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 간다.
대마주 무대포 주지사의 화려한 영접을 마다하고 뜬 구름처럼 진실과 함께 순간이동장치를 타고 황급히 떠나온 이후 무주공산과 같은 허공에서 대화하는 사이 인공태양의 불빛은 점차 옅어지고 황혼히 들더니 어느새 인공 별들이 총총히 하늘에 박혀있는데 우리가 떠 있는 곳은 설악주 인근 깊은 숲이 우거진 곳이었다.

설악주는 유니털의 경상북도와 강원도를 합한 만큼의 크기로 산세가 드세고 물이 맑아 예로부터 휴양지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기도 하지만 평소 모여 사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고 외지로부터 몰려온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는 탓에 문명과는 약간 거리가 있으면서도 지하국 전체의 허파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천혜의 지역이라 할 곳이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순박하여 예의를 차리기 보다는 진솔한 모습 그 자체로 자신과 직접 관여되는 일에는 열심히나 남의 일이라 여겨지는 일에는 일체 간섭이 없어 지하국 사람들 중에는 남의 간섭을 피해 은둔하고자 하는 자의 지상 천국으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다른 주를 방문할 경우에는 주 접경을 지남과 동시에 주지사가 영접을 나오는 등 북새통을 이루기 일쑤이지만 이곳 설악주를 접어 들었을 때는 어떤 미동 조차 없어 이곳을 방문하는 목적은 오히려 평안한 안식을 위해 자주 찾게 된다.

진실과 밤새워 우주의 탄생 이야기를 한다손 치더라도 내가 궂이 주 청사를 방문하지 않으면 나서서 아는 채 하는 이 없는 적막강산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기에 대마주를 피해 이곳으로 이동하면서 나름대로의 복안이 있었다.

대마주를 급히 떠나기를 채근하던 진실의 마음을 읽었다손 치더라도 다른 주로 접경을 옮기는 순간 신원을 감출 수 없는 탓에 성가신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기 때문에 이곳을 찾은 점도 있지만 설악주 곳곳에 설치된 중앙정부요원 전용 콘도를 이용할 경우 번거로움이 극히 감소되어 사생활이 보호되는 점이 맘에 들어서이다.

콘도를 지키는 로봇이 순간이동장치로부터 발신하는 신호를 접수하곤 곧바로 묵을 방을 안내하는 싸인을 송신해 왔다. 1203호는 고급 관리들이 묵는 VIP 전용룸이다. 무한개체생성기가 비치되어 있고 홀로그램 방송이 종일 운영되는 한편 설악주 전체를 관망할 수 있는 입체 관망대가 설치된 방이다. 내부에서 발생하는 어떤 소음도 감쇠시켜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특수 설계된 뿐만 아니라 외부의 어떤 충격도 흡수하여 평안한 휴식을 마음껏 즐기도록 완충시설이 되어 있는 까닭에 자신의 목소리에 스스로 놀랄 정도의 정적이 보장된 곳이기도 하다.

방에 들어서는 순간 홀로그램 방송 채널이 켜 지면서 지하국 주요뉴스가 전해졌다. 홀로그램 방송은 이차원적 화면구성을 벗어나서 삼차원적 입체화면이 공간에 펼쳐지는 기술로써 뉴스를 전달하는 엥커가 실물과 같은 모습으로 영상으로 나타나서 진행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사건과 사고들 조차도 마치 현장에서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과 같이 입체적으로 진행되어 담이 약한 사람들은 필터를 통해 이차원 화면으로 전환해야만 진정이 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되는 시스템이다. 만약 누군가가 주먹을 앞으로 쑤욱 내민다면 화면 밖으로 까지 내 밀어지는 느낌 때문에 시청자는 눈을 찡긋 감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입체감이 뛰어나다. 각 영상은 리모콘으로 주채널에서 송출하는 홀로그램을 독립적으로 회전시킬 수 있는데 회전각이 상하좌우 360도로 완벽하게 지원되므로 입체감을 떠나 간혹 짧은 치마를 입은 사람을 180도 회전시킨다면 그 속살마저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시스템의 성능을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 있으리라.

