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문관(玉門關).
감숙성(甘肅省)에서 돈황(敦煌)과 등격리사막 (騰格里沙漠)으로 이르는 서역 교통의 요충지이다. 북쪽으로부터 불어오는 살을 도려내는 한풍과 눈보라 속에서 겨울은 깊어가고 있다. 중원의 겨울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특히 가난한 서민들에게는 시련과 깊은 한숨을 주는 계절이다. 혹한을 이겨낸 서민은 한해를 살았다는 마음에 만감이 교차한다.
옥문관에서도 인파가 들끓는 곳은 옥문현(玉門縣)으로 서역과 교역의 거점이다. 한풍과 눈보라 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옥문현의 거리는 세인들로 북적거린다. 한인(漢인), 몽고인(蒙古人),색목인(色目人), 남방인(南方人), 고려인(高麗人)까지도 일확천금의 꿈을 이루려는가? 아니면 천하 제일인의 몽상에 젖어 있는 것일까?
고루거각(高樓巨閣)사이를 걷는 세인들........
분주한 세인들 사이로 검은 흑립과 흑포(黑布)를 두르고 묵검을 맨 묵인이 있다. 주위를 둘러보던 묵인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길모퉁이 석벽(石壁)밑에 세인들이 모여 떠들고 있었다.
"와~아!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누군지 간이 배 밖에 나왔네!"
"그걸 팔면 작은 황실도 사겠다.!"
"한 번 만져만 봤어도..!."
"얘 끼! 이 사람아! 구경만 해도 좋겠네...!"
그들의 시선은 석벽에 붙은 방문(榜文)을 향하고 있었다. 묵인의 시선도 석벽으로 향하였다.
방(枋).
내방황금선녀상여원(來訪黃金仙女像如願).
내방도자불여죄(來訪盜者不如罪).
단지부여삼일(但只附與三日).
황금선녀상(黃金仙女像)을 가져오는 자에게는 소원을 들어 줌.
본 물건을 훔쳐간 자의 죄과를 묻지 않음.
단, 기간은 사흘임.
금화상군(金貨商君) 금원상(錦圓常) 백(伯)
옥문현 사거리에는 반점과 주루가 즐비하게 늘어 서있고 사람들의 왕래로 번잡하였다. 길 주변에 장사꾼들의 외침과 웅성거리며 모여드는 사람들.
매화반점(梅花飯店).
사거리에 위치한 반점으로 옥문현을 들리는 사람은 누구나 이곳을 알고 있다. 매화반점의 주인은 점소이로 시작하여 일약 주인이 된 궁철상(宮哲象)이다. 자식이 없는 전 주인 궁조민(宮朝敏)의 눈에 들어 양자가 되었다. 궁조민은 이름도 없는 유랑아를 받아들여 자신의 성씨를 물려주었다. 단지 심성이 선량하고 선견지명이 있어서라는 묘한 말을 남겼다.
궁조민이 죽고 나니 자연스럽게 궁철상이 매화반점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어린 나이에도 궁철상은 천운인지, 장사 수완이 좋아서인지 유산으로 물려받고 일 년 만에 재산을 두 배로 키웠다. 그리고는 십오 세나 나이가 어린 점소이 반금화(潘琴花)를 부인으로 삼았다. 아울러 주위의 건물을 사들이더니 기녀들을 모아 매화루(梅花樓)까지도 차렸다.
그런데 옥문현 세인들을 의문스럽게 하는 일이 발생했다. 궁철상이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진 것이었다. 단지 반금화에게 돌아 올 때까지 찾지 말라는 짤막한 서찰 한통만을 남겼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궁철상의 부인 반금화도 남편의 행방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
궁철상이 사라진 후 매화반점은 반금화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 평인들이 드나드는 매화반점의 일루(一樓)는 번잡하지만 고관대작들이 이용하는 이루(二樓)만해도 조용한 편이다. 층계로 올라가야하는 이루에는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소담을 나누고 있었다.
