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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병이 벽수 - 단편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18:55 1,079회 0건
-패관윤가 : ‘들병이 벽수’ 편-

-제 1 부 : 대통주 한 순배-

‘장쇠야, 물 한바가지 떠 오니라.’

‘니이미, 지는 손이 없디야, 발이 빙신이랴, 지가 떠다 쳐묵....’

‘허어...혼잣말이 길면 정신줄 놓은 줄 알고 저 나룻목으로 보내버린다?’

‘아녀, 아녀유...뭔 날씨가 요로코롬 찐다요? 다 요놈의 날씨 탓이랑게...나랏님은 서빙고에서 얼음 꺼내다 화채나 쳐드시고 계실 거인디...’

열화지절에는 금값보다 비싸다는 얼음이 권력과 부유함의 표상이기도 했다. 궁에 사는 사람들이나 맛볼 수 있었던 얼음은 특히나 공을 세운 고관대작들에게 하절기의 포상으로 내려지기도 했기에, 사람들은 역시나 세상사 힘이 있고 볼 일이라고 혀를 차던 것도 바로 얼음의 존재 였으니까. 그나마 집 안에 우물을 파고 있었던 사람들은 형편이 조금 나은 편이었다.

‘여기 물 있시유, 얼릉 쳐드시쇼...’

‘허어...쳐묵을 꿀이라도 담지 않은 마당에 왜 이리 상스런 말을....’

‘근디 오늘은 워찌 이리 경점이 늦디야?’

‘이 녀석아, 해가 길어진 탓 아니더냐?’

‘그런감? 햇님도 미쳤는갑서...당췌 내려설 줄을 몰러...’

장쇠는 짜증을 꼬리잡힐까 걱정해서인지, 말을 이내 돌려 버린다. 인정(人定, 밤10시반 즈음으로 내일을 대비해서 씹물 한번 빨아보는 시간이고..ㅋㅋ)에서 파루(罷漏, 새벽4시반쯤, 더위를 피해 새벽에 한따까리 돌리는 시간임메..ㅎㅎ)까지 어영청 소속의 전루군(傳漏軍)은 민초의 삶을 돕고자 경점법을 시행하고 있었다. 북과 징을 쳐서 지금이 몇경(更) 몇점(點)인지를 알려주게 되어 있었는데, 계절에 따라 해의 길이가 짧아지고 길어짐을 잘못 헤아려, 경점이 개판이라고 불평하는 이들은 모두 배움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다.

‘장쇠야, 이제 전방문을 닫자꾸나.’

‘아니, 오늘 하루죙일 개시도 못혔는디, 문만 쳐닫으믄 장땡이유?’

‘어허...문 닫고 하는 장사가 그게 일품인 것을 네가 알겠느냐?’

‘아효...문 닫고 거시기는..ㅋㅋ... 거시기 뿐 아녀유?..ㅎㅎ..날도 더버서 그것도 수월친 안을거인디....’

그 말도 맞기는 맞았다. 나는 얼른 장쇠를 저자거리의 주막으로 내몰고 있었다. 전방을 닫아걸고 나서도 나는 뒷켠의 쪽방으로 가는 대신에, 전방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곰방대에 불을 붙이고 주저 앉았다. 가뜩이나 찌는 날씨에 후덥지근한 습기는 숨을 턱턱 막아오고는 있었다 해도, 곰방대의 연기 한모금이라도 없었다면 이 무료함을 어디로 짜냈을까하는 걱정도 한아름 이었다.

‘문단속들 허시게,.....문단속......대로변에 똥싸지 마세....술들 그만 드시게나...’

한 식경 정도가 지나자, 저 멀리서 순라꾼의 목청소리가 가까와 지고 있었다. 8패로 나뉘어져 도성을 순찰하는 순라꾼들 중에서 저자거리를 담당하는 치들은 3패가 맡고 있었는데, 하도 시전 사람들과 쌈박질에 연루된 적이 많아서 인지, 3패가 아니라 쌈패라 부르고들 있어서 별로 달가와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인정이 지나기 전에 서둘러 일들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채근하는 그들의 일상도 피곤하긴 했을 것이다. 게다가 나날이 어영청에서 다르게 내려오는 주지사항은 길거리로 외쳐지고 있었는데, 아마도 오늘은 노상방변(똥마려우면 싸야쥐 별수있남? 공중화장실도 없는디...)과 취객조치 였던 모양이다.

‘아효, 가랭이 벌리고 앉은 폼새 보라지?’

‘허어, 아녀자 말뻔새가 어찌 이리도 음란한고?’

‘땀에 푹 쩔어 배추저림만도 못허게 쪼그라 들었는 갑서?’

저 아래 새로 생긴 주막에 기거하는 들병이 중의 하나 였다.

‘또 쫓겨난 게냐?’

개성에서 내려오는 상단의 인원이 많을 때, 주막의 숙객들을 위한 방은 흐르고 넘쳐서, 평소에는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대며 입안의 사탕 굴리듯 놀아재끼는 들병이 들이라 하더라도, 잘자리가 없어 여지없이 주막밖으로 쫓겨나는 일은 예사였다. 그런 날이면, 누구 하루 재워줄 치들을 찾아 이리저리 전방을 기웃거리기는 해도, 나처럼 홀로 지내는 이들이 아니고서는, 천하디 천한 들병이를 선듯 재워주는 이들은 없었다.

‘네 이름이 벽수더냐?’

‘이름은 알아 뭐하시게?’

‘하룻밤 인연으로도 만리장성을 쌓는다 하지 않더냐? 머리 누일 곳, 한칸이 안되어도 엄연히 배려가 필요한 법, 통성명은 기본 아니더냐?’

벽계수까지는 아니더라도 깎아지른 듯한 절벽모냥새의 보지골에 음수가 풍천하다 하여 저자거리의 내노라하는 오입쟁이들 사이에서 붙여진 그녀의 이름은 벽수였다. 난 곰방대를 바닥에 털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누가 맨입으로 재워달랬수?’

하면서 뒤편에 차고 있던 대죽통을 꺼내는 것이 영락없는 밀주였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어디 사사로이 밀주를 들고 다니누?’

‘누가 뭐라 허기전에 어서 들이키기나 헙시다. 먹고 똥되면 누가 뭐라 할까? 깔깔깔...’

유기전 뒤켠의 허름한 쪽방이기는 해도, 햇살이 잘 들고 통풍이 좋아, 나는 시간이 나는대로 기어 들어와 서책을 읽으며 소일하는 곳이기도 했다.

‘혼자 사시는 것 치고는 살림이 깨깐허요?’

‘아녀자를 들이는 것도 아니고, 지나가는 과객들 뿐인데, 세간이 복잡해서야 어찌 살겠는가?’

그녀는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치마를 휙 걷어 내고 속곳차림으로 가랭이를 벌리고 앉더니만, 죽통의 따개를 열고 안주도 없이 그 독한 밀주를 벌컥대며 서슴없이 들이부었다. 방안의 교교한 호롱불 옆으로 땀이 흥건한 그녀의 다리살이 번들거리며 반사되고....

‘끼니는 어찌 했는가?’

‘......’

잘자리 마저도 쫓겨난 하룻밤인데, 주막에서는 끼니도 챙겨주지 못하고 내팽겨쳐친 모냥새였다.

‘나같은 년, 끼니걱정이 왠말이우? 길가에서 뒈지지 않는 것만도 오감치.....’

지금이야 걸뱅이 뺨치는 신세로 전락해서 이리저리 뒹굴며 살아대건만, 오래전에는 꽤 잘사는 집의 규수였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던 것 같다. 패가망신의 지름길인 투전질로 인해 가산을 탕진하고, 빚탕감 대신 딸을 팔아먹었다는 개종자 부친덕에, 흐르고 흘러 들병이의 신세까지 오게 되었다는 그녀의 이력....어디 한맺힌 사연이야 그녀 뿐이겠는가?

‘내 어디 찍어 먹을 거라도 챙겨옴세.’

나의 대꾸에 아주 짧은 순간, 그녀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사라지는 것을 난 놓치질 않고 있었다.