뉴스가 계속 흘러 나오고 있었다.
지형변화가 계속 진행중인 가운데 중국 대륙의 크기가 줄어들면서 유니털이 차지한 만주지역을 회복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 진행되고 있어 우려가 많이 된다는 내용이다. 중국 서부쪽은 이란의 침몰과 함께 시작된 침식작용이 진정될 기미가 없어 내륙으로 인구 이동이 심해지면서 빼앗긴 만주벌판에 대한 회복운동이 눈에 띄게 활발해 지고 있었다.

만주는 지하국이 지상의 유니털로 건국하면서 제일 먼저 깃발을 꼿은 곳이다. 유니털로서는 제국 고구려의 실지를 되찾은 까닭에 정당성이 확보된 셈이지만 중국으로서는 강점 당했다며 백여년을 분쟁지역으로 선포하고 호시탐탐 재탈환을 노리는 곳이기도 하다. 유니털이 손쉽게 만주를 접수하고 건국의 기틀을 잡은 까닭은 그 땅에 이미 수천년동안 제국 고구려의 후손들이 뿌리 내려 살면서 언젠가는 다시 중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것이라는 실날같은 기대 속에 삶을 이어온 탓에 유니털이 건국하며 만주를 접수한다고 선포하는 순간 모든 주민들이 스스로 유니털 국민이기를 자청하고 나서면서 만주는 당연히 유니털의 땅이 되었었다. 중국으로서는 오랜 시간동안 고구려를 자신들의 수많은 소수민족의 한낱 역사쪼가리에 불과하다는 논리로 정신교육을 강화한 마당에 순간적으로 유니털에 만주가 복속되는 모습을 보고 놀라면서 나머지 중국 내륙까지 유니털에 접수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내부단속을 강화하는 쪽으로 만주를 포기해야만 했었다.

유니털은 만주 회복의 대가로써 뿐만 아니라 인류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포함하여 지구 분진에 의한 태양광선 차단을 최소화하기 위한 인공태양을 중국과 잔존한 북유럽국가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중국으로서는 인공태양에 의해 자신들의 생존이 보장된다는 사실에 분개하면서 복사천국의 명성대로 수많은 과학자들이 인공태양기술을 복제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다. 신생국 유니털로부터 만주를 강탕당한 뿐만 아니라 생존기술마저 지배받고 있는 까닭에 함부로 만주를 탈환하고자 공격할 경우 인공태양의 공급이 끊길 것이라는 정치적 논리가 배제될 수는 없었다. 유니털과 대등한 관계로 협상 테이블에 앉아 기나긴 역사적 사실을 지적하여 만주를 다시 회복하고 싶은 중국으로서는 인공태양기술을 복제하여 기술적 지배에서 먼저 벗어나야만이 모든 일들이 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인공태양기술은 헬륨을 농축하여 투명한 용기에 넣고 핵분열을 진행시키면 열이 외부로 방출되면서 처음엔 붉고 노란빛으로 변화한 뒤 결국엔 하얀 빛으로 되는 이론적인 과정을 말한다. 자연과학이 고도로 발달된 중국으로서는 너무 쉬운 인공태양기술을 만주가 넘어간 조건으로 받아 들일수 없어서 처음에는 코웃음을 치며 만주회복의 기대를 키워나갔다.

정작 그들은 인공태양 유사품을 만들었었다. 환한 빛이 발산되는 것이 인공태양기술에 근접한 것으로 착각하고 흥분의 도가니에 대륙이 들끓었었다. 하지만 그러한 결과는 단지 빛만 생산하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마치 밝은 전구를 개발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유니털의 인공태양기술은 열이 빛으로 변환하는 과정이 포함된다. 한 곳에서 높은 열이 발산되면 주변은 뜨거운 용광로가 되고 만다. 인공태양은 뜨겁지도 않으면서 온화한 열기로 사계절을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을 포함하고 있고 이러한 기술은 지하국에서 오랫세월 실용화된 것으로 인류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지상세계에 내 놓은 것이었다.