이때 세인들의 시선이 입구로 향했다. 검은 묵검을 등에 맨 묵인이었다. 흑립을 쓴 묵인의 용모는 보이지 않는다. 목인이 흘깃 실내를 돌아보고 창가 쪽 탁자에 자리 잡고 앉았다. 잠시 후 세인들은 묵인을 무시한 채 소담을 하기 시작했다.
"뭘 드릴깝쇼…? 헤헤헤......!"
창가 탁자로 가서 앉은 묵인에게 점소이가 다가가서 너스레를 떤다. 주인을 닮았는지 점소이의 웃음소리가 간사하기까지 하다.
"죽향주와.... 만두!"
묵인은 무뚝뚝한 말소리로 주문을 하였다.
"네에!....손님...잠시만 기다려 주세요....헤헤헤...."
연신 허리를 구부려 절을 하며 점소이가 사라졌다. 묵인이 흑립을 벗어 탁자에 올려놓았다. 흑립 속에서 맑고 깊은 눈동자에 청기가 풍기는 준수한 청년의 용모가 나타났다. 흑색 영웅건을 질끈 매고 이십 세 미만의 약관으로 보이는 청년, 개방의 만개(滿芥) 엽상진(葉霜進)을 찾아 나선 설 무영이었다.
무공을 익힌 후 중원을 향한 첫걸음, 불망객과 헤어진 그는 일사천리(一瀉千里)로 자신이 살던 이곳을 향해 달려왔다. 그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가는 세인의 무리들, 그 보이지 않는 공간속에 그의 부모가 원귀가 되어 헤매고 있을 것이다.
그의 가슴은 북받치는 감정으로 들끓고 있다. 그때 그의 귓가에 사뭇 시비조의 앙천광소가 들려왔다.
"허허…! 요즈음 세상이 소란하니, 검을 매고 거들먹거리는 놈들이 많아~!"
이남일녀가 앉은 맞은편 탁자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설 무영을 향한 말이 틀림없었다. 허나 설 무영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설 무영은 이미 그들을 알고 있었다.
그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모란장원(牧丹莊園)의 장주인 소상확(昭翔確)의 자제인 소금호(昭錦虎)와 소류진(昭流珍), 그리고 모란장원의 사대 호법 중에 일인 서호대장(西虎臺長), 감숙지역의 세인들은 모란장원의 가솔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황실의 인척이라는 소문도 있지만 모란장원의 재력 또한 대단하다. 또한 모란장원의 독특한 독가무공(獨家武功)은 그 위세가 용맹하기 그지없었다. 장주 소상확은 두 남매를 금직이나 애지중지 하였다. 소상확이 자식 복이 있어서 있어서였는지 두 남매가 모두 남다른 지체였다.
소상확의 영식이자 소장주인 소금호는 호골(虎骨)이었고, 소류진은 여자로서 드문 순음천강지체(純陰天剛之體)였다. 순음천강지체는 남자로서 말하면 용골호형지체보다 한 단계 위였다. 그러나 아들을 선호(選好)하고 딸을 천시(賤視)하는 사상에서 비롯된 아들에 대한 욕심이 생긴 소상확은 거금을 들여 소금호에게 영약들을 복용시켰다. 허지만 근본적 태생에서부터 근원(根源)이 깊은 소류진의 무공이 소금호를 항상 앞섰다.
천상확의 욕심에 애지중지 키워진 소금호는 출중한 용모에 비해 성품이 포악스러웠다. 없는 사람을 버러지 취급하였고, 마음에 안 들면 폭언과 폭행을 밥 먹듯 하였다. 설 무영이 어찌 잊을 수 있는가. 천금호로부터 버버리라고 천시 받던 아픔을........
