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임 리와인더 (Time Rewinder)
- 이 소설은 소.라.넷(sora.net) 작가 "상상의신비"가 연재 중인 작품입니다.
무단 불펌을 삼가해 주시길 부탁드리며, 퍼가시더라도 출처와 작가명을 꼭 남겨주십시오.
창작가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자 도리입니다.
* 1부 46장
의식을 찾았을 때, 내가 처음으로 시도했던 일은 무작정 시간을 뒤로 계속해서 되감아보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그 지옥 같았던 순간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만 그만큼 내 마음의 안도감도 더 커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미친 듯이 시간을 빙글빙글 감아보던 나는 이내 한 가지 사실을 다시금 인식할 수 밖에 없었다.
옆집 여자가 사라진 그 시점 이전으로는 시간을 되감을 수 없다. 그렇기에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과거의 범위라고 해봐야, 기껏해야 일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 셈이었다. 어떻게든 그 이전으로 돌아가보려고 무의미하게 태엽을 감듯이 시간을 몇 번이나 되감고 나서야 나는 끝내 포기해버렸다.
그 때부터는 마음 속에 쌓여있는 울분을 풀기 위해 발악하기 시작했다. 마치 실성한 것처럼 퀭한 눈을 하고서, 나는 뚜렷한 생각도 없이 투박한 커터칼 하나를 비롯하여 잡다한 물건들을 옷 속에 숨긴 채 현아의 호텔 룸으로 향했다. 끔찍했던 일들이 있었던 그 호텔을 나는 다시 보고 싶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복수를 위해 그곳으로 향해야만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복수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 모든 일이 있기 전의 현아는, 적어도 문 앞까지 찾아온 나를 거부할 만큼 나와의 사이가 최악으로 치달았던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겨우 그 며칠 사이에 그녀와 나의 관계는 원수지간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하긴 내가 그녀의 가장 깊숙한 치부를 헤집지만 않았어도 그녀가 나를 그렇게 증오하게 되진 않았겠지....
"성진 씨...? 무슨 일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위트룸의 문이 열리고 현아의 얼굴을 보았을 때, 나는 불길처럼 치솟아오르는 분노를 도저히 주체할 수가 없어서 그녀에게 짐승처럼 달려들고 말았다. 그녀가 채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나는 그녀의 몸뚱이를 바닥에 자빠뜨렸고, 있는 힘껏 목을 졸라댔다.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그녀가 사지를 버둥거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나는 커터칼을 뽑아 그녀의 목에 들이대고는 소리를 지르면 죽여버리겠다고 위협을 가했다. 내 눈에 서린 분노 그 이상의 어떤 격한 감정을 읽었는지 그녀가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의 옷을 모두 찢어내듯이 벗겼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 커터칼로 자른 속옷 조각을 억지로 우겨박았다. 그리고 나서 지환이, 한수 새끼들이 나에게 했던 것처럼 그녀의 손발을 모두 묶어버린 뒤, 천장의 샹들리에 장식에 매달아버렸다. 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조명이 떨어져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 따위는 하지도 않았다.
마치 화형 당하는 마녀처럼 몸이 허공에 묶여버린 현아는, 내게서 어떤 본능적인 위협 같은 것을 느낀 것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어떤 식의 보복을 가해야 이 미칠 듯한 노여움이 조금이라도 풀릴지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심지어 벌거벗긴 그녀의 몸뚱이를 봐도 조금의 성적 흥분도 일어나지 않았다.
"임지환 그 새끼는 언제 오기로 되어 있어?"
"으읍... 웁..."
팬티 조각이 입에 쑤셔져 목소리가 나오지 않자 나는 그녀의 입에서 속옷 뭉치를 끄집어냈다. 그녀는 숨을 토해내며 지환이 놈이 언제 오기로 되어 있는지를 말해주었다. 나는 다시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는, 그 때부터 내내 그녀의 알몸이 그렇게 허공에 매달려 있도록 내버려두었다.
타임 리와인더가 시간을 되감는 기능은 있어도, 시간을 앞으로 당길 수는 없다는 것이 너무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복수의 칼날을 갈며 그 스위트룸 안에서 지환이 새끼를 기다리는 과정은 내게 너무도 힘겨운 것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는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 사이 휴대폰이 몇 차례나 울리며 서연이나 현주, 유정이로부터 드문드문 연락이 왔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무시해버렸다.
이따금씩.... 나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현아의 서랍에서 채찍을 꺼내어 그녀의 몸을 세차게 내리쳤던 것 같다. 이상하게도 내가 그녀에게 정확히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적어도 그것은 성적인 욕망에 기초한 가학 행위는 아니었다. 그저 내 울분을 풀기 위한 매질에 불과했을 따름이었다.
"안에 있어?"
증오스런 목소리가 마침내 귓가에 울렸을 때, 나는 피가 부글부글 끓는 것을 느끼며 손의 떨림을 멈추기 위해 애썼다. 지환이 새끼의 목소리가 문 바깥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옷 속에 감춰두었던 도구들 중 전기충격기를 꺼내들었다. 공교롭게도 그 옛날 서연이를 강간할 때 사용했던 바로 그 충격기였다. 이 물건이 이제 지환이 새끼에게 똑같은 앙갚음을 해주기 위해 쓰이게 된 것이다. 문을 열어젖혔고, 당연히 안에서 현아가 문을 열어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지환이 놈의 얼굴이 순간 의아함으로 물드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 순간 나는 가차없이 놈의 몸에 충격기를 꽂았다.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듯이, 잠시 짐승 같은 소리를 끄르럭거리던 놈의 몸뚱이가 축 늘어지자마자 나는 놈의 멱살을 질질 끌어 방 안으로 데려왔다. 놈을 바닥에 팽개치고는 겁에 질린 현아가 보는 앞에서, 놈의 옷을 모조리 벗긴 다음 손과 발을 묶어버렸다. 그리고는 교수형이라도 내리는 것처럼 놈의 목에 밧줄을 둘러 현아와 마찬가지로 허공에 매달았다.
놈의 몸뚱이에 물벼락을 끼얹었다. 테이프로 입을 막아두었기에 놈이 돼지처럼 웅얼거리며 의식을 찾았다. 초라한 알몸을 드러내고 있는 놈이 간신히 제정신을 되찾자마자, 나는 커터칼로 사정없이 놈의 가랑이 사이에 달린 물건을 그어버렸다.
"우우우우웁!!!! 우우우웁!!!! 으우우우우웁....."
"읍!! 으읍... 으으읍!!!"
테이프로 입이 막힌 지환이 새끼가 처절한 비명을 지르는 것과 동시에, 속옷 조각이 입 속에 틀어박힌 현아도 공포로 넋을 잃고 비명을 질러댔다. 밖으로 새어나가지도 못할 두 년놈들의 비명소리 따윈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바닥에 놈의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무딘 커터칼로 그었다고 해서 물건이 대번에 싹둑 잘려나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깊은 상처가 난 것만큼은 분명했다. 벌어진 상처의 틈새에서 피가 콸콸 솟아 쏟아내리고 있었다. 지환이 새끼는 거의 눈동자가 흰색으로 뒤집어지며 실신에 이르려는 듯 보였다.
"니가 이 쓰레기 같은 물건으로 감히 서연이를....."
나는 커터칼 대신 채찍을 집어든 손으로 놈의 몸뚱이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현아를 내리칠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힘과 울분을 담아 놈의 몸을 도륙내듯이 있는 힘껏 난도질했다. 투박한 가죽의 줄기가 놈의 살갗을 뚫고 상처를 새길 때마다 놈은 미친 듯이 눈알을 부릅뜨며 고통에 몸부림쳤지만, 나는 그걸로도 모자라 맨주먹으로 놈을 두들기고 발길질을 가하는 등 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폭력을 놈에게 가했다.
"하아... 하아..."
구타를 가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놈의 몸이 축 늘어졌다. 기절한 걸까? 아니면 정말로 죽어버린 걸까? 여전히 놈의 사타구니에서는 벌어진 상처 틈새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놈이 죽어버리든 말든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놈이 의식을 잃고나서도 한동안 나의 구타는 계속되었고, 지환이 새끼를 대신하여 현아가 미친 듯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지만, 속옷 조각에 막혀 제대로 된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그녀의 발악을 나는 쉽게 무시해주었다.
어느 정도 광기가 가라앉았다는 생각이 들 때 쯤, 나는 타임 리와인더를 품에서 꺼내었다. 나는 예전에도 한번 숨어본 적이 있는 현아의 룸 옷장에 억지로 몸을 구겨넣어 모습을 숨겼다. 그리고는 그 캄캄한 옷장의 어둠 속에서 타임 리와인더의 시계바늘을 감았다.
이제 나는 다시 시간을 되돌아와, 현아의 룸 옷장에서 눈을 떴다. 타임 리와인더는 시간축을 이동시켜 주지만 공간축을 이동시켜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시간을 되감을 때 몸에 닿아있는 물체들은 모두 함께 시간을 되돌아간다는 법칙이 적어도 지금 내게는 훌륭한 복수의 수단이 되어주었다.
나는 그 캄캄하고 비좁은 공간에서 하염없이 가만히 기다렸다. 도중에 현아가 내 모습을 발견하기라도 한다면 다시 계획을 세우면 그만이니 걱정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녀는 내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고, 그렇게 또 한번의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나는 지환이 새끼가 방 안으로 들어와 현아를 만나는 장면을 옷장 속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현아와 지환이는 마치 그것이 익숙한 일인듯, 만나고나서부터 대화 몇 마디도 나누지 않았는데 금새 옷을 벗고 육체를 섞는 것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치가 떨린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지환이 새끼가 저 흉물스런 물건을 아직도 주렁주렁 달고 있다는 사실이 역겨울 뿐이었다.
나는 옷장 문을 박차고 나가, 테이블에 놓여있던 현아의 와인이 담긴 유리병을 집어들어 지환이 새끼의 머리통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유리조각이 사방으로 튀면서 몇 조각이 현아의 피부를 긁었는지 그녀가 비명을 질렀고, 지환이 새끼의 머리에서는 핏덩이가 튀었다. 현아의 기겁하는 비명소리가 내 귓전을 울렸지만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현아의 몸 속에 물건을 박은 채로 기절해있는 지환이 새끼의 뒤통수를 계속해서 내리쳤다.
"꺄아아아악!!!"
놈이 거의 시체가 되었을 때쯤, 현아의 겁에 질린 비명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다시 시간을 되감았다.
*
그 역겨운 스위트룸 안에서 그렇게 몇 번이나 시간을 되감았을까.... 시간을 되돌아갈 때마다 나는 지환이 새끼를 더욱 더 악랄하게 구타했고, 또 난도질했다. 몸에 묻은 핏자국은 시간을 돌린다고 해서 지워지지 않았기에 열번 쯤 시간을 되감아 돌아갔을 때 쯤엔 내 꼴은 영락없는 백정 내지는 광인이 되어 있었다. 오랜 시간을 되감으며 아무 것도 먹지 못한 몸뚱이가 괴로움을 호소했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
나는 이번에도 지환이 새끼를 가차없이 구타했다. 병으로 머리를 내리친 것으로 모자라 놈의 온 몸을 피투성이로 만들어버렸다. 테이프로 입을 막아놓은 현아는 바닥에서 흐느끼며 떨고 있었다. 피로 물든 놈의 몸뚱이를 싸늘하게 내려다보는 것이 왠지 무감각했다.
