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꿈꾸는 늑대 94부
수혼은 다음날 조간신문을 보니 ○○신문과 ○○신문에 어제 혜정이 아버지가 말하던 내용이 사회면 토막기사로 실려 있었다. 처음 계획은 이들 신문사에서 일면 톱 특종으로 하려했지만 검찰과 경찰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치부(恥部)까지 들어나는 사건이기에 짤막한 토막기사로 처리한 것이다. 수혼도 사건이 확대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정도면 만족할 수 있었다.
검찰총장은 친구인 행정자치부장관으로부터 이무석검사와 허강기검사가 폭력조직 갈치파의 조직원이란 말을 듣고 처음에는 친구의 농담정도로 생각했다. 검사들이 뭐가 부족해서 폭력조직에 가담한단 말인가? 친구의 말에 의하면 어려서부터 조직에 가담하여 꾸준한 준비과정을 거쳐 검사가 되었다지만 그렇게 치밀한 조직이 있다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심정으로 있는데 다음날 국회 법사의원장으로 거론되는 ○○의원이 찾아와 같은 말을 하며 검찰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해야겠다고 협박을 하니 그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내사(內事)에 착수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내사의 특성상 기밀(氣密)을 유지하며 철저하게 조사해야하기 때문에 시일이 오래 걸리기 마련 이였다.
아침에 사무실에 출근한 검찰총장은 책상위에 있던 조간신문을 읽고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비록 크게 기사화된 건 아니지만 잘 읽어보면 검찰 및 경찰과 폭력조직 간의 커넥션이 있다는 식의 기사가 실렸으며 자세히 읽어보면 이미 신문사에도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만일 자신들이 미적거리며 시간을 끈다면 여론이 들고 있어나 문제가 확대될 것이 뻔했다. 국민들에게 믿음과 신뢰를 주어야할 검찰이 조직폭력조직과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이 국민들이 알게 된다면 검찰의 위상(位相)은 땅에 떨어지고 검찰총장인 자신도 감독을 소홀이한 책임을 지고 옷을 벗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 그는 바로 인사담당자와 내사담당자를 불러 허강기검사와 이무석검사의 처리를 서두르라고 지시했다.
수영은 아침조간신문을 보고 급하게 사군자(四君子)을 소집했다. 신문기사 내용대로라면 검찰에서 이미 이무석과 허강기에 대한 내사에 착수한 상태로 파악되며 이런 신문기사가 나간 이상 검찰에서도 빠르게 내사가 진행할 것이 자명한 상황 이였다. 특히나 신문지상에는 이무석검사와 허강기검사라는 실명이 거론되어 있지 않는가? 사군자는 바로 수영에게 달려왔다.
“모두들 조간신문 보셨죠. 이거 어떻게 된 거죠.”
“저희도 자세한 경위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허강기와 이무석에게 연락해 봤어요?”
“두 사람도 자신들이 내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란(蘭)님. 란님도 신문 보셨죠. 허강기가 일산에서 마약에 관련한 수사를 진행 중이란 기사는 뭐죠. 언제 그런 말 들으셨어요.”
“저에게도 한마디 말도 없었습니다. 제가 아침에 허강기와 통화했는데.............그의 말대로라면 일산에서 마약사범을 검거하고 마약의 유통경로에 대해 수사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마약사범을 검거한거 맞습니까? 일산이라면 천랑파 구역입니다. 혹시 저번 강철파 사건처럼 천랑파를 모함(謀陷)하기 위해 벌린 사건은 아니죠?”
“그게...........제가 물어보니 똑바로 대답을 못하는 것이...........저번 강철파에 써먹던 방법을 똑같이 쓴 것 같습니다.”
“이런.........제가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끝내 자기무덤을 팠군요. 란님! 제가 강기를 잘 감시해 달라고 부탁했죠. 란님은 그동안 뭐하신 거죠.”
“죄송합니다. 저도 강기가 또다시 그런 짓을 벌인 줄은 몰랐습니다. 저에겐 다시는 그런 짓하지 않는다고 했는데..........끝내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감시를 소홀이한 죄는 달게 받겠습니다.”
“지금 그게 중요해요. 당장 강기를 잡아오세요. 그리고 검찰에 있는 다른 분께 어떻게 된 거지 알아보세요.”
그때 사무실 전화기가 울렸다. 비서에게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연결하지 말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다급한 전화인 모양이다. 수영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저~ ○○입니다.”
“예. 무슨 일이죠.”
“저를 비롯하여 화랑과 원화들이 회사에서 해고(解雇)당했습니다. 아침에 인사과에서 연락받고 바로 연락드리는 겁니다.”
“무슨 소리죠. 자세히 말씀해 보세요?”
“제도 아침에 인사과 연락을 받고 혹시나 싶어 ○○신문사와 ○○신문사 등에 있는 기자들에게 비상연락망을 이용해 알아봤습니다. 그 결과 제가 있는 신문사와 ○○신문사에 있던 화랑들은 모두 해고통보(解雇通報)를 받았습니다.”
“이유가 뭐죠. 해고라면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잖아요.”
“명확한 사유는 없습니다. 다만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내용이 전부입니다. 인사과에서도 상부의 지시라 자신들도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알았어요.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수영은 전화를 끊고 바로 ○○신문사 인사과에 전화를 했다. 그곳에는 화랑은 아니지만 갈치파를 도와주는 인물이 있었다.
“갈치파 원예입니다.”
“잠깐만요. 제가 잠시 후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상대방의 말에 전화를 끊고 기다리니 잠시 후에 그에게 전화가 왔다.
“죄송합니다. 회사분위기가 삭막합니다. 저도 이제부터는 갈치파와의 관계를 정리하려 합니다. 하실 말씀 있으면 빨리하세요. 바로 사무실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와 관계를 정리해요? 일단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조금 전에 그 회사에 근무하는 우리 쪽 가자에게 전화가 왔어요. 회사에서 갑자기 해고통보를 했다는데 무슨 일이죠?”
“상부에서 폭력조직과 연관된 직원들이 회사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내사(內事) 중에 있습니다. 일단 오늘 아침에 일차적으로 저번에 성민파와 천랑파에 대한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은 바로 해고조치하고 지금도 다른 직원들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렇게 전화하고 있는 저도 위험해요. 죄송합니다만 다음부터는 연락하지 마세요. 저도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상부에서 어떻게 알았죠. 누가 배신(背信)이라도 했습니까?”
“잘 모르겠어요. 재단이사장님이 직접 사장님께 지시했다는 소문이 있어요. 이제 그만 끊어야겠네요.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그럼 이만............”
사내는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수영은 멍하니 앉아 있다 수화기를 내린다. 자신들이 힘들게 키워 신문사에 심어놓은 기자들이 한순간에 날아간 것이다. 현재는 두개 신문사에 있던 조직원들만 당했지만 앞으로 다른 언론사까지 확대될 것이 뻔했다. 대부분 언론사는 언론협회에 가입하여 서로 정보를 공유(公有)하지 않는가? 사정이 이렇다면 다른 언론사에 있는 조직원이 당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이걸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현재로써는 방법이 없다. 회사 상층부에서 내려온 지시라면 몇몇 인사에게 로비를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수영이 몸을 의자가 기대고 손을 모의고 깊은 고민에 빠져있자 사군자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수영이 이런 자세로 고민에 빠져 있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 틀림없었다.
“○○신문사와 ○○신문사에 있던 우리 기자들이 모두 해고당했다고 하네요. 회사 상층부에서 내려온 지시랍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다른 언론사에 있던 조직원들도 모두 당할 것 같아요.”
“갑자기 해고라니............무슨 사유(私有)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회사의 명예를 손상시켰다는 사유랍니다. 그건 표면적인 이유고 정확한 이유는 회사 상부에서 몇몇 기자들이 우리 쪽 사람인 것을 눈치 챈 모양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발생하죠.”
“모르겠어요..........일단 언론사에 있는 조직원들을 모두 철수시키세요. 혹시라도 그들이 우리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들에게 밝혀지면 우리까지 위험해요.”
“검찰 쪽은 어떻게 하죠. 허강기는 잡아온다고 해도 이무석검사는 천랑파를 수사 중에 있지 않습니까?”
“검찰 내부에서 내사가 시작되었다면 이무석도 위험해요. 그도 사표 제출하고 복귀하려고 하세요.”
“그럼 우리가 그동안 심혈을 기울려 심어놓았던 언론과 검찰 쪽의 손발이 모두 잘리게 됩니다.”
“할 수 없어요. 그래도 아직 경찰 쪽은 남아있어요..........잠깐만 혹시 그쪽도............국(菊)님 경찰 내사과에 우리 쪽 사람이 있죠. 한번 연락해 보세요.”
수영의 지시에 국(菊)은 경찰 내사과에 연락을 취했다. 국은 한참을 통화하더니 얼굴이 하얀 게 질리고 만다. 이미 경찰도 행자부장관의 명으로 내사에 착수한 상태라고 했다. 경찰 내사과에서 각 경찰서는 물론이고 일선 파출소까지 폭력조직과 연관된 인사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영은 매(梅)의 보고를 받고 할 말 읽었다. 일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자신들이 그동안 화랑과 원화들을 언론이나 경찰에 침투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나이어린 화랑과 원화들을 교육시키고 막대한 로비자금을 들어서 각급 기관에 침투시키기까지의 과정은 누가 보더라도 의심될 만한 것이 없었다. 또한 그들은 평소에는 자신들의 지위에 충실하고 특별한 일이 발생했을 때만 자신들의 지시를 받아 아무도 모르게 처리했다. 지금까지 그들을 의심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언론과 경찰, 심지어 검찰에까지 힘들게 만든 조직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생겼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수영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결딴을 내려야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갈치파가 경찰과 검찰의 표적이 될 수도 있었다. 그녀는 자신들이 힘들게 만든 조직을 스스로 무너트리기로 결정했다. 그게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였다. 그녀는 언론, 경찰, 검찰에 있던 조직원들에게 모두 사표를 제출하고 갈치파로 귀환(歸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게 이외에는 방법이 없지 않는가?
검찰 내사과는 인사과에서 보낸 온 인사기록을 토대로 허강기와 이무석에 대한 과거행적을 조사하고 그들이 작성한 최근의 수사기록을 세세하게 검토했다. 그들은 먼저 이무석검사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는데 그의 수사기록에 대해서는 특별한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그의 과거기록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갈치파와 연관이 있다고 의심되는 몇 가지 증거는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허강기검사는 의심되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 그들이 주목한 것은 그가 수사한 강철파의 마약수사기록과 최근에 그가 수사하고 있는 일산 마약사건에 대한 수사기록이다. 그들이 허강기의 수사기록에 주목한 이유는 그가 검거한 강철기획의 마약사범들이 지금도 자신들의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 중에 있었고, 또한 이번에 검거한 외국인 접대부에 대해서도 의심되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녀의 검거과정을 살펴보면 허강기검사의 단독 수사로 검거되었고, 그녀의 아파트에서 마약을 발견한 것도 허강기검사 본인 이였다. 또한 그녀가 복용한 마약은 엑스터시라고 불리는 마약인데 내사결과 허강기 검사가 그녀를 검거한 바로 당일 날 검찰청 증거보관소에서 엑스터시를 빼내간 기록이 있었다. 그들은 그녀의 아파트에서 발견된 엑스터시와 허강기검사가 빼내간 엑스터시의 양에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에 주목했다. 내사팀은 허강기검사와 별도로 일산 마약사건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허강기검사가 마약복용 혐의로 검거 했다는 여자의 과거기록을 우즈베키스탄 정부에 문의하여 보았으나 그녀는 단 한번도 마약과 관련된 사건에 연류 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그녀 주변 인물들의 증언을 들어보아도 그녀가 마약을 복용하는 모습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는 증언이었다.