같은 핏줄을 나누었지만 소류진은 달랐다. 설무영과 같은 나이 또래로 소금호의 성품과는 달랐다. 심성이 고운 그녀는 천대받는 약자를 보면 측은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하여 가난한 사람을 보면 은자를 주기도 하고, 병든 사람을 손수 의원에게 치료 받게도 하는 선행으로 세인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소류진은 설난미화(雪蘭美花)라는 별호가 무색하게 하는 미모 또한 출중하였다. 윤기가 흐르는 백옥 같은 피부에 옥잠화를 연상케 하는 봉옥, 손으로 빚은 상아 같은 콧날, 분분이 날아드는 나비같이 나긋한 자태(姿態). 가히 절세가인(絶世佳人)이라 할 수 있다.
소금호와 소류진의 시선이 설 무영에게 머물러 있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모습인데.......!?"
그들은 동시에 설 무영의 용모에 의아심을 가졌다. 그의 관옥(冠玉)같이 빛나는 얼굴, 짙고 검은 눈썹이 귀까지 뻗었고, 우뚝 솟은 코와 투명한 듯이 붉은 입술, 오관이 반듯한 영준한 모습, 허나 지극히 청기함속에 냉막함이 깃들어 있다. 언제 어디선가 본 듯 낯이 익었다.
"누구지........?"
소금호는 공연히 울화가 치밀었다.
"뭐야? 애송이가 무인 흉내를~!? 나 참 더러워서…! 훽…!퉤~!"
소금호가 뱉은 침이 설 무영의 발밑에 떨어졌다.
"............!"
설 무영은 무관심한 듯 미동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건너편에 몰려 앉은 다섯 명의 청색도포의 사내들이 천금호를 힐끗 쳐다봤다.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잠시 그들에게서 살기가 흘렀다. 그러나 다시 그들은 반점의 분위기에 무관심하다는 듯 그들의 소담에 몰두했다.
설무영은 청포의 사내들에게 심후한 기도가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에게서 적어도 일 갑자 이상의 내공이 있음을 느꼈다. 좌측 창가에는 일남삼녀가 앉아 있다가 소금호를 주시했다.
그런데 세 명의 여인 모두 월하의 선녀처럼 미모가 빼어났다. 세인들이 중원삼미(中原三美)라 일컬을 만큼 뭇 사내들의 간장을 녹일 자태를 갖는 여인들이었다.
취라백궁(就羅帛宮)의 궁주. 취선진후(就扇眞后)의 수제자이며 용란궁(龍卵宮) 궁제(宮帝) 진제송(振濟松)의 영애 취선옥녀(就扇鈺女) 진소랑(振笑浪).
용란궁(龍卵宮) 궁제(宮帝) 진제송(振濟松)의 영애 용선옥면(龍扇玉面) 진소이(振笑姨).
용란궁(龍卵宮) 가신(家臣) 수호광(壽昊光)의 영애 은하비선(銀霞妃嬋) 수여빈(壽汝嬪).
세 명의 여인들은 각기 옥석 같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진소랑은 버들가지처럼 가녀린 허리와 날렵한 몸매, 진소이는 귀엽고 깜찍한 외모, 수여빈은 통통하면서도 선정적인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진소랑은 진소이 보다 두 살 위의 자매였다. 나이가 가장어린 진소이가 앙칼스럽게 뇌까렸다.
"모란장원의 아이들 아냐?"
"소이야! 쓸데없는 데에 참견하지 마!"
진소이는 성격이 온후한 진소랑에 비해 성격이 날카롭고 도도하기 짝이 없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진소랑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진소이는 비소를 터트렸다.
"피이~! 뭐가 두려워서......!"
"......!"
두 여인의 대화와는 무관하게 설 무영을 주시하는 수여빈의 눈빛이 반짝였다. 아직은 약관으로 보이는 설 무영의 비범한 인상을 풍기는 완벽한 균형의 골격과 용모에 호기심이 일어난 것이다.
"뭘 그렇게 보니?"