지금 여기서 내가 가책이나 두려움을 느껴버린다면.... 서연이가 너무도 불쌍해질 것만 같았다.
"죽은 건가?"
놈의 몸에서 흐른 피가 거의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죄책감은 느껴지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꼴좋다는 식의 통쾌함 따위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시간을 되감고 되감을 수록 점점 더 무뎌져 갈 뿐....
어쩌면 지금까지 되감았던 수차례의 시간들 속에서 나는 어쩌면 정말로 몇 번쯤 놈을 죽여버렸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이제 영락없는 살인자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시간을 되돌리면 모두 지워질 일이거늘....
"정말 그래?"
마음 속에서 또 다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도 정말 아무 것도 배운 것이 없어? 시간을 되감으면 모든 것이 지워진다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
"시끄러워."
그런 사고방식 때문에 소중한 사람들이 상처입는거야. 또다른 누군가가 상처입는 모습을 보고 나서, 그 기억을 영영 뇌리에 새기고 나서야 그 때 다시 한번 후회하겠지.
"닥쳐."
아빠는 그런 인간이니까.
마음 속에서 쉴 새 없이 나를 괴롭히는, 도무지 얼굴조차 떠올릴 수 없는, 그 누군가의 목소리를 이기지 못하고 나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점점 미쳐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달리 내가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빈사의 상태에서, 한 줄기 구원을 찾듯이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타임 리와인더의 바늘을 되감았다.
*
어둠 속에서 나는 한수의 뒤를 쫓고 있었다. 캠퍼스를 내려가는 한수 놈의 뒷모습은, 며칠 후에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게 될 인간치고는 너무도 평범해보였다. 지금 놈의 모습을 보고 악랄한 강간범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하긴 그 말이 사실일 지도 몰랐다. 애초에 내가 누군가를 자극하지만 않았다면,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 하지만 모두에게 희망적인 그런 해피엔딩의 이야기를 상정하기에는, 이미 서연이가 받은 고통이 내 마음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서연이가 그런 끔찍한 일을 당했던 것 또한, 내가 지환이 새끼를 몇 번이고 불구로 만들어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이미 지워져버린 일"로써 가볍게 치부해버린다면 모든 것이 마음 편하게 해결 될 문제였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어디 그게 지워진다고 해서 잊혀질 일인가?
퍼억! 하는 둔탁한 타격음이 인적 드문 골목길에서 울렸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흉기로, 지환이 새끼에게 그랬던 것처럼 한수 새끼의 뒤통수를 인정사정 없이 갈겨버렸고 놈은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나는 몇 차례고 놈의 몸뚱이를 때리고 밟았다. 힘이 빠져 다리가 풀렸을 때까지 말이다.
"하아...."
고깃덩이처럼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한수 놈의 몸뚱이를 내려다보며, 나는 숨을 뭉텅이로 뱉었다. 거칠게 달아오른 숨과 함께 구역질이 치밀어올랐다. 나는 그대로 한수 놈의 의식 잃은 몸뚱이 위에 토사물을 쏟아냈다.
"웩.... 웨엑...."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며, 눈물이 핑 하고 돌았다.
"도대체...."
도대체 이런 짓들이 이제와서 다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극도의 공허함이 속에서부터 꾸역꾸역 치밀어올랐고, 나는 그것들을 모조리 배설해내기 위해 쉴 새 없이 토악질을 해댔다. 분노, 후회, 허무, 환멸.... 갖가지 감정들이 구역질을 타고 몸 밖으로 꾸역꾸역 흘러나와 바닥에 쏟아졌다. 그렇게 끊임없이 토했다. 끊임없이....
*
"어라? 선배~~"
지친 몸을 이끌고 실성한 사람처럼 캠퍼스 주변을 벗어나려고 비척비척 걸음을 옮기는데,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처음엔 그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해서 그저 계속 걷기만 했다.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은 기어코 잰걸음으로 달려와 나를 붙들었다.
"뭐에요, 선배? 불렀는데 왜 그냥 가요~~"
"........"
이 계집애는 또 누구였지? 하는 의문을 꽤 오랫동안 떠올린 끝에, 나는 그녀의 이름이 예진이라는 사실을 떠올려 낼 수 있었다. 서예진. 서연이의 친구.... 왠지 지금은 서연이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그녀의 얼굴을 보는 것 자체가 지금은 거북하게 느껴졌다.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지금 집에 가는 길이에요~ 그런데 선배는 이 늦은 시간에 학교에 웬일로 남아있어요? 선배도 혹시 공부하다 가는 길인가요?"
"..... 저리 가."
나는 제발 내가 구구절절한 설명을 늘어놓을 필요 없이, 그녀가 알아서 사라져주기를 바랐다. 평소에도 짜증이 날 정도로 내게 주책맞았던 이 계집애의 태도가 지금 같은 상황에서 더 좋게 느껴질 리는 없었다. 하지만 하필 이 계집애는 오늘 같은 날, 유독 나를 더욱 피곤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 참~ 선배 시간 있으면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고 갈래요? 특별히 내가 살게요."
"저리 가라고."
"에이, 그러지 말고 내가 조용히 얘기하기 좋은 곳을...."
"꺼지라고 했지!"
순간,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만한 분노가 안에서부터 버럭 치솟아 나는 그녀의 목을 덜컥 졸랐다. 그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공포로 굳었지만 나는 이미 목을 조르는 정도로 멈추지 않고 예진이를 길바닥에 팽개친 후, 그녀의 옷을 사정 없이 벗겨내거나 찢어버리고 있었다.
"서, 선배.... 왜, 왜 이래요...."
"씨발년아! 내가 꺼지라고 했지? 왜 좆같이 말을 안 들어! 왜!"
"선배...."
"그래, 이 개 같은 년아. 니가 원했던 대로 내가 어떤 놈인지 보여줄게. 인간 최성진이 얼마나 쓰레기같은 새끼인지 내가 직접 보여주겠다고. 그러면 돼? 그러면 만족하겠냐고?"
실성해서 미친 듯이 지껄이며 예진이의 블라우스 단추를 힘껏 잡아당기던 나는, 어느 순간 손을 뚝 멈추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볼을 타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역겨움을 주체할 수 없어 입술을 꽉 깨물자 찢어진 입술에서 흘러나온 피가 입 안으로 흘렀다.
"제발.... 꺼져."
"........"
내가 예진이를 놓아주자마자 겁에 질린 그녀는 몸을 일으켜 순식간에 어디론가 도망쳐버렸다.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미치광이처럼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해 하염없이 걷기 시작했다.
*
술에 취한 사람이 용케도 자신의 집을 찾아가듯이, 나는 그 와중에도 원룸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 모든 일들에도 불구하고 그 건물이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이 왠지 견딜 수 없을 만큼 우습게 느껴졌다. 숨을 토해내면서 나는 전봇대 근처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품 속에서 타임 리와인더를 꺼내, 또다시 바늘을 되감았다.
방금 전까지 달이 떠있었던 어두컴컴했던 하늘이, 눈 깜짝할 사이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는 초저녁의 붉은 하늘로 바뀌어있었다. 이렇게 내가 저지른 악행이 또 한번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다.
"하, 하하... 하하하하."
혐오감이 극에 달하니 왜 웃음이 나오는 걸까. 미친 놈 같으니....
"쉬고 싶어.... 잊어버리고 싶어."
물론 잊혀지지 않을 거야. 하지만 잠깐만이라도 잊고 싶어. 이대로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뜨면, 한층 마음이 개운해져 있을 것 같아. 그렇게는 안 되는 걸까?
"......오빠?"
그 때, 나는 천사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가 그 때 나를 불러주었던 것은 내게 있어 일종의 구원이었으니.
"유정아....."
나는 힘없는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저녁 노을을 등진 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눈부시게 느껴졌다. 또 바보같이 눈물이 흐를 만큼 그녀의 얼굴을 보는 것이 반가웠다.
"오빠, 왜 그래요...? 괜찮아요? 왜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유정아."
나는 마치 홀린 듯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 와중에도 내 손을 조심스럽게 마주 잡았다.
"나.... 나 오토바이 태워줄래?"
"네?"
뜬금없는 물음에 유정이가 토끼눈을 뜨고 나를 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대답이 나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다.
"좋아요.... 그런데 오빠 괜찮아요?"
"으응. 괜찮아. 지금은 너랑 있고 싶어."
유정이는 조심스럽게 나를 이끌어 차고의 바이크 앞까지 나를 데려갔다. 언제부터인지 그녀는 여분의 헬멧을 구비해 다닌 것 같았다. 그녀는 머리에 헬멧을 쓰더니, 내 머리에도 헬멧을 하나 씌워주었다. 내가 안장에 잘 올라타 있는지 확인한 그녀는 내 두 팔을 이끌어, 나로 하여금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붙들게 했다.
유정이가 엑셀을 당기자 익숙한 느낌의 바이크가 엔진 소리를 내며 앞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불어오는 바람이 몸을 녹일 듯이 우리를 쓸고 지나가자 나도 모르게 눈이 스륵 감겼다. 나는 유정이를 끌어안은 팔에 더더욱 힘을 주었다. 가녀린 그녀의 허리를 꽉 끌어안을수록 어쩐지 마음 속에서 포근함이 피어올랐다.
이마를 스치는 그 바람결이 안식을 싣고 오기라고 한건지, 점점 더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이런 편안함을 느낀다는걸 유정이도 느끼고 있을까. 이렇게 몸을 맞대고 있으니 내가 얼마나 그녀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고, 그녀도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 마음 때문에.... 유정이가 위험해 질 뻔 했어."
잊으려고 해도 그 사실만큼은 잊을 수가 없었다.
한심하게도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유정이도 느낀 것 같았다. 눈물방울이 등에 닿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몸의 떨림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서로의 몸이 이렇게 붙어있는 지금 이 순간, 그런 교감이 흐르고 있다는 것 정도는 누가 말로 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유정이는 딱히 정해지지 않은 여러 방향으로 바이크를 몰았다. 아마 내게 좀 더 다양한 풍경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녀는 우리가 처음 만났던 강변도로에서부터 시작해 해가 저물고 있는 고즈넉한 동산을 넘었고, 벌레 소리가 찌르르 울리는 풀숲길을 가로질러 잔잔하게 달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공원 근처의 인적이 없는 풀밭을 샛길 삼아 달리고 있었다. 그리 오래 달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도심으로부터 꽤 멀어진 것 같았다. 언제 이만큼 온걸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유정이가 갑자기 바이크의 속력을 줄였다.
"왜 그래? 기름이 없어?"
그때 나는 멍청하게도 그딴 소리를 했던 것 같다. 오토바이의 시동을 꺼버린 유정이는 풀밭 테두리에 바이크를 세우고는, 말없이 헬멧을 벗었다. 그녀가 헬멧을 손잡이에 걸어두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여전히 멍청하게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나의 헬멧을 위로 들어올렸다.
"어...?"
헬멧이 벗겨졌고, 맨얼굴에 밤바람이 와서 닿았다고 생각한 순간 유정이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었다. 보드랍고 말랑한 입술이 메마른 내 입술을 끌어안듯이 보듬었다. 나는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너무도 포근하기도 하여 감히 그 입술을 거부하지 못하고 살며시 유정이의 몸을 끌어안았다.