‘아휴, 방안이 왜 이리 더운겨?’

그녀는 눈물과 얼굴의 땀을 이상한 변명으로 훔쳐댔다.

‘자, 남새뿐인 막찬에다 찬밥뿐이라 내가 다 면구스럽지만, 이거라도 드시게나.’

오랜만에 사람대접을 받아 본 때문인지, 그녀는 내 눈치를 살피면서도 울컥대는 목젖을 애써 눌러가며, 꾸역꾸역 밥을 밀어 넣었다. 구차하게 살 지언정 배고픔이란 고통까지 허락하고 싶지 않은 자존심 때문이리라.

‘퍽...퍽....’

‘어이그 사람하고는....물을 달라허지. 어찌 그리 가슴을 치고 있누?’

그예, 밥을 다 비우고 목이 막혔는지, 물 대신 그녀는 눈치를 보며 가슴을 쳐대고 있었다.

‘이게 더 낫수. 이년 신세 타령 대신 가슴이라도 쳐야 밥이 넘어갈 듯 하여...’

곡절 많은 그녀의 세월이 그 한마디에서 우러나고 있었다.

‘한 순배 하시려우?’

그녀는 곡기를 떼우고 한시름 돌렸는지, 나에게 술을 권했다.

‘어디 그 유명한 도깨비 술 한번 맛볼까나?’

저자거리에서는 그 주막의 밀주를 그렇게들 불렀다. 자신이 석잔, 그 이상을 마셨음에도 다음 날 결코 기억을 못한다는 독주...그 독주마저도 그녀의 쓰라린 세월의 통한은 달래주질 못했었나 보다.

‘방이 왜이리 덥디야?’

그녀는 옷을 모두 벗어서는 저고리를 이불처럼 어깨에 두르고 속곳은 아예 벗어내리고서 등짝이 후덥지근 하다며, 벽에 기대서 가랭이를 좌우로 벌리고 앉으니, 그 자태가 장관이었다. 그녀의 음모는 검디 검었고, 배꼽 위까지 음모가 뻗어올라, 중구난방이 따로 없었다. 그 농밀한 수풀속에서 어찌 음구를 찾을까 싶을 정도로 그녀의 음모는 특이한 구석이 있었고...

‘어찌, 끼니대접에 이리도 무례한 응대가 있으리....’

‘아효, 양반님네들 처럼 문짜 날리시기는....남녀가 떡치는 삶이라 해야, 거기서 거기 아니우? 하루 죙일 찌든 땀에 보짓살 간이 새우젖만은 못해도 얼추 들었을 게요...깔깔깔..’

그녀는 음담패설에다 자신의 삶을 희화해서 비벼넣는 재주가 있었다.

‘어디 물건 자랑 쫌 해보시구랴, 내 꺼부터 보실라나?’

그녀는 발랑 몸을 뒤집기 무섭게 응댕이를 좌우로 화들짝 까고서는 고개를 돌려 나에게 소리쳤다.

‘거기 보이쥬? 보짓살 옆에 커다랗고 까만 점...보이쥬? 보지에 점이 벡혀 있으면 서방 복이 넘친다 하던디, 오라는 서방은 안오고, 맨 정신나간 좇대가리들 뿐이니...옛말도 믿을거이 못돼는 갑서...쯧쯧.’

난 그녀의 별칭이 어째서 벽수인지 짐작이 가고 있었다. 스스로 까내린 속곳으로 인해 발흥이 되었던지-쉬운 말로 꼴렸다는 거이지....크흐-그녀의 음구에서는 마알간 음수가 그 웅성한 털을 타고 방울방울 맺혀 흘러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난 손가락을 뻗어 그 방울을 건지려다가, 이내 응댕이를 들고 빼며 나를 놀리듯이 바로 앉아 버리는 그녀의 서슬에, 계면쩍은 그 손을 접어들이기 바빴다.

‘대통주나 자십시다.’

난 그 도깨비 술을 그리 부르는 줄 알았다.

‘이 냥반, 알고 보니 아예 쑥맥일세? 어서 허릿춤이나 풀르시게나.’

그녀가 말한 것은 좇대에 부어 밑에서 핥아먹은 좇대통주를 줄여 부른 말이었음을 난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이미 발기되어 핏줄이 두리두리 불거선 내 좇을 들이대자, 그녀는 냉큼 바닥에 누워 입을 벌리면서 대통을 나에게 건넸다. 그녀의 목이 막히지 않도록 나는 내 좇 위에 그 독주를 천천히 떨구어 갔다.

‘꼬올깍, 꼬올깍....아효 맛나다. 쩝쩝...쭈웁쭙....’

그녀는 술이 고팠던 것이 아닌듯 싶었다. 난 대통주를 닫아걸고 이내 그녀의 입안으로 내 좇을 술대신 들이키도록 놔두었다. 방안은 치기어린 두 젊은 육신의 열기로 인해 후끈하기까지 달아 올랐고, 서로의 사사로움을 묻는 법도 없이, 교합의 본질만을 위해서 꿈틀거렸다.

‘날도 더운디...몸끼리 부딪치지는 맙서?’

그녀는 서로의 체온이 가져다 주는 열기를 피하면서 육신을 달구는 법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내가 옥문의-보지란 말이쥐- 뒤로 근접하여 육봉을 들이대자, 신음도 없이 한숨을 내쉬더니, 그 두툴한 바닥에 양손톱으로 밭을 갈기 시작했다.

‘손가락은 빙신될때까정 놀릴꺼유? 뒷간이 놀고 있는디....’

‘허참, 네년이 어찌 양구통접(口通接-영어로 Double Penetration..유식이 막 날라댕겨)의 초식을 섭렵했느뇨?’

난 기꺼운 심정으로 그녀의 옥문에 더하여 식지와 장지를 더불어 그녀의 항문을 향해 일격을 더했다. 손가락 마디와 좇뿌리는 도대처 남아나지도 않을 지경으로 쪼사대는 그녀의 비기...역시 시전 상인들의 입소문은 정설이 틀림 없었다. 오랜 세월, 수 많은 남정네를 받아들였다고는 하나, 그녀의 둔부는 그 탄력이 육소간의 갓잡은 치맛살 같았고, 음수의 질척임은 한나절 장마의 흙탕길을 무색케 했다.

‘임자, 단오날 구경갑세...’

난 또다시 꿀자신 벙어리 신세가 되었다. 도대체 그녀를 거쳐간 남정네들은 뭘 그리도 많이 가르쳐 놓은 것인지, 나 원....

‘하이고, 밴댕이 소갈딱지 허고는...그네쪼까 타자는 거지 뭐것시유?’

아하,....난 그제사 알아듣고 그녀의 가랭이를 벌려 두 팔에 장딴지를 나누어 걸고서 그녀를 냉큼 안아 올렸다.

‘흐미, 이 팔뚝의 말근육 쫌 보소...미쳐부러...’

그러나, 그녀가 미치는 것은 그녀를 가뿐히 들어올린 팔근육이 아니라, 그 어떤 자세 보다도 그녀의 음곡(淫谷:씹구녕이란 의미여, 별거 있간디?)을 기저부까지 뒤흔들어 쑤셔대는 내 좇대의 격렬한 감흥 때문이었다. 이미 숨이 넘어가는 비명 아닌 비명으로 인해, 나는 길가를 지나가는 순라꾼들이 창호밑에 움츠리고 앉아 즐감이나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마저도 들고 있었다.

‘...윽윽...찬밥 찌끄래기 쳐멕이고설랑...이리도 진기를 빨아대나?’

그녀의 눈매가 풀리고 있었다. 배고픔에 지치고, 잘 곳이 막막했던 식전의 그녀는 눈매에 독이 오를대로 오른 승냥이와 다를바 없었건만, 나의 목을 두 손으로 둘러 쥐고, 내 몸에 가랭이가 쩌억 벌려진 채, 맘껏 그네를 타고 있는 그녀는 마치, 단오날 청포에 멱을 감고 아리따운 자태로 허공을 가르는 여타의 규수와 다를 바 없는 아련함이 가득했다.

‘기왕이면 같이 탭시다?’