진소랑이 수여빈의 손을 잡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
수여빈의 봉옥이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붉게 물들었다. 진소랑과 수여빈은 방년 십팔 세의 동갑내기였다. 진소랑도 수여빈이 바라보던 창가로 시선을 향했다. 영준한 모습에 청기(淸氣)한 용모, 웅위(雄威)한 풍도의 설 무영의 모습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진소랑의 눈빛이 반짝였다.
"넌 뭘 보니...?"
이번에는 수여빈이 짓궂은 표정으로 미소를 띠며 진소랑의 허리를 건드렸다. 그녀들의 옆에 앉은 이십대의 청년도 묵묵히 설 무영을 처다 보았다.
청년의 이름은 천검성(天劍城) 성주 천검성왕(天劍城王) 능치성(凌治成)의 영식 능서문(凌瑞雯)이다. 능서문은 진소이와 그들 부모에 의해 혼인하기로 되어 있는 사이였다. 그때 또 다시 소금호의 높은 언성이 들려왔다.
"뭐야? 거들먹거리는 꼴이란…! 훽, 퉤!"
소금호가 설무영을 향하여 다시 침을 뱉었다.
"오빠! 그러지 마세요...."
완전히 설 무영을 무시하며 시비조인 소금호의 거친 행동을 말리는 소류진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금호가 목청을 높였다.
"아니꼽고 더러워서 못 봐주겠네......."
잠시 후, 점소이가 주문한 음식을 설 무영의 탁자에 올려놓았다. 만두에서 김이 서렸다.
"맛있게 드십시오! 헤헤....돈육으로 만든 특별 안주를 더 들였으니....."
이때, 탁자를 두드리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쾅…! 덜그락~!
"이봐... 점소이!"
외침과 함께 소금호 앞에 있는 탁자위의 음식그릇이 바닥으로 와그르르 쏟아졌다. 게슴츠레한 실눈으로 점소이가 부리나케 그에게 달려갔다.
"네! 네~! 손님! 무슨 일을....."
겁에 질린 듯 점소이의 표정이 굳어있다.
"나! 소공자를 뭘 로 알아? 여기는 손님 차별 대우하나.......?"
"무슨 말씀이신지.....!?"
소금호의 기세가 등등 하였다.
"왜 내게는 특별 안주를 안 주는 거야!"
"그건 저쪽분이 처음 온 손님이라서........"
점소이는 연신 허리를 구부리며 어쩔 줄을 모르며 소금호의 눈치를 살폈다. 고슴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야! 이 새끼가......"
소금호가 탁자위의 목저(木著)를 점소이에게 던졌다.
"피 이~잉…!"
아니 점소이에게 던지는 척 했을 뿐이다. 그의 내공이 실린 목저(木著)는 설 무영에게 던져 진 것이다. 탄월비적(彈月飛適)의 수법으로 점소이의 귀밑을 지나간 목저는 설 무영의 명문혈(命門穴)을 향해 날아갔다. 그런데 소금호가 내심 도리어 놀랬다.
“음…!”
쾌속 강력하게 쏘아져 간 목저는 설 무영의 몸 가까이에서 툭! 하고 힘없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다. 소금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소금호는 고가(高價)의 영약을 섭취하여 일 갑자의 내공으로 단련된 몸이었다. 십성의 공력이 실린 목저가 무력하게 바닥에 떨어졌다니.......
반점 안에 있던 세인들도 경이로운 눈으로 설 무영을 바라봤다. 설 무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술잔을 기우리고 있었다. 그는 건곤자전강(乾坤紫電 )을 일으켜 소금호의 목저의 강기를 무위시켰던 것이다. 만약 설 무영이 살생의 의도가 있어 그 자신의 내공이 실린 반탄강기로 목저를 되돌려 버렸다면, 소금호는 적어도 신체에 구멍을 뚫려 피를 흘리는 지경을 당했을 것이다.
설 무영도 내심 자신의 공력에 놀라고 있었다. 강호에 나와서 처음으로 시전한 자신의 무공의 강기가 대단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 무영에게 풍기는 것은 무형기도(無形氣道), 전혀 기도를 느낄 수 없었다.
