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꿈꾸는 늑대 128부
화랑들은 심리적으로 ?기고 있었다. 자신들을 지휘하던 전대사군자중에서 국(菊)과 국을 따르는 화랑들은 자신들을 배신했고 란(蘭)과 죽(竹)은 천랑파에 당했다. 이제 남은 것은 매(梅) 뿐이다. 그나마 매도 링링에게 ?기며 화랑들을 지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남장로와 무석이 지휘하고 있지만 화랑들의 귀에 그들의 명령이 들리지 않는다. 전투는 혼전 상황이다. 화랑, 기동대, 친위대가 한데 엉켜서 피아를 구분하기 힘들다. 피가 난무하고 육편(肉片)이 굴러다닌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옆에 있던 누군가가 피를 토하며 쓰려진다. 아군인가 아니면 적(敵)인가. 그건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공격하는 모든 이를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무석은 화랑들의 보호를 받으며 화랑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자신이 이끌고 온 화랑은 일천오백화랑이다. 그런데 전대사군자 국(菊)이 이끄는 이백오십 명의 화랑들은 자신들을 배신하고 천랑파에 붙여버렸다. 거기에 처음 버스들의 충돌사고로 백여 명의 화랑들이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천랑파 기동대에게 당했고 천랑파의 매복공격으로 또 많은 화랑들이 희생당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화랑들이 얼마나 있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장내를 살펴보면 화랑보다 천랑파가 더 많이 보인다. 천랑파의 숫자는 계속 늘어난다. 도대체 천랑파는 얼마나 많은 인원을 준비할 것일까? 자신이 파악했던 천랑파의 전력은 기동대 300여 명이 전부였다.
저택을 출발한 기동대가 전투에 참가했다. 그들은 계속된 전투로 심신이 치진 화랑들을 공격했다. 화랑들은 새롭게 나타난 적에 절망감에 빠진다. 도대체 적(敵)의 수를 모르겠다. 무석의 말로는 천랑파의 전력은 삼백 명의 기동대가 전부라고 했다. 그런데 검을 들고 설치는 저놈은 뭔가? 거기에 또 다시 몰려오는 기동대는 뭐란 말인가? 천랑파는 또 얼마나 많은 병력을 감추고 있을까? 천랑파 마르지 않은 샘처럼 계속해서 새로운 병력을 전장에 투입하고 있었다. 이제 지쳤다. 쉬지도 못하고 한 시간이 넘게 싸우고 있다. 그런데 계속해서 새로운 적이 나타난다. 옆에 있던 동료의 팔이 날아가며 피가 솟구친다. 비틀거리던 동료의 머리위로 쇠파이프가 날아와 머리통이 잘 익은 수박처럼 터져버린다. 동료의 죽음을 보았으니 악에 바쳐 복수를 해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등이 따끔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처음 보는 녀석이 자신의 등에 검을 쑤셔 박았다. 통증은 없다. 숨이 막힌다. 검이 폐를 관동한 모양이다. 억지로 팔을 들어올려 자신의 등에 검을 쑤셔 박은 녀석을 향해 내리치려 했다. 이번에는 다리에 사늘한 느낌이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밑으로 내려다보니 다리 한쪽이 없다. 몸이 기우뚱거리더니 바닥으로 넘어진다. 힘들다. 그만 쉬고 싶다. 눈꺼풀이 무겁다. 눈을 감으면 편안해 질 것 같다. 눈을 감았다. (십팔~) 어떤 놈이 가슴을 밟고 간 모양이다. 그는 그대로 정신의 끈을 놓았다.
원예와 사군자는 삼십 명의 화랑들을 처리하고 약속대로 저택으로 향하고 있었다.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이 가까워질수록 원예와 사군자의 얼굴이 그늘이 드리워진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화랑들의 피해가 너무 크다. 일천 명이 넘던 화랑들이 반도 남지 않았다. 화랑들은 계속된 전투와 심리적 타격으로 사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에 반해 천랑파의 기동대와 친위대의 사기는 하늘을 찌른다. 이대로 시간이 지난다면 갈치파는 전멸할 것이다. 화랑들이 모두 희생당하는 것이다.
링링의 검이 전대사군자 매(梅)의 가슴을 향해 날아간다. 매는 비틀거리며 검을 피한다. 검이 어깨를 스치며 피가 튄다. 매도 지쳤다.
“아줌마.......지쳤어.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가더니 이젠 힘든가 보네.”
매는 악이 바친다. 자신의 나이가 몇인가? 이 나이에 저런 어린계집에게 언제까지 도망 다녀야하는가? 다치지만 않았다면 저런 년에게 당한 자신이 아니다. 매는 처음 사고 때문에 다리를 다쳐 고전하고 있었다. 매는 이를 악물고 링링을 공격했다. 이제 도망치기도 지쳤다. 매의 검이 링링의 신봉혈(가슴)을 향해 날아온다.
“어머~ 이제 아줌마가 공격하는 거야. 그래~ 진작 그렇게 나왔어야지.”
링링은 매의 검을 쳐내고 좌우 십자로 매의 가슴을 베어간다. 매도 물려나지 않고 링링의 검을 맞받아친다.
“짱~~~ 크윽~”
매의 검이 밀리며 가슴 부근이 베어진다. 링링의 힘에 밀린 것이다.
“아줌마 가슴 나왔다. 와~ 크다.”
매는 불길이 일듯 화가 났다. 이제 이판사판이다. 그녀는 젖가슴을 가릴 생각도 하지 않고 링링을 공격했다. 매의 검이 바람을 가르며 링링의 목을 향해 날아왔다. 링링은 피식 웃더니 다리를 굽혀 매의 검을 피하고 가슴으로 파고들며 검으로 매의 배를 관통해 버린다.
“욱~.......쿨럭..........쿨럭.”
매은 입에서 검붉은 피를 토한다.
“아줌마. 이제 쉬어.”
링링은 매의 옥침혈(뒤통수)를 가격하니 매의 몸이 스스로 내려가 바닥에 쓰려진다.
미희는 이제 허리에 두른 18자루 비도와 소매에 감춘 2자루 비도만 남았다. 준비했던 모든 비도를 화랑들에게 날린 것이다. 미희는 다시 한 자루 비도를 빼냈다. 하지만 마땅히 던질 곳이 없다. 장내가 어수선하게 엉켜있는 것도 있지만 화랑에게 밀리고 있는 친위대나 기동대를 찾기 힘들다. 기동대와 친위대는 일반적으로 화랑들을 밀어 붙이고 있었다. 미희는 비도를 들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수혼은 전대사군자 란(蘭)을 처리하고 장내를 살펴보았다. 이제 전세는 기울어졌다. 화랑들을 지휘하던 전대사군자는 모두 제거되었다. 지휘자를 잃어버린 화랑들은 우왕좌왕하며 기동대와 친위대에게 일반적으로 밀리고 있다. 이제 전장에서 피를 토하고 쓰려지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화랑들이다. 기동대와 친위대는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이와 반대로 화랑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계속된 전투로 인한 피로로 힘을 쓰지 못한다.
무석도 전세가 완전히 기울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대로 가면 화랑들은 전멸이다. 하지만 멈출 순 없다. 이번 전투에서 패하면 갈치파는 끝이다. 또한 자신은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전투에 나오지 않았는가? 어차피 끝이라면 끝까지 싸우다 죽은 것이 깨끗할 것이다. 무석은 화랑들에게 마지막 한명까지 싸울 것을 명령했다.
원예와 사군자는 저택으로 향하지 못하고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화랑들이 허망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물러나........항복하란 말이야. 이미 전세를 기울어 졌어. 물러나.”
원예가 화랑들에게 소리치지만 화랑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싸우고 있었다.