바이크의 안장 위에 앉은 채, 바닥을 딛고 서있는 유정이와 키스를 하게 될 거라곤 내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남녀의 모습이 뒤바뀌어 있는 것 같았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그 아늑한 느낌에 빠져들었다. 팔을 뻗어 유정이의 몸을 더욱 끌어안으니 그녀가 나에게로 가까이 당겨져왔다.
그것은 혀를 쓰지 않은, 차라리 뽀뽀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도 가벼운 행위였다. 하지만 유정이와 입술을 맞대고 있는 이 순간이.... 내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치유의 시간이었다. 머릿속에서 퍼지기 시작한 아늑한 빛이 모든 괴로운 기억을 씻어주는 것만 같았다.
얼마나 그렇게 오래 입술을 맞대고 있었을까. 우리는 입술을 떼고 잠깐 동안 떨어졌다.
"오빠가 너무 슬퍼보였어요."
유정이는 마치 변명을 하듯이 그런 말을 했다. 그녀는 쑥스러운 얼굴로 내 시선을 피하며, 아까 전에 내가 흘렸던 눈물 자국이 여전히 남아있는 뺨을 두 손으로 쓰다듬었다.
"나는 지금 오빠의 마음을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오빠가 이렇게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는게 나에게도 괴로운 일인 것 같아요. 어떻게든 오빠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내가 오빠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
그 순간의 우리에게 구태여 더 긴 대화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나는 유정이의 몸을 끌어안고 그대로 그녀와 함께 풀밭 위로 쓰러지듯 누웠다.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허겁지겁 윗옷을 벗었고, 보들보들한 잡초의 감촉이 느껴지는 풀밭 위에 아무렇게나 윗옷을 넓게 펼쳤다. 그리고는 그 위에 유정이의 몸을 눕혔다.
그녀는 나를 안심시키고 싶어하는 듯, 자꾸만 내 등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나는 그녀의 뒷목을 끌어안고 다시금 그녀와의 키스에 열중했다. 처음에는 입술의 감촉을 확인하는 듯한 가벼운 키스가 몇 번 이어졌고, 그 후에는 유정이의 입술이 열렸다. 혀와 혀가 얽히기 시작했다.
"흐음...."
사방이 탁 트인 풀밭에서 유정이와 키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좀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그런 비현실의 감각이 필요했다. 모든 것을 잊고 차라리 몽환의 나라로 나를 인도해 줄 무언가가 간절했다. 유정이는 나에게 그런 감각을 새겨줄 수 있는 여자였다.
"하아...."
숨이 가빠졌다. 흥분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또 바보같이 찔끔 눈물이 흘렀다. 유정이는 나를 안쓰러워 하는 듯이 내 얼굴을 매만졌다. 두 뺨을 양손으로 감싸쥔 그녀가.... 무슨 생각인지 내 얼굴을 자신의 얼굴 가까이로 끌어당기더니 눈물방울을 혀로 훔쳤다. 그 원색적인 행위가 왠지 내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사막에서 물 한모금을 탐하는 것처럼 나는 허겁지겁 유정이의 상의를 위로 말아올렸다. 까딱하면 누가 볼지도 모르는 이런 위험한 곳에서 새하얀 속살을 드러낸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특히나 조심스러운 일이었겠지만, 그녀가 나를 말리지 않는다는게 너무 기뻤다.
옷을 위로 말아올리니 그녀의 가슴을 몇 겹으로 친친 두르고 있는 무명천이 보였다. 브래지어를 벗기듯이, 나는 그녀의 가슴 부근을 더듬어 매듭을 발견하고는 그걸 어렵사리 풀어냈다. 맨들맨들한 촉감의 무명천이 올올이 풀려나가면서 유정이의 순진한 얼굴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그 커다란 젖가슴이 모습을 드러냈다.
"으응...!"
유정이의 입장에선 조금 과격하다 싶을 정도로 예고도 없이, 나는 그녀의 대접 같은 유방 하나를 입 안 가득히 덥썩 물었다. 젖꼭지가 혀에 닿자마자 그녀가 고양이 울음 같은 소리를 흘렸다.
손 끝으로, 혀 끝으로, 그리고 마주 닿는 피부의 감촉으로.... 나는 촉감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감각을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내가 그녀의 젖가슴을 빨아당기자 유정이는 내 머리를 두 팔로 끌어안고 나를 자신의 몸에 가까이 붙였다.
그 순간의 내 모습은 여인을 탐하는 남자라기보다는, 차라리 어머니의 품에서 젖을 빨며 칭얼거리는 어린아이의 모습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숨이 막힐 정도로 깊이 파묻힐 수 있는 유정이의 그 커다란 젖가슴 또한, 그 순간의 내게는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안식처에 더 가까웠다.
"오빠.... 울지 말아요."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목소리에 이어서 그녀의 혀 끝이 내 얼굴에 닿자 나는 움찔 놀랐다. 마치 난도질을 당한 짐승의 살가죽을 어루만지듯이, 유정이의 혀가 내 뺨을 긁었고 점점 아래로 내려와 목을 핥았다. 그녀의 손길이 너무도 과감하게 나의 맨살을 더듬자 나는 그만 뻣뻣하게 굳어졌다.
유정이는 아랑곳 않고 내 피부를 핥는 혀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은 채, 점점 더 아래로 내려와 가슴팍에서부터 배를 애무했다. 동물들이 서로의 육체를 더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 원색적인 행동.... 유정이가 내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게 놀라웠다.
그녀의 두 손이 내 허리춤을 붙들고 바지를 끌어내리려 했을 때, 나는 왠지 불편한 마음에 그녀를 말리고 들었다.
"유정아.... 괜찮아. 거기는...."
"싫으세요?"
청바지를 내리려다 말고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는 유정이의 두 눈을 마주보고 있자니,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턱이 없었다. 고요하지만 단호함이 느껴지는 그녀의 그 표정과 눈빛이 그 순간에는 차라리 고마웠다.
내가 대답을 않고 머뭇거리자, 유정이는 다시 바지를 벗겨내리기 시작했다. 힘들게 바지가 무릎께까지 내려갔고, 속옷도 어정쩡하게 허벅지 부근까지 내려갔다. 그러자 안에서 꿈틀대고 있던 물건이 튕겨오르듯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순간엔 어쩐지 그것이 조금 창피하게 여겨졌다.
성기라는 물건은 왜 뇌의 인식과 관계없이 움직이는 물건인 걸까? 아니면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여자가 유정이기 때문일까? 좌우지간 이 상황에서도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내 물건이 신기하면서도 조금은 한심하게 느껴지는.... 그런 복잡한 기분이었다.
"아....!"
태어나서 오랄 애무라고는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을 그녀가, 단호한 태도로 내 물건을 입에 머금자 나는 바보같이 높게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그 어떤 기교도 자극도 없었지만, 그녀가 내 물건을 입에 물었다는 그 자체만으로 나는 달아오른 것이다.
유정이의 입 안에서 따스한 점막이 느껴졌다. 조금은 쭈뻣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혀가 조심스럽게 내 물건을 건드렸다. 따스함을 넘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떤 극도의 안온함이 내 몸뚱이를 감싸안았다. 마치 다른 세상에서 잠시 눈을 뜬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늘을 날고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하아...."
남자의 물건을 생전 처음으로 입에 물어보는 유정이에게, 화려한 테크닉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녀의 애무가 내 현실의 아픔을 잊게 하고 있었다. 그녀의 혀가 내 살갗에 한번 닿을 때마다 거무튀튀한 모든 것들이 조금씩 씻겨나가는 것만 같았다.
나는 유정이의 몸을 번쩍 안아들고는, 그녀를 거꾸로 뒤집어 내 몸 위에 태웠다. 웬만큼 익숙해진 연인 사이라도 좀체 시도하기 부끄러운 69 체위를.... 유정이와 시도해본다는게 조금은 무모하게 느껴지기도 했으련만, 그 어떤 망설임도 지금의 교감을 갈라놓을 수가 없었다.
"읏...."
내가 유정이의 엉덩이를 내 얼굴 쪽으로 들게 하고는, 그녀의 바지를 끌어내려버리니 유정이가 약간 움츠러드는 듯한 소리를 냈다. 가장 은밀한 곳을 모조리, 그것도 상대의 얼굴 바로 앞에 드러내어야 하는 이 자세가 그녀로서는 어렵게 느껴졌을 것이다.
아랑곳 않고 그녀의 조그마한 팬티를 엉덩이 아래로 걷어버렸다. 탱글탱글한 살덩이가 밤하늘 아래에서도 비단처럼 반짝하고 빛났다. 달빛이 은은했기 때문에 그리 노골적으로 모든 것이 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유정이의 풍만한 엉덩이를 두 손으로 부드럽게 움켜쥐면서, 그 사이를 혀로 낼름 핥았다.
"하윽...."
유정이는 내게 엉덩이를 들이민 채로, 부끄러워하며 내 배 위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하지만 내가 멈추지 않고 그녀의 계곡 틈새를 혀 끝으로 줄기차게 핥고, 더듬자 그녀도 머뭇거리면서 내 물건을 다시 입 안에 물었다.
야외 들판에 누워 서로의 성기를 적나라하게 핥고 있는 이런 우리의 모습이, 물론 조금은 부끄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외설적인 행위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위로를 내가 느끼고 있다는 걸..... 유정이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무모하리만치 위험한 이런 행위에 그녀가 따라와주는 것 또한 그 때문이리라. 그래서 고마웠다.
"하아.... 오빠. 부끄러워요...."
"싫어?"
"아니.... 그건 아니지만."
어쩌면 유정이도 그저 수동적으로 나를 따라오는 것만이 아닌, 그녀 스스로 어떤 자극을 느끼고 있었던 걸까. 음순 주변과 공알을 핥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혀 끝에서 찝찔한 맛이 배어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유정이도 달아오르는 걸까? 내 행위로 인해서?
"아흑... 하윽... 흣....!"
그녀의 신음소리가 점점 더 애달파지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녀가 나로 인해 반응해준다는 것이 행복했다. 온 힘을 다해 나는 그녀의 은밀한 곳을 애무하고, 또한 그 행위로 인해 스스로 위로받았다. 그 와중에 유정이도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내 물건을 애무해주었다.
"하아.... 유정아. 여기 잡아볼래?"
"네....?"
나는 유정이로 하여금 풀밭 근처의 느티나무 하나를 짚고 서게끔 만들었다. 버석버석한 나무의 표면에 유정이가 두 손을 얹고, 조금은 어정쩡하게 내게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바지와 팬티가 채 벗겨지지 않고 어중간하게 허벅지와 무릎에 걸려 간신히 엉덩이만 드러나 있는 상태였지만, 그 모습이 그렇게나 자극적일 수가 없었다.
"엉덩이 더 들어."
처음 시작했을 때의 상처입은 기분도 잊고, 나는 이제 좀 더 성욕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픔이 씻겨내려가고 나니 다시 욕망에 충실하게 되는 내가 어지간히도 한심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잠시나마 나는 지금 행복하고, 그것이 유정이가 바랬던 것이라 믿었다.