"저토록 강한 호신강기라니....? 나의 공력을 무위로 만들다니....."
소금호는 의아스런 마음으로 긴장하였다. 반점 안의 세인들이 경악하여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또한 소류진의 까만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아! 그 소년......! 그런데 무공을.....?"
소류진은 미심적지만 헌헌장부(軒軒丈夫)로 변한 설 무영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거리를 떠돌던 벙어리 걸인 소년의 눈빛이 아니었던가? 소류진은 의구심으로 설 무영을 주시하였다.
"내 눈이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틀림없이 버버리 소년…! 그런데, 변했다......! 많이......."
"흥!........"
소금호가 비소를 흘렸다. 그는 자신의 무공이 무위로 끝난 것에 울화가 치밀었다. 설 무영의 호신강기에 놀라기도 했지만, 여지없이 자존심이 땅에 떨어진 것에 분통이 터졌다. 벌겋게 달아오른 소금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였다.
"바드득~! 제법 이군…! 그럼, 어디 이번에는........"
손안에 목저를 한 움큼 쥔 소금호의 옷소매가 펄럭이었다.
스... 스.... 쉬이잉!
소금호의 손안의 목저가 한꺼번에 벼락같이 쏘아져 날아갔다. 점소이의 목 주변에서 날카로운 파공음이 일어났다.
"허 억~!음........"
기겁을 한 점소이가 뒷걸음치다가 풀썩! 바닥에 쓰러지고 목저는 순식간에 설 무영의 요혈을 노리고 날아갔다.
"어머.......!"
소류진의 가냘픈 신음성이 동시에 들렸다. 그녀는 그의 오라버니가 평소 난폭하다는 것은 알고있지만, 이정도로 악랄한 것은 처음 보았다. 그녀의 아버지 소상확도 아들 소금호가 모란장원(牧丹莊園)을 나설 때는 소류진을 동행하게 할 정도로 소금호의 난폭한 성심을 걱정할 정도였다.
"........!?"
허지만 여전히 설 무영은 무심무동(無心無動)의 지경이었고, 목저는 설 무영의 한자 가까이에서 후드득!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음.....!!"
소금호와 소류진을 비롯한 실내의 세인들은 눈앞의 광경에 놀라고 있었다. 반점 내는 침묵이 흘렀다. 무관심하던 청색도포의 무인들도 경이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
설 무영이 부스스 일어섰다. 그에게서 안개 같은 무거움이 실려 있었다.
"소금호..!"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나오듯 묵직한 설 무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의아스러움으로 가득한 소류진이 설 무영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벙어리 소년이었던 그가 말을 하고 있지 않는가. 소금호도 또 한 번 놀라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있었다. 어디인가 낯이 익은데 누구일까? 소금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건방진 놈! 어린놈이…! 이 어른의 함자를 함부로......."
그는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설 무영에게 잔혹한 살수를 가했다. 소금호는 양손을 뻗어 쌍룡뇌격(雙龍雷擊)의 수법으로 장력을 쏟아갔다.
콰쾅! 와장창!
요란한 소리와 함께 주위의 탁자와 의자가 부서져 바닥에 뒹굴었다.
"콰 당탕…!"
그러나 바닥에 벌렁 나동그라진 사람은 설 무영이 아니라 소금호. 그는 한 움큼의 피를 울컥 쏟아냈다. 오히려 설 무영의 반탄강기(反彈剛氣)에 그가 쓸어 진 것이다. 당황한 소금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설 무영을 응시했다. 설 무영은 덤덤한 표정으로 우뚝 버티고 서 있었다.
너무 강하다. 상대를 알아보지 못한 경솔함도 있지만, 소금호로서는 처음으로 당하는 패배다. 치욕을 안겨준 상대가 누구인가를 알고 싶다.
"너는…! 누구냐......!?"