“원예님~ 소용없어요. 이미 죽기를 각오한 모양입니다.”
“안돼. 싸움을 끝났어. 승패는 이미 결정됐어. 더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하단 말이야.”
“차라리 무석이놈과 장로로 죽여 버려야 해요.”
란이 한마디 하며 공중으로 솟아올라 화랑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무석에게 날아갔다. 맞다. 무석이놈과 장로 놈을 제거하면 화랑들도 싸움을 멈출 것이다. 수영도 란을 따라 몸을 날렸고 좌우에 있던 국(菊)과 죽(竹)도 원예를 따라 몸을 날렸다.
떨어지는 란을 향해 몇 자루 검이 날아온다. 란의 몸이 회전하며 화려한 그림자들이 피어나 화랑들에게 떨어진다. 화랑들은 그림자들을 베어버리고 란을 공격한다. 무석을 보호하는 화랑들은 화랑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진 화랑들이다. 아무리 란이라도 단체로 덤비는 그들을 상대하는 것에 무리가 있었다. 한 자루 검이 란의 다리를 베어버린다. 란의 허벅지에 터지며 피가 튀어 오른다. 란은 중심을 잃고 떨어져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땅에 착지한 란은 비틀거리고 화랑들의 검이 목을 노리고 날아온다.
“안돼~”
그때 란을 따라온 원예가 란을 공격하던 화랑들을 향해 검을 뿌린다. 천마월영검이 검광을 토하며 화랑들을 공격하니 화랑들도 란을 공격하던 검을 멈추고 천마월영검을 상대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통하는 법인가 보다. 한참 화랑들을 상대하던 호식의 귀에 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호식은 무형권으로 앞에 있던 화랑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소리가 들린 곳으로 달려갔다. 누군가 호식의 앞을 막는다. 녀석의 검이 호식의 견정혈(어깨)를 향해 날아온다. 피하면 간단하다. 하지만 마음이 급한 호식은 왼손으로 검을 잡아버린다. 검이 손바닥을 파고들며 피가 흐른다. 호식의 오른팔이 날아가며 검을 들이민 녀석의 얼굴을 날려버린다. 녀석은 얼굴은 무형권에 의해 박살난다. 멀리 란이 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다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그리고 막 화랑들이 그녀를 향해 검을 날리고 있었다. 호식은 앞에 있던 친위대의 어깨를 짚고 공중으로 도약하더니 앞에 있던 화랑의 머리를 밟고 란을 향해 몸을 날렸다. 원예의 의해 뒤로 물려나던 화랑들은 공중에서 떨어지는 무수한 그림자에 당황했다. 그림자들은 소리도 없이 바로 머리 위까지 날아왔다. 호식의 무형각과 무형수가 극성으로 펼쳐진 것이다. 두 명의 화랑들이 무형수를 피하지 못하고 머리가 깨져 비틀거리고 나머지 화랑들은 빠르게 뒤로 물려났다. 무형수와 무형각은 땅을 때리며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원예보다 호식이 먼저 란의 옆으로 떨어졌다. 호식은 비틀거리는 란을 부축했다.
“수지아~ 괜찮아.”
“아~ 호식씨.........어떻게 알고.”
“바보야. 여긴 왜 왔어. 이제 괜찮아. 내가 옆에 있을게”
“저놈..........무석이 놈을 잡아야해.”
“내가 할게. 내가 처리할게.”
그때 원예와 나머지 사군자도 란과 호식의 곁에 떨어졌다.
“호식씨는 란님을 보호해 주세요. 무석이놈은 우리가 처리할게요.”
원예의 천마월영검이 빛을 뿌리며 화랑들에게 날아갔다.
수혼도 수영일행이 전장에 뛰어든 걸 보았다. 그녀들은 바로 무석과 무석을 보호하는 화랑들을 공격했다. 수영이 무슨 생각은 하는지 알 것 같다. 대세는 기울었다. 승패는 결정된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일방적인 도륙일 뿐이다. 이 의미 없는 싸움을 멈추게 해야 한다. 수혼이 수영을 향해 몸을 날리니 옆에 있던 미나도 수혼의 뒤를 따른다.
수영은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원예무를 펼쳤다. 천마월영검이 한바퀴 원을 그리니 수많은 검영들이 피어나며 화랑들에게 날아간다. 화랑들도 물려나지 않고 천마월영검에 대항해 화랑검법을 펼친다.
“깡~~ 깡~~~ 깡~~................까까깡~”
세 자루 검이 천마월영검에 의해 잘려나가고 나머지 검이 뒤로 물러난다. 수영의 몸이 하늘거리며 화랑들에게 다가가 다시 천마월영검을 춤을 추니 검에서 빛 무리가 일어나며 다시금 화랑들을 공격한다. 국(菊), 죽(竹)은 수영과는 별도로 다른 화랑들을 상대하고 있었고 호식은 란을 보호하며 화랑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또 다른 빛 무리가 날아오며 화랑들의 머리위로 떨어진다. 수혼의 봉황검이다. 수영에 의해 뒤로 몰려났던 화랑들은 머리위로 떨어지는 빛 무리를 상대했다.
“깡~~ 깡~.......까까까까강~”
몇 자루 검이 자루만 남기고 날아간다. 수혼은 수영의 옆에 떨어졌다.
“오빠~ 어떻게 알고.............”
“일단 무석이놈부터 처리하고 보자.”
수혼의 봉황검이 빛을 토하며 화랑들에게 날아가고 수영도 천마월영검으로 원예무를 실천하여 화랑들을 공격한다. 수혼과 수영의 공격을 받은 화랑들은 분분히 뒤로 밀려난다. 음양도 최강의 무공인 음양검법과 원예도 촤강의 무공인 원예무 앞에 화랑들은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몇 개의 팔이 날아간다. 봉황검과 천마월영검에 의해 화랑들의 팔이 절단된 것이다.
“너희들도 나가. 저것들을 죽여........빨리.”
무석은 옆을 지키고 있던 화랑들의 등을 떠밀었다. 화랑들은 무석을 버려두고 수혼과 수영에게 달려갔다. 수혼의 봉황검이 부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수많은 빛 무리가 일어난다. 음양검법의 환(幻)이 실천된 것이다. 옆에 있던 수영의 천마월영검도 수많은 빛 무리를 뿌린다. 그녀는 원예무의 분(分)을 실천했다. 두 자루 검에서 토해진 빛 무리가 화랑들을 감싸듯 날아가니 화랑들은 눈이 어지럽고 검의 허와 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니 천마월영검이 화랑들의 팔목을 베어버리고 지나간다.
“크아아아아악~~”
긴 비명이 이어지고 화랑들이 어깨를 잡고 뒤로 물려났고, 그것과 동시에 수영과 수혼이 동시에 도약하며 공중에서 수많은 그림자들이 피어나 벚꽃이 바람에 날리듯 화랑들의 머리위로 떨어진다. 원예각, 원예수, 음양각, 음양수가 동시에 펼쳐져 하늘은 온통 그들이 만들어낸 그림자만이 가득했다. 화랑들은 수영과 수혼이 만들어낸 장관에 멍하니 그림자들만 살펴보다가 그림자에 어깨와 가슴을 적중당하고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이제 무석을 보호하는 화랑은 두 명만 남아 있었다. 그들도 수영과 수혼을 향해 달려왔다.
“저들은 네가 처리할게. 너는 무석이놈을 처리해.”