작가 주 : 엑스터시 (Ecstasy, XTC, MDMA, "도리도리", 搖頭丸) : 1999년 이후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신종 마약으로, 화학적으로 MDMA(Methylendioxy Methamphetamine)로 통칭되는 암페타민계 유기화학물질입니다. 유럽, 미국 등지에서 주로 발견되며, 우리나라에서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 형태는 보통 정제형이고 그 모양은 가지각색입니다. 약리작용으로는 식욕상실, 혼수, 정신착란 등을 일으키며, 과다사용시 사망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수영의 명령에 경찰과 언론사에 있던 모든 조직원들이 사표를 제출하고 갈치파로 복귀하고 있었다. 이무석 또한 수영의 지시에 미련 없이 사표를 제출했다. 이미 내사가 진행 중이라면 자신이 갈치파 일원이란 사실이 밝혀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는 청사를 떠나기 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천랑파와 성민파에 대한 모두 자료를 파기(破棄)하고 최근에 작성한 수사기록도 또한 모두 파기했다. 자신이 떠나도 천랑파와 성민파에 대한 수사는 계속 진행될 것이다. 혹시 자신의 후임자가 자신의 기록을 참고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번사건에 천랑파나 성민파뿐만 아니라 갈치파까지 연류(連類) 된 사실이 밝혀지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이무석검사가 사표를 제출하고 나온 것과는 대조적으로 허강기 검사는 수영의 복귀 명령을 거부하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수영은 허강기의 무모한 행동을 참지 못하고 급기야는 사람을 시켜 허강기를 잡아오도록 지시했다.
검찰 내사과에서는 조사 중이던 이무석검사는 스스로 사표를 제출하고 검찰을 떠나고, 허강기검사는 행방이 묘연(杳然)하니 허강기를 권고해직(勸告解職)으로 처리하고 서둘러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이무석검사가 믿고 있던 성민파와 천랑파의 수사는 다른 검사에게 배정되었고, 허강기검사가 진행 중이던 일산마약사건은 잡혀온 접대부를 훈방조치하고 사건을 무마해 버렸다. 이무석의 대타로 사건을 맞은 검사는 이미 이무석이 떠나기 전에 관련 자료를 모두 파기했기 때문에 수사를 원점(原點)에서부터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이무석이 한번 쓸고 지나간 곳에서 별다른 단서를 찾기란 불가능했다. 이미 무석이 단서가 될만한 것은 모두 파기했기 때문이다. 또한 천랑파와 그들이 관리하는 업소들을 조사해 보았지만 천랑파의 불법적인 행위는 아무것도 밝혀낼 수 없었다. 그는 이미 성민파의 성민이 다른 사건에 연류 되어 전국에 지명수배 되어 있었기 때문에 성민을 잡는데 수사력을 집중했다.
허강기는 일산에서 수사 중에 란(蘭)과 화랑들에 의해 갈치파의 인천본부로 납치되었다. 수영은 납치한 허강기를 본부에 있는 지하 감옥에 수감하도록 지시했다.
수지는 허강기가 자신의 변심(?)으로 인해 수혼에 대한 복수심의 일환(一環)으로 많은 것을 생각지 못하고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무거웠다. 한때는 자신도 강기를 좋아했었다. 어려서부터 갈치파에 같이 들어와 강기는 명석한 두뇌를 인정받아 검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았고, 자신은 뛰어난 무예실력으로 갈치파 사군자의 한 사람으로 낙점(落點)되어 무예수련에 전념했다. 수지와 강기는 비록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친남매처럼 서로를 아껴주며 서로를 사랑한다고 믿었다. 세월이 흘러 자신은 사군자의 란(蘭)이 되고 그는 수리대학 법학과에 들어갔다. 두 사람은 그때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강기가 변하기 시작한 발단은 자신이 제공했다. 자신은 강철의 의동생인 수혼에 대해 조사하려는 지시를 받고 그에게 접근했다. 갈치파가 수혼에게 주목한 이유는 그가 강철파 조직원들에게 무술을 지도하는 교관일 뿐만 아니라 그가 사용하는 무술이 음양도로 의심되었기 때문이다. 수지는 수혼에게 접근했고 그에 대해 조사한 결과 그가 익히고 있는 무술이 음양도가 확실했다. 갈치파의 수영은 수혼의 앞으로의 진로(進路)와 음양도의 장단점을 파악하기 위해 자신에게 수혼에 대해 더욱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갈치파 입장에서 그가 강철파의 조직원에게 음양도를 전수한다면 강철파를 무너트리고 서울을 정복해야할 자신들에게 커다란 부담이 되기 때문이며 또한 원예는 원예도의 전승자로 언젠가는 음양도의 전승자인 그와 사문의 명예를 건 대결을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은 명령에 충실해 수혼이란 사내와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그를 사랑하게 되버린 것이다.
사랑..........자신은 어려서부터 남매처럼 지내던 강기를 사랑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강기에게 느끼는 감정과 수혼에게 느끼는 감정은 너무 많은 차이가 있었다. 자신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강기에 대한 감정은 사랑이 아니었다. 자신은 많은 고민을 했다. 자꾸만 수혼에게 향하는 자신의 마음을 부정하며 냉철해지려 노력했다. 자신은 갈치파 사군자(四君子) 중 한명이 아닌가? 더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사문(師門)의 적이었다. 자신은 자신의 임무와 사랑사이에서 끝내는 사랑을 선택했다. 그를 위해서라면 사문까지 버릴 결심을 한 것이다. 자신의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 첸 것은 강기였다. 그는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었고 자신도 자길 사랑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수혼에게 향한 마음을 돌리기는 힘들었다. 자신은 끝내 강기까지 버렸다. 그에게 깊은 상처를 준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자신이 수혼과 맺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를 잊으려 노력했다. 원예는 다시 돌아온 자신에게 강기를 부탁했다. 이미 다 타고 재가 돼버린 가슴에 무엇이 남아있겠는가? 자신은 강기를 예전처럼 대할 수 없었다. 강기 또한 자신을 예전처럼 대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수혼에 대한 불타는 질투심만이 남아 있었다. 더욱이 자신의 곁에 있으면서도 수혼을 잊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수혼에 대해 복수심은 극에 달했다. 자신은 원예의 명령에 그와 같이 있어도 마음만은 언제나 수혼에게 향하고 있었다. 강기는 그걸 참지 못했다. 그는 끝내 수혼에 대한 복수심에 눈이 벌어 이성을 상실하고 무모한 행동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수지는 강기가 감금되어 있는 지하로 내려갔다. 그는 몇 개의 방중 하나의 방에 갇혀 있었다. 수지가 강기가 갇힌 철문의 문틈 사이로 안을 보자, 강기는 방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수지는 그를 보자 가슴이 답답하다. 그는 복수에 눈이 멀어 원예의 명령까지 무시한 것이다. 갈치파에서 항명(抗命)의 죄는 무거웠다.
“강기야. 강기야~”
강기는 수지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그는 이곳에 잡혀와 식음을 전패하고 있었기에 그의 눈동자에 생기가 없었다.
“수지냐. 무슨 일로 왔어. 원예님이 끌고 오라고 하던.............”
“아니야. 원예님은 사부님께 갔어.”
“그럼 무슨 일로 왔어. 내가 뭐하고 있는 구경이라도 하려고 왔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는다면..........어쩌려고 그래. 여기서 굶어 죽을 거야.”
“무슨 상관이야. 내가 죽던 말든 너하고 상관없잖아.”
“우린.............친구잖아. 네가 걱정 되서 찾아왔는데 꼭 그렇게 말해야 하니.”
“친구?.............하긴 넌 지금도 그놈을 잊지 못하고 있지. 친구라고 불러주는 것만도 네게 감사해야 하나?..........다 때려치워...............꺼져버리란 말이야.”
“강기야.............왜 날 이해 못해 주니. 나도 그 사람이 잊으려 노력해. 아니 이젠 잊었어. 다만 아직은 누굴 받아들일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어. 네가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주면 안되니. 내가 널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면 안돼.”
“지랄을 한다. 쌍년~. 네년이 그놈을 잊었다고..........뭐~ 마음의 여유가 없어. 오통 그놈 생각뿐인 년이니 당연하겠지.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해. 내가 기다린다고 네가 올 년이냐. 십팔~ 꺼져. 꼴도 보기 싫어.”
“너...........어떻게 내게 그런 말을................좋아. 나도 이젠 몰라. 너 마음대로 해. 굶어죽던, 항명죄로 벌을 받던 나도 모르겠어.”
“그래 잘 생각했다. 다 때려치우고 네가 사랑하는 그놈한테나 가라. 난 여기서 죽던지 말든지 마음대로 할 거니까? 그놈에게나 가라고 미친년아. 조직이고 사문이고 다 버리고 그놈에게 가...........그게 네가 바라는 거 아니야. 마음을 속이지 마. 그놈이 받아주던 말던 매달려나 보란 말이야...........그놈을 잊지 못해서 청승맞게 그렇고 있지 말고...........그렇게라도 해봐~ ........그게 내게 해주는 마지막 충고다................이제 가라.”
“강기야.............네게는 할 말이 없다. 나...........그 사람이 잊었어. 네가 생각하듯이 그 사람 잊지 못해서 청승이나 떨고 있는 게 아니야..............나........돌아왔어.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거야. 그러니까...........너도 힘내. 알았지.”
“미친년...........끝까지 자기 마음을 숨기려 하네. 네가 내 곁에 있겠다고?..........날보고 껍데기만 안고 살라고?..........가라........제발 가라............십팔!~ 그놈을 죽어버려야 했어. 그게 안 되면 감방에라도 처넣어야 했는데..........휴~ 내 꼴이 웃긴다.”
그때 복도를 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원예와 몇 명의 화랑들 이었다 . 화랑들의 손에는 몇 가지 도구들이 들려있었다. 수지는 그걸 보고 깜짝 놀랐다. 원예가 강기를 어떻게 하려는 것인가?
“워.............원예님.”
“란님이 이곳에 있었군요. 강기는 뭐하고 있죠?”
“그냥..........안에 있습니다. 그런데.......그건 뭐죠.”
“강기는 명을 어기고 우리 갈치파를 위험에 빠트리려 했어요. 그를 이대로 용서한다면 조직의 기강(紀綱)이 무너져요.”
“이번에 강기가 원예님의 명을 어긴 잘못은 있지만 그동안의 공로를 생각해서 용서해 주세요.”
“란님이 나설 자리가 아닙니다. 내게도 생각이 있으니 비켜서요...........뭐해~ 문 열고 강기를 끌고 나와”
원예의 명령에 화랑들이 철문을 열고 강기를 끌고 나왔다. 강기는 수사 중에 잡혀왔기 때문에 말끔한 양복차림 이였다. 그들은 화랑들에 의해 바닥에 꿇어 앉혀졌다.