강하디 강한 유정이가 내 말 한마디에 순종적으로 엉덩이를 치켜드는 것이 좀체 믿기지 않았다. 어쩌면 수컷으로서 충분히 정복욕을 느껴도 좋았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그런 기분보다도 그저, 눈 앞에 있는 이 여자가 너무도 사랑스러웠고, 온 힘을 다해 사랑해주고 싶었다. 단지 그 뿐이었다.
"하아악....!"
굵은 느티나무에 손을 짚고 앞으로 엎드린 유정이에게, 나는 후배위로 천천히 삽입했다. 미끌미끌하게 젖어있던 구멍에 귀두가 틀어박혔다. 남자의 물건을 난생 처음으로 받아들인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뻑뻑한 질구는 그리 쉽게 열려주지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서 이것은 조금 과격한 시도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유정이의 엉덩이를 양손에 한쪽씩 움켜쥔 채로, 조금 더 힘주어 그녀의 안쪽을 향해 물건을 밀어넣었다. 그러자 유정이가 히끅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나무표면을 더욱 힘주어 붙들었다.
"아흐윽....!"
자지가 그녀의 몸 안쪽에 거의 반쯤 빨려들어갔다. 유정이가 한번 더 신음을 질렀지만 나는 머리가 핑 하고 도는 것 같은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엄청난 조임 때문이었다.
이전에도 느꼈지만 유정이의 그곳은.... 내가 여지껏 겪어본 적이 없는, 그리고 앞으로도 그녀 외의 여자에게서 다시는 느껴볼 일이 없을 것만 같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명기였다. 명기라는 것은 직접 느껴보기 이전엔 아무리 말로 설명을 들어도 무슨 느낌인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직접 맛을 보고 나면 그 느낌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마치 퍼즐조각을 꼭 맞게 끼워맞추듯이, 내 자지를 완벽한 감촉으로 사방에서 감싸고 물어주는 그 탄력 넘치는 구멍의 움직임에 나는 전율하고 말았다. 겨우 반만 넣었을 뿐인데 이런 황홀한 감촉이라니.....
"하아....! 유정아.... 움직일게."
"하아응.... 으흑....."
힘주어 허리를 앞뒤로 퉁겨올리니 피스톤질의 덕을 보는지, 자지가 서서히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가기 시작했다. 안에서 샘솟는 윤활유의 양도 다행히 조금씩 더 늘어나고 있었다. 귀두 끝에 그녀의 뜨끈하고 끈적한 애액이 적셔졌다고 생각했을 때쯤 그녀의 몸 속에 내 물건이 끝까지 박혔다.
무엇보다 처음에는 다소 아파하는 것 같았던 유정이가, 피스톤질의 속력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 뜨겁고 끈끈한 신음소리를 흘리기 시작했다는 것이 가장 기뻤다. 그녀는 혹시나 누가 들을까 싶어 되도록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것 같았지만 갈수록 소리를 억누르는 것이 힘들어지는 눈치였다.
"하아아... 아앙... 하아아응... 으아.... 하악.... 아아앙....!!"
- 철썩철썩철썩....!
달빛이 고요하게 내려앉은 풀밭 위에서, 우리는 나무를 기둥 삼아 더없이 원색적인 모습으로 성교를 즐기고 있었다. 유정이의 탱탱하고 풍만한 힙이 내 허벅지와 부딪혀 뭉개지면서, 파도가 흩어지듯이 철썩거리는 소리를 들판 위에 메아리처럼 울려댔다.
그녀의 엉덩이를 주무르는 손길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없었던 힘이 안쪽에서부터 조금씩 솟아나는 것 같은 느낌. 내가 살아나고 있는 것만 같은 그 기분.... 황홀함을 넘어서 다시 태어나는 것만 같은 경외로운 감각.
"아...."
눈물이 흐를 만큼 행복했다. 지금의 내가 감히 행복이란 기분을 느껴도 될지 자괴감이 들었지만, 행복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걸 거부하는 순간 나는 죽어버릴 것만 같았으니.
"으응....! 아응.... 오... 오빠, 나.... 좋아요.... 기분 좋아요.... 하아..... 행복해요. 오빠는요....?"
"으응... 나두.... 너무 좋아.... 너랑 영원히 이렇게 있고 싶어....."
"얼굴.... 얼굴 보고 싶어요, 오빠."
유정이의 애달픈 목소리를 듣고 나는 자세를 바꾸었다. 그녀의 엉덩이 아래로 줄기차게 넘나들던 내 물건을 뽑고는, 유정이의 한쪽 다리를 들어 그녀의 허벅지를 내 팔 위에 얹었다. 마치 강아지가 소변을 보는 것처럼 한쪽 다리로 위태롭게 서서 내 팔 위에 다리를 올린 그녀의 모습이 무척 야하게 느껴졌다.
달빛 아래에서 번들번들하게 젖은 내 물건이 은은한 광택을 발했다. 유정이의 안쪽에서 흘러나온 애액들이 묻어있다는게 왠지 야릇하게 느껴졌다. 한쪽 다리를 들어올린 채로, 나는 유정이를 마주보고는 앞으로 다시 삽입했다.
"으응....!"
나무 표면에 그녀의 맨살이 닿지 않도록 등을 감싸안은 채, 나는 힘차게 유정이의 얼굴을 마주보며 좆질을 이어나갔다. 쾌감으로 뜨거워져 있는 유정이의 얼굴을 보는게 정말 좋았다. 그녀의 눈망울이 흔들리면서 눈꺼풀이 쉴 새 없이 깜빡거렸다. 나는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키스했다.
"하아.... 오빠.... 너, 너무 좋아요.... 어떡해...."
"나도 그래.... 하윽...."
"아....! 세상에.... 엄마....."
어머니와는 관계가 소원하다더니, 극한의 상황에 이르자 유정이도 여느 여자아이들처럼 엄마를 애타게 찾기 시작했다. 사랑스럽다는 기분 밖에 들지 않았다. 더더욱 힘주어 허리를 놀렸다. 살이 부딪히며 철썩거리는 소리가 울렸고, 질컥거리는 낯뜨거운 물소리도 간간히 새어나왔다.
"안에 하고 싶어.... 안에 해도 될까?"
"으응.... 잘 모르겠어요...."
애매모호한 대답. 그녀가 차라리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했다면 나는 멈출 수 있었을까. 그거야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그 순간의 그 애매한 대답만으로는 황홀함이 절정에 다다른 느낌을 제지할 수 없었다. 나는 마치 녹아내리듯이, 한편으로는 날아오르는 듯이 그녀의 안쪽에 그대로 뜨거운 덩어리를 울컥 토해냈다.
"하아...!"
"하윽...!"
사정의 순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부르르 몸을 떨며 서로 절정에 올랐다. 극도의 여운이 몰려오며 우리는 사정 이후에 찾아오는 전율을 즐겼다. 여전히 옷을 반쯤 벗은 채로, 야외에서 서로의 몸을 연결한 채, 땀에 젖은 몸을 꽉 끌어안고 그렇게 한동안 서 있었다.
"하아.... 오빠...."
"응?"
"사랑해요."
"......."
나 같은 인간에게는 유정이의 그 한 마디가 너무도 과분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유정이의 몸을 조심스럽게 안아들어, 아까 풀밭 위에 펼쳐놓았던 내 겉옷 위로 조심스럽게 그녀를 눕혔다. 비록 조촐한 공간이긴 했지만, 격렬한 사정 후에 서로 끌어안고 누울 수 있는 곳이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나도 사랑해."
"정말요?"
"응?"
"정말 날 사랑하나요?"
확인 받고 싶었던 걸까. 그녀는 재차 물었다.
"응... 정말로 사랑해."
"그럼 하나만 약속해줄래요?"
"뭔데?"
다정한 연인처럼 풀밭 위에서 서로의 몸을 끌어안고 누워있으니, 설령 그녀가 하늘의 별을 따달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해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가만히 내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내 곁에 있어줄 수 있나요?"
조금은 이상하게 들리는 질문이었다.
"물론이지."
"충분히 생각하고 나서 대답을 해 줘요."
"알았어."
잠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뜸을 들이다가, 나는 충분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을 때 쯤 재차 말했다.
"네가 어디에 있든 네 곁에 있을게."
"정말이죠?"
"응. 약속해."
어린아이들처럼, 우리는 서로의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러자 그녀가 배시시 웃음을 지었는데, 여지껏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소녀 같은 웃음이었다. 그 웃음이 넋이 나갈 만큼 사랑스러워 나는 그녀의 몸을 끌어안은 팔에 더더욱 힘을 주었다.
"그런데 오빠."
"응?"
어쩐지 졸음이 밀려왔다. 이대로 잠들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오늘 위험한 날이었던 것 같은데.... 혹시 아이라도 생기는 건 아니겠죠?"
"글.... 쎄."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고 나니, 조금씩 이성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유정이는 꽤 신경 쓰이는 듯한 얼굴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절이라도 좀 할걸 그랬나. 하지만 매번 그렇듯이 그런 후회는 지나가고 나서 해봐야 늦은 법이었다. 편하게 마음을 먹을 수 밖에 없겠지.....?
"괜찮을거야. 아마도...."
"그런가요?"
문득 머릿속에는 희뿌연 거울처럼, 잘 보이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흐릿하게 존재하고 있는 어떤 기억 하나가 떠오르고 지나갔다. 유정이와 나의 아이....
유정이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어떨까? 분명 아이도 낳게 되겠지. 유정이가 낳은 아이라면 분명히 사랑스러울 거야. 아빠로서 비뚤어지지 않게 잘 키워야겠지. 그런데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은 뭘로 할까?"
"네에?"
유정이가 무슨 소리냐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새된 목소리를 냈다. 나도 아차 싶어 뒷머리를 긁으며 멋쩍게 변명했다. 왜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입에서 튀어나온건지.
"아, 농담이야."
"무슨 그런 농담을 해요?"
"미안...."
팔푼이처럼 사과하는 모습에 유정이는 약간 핀잔을 주듯이 내 뱃가죽을 꼬집었다.
"그런 말은.... 결혼을 하고 나서 하는 거에요."
"결혼...."
혼자 상상했을 때는 몰랐는데, 그녀의 입을 통해서 그 단어를 들으니 왠지 그것이 너무도 깊고 무거운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는 괜시리 숙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오빠."
"응?"
자꾸만 감겨오는 눈을 억지로 뜨려고 나는 애썼다. 유정이가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온 힘을 다해 그녀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녀는 웬일인지 나를 퍽 김새게 만들었다.
"음.... 아니에요."
"에이, 뭐야."
언제부터인가 밤하늘은 늘 공해로 뒤덮혀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별들이 유난히 반짝이고 있는 것 같았다. 왠지 은하수가 내려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캄캄한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은 별들을 보면서 나는 유정이의 몸을 더욱 끌어안았다.
심장이 평온하게 뛰고 있었다.
- 다음 화에 계속 -
고맙습니다... 지난 화의 댓글을 통해서 많은 분들이 제게 힘을 주셨습니다
요며칠간은 정말로 소라에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회의를 느낄 만큼 기운이 빠지기도 했는데
너무나 많은 분들이 제게 힘을 주시고, 제 마음을 헤아려 주셨습니다
모든 분들로부터 칭찬을 듣는 글쓴이가 되겠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제 표현의 자유를 존중받고 싶었습니다
저를 존중해 주시는 분들의 격려와 응원에서 진심이 느껴져서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한분 한분에게 모두 감사합니다
좋은 저녁 되세요
- 이 소설은 소.라.넷(sora.net) 작가 "상상의신비"가 연재 중인 작품입니다.