음란의 열기가 채 가시기도 무섭게 내가 입에 문 곰방대를 나꿔채며, 연기를 빨아들이는 그녀 였다. 벌거벗은 몸을 부끄러워 함도 없이 한 쪽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팔꿈치를 걸어 고즈넉한 자세로 허공에 연기를 내뿜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으이그, 많이도 싸질러 놨구먼? 아니, 여기 앉아 도M고 있었남? 그 실한 물건, 놀려두 벌받을 겨...’

곰방대를 통해 연기를 뿜으면서도 음구를 흥건히 적시며 뭉클대며 밀려나오는 내 누액을 그녀는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웃어넘겼다. 그러나, 그걸로 그녀의 대답은 순행을 멈추었다. 더위와 색행, 그리고 좇대통주의 기운이 그녀를 덮쳤는지, 그 자세 그대로 옆으로 스러지더니 잠에 곯아 떨어지는 그녀의 측은한 자태....오늘 하루도 이렇게 가는가 하면서 맘을 풀어버리니, 그녀의 몸도 긴장의 끈을 놓은 듯 싶어 보였다.

‘가여운 것....’

난 고뿔이라도 걸릴 것을 염려하여 내 바지춤을 추스르는 것보다 그녀의 몸 위에 얇은 겉이불을 덮어주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으니까....이미 시각은 자시를 넘기고 밤은 그렇게 더위와 함께 익어가고 있었다.



-제 2 부 : 끝없는 실타래-

아마 나도 그 밤을 그렇게 쪽방에서 졸았던 듯 싶다. 새벽이 어스름한 시각, 난 유기전을 두드리는 소음에 소스라쳐 눈을 떴다. 그녀는 더운 여름이라 하더라도 한기를 느꼈던 탓인지, 이불을 말아덮고 코까지 골고 있던 참이었다.

‘누구요?’

‘장쇤디요?’

‘아니, 네 놈이 이른 시각에 어인 일이더냐?’

‘아효, 말도 마시랑게요, 시방 저자거리에 난리가 났시유..’

‘뭔 난리더냐?’

난 호들갑을 떨면서 유기전으로 들어선 장쇠를 진정시키면서 차근차근 말해보라고 일렀다.

‘여염집 아낙이 시해를 당혔는디...아랫도리는 빨가벗겨지고, 면상은...흐미...’

시신의 처참함을 말하자면, 얼굴이 온통 자상으로 뒤덮혀 형체를 알 수도 없을 정도 였고, 자신의 속곳을 머리에 뒤집어 씌워 놓았을 뿐더러, 빨가벗겨진 아랫도리는 멍투성이 에다가, 음구는 무얼로 쑤셨는지 피투성이 였다고 검험을 하는 곁에서 곁눈질로 훔쳐본 다른 아전의 말을 나에게 전하는 장쇠의 표정도 움찔대고 있었다.

‘사는 곳이 후미진 곳이더냐?’

‘아녀유....’

밤이라는 특성도 있긴 하지만, 범인은 용의주도하게 인적이 뜸하지도 않는 민가를 치고 들어가 추행을 저지르고 입막음을 위해 피해자를 살해하고 도주한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아전의 입에서 흘러나온 검험 내용은 적잖이 유별난 점이 있었다.

‘누가 발견했다더냐?’

‘그 아낙이 어린 나이에 상처하매, 혼자 살면시롱 길쌈으로 입에 풀칠허고 살았다 허대요. 솜씨가 매워서 일감도 많았다는 걸 보믄, 누군가 맡긴 일감 찾으러 갔다가 발견하지 않았것슈?’

‘그거.... 네 생각이지?’

‘그럼유, 지가 이 대가리로 남 생각할 겨를이나 있남유?’

난 장쇠의 추측도 일간 쓸모는 있었지만, 이렇듯 이른 시각에 살해 사실이 불거졌다면 시신을 발견할 시각은 그보다 이른 새벽이었을 것이고, 일감을 맡긴 사람이 그 새벽에 찾아갔을 거라는 개연성은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후아..목 타부러...’

쪽방문을 콰당 열어재끼는 그녀는 부끄럼도 없이 덜렁거리는 젖을 손으로 가리지도 않고서, 장쇠야 있건 말건, 나에게 물 한사발을 달라는 것이었다.

‘누가 뒈졌답디까?’

죽음도 그녀에게는 그냥 무덤덤한 화두인 듯 했다. 난 그래도 유명을 달리한 피해자를 위하는 심정으로 일어난 사건을 개략적으로 물그릇을 건네며 일러 주었다.

‘윤가, ….윤가 있는가?’

외간 남자들이 북적대는 느낌이 들자, 벽수는 물그릇을 쥐고서 쪽방의 문을 벌컥 닫아 걸었다. 이 날새벽에 날 찾은 것은 장쇠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언젠가 검계 홍패의 일로 아전과 같이 나를 찾아 왔던 포청의 종사관 송가 였다.

‘어쩐 일이시온지요?’

‘혹, 무슨 얘기 들으신 건 없는가?’

‘그 변사로 시해된 여인을 말함입니까?’

송 종사관은 근심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도 신속하게 연통을 한 자는 누구인가?’

난 장쇠가 발품을 팔아 들려준 얘기를 다시 그에게 들려 주었다.

‘그랬구만....’

그러나, 종사관의 표정은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주위를 좀 물려줄 수 있겠나?’

나는 좁디 좁은 유기전 안을 벗어나 밖으로 나가자고 그를 부추켰다. 잊지않고 곰방대를 챙겨 나서면서 나는 잠시 뒤돌아서 부싯돌로 불을 붙여 연기를 흠씬 빨아 들이면서, 종사관과 보조를 맞추어 아직 어스름으로 한적한 저자거리를 향해 걸어나갔다.

‘어찌하여 저를 홀로 보자 하셨는지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험세....오늘 벌어진 변사사건 외에도 외부에 발설치 않은 것이... 세 건이나 더 있네 그려...나도 포청밥을 꽤나 먹은 몸이네만, 헐...이런 일은 도시 처음이라 당황스럽기만 하네...’

그는 벽에 부딪힌 것 같았다. 변사의 신고는 되었으되, 도성을 중심으로 벌어진 아녀자 시해사건의 범행은 잠잠할 줄 모르고 터지고 있어서, 좌우 포청은 물론 모든 관원들에게 함구령이 내려진 것은 물론 이고, 초사의 내용조차 상부에 올리지도 못하고 부장(部長)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노심초사하고는 있었으나, 이렇다할 증좌도 발견치 못하여 애꿋은 아랫것들만 죽어나가는 지경이라는 것이었다.

‘변사는 도성에서만 일어난 것이옵니까, 아니면...’

‘최근에는 도성내에서만...지역도 달라서 범인의 은거지가 범행지역의 근방일 수 있는 가능성도 희박한데다, 도성내 거주민인지 조차도 파악이 안되고 있네 그려...큰일은 큰일이야.’

‘저를 찾으신 연유는?’

‘내가 불법이기는 허나, 검험록을 이리 들고 나왔다네, 얼마나 시급하면 일반에게 이것을 보이려고 품에 넣고 왔겠나?’

검험록은 일반인에게는 절대 유출되어서는 안되는 기록이었다. 망자에 대한 기록은 범죄행위와 관련되어 있고, 그 사실여부는 삼검제를 통해 최종적인 양형이 결정되기 전까지 발설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관료들이 사건의 공초과정에서 기밀들을 이용한 편법적인 뇌물을 피의자로부터 받아채서는 공초기록을 변조하는 예가 왕왕 있어왔기 때문이었다. 공정성을 유지하면서 혹여라도 사건과 관련된 또 다른 범인이 추포될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수사기밀과 피의자의 자백이 일치함을 검증하기 위한 이유도 있긴 했다. 이런 고로, 종사관 송가가 다급한 심정에 포청에서 들고 나온 검험록이라 나 자신도 후덜덜 긴장되기는 마찬가지 였다.

