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잠의를 바라보는 소류진의 내심 놀라는 눈빛! 그녀인들 천잠의를 모를 리 없었다. 불쑥 내민 무가지보(無價之寶)에 경악과 의아스러움으로 설 무영을 바라보는 소류진의 습기어린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설 무영은 백색요대에 대한 설명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
"이건........"
그러나 설 무영은 아직도 석연치 않은 쑥스러움에 말을 멈추고 전도련을 바라보았다. 전도련을 바라보는 설 무영의 눈빛은 백색요대에 관한 설명을 소류진에게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소류진과 설 무영을 번갈아 바라보는 전도련의 입가에 의미 있는 미소가 흘렀다.
(다녀오세요. 제가 있잖아요!)
전도련이 설 무영에게 전음을 전할 때 그의 몸은 벌써 자운암(姿雲庵)을 나서고 있었다. 무언(無言)의 눈빛이 그들 사이에는 통하고 있는 것이었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설 무영은 변황을 향해 경신술을 펼쳤다.
(애구! 내가 갈 길도 먼데.......무슨 팔자람......!)
그렇다! 그가 가야 하는 길. 누구도 예측불허의 길이 아닐 수 없다.
당연히 가야 할길, 막연한 길이지만 삼백 여년의 한을 풀어야 하는 운명의 길은 그를 기다리고 있다. 전혀 앞길을 예측할 수 없는 안개 속으로 그가 경공을 펼쳐 가고 있다.
신강(新彊) 이영사막(伊寧砂漠).
황혼이 지고 있는 끝없는 모래벌판. 진한 핏빛이 물들인 사막과 모래 바람은 그야말로 지옥을 방불케 한다. 그 황혼 속으로 가물가물 하나의 흑점이 북쪽을 향하고 있다. 끝없는 광야의 사막을....... 멈출 듯, 이어지면서 북쪽을 향하고 있다.
모래구릉, 무저유사(無底流沙), 모래폭풍 속을 횡단하고 있는 흑점은 설 무영이다. 지친 발걸음이 진흙 위를 걷듯이 그는 걸어가고 때로는 경공을 펼쳐 사막의 바람을 가르고 간다. 그런데, 홀연 발밑이 무너지며 스르륵 빠져들었다.
"........!?"
그뿐만 아니라, 모래 속의 강력한 힘이 그의 몸을 무서운 기세로 빨아 내리는 것이었다. 신폭쾌선공(神瀑快仙功)을 펼쳐 몸을 솟구쳤다.
콰르르르........!
사야를 가르는 먼지를 일으키며 모래 구릉이 무너져 내려갔다. 또 다시 몰아치는 모래폭풍.
"음......!"
설 무영의 몸은 폭풍 속의 모래로 인하여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이 엄습한다.
(가야 한다! 내 몸이 천 갈래 만 갈래 찢길지언정......)
어떤 무공도 삼켜 버릴 듯이 모래사막의 광기는 그칠 줄 모른다. 그의 내공도 소진 되어 가고 있다. 그는 휘적휘적 무의식적인 도법으로 앞을 향해 갈 뿐이다. 그의 마음을 알았는지, 아니면 그의 끈기에 지쳤는지 바람이 잦아지고 있다.
그런데 신기루(蜃氣樓)인가? 환상인가?
"어머니…!"
어머니의 인자한 모습이 저 멀리서 설 무영을 손짓한다. 자애로운 자태로 그를 바라보는 어머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갑자기 피를 토했다.
"으 흐흑…! 어, 어머니.......!"
그는 절규하고 있다. 내장을 온통 뒤집어 놓을 듯 그의 가슴은 들끓고 있다.
"아버지…! 아버지~! 흐 흐흑!"
아버지의 모습이다. 설무영이 애타게 부르는 아버지가 오공에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있다.
"안 돼~! 안돼요…! 커 억......!"
그의 뇌리에는 백팔번뇌(百八煩惱)가 들끓고,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인간군상(人間群像)이 오락가락 하였다. 비틀거리던 그의 몸이 모래위에 쓸어졌다.
(어머니…! 아버지.....!)
내공이 소진된 그의 의식이 가물가물 꺼지고 있었다.
"쉬 이이잉...!"
모래 바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지를 휩쓸고 있었다. 오늘도 어제도....... 몇 겁의 세월을 지나온 모래 바람은 쉬지 않고 등격리 사막을 휩쓸고 있었다.
어느덧 잔잔해진 모래 폭풍. 얼마의 시간이 흘렀던가.
설 무영의 손....,.. 그리고 발이 꿈틀 거리고 있었다. 단 한 움큼의 숨만 붙어 있어도 모질게 살아나야 하는 끈질긴 생명, 그 자체도 고통인 것이다. 그가 몸을 일으켰다.
".......!?"
모래 바람에 가렸던 시야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시야 멀리, 사막의 끝이런가. 나무와 작은 숲이 보이기 시작했다. 잠시 운기조식으로 기도를 회복한 그가 숲으로 다가갔다. 지친 몸을 쓰러지듯이 나무 밑에 주저앉았다. 설 무영이 긴 숨을 내쉬려는 순간.
"흐흐흐...."
"크크 흐…! 애송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공기를 가르고 음침한 괴소가 스산하게 흘러왔다. 동시에 숲속에서 세 명의 인영이 머리를 산발한 유령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설 무영은 흠칫 놀라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모두 전신에 가죽옷을 걸친 괴인들이었다. 그들의 안색은 모두 창백하고 전신이 묵빛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서 얼어붙을 것 같은 한기가 흘러 나왔다.