“허강기..........네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지. 다른 말은 하지 않겠어. 그동안 너에게 들인 정성을 생각하면 당장 목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동안의 공로를 생각해서 너에게 선택권을 주겠어...........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조직을 떠나는 길과 조직에 남는 길이 있어. 어떡할래.”
“조직을 떠나겠다면 제가 무슨 벌을 받아야 하죠.”
“본래는 조직에서 너에게 베풀어준 것을 모두 반납하고 가야겠지. 하지만...........그동안의 공로를 생각해서 그냥 보내주겠다. 대신 앞으로 조직과 관련된 모든 일은 머리에서 깨끗하게 지워라. 만일 내가 다른 사람에게 조직에 대한 사소한 말이라도 입 밖으로 냈다는 소식이 들리면..........그때는 화랑들이 널 찾아갈 것이다.”
“푸~~ 무섭군요. 제가 조직에 남겠다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겠죠?”
“당연하다. 네가 지은 죄는 항명죄에 해당된다. 항명은 조직의 기반을 뒤흔드는 용서 못한 중죄에 해당한다.”
“.......................떠나겠습니다.”
“떠나겠다...............그래..........좋아 보내주겠다. 방금도 말했지만.............앞으로 갈치파는 잊어라..........밖에까지 대려다 줘.”
화랑들은 강기를 일으켜 밖으로 끌려가는데 강기는 뒤를 돌아 수지를 바라보며 끌려갔다. 수지도 끌려가는 강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란님.........가시죠. 이제 란님도 모두 잊으세요. 강기도 떠났고, 앞으로 할일이 많아요.”
“알겠습니다. 원예님께는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생각하시면 앞으로 일에 최선을 다해주세요. 그럼 저도 만족해요.”
“알겠습니다. 조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가시죠. 회의실에서 모두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지와 수영은 회의실로 올라갔다. 회의실에는 이미 나머지 사군자와 무석이 자리하고 있었다. 수지와 수영이 들어오자 회의가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상황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갈치파는 20년이 넘게 준비하여 각 관청이나 언론에 심어놓았던 화랑과 원화들을 모두 철수시킨 상태입니다. 우리들이 이번에 일어난 사태에 대해 정보조직을 활용하여 알아본 결과 몇 가지 단서가 될만한 단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검찰과 경찰의 내사, 언론사의 내사 등 지금까지의 일들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먼저 검찰 쪽을 무석님이 설명해 주시죠.”
“예~ 제가 검찰에 남아있는 친구들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태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검찰에서는 제가 제출한 사표를 수리하고, 허강기에 대해서는 권고사직으로 처리하며 사건을 서둘러 마무리 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번사건을 검찰입장에서도 국민들이 알기전이 재빨리 봉합(封合)해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내사(內事)의 특성상 조용히, 치밀하게 처리해야 함으로 내사가 시작되었다 해도 많은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이번 사건은 너무 서둘러 모든 것이 처리되었습니다. 아무리 신문에 기사가 나갔다 해도 검찰 최상층부의 의지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친구 녀석 말로는 이번 내사가 검찰총장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서둘러 내사가 종결된 것으로 파악 됩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저도 제가 관리하던 언론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저희 쪽 기자들을 해고한 두개 신문사 중 한곳은 재단이사장의 명으로, 다른 한곳은 관계회사 전무의 제보로 사장이 직접 지시했다고 합니다.”
“경찰 쪽은 마찬가지입니다. 경찰도 행정자치부장관의 명에 의해 내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검찰총장, 행정자치부장관, 신문사 재단이사장 및 전무........이 모든 사람들이..........한명만 제외하고는 한곳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원예님은 의심되는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예~ 이 사람들은................강철의 딸인 지나와 연결됩니다. 그녀의 친구들이 바로 앞에 거명된 사람들의 아버지입니다.”
“그..........그럼. 강철 딸이 뒤에서 이들을 조정했다는 말씀입니까?”
“그건 아니겠죠. 지나는 현재 실종 상태입니다. 또한 그녀에게 그런 힘이 있다고 생각하긴 힘들어요.”
“그럼 원예님은 누굴 의심하시는 거죠.”
“천랑(天狼). 조수혼!!!!!!”
“천랑?.............그가 의심된다는 말씀입니까?”
“란(蘭)님이 천랑의 핸드폰에 위치추적 장치를 설치하여 우리 쪽에서 그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어요. 최근 천랑은 광화문, 여의도, 신촌, 종로 일대를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지금 한참 우리와 전쟁 중인 그가 한가하게 놀려 다니지는 않았을 겁니다. 제 생각에는 그와 지나 친구들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다시 말하면 그녀들이 천랑을 돕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 저도 원예님의 생각에 동의(同意)합니다. 제가 천랑을 감시할 때 그가 블랙로즈들과 만나는 것을 몇 번 보았습니다.”
“란(수지)님은 그와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 잘 알겠군요. 그래요. 지나를 포함해서 그녀들을 블랙로즈들이라고 부른다죠. 그녀들이 천랑을 돕고 있는 겁니다. 자신들의 아버지 힘을 이용해서.............”
“그럼 우리들이 대처할 방법이 없다는 겁니까? 잘못하면 우리가 역으로 당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공권력을 이용해 우리를 치겠다고 생각했다면 지금까지 가만있진 않았을 겁니다. 벌써 무슨 조치를 취했겠죠.”
“.........천랑은 무슨 생각이죠. 자신에게 공권력의 힘이 있다면..........충분히 이용할 수 있을 것인데...........원예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도 후일을 걱정하는 거죠. 지금까지 지켜본 천랑은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을 싫어해요. 더욱이 공권력의 힘을 빌리는 것은 더욱 싫어하죠. 공권력과 우리는 ‘악어와 악어새’와 같은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과는 적당한 선을 유지하며 관계를 유지해야 해요. 이건 사족(蛇足)이고, 하여튼 그도 공권력의 힘으로 우릴 상대할 생각은 없는 모양입니다.”
“지금까지는 추측에 지나지 않습니까? 정확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제가 그를 만나려 합니다.”
“예~ 원예님이 직접 천량을 만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안될 것도 없죠. 우린 적이지만 또한 같은 무도인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니까요.”
수혼은 저택에 머물려 있었다. 그는 정숙누님에게 검찰 쪽의 움직임을 알아보고 일단은 급한 일은 해결되어 한시름 놓고 있었다. 그때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생전 처음 보는 번호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수영입니다.”
“수.........수영! 수영님이 무슨 일이죠?”
“왜요. 전 전화하면 안돼요. 그리고 수영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저번에 제가 수혼씨라고 하니 좋다고 하시고서는........우리 그냥 편하게 호칭해요.”
“하하하~ 좋습니다............수영님, 아니 수영씨가 무슨 볼일이 있어 소인(小人)에게 전화를 주셨습니까? 한참 우린 상대할 계책을 만드시는데도 바쁘지 않으세요?”
“맞아요. 천랑파가 만만치 않아서 고민이 많아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 술 한 잔 사주 세요?”
“푸~ 하하하~ 절보고 술을 사라는 말씀입니까?”
“그럼 여자인 제가 사요?............남자인 수혼씨가 사주실수 있죠?”
“쩝~ 좋습니다. 어디로 가면 되죠.”
“제가 인천이니까 영등포에서 만나죠.............가능해요?”
“영등포라면 갈치파 구역이군요. 알겠습니다. 몇 시까지 어디에서 만날까요?”
“7시까지 영등포에 있는 큰 술집에 들어가 계시면 제가 알아서 찾아가겠습니다.”
“호~ 영등포는 모두 갈치파 구역이니 제가 어디 있어도 금방 찾아낼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알겠습니다. 그때 만나죠.”
수혼은 전화를 끊고 길식과 호식, 그리고 부인들을 호출했다. 수혼의 호출에 모든 사람들이 일층에 있는 회의실로 집합했다.
“제가 여러분을 모두 호출한 것은 갈치파에서 연락이 왔기 때문입니다. 갈치파 수장인 수영이 잘 보자고 하는군요.”
“무슨 일로 보자는 거죠. 수혼씨 개인에게 연락 온걸 보면 개인적으로 만나자는 말처럼 들리는 군요.”
“맞아. 개인적으로 만나자는 부탁이야.”
“그래서 수혼씨는 뭐라고 하셨어요?”
“만나자고 했어. 영등포에서 7시에 만나기로 했어.”
“영등포? 그곳은 갈치파 구역 아닙니까? 혹시 이번에도 그녀가 무슨 흉계를 꾸미는 건 아닐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어떻게 믿죠. 저번에도 검찰을 이용해서 우릴 모함하려 했던 그녀입니다.”
“그건 조직 간의 일이죠. 이번에는 개인적으로 만나자고 한 것입니다. 전 그녀를 믿어요.”
“수혼씨는 그녀를 믿는다고 하지만 저희들은 못 믿겠어요. 혼자가시면 안돼요.”
“그럼 누굴 대동하고 갈까? 호식이가 같이 갈래, 아니면 부인들 중 한명이 같이 갈 거야?”
“음~...............요키에가 대동하면 좋겠습니다. 요키에라면 저들이 설사 암습을 준비했다고 해도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 겁니다.”
요코는 요키에를 추천했다. 다른 사람이 생각해도 수혼을 보호하는 임무라며 요키에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요키에는 인자문의 고수며, 전직 킬러가 아닌가? 갈치파가 수혼을 암습하려 해도 요키에라면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좋습니다. 요키에와 대동하겠습니다. 그리고 장인어른과 호식은 기동대를 정비해 주세요. 전제적으로 저번 싸움으로 현재 전투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이건 폭풍전야의 고요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제가 준비한 작전이 있어요. 기동대가 정비되면 말씀해 주세요.”
“새로운 작전을 준비하셨습니까? 어떤 작전이죠?”
“그건 기동대가 정비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참~ 저번에 조직원들과 저택경비에 대해 점검해 달라고 했었죠. 그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예~ 현재 조직원들에 대한 조사는 끝났습니다. 조사결과 갈치파로 의심되는 20여명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저택경비망에 대해서는 요키에님과 공동으로 철저하게 점검하여 이제는 누구도 저택 안으로 침입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좋습니다. 갈치파로 의심되는 놈들은 감시만 하시고 그냥 두세요. 나중에 그들을 이용할 수 있을 겁니다. 참~ 자택 주변도 조사해 보세요. 저택에서 떨어진 곳에 야산이 하나 있더군요. 그곳도 조사해 보세요.”
“알겠습니다.........참~ 그리고 요즘 들어서도 새로운 조직원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대부분 강철파에 있다가 강철파가 무너지며 흩어졌던 녀석들인데...............어떻게 할까요?”
“형님 밑에 있었던 놈들이라고 모두 받아들이지 마시고, 실력자들만 선별해서 받아들이세요. 앞으로의 싸움은 생사(生死)를 걸어야 합니다. 실력이 출중하거나 충성심이 강한 놈들만이 생사대전(生死大戰)에 임해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예~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조직원이 많다고 좋은 것만도 아니죠. 그래도 요즘은 쓸만한 놈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고 있습니다. 강철파가 자랑하던 강철의 친위대에 속해 있던 녀석들입니다.”
