제를 오히려 더 받지 않으려고 한때는 독립을 선언한 적도 있었단다."
"아, 지하국으로부터 독립을요?"
"그래, 독립선언이었지."
"왜죠?"
"소외, 그것은 정말 무서운 질병에 속한단다."
"어차피 간섭받지 않고 살았을 텐데 이 독립선언을 왜 했죠?"
"저항, 바로 그것이란다. 같은 조상으로부터 태어나 사는 지역만 조금 다를 뿐인데도 소외된 자신들의 입지를 생각하면 화가 날만도 했었지."
"아, 소외될 바에는 독립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군요?"
"그래, 요즘이야 서로 이동하는데 불과 몇분이면 족하지만 예전에는 이 곳까지 통치하기 위해서는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한다 해도 세달은 걸려야 도착했단다. 그러니 중앙에서 누가 이 곳으로 파견나오고 싶었겠느냐."
"이곳의 풍습은 저희 주와 나란히 있어서 제가 잘 압니다."
"오, 그럼 너희 들은 서로 통교하며 잘 지내고 있느냐?"
"아닙니다. 성격이 워낙 달라 공식적인 통교 이외에는 서로 마주칠 일은 없었습니다."
"요즘처럼 지구 전체를 하나로 통합할 수 있을 정도의 교통이 발달한 지금도 그렇느냐?"
"오랜 관습 때문이지요."
"그래, 네가 파악한 대마주의 풍습은 어떤 것이 있느냐?"
"저도 주지사의 딸인 만큼 정치적인 고려를 안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마주의 경우에는 나쁜 전통이 있다하여 만나기를 꺼리는 편입니다."
"어떤 나쁜 풍습이 또 있더냐?"
"그들은 금지된상간을 잘 한다 합니다."
"악습은 사라진지 오래됐단다."
"은밀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는 공공연한 비밀인걸요."
"그래? 어떤 비밀이 있더냐?"
"말로 못합니다. 끔찍해요."
"허~, 중국을 이기는 방법으로 다산 정책을 펼친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다산 정책을 국가 시책으로 삼고는 있지만, 이곳 대마주에 그 뜻이 전달될 때 오류가 생겼다고 한다. 어떤 방법으로든 다산정책을 펼치라하였는데 부득이 이곳 사람들에게 남정네가 모자라고 여자수가 더 많은 현상이 있었단다. 보통 남자가 여자보다 많을 때 성적 균형이 맞지 않아 여러 가지 범죄가 발생하는 일반적인 현상과 달리 이곳처럼 여자가 많고 남자가 모자라는 상태가 발생한 후 다산정책을 펼치라 하니 가임여성에 비해 남성이 절대 부족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다산 정책을 펼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근친상간이 묵인된 적이 있었던 탓이란다."
"아, 국가시책을 너무 고지식하게 받아 들인 결과였군요?"
"그렇단다. 비록 이들이 남의 눈에는 비정상적으로 보일만도 하다만은 절대권력자로부터 하명받은 일을 완수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그 방법이 한때 있었던 것이란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 그런 전통이 회자되는지요?"
"그건 일부 몰지각한 자들이 있어, 그때의 맛을 잊지 않는 까닭이니라."
"그때의 맛이라니요?"
"원래 참맛이란 금지된 것을 남몰래 할 때 더 극대화 되는 것이란다."
"그래요? 금지된 것에서 더 맛이 느껴지나요?"
"법으로 금지된 영역을 정해 놓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영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억누르고 있지만 일부 사람들은 법이 정한 금역을 넘나들며 쾌락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란다."
"어르신, 정말 금지된 영역이 더 맛있는건가요?"
"모른다. 아마도 사람이 갖는 기본적인 욕망의 범위를 넘어선 쾌락을 추구하는 극단적인 사람들에게만 경험되는 현상인지라 감히 너에게 그 맛이 어떠하다고 말할 수는 없구나."
"어르신도 경험이 있나보죠?"
"아니란다. 나는 그것으로부터 쾌락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다만 다른 일에 몰두할수 없는 지극히 제한된 사고력을 가진 사람이 취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일 뿐이란다."
"금역을 침범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결국 좌절의 끝이라는 말씀이군요?"
"그렇단다. 쾌락을 찾다 찾다 더 이상의 쾌락으로 치달아 오르면 결국 금역을 침범하고 싶은 호기심이 굳게 닫힌 장벽을 허물어 버리겠지. 하지만 그 끝은 쾌락이 아니라 파멸이란다."
"왜 이곳 사람들은 금역을 넘나들며 남의 입에 회자되는 수모를 견딜까요?"
"그렇지 않다. 아주 일부의 사람들은 극한 호기심으로 그 영역을 넘었겠지만 그 것은 인간이 정한 금기가 단순히 감추려는 현상이라고 착각한 단순한 처사일 뿐이다. 오래전부터 인간이 금기한 것과 그 금기를 넘나드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경험을 떠나서 인간이 금기로 삼은 것들은 과학 이전의 진리에 속하는 영역이 많았기 때문에 뒤늦게 과학적으로 그 금기의 원인을 밝혀보았지만 먼 옛날 사람들이 생각한 금기의 영역이 진정으로 선각자적인 지적이었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는 학자들이 많단다."
"어르신께서는 이곳에서도 다른 여자를 취할 건가요?"
"답하기 곤란한 질문 이구나."
순간이동장치는 진실과 대마주의 풍습에 관한 얘기를 주고 받는 짧은 시간 속에 어느덧 주지사 관저 상공에 도달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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