‘이 기록에 보면 세번째로 발견된 아녀자 변사사건에서 시신의 부패로 기인한 변색 정도가 가장 심했으며, 구더기도 발견되었다 라고 씌여 있으나, 시기적으로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이라면 하절기라 할지라도 부패정도의 차이를 감안 하더라도 시신의 발견 시기에 있어서 앞뒤가 바뀌어진 듯한데...무언가 이상하지 않는지요?’

‘역시 날카롭구만. 각기 다른 범인의 행위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으되, 포청에서는 어느 불순한 무리가 나누어 일을 저지르고 다닌다고 입을 모으고 있지. 나는 다른 의견을 갖고 있네만....’

‘다른 의견이라면...’

‘이건 한 놈이 저지른 짓이라는 것이야.’

허나 인면수심의 악랄한 자라 할지라도 네 명의 여인을, 그것도 한 여름에 연이어 살해했다는 사실은 믿기도 어려웠거니와, 설마 그럴 사람이 있겠냐는 믿음은 아직도 민초들의 성정을 순박하게 바라보는 중론이 살아있어서 였다.

‘그렇게 보시는 연유라도....’

‘검험서에 나와있는 것을 보면, 첫째로 범인은 피해자의 하의를 모두 발가벗겨 놓았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형체를 예측하기 어려운 도구를 사용하여 음부에 해를 입혔으며, 세번째로는 동일한 부위는 아니라 할지라도 살해전 구타의 흔적이 명확히 나타나 있음이고, 넷째로는 피해자의 얼굴에 난폭한 자상을 남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만든 것도 그렇고, 다섯째, 이게 묘한 것이 여인의 속곳을 뒤집어 두상에 씌워 놓았다는 점이지. 또 한가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는 범행이 일어나던 당시, 그 어떤 주변의 사람들도 인기척 내지는 비명 끝자리도 들은 바가 없다는 것이야. 이상하질 않은가 말이야. 양반댁들이 아니고서야 이 열하지절에 창호도 열지 않고, 방문도 닫아 걸은 채, 더위를 피하는 사람들이 누가 있겠나? 그렇다면 그 어느 누구라도 이렇듯 폭력과 난행이 난무한 상황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는데, 이게 가장 미심쩍은 사안일세. 그래서 포청에서는 이걸 들어 조직적인 무리들이 저지른 악행으로 촛점을 모아가고 있는 걸세...그게 아닌데.....’

난 머리를 갸우뚱 하다가 종사관에게 넌즈시 물었다.

‘순라꾼으로부터 보고된 것은 없었는지요?’

‘전혀 없었네, 금위영에서 관장하는 순라 일지와 삼군문의 8패에서조차 보고된 이상 징후는 없었을 뿐더러, 좌경(坐更)이나 경수소(警守所)-요즘으로 말하자면 민간인 자원봉사 순찰조를 말허는디,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 없었다고라...위에서 부려먹는 것들 하고는...쯧쯧-에서도 언제나 있어왔던 취객들의 쌈박질이나, 좀도둑들의 보고는 있었어도 변사사건과 관련된 사항은 그 어디에도 눈을 씻고 찾아봐야 없었다네.’

‘그렇다면 혹시 순라 8패의 순라 경유도를 얻을 수 있는지요?’

‘그건 삼군문 소속의 8패장들만이 각기 따로 보유하고 있는데, 무엇때문에?’

나는 변사사건이 발생한 정확한 지점을 알고 싶어서 였다. 범행지역과 주변의 샛길등을 살펴서 범인의 도주로 라든가, 혹여라도 범인이 범행장소와 밀접한 지역에 거주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타진해 보기 위함이었다.

‘검험서는 이쯤하면 되었고...아무튼 날이 밝는대로 포청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러자, 송가는 검험서를 다시 품안에 넣고서 주위를 살핀 뒤, 자리를 떴다. 그의 뒷모습은 어두웠으며, 축쳐진 어깨 위로 무겁게 눌려진 책임감의 질곡이 세세하게 흐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냥반, 급허긴 급했는 가베, 요전에는 아전도 동행허시고 폼새가 더럭 괜찮았어도, 오늘은 피죽 한그릇 못챙긴 상으로 다가니, 빌빌 기어 들어오는 꼬락서니 하고는.....쯧쯧’

‘허어, 나랏일 허시는 분께 어찌 그런 망발을...입조심 해야 할 것이야.’

장쇠의 눈에도 그의 초췌한 모습은 보기에도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근디, 저 아녀자는?’

딩글대며 이죽을 떨어대는 장쇠의 눈치는 이미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밤사이 쪽방에서 벌어졌을 법한 춘화만개의 색행에 대해 연상하는 것 만으로도, 아랫도리가 지근대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기에 말이다.

‘어허! 알면 다치느니...자넨 자네 물건 간수나 잘 하게. 쪽방 쪽은 신경 끊고...’

그러나, 방문을 넘어서서 들리고 있는 벽수의 코고는 소리는 계속해서 장쇠의 입가에 웃음을 떠나지 못하게 했으며, 피곤에 쩔어 있던 그녀가 행여 단잠에 빠져 있는 기척을 망칠까 저어되어 난 유기전 앞에서의 호객행위를 위해 소리치는 것도 잠시 멈추고 있었다.

‘장쇠야, 국밥이나 말아 먹자꾸나.’

난 허한 속을 달래려는 요량으로 국밥을 시켜오라 일렀다. 눈치빠른 장쇠는 시키지도 않았건만, 듬북허니 세 그릇을 말아왔고.... 나는 가게를 장쇠에게 맡긴 채, 소반에 받쳐서 국밥 두그릇을 들고 쪽방으로 들어갔다. 대낮이 등천인데도 불구하고, 벽수는 잠에 곯아 떨어져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의 기척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널부러져 있었다.

‘어이, 이보시게...이제 기침허고 한 술 뜨세...대통주의 숙취에 자네 속도 말이 아닐테니...’

그제서야 그녀는 부스스 일어나 머리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옷도 필요 없다는 듯이, 알몸으로 소반에 다가 앉은 후, 내 눈치를 살피는 구석도 없이, 국밥을 퍼대끼는 그녀의 뻔뻔스러움....난 그게 더 가식적이지 않아 보기에 좋았다. 다른 여인네들 같으면 지난 밤의 음란함은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투로 안면을 몰수하기 일색이었으나, 그녀의 소탈한 성정은 어제나 지금이나 난 그렇고 그런 년, 나란 년은 벽수일 뿐이라오 하며, 몸으로 말하고 있는 듯 보였다.

‘나....여기서... 수 삼일 더 거하면 안되겠수?’

‘안될 건 또 뭐 있나? 옷깃만 스쳐도 억겁의 인연이라 하는데, 우리야 살조차 섞었으니, 보통 사인가 말이야. 궤념치 말고 더 있으시게나. 나도 적적하지 않아 좋으이...’

국밥을 삼키며, 방바닥 만을 응시하던 그녀가 그제서야 배시시 웃으며, 나를 올려다 보았고, 난 그렇게 험히 살아왔어도 저렇듯 순박한 미소를 지을줄도 아는가 라며 속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나보다 더 허기져 보이는 그녀에게 내 국밥을 덜어주어도 사양하는 법이 없는, 그녀의 솔직한 뱃골이 난 더 마음에 들었기에....

‘포청 나으리는 어쩐일루?’

그녀도 송가의 방문이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전과가 없고서야 포청의 관원이 이유없이 일반을 접하는 일은 없었기에 말이다.

‘별일 아닐세....자네나 나나 죄진 일도 없는데, 몸 사릴 게 무엔가? 어서 자시게나. 난 잠시 포청에 다녀올 터이니, 더 쉬고 있으라니....’

‘범인이 오리무중 인겨...지 말이 맞쥬?’

‘아니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난감해 하던 그 냥반 얼굴을 떠올려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만유...’

그녀는 짧은 찰나의 간격이었음에도 송가의 얼굴에 내비친 근심의 본질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필시 이번 변사 뿐만이 아니라, 다른 연관된 일들로 다가니 골통이 들들 거린다는 표정이던데....’

‘아니, 자네가 그걸 어찌?’

그녀의 분석력은 나를 저으기 놀라게 하고 있었다. 단순한 표정 하나 만으로도 그녀는 송가가 지고 있던 문제의 무게와 복잡성까지 총체적으로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지도 포청에 데불고 가실 수 있남유?’