뉴스는 화성으로 이주한 러시아의 동향에 대해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다.
루시코프 러시아 화성공화국 대통령은 화성력 신년을 맞이하여 공화국 국민들에게 신년백서를 밝히고 있었다. 화성이 비록 지구의 환경과 비슷하지만 태양으로부터 너무 먼 탓에 빛의 농도가 낮고 살기가 척박하여 언젠가는 지구로 귀환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다. 프리마코프 국방장관은 지구 정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유니털을 제압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전 공화국 국민들이 힘을 합쳐 과학입국에 앞장서야 한다는 제안도 있었다. 멀리 고향을 떠나본 사람만이 고향을 그리워 한다는 말처럼 루시코프의 지구 귀환을 말리고 싶지는 않다. 다만 야망이 큰 러시아가 지구 귀환을 노린다면 지구는 크게 삼파전으로 세력이 나뉘어 오랜시간 분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머리가 가볍지 않다.

러시아가 다시 힘을 정비하여 지구 귀환을 추진하기 전에 중국을 복속시켜 하나의 지구 공화국을 건설해야만 한다. 북유럽은 오랜시간 소수민족으로 살아오면서 어떤 힘의 세력이 커지는가 눈치보며 그 쪽에 복속되는 것을 원하므로 유니털로서는 그 세력이 부담스럽지는 않다. 어쩌면 북유럽이 신장되어 러시아 화성공화국의 대립각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바 인지도 모르겠다.

"어르신, 지구는 하루도 편한 역사가 없군요?"
"그렇게 보였느냐?"
"중국과 러시아가 존재하는 한 지구는 늘 분쟁에 휘말려 살지 않겠어요?"
"혼자 똑 바로 사는 것 보다는 여럿이 어울려 휘청이며 사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란다."
"그건 왜죠?"
"내부자끼리 우열을 가리며 살면 갈들이 커 진단다. 외부와 경쟁하면서 살면 내부는 융합되고 힘이 넘쳐 외부와 견줄 준비가 되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더냐."
"그럼 중국을 남겨두는 이유가 거기 있었나요?"
"소일거리가 필요하단다. 아무 간섭받을 일도 없이 조용히 시간만 흘러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결과에만 메달린다면 그것은 무의미한 일이지 않겠느냐?"
"그렇죠. 무엇인가 소일거리를 만들면서 하루하루를 이벤트화 시켜야 사는 맛이 나겠지요."
"중국은 유니털 입장에서 보면 작은 싸움패일 뿐이란다.
그런 패거리들이 알짱거릴 때, 그들을 어떻게 물리치고 통치할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 유니털을 건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다."
"중국이라 러시아 화성공화국을 완전 복속시킨 다음에 유니털의 운명은 어떻게 되나요?"
"앞으로 너희들이 찾아야 할 문제가 되겠지."
"어떻게 하는게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그건 너희 몫이란다.
너희들 개개인이 어떤 생각으로 사는가에 따라 유니털의 미래가 결정된단다."
"시간이동장치로 미래를 다 보셨지 않나요?"
"다 봤다."
"그럼 어떻던가요?"
"내가 해 줄수 있는 미래에 대한 말은 그리 많지 않단다."
"왜죠?"
"시간이동장치를 타고 다니면서도 과거는 현재의 모체인 까닭에 일체 과거의 일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 않더냐.
미래는 아직 경험하지 않은 또 다른 희망이란다. 시간이동장치를 타고 다니면서 미리 구경할 필요도 없이 너희들이 지금 현재 어떤 생각으로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희망이고 꿈이잖느냐."
"그래도 미리 알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기도 하겠지만 욕심을 삼가도록 해라.
어제까지 살아온 결과로 오늘이 있듯이 오늘 살아온 결과로 내일을 만드는 것만이 최고의 삶이라는 것을 잊어서도 안될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