수혼은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 화랑들을 향해 봉황검을 뿌린다. 수영은 공중에서 한번 회전하여 땅이 착지함과 동시에 무석을 향해 총알처럼 날아갔다. 무석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수영을 보더니 눈을 감아버렸다. 끝났다. 자신은 원예의 상대가 아니다. 반항한다고 바동거려봐야 더 추해질 뿐이다. 천마월영검이 무석의 심장을 행해 날아간다. 그때 수영도 무석의 얼굴을 보았다. 무석은 눈을 감고 있었다. 삶을 포기한 모습이다. 수영은 입을 깨물고 몸을 비트니 심장을 향해 날아가던 천마월영검이 무석의 어깨를 관통한다. 무석은 어깨를 잡고 비틀거리며 눈을 뜬다.
“끝내. 죽여...........깨끗하게 죽이란 말이야.”
무석은 수영에게 달려들었고 수영은 자세를 낮추며 무석의 다리를 베어버렸다. 무석의 상체가 앞으로 넘어간다. 한쪽 다리가 무릎부터 깨끗하게 절단되었다. 수영은 바닥에 쓰려진 무석의 옥침혈을 가격하고 무석은 기품을 물고 기절한다.
화랑들은 수혼을 공격한다. 한 자루 검이 견분혈(어깨)을 공격하고 한 자루 검이 단전혈(배)를 공격한다. 수혼은 칠성밟기로 두 자루 검이 만들어낸 검세 사이로 들어가 견분혈을 공격하던 화랑의 손목을 절단해 버리고 음양권으로 비틀거리는 화랑의 상곡혈(아랫배)를 가격하니 화랑은 피 토하며 바닥에 쓰려진다. 마지막 남은 화랑은 겁을 집어먹고 슬슬 뒷걸음치다가 뒤에 있던 호식의 무형권에 머리가 박살나며 바닥에 쓰려진다.
남장로는 란이 무석을 공격할 때부터 화랑들의 틈에 섞여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무석을 보호하던 모든 화랑들이 수영과 수혼에게 당하고 무석까지 원예에게 당하자 화랑을 틈을 빠져나와 슬금슬금 도망치려 했다. 그가 막 돌아서는데 앞에 작은 꼬마아이가 길을 막고 있었다. 그녀는 종이처럼 얇은 면도를 들고 있었다. 낭장로의 머릿속에 한 가지 기억이 때오른다. 천랑의 부인들 중에서 초등학생 같은 외모에 면도를 사용하는 부인이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녀는 엄청난 고수라고 했다. 재수 없으면 여기서 뼈를 뭍을 수 있다. 장로는 슬금슬금 뒷걸음 쳤다. 그때 가만히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꼬마가 자신을 향해 달려온다. 도망치긴 틀렸다. 그럼 그녀를 처리해야 한다. 남장로는 화랑검법을 실천하여 미나를 공격했다. 미나는 장로의 검을 피하지 않고 검세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남장로는 속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의 머릿속에 미나의 몸이 두 동강나는 환상이 그려진다. 하지만 미나의 몸은 검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 어떻게 된 상황인가. 모르겠다. 일단 피해야 한다. 하지만 그건 생각뿐이다. 검을 들고 있던 오른 팔에 서늘한 느낌이다. 남장로는 자신의 앞으로 떨어지는 미나를 공격하기 위해 팔을 들어올리려 했다. 그런데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때 양쪽 다리가 사늘해 지더니 몸이 기울려 지고 바닥으로 쓰려진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일까? 남장로는 일어나려 힘을 써본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때 작이 발이 날아와 턱을 강타한다. 그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기동대와 친위대는 뒤로 물려나. 모두 물려나.”
수혼의 고함소리가 분지에 울려 펴진다. 수혼의 명령을 들은 기동대와 친위대가 빠른 속도록 뒤로 물려난다. 비명소리와 병장기 소리가 천천히 잦아든다. 기동대와 친위대가 물려나자 화랑들은 자연스럽게 한곳으로 집합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화랑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많아야 2백여 명 정도다. 전대사군자 국(菊)이 지휘하는 250명의 화랑들이 빠졌다 해도 1,250명의 화랑들 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화랑의 2백여 명이라면 겨의 전멸이라고 봐야 한다. 기동대와 친위대는 화랑을 포위했다. 수혼과 수영이 앞으로 나섰다.
“항복해. 더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해. 이미 전대사군자와 무석이도 없어.”
화랑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볼 뿐 누구도 말이 없었다.
“우리 천랑파는 더 이상의 피를 원하지 않는다. 항복하는 자는 살려주겠다.”
“그걸 어떻게 믿어. 다들 믿지 마. 저놈들이 우리 살려줄 것 같아. 차라리 싸우다 죽자.”
화랑 중에서 한명이 앞으로 나서며 화랑들을 선동했다. 그때 수혼의 등 뒤에서 검이 날아간다. 미희의 비도가 날아간 것이다. 비도는 화랑을 선동하던 화랑의 목을 뚫어버렸다. 화랑은 ‘칵칵’거리다가 뒤로 넘어갔다.
“우리가 너희들을 모두 죽일 생각이었다면 이런 말도 안 해. 또 죽겠다는 놈은 앞으로 나서. 그런 놈들은 가차 없이 죽여주겠다.”
미희가 손에 비도를 들고 앞으로 나선다. 화랑들은 조용하다. 침묵만이 흐른다.
“다들 항복하세요. 제가 약속할게요. 여러분이 항복한다면 제가 목숨을 걸고 여러분을 보호하겠습니다.”
수영이 화랑들을 보고 간절하게 호소했다. 수영의 말을 들은 화랑들이 웅성거린다. 하지만 역시 앞으로 나서는 이는 없다. 그때 할아버지가 저택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도 믿지 못해요. 얼마 전까지 우린 생사고락을 같이 했어요. 절 믿어주세요. 오빠~ 정말이지 항복하면 모두 살려주는 거지.”
“살려준다. 나도 의미 없는 피는 싫다.”
할아버지는 저택으로 달려가서 저택을 수비하고 있던 할머니와 국(菊)을 찾았다.
“싸움을 끝난 거야.”
“끝났지. 그런데 남아있는 화랑들이 항복을 하지 않고 있어. 할멈이 가서 설득해봐~”
“내가 간다고 되겠어. 휴~ 가슴이 아프지만 저들이 현명한 선택을 하기 바랄 수밖에 없어.”
“이런 무책임한 할멈을 보았나. 저런 생때같은 놈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만 보겠다는 거야. 무슨 방법이라도 생각해봐~ 할멈이 저들의 대사부 아니야.”
“허허허~ 나도 가슴이 아파. 나도 저놈들을 구하고 싶어.”
“저기........이 방법을 한번 써보죠.”
옆에서 듣고 있던 전대사군자 국(菊)이 입을 열었다.
“무슨 방법. 뭐~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말이 있죠. 그 고사처럼 화랑들에게 우리가 훈련할 때 즐겨 부르던 노래를 부르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사면초가의 고사를 인용한다.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한번 해보자. 그럼 자네가 화랑들을 불러 모아.”
국은 화랑들을 한곳으로 집합시켜 화랑들이 훈련할 때 즐겨 부르던 노래를 부르게 했다.
화랑들도 자신들에게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기서 더 싸워봐야 개죽음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먼저 항복이란 말을 입에 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멀리 저택에서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자신들이 너무나 잘 아는 노래다. 훈련이 힘들고 고달플 때 마다 서로를 위로하며 동료들과 함께 부르던 노래다. 한 화랑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수혼도 수영도 노래 소리를 들었다. 노래 소리는 점점 크게 들린다. 수혼이 돌아보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선두에 서고 전대사군자 국(菊)이 지휘하는 화랑들이 노래를 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수혼은 수영의 손을 잡아주었다. 수영은 수혼을 보았다.
“기다려보자.”
“오빠~”
“저들도 너의 마음을 알거야.”
수영의 눈에도 이슬이 맺힌다.