(무서운 한기다! 거리가 십여 장이나 떨어졌는데......?)
헌데 더 더욱 놀라운 현상이 벌어졌다. 세 괴인이 지나오는 오 장 근처는 모두가 새하얀 서리로 뒤 덮이고 있었다.
"스스스....!"
설 무영은 다가오는 그들에게 침중한 목소리를 뱉어냈다.
"다가오지 마라…!"
"우리 눈앞에 나타난 자는 죽는다.......!"
세 괴인은 설 무영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장 앞으로 더 다가서고 있었다.
"너희들이 누군데...?"
"천황혼마전(天荒魂魔殿)의 황마삼두(荒魔三頭) 어른이다!"
세 괴인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들이 누구인가? 대막 천황혼마전에서 서열 십위를 다투는 자들이었다. 그들의 음성은 전혀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찬물을 뒤집어 쓴 듯 소름이 끼쳐왔다. 설 무영은 그들의 말을 되새기며 차갑게 내 뱉었다.
"황마삼두…!? 왜 날 죽이려 하지......?"
"정말 멍청이군! 우리 금단 구역을 침범했으니까, 죽어야지..."
어이없는 괴물들의 말이었다. 설 무영이 냉소를 터트리며 양다리를 버티고 우뚝 섰다.
"그렇다면! 죽여 봐라~!"
설 무영은 바짝 긴장한 채 진력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 그러나 황마삼두가 볼 때 설 무영은 허허실실(虛虛實實) 무방비의 자세이다.
"죽음을 자초하는군.…! 흐흐흐......."
차디찬 음성을 뱉어낸 황마삼두의 움직임은 점점 빨라졌다. 잠시 후에는 그들의 모습이 육
안으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스 스스...스슥!"
그들이 움직이는 주변이 무서운 한기로 뒤덮여져 갔다. 허나 설 무영이 극한 한기에도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는 지체인 것을 그들은 모른다. 한순간 누군가의 음침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흐흐흐…! 죽어랏~!"
동시에 황마삼두 중 한 명이 무서운 속도로 허공을 솟구치며 공격해 왔다.
"......!"
설 무영은 용수갑을 착용한 우수로 일장을 맞받아쳤다.
"꽈르릉...."
장공과 장공이 부딪치는 폭음이 숲을 흔들며 울려 퍼졌다. 설 무영은 전신이 가볍게 흔들림을 느꼈다. 이어 상대를 바라보니 원 위치에서 회전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황마삼두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 입가에는 조소가 흐르고 있었다. 설 무영의 일장에도 견딜 수 있다면 그들은 삼 갑자 이상의 내공 이상을 지닌 자들이다.
(만만치 않군.~!)
"흐흐흐…! 애송이 놈! 그런 잔재주로.......흐흐흐~!"
황마삼두의 괴소와 함께 그들의 몸에서 나오는 소용돌이가 설 무영을 향해 몰려왔다.
"헛...!"
피부를 터트릴 듯이 무서운 한기였다. 설 무영의 눈동자에 불꽃이 활활 타 올랐다.
"월(月)...륜(輪)...탈(脫)...광(光)!"
설 무영이 구결을 뇌까리며 일장을 내 저었다. 그의 몸에서 십여 개의 둥근 달빛 같은 강기가 맴돌며 황마삼두의 몸을 휘감아 나갔다.
구~우웅!
무시무시한 파공성이 허공을 갈랐다. 천지가 온통 장력에 휘 말렸다. 그 장력은 곧장 황마삼두의 새하얀 한기를 향해 쏘아져 갔다. 한데 이럴 수가 있는가? 장력과 한기가 부딪치는 순간 설 무영은 엄청난 반탄력을 느꼈다.
(이....이런.......!)
그가 당황하며 주춤거리는 찰나,
"퍼, 퍼...펑.....!"
연이은 파공음과 함께 한기의 줄기가 설 무영의 어깨에 격중 되고 말았다.
"으…으윽!"
설 무영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토해냈다. 변황의 마공(魔功)이 이런 지경으로 강한 줄은 설 무영이 미처 몰랐던 것이다. 한기에 밀려 주춤 물러난 그는 자신의 어깨를 바라보았다. 어깨부분의 옷이 너덜너덜 떨어져 가루가 되고, 새하얀 서리가 뒤덮여 있었다.
(이.......이럴 수가…! 용수갑의 위력은 곱절이거늘......?)
그가 경악하는 순간 황마삼두의 음침한 광소가 들려왔다.
"꼬마야! 네놈을 영원 불사의 생강시(生 屍)로 만들어 주마~! 흐흐흐!"
황마삼두가 펼치는 것은 그들 삼인이 자랑하는 황마귀무진(荒魔鬼霧陣)이었다. 자못 득의에 찬 그들의 주변에 짙은 냉기의 서리가 뿜어져 나왔다. 설 무영의 짙은 검미가 한가운데로 몰렸다. 아울러 설 무영의 용수갑에서 털컥! 하고 묵검이 빠져 나왔다. 그가 용상검(熔霜劍)을 빼어든 것이다.
속전속결(速戰速決), 셋을 상대로 오래 끌면 불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 무영의 몸이 흑무로 변하며 허공에서 한 바퀴 회전을 하였다.