“친위대........그들이라면 제가 가르치던 재자들................그들이 들어온다면 우리에게 큰 힘이 되겠죠.”
“아직은 많은 숫자가 아닙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소문이 펴지면서 많이 들어오겠죠.”
“그들을 만나봐야겠군요. 좋아요.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죠.”
수혼은 5시간 넘자 요키에와 함께 저택을 나섰다. 요키에는 안에 장속(裝束)을 입고 무기들을 착용했다. 또한 권총까지 챙겨서 허벅지에 장착하고 통이 넓은 원피스를 입고 수혼을 따라 나섰다. 수혼은 요키에의 그런 차림이 웃겨서 웃었지만 요키에는 심각하기만 하다. 그녀는 수혼과 뒷좌석에 앉아서 담배를 한대 물었다. 수혼은 그녀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처음 본다. 담배는 자신도 피우지 않지 않는가?
“요키에. 담배는 무슨 맛이야.”
요키에는 수혼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빙긋 웃어만 준다. 요키에는 요코에게 한국말을 배우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서툴다. 수혼도 일본어를 배우고는 있지만 역시 아직은 능숙하지 못하다. 수혼은 고개를 흔들고 만다. 그녀에게 뭘 바라겠는가?
차가 영등포에 도착하자 수혼은 요키에와 조용한 룸살롱으로 들어가는데 입구에서 웨이터가 황당한지 수혼의 앞길을 막는다. 웨이터는 룸살롱에 여자와 함께 오는 미친놈은 처음 본다.
“손님. 이곳은 일반 술집이 아닙니다. 두 분이서 조용히 즐기시려면 다른 곳을 알아보세요.”
“여기 술집 아니야. 여자와 함께 동행을 하든 말든 술이나 팔면 되지 무슨 상관이야.”
“전 두 분을 위해서 말씀드리는 건데..........이곳이 룸살롱인건 아시죠. 그래도 상관없다면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잘 생각했어. 요키에 入って行こう(들어가자)”
“はい(예)”
웨이터는 수혼과 동행한 여자가 일본인이라 사실에 더욱 기가 막힌다. 수혼은 룸으로 안내되어 요키에와 같은 자리에 앉았다. 수혼은 웨이터에게 술과 안주를 주문했고, 잠시 후 술과 안주가 나왔다.
“손님~ 여자는 필요 없겠죠?”
“응~ 여자는 필요 없어. 조금 있으면 여자 한명이 또 찾아 올 거야?”
“예~ 다른 여자 분이 또요?............알겠습니다..................이상한 손님이네.”
웨이터의 마지막말은 혼자 중얼거리는 말이었다. 룸살롱에 여자와 함께 들어와서 또 다른 여자가 찾아온다니 정말 이상한 놈이다. 그런데 웨이터가 밖에 나오자 갈치파의 조직원 한명이 웨이터에게 방금 들어간 손님에 대해 꼬치꼬치 묻더니 급하게 달려갔다.
수혼은 요키에가 따라주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요키에와 부부의 연을 맺었지만 이렇게 단둘이 오붓한 시간을 가진 것은 처음이다. 수혼은 요키에의 곁에 바짝 다가앉아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얻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한 여인이 룸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청바지에 남방차림의 수수한 모습 이였다. 바로 수영이다. 수영은 평소 쓰고 다니던 모자도 벗어버리고 아름다운 얼굴을 드려내고 있었다.
“장소하나 고약한 곳으로 정했네요. 거기에 같이 온 여자 분은 누구죠.”
“어서와요. 찾기 힘들 줄 알았는데 금방 찾았네요. 갈치파의 정보력도 상당한 모양입니다. 아~ 참~ 여기 있는 여자는 제 부인입니다. 요키에라고 하죠.”
“요키에?..........저번에는 요코님이더니..........수혼씨는 도대체 부인이 몇 명이죠. 저번 전투에 보니까 중국아가씨도 있던데...........”
“아~ 링링 말씀하시는군요. 링링도 부인이죠.”
“기가 막혀..........순 바람둥이네요. 쌍둥이 자매에 요코, 링링 이번에는 요키에? 가만 있어봐~ 하나 둘, 셋............총 5명. 이거 신고해야겠네요.”
“제가 바람둥이라는 사실을 지금 알았어요. 앉아요. 계속 서 있을 겁니까?”
수혼의 말에 수영은 반대편에 앉았다. 그녀는 요키에를 찬찬히 쳐다보았다. 요키에도 수영을 바라보다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수영은 그녀의 눈빛만 보고도 그녀가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은 차갑고 날카로웠기 때문이다.
“요키에라는 분도 보통 사람은 아닌 모양이죠?”
“일본 인자문의 고수죠. 본래는 아마모토조에서 지옥혈녀(地獄血女)라 불리던 무시무시한 여자였습니다. 아마 갈치파도 조심해야 할걸요. 아참~ 아마모토조에서는 요키에가 죽은 것으로 아니까 소문내지 마세요.”
“무섭네요. 알았어요. 입은 봉하죠. 제가 수혼씨에게 무슨 흉계라도 꾸미는지 알고 동행한 모양이죠?
“전 괜찮은데............부인들이 성화라 같이 왔죠.”
“좋겠어요. 걱정해 주는 부인들 많아서.....................”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어요.”
“행복한 비명이네요. 그 이야기는 그만하죠. 제가 오늘 수혼씨를 보자고 한 것은 몇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보자고 했어요.”
“수혼씨........듣기 좋네요.”
“순 바람둥이 지금 제게 작업(?)하시는 건가요. 부인을 옆에 두고.”
“자꾸 바람둥이라고 놀리는데..........쩝~ 이거야 원~ 그래 바람둥이라고 치지 뭐~ 수영씨도 저랑 한번 놀아 보실래요?”
“호호호~ 그만 웃겨요. 참~ 그분은 말씀이 없네요.”
“아직 한국말을 못해요. 저도 일본어를 못하니 주로 대화는 몸으로 하고 있죠.”
“참~ 가지가지 하네요. 이제 다 웃겼죠. 이젠 대화 좀 해요.”
“하세요. 누가하지 말라고 했어요?”
“이번에 저희들이 멋지게 당했어요. 천랑파에 그런 무시무시한 배경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정말 대단해요.”
“뭐~ 대단한 사건도 아니죠. 그냥 도와주는 분들이 많아서요. 이번에 강기선배하고 무석선배가 검찰에서 퇴출당했다고 하더니..................잘 지내고 있죠.”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을 보니 수혼씨 작품이군요.”
“제 작품이 아니라, 블랙로즈 작품이죠.”
“그 지나씨 친구 분들.........그분들도 수혼씨가 작업한 모양이죠.”
“이거 너무 많이 밝혀지면 나중에 수습하기 힘든데.........작업을 했다기 보다는 그녀들이 절 도와주는 거죠.”
“하여튼 그녀들 때문에 우리 쪽 피해가 막대해요. 그동안 힘들게 만들어 놓은 조직이 하루아침에 무너졌으니.................너무 한거 아닌가요?”
“먼저 암수(暗數)를 쓴 건, 갈치파 아닙니까? 전 살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죠.”
“저를 욕하시는 군요. 하긴 우리가 먼저 시작했죠. 그런데 왜 지금은 조용하죠. 그들의 힘이라면 손안대고 우릴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관(官)과 밤의 세계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합니다. 밤의 세계의 일은 밤의 규칙에 따라 해결해야지 관(官)의 힘을 빌리고 싶진 않아요.”
“가시가 있는 말이군요.............제가 사과하죠. 그럼 앞으로 수혼씨도 관의 힘을 빌릴 마음은 없다는 거죠.”
“당연하죠. 세상에 공짜는 없죠. 제가 저들의 힘을 빌리면 그에 상응(相應)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갰죠. 전 그들에게 최소한의 도움만 받을 겁니다.”
“당당해서 좋네요............이래서 제가 수혼씨를 미워할 수 없어요. 앞으로 정정당당하게 대결해요.”
“갈치파가 정정당당하게 나온다면 저희도 암수는 쓰지 않습니다.”
“그럼 협의(協議)한 겁니다.”
“협의? 좋아요. 그렇게 하죠. 참 지금까지 술 한 잔 드시지 않았네요.”
“이제 공적인 이야기는 끝났으니 한잔 주세요.”
수혼은 그녀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그녀는 한잔 마시고 수혼에게 잔을 내밀었다. 수혼도 그녀가 따라주는 술을 마셨다.
“수혼씨는 행복한 분 같아요. 주변에 사랑해주는 분들이 많으니까?.........외롭진 않겠군요.”
“수영씨는 외로운 모양이죠. 하긴 갈치파라는 거대한 조직을 이끌어 가시려면 힘들겠군요.”
“정말 힘들어요. 외롭고.........그나마 사부님이 뒤에 계시기에 힘들게 버티고 있죠.”
“사부님?.........원예도의 전전 전승자님..........두 분은 어떤 사이죠.”
“글쎄요...........사부님이 거기에 대해서는 말씀을 없어요. 추측으로는 저의 외할머니 같은데 사분님 본인께서 가타부타 말씀이 없어요.”
“외로우시면 가끔 연락하세요. 저와 이렇게 한잔씩 하면 좋잖아요.”
“수혼씨는 절 미워하지 않나요?”
“제가 왜~ 수영씨를 미워해요. 전 아름다운 여자라면 모두 좋아해요.”
“바람둥이..........옆에 요키에님이 한국말을 못한다고 못하는 말씀이 없네요.”
“하하하~ 요키에가 제 말을 알아들어도 상관없어요. 제가 수영씨를 좋아하는 건 사실인데요.”
“호호호~ 수혼씨를 만나면 웃겨요. 그래서 좋아요. 최소한 수혼씨를 만나고 있을 때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으니까요.”
“좀 전에도 말했지만 외로우면 연락하세요.”
“그래요. 가끔 연락할게요. 그때는 거절하시면 안돼요.”
“알았어요. 연락만 하세요.”
“이제 그만 일어나죠. 요키에님만 안계시만 더 놀고 싶지만 요키에님 눈치 보여서 일어나야겠네요.”
“예~ 일어나야죠.”
두 남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영은 수혼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다가 다시 수혼은 본다.
“내일부터는 다시 적으로 만나겠죠.”
“아마도..............이젠 정정당당하게 힘 대 힘으로 대결하는 거죠.”
“예~ 천랑파의 반격을 기대하죠. 우리도 많은 준비를 해야겠네요.”
“기대하세요. 제가 생각하는 작전이 있거든요.”
“예~ 기대하고 있죠. 요키에님 만나서 반가웠어요.”
수영은 쓸쓸하게 돌아섰다. 수혼은 그녀의 뒷모습이 무척이나 외롭게 보였다.
ps : 검사들 처리는 이것으로 끝내죠. 갈치파가 가지고 있던 공권력은 제거했으니 이젠 힘 대 힘의 대결구도로 끌고 가려합니다. 무협물에 관(官)이 등장하면 재미없죠. 다음 편부터 다시 천랑파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부수적으로 수영과 수혼의 사랑, 지나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들어갑니다. 부제를 달자면 “부산에 몰아지는 바람”정도.......쉽게 말하면 자갈치파 정리합니다.