무단 불펌을 삼가해 주시길 부탁드리며, 퍼가시더라도 출처와 작가명을 꼭 남겨주십시오.
창작가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자 도리입니다.
* 1부 46장
의식을 찾았을 때, 내가 처음으로 시도했던 일은 무작정 시간을 뒤로 계속해서 되감아보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그 지옥 같았던 순간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만 그만큼 내 마음의 안도감도 더 커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미친 듯이 시간을 빙글빙글 감아보던 나는 이내 한 가지 사실을 다시금 인식할 수 밖에 없었다.
옆집 여자가 사라진 그 시점 이전으로는 시간을 되감을 수 없다. 그렇기에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과거의 범위라고 해봐야, 기껏해야 일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 셈이었다. 어떻게든 그 이전으로 돌아가보려고 무의미하게 태엽을 감듯이 시간을 몇 번이나 되감고 나서야 나는 끝내 포기해버렸다.
그 때부터는 마음 속에 쌓여있는 울분을 풀기 위해 발악하기 시작했다. 마치 실성한 것처럼 퀭한 눈을 하고서, 나는 뚜렷한 생각도 없이 투박한 커터칼 하나를 비롯하여 잡다한 물건들을 옷 속에 숨긴 채 현아의 호텔 룸으로 향했다. 끔찍했던 일들이 있었던 그 호텔을 나는 다시 보고 싶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복수를 위해 그곳으로 향해야만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복수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 모든 일이 있기 전의 현아는, 적어도 문 앞까지 찾아온 나를 거부할 만큼 나와의 사이가 최악으로 치달았던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겨우 그 며칠 사이에 그녀와 나의 관계는 원수지간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하긴 내가 그녀의 가장 깊숙한 치부를 헤집지만 않았어도 그녀가 나를 그렇게 증오하게 되진 않았겠지....
"성진 씨...? 무슨 일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위트룸의 문이 열리고 현아의 얼굴을 보았을 때, 나는 불길처럼 치솟아오르는 분노를 도저히 주체할 수가 없어서 그녀에게 짐승처럼 달려들고 말았다. 그녀가 채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나는 그녀의 몸뚱이를 바닥에 자빠뜨렸고, 있는 힘껏 목을 졸라댔다.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그녀가 사지를 버둥거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나는 커터칼을 뽑아 그녀의 목에 들이대고는 소리를 지르면 죽여버리겠다고 위협을 가했다. 내 눈에 서린 분노 그 이상의 어떤 격한 감정을 읽었는지 그녀가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의 옷을 모두 찢어내듯이 벗겼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 커터칼로 자른 속옷 조각을 억지로 우겨박았다. 그리고 나서 지환이, 한수 새끼들이 나에게 했던 것처럼 그녀의 손발을 모두 묶어버린 뒤, 천장의 샹들리에 장식에 매달아버렸다. 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조명이 떨어져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 따위는 하지도 않았다.
마치 화형 당하는 마녀처럼 몸이 허공에 묶여버린 현아는, 내게서 어떤 본능적인 위협 같은 것을 느낀 것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어떤 식의 보복을 가해야 이 미칠 듯한 노여움이 조금이라도 풀릴지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심지어 벌거벗긴 그녀의 몸뚱이를 봐도 조금의 성적 흥분도 일어나지 않았다.
"임지환 그 새끼는 언제 오기로 되어 있어?"
"으읍... 웁..."
팬티 조각이 입에 쑤셔져 목소리가 나오지 않자 나는 그녀의 입에서 속옷 뭉치를 끄집어냈다. 그녀는 숨을 토해내며 지환이 놈이 언제 오기로 되어 있는지를 말해주었다. 나는 다시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는, 그 때부터 내내 그녀의 알몸이 그렇게 허공에 매달려 있도록 내버려두었다.
타임 리와인더가 시간을 되감는 기능은 있어도, 시간을 앞으로 당길 수는 없다는 것이 너무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복수의 칼날을 갈며 그 스위트룸 안에서 지환이 새끼를 기다리는 과정은 내게 너무도 힘겨운 것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는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 사이 휴대폰이 몇 차례나 울리며 서연이나 현주, 유정이로부터 드문드문 연락이 왔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무시해버렸다.
이따금씩.... 나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현아의 서랍에서 채찍을 꺼내어 그녀의 몸을 세차게 내리쳤던 것 같다. 이상하게도 내가 그녀에게 정확히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적어도 그것은 성적인 욕망에 기초한 가학 행위는 아니었다. 그저 내 울분을 풀기 위한 매질에 불과했을 따름이었다.
"안에 있어?"
증오스런 목소리가 마침내 귓가에 울렸을 때, 나는 피가 부글부글 끓는 것을 느끼며 손의 떨림을 멈추기 위해 애썼다. 지환이 새끼의 목소리가 문 바깥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옷 속에 감춰두었던 도구들 중 전기충격기를 꺼내들었다. 공교롭게도 그 옛날 서연이를 강간할 때 사용했던 바로 그 충격기였다. 이 물건이 이제 지환이 새끼에게 똑같은 앙갚음을 해주기 위해 쓰이게 된 것이다. 문을 열어젖혔고, 당연히 안에서 현아가 문을 열어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지환이 놈의 얼굴이 순간 의아함으로 물드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 순간 나는 가차없이 놈의 몸에 충격기를 꽂았다.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듯이, 잠시 짐승 같은 소리를 끄르럭거리던 놈의 몸뚱이가 축 늘어지자마자 나는 놈의 멱살을 질질 끌어 방 안으로 데려왔다. 놈을 바닥에 팽개치고는 겁에 질린 현아가 보는 앞에서, 놈의 옷을 모조리 벗긴 다음 손과 발을 묶어버렸다. 그리고는 교수형이라도 내리는 것처럼 놈의 목에 밧줄을 둘러 현아와 마찬가지로 허공에 매달았다.
놈의 몸뚱이에 물벼락을 끼얹었다. 테이프로 입을 막아두었기에 놈이 돼지처럼 웅얼거리며 의식을 찾았다. 초라한 알몸을 드러내고 있는 놈이 간신히 제정신을 되찾자마자, 나는 커터칼로 사정없이 놈의 가랑이 사이에 달린 물건을 그어버렸다.
"우우우우웁!!!! 우우우웁!!!! 으우우우우웁....."
"읍!! 으읍... 으으읍!!!"
테이프로 입이 막힌 지환이 새끼가 처절한 비명을 지르는 것과 동시에, 속옷 조각이 입 속에 틀어박힌 현아도 공포로 넋을 잃고 비명을 질러댔다. 밖으로 새어나가지도 못할 두 년놈들의 비명소리 따윈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바닥에 놈의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무딘 커터칼로 그었다고 해서 물건이 대번에 싹둑 잘려나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깊은 상처가 난 것만큼은 분명했다. 벌어진 상처의 틈새에서 피가 콸콸 솟아 쏟아내리고 있었다. 지환이 새끼는 거의 눈동자가 흰색으로 뒤집어지며 실신에 이르려는 듯 보였다.
"니가 이 쓰레기 같은 물건으로 감히 서연이를....."
나는 커터칼 대신 채찍을 집어든 손으로 놈의 몸뚱이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현아를 내리칠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힘과 울분을 담아 놈의 몸을 도륙내듯이 있는 힘껏 난도질했다. 투박한 가죽의 줄기가 놈의 살갗을 뚫고 상처를 새길 때마다 놈은 미친 듯이 눈알을 부릅뜨며 고통에 몸부림쳤지만, 나는 그걸로도 모자라 맨주먹으로 놈을 두들기고 발길질을 가하는 등 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폭력을 놈에게 가했다.
"하아... 하아..."
구타를 가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놈의 몸이 축 늘어졌다. 기절한 걸까? 아니면 정말로 죽어버린 걸까? 여전히 놈의 사타구니에서는 벌어진 상처 틈새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놈이 죽어버리든 말든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놈이 의식을 잃고나서도 한동안 나의 구타는 계속되었고, 지환이 새끼를 대신하여 현아가 미친 듯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지만, 속옷 조각에 막혀 제대로 된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그녀의 발악을 나는 쉽게 무시해주었다.
어느 정도 광기가 가라앉았다는 생각이 들 때 쯤, 나는 타임 리와인더를 품에서 꺼내었다. 나는 예전에도 한번 숨어본 적이 있는 현아의 룸 옷장에 억지로 몸을 구겨넣어 모습을 숨겼다. 그리고는 그 캄캄한 옷장의 어둠 속에서 타임 리와인더의 시계바늘을 감았다.
이제 나는 다시 시간을 되돌아와, 현아의 룸 옷장에서 눈을 떴다. 타임 리와인더는 시간축을 이동시켜 주지만 공간축을 이동시켜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시간을 되감을 때 몸에 닿아있는 물체들은 모두 함께 시간을 되돌아간다는 법칙이 적어도 지금 내게는 훌륭한 복수의 수단이 되어주었다.
나는 그 캄캄하고 비좁은 공간에서 하염없이 가만히 기다렸다. 도중에 현아가 내 모습을 발견하기라도 한다면 다시 계획을 세우면 그만이니 걱정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녀는 내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고, 그렇게 또 한번의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나는 지환이 새끼가 방 안으로 들어와 현아를 만나는 장면을 옷장 속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현아와 지환이는 마치 그것이 익숙한 일인듯, 만나고나서부터 대화 몇 마디도 나누지 않았는데 금새 옷을 벗고 육체를 섞는 것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치가 떨린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지환이 새끼가 저 흉물스런 물건을 아직도 주렁주렁 달고 있다는 사실이 역겨울 뿐이었다.
나는 옷장 문을 박차고 나가, 테이블에 놓여있던 현아의 와인이 담긴 유리병을 집어들어 지환이 새끼의 머리통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유리조각이 사방으로 튀면서 몇 조각이 현아의 피부를 긁었는지 그녀가 비명을 질렀고, 지환이 새끼의 머리에서는 핏덩이가 튀었다. 현아의 기겁하는 비명소리가 내 귓전을 울렸지만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현아의 몸 속에 물건을 박은 채로 기절해있는 지환이 새끼의 뒤통수를 계속해서 내리쳤다.
"꺄아아아악!!!"
놈이 거의 시체가 되었을 때쯤, 현아의 겁에 질린 비명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다시 시간을 되감았다.
*
그 역겨운 스위트룸 안에서 그렇게 몇 번이나 시간을 되감았을까.... 시간을 되돌아갈 때마다 나는 지환이 새끼를 더욱 더 악랄하게 구타했고, 또 난도질했다. 몸에 묻은 핏자국은 시간을 돌린다고 해서 지워지지 않았기에 열번 쯤 시간을 되감아 돌아갔을 때 쯤엔 내 꼴은 영락없는 백정 내지는 광인이 되어 있었다. 오랜 시간을 되감으며 아무 것도 먹지 못한 몸뚱이가 괴로움을 호소했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
나는 이번에도 지환이 새끼를 가차없이 구타했다. 병으로 머리를 내리친 것으로 모자라 놈의 온 몸을 피투성이로 만들어버렸다. 테이프로 입을 막아놓은 현아는 바닥에서 흐느끼며 떨고 있었다. 피로 물든 놈의 몸뚱이를 싸늘하게 내려다보는 것이 왠지 무감각했다.