"탄(彈)...비(飛)...천(天)!"
설 무영의 전신에서 맹렬한 잠경이 일어나고 삽시간에 그의 전신은 수많은 빛의 칼날로 뒤덮였다. 마치 온몸에 눈부신 빛의 검날을 품은 듯하다. 아울러 그의 전신으로 부터 수많은 검들이 노도와 같은 검풍으로 황마삼두의 한기류의 장막 속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푸 스스스....!
마치 시뻘겋게 달군 쇠가 찬물 속에 담기듯이 듯 괴이한 음향이 들려왔다. 동시에 요란한 진동과 함께 뿌연 증기가 허공으로 퍼져 나가며 차츰 엷어졌다. 이어서 벼락이 내리치는듯한 검명(劍鳴)이 들려왔다.
쩌쩌쩡...! 번쩍....!
소나기 같이 쏟아져 간 검기가 한마삼두의 몸통을 쪼개갔다.
"으…악!"
"크…악!"
두 마디의 처절한 단발마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한마삼두의 두 시신이 선혈이 낭자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적막이 흘렀다.
"으으으……."
살아남은 한마삼두 중 괴두가 일어나 앉았다. 그의 오른팔이 잘라져 나간 어깨에서는 피가 콸콸 쏟아졌다. 괴두는 유령같이 다가오는 설 무영을 바라보며 뇌까렸다.
"우리 한마삼두가 당하다니...?"
".......!"
괴두를 향해 설 무영이 뚜벅뚜벅 다가왔다. 설 무영의 검은 그림자가 괴두의 전신에 짙게 드리웠다. 다가오는 설무영을 피해 뒷걸음질하며 괴두가 뇌까렸다.
"지옥 사…사신(死神)…!? 넌 누구냐?"
피가 흐르는 어깨를 감싼 채 한마삼두가 말을 더듬거렸다. 설 무영을 바라보며 치뜬 그의 눈동자는 경악하고 있었다. 실로 경천동지할 설 무영의 무공이었다. 한마삼두가 누구인가? 천황혼마전의 서열을 다투는 마도들이 아닌가? 그러나 설 무영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답은 간단하였다.
"무(霧)…영(影)!"
"무…영…?"
단 두 마디를 되 내이는 괴두의 가슴을 밟고 선 설 무영이 물었다.
"묻겠다! 누가 천혼적마신장(天魂赤魔神掌)을 쓰느냐?"
"그…그건......."
한마삼두의 두 눈에 광채가 흘러 나왔다. 그의 눈동자는 회광반조(廻光反照), 죽기 전의 눈동자였다. 눈을 치떴던 한마삼두는 대답도 못하고 힘없이 머리를 모로 떨어트렸다.
(천혼적마신장(天魂赤魔神掌)에 대해 알았어야 하는 건데.......)
설 무영은 미동도 않은 채 서 있을 뿐이다. 그는 알아 낼 것을 못 알아 낸 아쉬움에 미련을 갖고 있을 때였다.
"흐흐흐…! 젊은 놈이 대단하군.~!"
".......?"
설 무영이 이제까지 느껴 보지 못한 중후한 내공이 실린 목소리였다. 허지만 그가 보는 시야에는 아무도 없었다. 일백 장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설 무영의 온 신경이 긴장하고 있었다. 내공이 심후한 고수는 고수를 직감(直感)으로 알 수 있다.
(대단한 자(者)다. 그러나 모습은 안 보인다.......)
그러나 설 무영은 이내 알 수 있었다. 백여 장 멀리서 부터 순식간에 다가오는 상대는 적어도 삼 갑자 이상의 내공을 갖은자이었다. 상대의 신법은 신법이라기보다는 흐름이다. 상대의 발밑에는 적운(赤雲)이 흐르고 있어 마치 적운을 타고 다니는 듯 보였다.
"하하하하…!"
쩌렁쩌렁한 웃음을 토해 놓으며 다가선 자의 나이는 팔십여 세에 달해 보이나 아직도 피부가 젊은 사람처럼 탄력이 있다. 괴노(怪老)는 피부색이 짙은 몽골인(蒙古人)이었다. 몸이 마르고 설 무영보다 주먹 하나는 키가 더 큰 체격이다. 어깨와 팔에 가죽을 댄 백포를 걸친 모습에서 사악한 분위기가 흘렀다.
뒤를 이어 이십여 명의 피의를 걸친 괴인들이 나타나 설 무영을 빙 둘러 쌌다. 그들 모두 피부색이 짙은 색목인 이었다. 괴노(怪老)는 귀밑까지 쭉 찢어진 눈으로 쓸어져 있는 황마삼두의 시신을 둘러보았다.
"황마삼두가 이 지경으로 당할 수 있다니....?"
".........?"
설 무영은 괴노의 태도에 잔득 경각심을 갖고 쳐다보았다. 괴노의 음산한 눈초리가 설 무영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괴노의 쭉 찢어진 눈초리가 더욱 치켜 올라갔다.
"젊은이는 어디서 온 누구냐?"
설 무영을 사뭇 문초하는 듯이 들리는 어조였다.
".........."
그러나 설 무영은 묵묵부답이었다. 아니 다만 설 무영은 그들의 저의를 살피고 있는 것이다. 황마삼두를 죽인 이유를 묻는 것인지, 아니면 황마삼두를 죽인 대가로 목숨을 노리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다. 괴노의 옆에 서있던 키가 작고 머리를 산발한 괴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놈아! 천황마제(天荒魔帝)께서 물으시면 대답을 해야지...?"