화랑들 중 한명이 검을 떨어트리고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만다. 그것을 신호로 다른 화랑들도 검을 던져버리고 소매로 눈을 훔친다.
“쨍그랑..........쨍그랑.”
화랑들은 검을 던져버리고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몇몇 화랑들이 끝까지 검을 들고 있었지만 끝내 그들도 검을 던져버리고 목 놓아 노래를 부른다. 분지에는 화랑들의 노래 소리만이 울려 펴진다. 기동대와 친위대가 길을 터주자 저택을 출발한 화랑들도 치열하게 싸우던 화랑들과 함유하여 그들과 어울린다.
“이제 전쟁은 끝났습니다.”
간단한 한마디가 수혼의 입에서 흘려 나왔다. 이 간단한 한 마디를 하기 위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이가 피를 흘렸는지 모른다. 여기저기서 함성소리가 들린다. 승리를 자축하는 천랑파의 함성소리다.
“모두 조용하세요. 이제 전쟁은 끝났습니다. 우린 승리를 자축하기에 앞서 피 흘리며 죽어간 동료들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분지에 쓰려져 심음하고 있는 동료들을 구해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두 사상자(死傷者)들을 수습하세요.”
수혼의 명령이 떨어지자 친위대와 기동대도 무기를 거두고 분지에 쓰려져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을 부축해서 저택에 마련된 병실로 옮겼다. 부상자들을 수습하는 것은 피아가 없었다. 화랑들도 울음을 그치고 천랑파를 도왔다.
부상자 수습은 8시가 넘도록 계속되었다. 분지는 깨끗하게 치워졌다. 분지 위에 굴러다니던 주인 잃은 팔다리도 모두 치워졌다. 길식은 밤이 깊어지자 건설 장비를 동원하여 분지를 갈아 업어 버렸다. 핏자국까지 말끔하게 청소하기 위해서다. 분지의 청소가 끝날 때까지 반경 3Km를 지키던 천랑파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청소가 끝나고 그들도 저택으로 돌아왔다. 저택은 사람들의 북적거렸다. 화랑들은 무장을 해체 당하고 친위대가 그들을 치켰다.
수혼은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 장소는 저택의 정원이었다. 수혼은 수영과 할머니를 따르기로 명세한 한강이북의 보스들도 회의장으로 불렸다. 저택의 정원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정원의 중간에 무대가 설치되고 좌석이 배치되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 회의가 시작되었다. 무대에 오른 사람은 수혼과 수영이 그리고 대사부다.
“지금 이 자리에는 천랑파뿐만 아니라 갈치파 여러분도 모두 계십니다. 천랑파와 갈치파 사이에 벌어졌던 전투는 오늘로써 모두 종결되었습니다.”
“와~~~...............와~~~”
저택이 떠나갈 정도의 함성이 들린다. 수혼이 손을 드니 장내가 다시 조용해 졌다.
“싸움이 종결된 시점에서 몇 가지 알려드리겠습니다. 먼저 제가 갈치파 여러분에게 약속해 듯이 인천을 여러분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갈치파 여러분이 서울이 포기하고 인천으로 돌아간다면 더 이상의 싸움은 없을 겁니다. 또한 우리 천랑파는 지금 이 자리에서 갈치파 혈맹을 맺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천랑파와 갈치파는 형제가 되는 겁니다.”
수혼의 말이 끝나자 장내가 웅성거린다. 그때 대사부가 앞으로 나섰다.
“우리 갈치파도 약속했네. 우리도 더 이상의 피를 원하지 않아. 비록 두개의 이름을 사용하지만 천랑파와 갈치파는 하나가 되는 거네. 화랑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인천으로 돌아갈 거라네.”
“화랑 여러분도 모두 인천으로 돌아가게 될 겁니다. 또한 지금 여기서 치료를 받고 있는 화랑들도 치료가 끝나면 모두 갈치파의 품으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이곳에 잡혀 있는 원로들도 여러분에게 보내드리겠습니다.”
“참~~ 대사부님.........배신자 무석과 원로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무석은 죽은 겁니까?”
“무석은 죽지 않았네. 원로들도 모두 무사해. 그들은 인천으로 돌아가 조직의 규율에 따라 처리할 것이네.”
“그럼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겁니까?”
“방금 천랑도 말했지만 전쟁은 끝났네. 우린 내일 인천으로 철수하네.”
“한강이남에 있는 세력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들에게 소식이 전해지면 인천으로 돌아올 것이네. 앞으로 서울은 천랑파가, 인천은 갈치파가 맞도록 되어있네.”
“알겠습니다.”
“더 이상 질문이 없다면 혈맹 의식을 끝으로 회의를 끝내겠네.”
대사부의 말이 끝나자 지나가 맑은 청주가 담긴 쟁반을 가지고 왔다. 대사부는 손수 잔에 술을 따른다. 수혼이 자리에서 일어나 쟁반에 있던 칼로 손목에 상처를 내서 붉은 피를 청주에 떨어트렸다. 다음으로 수영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수혼에게 칼을 넘겨받아 손가락에 작은 상처를 내여 피를 떨어트린다.
“이 잔을 나눠 마시면 우리 천랑파와 갈치파는 하나가 되는 겁니다.”
수영이 잔을 들어 조금 마시고 수혼에게 내밀었다. 수혼은 나머지 술을 마셨다. 이것으로 이날 회의는 끝났다.
ps : 오늘은 이것으로 끝내죠. 다음 편에 계속...........
----------------마지막 전투에 대한 이야기-----------------
1. 잔인합니다.
-> 성인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잔인하고 잔혹합니다. 아무리 미화한다 해도 근본적으로 전쟁은 잔인한 겁니다. 잔혹한 현실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2. 너무 많이 죽었다.
->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허구입니다. 한두 명 싸우는 것보다는 단체로 싸우는 것이 화려하고 웅장하기 때문에 많은 인원을 전투에 참여시켰고, 많은 인원을 죽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씀드렸지 이건 허구입니다.
3. 현실성이 없다.
-> 쩝~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현실적이면 재미가 반감되고 너무 비현실적이면 흡인력이 떨어지죠. 그걸 적절히 조화시킨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문제가 아니더군요.
**사면초가(四面楚歌) : 사방에서 들리는 초(楚)나라의 노래라는 뜻으로, 적에게 둘러싸인 상태(狀態)나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립(孤立) 상태(狀態)에 빠짐을 이르는 말
**사면초가(해석) : 초(楚)나라의 패왕(覇王) 항우(項羽)와 한(漢)나라의 유방(劉邦)이 천하를 다투던 때, 항우에게 마지막 운명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끼던 슬기로운 장수 범증(范增)마저 떠나 버리고, 결국 유방에게 눌려 한나라와 강화하고 동쪽으로 돌아가던 도중 해하(垓下)에서 한나라의 명장 한신(韓信)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빠져나갈 길은 좀체로 보이지 않고, 병졸은 줄어들며 군량미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한군과 제후의 군사는 포위망을 점점 좁혀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려왔다. 가뜩이나 고달픈 초나라 병사로 하여금 고향을 그리게 하는 구슬픈 노래였다. 한나라가 항복한 초나라 병사들로 하여금 고향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다. 항우는 깜짝 놀라면서 "한나라가 이미 초나라를 빼앗았단 말인가? 어찌 초나라 사람이 저렇게 많은고?"하고 탄식했다. 그는 진중에서 마지막 주연을 베풀었다. 그리고 유명한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시를 지어 자신의 운명을 탄식했고, 총애받던 우미인(虞美人)도 그의 시에 화답하고 자결하였다. 항우는 800기(騎)의 잔병을 이끌고 오강(烏江)까지 갔다가 결국 건너지 못하고 그 곳에서 자결하고 마니, 그의 나이 31세였다 한다.