수혼은 다음날 조간신문을 보니 ○○신문과 ○○신문에 어제 혜정이 아버지가 말하던 내용이 사회면 토막기사로 실려 있었다. 처음 계획은 이들 신문사에서 일면 톱 특종으로 하려했지만 검찰과 경찰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치부(恥部)까지 들어나는 사건이기에 짤막한 토막기사로 처리한 것이다. 수혼도 사건이 확대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정도면 만족할 수 있었다.
검찰총장은 친구인 행정자치부장관으로부터 이무석검사와 허강기검사가 폭력조직 갈치파의 조직원이란 말을 듣고 처음에는 친구의 농담정도로 생각했다. 검사들이 뭐가 부족해서 폭력조직에 가담한단 말인가? 친구의 말에 의하면 어려서부터 조직에 가담하여 꾸준한 준비과정을 거쳐 검사가 되었다지만 그렇게 치밀한 조직이 있다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심정으로 있는데 다음날 국회 법사의원장으로 거론되는 ○○의원이 찾아와 같은 말을 하며 검찰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해야겠다고 협박을 하니 그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내사(內事)에 착수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내사의 특성상 기밀(氣密)을 유지하며 철저하게 조사해야하기 때문에 시일이 오래 걸리기 마련 이였다.
아침에 사무실에 출근한 검찰총장은 책상위에 있던 조간신문을 읽고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비록 크게 기사화된 건 아니지만 잘 읽어보면 검찰 및 경찰과 폭력조직 간의 커넥션이 있다는 식의 기사가 실렸으며 자세히 읽어보면 이미 신문사에도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만일 자신들이 미적거리며 시간을 끈다면 여론이 들고 있어나 문제가 확대될 것이 뻔했다. 국민들에게 믿음과 신뢰를 주어야할 검찰이 조직폭력조직과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이 국민들이 알게 된다면 검찰의 위상(位相)은 땅에 떨어지고 검찰총장인 자신도 감독을 소홀이한 책임을 지고 옷을 벗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 그는 바로 인사담당자와 내사담당자를 불러 허강기검사와 이무석검사의 처리를 서두르라고 지시했다.
수영은 아침조간신문을 보고 급하게 사군자(四君子)을 소집했다. 신문기사 내용대로라면 검찰에서 이미 이무석과 허강기에 대한 내사에 착수한 상태로 파악되며 이런 신문기사가 나간 이상 검찰에서도 빠르게 내사가 진행할 것이 자명한 상황 이였다. 특히나 신문지상에는 이무석검사와 허강기검사라는 실명이 거론되어 있지 않는가? 사군자는 바로 수영에게 달려왔다.
“모두들 조간신문 보셨죠. 이거 어떻게 된 거죠.”
“저희도 자세한 경위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허강기와 이무석에게 연락해 봤어요?”
“두 사람도 자신들이 내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란(蘭)님. 란님도 신문 보셨죠. 허강기가 일산에서 마약에 관련한 수사를 진행 중이란 기사는 뭐죠. 언제 그런 말 들으셨어요.”
“저에게도 한마디 말도 없었습니다. 제가 아침에 허강기와 통화했는데.............그의 말대로라면 일산에서 마약사범을 검거하고 마약의 유통경로에 대해 수사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마약사범을 검거한거 맞습니까? 일산이라면 천랑파 구역입니다. 혹시 저번 강철파 사건처럼 천랑파를 모함(謀陷)하기 위해 벌린 사건은 아니죠?”
“그게...........제가 물어보니 똑바로 대답을 못하는 것이...........저번 강철파에 써먹던 방법을 똑같이 쓴 것 같습니다.”
“이런.........제가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끝내 자기무덤을 팠군요. 란님! 제가 강기를 잘 감시해 달라고 부탁했죠. 란님은 그동안 뭐하신 거죠.”
“죄송합니다. 저도 강기가 또다시 그런 짓을 벌인 줄은 몰랐습니다. 저에겐 다시는 그런 짓하지 않는다고 했는데..........끝내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감시를 소홀이한 죄는 달게 받겠습니다.”
“지금 그게 중요해요. 당장 강기를 잡아오세요. 그리고 검찰에 있는 다른 분께 어떻게 된 거지 알아보세요.”
그때 사무실 전화기가 울렸다. 비서에게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연결하지 말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다급한 전화인 모양이다. 수영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저~ ○○입니다.”
“예. 무슨 일이죠.”
“저를 비롯하여 화랑과 원화들이 회사에서 해고(解雇)당했습니다. 아침에 인사과에서 연락받고 바로 연락드리는 겁니다.”
“무슨 소리죠. 자세히 말씀해 보세요?”
“제도 아침에 인사과 연락을 받고 혹시나 싶어 ○○신문사와 ○○신문사 등에 있는 기자들에게 비상연락망을 이용해 알아봤습니다. 그 결과 제가 있는 신문사와 ○○신문사에 있던 화랑들은 모두 해고통보(解雇通報)를 받았습니다.”
“이유가 뭐죠. 해고라면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잖아요.”
“명확한 사유는 없습니다. 다만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내용이 전부입니다. 인사과에서도 상부의 지시라 자신들도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알았어요.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수영은 전화를 끊고 바로 ○○신문사 인사과에 전화를 했다. 그곳에는 화랑은 아니지만 갈치파를 도와주는 인물이 있었다.
“갈치파 원예입니다.”
“잠깐만요. 제가 잠시 후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상대방의 말에 전화를 끊고 기다리니 잠시 후에 그에게 전화가 왔다.
“죄송합니다. 회사분위기가 삭막합니다. 저도 이제부터는 갈치파와의 관계를 정리하려 합니다. 하실 말씀 있으면 빨리하세요. 바로 사무실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와 관계를 정리해요? 일단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조금 전에 그 회사에 근무하는 우리 쪽 가자에게 전화가 왔어요. 회사에서 갑자기 해고통보를 했다는데 무슨 일이죠?”
“상부에서 폭력조직과 연관된 직원들이 회사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내사(內事) 중에 있습니다. 일단 오늘 아침에 일차적으로 저번에 성민파와 천랑파에 대한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은 바로 해고조치하고 지금도 다른 직원들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렇게 전화하고 있는 저도 위험해요. 죄송합니다만 다음부터는 연락하지 마세요. 저도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상부에서 어떻게 알았죠. 누가 배신(背信)이라도 했습니까?”
“잘 모르겠어요. 재단이사장님이 직접 사장님께 지시했다는 소문이 있어요. 이제 그만 끊어야겠네요.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그럼 이만............”
사내는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수영은 멍하니 앉아 있다 수화기를 내린다. 자신들이 힘들게 키워 신문사에 심어놓은 기자들이 한순간에 날아간 것이다. 현재는 두개 신문사에 있던 조직원들만 당했지만 앞으로 다른 언론사까지 확대될 것이 뻔했다. 대부분 언론사는 언론협회에 가입하여 서로 정보를 공유(公有)하지 않는가? 사정이 이렇다면 다른 언론사에 있는 조직원이 당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이걸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현재로써는 방법이 없다. 회사 상층부에서 내려온 지시라면 몇몇 인사에게 로비를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수영이 몸을 의자가 기대고 손을 모의고 깊은 고민에 빠져있자 사군자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수영이 이런 자세로 고민에 빠져 있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 틀림없었다.
“○○신문사와 ○○신문사에 있던 우리 기자들이 모두 해고당했다고 하네요. 회사 상층부에서 내려온 지시랍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다른 언론사에 있던 조직원들도 모두 당할 것 같아요.”
“갑자기 해고라니............무슨 사유(私有)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회사의 명예를 손상시켰다는 사유랍니다. 그건 표면적인 이유고 정확한 이유는 회사 상부에서 몇몇 기자들이 우리 쪽 사람인 것을 눈치 챈 모양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발생하죠.”
“모르겠어요..........일단 언론사에 있는 조직원들을 모두 철수시키세요. 혹시라도 그들이 우리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들에게 밝혀지면 우리까지 위험해요.”
“검찰 쪽은 어떻게 하죠. 허강기는 잡아온다고 해도 이무석검사는 천랑파를 수사 중에 있지 않습니까?”
“검찰 내부에서 내사가 시작되었다면 이무석도 위험해요. 그도 사표 제출하고 복귀하려고 하세요.”
“그럼 우리가 그동안 심혈을 기울려 심어놓았던 언론과 검찰 쪽의 손발이 모두 잘리게 됩니다.”
“할 수 없어요. 그래도 아직 경찰 쪽은 남아있어요..........잠깐만 혹시 그쪽도............국(菊)님 경찰 내사과에 우리 쪽 사람이 있죠. 한번 연락해 보세요.”
수영의 지시에 국(菊)은 경찰 내사과에 연락을 취했다. 국은 한참을 통화하더니 얼굴이 하얀 게 질리고 만다. 이미 경찰도 행자부장관의 명으로 내사에 착수한 상태라고 했다. 경찰 내사과에서 각 경찰서는 물론이고 일선 파출소까지 폭력조직과 연관된 인사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영은 매(梅)의 보고를 받고 할 말 읽었다. 일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자신들이 그동안 화랑과 원화들을 언론이나 경찰에 침투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나이어린 화랑과 원화들을 교육시키고 막대한 로비자금을 들어서 각급 기관에 침투시키기까지의 과정은 누가 보더라도 의심될 만한 것이 없었다. 또한 그들은 평소에는 자신들의 지위에 충실하고 특별한 일이 발생했을 때만 자신들의 지시를 받아 아무도 모르게 처리했다. 지금까지 그들을 의심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언론과 경찰, 심지어 검찰에까지 힘들게 만든 조직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생겼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수영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결딴을 내려야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갈치파가 경찰과 검찰의 표적이 될 수도 있었다. 그녀는 자신들이 힘들게 만든 조직을 스스로 무너트리기로 결정했다. 그게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였다. 그녀는 언론, 경찰, 검찰에 있던 조직원들에게 모두 사표를 제출하고 갈치파로 귀환(歸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게 이외에는 방법이 없지 않는가?
검찰 내사과는 인사과에서 보낸 온 인사기록을 토대로 허강기와 이무석에 대한 과거행적을 조사하고 그들이 작성한 최근의 수사기록을 세세하게 검토했다. 그들은 먼저 이무석검사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는데 그의 수사기록에 대해서는 특별한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그의 과거기록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갈치파와 연관이 있다고 의심되는 몇 가지 증거는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허강기검사는 의심되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 그들이 주목한 것은 그가 수사한 강철파의 마약수사기록과 최근에 그가 수사하고 있는 일산 마약사건에 대한 수사기록이다. 그들이 허강기의 수사기록에 주목한 이유는 그가 검거한 강철기획의 마약사범들이 지금도 자신들의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 중에 있었고, 또한 이번에 검거한 외국인 접대부에 대해서도 의심되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녀의 검거과정을 살펴보면 허강기검사의 단독 수사로 검거되었고, 그녀의 아파트에서 마약을 발견한 것도 허강기검사 본인 이였다. 또한 그녀가 복용한 마약은 엑스터시라고 불리는 마약인데 내사결과 허강기 검사가 그녀를 검거한 바로 당일 날 검찰청 증거보관소에서 엑스터시를 빼내간 기록이 있었다. 그들은 그녀의 아파트에서 발견된 엑스터시와 허강기검사가 빼내간 엑스터시의 양에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에 주목했다. 내사팀은 허강기검사와 별도로 일산 마약사건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허강기검사가 마약복용 혐의로 검거 했다는 여자의 과거기록을 우즈베키스탄 정부에 문의하여 보았으나 그녀는 단 한번도 마약과 관련된 사건에 연류 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그녀 주변 인물들의 증언을 들어보아도 그녀가 마약을 복용하는 모습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는 증언이었다.