괴인이 금시라도 설 무영에게 공격을 가할 듯하자, 괴노가 키 작은 괴인을 막아서며 파안대소를 하였다.
"하하하하......! 추래야(樞來耶)는 잠시 기다려라!"
".......!?"
천황마제라면 천황혼마전의 전왕(殿王) 파고로(巴枯露)였다. 머리 산발한 키 작은 괴인은 천황마제의 가신(家臣)인 소마제웅(小魔帝雄) 추래야. 그는 천황마제 못지않은 무공의 소유자였다. 단지 목숨을 부지하는 은혜를 입은 탓에 천황마제의 무장이 되어 있다.
천황마제는 변황의 늙은 여우로 변황의 나머지 삼패천도 그를 대하기를 꺼려할 만큼 음모술수가 간악한 자였다.
"젊은이는 중원에서 온 듯한데......?"
"맞소!"
설 무영의 퉁명스런 대답에 천황마제의 눈살이 기분이 상한 듯 찡그러졌다. 설 무영을 주시하던 천황마제의 눈빛이 일순간 음흉한 빛을 발하였다. 설 무영의 영준한 용모와 완벽한 균형의 골격에 호기심이 일어난 그는 내심 감탄하였다.
"허허…! 대단한 골격인걸......."
설 무영을 주시하던 천황마제는 정색을 하고 인자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의 미소 뒤에는 어딘가 모를 음흉한 사기(邪氣)가 일순간 지나갔다.
"하하하......! 본 마제가 젊은이의 잘잘못을 가리기 위함이 아니야...! 황마삼두를 잃은 게 아쉽기는 하지만......."
"......?"
설 무영은 세 명의 고수를 잃고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천황마제의 의도가 더욱 의심스러워졌다. 천황마제가 빙긋이 희소를 흘렸다.
"대신 젊은이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네......."
"......?"
"젊은이의 무공이 대단한 줄은 알지만, 시험해 보고 싶네...?"
"무공이라면 어떤 걸…?"
무공을 시험한다니, 갈수록 설 무영은 천황마제의 속셈을 알 수가 없었다.
"간단한 장(掌)을 사용하는 비무(比武)라면 괜찮겠는가......?"
설 무영에게 묻는 천황마제의 눈빛이 간사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설 무영은 장공으로 대결하는 비무라면 무슨 흉계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좋소…!"
"그럼, 젊은이가 먼저 초식을 전개하게 나!"
전황마제는 말을 하면서 힐끔 옆에 있는 추래야에게 눈짓을 하였다. 그러자 추래야를 비롯한 괴인들이 이십 여장을 뒤로 물러섰다. 그들의 행동을 눈여겨보던 설 무영은 우수를 뒤집어 초식을 펼쳤다.
"뇌(雷)전(電)최(催)심(心)...!"
우수의 용수갑에서 격공지공의 장력이 뻗어 나갔다. 그 빠른 장력이 허공을 가르며 순식간에 뇌성 번개를 일으켰다. 그 예측치 못한 위력에 얼굴색이 붉게 변한 천황마제의 양수에서 희뿌연 기류를 내뿜는 장풍이 쏟아져 나왔다.
"콰르르.....콰쾅...!"
두 사람의 도포가 휘날리고 주변의 모든 사물은 뿌연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주변의 사물들은 회오리 속으로 사라지고 흙먼지가 사라지자 십여 장내에는 모래땅으로 변해 있었다. 설 무영과 천황마제는 한걸음씩 뒤로 물러나 있었고 그들의 발밑이 움푹 패여 있었다. 의외라는 듯 설 무영을 바라본 천황마제가 억지웃음을 지었다.
"하하…! 역시 내가 보긴 잘 봤군. 대단한 잠룡이야~!"
".........!"
설 무영은 칭찬이 달갑지 않았으나 말 대신 두 손을 마주대고 예의 표시를 하였다. 천황마제의 눈빛은 올람으로 가득했다.
"혹시 젊은이가 사용한 초식이 태을선인(太乙仙人)의 건곤천무장(乾坤天武掌)이 아닌가? 실전된 그것이 어찌.......?"
"......!?"
설 무영은 흠칫 놀랐다. 어찌하여 변황에서 이미 오래전에 고인이 된 태을선인의 무공을 안다는 말인가? 간악한 자이지만 천황마제의 견식에 놀란 것이다.
"하하하…! 이 마제의 안목이 맞았군! 오래전 변황의 우리 선조께서 중원을 정벌할 때 그 노인의 건곤천무장에 당했으니까! 그러나 이제 건곤천무장 쯤이야......."
"......?"
"그러나 이제는 건곤천무장에 필적할 마공이 우리에게도 있으니!"
"......!"
말을 마친 천황마제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젊은이!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우리 천황궁(天荒宮)으로 가도록 하지~!"
설 무영은 그들의 동태를 살피며 머뭇거렸다. 어쨌든 그들에게서 천혼마혈공(天魂魔血功)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야 할 것이다. 머뭇거리던 그가 흔쾌히 대답을 하였다.
"좋소이다.…!"