화랑들은 심리적으로 ?기고 있었다. 자신들을 지휘하던 전대사군자중에서 국(菊)과 국을 따르는 화랑들은 자신들을 배신했고 란(蘭)과 죽(竹)은 천랑파에 당했다. 이제 남은 것은 매(梅) 뿐이다. 그나마 매도 링링에게 ?기며 화랑들을 지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남장로와 무석이 지휘하고 있지만 화랑들의 귀에 그들의 명령이 들리지 않는다. 전투는 혼전 상황이다. 화랑, 기동대, 친위대가 한데 엉켜서 피아를 구분하기 힘들다. 피가 난무하고 육편(肉片)이 굴러다닌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옆에 있던 누군가가 피를 토하며 쓰려진다. 아군인가 아니면 적(敵)인가. 그건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공격하는 모든 이를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무석은 화랑들의 보호를 받으며 화랑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자신이 이끌고 온 화랑은 일천오백화랑이다. 그런데 전대사군자 국(菊)이 이끄는 이백오십 명의 화랑들은 자신들을 배신하고 천랑파에 붙여버렸다. 거기에 처음 버스들의 충돌사고로 백여 명의 화랑들이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천랑파 기동대에게 당했고 천랑파의 매복공격으로 또 많은 화랑들이 희생당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화랑들이 얼마나 있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장내를 살펴보면 화랑보다 천랑파가 더 많이 보인다. 천랑파의 숫자는 계속 늘어난다. 도대체 천랑파는 얼마나 많은 인원을 준비할 것일까? 자신이 파악했던 천랑파의 전력은 기동대 300여 명이 전부였다.
저택을 출발한 기동대가 전투에 참가했다. 그들은 계속된 전투로 심신이 치진 화랑들을 공격했다. 화랑들은 새롭게 나타난 적에 절망감에 빠진다. 도대체 적(敵)의 수를 모르겠다. 무석의 말로는 천랑파의 전력은 삼백 명의 기동대가 전부라고 했다. 그런데 검을 들고 설치는 저놈은 뭔가? 거기에 또 다시 몰려오는 기동대는 뭐란 말인가? 천랑파는 또 얼마나 많은 병력을 감추고 있을까? 천랑파 마르지 않은 샘처럼 계속해서 새로운 병력을 전장에 투입하고 있었다. 이제 지쳤다. 쉬지도 못하고 한 시간이 넘게 싸우고 있다. 그런데 계속해서 새로운 적이 나타난다. 옆에 있던 동료의 팔이 날아가며 피가 솟구친다. 비틀거리던 동료의 머리위로 쇠파이프가 날아와 머리통이 잘 익은 수박처럼 터져버린다. 동료의 죽음을 보았으니 악에 바쳐 복수를 해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등이 따끔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처음 보는 녀석이 자신의 등에 검을 쑤셔 박았다. 통증은 없다. 숨이 막힌다. 검이 폐를 관동한 모양이다. 억지로 팔을 들어올려 자신의 등에 검을 쑤셔 박은 녀석을 향해 내리치려 했다. 이번에는 다리에 사늘한 느낌이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밑으로 내려다보니 다리 한쪽이 없다. 몸이 기우뚱거리더니 바닥으로 넘어진다. 힘들다. 그만 쉬고 싶다. 눈꺼풀이 무겁다. 눈을 감으면 편안해 질 것 같다. 눈을 감았다. (십팔~) 어떤 놈이 가슴을 밟고 간 모양이다. 그는 그대로 정신의 끈을 놓았다.
원예와 사군자는 삼십 명의 화랑들을 처리하고 약속대로 저택으로 향하고 있었다.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이 가까워질수록 원예와 사군자의 얼굴이 그늘이 드리워진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화랑들의 피해가 너무 크다. 일천 명이 넘던 화랑들이 반도 남지 않았다. 화랑들은 계속된 전투와 심리적 타격으로 사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에 반해 천랑파의 기동대와 친위대의 사기는 하늘을 찌른다. 이대로 시간이 지난다면 갈치파는 전멸할 것이다. 화랑들이 모두 희생당하는 것이다.
링링의 검이 전대사군자 매(梅)의 가슴을 향해 날아간다. 매는 비틀거리며 검을 피한다. 검이 어깨를 스치며 피가 튄다. 매도 지쳤다.
“아줌마.......지쳤어.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가더니 이젠 힘든가 보네.”
매는 악이 바친다. 자신의 나이가 몇인가? 이 나이에 저런 어린계집에게 언제까지 도망 다녀야하는가? 다치지만 않았다면 저런 년에게 당한 자신이 아니다. 매는 처음 사고 때문에 다리를 다쳐 고전하고 있었다. 매는 이를 악물고 링링을 공격했다. 이제 도망치기도 지쳤다. 매의 검이 링링의 신봉혈(가슴)을 향해 날아온다.
“어머~ 이제 아줌마가 공격하는 거야. 그래~ 진작 그렇게 나왔어야지.”
링링은 매의 검을 쳐내고 좌우 십자로 매의 가슴을 베어간다. 매도 물려나지 않고 링링의 검을 맞받아친다.
“짱~~~ 크윽~”
매의 검이 밀리며 가슴 부근이 베어진다. 링링의 힘에 밀린 것이다.
“아줌마 가슴 나왔다. 와~ 크다.”
매는 불길이 일듯 화가 났다. 이제 이판사판이다. 그녀는 젖가슴을 가릴 생각도 하지 않고 링링을 공격했다. 매의 검이 바람을 가르며 링링의 목을 향해 날아왔다. 링링은 피식 웃더니 다리를 굽혀 매의 검을 피하고 가슴으로 파고들며 검으로 매의 배를 관통해 버린다.
“욱~.......쿨럭..........쿨럭.”
매은 입에서 검붉은 피를 토한다.
“아줌마. 이제 쉬어.”
링링은 매의 옥침혈(뒤통수)를 가격하니 매의 몸이 스스로 내려가 바닥에 쓰려진다.
미희는 이제 허리에 두른 18자루 비도와 소매에 감춘 2자루 비도만 남았다. 준비했던 모든 비도를 화랑들에게 날린 것이다. 미희는 다시 한 자루 비도를 빼냈다. 하지만 마땅히 던질 곳이 없다. 장내가 어수선하게 엉켜있는 것도 있지만 화랑에게 밀리고 있는 친위대나 기동대를 찾기 힘들다. 기동대와 친위대는 일반적으로 화랑들을 밀어 붙이고 있었다. 미희는 비도를 들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수혼은 전대사군자 란(蘭)을 처리하고 장내를 살펴보았다. 이제 전세는 기울어졌다. 화랑들을 지휘하던 전대사군자는 모두 제거되었다. 지휘자를 잃어버린 화랑들은 우왕좌왕하며 기동대와 친위대에게 일반적으로 밀리고 있다. 이제 전장에서 피를 토하고 쓰려지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화랑들이다. 기동대와 친위대는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이와 반대로 화랑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계속된 전투로 인한 피로로 힘을 쓰지 못한다.
무석도 전세가 완전히 기울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대로 가면 화랑들은 전멸이다. 하지만 멈출 순 없다. 이번 전투에서 패하면 갈치파는 끝이다. 또한 자신은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전투에 나오지 않았는가? 어차피 끝이라면 끝까지 싸우다 죽은 것이 깨끗할 것이다. 무석은 화랑들에게 마지막 한명까지 싸울 것을 명령했다.
원예와 사군자는 저택으로 향하지 못하고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화랑들이 허망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물러나........항복하란 말이야. 이미 전세를 기울어 졌어. 물러나.”
원예가 화랑들에게 소리치지만 화랑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싸우고 있었다.