소금호는 입가에 묻은 피를 주먹으로 쓸며 일어났다.
"무영(霧影)!"
말을 싫어하는 까닭일까. 단 한 마디뿐.
"무…영.......!?"
소금호의 머릿속에는 무영이라는 이름이 기억되어 있지 않는다. 설 무영은 절대강자(絶對强子)가 되기 전에 신분을 감추라는 백부의 가르침에 따라 이름만을 말했다. 또 한마디 설 무영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살생할 이유를 갖게 하지마라!"
"감히 소 장주를......."
이때, 일갈과 함께 회색도포가 펄럭이더니 도(刀)가 휘익! 섬광을 번뜩였다. 성품이 노호 같은 노인, 모란장원의 사대호법 중의 일인 서호대장(西虎臺長) 장욱진(張旭珍). 패천도(覇天刀) 하나로 중원을 종횡무진 누비던 도의 달인으로 모란장원에 안주한 칠십의 노인이다. 도강(刀 )이 설 무영의 허리를 두 동강 내려 수평으로 그어갔다.
"아!........"
외마디는 소류진의 앵두 같은 입술에서 흘러 나왔다. 설 무영에게서 흘러나온 강기 속에 장욱진의 도강이 튕겨나고 있었다. 모란산장의 독문무공인 목단살공(牧丹乷功)을 팔성이상 달성한 그녀였다. 그런 그녀로서도 위험을 느낄 수 있는 무공의 극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설 무영은 잠시 우수를 펼쳤다가 거두었을 뿐이다.
그것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어떤 동작이었는지 모르지만 분명히 검법이었다. 신검지경(身劍之境), 손을 검같이 썼단 말인가?
"쩔 그랑~!"
장욱진(張旭珍)의 패천도가 바닥에 떨어졌다. 아울러 장욱진은 선혈이 낭자한 오른쪽 어깨를 우수로 붙들고 비틀거렸다.
"우~욱!"
서호대장 장욱진은 간신히 왼팔로 탁자를 집고 서있었다.
"장 노야...!"
황급히 소류진이 장욱진의 몸을 부축하였다. 소류진의 경악스런 눈동자가 설 무영을 향했다. 그녀는 자신의 가솔이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순간 설 무영에게 신비스러움을 느꼈다.
스 르르렁....!
소금호가 가보(家寶)인 목단검(牧丹劍)을 빼들고 저벅저벅 설 무영의 앞에 다가섰다.
"좋다! 제법 이구나…!...... 너에게 이 어른과 검으로 상대할 수 기회를 주겠다. 검을 빼라~!"
소금호가 모란장윈의 가보인 모란검을 비켜 들고 한걸음 나섰다.
"살생을 하지 않게 하기를 바랐는데.........!"
그러나 혼잣말을 하듯이 읊조리는 설 무영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가소로운 놈…! 빈손으로 죽기를 원한다면......."
꼼짝도 하지 않는 설 무영을 바라보는 소금호의 눈빛에서 살기가 넘쳤다.
"만해창룡(萬海創龍)!"
소금호의 일갈과 함께 모란검에서 노도와 같은 검강이 일어 설 무영의 정수리를 쪼아갔다.
"........!"
설무영의 자세는 무방무공(無防無功)의 자세이다. 그러나 그에게서 홀연히 일어나는 무형검강(無形劍剛)을 소류진은 알고 있었다. 오라버니의 오기(誤氣)와 설무영의 허허실실(虛虛實實)! 허허실실의 속에 숨어있는 무궁무진한 변화가 소금호의 오기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감숙성(甘肅省)에서 돈황(敦煌)과 등격리사막 (騰格里沙漠)으로 이르는 서역 교통의 요충지이다. 북쪽으로부터 불어오는 살을 도려내는 한풍과 눈보라 속에서 겨울은 깊어가고 있다. 중원의 겨울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특히 가난한 서민들에게는 시련과 깊은 한숨을 주는 계절이다. 혹한을 이겨낸 서민은 한해를 살았다는 마음에 만감이 교차한다.