설 무영은 그들을 따라갔다. 천황궁은 석산으로 이루어진 아이태산(阿爾泰山)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단애의 절벽에 있는 자연동굴을 깎아 인위적으로 만든 석전(石殿)이었다. 석전 안에는 여러 개의 석실로 꾸며져 있고, 그 규모가 석실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장대했다.------------------------------------------------
"이건........"
그러나 설 무영은 아직도 석연치 않은 쑥스러움에 말을 멈추고 전도련을 바라보았다. 전도련을 바라보는 설 무영의 눈빛은 백색요대에 관한 설명을 소류진에게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소류진과 설 무영을 번갈아 바라보는 전도련의 입가에 의미 있는 미소가 흘렀다.
(다녀오세요. 제가 있잖아요!)
전도련이 설 무영에게 전음을 전할 때 그의 몸은 벌써 자운암(姿雲庵)을 나서고 있었다. 무언(無言)의 눈빛이 그들 사이에는 통하고 있는 것이었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설 무영은 변황을 향해 경신술을 펼쳤다.
(애구! 내가 갈 길도 먼데.......무슨 팔자람......!)
그렇다! 그가 가야 하는 길. 누구도 예측불허의 길이 아닐 수 없다.
당연히 가야 할길, 막연한 길이지만 삼백 여년의 한을 풀어야 하는 운명의 길은 그를 기다리고 있다. 전혀 앞길을 예측할 수 없는 안개 속으로 그가 경공을 펼쳐 가고 있다.
신강(新彊) 이영사막(伊寧砂漠).
황혼이 지고 있는 끝없는 모래벌판. 진한 핏빛이 물들인 사막과 모래 바람은 그야말로 지옥을 방불케 한다. 그 황혼 속으로 가물가물 하나의 흑점이 북쪽을 향하고 있다. 끝없는 광야의 사막을....... 멈출 듯, 이어지면서 북쪽을 향하고 있다.
모래구릉, 무저유사(無底流沙), 모래폭풍 속을 횡단하고 있는 흑점은 설 무영이다. 지친 발걸음이 진흙 위를 걷듯이 그는 걸어가고 때로는 경공을 펼쳐 사막의 바람을 가르고 간다. 그런데, 홀연 발밑이 무너지며 스르륵 빠져들었다.
"........!?"
그뿐만 아니라, 모래 속의 강력한 힘이 그의 몸을 무서운 기세로 빨아 내리는 것이었다. 신폭쾌선공(神瀑快仙功)을 펼쳐 몸을 솟구쳤다.
콰르르르........!
사야를 가르는 먼지를 일으키며 모래 구릉이 무너져 내려갔다. 또 다시 몰아치는 모래폭풍.
"음......!"
설 무영의 몸은 폭풍 속의 모래로 인하여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이 엄습한다.
(가야 한다! 내 몸이 천 갈래 만 갈래 찢길지언정......)
어떤 무공도 삼켜 버릴 듯이 모래사막의 광기는 그칠 줄 모른다. 그의 내공도 소진 되어 가고 있다. 그는 휘적휘적 무의식적인 도법으로 앞을 향해 갈 뿐이다. 그의 마음을 알았는지, 아니면 그의 끈기에 지쳤는지 바람이 잦아지고 있다.
그런데 신기루(蜃氣樓)인가? 환상인가?
"어머니…!"
어머니의 인자한 모습이 저 멀리서 설 무영을 손짓한다. 자애로운 자태로 그를 바라보는 어머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갑자기 피를 토했다.
"으 흐흑…! 어, 어머니.......!"
그는 절규하고 있다. 내장을 온통 뒤집어 놓을 듯 그의 가슴은 들끓고 있다.
"아버지…! 아버지~! 흐 흐흑!"
아버지의 모습이다. 설무영이 애타게 부르는 아버지가 오공에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있다.
"안 돼~! 안돼요…! 커 억......!"
그의 뇌리에는 백팔번뇌(百八煩惱)가 들끓고,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인간군상(人間群像)이 오락가락 하였다. 비틀거리던 그의 몸이 모래위에 쓸어졌다.
(어머니…! 아버지.....!)
내공이 소진된 그의 의식이 가물가물 꺼지고 있었다.
"쉬 이이잉...!"
모래 바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지를 휩쓸고 있었다. 오늘도 어제도....... 몇 겁의 세월을 지나온 모래 바람은 쉬지 않고 등격리 사막을 휩쓸고 있었다.
어느덧 잔잔해진 모래 폭풍. 얼마의 시간이 흘렀던가.
설 무영의 손....,.. 그리고 발이 꿈틀 거리고 있었다. 단 한 움큼의 숨만 붙어 있어도 모질게 살아나야 하는 끈질긴 생명, 그 자체도 고통인 것이다. 그가 몸을 일으켰다.
".......!?"
모래 바람에 가렸던 시야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시야 멀리, 사막의 끝이런가. 나무와 작은 숲이 보이기 시작했다. 잠시 운기조식으로 기도를 회복한 그가 숲으로 다가갔다. 지친 몸을 쓰러지듯이 나무 밑에 주저앉았다. 설 무영이 긴 숨을 내쉬려는 순간.
"흐흐흐...."
"크크 흐…! 애송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공기를 가르고 음침한 괴소가 스산하게 흘러왔다. 동시에 숲속에서 세 명의 인영이 머리를 산발한 유령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설 무영은 흠칫 놀라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모두 전신에 가죽옷을 걸친 괴인들이었다. 그들의 안색은 모두 창백하고 전신이 묵빛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서 얼어붙을 것 같은 한기가 흘러 나왔다.