“원예님~ 소용없어요. 이미 죽기를 각오한 모양입니다.”
“안돼. 싸움을 끝났어. 승패는 이미 결정됐어. 더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하단 말이야.”
“차라리 무석이놈과 장로로 죽여 버려야 해요.”
란이 한마디 하며 공중으로 솟아올라 화랑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무석에게 날아갔다. 맞다. 무석이놈과 장로 놈을 제거하면 화랑들도 싸움을 멈출 것이다. 수영도 란을 따라 몸을 날렸고 좌우에 있던 국(菊)과 죽(竹)도 원예를 따라 몸을 날렸다.
떨어지는 란을 향해 몇 자루 검이 날아온다. 란의 몸이 회전하며 화려한 그림자들이 피어나 화랑들에게 떨어진다. 화랑들은 그림자들을 베어버리고 란을 공격한다. 무석을 보호하는 화랑들은 화랑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진 화랑들이다. 아무리 란이라도 단체로 덤비는 그들을 상대하는 것에 무리가 있었다. 한 자루 검이 란의 다리를 베어버린다. 란의 허벅지에 터지며 피가 튀어 오른다. 란은 중심을 잃고 떨어져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땅에 착지한 란은 비틀거리고 화랑들의 검이 목을 노리고 날아온다.
“안돼~”
그때 란을 따라온 원예가 란을 공격하던 화랑들을 향해 검을 뿌린다. 천마월영검이 검광을 토하며 화랑들을 공격하니 화랑들도 란을 공격하던 검을 멈추고 천마월영검을 상대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통하는 법인가 보다. 한참 화랑들을 상대하던 호식의 귀에 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호식은 무형권으로 앞에 있던 화랑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소리가 들린 곳으로 달려갔다. 누군가 호식의 앞을 막는다. 녀석의 검이 호식의 견정혈(어깨)를 향해 날아온다. 피하면 간단하다. 하지만 마음이 급한 호식은 왼손으로 검을 잡아버린다. 검이 손바닥을 파고들며 피가 흐른다. 호식의 오른팔이 날아가며 검을 들이민 녀석의 얼굴을 날려버린다. 녀석은 얼굴은 무형권에 의해 박살난다. 멀리 란이 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다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그리고 막 화랑들이 그녀를 향해 검을 날리고 있었다. 호식은 앞에 있던 친위대의 어깨를 짚고 공중으로 도약하더니 앞에 있던 화랑의 머리를 밟고 란을 향해 몸을 날렸다. 원예의 의해 뒤로 물려나던 화랑들은 공중에서 떨어지는 무수한 그림자에 당황했다. 그림자들은 소리도 없이 바로 머리 위까지 날아왔다. 호식의 무형각과 무형수가 극성으로 펼쳐진 것이다. 두 명의 화랑들이 무형수를 피하지 못하고 머리가 깨져 비틀거리고 나머지 화랑들은 빠르게 뒤로 물려났다. 무형수와 무형각은 땅을 때리며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원예보다 호식이 먼저 란의 옆으로 떨어졌다. 호식은 비틀거리는 란을 부축했다.
“수지아~ 괜찮아.”
“아~ 호식씨.........어떻게 알고.”
“바보야. 여긴 왜 왔어. 이제 괜찮아. 내가 옆에 있을게”
“저놈..........무석이 놈을 잡아야해.”
“내가 할게. 내가 처리할게.”
그때 원예와 나머지 사군자도 란과 호식의 곁에 떨어졌다.
“호식씨는 란님을 보호해 주세요. 무석이놈은 우리가 처리할게요.”
원예의 천마월영검이 빛을 뿌리며 화랑들에게 날아갔다.
수혼도 수영일행이 전장에 뛰어든 걸 보았다. 그녀들은 바로 무석과 무석을 보호하는 화랑들을 공격했다. 수영이 무슨 생각은 하는지 알 것 같다. 대세는 기울었다. 승패는 결정된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일방적인 도륙일 뿐이다. 이 의미 없는 싸움을 멈추게 해야 한다. 수혼이 수영을 향해 몸을 날리니 옆에 있던 미나도 수혼의 뒤를 따른다.
수영은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원예무를 펼쳤다. 천마월영검이 한바퀴 원을 그리니 수많은 검영들이 피어나며 화랑들에게 날아간다. 화랑들도 물려나지 않고 천마월영검에 대항해 화랑검법을 펼친다.
“깡~~ 깡~~~ 깡~~................까까깡~”
세 자루 검이 천마월영검에 의해 잘려나가고 나머지 검이 뒤로 물러난다. 수영의 몸이 하늘거리며 화랑들에게 다가가 다시 천마월영검을 춤을 추니 검에서 빛 무리가 일어나며 다시금 화랑들을 공격한다. 국(菊), 죽(竹)은 수영과는 별도로 다른 화랑들을 상대하고 있었고 호식은 란을 보호하며 화랑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또 다른 빛 무리가 날아오며 화랑들의 머리위로 떨어진다. 수혼의 봉황검이다. 수영에 의해 뒤로 몰려났던 화랑들은 머리위로 떨어지는 빛 무리를 상대했다.
“깡~~ 깡~.......까까까까강~”
몇 자루 검이 자루만 남기고 날아간다. 수혼은 수영의 옆에 떨어졌다.
“오빠~ 어떻게 알고.............”
“일단 무석이놈부터 처리하고 보자.”
수혼의 봉황검이 빛을 토하며 화랑들에게 날아가고 수영도 천마월영검으로 원예무를 실천하여 화랑들을 공격한다. 수혼과 수영의 공격을 받은 화랑들은 분분히 뒤로 밀려난다. 음양도 최강의 무공인 음양검법과 원예도 촤강의 무공인 원예무 앞에 화랑들은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몇 개의 팔이 날아간다. 봉황검과 천마월영검에 의해 화랑들의 팔이 절단된 것이다.
“너희들도 나가. 저것들을 죽여........빨리.”
무석은 옆을 지키고 있던 화랑들의 등을 떠밀었다. 화랑들은 무석을 버려두고 수혼과 수영에게 달려갔다. 수혼의 봉황검이 부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수많은 빛 무리가 일어난다. 음양검법의 환(幻)이 실천된 것이다. 옆에 있던 수영의 천마월영검도 수많은 빛 무리를 뿌린다. 그녀는 원예무의 분(分)을 실천했다. 두 자루 검에서 토해진 빛 무리가 화랑들을 감싸듯 날아가니 화랑들은 눈이 어지럽고 검의 허와 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니 천마월영검이 화랑들의 팔목을 베어버리고 지나간다.
“크아아아아악~~”
긴 비명이 이어지고 화랑들이 어깨를 잡고 뒤로 물려났고, 그것과 동시에 수영과 수혼이 동시에 도약하며 공중에서 수많은 그림자들이 피어나 벚꽃이 바람에 날리듯 화랑들의 머리위로 떨어진다. 원예각, 원예수, 음양각, 음양수가 동시에 펼쳐져 하늘은 온통 그들이 만들어낸 그림자만이 가득했다. 화랑들은 수영과 수혼이 만들어낸 장관에 멍하니 그림자들만 살펴보다가 그림자에 어깨와 가슴을 적중당하고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이제 무석을 보호하는 화랑은 두 명만 남아 있었다. 그들도 수영과 수혼을 향해 달려왔다.
“저들은 네가 처리할게. 너는 무석이놈을 처리해.”