‘포청에 아녀자의 신분으로서 고신할 것이 없는 바에야 들여나 보내 줄지....그럼 이렇게 하세나...송가를 밖으로 불러내면 그만인 것을...’

그녀는 게걸스럽게 국밥을 비워가며, 국물까지 들이키기 무섭게 자신도 포청에 데리고 가줄 것을 채근하기 시작했다. 나는 성가신 심정이 만만했건만, 딱히 거절할 말을 생각해 내지 못한 것도 사실 이었다. 더구나 그녀와 어줍잖게 엮이어 가는 나 자신을 돌아 보면서, 이 일로 인해 그녀와의 관계가 순순히 풀려가는 것인지, 아니면 끝을 모르고 얽혀가는지 도저히 가늠하기 어려워지고 있었다.



-제 3 부 : 그림자 밟기-

그녀는 나의 뒤를 따르면서도 세상 구경을 처음 나온 사람처럼 이리저리 눈길 주기에 바쁜 행색이었다. 기실 그녀의 신분을 보더라도, 어느 누구 하나 헐한 꽃비녀 한개라도 건네는 이가 없었을 것이고, 인간으로 대접하기 보다는, 숙객들이 머무는 객주텃방 한 귀퉁이의 요강만도 못한 취급으로 살아왔을 그녀 였기에, 난 그 심정이 백분 이해되고 있었다.

‘아효, 빛깔도 곱지....’

그녀는 차마 자신의 머리결에 대보지도 못하는 머리 장식을, 그저 머뭇대며 바라 보고만 있었다.

‘하나 사주련? 맘에 드는 걸로 한번 대 보던가...’

그녀는 그래도 되겠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 보며 배시시 웃어재꼈다. 얼마나 자신 스스로 여인임을 잊고 살아왔던지, 나의 하찮은 호의에도 기꺼워 하는 그녀의 모습이 애처롭기 까지 하였고...

‘어찌하여 멈추는가?’

그녀는 포청이 시야에 들어오자, 발걸음을 멈추고서 자지러드는 것이었다.

‘여기 쯔음이 좋컸슈... 더 이상은...’

난 그녀를 더 채근하지는 않았다. 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으려니 하는 맘에, 나 홀로 포청에 들어서서 송가를 불러내기에 이르른다.

‘어찌 들어오지 않고?’

‘밖이 더 좋습지요....어디 시원한 곡차나 한잔 들러....’

송가는 서둘러 채비를 갖춘 뒤, 나를 따라 나섰다. 포청 저멀리 오그리고 서있던 벽수는 종사관을 보자, 내 뒤로 냉큼 숨어 까딱하니 고개만을 조아릴 뿐이었다.

‘저 여인은?’

‘어,... 그냥 아는 처자입죠. 저자 거리 마실을 나왔다가 그냥.... 사정을 다 아는 흉허물 없는 사이이니, 무어라 흘려도 입이 무거울세, 밖으로 새어나감은 없을 것이외다.’

송가는 기밀에 해당하는 사항이니, 주위를 염려하여 객줏집의 골방으로 가자고 권유했다. 방안에 나와 종사관, 벽수가 침묵으로 마주하고 앉으니 쑥스럽기가 만장이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송가였다.

‘여기 자네가 필요로 하는 순라경유도 일세. 먹으로 표시해 놓은 곳이 변사가 일어난 곳이니 살펴 보게나. 보면 볼수록 대담한 놈이란 생각이 들어. 외진 곳도 아닐 뿐더러,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지역을 골라서 범행을 저지른 듯 보이니, 이게 기가 찰 노릇 아닌가?’

‘워디 놈만 저질른 답디여? 년들두 눈깔에 불 지피믄 뵈는 거 없기는 피차마차 쌍마찬디...그런 외곬진 생각으루 다가니 덤비다가는 잡아들이기는 커녕, 놀림이나 당하기 십상이지유....’

추임새랍시고 거드는 벽수의 반론에 송가도 멀뚱대며 바라다 볼 뿐 반론을 펴지는 못했다. 사실 성별조차도 누군가를 특정해서 범행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지론도 어쩌면 편견일 수 있으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중립적인 입장으로, 공정하게 조사에 임해야 한다는 원칙을 그녀 나름의 형식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검험록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을 정리 하셨는가?’

송가는 대화 내내, 말머리를 끊어먹는 하대에서, 이제는 존대를 은근슬쩍 밀어넣어 나 스스로도 과분한 대접이란 생각이 불현듯 들고 있기는 했다.

‘아까부터 생각해 봤지만, 네가지의 변사가 순차적으로 일어났다고 가정할 경우, 제일 첫번째로 발견된 변사자의 부패정도가 가장 심해야 할 터인데, 그렇지 않은 걸 보면, 범인이 수사의 과정에서 혼선을 유도하려는 의지로 시신을 제3의 장소에 유기하였다가 추후에 발견되게 하였던 것이 아닌가 사료됩니다만....’

‘나도 그 점에는 동감일세. 허긴 그 세번째 변사자의 신원이 무당이고 보면, 여기저기 굿판을 옮겨 다니느라 집을 비우는 시기가 많은 것을 사전에 눈치채고 그리 행한 것이 아닌가 하네.’

‘더우기 그 무속인의 면상에 남겨진 자상의 갯수가 극히 적은 것으로 보아, 작금까지 흘러온 살인의 완성도에 훨 못미치는, 이른바 초범의 시기가 아니었나 하는 예측이 가능합지요.’

‘초범의 시기라니?’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들의 습성이 그 횟수가 더해질 수록 대범해지고,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더욱 분명해 지는 경향을 일컫습죠. 그 당시에는 피해자를 신속히 절명에 이르게 하기도 힘이 들었을 것이고, 피를 보는 행위조차 자신의 설계목록에는 자리하고 있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요. 살인이 있고나서 아삼삼 자신의 눈앞에 아른 거리는 그 망자의 환영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범인은 행위가 중첩될 수록 난도질의 횟수가 증가하는, 이른바 혐오살해의 전형을 따라가게 되었던 것이고요. 아마도 범인은 심중에 병이 있는 자 이거나, 살아온 과정상에 심경에 상흔을 입어, 그에 대한 반발보복으로 살인의 충동에 휩싸인 것이 아닌가 감히 추측해 봅니다만......’

‘혐오살해라....그렇다면 어찌하여 여성의 성기를 그토록 난행으로 욕보였는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질문에 잠자코 있던 벽수가 대뜸 송가를 향해 질문을 날렸다.

‘보지를 워뜨케 혔다고요?’

‘아니...그게..그러니까....’

송가는 예상치 못한 벽수의 질문에 당황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쌍소리에는 그녀가 한 수 위인 모양이었다.

‘아직 검시관도 정확한 기물을 주장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긴 헌데....그러니까, 어떤 도구로...에 ...그러니까 음구의 주변을...에 또...’

‘하이고 속터져 뒤지겄네....잘 모르긴 혀도 몽둥이든 꼬챙이건 간에, 뭘로 디리 씹구녕을 들어갈 생각도 없는 와중에 쑤셨다 그거 아녀요?’

‘그그그..그렇지 말로 하자면....’

그녀는 고깟 단어 때문에 버벅대며, 얌전을 빼는 송가의 권위적 언사가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었다.

‘헤에..고자거나 필시 좇대가리 빙신인 갑서....물건 지대루 돌려대는 족속들은 보지구녕에 장난질 치는 경우를 못봤당게요.’

그녀의 날카로운 지적은 범인을 눈 앞에 두고서 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렇다면 머리에 고쟁이 속곳을 씌워 놓은 것은 무슨 연유인가?’

내가 하고 있으면서도 나의 질문은 종사관이 피의자를 향하는 공초처럼 변질되어 있었지만, 똑 부러지는 그녀의 경험담은 그 어떤 진술보다도 나에게는 가치가 있어 보였다.