(무서운 한기다! 거리가 십여 장이나 떨어졌는데......?)
헌데 더 더욱 놀라운 현상이 벌어졌다. 세 괴인이 지나오는 오 장 근처는 모두가 새하얀 서리로 뒤 덮이고 있었다.
"스스스....!"
설 무영은 다가오는 그들에게 침중한 목소리를 뱉어냈다.
"다가오지 마라…!"
"우리 눈앞에 나타난 자는 죽는다.......!"
세 괴인은 설 무영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장 앞으로 더 다가서고 있었다.
"너희들이 누군데...?"
"천황혼마전(天荒魂魔殿)의 황마삼두(荒魔三頭) 어른이다!"
세 괴인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들이 누구인가? 대막 천황혼마전에서 서열 십위를 다투는 자들이었다. 그들의 음성은 전혀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찬물을 뒤집어 쓴 듯 소름이 끼쳐왔다. 설 무영은 그들의 말을 되새기며 차갑게 내 뱉었다.
"황마삼두…!? 왜 날 죽이려 하지......?"
"정말 멍청이군! 우리 금단 구역을 침범했으니까, 죽어야지..."
어이없는 괴물들의 말이었다. 설 무영이 냉소를 터트리며 양다리를 버티고 우뚝 섰다.
"그렇다면! 죽여 봐라~!"
설 무영은 바짝 긴장한 채 진력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 그러나 황마삼두가 볼 때 설 무영은 허허실실(虛虛實實) 무방비의 자세이다.
"죽음을 자초하는군.…! 흐흐흐......."
차디찬 음성을 뱉어낸 황마삼두의 움직임은 점점 빨라졌다. 잠시 후에는 그들의 모습이 육
안으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스 스스...스슥!"
그들이 움직이는 주변이 무서운 한기로 뒤덮여져 갔다. 허나 설 무영이 극한 한기에도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는 지체인 것을 그들은 모른다. 한순간 누군가의 음침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흐흐흐…! 죽어랏~!"
동시에 황마삼두 중 한 명이 무서운 속도로 허공을 솟구치며 공격해 왔다.
"......!"
설 무영은 용수갑을 착용한 우수로 일장을 맞받아쳤다.
"꽈르릉...."
장공과 장공이 부딪치는 폭음이 숲을 흔들며 울려 퍼졌다. 설 무영은 전신이 가볍게 흔들림을 느꼈다. 이어 상대를 바라보니 원 위치에서 회전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황마삼두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 입가에는 조소가 흐르고 있었다. 설 무영의 일장에도 견딜 수 있다면 그들은 삼 갑자 이상의 내공 이상을 지닌 자들이다.
(만만치 않군.~!)
"흐흐흐…! 애송이 놈! 그런 잔재주로.......흐흐흐~!"
황마삼두의 괴소와 함께 그들의 몸에서 나오는 소용돌이가 설 무영을 향해 몰려왔다.
"헛...!"
피부를 터트릴 듯이 무서운 한기였다. 설 무영의 눈동자에 불꽃이 활활 타 올랐다.
"월(月)...륜(輪)...탈(脫)...광(光)!"
설 무영이 구결을 뇌까리며 일장을 내 저었다. 그의 몸에서 십여 개의 둥근 달빛 같은 강기가 맴돌며 황마삼두의 몸을 휘감아 나갔다.
구~우웅!
무시무시한 파공성이 허공을 갈랐다. 천지가 온통 장력에 휘 말렸다. 그 장력은 곧장 황마삼두의 새하얀 한기를 향해 쏘아져 갔다. 한데 이럴 수가 있는가? 장력과 한기가 부딪치는 순간 설 무영은 엄청난 반탄력을 느꼈다.
(이....이런.......!)
그가 당황하며 주춤거리는 찰나,
"퍼, 퍼...펑.....!"
연이은 파공음과 함께 한기의 줄기가 설 무영의 어깨에 격중 되고 말았다.
"으…으윽!"
설 무영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토해냈다. 변황의 마공(魔功)이 이런 지경으로 강한 줄은 설 무영이 미처 몰랐던 것이다. 한기에 밀려 주춤 물러난 그는 자신의 어깨를 바라보았다. 어깨부분의 옷이 너덜너덜 떨어져 가루가 되고, 새하얀 서리가 뒤덮여 있었다.
(이.......이럴 수가…! 용수갑의 위력은 곱절이거늘......?)
그가 경악하는 순간 황마삼두의 음침한 광소가 들려왔다.
"꼬마야! 네놈을 영원 불사의 생강시(生 屍)로 만들어 주마~! 흐흐흐!"
황마삼두가 펼치는 것은 그들 삼인이 자랑하는 황마귀무진(荒魔鬼霧陣)이었다. 자못 득의에 찬 그들의 주변에 짙은 냉기의 서리가 뿜어져 나왔다. 설 무영의 짙은 검미가 한가운데로 몰렸다. 아울러 설 무영의 용수갑에서 털컥! 하고 묵검이 빠져 나왔다. 그가 용상검(熔霜劍)을 빼어든 것이다.
속전속결(速戰速決), 셋을 상대로 오래 끌면 불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 무영의 몸이 흑무로 변하며 허공에서 한 바퀴 회전을 하였다.
"탄(彈)...비(飛)...천(天)!"