지금 여기서 내가 가책이나 두려움을 느껴버린다면.... 서연이가 너무도 불쌍해질 것만 같았다.
"죽은 건가?"
놈의 몸에서 흐른 피가 거의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죄책감은 느껴지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꼴좋다는 식의 통쾌함 따위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시간을 되감고 되감을 수록 점점 더 무뎌져 갈 뿐....
어쩌면 지금까지 되감았던 수차례의 시간들 속에서 나는 어쩌면 정말로 몇 번쯤 놈을 죽여버렸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이제 영락없는 살인자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시간을 되돌리면 모두 지워질 일이거늘....
"정말 그래?"
마음 속에서 또 다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도 정말 아무 것도 배운 것이 없어? 시간을 되감으면 모든 것이 지워진다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
"시끄러워."
그런 사고방식 때문에 소중한 사람들이 상처입는거야. 또다른 누군가가 상처입는 모습을 보고 나서, 그 기억을 영영 뇌리에 새기고 나서야 그 때 다시 한번 후회하겠지.
"닥쳐."
아빠는 그런 인간이니까.
마음 속에서 쉴 새 없이 나를 괴롭히는, 도무지 얼굴조차 떠올릴 수 없는, 그 누군가의 목소리를 이기지 못하고 나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점점 미쳐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달리 내가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빈사의 상태에서, 한 줄기 구원을 찾듯이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타임 리와인더의 바늘을 되감았다.
*
어둠 속에서 나는 한수의 뒤를 쫓고 있었다. 캠퍼스를 내려가는 한수 놈의 뒷모습은, 며칠 후에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게 될 인간치고는 너무도 평범해보였다. 지금 놈의 모습을 보고 악랄한 강간범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하긴 그 말이 사실일 지도 몰랐다. 애초에 내가 누군가를 자극하지만 않았다면,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 하지만 모두에게 희망적인 그런 해피엔딩의 이야기를 상정하기에는, 이미 서연이가 받은 고통이 내 마음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서연이가 그런 끔찍한 일을 당했던 것 또한, 내가 지환이 새끼를 몇 번이고 불구로 만들어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이미 지워져버린 일"로써 가볍게 치부해버린다면 모든 것이 마음 편하게 해결 될 문제였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어디 그게 지워진다고 해서 잊혀질 일인가?
퍼억! 하는 둔탁한 타격음이 인적 드문 골목길에서 울렸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흉기로, 지환이 새끼에게 그랬던 것처럼 한수 새끼의 뒤통수를 인정사정 없이 갈겨버렸고 놈은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나는 몇 차례고 놈의 몸뚱이를 때리고 밟았다. 힘이 빠져 다리가 풀렸을 때까지 말이다.
"하아...."
고깃덩이처럼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한수 놈의 몸뚱이를 내려다보며, 나는 숨을 뭉텅이로 뱉었다. 거칠게 달아오른 숨과 함께 구역질이 치밀어올랐다. 나는 그대로 한수 놈의 의식 잃은 몸뚱이 위에 토사물을 쏟아냈다.
"웩.... 웨엑...."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며, 눈물이 핑 하고 돌았다.
"도대체...."
도대체 이런 짓들이 이제와서 다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극도의 공허함이 속에서부터 꾸역꾸역 치밀어올랐고, 나는 그것들을 모조리 배설해내기 위해 쉴 새 없이 토악질을 해댔다. 분노, 후회, 허무, 환멸.... 갖가지 감정들이 구역질을 타고 몸 밖으로 꾸역꾸역 흘러나와 바닥에 쏟아졌다. 그렇게 끊임없이 토했다. 끊임없이....
*
"어라? 선배~~"
지친 몸을 이끌고 실성한 사람처럼 캠퍼스 주변을 벗어나려고 비척비척 걸음을 옮기는데,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처음엔 그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해서 그저 계속 걷기만 했다.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은 기어코 잰걸음으로 달려와 나를 붙들었다.
"뭐에요, 선배? 불렀는데 왜 그냥 가요~~"
"........"
이 계집애는 또 누구였지? 하는 의문을 꽤 오랫동안 떠올린 끝에, 나는 그녀의 이름이 예진이라는 사실을 떠올려 낼 수 있었다. 서예진. 서연이의 친구.... 왠지 지금은 서연이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그녀의 얼굴을 보는 것 자체가 지금은 거북하게 느껴졌다.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지금 집에 가는 길이에요~ 그런데 선배는 이 늦은 시간에 학교에 웬일로 남아있어요? 선배도 혹시 공부하다 가는 길인가요?"
"..... 저리 가."
나는 제발 내가 구구절절한 설명을 늘어놓을 필요 없이, 그녀가 알아서 사라져주기를 바랐다. 평소에도 짜증이 날 정도로 내게 주책맞았던 이 계집애의 태도가 지금 같은 상황에서 더 좋게 느껴질 리는 없었다. 하지만 하필 이 계집애는 오늘 같은 날, 유독 나를 더욱 피곤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 참~ 선배 시간 있으면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고 갈래요? 특별히 내가 살게요."
"저리 가라고."
"에이, 그러지 말고 내가 조용히 얘기하기 좋은 곳을...."
"꺼지라고 했지!"
순간,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만한 분노가 안에서부터 버럭 치솟아 나는 그녀의 목을 덜컥 졸랐다. 그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공포로 굳었지만 나는 이미 목을 조르는 정도로 멈추지 않고 예진이를 길바닥에 팽개친 후, 그녀의 옷을 사정 없이 벗겨내거나 찢어버리고 있었다.
"서, 선배.... 왜, 왜 이래요...."
"씨발년아! 내가 꺼지라고 했지? 왜 좆같이 말을 안 들어! 왜!"
"선배...."
"그래, 이 개 같은 년아. 니가 원했던 대로 내가 어떤 놈인지 보여줄게. 인간 최성진이 얼마나 쓰레기같은 새끼인지 내가 직접 보여주겠다고. 그러면 돼? 그러면 만족하겠냐고?"
실성해서 미친 듯이 지껄이며 예진이의 블라우스 단추를 힘껏 잡아당기던 나는, 어느 순간 손을 뚝 멈추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볼을 타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역겨움을 주체할 수 없어 입술을 꽉 깨물자 찢어진 입술에서 흘러나온 피가 입 안으로 흘렀다.
"제발.... 꺼져."
"........"
내가 예진이를 놓아주자마자 겁에 질린 그녀는 몸을 일으켜 순식간에 어디론가 도망쳐버렸다.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미치광이처럼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해 하염없이 걷기 시작했다.
*
술에 취한 사람이 용케도 자신의 집을 찾아가듯이, 나는 그 와중에도 원룸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 모든 일들에도 불구하고 그 건물이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이 왠지 견딜 수 없을 만큼 우습게 느껴졌다. 숨을 토해내면서 나는 전봇대 근처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품 속에서 타임 리와인더를 꺼내, 또다시 바늘을 되감았다.
방금 전까지 달이 떠있었던 어두컴컴했던 하늘이, 눈 깜짝할 사이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는 초저녁의 붉은 하늘로 바뀌어있었다. 이렇게 내가 저지른 악행이 또 한번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다.
"하, 하하... 하하하하."
혐오감이 극에 달하니 왜 웃음이 나오는 걸까. 미친 놈 같으니....
"쉬고 싶어.... 잊어버리고 싶어."
물론 잊혀지지 않을 거야. 하지만 잠깐만이라도 잊고 싶어. 이대로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뜨면, 한층 마음이 개운해져 있을 것 같아. 그렇게는 안 되는 걸까?
"......오빠?"
그 때, 나는 천사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가 그 때 나를 불러주었던 것은 내게 있어 일종의 구원이었으니.
"유정아....."
나는 힘없는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저녁 노을을 등진 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눈부시게 느껴졌다. 또 바보같이 눈물이 흐를 만큼 그녀의 얼굴을 보는 것이 반가웠다.
"오빠, 왜 그래요...? 괜찮아요? 왜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유정아."
나는 마치 홀린 듯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 와중에도 내 손을 조심스럽게 마주 잡았다.
"나.... 나 오토바이 태워줄래?"
"네?"
뜬금없는 물음에 유정이가 토끼눈을 뜨고 나를 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대답이 나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다.
"좋아요.... 그런데 오빠 괜찮아요?"
"으응. 괜찮아. 지금은 너랑 있고 싶어."
유정이는 조심스럽게 나를 이끌어 차고의 바이크 앞까지 나를 데려갔다. 언제부터인지 그녀는 여분의 헬멧을 구비해 다닌 것 같았다. 그녀는 머리에 헬멧을 쓰더니, 내 머리에도 헬멧을 하나 씌워주었다. 내가 안장에 잘 올라타 있는지 확인한 그녀는 내 두 팔을 이끌어, 나로 하여금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붙들게 했다.
유정이가 엑셀을 당기자 익숙한 느낌의 바이크가 엔진 소리를 내며 앞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불어오는 바람이 몸을 녹일 듯이 우리를 쓸고 지나가자 나도 모르게 눈이 스륵 감겼다. 나는 유정이를 끌어안은 팔에 더더욱 힘을 주었다. 가녀린 그녀의 허리를 꽉 끌어안을수록 어쩐지 마음 속에서 포근함이 피어올랐다.
이마를 스치는 그 바람결이 안식을 싣고 오기라고 한건지, 점점 더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이런 편안함을 느낀다는걸 유정이도 느끼고 있을까. 이렇게 몸을 맞대고 있으니 내가 얼마나 그녀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고, 그녀도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 마음 때문에.... 유정이가 위험해 질 뻔 했어."
잊으려고 해도 그 사실만큼은 잊을 수가 없었다.
한심하게도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유정이도 느낀 것 같았다. 눈물방울이 등에 닿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몸의 떨림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서로의 몸이 이렇게 붙어있는 지금 이 순간, 그런 교감이 흐르고 있다는 것 정도는 누가 말로 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유정이는 딱히 정해지지 않은 여러 방향으로 바이크를 몰았다. 아마 내게 좀 더 다양한 풍경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녀는 우리가 처음 만났던 강변도로에서부터 시작해 해가 저물고 있는 고즈넉한 동산을 넘었고, 벌레 소리가 찌르르 울리는 풀숲길을 가로질러 잔잔하게 달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공원 근처의 인적이 없는 풀밭을 샛길 삼아 달리고 있었다. 그리 오래 달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도심으로부터 꽤 멀어진 것 같았다. 언제 이만큼 온걸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유정이가 갑자기 바이크의 속력을 줄였다.
"왜 그래? 기름이 없어?"
그때 나는 멍청하게도 그딴 소리를 했던 것 같다. 오토바이의 시동을 꺼버린 유정이는 풀밭 테두리에 바이크를 세우고는, 말없이 헬멧을 벗었다. 그녀가 헬멧을 손잡이에 걸어두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여전히 멍청하게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나의 헬멧을 위로 들어올렸다.
"어...?"
헬멧이 벗겨졌고, 맨얼굴에 밤바람이 와서 닿았다고 생각한 순간 유정이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었다. 보드랍고 말랑한 입술이 메마른 내 입술을 끌어안듯이 보듬었다. 나는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너무도 포근하기도 하여 감히 그 입술을 거부하지 못하고 살며시 유정이의 몸을 끌어안았다.