‘뒈진 년, 면상짝을 안봐서 모르겄지만, 끔찍할 것이여, 하물며 눈 앞에서 목도한 범인은 또 워떠컸시유?, 말허면 입아프지. 아랫도리를 까 놓은 것은 이년은 더러븐 년입네 허는 과시의 표상이고, 면상에 속곳을 씌운 것은 다신 보고 싶질 않다, 뭐 이런 거지유. 아마도 목에는 액흔이 지천일 것이여.’

그녀는 눈으로 보고 있는듯이 청산유수 였다. 범인은 색행이 어려운 자일 것이고, 음심을 갖고 침입했으나, 의도를 성취하지 못했고, 안면식이 탄로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목을 졸라 피해자를 살해하고, 면상을 난도질 했을 것이라는 예측을 그녀는 단순, 무식하면서도 절도있게 풀어내는 것이었다.

‘구지 자상을 그리도 처참허게 남길 연유가 있었을까?’

‘하이고 모르시는 말씀 다 허시네. 눈을 부릅뜬다는 말 있자녀유?’

‘있지...’

‘목이 졸려져서 눈을 부릅뜬 거.... 보신 일 있슈?....’

‘아니....’

‘그건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가 없다 않혀요? 그러니 면상을 난도질 한겨...죽일 이유가 있었을까마는, 아마도 그 아낙이랑 자주 대면허는 안면식이 있었을 거여.’

‘그렇다면 평소에 치근대던 동네 인근의 한량이나, 왈패들 중에 뭐 그런 작자들인가?’

나와 종사관은 침을 꼴깍 삼켜가며, 밑도 끝도 없이 그녀의 주장에 빠져들고 있었다. 남정네를 겪어볼대로 겪어온 그녀의 경륜은 작금에 벌어진 사태를 명쾌한 추론으로 풀어나갔다.

‘하이고, 대가리 돌리는 거이 요맨치 뿐이니, 유기전 껄떡쇠나 허고 계시쥬...깔깔깔...’

저자거리에서는 굴러다니는 짱돌보지나 주어먹는다는 나에 대한 음해성 소문이 그런 식의 별명까지 낳고 있다는 것에 괜시리 분함이 솟고 있었지만, 어쩌랴...., 줏어먹는 보지가 있기는 했기에....쯧쯧....

‘범인은 필시...그 여편네를 평소 유심히 살피고, 살피고 또 살폈을 것이여....소심허고, 안면식도 있어서 일도필살로 목적달성이 안될 성 싶다 허면, 마무리는 당연히 죽여불고, 만인을 향해 이 년은 죽어도 싼년입네 허는 작태로 능욕시켜, 실패한 그 분함을 달래려는 심산...독한 놈이여요. 그냥 눈깔 치켜뜨고 돌아댕겨 봐도 잡을 수 있을지는 고사허고 꼬리잡기 조차 말짱 도루묵 이랑게요.’

범인은 평범하고 다른 사람들의 틈에 섞여 두드러지지도 않는 그런 자...그러나, 끊임없이 그 여인을 향한 음심을 키워왔으나, 불가능한 상황과 자신의 신체적인 병증과 제약으로 인해, 범죄의 상황을 심정적으로 사전에 이미 설계했을 것이고, 색행의 불가능함이 분노로 격발되어 폭력이 자행되었고, 거기에 더하여 자신을 알아보는 행색을 눈치챈 후, 불안감은 폭등하야, 죽일 수 밖에 없다고 간단하게 결심했을 범인의 윤곽.....아마도 음구와 면상에 남겨진 난행과 자상은 자신의 목적을 끝내 무산시킨 피해자에 대한 마지막 분풀이 였을 것이고...

‘허어, 윤가 자네, 어디서 이리도 걸출한 다모(茶母 : 포청에 소속된 여자형사를 일컬었지만 난 아직까지도 多毛인줄 알고 있었넹. 털많은 여자만 골라서 면접을 했을 거라는 나만의 생각....지랄!...)를 골라왔는지...내가 한달 열흘 넘도록 고민하던 문제를 이렇듯 단칼에 추리할 줄이야....’

‘암만혀도 그 아녀자들 혼자 사는 것들이 분명헐거여....’

‘아니, 그런 것도 예서 추론이 가능하단 말인가?’

‘동거남이나 기둥 서방이락두 개입되었다가는 수포로 돌아갈 것을 뻔히 알만한 위인일턴데, 그런 아낙을 먹잇감으로 선정하는 건, 기본 아니겄시유? 끊임없이 살피고, 재어보고, 뜸을 들이고, 공을 들였을 그 아녀자를 보고 또 보면서 입맛을 다시고 있었을겨....쳐주길 넘....’

그녀가 분노로 주먹을 부르르 떨면서 흥분하는 모습에, 곁을 둘러선 나와 송가마저도 그녀의 심정에 공감을 표현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아직 많은 것들이 예측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무력감은, 세사람 모두에게 어쩔 수 없는 자괴감을 동시에 선사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었다. 범행의 끝자락 부터 역순으로 그 시공을 되밟아 나가는 와중에도, 범인의 윤곽이 아직도 흐릿하다는 사실은 울화가 치미는 답답함과도 일맥상통 했으니까.

‘범인의 키도 대강 알 수 있겠는가?’

이제는 도리어 송가가 벽수에게 매달리는 형편으로 바뀌고 있었다. 검험록의 내용에서 드러난 피해자의 치수들을 말해주자, 그녀는 눈빛을 반짝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우선 범인이, 아녀자의 몸인데도 불구허고 막무가내의 구타를 행하였다는 거이 골짜인규.....완력으로 제압하기에는 작지만, 그렇다고 기럭지가 장대한 치도 아닌...게다가 목젖의 부러진 상태가 미약허고, 액흔이 각도가 약허게 누른듯한 형상은 팔 기럭지가 보통이라는 의미일테고...개략 다섯자 세치(160cm) 정도 일거유.’

‘액흔의 차이가 있긴 한가?’

‘팔 기럭지가 길다면 피해자를 타고 눌러도 목젖까지 일정한 거리가 유지 되어야 허니, 각도가 생기지라. 목젖의 문제 보다는 순수한 의미의 질식이 사인일 수 있게 되고, 만일 팔 기럭지가 짧다 치믄, 목젖과 가까와 지고설랑, 힘을 써서 절명을 시켜야 허니 위에서 누르는 경향이 쎄지고, 목젖이 쉽사리 바숴지니 액흔의 형상이 차이가 날 밖에.....근디 이 범인은 팔 기럭지가 보통이어서 그 중간을 때림서, 목젖의 괴손 상태가 어중간 허니....’

난 벽수의 조리있는 말투에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그녀의 시신 분석에 의하면 바로 액흔의 형태로 미루어 중키를 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견이었으며, 피해자들이 살해를 당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들여다보듯 예측하는 그녀의 명석함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 경유도를 제가 잠시 갖고 가도 될른지요?’

‘그러시게나. 내가 8패장들에게 직접 필사시켜 받은 것들이니 아무 염려 없네만, 타인에게 조견시켜서는 안될 것이야. 거기에 더하여 뒷면에는 순라교대 일과 병력이동 사항을 적어놓았네.’

송가는 자리를 뜨면서 경유도의 보관에 신신당부를 잊지 않았다.

‘아직 한참 멀었수....’

‘아니, 멀었다니?’

‘꼬리밟기도 못허고 바둥대는 꼬락서니 하고는....저 냥반이 범인 추포하기는 애저녁에 글렀수.’

‘어찌하여 그리 낙심허는가?’

‘낙심이 아니구유, 답답혀서 그려요....불알 달린 것들은 건들데기만 혔지, 대가리가 없어, 대가리가....’

나는 유기전으로 돌아오는 길에 장터를 들러 개떡에다 약과까지 한아름 사서 벽수에게 안겼다. 그녀는 뭐가 그리도 신나는지, 품에서 개떡을 꺼내 질겅질겅 씹어대며, 다시금 객줏방으로 돌아갈 생각도 잊고 사는 듯이 보였다.

‘장사는 종 치고, 돈 말아 묵꼬, 기집 꿰차고...자알 허십니다요....아주 기골이 장좇허셔유...’

왠종일 전방을 책임지게 했던 뾰루퉁한 심사를 저리도 내지르는 게다.