옥문관에서도 인파가 들끓는 곳은 옥문현(玉門縣)으로 서역과 교역의 거점이다. 한풍과 눈보라 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옥문현의 거리는 세인들로 북적거린다. 한인(漢인), 몽고인(蒙古人),색목인(色目人), 남방인(南方人), 고려인(高麗人)까지도 일확천금의 꿈을 이루려는가? 아니면 천하 제일인의 몽상에 젖어 있는 것일까?
고루거각(高樓巨閣)사이를 걷는 세인들........
분주한 세인들 사이로 검은 흑립과 흑포(黑布)를 두르고 묵검을 맨 묵인이 있다. 주위를 둘러보던 묵인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길모퉁이 석벽(石壁)밑에 세인들이 모여 떠들고 있었다.
"와~아!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누군지 간이 배 밖에 나왔네!"
"그걸 팔면 작은 황실도 사겠다.!"
"한 번 만져만 봤어도..!."
"얘 끼! 이 사람아! 구경만 해도 좋겠네...!"
그들의 시선은 석벽에 붙은 방문(榜文)을 향하고 있었다. 묵인의 시선도 석벽으로 향하였다.
방(枋).
내방황금선녀상여원(來訪黃金仙女像如願).
내방도자불여죄(來訪盜者不如罪).
단지부여삼일(但只附與三日).
황금선녀상(黃金仙女像)을 가져오는 자에게는 소원을 들어 줌.
본 물건을 훔쳐간 자의 죄과를 묻지 않음.
단, 기간은 사흘임.
금화상군(金貨商君) 금원상(錦圓常) 백(伯)
옥문현 사거리에는 반점과 주루가 즐비하게 늘어 서있고 사람들의 왕래로 번잡하였다. 길 주변에 장사꾼들의 외침과 웅성거리며 모여드는 사람들.
매화반점(梅花飯店).
사거리에 위치한 반점으로 옥문현을 들리는 사람은 누구나 이곳을 알고 있다. 매화반점의 주인은 점소이로 시작하여 일약 주인이 된 궁철상(宮哲象)이다. 자식이 없는 전 주인 궁조민(宮朝敏)의 눈에 들어 양자가 되었다. 궁조민은 이름도 없는 유랑아를 받아들여 자신의 성씨를 물려주었다. 단지 심성이 선량하고 선견지명이 있어서라는 묘한 말을 남겼다.
궁조민이 죽고 나니 자연스럽게 궁철상이 매화반점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어린 나이에도 궁철상은 천운인지, 장사 수완이 좋아서인지 유산으로 물려받고 일 년 만에 재산을 두 배로 키웠다. 그리고는 십오 세나 나이가 어린 점소이 반금화(潘琴花)를 부인으로 삼았다. 아울러 주위의 건물을 사들이더니 기녀들을 모아 매화루(梅花樓)까지도 차렸다.
그런데 옥문현 세인들을 의문스럽게 하는 일이 발생했다. 궁철상이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진 것이었다. 단지 반금화에게 돌아 올 때까지 찾지 말라는 짤막한 서찰 한통만을 남겼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궁철상의 부인 반금화도 남편의 행방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
궁철상이 사라진 후 매화반점은 반금화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 평인들이 드나드는 매화반점의 일루(一樓)는 번잡하지만 고관대작들이 이용하는 이루(二樓)만해도 조용한 편이다. 층계로 올라가야하는 이루에는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소담을 나누고 있었다.
이때 세인들의 시선이 입구로 향했다. 검은 묵검을 등에 맨 묵인이었다. 흑립을 쓴 묵인의 용모는 보이지 않는다. 목인이 흘깃 실내를 돌아보고 창가 쪽 탁자에 자리 잡고 앉았다. 잠시 후 세인들은 묵인을 무시한 채 소담을 하기 시작했다.