작가 주 : 엑스터시 (Ecstasy, XTC, MDMA, "도리도리", 搖頭丸) : 1999년 이후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신종 마약으로, 화학적으로 MDMA(Methylendioxy Methamphetamine)로 통칭되는 암페타민계 유기화학물질입니다. 유럽, 미국 등지에서 주로 발견되며, 우리나라에서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 형태는 보통 정제형이고 그 모양은 가지각색입니다. 약리작용으로는 식욕상실, 혼수, 정신착란 등을 일으키며, 과다사용시 사망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수영의 명령에 경찰과 언론사에 있던 모든 조직원들이 사표를 제출하고 갈치파로 복귀하고 있었다. 이무석 또한 수영의 지시에 미련 없이 사표를 제출했다. 이미 내사가 진행 중이라면 자신이 갈치파 일원이란 사실이 밝혀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는 청사를 떠나기 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천랑파와 성민파에 대한 모두 자료를 파기(破棄)하고 최근에 작성한 수사기록도 또한 모두 파기했다. 자신이 떠나도 천랑파와 성민파에 대한 수사는 계속 진행될 것이다. 혹시 자신의 후임자가 자신의 기록을 참고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번사건에 천랑파나 성민파뿐만 아니라 갈치파까지 연류(連類) 된 사실이 밝혀지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이무석검사가 사표를 제출하고 나온 것과는 대조적으로 허강기 검사는 수영의 복귀 명령을 거부하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수영은 허강기의 무모한 행동을 참지 못하고 급기야는 사람을 시켜 허강기를 잡아오도록 지시했다.
검찰 내사과에서는 조사 중이던 이무석검사는 스스로 사표를 제출하고 검찰을 떠나고, 허강기검사는 행방이 묘연(杳然)하니 허강기를 권고해직(勸告解職)으로 처리하고 서둘러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이무석검사가 믿고 있던 성민파와 천랑파의 수사는 다른 검사에게 배정되었고, 허강기검사가 진행 중이던 일산마약사건은 잡혀온 접대부를 훈방조치하고 사건을 무마해 버렸다. 이무석의 대타로 사건을 맞은 검사는 이미 이무석이 떠나기 전에 관련 자료를 모두 파기했기 때문에 수사를 원점(原點)에서부터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이무석이 한번 쓸고 지나간 곳에서 별다른 단서를 찾기란 불가능했다. 이미 무석이 단서가 될만한 것은 모두 파기했기 때문이다. 또한 천랑파와 그들이 관리하는 업소들을 조사해 보았지만 천랑파의 불법적인 행위는 아무것도 밝혀낼 수 없었다. 그는 이미 성민파의 성민이 다른 사건에 연류 되어 전국에 지명수배 되어 있었기 때문에 성민을 잡는데 수사력을 집중했다.
허강기는 일산에서 수사 중에 란(蘭)과 화랑들에 의해 갈치파의 인천본부로 납치되었다. 수영은 납치한 허강기를 본부에 있는 지하 감옥에 수감하도록 지시했다.
수지는 허강기가 자신의 변심(?)으로 인해 수혼에 대한 복수심의 일환(一環)으로 많은 것을 생각지 못하고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무거웠다. 한때는 자신도 강기를 좋아했었다. 어려서부터 갈치파에 같이 들어와 강기는 명석한 두뇌를 인정받아 검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았고, 자신은 뛰어난 무예실력으로 갈치파 사군자의 한 사람으로 낙점(落點)되어 무예수련에 전념했다. 수지와 강기는 비록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친남매처럼 서로를 아껴주며 서로를 사랑한다고 믿었다. 세월이 흘러 자신은 사군자의 란(蘭)이 되고 그는 수리대학 법학과에 들어갔다. 두 사람은 그때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강기가 변하기 시작한 발단은 자신이 제공했다. 자신은 강철의 의동생인 수혼에 대해 조사하려는 지시를 받고 그에게 접근했다. 갈치파가 수혼에게 주목한 이유는 그가 강철파 조직원들에게 무술을 지도하는 교관일 뿐만 아니라 그가 사용하는 무술이 음양도로 의심되었기 때문이다. 수지는 수혼에게 접근했고 그에 대해 조사한 결과 그가 익히고 있는 무술이 음양도가 확실했다. 갈치파의 수영은 수혼의 앞으로의 진로(進路)와 음양도의 장단점을 파악하기 위해 자신에게 수혼에 대해 더욱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갈치파 입장에서 그가 강철파의 조직원에게 음양도를 전수한다면 강철파를 무너트리고 서울을 정복해야할 자신들에게 커다란 부담이 되기 때문이며 또한 원예는 원예도의 전승자로 언젠가는 음양도의 전승자인 그와 사문의 명예를 건 대결을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은 명령에 충실해 수혼이란 사내와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그를 사랑하게 되버린 것이다.
사랑..........자신은 어려서부터 남매처럼 지내던 강기를 사랑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강기에게 느끼는 감정과 수혼에게 느끼는 감정은 너무 많은 차이가 있었다. 자신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강기에 대한 감정은 사랑이 아니었다. 자신은 많은 고민을 했다. 자꾸만 수혼에게 향하는 자신의 마음을 부정하며 냉철해지려 노력했다. 자신은 갈치파 사군자(四君子) 중 한명이 아닌가? 더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사문(師門)의 적이었다. 자신은 자신의 임무와 사랑사이에서 끝내는 사랑을 선택했다. 그를 위해서라면 사문까지 버릴 결심을 한 것이다. 자신의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 첸 것은 강기였다. 그는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었고 자신도 자길 사랑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수혼에게 향한 마음을 돌리기는 힘들었다. 자신은 끝내 강기까지 버렸다. 그에게 깊은 상처를 준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자신이 수혼과 맺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를 잊으려 노력했다. 원예는 다시 돌아온 자신에게 강기를 부탁했다. 이미 다 타고 재가 돼버린 가슴에 무엇이 남아있겠는가? 자신은 강기를 예전처럼 대할 수 없었다. 강기 또한 자신을 예전처럼 대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수혼에 대한 불타는 질투심만이 남아 있었다. 더욱이 자신의 곁에 있으면서도 수혼을 잊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수혼에 대해 복수심은 극에 달했다. 자신은 원예의 명령에 그와 같이 있어도 마음만은 언제나 수혼에게 향하고 있었다. 강기는 그걸 참지 못했다. 그는 끝내 수혼에 대한 복수심에 눈이 벌어 이성을 상실하고 무모한 행동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수지는 강기가 감금되어 있는 지하로 내려갔다. 그는 몇 개의 방중 하나의 방에 갇혀 있었다. 수지가 강기가 갇힌 철문의 문틈 사이로 안을 보자, 강기는 방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수지는 그를 보자 가슴이 답답하다. 그는 복수에 눈이 멀어 원예의 명령까지 무시한 것이다. 갈치파에서 항명(抗命)의 죄는 무거웠다.
“강기야. 강기야~”
강기는 수지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그는 이곳에 잡혀와 식음을 전패하고 있었기에 그의 눈동자에 생기가 없었다.
“수지냐. 무슨 일로 왔어. 원예님이 끌고 오라고 하던.............”
“아니야. 원예님은 사부님께 갔어.”
“그럼 무슨 일로 왔어. 내가 뭐하고 있는 구경이라도 하려고 왔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는다면..........어쩌려고 그래. 여기서 굶어 죽을 거야.”
“무슨 상관이야. 내가 죽던 말든 너하고 상관없잖아.”
“우린.............친구잖아. 네가 걱정 되서 찾아왔는데 꼭 그렇게 말해야 하니.”
“친구?.............하긴 넌 지금도 그놈을 잊지 못하고 있지. 친구라고 불러주는 것만도 네게 감사해야 하나?..........다 때려치워...............꺼져버리란 말이야.”
“강기야.............왜 날 이해 못해 주니. 나도 그 사람이 잊으려 노력해. 아니 이젠 잊었어. 다만 아직은 누굴 받아들일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어. 네가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주면 안되니. 내가 널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면 안돼.”
“지랄을 한다. 쌍년~. 네년이 그놈을 잊었다고..........뭐~ 마음의 여유가 없어. 오통 그놈 생각뿐인 년이니 당연하겠지.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해. 내가 기다린다고 네가 올 년이냐. 십팔~ 꺼져. 꼴도 보기 싫어.”
“너...........어떻게 내게 그런 말을................좋아. 나도 이젠 몰라. 너 마음대로 해. 굶어죽던, 항명죄로 벌을 받던 나도 모르겠어.”
“그래 잘 생각했다. 다 때려치우고 네가 사랑하는 그놈한테나 가라. 난 여기서 죽던지 말든지 마음대로 할 거니까? 그놈에게나 가라고 미친년아. 조직이고 사문이고 다 버리고 그놈에게 가...........그게 네가 바라는 거 아니야. 마음을 속이지 마. 그놈이 받아주던 말던 매달려나 보란 말이야...........그놈을 잊지 못해서 청승맞게 그렇고 있지 말고...........그렇게라도 해봐~ ........그게 내게 해주는 마지막 충고다................이제 가라.”
“강기야.............네게는 할 말이 없다. 나...........그 사람이 잊었어. 네가 생각하듯이 그 사람 잊지 못해서 청승이나 떨고 있는 게 아니야..............나........돌아왔어.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거야. 그러니까...........너도 힘내. 알았지.”
“미친년...........끝까지 자기 마음을 숨기려 하네. 네가 내 곁에 있겠다고?..........날보고 껍데기만 안고 살라고?..........가라........제발 가라............십팔!~ 그놈을 죽어버려야 했어. 그게 안 되면 감방에라도 처넣어야 했는데..........휴~ 내 꼴이 웃긴다.”
그때 복도를 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원예와 몇 명의 화랑들 이었다 . 화랑들의 손에는 몇 가지 도구들이 들려있었다. 수지는 그걸 보고 깜짝 놀랐다. 원예가 강기를 어떻게 하려는 것인가?
“워.............원예님.”
“란님이 이곳에 있었군요. 강기는 뭐하고 있죠?”
“그냥..........안에 있습니다. 그런데.......그건 뭐죠.”
“강기는 명을 어기고 우리 갈치파를 위험에 빠트리려 했어요. 그를 이대로 용서한다면 조직의 기강(紀綱)이 무너져요.”
“이번에 강기가 원예님의 명을 어긴 잘못은 있지만 그동안의 공로를 생각해서 용서해 주세요.”
“란님이 나설 자리가 아닙니다. 내게도 생각이 있으니 비켜서요...........뭐해~ 문 열고 강기를 끌고 나와”
원예의 명령에 화랑들이 철문을 열고 강기를 끌고 나왔다. 강기는 수사 중에 잡혀왔기 때문에 말끔한 양복차림 이였다. 그들은 화랑들에 의해 바닥에 꿇어 앉혀졌다.