‘손님은 좀 있었더냐?’

‘하이고, 시상사 이런 개판 지경에 장사 걱정 씩이나 허시게유?’

‘껄껄....어여 마무리 허자꾸나. 심술 좀 그만 내고....’

뒤에 붙어 서있던 벽수의 안색도 별로 좋지는 않았다. 남의 전방에 벼락같이 들러붙어 장사 초친다는 소리나 들을까 싶었던지, 아무 소리 없이 쪽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행색이 꼬리에 불붙은 서생원 격이었다.

‘나 가볼라유....내일 또 나올랑가는 몰러도....’

장쇠는 그리 말하여도 어김없이 내일 또 유기전 문을 두드리며, 장사에 매진할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와의 인연에 있어서는 위아래 흉허물 없이 지내온 터였으니까.

‘안 들어오고 뭐허쇼?’

난 깊은 생각에 빠져 전방을 닫아 걸었음에도 가게 안에 남아, 넋을 놓고 앉아 있던 중이었다. 벽수는 심심했던지 쪽방문을 벌컥 열더니 나를 불러 재꼈다.

‘이상해, 이상하단 말이야...아무래도 앞 뒤가 않맞아.’

‘뭐가유?’

‘도적질은 분명코 도주로가 확보되어야 실행을 하는 법인데, 이 지점들에 있어서는 타인에게 발각되지 않고 도주할 수 있는 샛길이 없질 않은가 말이야....살인은 좀 다른 것인가? 살인을 저지른 후에도 담담하게 남들처럼 길을 잡아 나아간다? 그게 그렇듯 용이한 일이던가?...’

난 질문 반에 혼잣말 반으로 중얼거렸다.

‘이 냥반아....눈깔은 뭘러 달고 댕기고, 검험록은 뭘러 쑤셔 보셨남? 네 명의 여편네 중에서 시반이 검출된 시신이 어느 거여? 세번째 까지야, 발견이 늦어져 부패가 진행이 앞서 되었다손 쳐도, 네번째는 시반이 있었을 거 아녀유? 그렇다고 허면 대강의 살해 시각을 알 수 있었을 거인디....’

‘시반? 시반? 그걸 왜 내가 놓쳤지?’

나는 메뚜기 뒷다리 펴듯이, 벌떡 일어나 유기전 문을 박차고 포청으로 냅다 내달리기 시작했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떨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한시라도 지체되어서는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땅을 박차는 내 가슴속은 바작거리며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제 4 부 : 소용돌이 속으로-

대기는 여전히 뜨거운 하절기의 독기를 품고 있었으나, 여지없이 시각은 예전과 다름없이 북과 징소리로 사람들을 몰아 세우고 있었다. 종루(鐘樓)에서 인정(人定)을 알리는 스물여덟번의 종을 치기도 전에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송가를 찾기 위해 포청 앞에 다다랐다.

‘종사관 나으리는 잠시 집에 다녀 오신다고 퇴청 하셨느니라. 뭔 일로 이리도 수선을 떠느냐?’

‘급히 고변드릴 껀이 있사와....’

‘어허, 달포가 넘도록 집에 가시지도 못하고 포청에서 격무로 바쁘셨던 몸이거늘, 내일 날이 밝거든 다시 오너라. 썩 물러가라는 말 못 알아듣는게야? 어디 육방곤 맛을 봐야 물러갈 참이더냐?’

문지기의 시퍼런 서슬에 나는 말도 못 꺼내고 그 자리에서 돌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낙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 밤이 지나고 나면 또 다른 피해자가 당연히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살인의 고리를 발견한 이상, 난 그대로 물러난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도록 안타까울 뿐이었다. 내달려 갔던 길은 단숨 이었건만, 유기전으로 돌아오는 길은 한참을 지체하는 듯하게 느껴졌다. 이미 해는 완전히 기울어 어둠은 야금야금 사방을 파먹어 들어가, 유기전이 가까와 왔음에도 주변은 완전히 철시한 시전골목의 스산함만이 가득했다.

‘끼이익...어이 벽수, 게 있는가?’

유기전의 곁문을 열고 쪽방을 향하면서 나는 벽수를 찾았다. 그러나, 인기척이 없었다.

‘객주로 돌아갔나?’

그러나, 방안은 나의 예상을 뒤엎고 있었다.

‘이게..이거이...무쉰....’

방안은 선혈이 곳곳에 뿌려져 있고, 방바닥에는 흘린 피로 문질러 댄 핏발자욱과 손도장들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으며, 무언가를 질질 끌고 간 흔적이 쪽문을 거쳐 유기전 밖으로까지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방안에서는 일간 격렬한 몸싸움과 난행이 벌어졌던 모양이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고, 무엇부터 해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부지불식간에 당한 광경에 나는 식은 땀과 함께, 두 무릎이 풀려 그 자리에서 주져앉고 말았다.

‘벽수...벽수...벽수에게 일이 난게야.....이 불쌍한 것....’

그 자리에 자지러지며, 조져앉아 넋을 잃고 방문 쪽을 바라보던 중, 나는 바닥에 질질 끌려가던 벽수가 남긴 것으로 보이는 희미한 핏자욱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二......... 十............ 八’

드문드문 사력을 다해 갈겨쓴 글씨는 다름아닌 숫자였다. 난 눈에 고춧가루를 뿌린 것처럼 불이 확 끓어 올랐다.

‘내... 이 자를....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나는 심기일전 하여 유기전의 천장에 감추어 두었던 도검을 꺼내 등 뒤에 걸고 가슴에 둘러 메었다. 유기전 문을 단속할 겨를도 없이, 나는 경공을 사용하여 내닫기 시작했다. 이미 인적은 끊어지고, 순라 8패는 도성의 치안을 위해 순라를 시작했을 것이다. 오직 나의 목표는 종루였다.

‘그래, 벽수는 이미 간파하고 있었음이야. 종루지기가 범인 이라는 것을....하절기를 맞아 종루의 서까래를 보수한다는 명목으로 종 위에 뒤집어 씌우고 벗기웠던 종포....그자는 종포를 벗기고 입히면서 그걸 일부러 순라꾼들에게 보이고 다녔을 터이고, 시신을 유기할 때에도 문제없이 그 종포 안에 숨기워 종루로 이동하였을 것이다. 시신을 숨기기에 적당한 높이의 종루 였으니, 아무리 하절기라 할지라도 시신이 썩어가는 냄새를 맡을 수는 없었을 터....간교한 놈....’

-자네 파루가 되기도 전에 어딜 그리 바삐 가나?-
-종루에 종포 씌우러 가네..오늘도 서까래 보수헌다니 먼지가 좀 떨어지겠나?-
-수고가 많으이-
-자네두 어여 눈이락두 붙이게나-

이런 류의 대화가 야심한 통금에 이루어 질 수 있는 자는, 오로지 순라꾼과 친분이 깊은 경점군 중에서도 종루지기 밖에 없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는 듯 싶었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유유자적하게 손인사를 하며 도성을 활보할 수 있는 자 중에서 자신의 거처와 종루 사이를 마음껏 활보할 수 있는 자....난 그것을 놓치고 있었다.

‘내가 미련했음이야....’

종루를 감안하지 않은 채, 순라경유도를 따라 범행이 이루어 졌던 표식만으로 순라 8패에게만 촛점을 맞추어 추론을 펴 나갔던 나의 무지함....그들과 연관될 수 있는 자들에 대한 관련성을 아예 처음부터 무시했었던 그 편견과 오만...이미 벽수는 나와 종사관에게 그 편견이야말로 이 사건의 해결에 있어서큰 장벽이었음을 사전에 지적하였던 것인데....

‘이 열하지절에 집중되었던 범행의 단초가 그 종루의 종포였다는 것을 어째서 이제야.....그 자는 종포를 이용해서 무녀를 살해한 후에 시신을 유기해보니 그것이 만만한 일이 아님을 깨달았겠지. 그리고, 홀로 사는 여인네들을 죽여도 쉽사리 발견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이미 알아채고 있었음이야.’