수혼은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 화랑들을 향해 봉황검을 뿌린다. 수영은 공중에서 한번 회전하여 땅이 착지함과 동시에 무석을 향해 총알처럼 날아갔다. 무석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수영을 보더니 눈을 감아버렸다. 끝났다. 자신은 원예의 상대가 아니다. 반항한다고 바동거려봐야 더 추해질 뿐이다. 천마월영검이 무석의 심장을 행해 날아간다. 그때 수영도 무석의 얼굴을 보았다. 무석은 눈을 감고 있었다. 삶을 포기한 모습이다. 수영은 입을 깨물고 몸을 비트니 심장을 향해 날아가던 천마월영검이 무석의 어깨를 관통한다. 무석은 어깨를 잡고 비틀거리며 눈을 뜬다.
“끝내. 죽여...........깨끗하게 죽이란 말이야.”
무석은 수영에게 달려들었고 수영은 자세를 낮추며 무석의 다리를 베어버렸다. 무석의 상체가 앞으로 넘어간다. 한쪽 다리가 무릎부터 깨끗하게 절단되었다. 수영은 바닥에 쓰려진 무석의 옥침혈을 가격하고 무석은 기품을 물고 기절한다.
화랑들은 수혼을 공격한다. 한 자루 검이 견분혈(어깨)을 공격하고 한 자루 검이 단전혈(배)를 공격한다. 수혼은 칠성밟기로 두 자루 검이 만들어낸 검세 사이로 들어가 견분혈을 공격하던 화랑의 손목을 절단해 버리고 음양권으로 비틀거리는 화랑의 상곡혈(아랫배)를 가격하니 화랑은 피 토하며 바닥에 쓰려진다. 마지막 남은 화랑은 겁을 집어먹고 슬슬 뒷걸음치다가 뒤에 있던 호식의 무형권에 머리가 박살나며 바닥에 쓰려진다.
남장로는 란이 무석을 공격할 때부터 화랑들의 틈에 섞여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무석을 보호하던 모든 화랑들이 수영과 수혼에게 당하고 무석까지 원예에게 당하자 화랑을 틈을 빠져나와 슬금슬금 도망치려 했다. 그가 막 돌아서는데 앞에 작은 꼬마아이가 길을 막고 있었다. 그녀는 종이처럼 얇은 면도를 들고 있었다. 낭장로의 머릿속에 한 가지 기억이 때오른다. 천랑의 부인들 중에서 초등학생 같은 외모에 면도를 사용하는 부인이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녀는 엄청난 고수라고 했다. 재수 없으면 여기서 뼈를 뭍을 수 있다. 장로는 슬금슬금 뒷걸음 쳤다. 그때 가만히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꼬마가 자신을 향해 달려온다. 도망치긴 틀렸다. 그럼 그녀를 처리해야 한다. 남장로는 화랑검법을 실천하여 미나를 공격했다. 미나는 장로의 검을 피하지 않고 검세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남장로는 속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의 머릿속에 미나의 몸이 두 동강나는 환상이 그려진다. 하지만 미나의 몸은 검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 어떻게 된 상황인가. 모르겠다. 일단 피해야 한다. 하지만 그건 생각뿐이다. 검을 들고 있던 오른 팔에 서늘한 느낌이다. 남장로는 자신의 앞으로 떨어지는 미나를 공격하기 위해 팔을 들어올리려 했다. 그런데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때 양쪽 다리가 사늘해 지더니 몸이 기울려 지고 바닥으로 쓰려진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일까? 남장로는 일어나려 힘을 써본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때 작이 발이 날아와 턱을 강타한다. 그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기동대와 친위대는 뒤로 물려나. 모두 물려나.”
수혼의 고함소리가 분지에 울려 펴진다. 수혼의 명령을 들은 기동대와 친위대가 빠른 속도록 뒤로 물려난다. 비명소리와 병장기 소리가 천천히 잦아든다. 기동대와 친위대가 물려나자 화랑들은 자연스럽게 한곳으로 집합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화랑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많아야 2백여 명 정도다. 전대사군자 국(菊)이 지휘하는 250명의 화랑들이 빠졌다 해도 1,250명의 화랑들 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화랑의 2백여 명이라면 겨의 전멸이라고 봐야 한다. 기동대와 친위대는 화랑을 포위했다. 수혼과 수영이 앞으로 나섰다.
“항복해. 더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해. 이미 전대사군자와 무석이도 없어.”
화랑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볼 뿐 누구도 말이 없었다.
“우리 천랑파는 더 이상의 피를 원하지 않는다. 항복하는 자는 살려주겠다.”
“그걸 어떻게 믿어. 다들 믿지 마. 저놈들이 우리 살려줄 것 같아. 차라리 싸우다 죽자.”
화랑 중에서 한명이 앞으로 나서며 화랑들을 선동했다. 그때 수혼의 등 뒤에서 검이 날아간다. 미희의 비도가 날아간 것이다. 비도는 화랑을 선동하던 화랑의 목을 뚫어버렸다. 화랑은 ‘칵칵’거리다가 뒤로 넘어갔다.
“우리가 너희들을 모두 죽일 생각이었다면 이런 말도 안 해. 또 죽겠다는 놈은 앞으로 나서. 그런 놈들은 가차 없이 죽여주겠다.”
미희가 손에 비도를 들고 앞으로 나선다. 화랑들은 조용하다. 침묵만이 흐른다.
“다들 항복하세요. 제가 약속할게요. 여러분이 항복한다면 제가 목숨을 걸고 여러분을 보호하겠습니다.”
수영이 화랑들을 보고 간절하게 호소했다. 수영의 말을 들은 화랑들이 웅성거린다. 하지만 역시 앞으로 나서는 이는 없다. 그때 할아버지가 저택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도 믿지 못해요. 얼마 전까지 우린 생사고락을 같이 했어요. 절 믿어주세요. 오빠~ 정말이지 항복하면 모두 살려주는 거지.”
“살려준다. 나도 의미 없는 피는 싫다.”
할아버지는 저택으로 달려가서 저택을 수비하고 있던 할머니와 국(菊)을 찾았다.
“싸움을 끝난 거야.”
“끝났지. 그런데 남아있는 화랑들이 항복을 하지 않고 있어. 할멈이 가서 설득해봐~”
“내가 간다고 되겠어. 휴~ 가슴이 아프지만 저들이 현명한 선택을 하기 바랄 수밖에 없어.”
“이런 무책임한 할멈을 보았나. 저런 생때같은 놈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만 보겠다는 거야. 무슨 방법이라도 생각해봐~ 할멈이 저들의 대사부 아니야.”
“허허허~ 나도 가슴이 아파. 나도 저놈들을 구하고 싶어.”
“저기........이 방법을 한번 써보죠.”
옆에서 듣고 있던 전대사군자 국(菊)이 입을 열었다.
“무슨 방법. 뭐~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말이 있죠. 그 고사처럼 화랑들에게 우리가 훈련할 때 즐겨 부르던 노래를 부르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사면초가의 고사를 인용한다.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한번 해보자. 그럼 자네가 화랑들을 불러 모아.”
국은 화랑들을 한곳으로 집합시켜 화랑들이 훈련할 때 즐겨 부르던 노래를 부르게 했다.
화랑들도 자신들에게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기서 더 싸워봐야 개죽음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먼저 항복이란 말을 입에 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멀리 저택에서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자신들이 너무나 잘 아는 노래다. 훈련이 힘들고 고달플 때 마다 서로를 위로하며 동료들과 함께 부르던 노래다. 한 화랑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수혼도 수영도 노래 소리를 들었다. 노래 소리는 점점 크게 들린다. 수혼이 돌아보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선두에 서고 전대사군자 국(菊)이 지휘하는 화랑들이 노래를 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수혼은 수영의 손을 잡아주었다. 수영은 수혼을 보았다.
“기다려보자.”
“오빠~”
“저들도 너의 마음을 알거야.”
수영의 눈에도 이슬이 맺힌다.