설 무영의 전신에서 맹렬한 잠경이 일어나고 삽시간에 그의 전신은 수많은 빛의 칼날로 뒤덮였다. 마치 온몸에 눈부신 빛의 검날을 품은 듯하다. 아울러 그의 전신으로 부터 수많은 검들이 노도와 같은 검풍으로 황마삼두의 한기류의 장막 속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푸 스스스....!
마치 시뻘겋게 달군 쇠가 찬물 속에 담기듯이 듯 괴이한 음향이 들려왔다. 동시에 요란한 진동과 함께 뿌연 증기가 허공으로 퍼져 나가며 차츰 엷어졌다. 이어서 벼락이 내리치는듯한 검명(劍鳴)이 들려왔다.
쩌쩌쩡...! 번쩍....!
소나기 같이 쏟아져 간 검기가 한마삼두의 몸통을 쪼개갔다.
"으…악!"
"크…악!"
두 마디의 처절한 단발마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한마삼두의 두 시신이 선혈이 낭자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적막이 흘렀다.
"으으으……."
살아남은 한마삼두 중 괴두가 일어나 앉았다. 그의 오른팔이 잘라져 나간 어깨에서는 피가 콸콸 쏟아졌다. 괴두는 유령같이 다가오는 설 무영을 바라보며 뇌까렸다.
"우리 한마삼두가 당하다니...?"
".......!"
괴두를 향해 설 무영이 뚜벅뚜벅 다가왔다. 설 무영의 검은 그림자가 괴두의 전신에 짙게 드리웠다. 다가오는 설무영을 피해 뒷걸음질하며 괴두가 뇌까렸다.
"지옥 사…사신(死神)…!? 넌 누구냐?"
피가 흐르는 어깨를 감싼 채 한마삼두가 말을 더듬거렸다. 설 무영을 바라보며 치뜬 그의 눈동자는 경악하고 있었다. 실로 경천동지할 설 무영의 무공이었다. 한마삼두가 누구인가? 천황혼마전의 서열을 다투는 마도들이 아닌가? 그러나 설 무영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답은 간단하였다.
"무(霧)…영(影)!"
"무…영…?"
단 두 마디를 되 내이는 괴두의 가슴을 밟고 선 설 무영이 물었다.
"묻겠다! 누가 천혼적마신장(天魂赤魔神掌)을 쓰느냐?"
"그…그건......."
한마삼두의 두 눈에 광채가 흘러 나왔다. 그의 눈동자는 회광반조(廻光反照), 죽기 전의 눈동자였다. 눈을 치떴던 한마삼두는 대답도 못하고 힘없이 머리를 모로 떨어트렸다.
(천혼적마신장(天魂赤魔神掌)에 대해 알았어야 하는 건데.......)
설 무영은 미동도 않은 채 서 있을 뿐이다. 그는 알아 낼 것을 못 알아 낸 아쉬움에 미련을 갖고 있을 때였다.
"흐흐흐…! 젊은 놈이 대단하군.~!"
".......?"
설 무영이 이제까지 느껴 보지 못한 중후한 내공이 실린 목소리였다. 허지만 그가 보는 시야에는 아무도 없었다. 일백 장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설 무영의 온 신경이 긴장하고 있었다. 내공이 심후한 고수는 고수를 직감(直感)으로 알 수 있다.
(대단한 자(者)다. 그러나 모습은 안 보인다.......)
그러나 설 무영은 이내 알 수 있었다. 백여 장 멀리서 부터 순식간에 다가오는 상대는 적어도 삼 갑자 이상의 내공을 갖은자이었다. 상대의 신법은 신법이라기보다는 흐름이다. 상대의 발밑에는 적운(赤雲)이 흐르고 있어 마치 적운을 타고 다니는 듯 보였다.
"하하하하…!"
쩌렁쩌렁한 웃음을 토해 놓으며 다가선 자의 나이는 팔십여 세에 달해 보이나 아직도 피부가 젊은 사람처럼 탄력이 있다. 괴노(怪老)는 피부색이 짙은 몽골인(蒙古人)이었다. 몸이 마르고 설 무영보다 주먹 하나는 키가 더 큰 체격이다. 어깨와 팔에 가죽을 댄 백포를 걸친 모습에서 사악한 분위기가 흘렀다.
뒤를 이어 이십여 명의 피의를 걸친 괴인들이 나타나 설 무영을 빙 둘러 쌌다. 그들 모두 피부색이 짙은 색목인 이었다. 괴노(怪老)는 귀밑까지 쭉 찢어진 눈으로 쓸어져 있는 황마삼두의 시신을 둘러보았다.
"황마삼두가 이 지경으로 당할 수 있다니....?"
".........?"
설 무영은 괴노의 태도에 잔득 경각심을 갖고 쳐다보았다. 괴노의 음산한 눈초리가 설 무영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괴노의 쭉 찢어진 눈초리가 더욱 치켜 올라갔다.
"젊은이는 어디서 온 누구냐?"
설 무영을 사뭇 문초하는 듯이 들리는 어조였다.
".........."
그러나 설 무영은 묵묵부답이었다. 아니 다만 설 무영은 그들의 저의를 살피고 있는 것이다. 황마삼두를 죽인 이유를 묻는 것인지, 아니면 황마삼두를 죽인 대가로 목숨을 노리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다. 괴노의 옆에 서있던 키가 작고 머리를 산발한 괴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놈아! 천황마제(天荒魔帝)께서 물으시면 대답을 해야지...?"