바이크의 안장 위에 앉은 채, 바닥을 딛고 서있는 유정이와 키스를 하게 될 거라곤 내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남녀의 모습이 뒤바뀌어 있는 것 같았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그 아늑한 느낌에 빠져들었다. 팔을 뻗어 유정이의 몸을 더욱 끌어안으니 그녀가 나에게로 가까이 당겨져왔다.
그것은 혀를 쓰지 않은, 차라리 뽀뽀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도 가벼운 행위였다. 하지만 유정이와 입술을 맞대고 있는 이 순간이.... 내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치유의 시간이었다. 머릿속에서 퍼지기 시작한 아늑한 빛이 모든 괴로운 기억을 씻어주는 것만 같았다.
얼마나 그렇게 오래 입술을 맞대고 있었을까. 우리는 입술을 떼고 잠깐 동안 떨어졌다.
"오빠가 너무 슬퍼보였어요."
유정이는 마치 변명을 하듯이 그런 말을 했다. 그녀는 쑥스러운 얼굴로 내 시선을 피하며, 아까 전에 내가 흘렸던 눈물 자국이 여전히 남아있는 뺨을 두 손으로 쓰다듬었다.
"나는 지금 오빠의 마음을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오빠가 이렇게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는게 나에게도 괴로운 일인 것 같아요. 어떻게든 오빠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내가 오빠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
그 순간의 우리에게 구태여 더 긴 대화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나는 유정이의 몸을 끌어안고 그대로 그녀와 함께 풀밭 위로 쓰러지듯 누웠다.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허겁지겁 윗옷을 벗었고, 보들보들한 잡초의 감촉이 느껴지는 풀밭 위에 아무렇게나 윗옷을 넓게 펼쳤다. 그리고는 그 위에 유정이의 몸을 눕혔다.
그녀는 나를 안심시키고 싶어하는 듯, 자꾸만 내 등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나는 그녀의 뒷목을 끌어안고 다시금 그녀와의 키스에 열중했다. 처음에는 입술의 감촉을 확인하는 듯한 가벼운 키스가 몇 번 이어졌고, 그 후에는 유정이의 입술이 열렸다. 혀와 혀가 얽히기 시작했다.
"흐음...."
사방이 탁 트인 풀밭에서 유정이와 키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좀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그런 비현실의 감각이 필요했다. 모든 것을 잊고 차라리 몽환의 나라로 나를 인도해 줄 무언가가 간절했다. 유정이는 나에게 그런 감각을 새겨줄 수 있는 여자였다.
"하아...."
숨이 가빠졌다. 흥분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또 바보같이 찔끔 눈물이 흘렀다. 유정이는 나를 안쓰러워 하는 듯이 내 얼굴을 매만졌다. 두 뺨을 양손으로 감싸쥔 그녀가.... 무슨 생각인지 내 얼굴을 자신의 얼굴 가까이로 끌어당기더니 눈물방울을 혀로 훔쳤다. 그 원색적인 행위가 왠지 내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사막에서 물 한모금을 탐하는 것처럼 나는 허겁지겁 유정이의 상의를 위로 말아올렸다. 까딱하면 누가 볼지도 모르는 이런 위험한 곳에서 새하얀 속살을 드러낸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특히나 조심스러운 일이었겠지만, 그녀가 나를 말리지 않는다는게 너무 기뻤다.
옷을 위로 말아올리니 그녀의 가슴을 몇 겹으로 친친 두르고 있는 무명천이 보였다. 브래지어를 벗기듯이, 나는 그녀의 가슴 부근을 더듬어 매듭을 발견하고는 그걸 어렵사리 풀어냈다. 맨들맨들한 촉감의 무명천이 올올이 풀려나가면서 유정이의 순진한 얼굴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그 커다란 젖가슴이 모습을 드러냈다.
"으응...!"
유정이의 입장에선 조금 과격하다 싶을 정도로 예고도 없이, 나는 그녀의 대접 같은 유방 하나를 입 안 가득히 덥썩 물었다. 젖꼭지가 혀에 닿자마자 그녀가 고양이 울음 같은 소리를 흘렸다.
손 끝으로, 혀 끝으로, 그리고 마주 닿는 피부의 감촉으로.... 나는 촉감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감각을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내가 그녀의 젖가슴을 빨아당기자 유정이는 내 머리를 두 팔로 끌어안고 나를 자신의 몸에 가까이 붙였다.
그 순간의 내 모습은 여인을 탐하는 남자라기보다는, 차라리 어머니의 품에서 젖을 빨며 칭얼거리는 어린아이의 모습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숨이 막힐 정도로 깊이 파묻힐 수 있는 유정이의 그 커다란 젖가슴 또한, 그 순간의 내게는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안식처에 더 가까웠다.
"오빠.... 울지 말아요."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목소리에 이어서 그녀의 혀 끝이 내 얼굴에 닿자 나는 움찔 놀랐다. 마치 난도질을 당한 짐승의 살가죽을 어루만지듯이, 유정이의 혀가 내 뺨을 긁었고 점점 아래로 내려와 목을 핥았다. 그녀의 손길이 너무도 과감하게 나의 맨살을 더듬자 나는 그만 뻣뻣하게 굳어졌다.
유정이는 아랑곳 않고 내 피부를 핥는 혀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은 채, 점점 더 아래로 내려와 가슴팍에서부터 배를 애무했다. 동물들이 서로의 육체를 더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 원색적인 행동.... 유정이가 내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게 놀라웠다.
그녀의 두 손이 내 허리춤을 붙들고 바지를 끌어내리려 했을 때, 나는 왠지 불편한 마음에 그녀를 말리고 들었다.
"유정아.... 괜찮아. 거기는...."
"싫으세요?"
청바지를 내리려다 말고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는 유정이의 두 눈을 마주보고 있자니,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턱이 없었다. 고요하지만 단호함이 느껴지는 그녀의 그 표정과 눈빛이 그 순간에는 차라리 고마웠다.
내가 대답을 않고 머뭇거리자, 유정이는 다시 바지를 벗겨내리기 시작했다. 힘들게 바지가 무릎께까지 내려갔고, 속옷도 어정쩡하게 허벅지 부근까지 내려갔다. 그러자 안에서 꿈틀대고 있던 물건이 튕겨오르듯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순간엔 어쩐지 그것이 조금 창피하게 여겨졌다.
성기라는 물건은 왜 뇌의 인식과 관계없이 움직이는 물건인 걸까? 아니면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여자가 유정이기 때문일까? 좌우지간 이 상황에서도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내 물건이 신기하면서도 조금은 한심하게 느껴지는.... 그런 복잡한 기분이었다.
"아....!"
태어나서 오랄 애무라고는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을 그녀가, 단호한 태도로 내 물건을 입에 머금자 나는 바보같이 높게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그 어떤 기교도 자극도 없었지만, 그녀가 내 물건을 입에 물었다는 그 자체만으로 나는 달아오른 것이다.
유정이의 입 안에서 따스한 점막이 느껴졌다. 조금은 쭈뻣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혀가 조심스럽게 내 물건을 건드렸다. 따스함을 넘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떤 극도의 안온함이 내 몸뚱이를 감싸안았다. 마치 다른 세상에서 잠시 눈을 뜬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늘을 날고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하아...."
남자의 물건을 생전 처음으로 입에 물어보는 유정이에게, 화려한 테크닉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녀의 애무가 내 현실의 아픔을 잊게 하고 있었다. 그녀의 혀가 내 살갗에 한번 닿을 때마다 거무튀튀한 모든 것들이 조금씩 씻겨나가는 것만 같았다.
나는 유정이의 몸을 번쩍 안아들고는, 그녀를 거꾸로 뒤집어 내 몸 위에 태웠다. 웬만큼 익숙해진 연인 사이라도 좀체 시도하기 부끄러운 69 체위를.... 유정이와 시도해본다는게 조금은 무모하게 느껴지기도 했으련만, 그 어떤 망설임도 지금의 교감을 갈라놓을 수가 없었다.
"읏...."
내가 유정이의 엉덩이를 내 얼굴 쪽으로 들게 하고는, 그녀의 바지를 끌어내려버리니 유정이가 약간 움츠러드는 듯한 소리를 냈다. 가장 은밀한 곳을 모조리, 그것도 상대의 얼굴 바로 앞에 드러내어야 하는 이 자세가 그녀로서는 어렵게 느껴졌을 것이다.
아랑곳 않고 그녀의 조그마한 팬티를 엉덩이 아래로 걷어버렸다. 탱글탱글한 살덩이가 밤하늘 아래에서도 비단처럼 반짝하고 빛났다. 달빛이 은은했기 때문에 그리 노골적으로 모든 것이 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유정이의 풍만한 엉덩이를 두 손으로 부드럽게 움켜쥐면서, 그 사이를 혀로 낼름 핥았다.
"하윽...."
유정이는 내게 엉덩이를 들이민 채로, 부끄러워하며 내 배 위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하지만 내가 멈추지 않고 그녀의 계곡 틈새를 혀 끝으로 줄기차게 핥고, 더듬자 그녀도 머뭇거리면서 내 물건을 다시 입 안에 물었다.
야외 들판에 누워 서로의 성기를 적나라하게 핥고 있는 이런 우리의 모습이, 물론 조금은 부끄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외설적인 행위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위로를 내가 느끼고 있다는 걸..... 유정이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무모하리만치 위험한 이런 행위에 그녀가 따라와주는 것 또한 그 때문이리라. 그래서 고마웠다.
"하아.... 오빠. 부끄러워요...."
"싫어?"
"아니.... 그건 아니지만."
어쩌면 유정이도 그저 수동적으로 나를 따라오는 것만이 아닌, 그녀 스스로 어떤 자극을 느끼고 있었던 걸까. 음순 주변과 공알을 핥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혀 끝에서 찝찔한 맛이 배어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유정이도 달아오르는 걸까? 내 행위로 인해서?
"아흑... 하윽... 흣....!"
그녀의 신음소리가 점점 더 애달파지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녀가 나로 인해 반응해준다는 것이 행복했다. 온 힘을 다해 나는 그녀의 은밀한 곳을 애무하고, 또한 그 행위로 인해 스스로 위로받았다. 그 와중에 유정이도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내 물건을 애무해주었다.
"하아.... 유정아. 여기 잡아볼래?"
"네....?"
나는 유정이로 하여금 풀밭 근처의 느티나무 하나를 짚고 서게끔 만들었다. 버석버석한 나무의 표면에 유정이가 두 손을 얹고, 조금은 어정쩡하게 내게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바지와 팬티가 채 벗겨지지 않고 어중간하게 허벅지와 무릎에 걸려 간신히 엉덩이만 드러나 있는 상태였지만, 그 모습이 그렇게나 자극적일 수가 없었다.
"엉덩이 더 들어."
처음 시작했을 때의 상처입은 기분도 잊고, 나는 이제 좀 더 성욕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픔이 씻겨내려가고 나니 다시 욕망에 충실하게 되는 내가 어지간히도 한심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잠시나마 나는 지금 행복하고, 그것이 유정이가 바랬던 것이라 믿었다.