“허강기..........네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지. 다른 말은 하지 않겠어. 그동안 너에게 들인 정성을 생각하면 당장 목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동안의 공로를 생각해서 너에게 선택권을 주겠어...........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조직을 떠나는 길과 조직에 남는 길이 있어. 어떡할래.”
“조직을 떠나겠다면 제가 무슨 벌을 받아야 하죠.”
“본래는 조직에서 너에게 베풀어준 것을 모두 반납하고 가야겠지. 하지만...........그동안의 공로를 생각해서 그냥 보내주겠다. 대신 앞으로 조직과 관련된 모든 일은 머리에서 깨끗하게 지워라. 만일 내가 다른 사람에게 조직에 대한 사소한 말이라도 입 밖으로 냈다는 소식이 들리면..........그때는 화랑들이 널 찾아갈 것이다.”
“푸~~ 무섭군요. 제가 조직에 남겠다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겠죠?”
“당연하다. 네가 지은 죄는 항명죄에 해당된다. 항명은 조직의 기반을 뒤흔드는 용서 못한 중죄에 해당한다.”
“.......................떠나겠습니다.”
“떠나겠다...............그래..........좋아 보내주겠다. 방금도 말했지만.............앞으로 갈치파는 잊어라..........밖에까지 대려다 줘.”
화랑들은 강기를 일으켜 밖으로 끌려가는데 강기는 뒤를 돌아 수지를 바라보며 끌려갔다. 수지도 끌려가는 강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란님.........가시죠. 이제 란님도 모두 잊으세요. 강기도 떠났고, 앞으로 할일이 많아요.”
“알겠습니다. 원예님께는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생각하시면 앞으로 일에 최선을 다해주세요. 그럼 저도 만족해요.”
“알겠습니다. 조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가시죠. 회의실에서 모두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지와 수영은 회의실로 올라갔다. 회의실에는 이미 나머지 사군자와 무석이 자리하고 있었다. 수지와 수영이 들어오자 회의가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상황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갈치파는 20년이 넘게 준비하여 각 관청이나 언론에 심어놓았던 화랑과 원화들을 모두 철수시킨 상태입니다. 우리들이 이번에 일어난 사태에 대해 정보조직을 활용하여 알아본 결과 몇 가지 단서가 될만한 단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검찰과 경찰의 내사, 언론사의 내사 등 지금까지의 일들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먼저 검찰 쪽을 무석님이 설명해 주시죠.”
“예~ 제가 검찰에 남아있는 친구들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태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검찰에서는 제가 제출한 사표를 수리하고, 허강기에 대해서는 권고사직으로 처리하며 사건을 서둘러 마무리 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번사건을 검찰입장에서도 국민들이 알기전이 재빨리 봉합(封合)해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내사(內事)의 특성상 조용히, 치밀하게 처리해야 함으로 내사가 시작되었다 해도 많은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이번 사건은 너무 서둘러 모든 것이 처리되었습니다. 아무리 신문에 기사가 나갔다 해도 검찰 최상층부의 의지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친구 녀석 말로는 이번 내사가 검찰총장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서둘러 내사가 종결된 것으로 파악 됩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저도 제가 관리하던 언론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저희 쪽 기자들을 해고한 두개 신문사 중 한곳은 재단이사장의 명으로, 다른 한곳은 관계회사 전무의 제보로 사장이 직접 지시했다고 합니다.”
“경찰 쪽은 마찬가지입니다. 경찰도 행정자치부장관의 명에 의해 내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검찰총장, 행정자치부장관, 신문사 재단이사장 및 전무........이 모든 사람들이..........한명만 제외하고는 한곳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원예님은 의심되는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예~ 이 사람들은................강철의 딸인 지나와 연결됩니다. 그녀의 친구들이 바로 앞에 거명된 사람들의 아버지입니다.”
“그..........그럼. 강철 딸이 뒤에서 이들을 조정했다는 말씀입니까?”
“그건 아니겠죠. 지나는 현재 실종 상태입니다. 또한 그녀에게 그런 힘이 있다고 생각하긴 힘들어요.”
“그럼 원예님은 누굴 의심하시는 거죠.”
“천랑(天狼). 조수혼!!!!!!”
“천랑?.............그가 의심된다는 말씀입니까?”
“란(蘭)님이 천랑의 핸드폰에 위치추적 장치를 설치하여 우리 쪽에서 그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어요. 최근 천랑은 광화문, 여의도, 신촌, 종로 일대를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지금 한참 우리와 전쟁 중인 그가 한가하게 놀려 다니지는 않았을 겁니다. 제 생각에는 그와 지나 친구들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다시 말하면 그녀들이 천랑을 돕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 저도 원예님의 생각에 동의(同意)합니다. 제가 천랑을 감시할 때 그가 블랙로즈들과 만나는 것을 몇 번 보았습니다.”
“란(수지)님은 그와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 잘 알겠군요. 그래요. 지나를 포함해서 그녀들을 블랙로즈들이라고 부른다죠. 그녀들이 천랑을 돕고 있는 겁니다. 자신들의 아버지 힘을 이용해서.............”
“그럼 우리들이 대처할 방법이 없다는 겁니까? 잘못하면 우리가 역으로 당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공권력을 이용해 우리를 치겠다고 생각했다면 지금까지 가만있진 않았을 겁니다. 벌써 무슨 조치를 취했겠죠.”
“.........천랑은 무슨 생각이죠. 자신에게 공권력의 힘이 있다면..........충분히 이용할 수 있을 것인데...........원예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도 후일을 걱정하는 거죠. 지금까지 지켜본 천랑은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을 싫어해요. 더욱이 공권력의 힘을 빌리는 것은 더욱 싫어하죠. 공권력과 우리는 ‘악어와 악어새’와 같은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과는 적당한 선을 유지하며 관계를 유지해야 해요. 이건 사족(蛇足)이고, 하여튼 그도 공권력의 힘으로 우릴 상대할 생각은 없는 모양입니다.”
“지금까지는 추측에 지나지 않습니까? 정확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제가 그를 만나려 합니다.”
“예~ 원예님이 직접 천량을 만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안될 것도 없죠. 우린 적이지만 또한 같은 무도인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니까요.”
수혼은 저택에 머물려 있었다. 그는 정숙누님에게 검찰 쪽의 움직임을 알아보고 일단은 급한 일은 해결되어 한시름 놓고 있었다. 그때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생전 처음 보는 번호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수영입니다.”
“수.........수영! 수영님이 무슨 일이죠?”
“왜요. 전 전화하면 안돼요. 그리고 수영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저번에 제가 수혼씨라고 하니 좋다고 하시고서는........우리 그냥 편하게 호칭해요.”
“하하하~ 좋습니다............수영님, 아니 수영씨가 무슨 볼일이 있어 소인(小人)에게 전화를 주셨습니까? 한참 우린 상대할 계책을 만드시는데도 바쁘지 않으세요?”
“맞아요. 천랑파가 만만치 않아서 고민이 많아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 술 한 잔 사주 세요?”
“푸~ 하하하~ 절보고 술을 사라는 말씀입니까?”
“그럼 여자인 제가 사요?............남자인 수혼씨가 사주실수 있죠?”
“쩝~ 좋습니다. 어디로 가면 되죠.”
“제가 인천이니까 영등포에서 만나죠.............가능해요?”
“영등포라면 갈치파 구역이군요. 알겠습니다. 몇 시까지 어디에서 만날까요?”
“7시까지 영등포에 있는 큰 술집에 들어가 계시면 제가 알아서 찾아가겠습니다.”
“호~ 영등포는 모두 갈치파 구역이니 제가 어디 있어도 금방 찾아낼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알겠습니다. 그때 만나죠.”
수혼은 전화를 끊고 길식과 호식, 그리고 부인들을 호출했다. 수혼의 호출에 모든 사람들이 일층에 있는 회의실로 집합했다.
“제가 여러분을 모두 호출한 것은 갈치파에서 연락이 왔기 때문입니다. 갈치파 수장인 수영이 잘 보자고 하는군요.”
“무슨 일로 보자는 거죠. 수혼씨 개인에게 연락 온걸 보면 개인적으로 만나자는 말처럼 들리는 군요.”
“맞아. 개인적으로 만나자는 부탁이야.”
“그래서 수혼씨는 뭐라고 하셨어요?”
“만나자고 했어. 영등포에서 7시에 만나기로 했어.”
“영등포? 그곳은 갈치파 구역 아닙니까? 혹시 이번에도 그녀가 무슨 흉계를 꾸미는 건 아닐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어떻게 믿죠. 저번에도 검찰을 이용해서 우릴 모함하려 했던 그녀입니다.”
“그건 조직 간의 일이죠. 이번에는 개인적으로 만나자고 한 것입니다. 전 그녀를 믿어요.”
“수혼씨는 그녀를 믿는다고 하지만 저희들은 못 믿겠어요. 혼자가시면 안돼요.”
“그럼 누굴 대동하고 갈까? 호식이가 같이 갈래, 아니면 부인들 중 한명이 같이 갈 거야?”
“음~...............요키에가 대동하면 좋겠습니다. 요키에라면 저들이 설사 암습을 준비했다고 해도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 겁니다.”
요코는 요키에를 추천했다. 다른 사람이 생각해도 수혼을 보호하는 임무라며 요키에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요키에는 인자문의 고수며, 전직 킬러가 아닌가? 갈치파가 수혼을 암습하려 해도 요키에라면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좋습니다. 요키에와 대동하겠습니다. 그리고 장인어른과 호식은 기동대를 정비해 주세요. 전제적으로 저번 싸움으로 현재 전투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이건 폭풍전야의 고요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제가 준비한 작전이 있어요. 기동대가 정비되면 말씀해 주세요.”
“새로운 작전을 준비하셨습니까? 어떤 작전이죠?”
“그건 기동대가 정비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참~ 저번에 조직원들과 저택경비에 대해 점검해 달라고 했었죠. 그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예~ 현재 조직원들에 대한 조사는 끝났습니다. 조사결과 갈치파로 의심되는 20여명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저택경비망에 대해서는 요키에님과 공동으로 철저하게 점검하여 이제는 누구도 저택 안으로 침입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좋습니다. 갈치파로 의심되는 놈들은 감시만 하시고 그냥 두세요. 나중에 그들을 이용할 수 있을 겁니다. 참~ 자택 주변도 조사해 보세요. 저택에서 떨어진 곳에 야산이 하나 있더군요. 그곳도 조사해 보세요.”
“알겠습니다.........참~ 그리고 요즘 들어서도 새로운 조직원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대부분 강철파에 있다가 강철파가 무너지며 흩어졌던 녀석들인데...............어떻게 할까요?”
“형님 밑에 있었던 놈들이라고 모두 받아들이지 마시고, 실력자들만 선별해서 받아들이세요. 앞으로의 싸움은 생사(生死)를 걸어야 합니다. 실력이 출중하거나 충성심이 강한 놈들만이 생사대전(生死大戰)에 임해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예~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조직원이 많다고 좋은 것만도 아니죠. 그래도 요즘은 쓸만한 놈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고 있습니다. 강철파가 자랑하던 강철의 친위대에 속해 있던 녀석들입니다.”