괴인이 금시라도 설 무영에게 공격을 가할 듯하자, 괴노가 키 작은 괴인을 막아서며 파안대소를 하였다.
"하하하하......! 추래야(樞來耶)는 잠시 기다려라!"
".......!?"
천황마제라면 천황혼마전의 전왕(殿王) 파고로(巴枯露)였다. 머리 산발한 키 작은 괴인은 천황마제의 가신(家臣)인 소마제웅(小魔帝雄) 추래야. 그는 천황마제 못지않은 무공의 소유자였다. 단지 목숨을 부지하는 은혜를 입은 탓에 천황마제의 무장이 되어 있다.
천황마제는 변황의 늙은 여우로 변황의 나머지 삼패천도 그를 대하기를 꺼려할 만큼 음모술수가 간악한 자였다.
"젊은이는 중원에서 온 듯한데......?"
"맞소!"
설 무영의 퉁명스런 대답에 천황마제의 눈살이 기분이 상한 듯 찡그러졌다. 설 무영을 주시하던 천황마제의 눈빛이 일순간 음흉한 빛을 발하였다. 설 무영의 영준한 용모와 완벽한 균형의 골격에 호기심이 일어난 그는 내심 감탄하였다.
"허허…! 대단한 골격인걸......."
설 무영을 주시하던 천황마제는 정색을 하고 인자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의 미소 뒤에는 어딘가 모를 음흉한 사기(邪氣)가 일순간 지나갔다.
"하하하......! 본 마제가 젊은이의 잘잘못을 가리기 위함이 아니야...! 황마삼두를 잃은 게 아쉽기는 하지만......."
"......?"
설 무영은 세 명의 고수를 잃고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천황마제의 의도가 더욱 의심스러워졌다. 천황마제가 빙긋이 희소를 흘렸다.
"대신 젊은이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네......."
"......?"
"젊은이의 무공이 대단한 줄은 알지만, 시험해 보고 싶네...?"
"무공이라면 어떤 걸…?"
무공을 시험한다니, 갈수록 설 무영은 천황마제의 속셈을 알 수가 없었다.
"간단한 장(掌)을 사용하는 비무(比武)라면 괜찮겠는가......?"
설 무영에게 묻는 천황마제의 눈빛이 간사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설 무영은 장공으로 대결하는 비무라면 무슨 흉계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좋소…!"
"그럼, 젊은이가 먼저 초식을 전개하게 나!"
전황마제는 말을 하면서 힐끔 옆에 있는 추래야에게 눈짓을 하였다. 그러자 추래야를 비롯한 괴인들이 이십 여장을 뒤로 물러섰다. 그들의 행동을 눈여겨보던 설 무영은 우수를 뒤집어 초식을 펼쳤다.
"뇌(雷)전(電)최(催)심(心)...!"
우수의 용수갑에서 격공지공의 장력이 뻗어 나갔다. 그 빠른 장력이 허공을 가르며 순식간에 뇌성 번개를 일으켰다. 그 예측치 못한 위력에 얼굴색이 붉게 변한 천황마제의 양수에서 희뿌연 기류를 내뿜는 장풍이 쏟아져 나왔다.
"콰르르.....콰쾅...!"
두 사람의 도포가 휘날리고 주변의 모든 사물은 뿌연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주변의 사물들은 회오리 속으로 사라지고 흙먼지가 사라지자 십여 장내에는 모래땅으로 변해 있었다. 설 무영과 천황마제는 한걸음씩 뒤로 물러나 있었고 그들의 발밑이 움푹 패여 있었다. 의외라는 듯 설 무영을 바라본 천황마제가 억지웃음을 지었다.
"하하…! 역시 내가 보긴 잘 봤군. 대단한 잠룡이야~!"
".........!"
설 무영은 칭찬이 달갑지 않았으나 말 대신 두 손을 마주대고 예의 표시를 하였다. 천황마제의 눈빛은 올람으로 가득했다.
"혹시 젊은이가 사용한 초식이 태을선인(太乙仙人)의 건곤천무장(乾坤天武掌)이 아닌가? 실전된 그것이 어찌.......?"
"......!?"
설 무영은 흠칫 놀랐다. 어찌하여 변황에서 이미 오래전에 고인이 된 태을선인의 무공을 안다는 말인가? 간악한 자이지만 천황마제의 견식에 놀란 것이다.
"하하하…! 이 마제의 안목이 맞았군! 오래전 변황의 우리 선조께서 중원을 정벌할 때 그 노인의 건곤천무장에 당했으니까! 그러나 이제 건곤천무장 쯤이야......."
"......?"
"그러나 이제는 건곤천무장에 필적할 마공이 우리에게도 있으니!"
"......!"
말을 마친 천황마제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젊은이!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우리 천황궁(天荒宮)으로 가도록 하지~!"
설 무영은 그들의 동태를 살피며 머뭇거렸다. 어쨌든 그들에게서 천혼마혈공(天魂魔血功)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야 할 것이다. 머뭇거리던 그가 흔쾌히 대답을 하였다.
"좋소이다.…!"
설 무영은 그들을 따라갔다. 천황궁은 석산으로 이루어진 아이태산(阿爾泰山)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단애의 절벽에 있는 자연동굴을 깎아 인위적으로 만든 석전(石殿)이었다. 석전 안에는 여러 개의 석실로 꾸며져 있고, 그 규모가 석실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장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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