강하디 강한 유정이가 내 말 한마디에 순종적으로 엉덩이를 치켜드는 것이 좀체 믿기지 않았다. 어쩌면 수컷으로서 충분히 정복욕을 느껴도 좋았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그런 기분보다도 그저, 눈 앞에 있는 이 여자가 너무도 사랑스러웠고, 온 힘을 다해 사랑해주고 싶었다. 단지 그 뿐이었다.
"하아악....!"
굵은 느티나무에 손을 짚고 앞으로 엎드린 유정이에게, 나는 후배위로 천천히 삽입했다. 미끌미끌하게 젖어있던 구멍에 귀두가 틀어박혔다. 남자의 물건을 난생 처음으로 받아들인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뻑뻑한 질구는 그리 쉽게 열려주지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서 이것은 조금 과격한 시도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유정이의 엉덩이를 양손에 한쪽씩 움켜쥔 채로, 조금 더 힘주어 그녀의 안쪽을 향해 물건을 밀어넣었다. 그러자 유정이가 히끅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나무표면을 더욱 힘주어 붙들었다.
"아흐윽....!"
자지가 그녀의 몸 안쪽에 거의 반쯤 빨려들어갔다. 유정이가 한번 더 신음을 질렀지만 나는 머리가 핑 하고 도는 것 같은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엄청난 조임 때문이었다.
이전에도 느꼈지만 유정이의 그곳은.... 내가 여지껏 겪어본 적이 없는, 그리고 앞으로도 그녀 외의 여자에게서 다시는 느껴볼 일이 없을 것만 같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명기였다. 명기라는 것은 직접 느껴보기 이전엔 아무리 말로 설명을 들어도 무슨 느낌인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직접 맛을 보고 나면 그 느낌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마치 퍼즐조각을 꼭 맞게 끼워맞추듯이, 내 자지를 완벽한 감촉으로 사방에서 감싸고 물어주는 그 탄력 넘치는 구멍의 움직임에 나는 전율하고 말았다. 겨우 반만 넣었을 뿐인데 이런 황홀한 감촉이라니.....
"하아....! 유정아.... 움직일게."
"하아응.... 으흑....."
힘주어 허리를 앞뒤로 퉁겨올리니 피스톤질의 덕을 보는지, 자지가 서서히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가기 시작했다. 안에서 샘솟는 윤활유의 양도 다행히 조금씩 더 늘어나고 있었다. 귀두 끝에 그녀의 뜨끈하고 끈적한 애액이 적셔졌다고 생각했을 때쯤 그녀의 몸 속에 내 물건이 끝까지 박혔다.
무엇보다 처음에는 다소 아파하는 것 같았던 유정이가, 피스톤질의 속력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 뜨겁고 끈끈한 신음소리를 흘리기 시작했다는 것이 가장 기뻤다. 그녀는 혹시나 누가 들을까 싶어 되도록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것 같았지만 갈수록 소리를 억누르는 것이 힘들어지는 눈치였다.
"하아아... 아앙... 하아아응... 으아.... 하악.... 아아앙....!!"
- 철썩철썩철썩....!
달빛이 고요하게 내려앉은 풀밭 위에서, 우리는 나무를 기둥 삼아 더없이 원색적인 모습으로 성교를 즐기고 있었다. 유정이의 탱탱하고 풍만한 힙이 내 허벅지와 부딪혀 뭉개지면서, 파도가 흩어지듯이 철썩거리는 소리를 들판 위에 메아리처럼 울려댔다.
그녀의 엉덩이를 주무르는 손길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없었던 힘이 안쪽에서부터 조금씩 솟아나는 것 같은 느낌. 내가 살아나고 있는 것만 같은 그 기분.... 황홀함을 넘어서 다시 태어나는 것만 같은 경외로운 감각.
"아...."
눈물이 흐를 만큼 행복했다. 지금의 내가 감히 행복이란 기분을 느껴도 될지 자괴감이 들었지만, 행복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걸 거부하는 순간 나는 죽어버릴 것만 같았으니.
"으응....! 아응.... 오... 오빠, 나.... 좋아요.... 기분 좋아요.... 하아..... 행복해요. 오빠는요....?"
"으응... 나두.... 너무 좋아.... 너랑 영원히 이렇게 있고 싶어....."
"얼굴.... 얼굴 보고 싶어요, 오빠."
유정이의 애달픈 목소리를 듣고 나는 자세를 바꾸었다. 그녀의 엉덩이 아래로 줄기차게 넘나들던 내 물건을 뽑고는, 유정이의 한쪽 다리를 들어 그녀의 허벅지를 내 팔 위에 얹었다. 마치 강아지가 소변을 보는 것처럼 한쪽 다리로 위태롭게 서서 내 팔 위에 다리를 올린 그녀의 모습이 무척 야하게 느껴졌다.
달빛 아래에서 번들번들하게 젖은 내 물건이 은은한 광택을 발했다. 유정이의 안쪽에서 흘러나온 애액들이 묻어있다는게 왠지 야릇하게 느껴졌다. 한쪽 다리를 들어올린 채로, 나는 유정이를 마주보고는 앞으로 다시 삽입했다.
"으응....!"
나무 표면에 그녀의 맨살이 닿지 않도록 등을 감싸안은 채, 나는 힘차게 유정이의 얼굴을 마주보며 좆질을 이어나갔다. 쾌감으로 뜨거워져 있는 유정이의 얼굴을 보는게 정말 좋았다. 그녀의 눈망울이 흔들리면서 눈꺼풀이 쉴 새 없이 깜빡거렸다. 나는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키스했다.
"하아.... 오빠.... 너, 너무 좋아요.... 어떡해...."
"나도 그래.... 하윽...."
"아....! 세상에.... 엄마....."
어머니와는 관계가 소원하다더니, 극한의 상황에 이르자 유정이도 여느 여자아이들처럼 엄마를 애타게 찾기 시작했다. 사랑스럽다는 기분 밖에 들지 않았다. 더더욱 힘주어 허리를 놀렸다. 살이 부딪히며 철썩거리는 소리가 울렸고, 질컥거리는 낯뜨거운 물소리도 간간히 새어나왔다.
"안에 하고 싶어.... 안에 해도 될까?"
"으응.... 잘 모르겠어요...."
애매모호한 대답. 그녀가 차라리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했다면 나는 멈출 수 있었을까. 그거야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그 순간의 그 애매한 대답만으로는 황홀함이 절정에 다다른 느낌을 제지할 수 없었다. 나는 마치 녹아내리듯이, 한편으로는 날아오르는 듯이 그녀의 안쪽에 그대로 뜨거운 덩어리를 울컥 토해냈다.
"하아...!"
"하윽...!"
사정의 순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부르르 몸을 떨며 서로 절정에 올랐다. 극도의 여운이 몰려오며 우리는 사정 이후에 찾아오는 전율을 즐겼다. 여전히 옷을 반쯤 벗은 채로, 야외에서 서로의 몸을 연결한 채, 땀에 젖은 몸을 꽉 끌어안고 그렇게 한동안 서 있었다.
"하아.... 오빠...."
"응?"
"사랑해요."
"......."
나 같은 인간에게는 유정이의 그 한 마디가 너무도 과분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유정이의 몸을 조심스럽게 안아들어, 아까 풀밭 위에 펼쳐놓았던 내 겉옷 위로 조심스럽게 그녀를 눕혔다. 비록 조촐한 공간이긴 했지만, 격렬한 사정 후에 서로 끌어안고 누울 수 있는 곳이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나도 사랑해."
"정말요?"
"응?"
"정말 날 사랑하나요?"
확인 받고 싶었던 걸까. 그녀는 재차 물었다.
"응... 정말로 사랑해."
"그럼 하나만 약속해줄래요?"
"뭔데?"
다정한 연인처럼 풀밭 위에서 서로의 몸을 끌어안고 누워있으니, 설령 그녀가 하늘의 별을 따달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해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가만히 내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내 곁에 있어줄 수 있나요?"
조금은 이상하게 들리는 질문이었다.
"물론이지."
"충분히 생각하고 나서 대답을 해 줘요."
"알았어."
잠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뜸을 들이다가, 나는 충분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을 때 쯤 재차 말했다.
"네가 어디에 있든 네 곁에 있을게."
"정말이죠?"
"응. 약속해."
어린아이들처럼, 우리는 서로의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러자 그녀가 배시시 웃음을 지었는데, 여지껏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소녀 같은 웃음이었다. 그 웃음이 넋이 나갈 만큼 사랑스러워 나는 그녀의 몸을 끌어안은 팔에 더더욱 힘을 주었다.
"그런데 오빠."
"응?"
어쩐지 졸음이 밀려왔다. 이대로 잠들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오늘 위험한 날이었던 것 같은데.... 혹시 아이라도 생기는 건 아니겠죠?"
"글.... 쎄."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고 나니, 조금씩 이성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유정이는 꽤 신경 쓰이는 듯한 얼굴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절이라도 좀 할걸 그랬나. 하지만 매번 그렇듯이 그런 후회는 지나가고 나서 해봐야 늦은 법이었다. 편하게 마음을 먹을 수 밖에 없겠지.....?
"괜찮을거야. 아마도...."
"그런가요?"
문득 머릿속에는 희뿌연 거울처럼, 잘 보이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흐릿하게 존재하고 있는 어떤 기억 하나가 떠오르고 지나갔다. 유정이와 나의 아이....
유정이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어떨까? 분명 아이도 낳게 되겠지. 유정이가 낳은 아이라면 분명히 사랑스러울 거야. 아빠로서 비뚤어지지 않게 잘 키워야겠지. 그런데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은 뭘로 할까?"
"네에?"
유정이가 무슨 소리냐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새된 목소리를 냈다. 나도 아차 싶어 뒷머리를 긁으며 멋쩍게 변명했다. 왜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입에서 튀어나온건지.
"아, 농담이야."
"무슨 그런 농담을 해요?"
"미안...."
팔푼이처럼 사과하는 모습에 유정이는 약간 핀잔을 주듯이 내 뱃가죽을 꼬집었다.
"그런 말은.... 결혼을 하고 나서 하는 거에요."
"결혼...."
혼자 상상했을 때는 몰랐는데, 그녀의 입을 통해서 그 단어를 들으니 왠지 그것이 너무도 깊고 무거운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는 괜시리 숙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오빠."
"응?"
자꾸만 감겨오는 눈을 억지로 뜨려고 나는 애썼다. 유정이가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온 힘을 다해 그녀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녀는 웬일인지 나를 퍽 김새게 만들었다.
"음.... 아니에요."
"에이, 뭐야."
언제부터인가 밤하늘은 늘 공해로 뒤덮혀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별들이 유난히 반짝이고 있는 것 같았다. 왠지 은하수가 내려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캄캄한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은 별들을 보면서 나는 유정이의 몸을 더욱 끌어안았다.
심장이 평온하게 뛰고 있었다.
- 다음 화에 계속 -
고맙습니다... 지난 화의 댓글을 통해서 많은 분들이 제게 힘을 주셨습니다
요며칠간은 정말로 소라에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회의를 느낄 만큼 기운이 빠지기도 했는데
너무나 많은 분들이 제게 힘을 주시고, 제 마음을 헤아려 주셨습니다
모든 분들로부터 칭찬을 듣는 글쓴이가 되겠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제 표현의 자유를 존중받고 싶었습니다
저를 존중해 주시는 분들의 격려와 응원에서 진심이 느껴져서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한분 한분에게 모두 감사합니다
좋은 저녁 되세요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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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1-26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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