화랑들 중 한명이 검을 떨어트리고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만다. 그것을 신호로 다른 화랑들도 검을 던져버리고 소매로 눈을 훔친다.
“쨍그랑..........쨍그랑.”
화랑들은 검을 던져버리고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몇몇 화랑들이 끝까지 검을 들고 있었지만 끝내 그들도 검을 던져버리고 목 놓아 노래를 부른다. 분지에는 화랑들의 노래 소리만이 울려 펴진다. 기동대와 친위대가 길을 터주자 저택을 출발한 화랑들도 치열하게 싸우던 화랑들과 함유하여 그들과 어울린다.
“이제 전쟁은 끝났습니다.”
간단한 한마디가 수혼의 입에서 흘려 나왔다. 이 간단한 한 마디를 하기 위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이가 피를 흘렸는지 모른다. 여기저기서 함성소리가 들린다. 승리를 자축하는 천랑파의 함성소리다.
“모두 조용하세요. 이제 전쟁은 끝났습니다. 우린 승리를 자축하기에 앞서 피 흘리며 죽어간 동료들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분지에 쓰려져 심음하고 있는 동료들을 구해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두 사상자(死傷者)들을 수습하세요.”
수혼의 명령이 떨어지자 친위대와 기동대도 무기를 거두고 분지에 쓰려져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을 부축해서 저택에 마련된 병실로 옮겼다. 부상자들을 수습하는 것은 피아가 없었다. 화랑들도 울음을 그치고 천랑파를 도왔다.
부상자 수습은 8시가 넘도록 계속되었다. 분지는 깨끗하게 치워졌다. 분지 위에 굴러다니던 주인 잃은 팔다리도 모두 치워졌다. 길식은 밤이 깊어지자 건설 장비를 동원하여 분지를 갈아 업어 버렸다. 핏자국까지 말끔하게 청소하기 위해서다. 분지의 청소가 끝날 때까지 반경 3Km를 지키던 천랑파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청소가 끝나고 그들도 저택으로 돌아왔다. 저택은 사람들의 북적거렸다. 화랑들은 무장을 해체 당하고 친위대가 그들을 치켰다.
수혼은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 장소는 저택의 정원이었다. 수혼은 수영과 할머니를 따르기로 명세한 한강이북의 보스들도 회의장으로 불렸다. 저택의 정원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정원의 중간에 무대가 설치되고 좌석이 배치되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 회의가 시작되었다. 무대에 오른 사람은 수혼과 수영이 그리고 대사부다.
“지금 이 자리에는 천랑파뿐만 아니라 갈치파 여러분도 모두 계십니다. 천랑파와 갈치파 사이에 벌어졌던 전투는 오늘로써 모두 종결되었습니다.”
“와~~~...............와~~~”
저택이 떠나갈 정도의 함성이 들린다. 수혼이 손을 드니 장내가 다시 조용해 졌다.
“싸움이 종결된 시점에서 몇 가지 알려드리겠습니다. 먼저 제가 갈치파 여러분에게 약속해 듯이 인천을 여러분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갈치파 여러분이 서울이 포기하고 인천으로 돌아간다면 더 이상의 싸움은 없을 겁니다. 또한 우리 천랑파는 지금 이 자리에서 갈치파 혈맹을 맺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천랑파와 갈치파는 형제가 되는 겁니다.”
수혼의 말이 끝나자 장내가 웅성거린다. 그때 대사부가 앞으로 나섰다.
“우리 갈치파도 약속했네. 우리도 더 이상의 피를 원하지 않아. 비록 두개의 이름을 사용하지만 천랑파와 갈치파는 하나가 되는 거네. 화랑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인천으로 돌아갈 거라네.”
“화랑 여러분도 모두 인천으로 돌아가게 될 겁니다. 또한 지금 여기서 치료를 받고 있는 화랑들도 치료가 끝나면 모두 갈치파의 품으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이곳에 잡혀 있는 원로들도 여러분에게 보내드리겠습니다.”
“참~~ 대사부님.........배신자 무석과 원로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무석은 죽은 겁니까?”
“무석은 죽지 않았네. 원로들도 모두 무사해. 그들은 인천으로 돌아가 조직의 규율에 따라 처리할 것이네.”
“그럼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겁니까?”
“방금 천랑도 말했지만 전쟁은 끝났네. 우린 내일 인천으로 철수하네.”
“한강이남에 있는 세력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들에게 소식이 전해지면 인천으로 돌아올 것이네. 앞으로 서울은 천랑파가, 인천은 갈치파가 맞도록 되어있네.”
“알겠습니다.”
“더 이상 질문이 없다면 혈맹 의식을 끝으로 회의를 끝내겠네.”
대사부의 말이 끝나자 지나가 맑은 청주가 담긴 쟁반을 가지고 왔다. 대사부는 손수 잔에 술을 따른다. 수혼이 자리에서 일어나 쟁반에 있던 칼로 손목에 상처를 내서 붉은 피를 청주에 떨어트렸다. 다음으로 수영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수혼에게 칼을 넘겨받아 손가락에 작은 상처를 내여 피를 떨어트린다.
“이 잔을 나눠 마시면 우리 천랑파와 갈치파는 하나가 되는 겁니다.”
수영이 잔을 들어 조금 마시고 수혼에게 내밀었다. 수혼은 나머지 술을 마셨다. 이것으로 이날 회의는 끝났다.
ps : 오늘은 이것으로 끝내죠. 다음 편에 계속...........
----------------마지막 전투에 대한 이야기-----------------
1. 잔인합니다.
-> 성인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잔인하고 잔혹합니다. 아무리 미화한다 해도 근본적으로 전쟁은 잔인한 겁니다. 잔혹한 현실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2. 너무 많이 죽었다.
->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허구입니다. 한두 명 싸우는 것보다는 단체로 싸우는 것이 화려하고 웅장하기 때문에 많은 인원을 전투에 참여시켰고, 많은 인원을 죽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씀드렸지 이건 허구입니다.
3. 현실성이 없다.
-> 쩝~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현실적이면 재미가 반감되고 너무 비현실적이면 흡인력이 떨어지죠. 그걸 적절히 조화시킨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문제가 아니더군요.
**사면초가(四面楚歌) : 사방에서 들리는 초(楚)나라의 노래라는 뜻으로, 적에게 둘러싸인 상태(狀態)나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립(孤立) 상태(狀態)에 빠짐을 이르는 말
**사면초가(해석) : 초(楚)나라의 패왕(覇王) 항우(項羽)와 한(漢)나라의 유방(劉邦)이 천하를 다투던 때, 항우에게 마지막 운명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끼던 슬기로운 장수 범증(范增)마저 떠나 버리고, 결국 유방에게 눌려 한나라와 강화하고 동쪽으로 돌아가던 도중 해하(垓下)에서 한나라의 명장 한신(韓信)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빠져나갈 길은 좀체로 보이지 않고, 병졸은 줄어들며 군량미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한군과 제후의 군사는 포위망을 점점 좁혀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려왔다. 가뜩이나 고달픈 초나라 병사로 하여금 고향을 그리게 하는 구슬픈 노래였다. 한나라가 항복한 초나라 병사들로 하여금 고향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다. 항우는 깜짝 놀라면서 "한나라가 이미 초나라를 빼앗았단 말인가? 어찌 초나라 사람이 저렇게 많은고?"하고 탄식했다. 그는 진중에서 마지막 주연을 베풀었다. 그리고 유명한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시를 지어 자신의 운명을 탄식했고, 총애받던 우미인(虞美人)도 그의 시에 화답하고 자결하였다. 항우는 800기(騎)의 잔병을 이끌고 오강(烏江)까지 갔다가 결국 건너지 못하고 그 곳에서 자결하고 마니, 그의 나이 31세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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