매일 저자 거리를 오가며 저 멀리서도 보이는 종루의 서까래 보수장면을 목도하고 있었음에도, 나는 의심의 꼬리를 두지 못한 나자신을 끝없이 책망하고 있었다. 숨이 턱에 차기도 전에 눈 앞에는 음산한 모습으로 버티고 서 있는 종루가 나타났다.

‘사----악---’

난 돌벽에 바짝 기대어 등 뒤의 칼을 조심스럽게 뽑았다. 종루로 올라가는 쪽문은 걸쇠가 열려 있었고, 그것은 그 자가 종루에 있다는 의미였다. 돌계단을 한걸음, 한걸음 디딜때마다, 가슴은 터질듯이 쿵쾅거리고 눈 앞은 먼지를 뿌린것처럼 뿌옇다가 맑아지다를 반복했다. 계단의 위로 희미한 달빛이 새어 내려와 나의 지근거리는 발끝을 인도하고....

‘툭...툭.....툭....하이고 요년이 아까는 생개지랄을 떨드만, 이렇게 빨리 뜸이 들어서야 원...낄낄낄’

아마도 그자는 널부러진 벽수를 툭툭 건드리며, 사냥해 온 먹잇감을 재어 보고 있는 듯, 여유로운 농지거리 중이었으니, 마음이 급해지고 있었다. 벽수는....벽수는...괜찮은 것인가?

‘휘이이이이익.....’

난 계단을 서너개나 남기고 있었으나, 몸은 이미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시퍼런 검기가 여름 밤하늘을 가르면서 그 서늘한 냉기를 사방으로 뿌려대고...

‘뉘기야? 오호라, 어제 저녁 저년과 뒹굴던 유기전 껄떡이!....젯상에 올릴 그릇 나부랭이만 팔아 치우더만, 언간새 조상신이랑 접이라두 붙었나? 어찌 이리두 나를 찝어냈나 그려?’

‘네 이놈,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설쳐댄다고 모두가 헛다리만 짚을 줄 알았더냐?’

‘아효 입만 살아가지고는....하긴 뒈진 년들도 입들은 살아 있드만...밖으로는 잘난 체에, 도도한 척, 그런 년들치고 야밤에 울부짖지 않는 년들 없습디다....낄낄낄.....절개를 지키네, 신을 모시네...허허...개뿔....해 떨어지면 좇대가리 입에 물고, 씹에 걸고 미쳐 돌아가는 세상, 껄떡쇠 냥반도 잘 아실 걸?’

‘어찌 그들의 사사로운 삶이 죽을 이유가 된다 하더냐?’

그자는 크지도 작지도 않지만 다부진 몸매가 어둠 속에서도 확연히 드러나고 있었다. 나에게 살인의 동기에 대한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을 늘어 놓으면서도 빈틈도 없이 스스로의 무기를 품에서 꺼내는 그의 주도면밀함....난 모골이 송연해 지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벽수가 미동도 없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음을 알아차렸다.

‘히히히....걱정은 되나? 아직 저년 숨줄은 질기게도 붙어있으니....그건 그렇고....자네 순라꾼의 재미가 뭔질 아나? …..여름이 특히 조오치.....방안의 열기와 함께 창호를 틈타 밖으로 지절대며 흘러나오는 색행의 만장....으으으 …..단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 밑에 웅크리고 숨을 죽이고 있을 지언정, 그 단말마의 음란한 비명과 교접의 살소리들....온 밤이, 온 도성이 교성과 씹떡질로 질척한 길거리를 과연 무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아합!’

그는 느닷없이 기합과 함께 몸을 날려 검기를 나에게 겨누며 달겨 들었다.

‘챙...챙..파파팍..퓨퓨퓨퓨.....챙챙..’

몇십합의 교전이 있었지만 쉽사리 그자와 결판을 내기는 어려웠다. 종루의 구조가 종을 중심으로 사각형의 망루안에 종이 버티고 있는지라, 계속해서 뱅뱅 돌기만 할 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기에는 물리적 공간의 구조가 협소하기만 했다.

‘휘이익.... 팟...’

나는 이 시점에서 그의 발 내지르기는 웃긴 조합이란 생각으로 공세의 고삐를 약간 늦추며 뒤로 물러서며, 자세를 바로 잡으려 몸을 추스릴 참이었다.

‘슛....퍽.....쨍그랑’

그 소리는 연이어서 마치 하나처럼 연이어져 일어났다. 그 자의 발길질이 수포로 돌아간다고 내가 방심한 사이, 그의 다리는 허공에서 분리되더니, 그 안에서 단검이 솟구쳐 나오고 그 단검을 공중에서 가로챈 그자는 날렵한 솜씨로 나의 팔뚝으로 팔매를 날렸다. 그와 동시에 찌르르한 통증이 이어지며 나는 손 안의 검을 놓쳐 버렸고.....

‘히히히... 잘 보았냐? 내가 순라꾼의 즐거움에 취해 있던 때, 불의의 사고로 잃게 된 내 다리....’

어둠 속에서 그 자는 외다리로 서 있으면서도 시푸르둥둥한 검기를 나에게 겨누고 있었다. 다리를 잃으면서 그는 아마도 색행의 근간도 상실된 듯 했다. 그나마 종루지기로 재배치되어 도성을 내려다 보며, 평소에 탐닉하던 음란한 색행의 귀동냥이란 마약이 사라지고 나자, 그에게는 울분과 음란함에 대한 금단현상으로 말미암아 몸부림이 극심해 졌을 것이고.....

‘기생들도 서방이 없으면 좇대가리를 나무로 깎아 쓰지 않더냐? 쌩좇이 아니면 어떠리...킬킬킬....내 의족도 그 년들 음구속에 잘만 쑤셔지드만.....’

기물의 형태를 추측할 수 없었던, 바로 그 음부에 가해진 난행의 도구는, 바로 그가 원통함으로 항상 달고 다니던 그의 의족이었던 모양이다. 바로 그때였다.

‘에잇...’

‘뎅~~~’

‘....어어어어?’

‘하이야!....파파파팟’

나의 시야에서 사라졌던 벽수의 외침..... 벽수는 혼절한 와중에 그 자의 암기에 맞아 내 검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 뿐만이 아니었다. 어디서 솟아났는지, 그녀는 죽을 힘을 다하여 종을 향해 몸을 날렸고, 그 반대 편에서 외발로 검을 겨눈 채, 나를 향해 마지막 타격을 가하려던 그에게, 종은 대대한 위력으로 중심을 흩어 버렸고, 그 간발의 차를 놓칠 내가 아니었다. 나는 두 발을 모듬어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뛰어 올라, 그 자의 가슴팍에 연이은 발길질로 마지막 일격을 되돌렸다.

‘아,..아....아...악...........’

중심을 잃고 종루에서 허공을 향해 두 팔을 휘젓던 그 자는 허망하게 땅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을 쳤고....

‘벽수....벽수.....어디 있느냐?....’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벽수의 안위를 묻고 있었다. 온몸이 피투성이 이기는 했어도 선혈을 심하게 흘리는 곳은 없어 보여 일단 안심은 되었으나, 실눈만 뜬 채, 미동도 없는 그녀를 가뿐히 품안에 안아드니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어이구....그 대가리에....눈썰미 쨍한 거 하고는....그래도 그걸 봤으니.....예까지 왔지......윽윽’

‘숨을 천천히 몰아 쉬구려....갈비가 부러진 듯 싶소...천천히 업고 갈 터이니 움직거리지 마소...’

난 암기를 맞은 팔이 저려 오고 있었어도 개의치 않았다. 그녀가 숨을 쉬고 내 앞에 살아있음을 감사했기에...

‘쿡쿡....크크...저자가 지난 밤, 쪽방의 동창 밑에 있었던 갑서....크크....그러게...쉬엄쉬엄 박으라 했건만....크크...대가리만 덜렁대는 껄떡쇠 냥반....욕보셨수....쿡쿡...크크....’

숨을 쉴때마다 가슴이 뻐개지는 통증이 덮치고 있을 테지만, 그녀의 입술이 한시도 쉬지 않고 음담패설마저 늘어 놓는 것을 미워 할 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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