“친위대........그들이라면 제가 가르치던 재자들................그들이 들어온다면 우리에게 큰 힘이 되겠죠.”
“아직은 많은 숫자가 아닙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소문이 펴지면서 많이 들어오겠죠.”
“그들을 만나봐야겠군요. 좋아요.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죠.”
수혼은 5시간 넘자 요키에와 함께 저택을 나섰다. 요키에는 안에 장속(裝束)을 입고 무기들을 착용했다. 또한 권총까지 챙겨서 허벅지에 장착하고 통이 넓은 원피스를 입고 수혼을 따라 나섰다. 수혼은 요키에의 그런 차림이 웃겨서 웃었지만 요키에는 심각하기만 하다. 그녀는 수혼과 뒷좌석에 앉아서 담배를 한대 물었다. 수혼은 그녀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처음 본다. 담배는 자신도 피우지 않지 않는가?
“요키에. 담배는 무슨 맛이야.”
요키에는 수혼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빙긋 웃어만 준다. 요키에는 요코에게 한국말을 배우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서툴다. 수혼도 일본어를 배우고는 있지만 역시 아직은 능숙하지 못하다. 수혼은 고개를 흔들고 만다. 그녀에게 뭘 바라겠는가?
차가 영등포에 도착하자 수혼은 요키에와 조용한 룸살롱으로 들어가는데 입구에서 웨이터가 황당한지 수혼의 앞길을 막는다. 웨이터는 룸살롱에 여자와 함께 오는 미친놈은 처음 본다.
“손님. 이곳은 일반 술집이 아닙니다. 두 분이서 조용히 즐기시려면 다른 곳을 알아보세요.”
“여기 술집 아니야. 여자와 함께 동행을 하든 말든 술이나 팔면 되지 무슨 상관이야.”
“전 두 분을 위해서 말씀드리는 건데..........이곳이 룸살롱인건 아시죠. 그래도 상관없다면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잘 생각했어. 요키에 入って行こう(들어가자)”
“はい(예)”
웨이터는 수혼과 동행한 여자가 일본인이라 사실에 더욱 기가 막힌다. 수혼은 룸으로 안내되어 요키에와 같은 자리에 앉았다. 수혼은 웨이터에게 술과 안주를 주문했고, 잠시 후 술과 안주가 나왔다.
“손님~ 여자는 필요 없겠죠?”
“응~ 여자는 필요 없어. 조금 있으면 여자 한명이 또 찾아 올 거야?”
“예~ 다른 여자 분이 또요?............알겠습니다..................이상한 손님이네.”
웨이터의 마지막말은 혼자 중얼거리는 말이었다. 룸살롱에 여자와 함께 들어와서 또 다른 여자가 찾아온다니 정말 이상한 놈이다. 그런데 웨이터가 밖에 나오자 갈치파의 조직원 한명이 웨이터에게 방금 들어간 손님에 대해 꼬치꼬치 묻더니 급하게 달려갔다.
수혼은 요키에가 따라주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요키에와 부부의 연을 맺었지만 이렇게 단둘이 오붓한 시간을 가진 것은 처음이다. 수혼은 요키에의 곁에 바짝 다가앉아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얻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한 여인이 룸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청바지에 남방차림의 수수한 모습 이였다. 바로 수영이다. 수영은 평소 쓰고 다니던 모자도 벗어버리고 아름다운 얼굴을 드려내고 있었다.
“장소하나 고약한 곳으로 정했네요. 거기에 같이 온 여자 분은 누구죠.”
“어서와요. 찾기 힘들 줄 알았는데 금방 찾았네요. 갈치파의 정보력도 상당한 모양입니다. 아~ 참~ 여기 있는 여자는 제 부인입니다. 요키에라고 하죠.”
“요키에?..........저번에는 요코님이더니..........수혼씨는 도대체 부인이 몇 명이죠. 저번 전투에 보니까 중국아가씨도 있던데...........”
“아~ 링링 말씀하시는군요. 링링도 부인이죠.”
“기가 막혀..........순 바람둥이네요. 쌍둥이 자매에 요코, 링링 이번에는 요키에? 가만 있어봐~ 하나 둘, 셋............총 5명. 이거 신고해야겠네요.”
“제가 바람둥이라는 사실을 지금 알았어요. 앉아요. 계속 서 있을 겁니까?”
수혼의 말에 수영은 반대편에 앉았다. 그녀는 요키에를 찬찬히 쳐다보았다. 요키에도 수영을 바라보다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수영은 그녀의 눈빛만 보고도 그녀가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은 차갑고 날카로웠기 때문이다.
“요키에라는 분도 보통 사람은 아닌 모양이죠?”
“일본 인자문의 고수죠. 본래는 아마모토조에서 지옥혈녀(地獄血女)라 불리던 무시무시한 여자였습니다. 아마 갈치파도 조심해야 할걸요. 아참~ 아마모토조에서는 요키에가 죽은 것으로 아니까 소문내지 마세요.”
“무섭네요. 알았어요. 입은 봉하죠. 제가 수혼씨에게 무슨 흉계라도 꾸미는지 알고 동행한 모양이죠?
“전 괜찮은데............부인들이 성화라 같이 왔죠.”
“좋겠어요. 걱정해 주는 부인들 많아서.....................”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어요.”
“행복한 비명이네요. 그 이야기는 그만하죠. 제가 오늘 수혼씨를 보자고 한 것은 몇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보자고 했어요.”
“수혼씨........듣기 좋네요.”
“순 바람둥이 지금 제게 작업(?)하시는 건가요. 부인을 옆에 두고.”
“자꾸 바람둥이라고 놀리는데..........쩝~ 이거야 원~ 그래 바람둥이라고 치지 뭐~ 수영씨도 저랑 한번 놀아 보실래요?”
“호호호~ 그만 웃겨요. 참~ 그분은 말씀이 없네요.”
“아직 한국말을 못해요. 저도 일본어를 못하니 주로 대화는 몸으로 하고 있죠.”
“참~ 가지가지 하네요. 이제 다 웃겼죠. 이젠 대화 좀 해요.”
“하세요. 누가하지 말라고 했어요?”
“이번에 저희들이 멋지게 당했어요. 천랑파에 그런 무시무시한 배경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정말 대단해요.”
“뭐~ 대단한 사건도 아니죠. 그냥 도와주는 분들이 많아서요. 이번에 강기선배하고 무석선배가 검찰에서 퇴출당했다고 하더니..................잘 지내고 있죠.”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을 보니 수혼씨 작품이군요.”
“제 작품이 아니라, 블랙로즈 작품이죠.”
“그 지나씨 친구 분들.........그분들도 수혼씨가 작업한 모양이죠.”
“이거 너무 많이 밝혀지면 나중에 수습하기 힘든데.........작업을 했다기 보다는 그녀들이 절 도와주는 거죠.”
“하여튼 그녀들 때문에 우리 쪽 피해가 막대해요. 그동안 힘들게 만들어 놓은 조직이 하루아침에 무너졌으니.................너무 한거 아닌가요?”
“먼저 암수(暗數)를 쓴 건, 갈치파 아닙니까? 전 살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죠.”
“저를 욕하시는 군요. 하긴 우리가 먼저 시작했죠. 그런데 왜 지금은 조용하죠. 그들의 힘이라면 손안대고 우릴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관(官)과 밤의 세계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합니다. 밤의 세계의 일은 밤의 규칙에 따라 해결해야지 관(官)의 힘을 빌리고 싶진 않아요.”
“가시가 있는 말이군요.............제가 사과하죠. 그럼 앞으로 수혼씨도 관의 힘을 빌릴 마음은 없다는 거죠.”
“당연하죠. 세상에 공짜는 없죠. 제가 저들의 힘을 빌리면 그에 상응(相應)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갰죠. 전 그들에게 최소한의 도움만 받을 겁니다.”
“당당해서 좋네요............이래서 제가 수혼씨를 미워할 수 없어요. 앞으로 정정당당하게 대결해요.”
“갈치파가 정정당당하게 나온다면 저희도 암수는 쓰지 않습니다.”
“그럼 협의(協議)한 겁니다.”
“협의? 좋아요. 그렇게 하죠. 참 지금까지 술 한 잔 드시지 않았네요.”
“이제 공적인 이야기는 끝났으니 한잔 주세요.”
수혼은 그녀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그녀는 한잔 마시고 수혼에게 잔을 내밀었다. 수혼도 그녀가 따라주는 술을 마셨다.
“수혼씨는 행복한 분 같아요. 주변에 사랑해주는 분들이 많으니까?.........외롭진 않겠군요.”
“수영씨는 외로운 모양이죠. 하긴 갈치파라는 거대한 조직을 이끌어 가시려면 힘들겠군요.”
“정말 힘들어요. 외롭고.........그나마 사부님이 뒤에 계시기에 힘들게 버티고 있죠.”
“사부님?.........원예도의 전전 전승자님..........두 분은 어떤 사이죠.”
“글쎄요...........사부님이 거기에 대해서는 말씀을 없어요. 추측으로는 저의 외할머니 같은데 사분님 본인께서 가타부타 말씀이 없어요.”
“외로우시면 가끔 연락하세요. 저와 이렇게 한잔씩 하면 좋잖아요.”
“수혼씨는 절 미워하지 않나요?”
“제가 왜~ 수영씨를 미워해요. 전 아름다운 여자라면 모두 좋아해요.”
“바람둥이..........옆에 요키에님이 한국말을 못한다고 못하는 말씀이 없네요.”
“하하하~ 요키에가 제 말을 알아들어도 상관없어요. 제가 수영씨를 좋아하는 건 사실인데요.”
“호호호~ 수혼씨를 만나면 웃겨요. 그래서 좋아요. 최소한 수혼씨를 만나고 있을 때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으니까요.”
“좀 전에도 말했지만 외로우면 연락하세요.”
“그래요. 가끔 연락할게요. 그때는 거절하시면 안돼요.”
“알았어요. 연락만 하세요.”
“이제 그만 일어나죠. 요키에님만 안계시만 더 놀고 싶지만 요키에님 눈치 보여서 일어나야겠네요.”
“예~ 일어나야죠.”
두 남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영은 수혼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다가 다시 수혼은 본다.
“내일부터는 다시 적으로 만나겠죠.”
“아마도..............이젠 정정당당하게 힘 대 힘으로 대결하는 거죠.”
“예~ 천랑파의 반격을 기대하죠. 우리도 많은 준비를 해야겠네요.”
“기대하세요. 제가 생각하는 작전이 있거든요.”
“예~ 기대하고 있죠. 요키에님 만나서 반가웠어요.”
수영은 쓸쓸하게 돌아섰다. 수혼은 그녀의 뒷모습이 무척이나 외롭게 보였다.
ps : 검사들 처리는 이것으로 끝내죠. 갈치파가 가지고 있던 공권력은 제거했으니 이젠 힘 대 힘의 대결구도로 끌고 가려합니다. 무협물에 관(官)이 등장하면 재미없죠. 다음 편부터 다시 천랑파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부수적으로 수영과 수혼의 사랑, 지나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들어갑니다. 부제를 달자면 “부산에 몰아지는 바람”정도.......쉽게 말하면 자갈치파 정리합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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