"뭘 드릴깝쇼…? 헤헤헤......!"
창가 탁자로 가서 앉은 묵인에게 점소이가 다가가서 너스레를 떤다. 주인을 닮았는지 점소이의 웃음소리가 간사하기까지 하다.
"죽향주와.... 만두!"
묵인은 무뚝뚝한 말소리로 주문을 하였다.
"네에!....손님...잠시만 기다려 주세요....헤헤헤...."
연신 허리를 구부려 절을 하며 점소이가 사라졌다. 묵인이 흑립을 벗어 탁자에 올려놓았다. 흑립 속에서 맑고 깊은 눈동자에 청기가 풍기는 준수한 청년의 용모가 나타났다. 흑색 영웅건을 질끈 매고 이십 세 미만의 약관으로 보이는 청년, 개방의 만개(滿芥) 엽상진(葉霜進)을 찾아 나선 설 무영이었다.
무공을 익힌 후 중원을 향한 첫걸음, 불망객과 헤어진 그는 일사천리(一瀉千里)로 자신이 살던 이곳을 향해 달려왔다. 그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가는 세인의 무리들, 그 보이지 않는 공간속에 그의 부모가 원귀가 되어 헤매고 있을 것이다.
그의 가슴은 북받치는 감정으로 들끓고 있다. 그때 그의 귓가에 사뭇 시비조의 앙천광소가 들려왔다.
"허허…! 요즈음 세상이 소란하니, 검을 매고 거들먹거리는 놈들이 많아~!"
이남일녀가 앉은 맞은편 탁자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설 무영을 향한 말이 틀림없었다. 허나 설 무영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설 무영은 이미 그들을 알고 있었다.
그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모란장원(牧丹莊園)의 장주인 소상확(昭翔確)의 자제인 소금호(昭錦虎)와 소류진(昭流珍), 그리고 모란장원의 사대 호법 중에 일인 서호대장(西虎臺長), 감숙지역의 세인들은 모란장원의 가솔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황실의 인척이라는 소문도 있지만 모란장원의 재력 또한 대단하다. 또한 모란장원의 독특한 독가무공(獨家武功)은 그 위세가 용맹하기 그지없었다. 장주 소상확은 두 남매를 금직이나 애지중지 하였다. 소상확이 자식 복이 있어서 있어서였는지 두 남매가 모두 남다른 지체였다.
소상확의 영식이자 소장주인 소금호는 호골(虎骨)이었고, 소류진은 여자로서 드문 순음천강지체(純陰天剛之體)였다. 순음천강지체는 남자로서 말하면 용골호형지체보다 한 단계 위였다. 그러나 아들을 선호(選好)하고 딸을 천시(賤視)하는 사상에서 비롯된 아들에 대한 욕심이 생긴 소상확은 거금을 들여 소금호에게 영약들을 복용시켰다. 허지만 근본적 태생에서부터 근원(根源)이 깊은 소류진의 무공이 소금호를 항상 앞섰다.
천상확의 욕심에 애지중지 키워진 소금호는 출중한 용모에 비해 성품이 포악스러웠다. 없는 사람을 버러지 취급하였고, 마음에 안 들면 폭언과 폭행을 밥 먹듯 하였다. 설 무영이 어찌 잊을 수 있는가. 천금호로부터 버버리라고 천시 받던 아픔을........
같은 핏줄을 나누었지만 소류진은 달랐다. 설무영과 같은 나이 또래로 소금호의 성품과는 달랐다. 심성이 고운 그녀는 천대받는 약자를 보면 측은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하여 가난한 사람을 보면 은자를 주기도 하고, 병든 사람을 손수 의원에게 치료 받게도 하는 선행으로 세인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소류진은 설난미화(雪蘭美花)라는 별호가 무색하게 하는 미모 또한 출중하였다. 윤기가 흐르는 백옥 같은 피부에 옥잠화를 연상케 하는 봉옥, 손으로 빚은 상아 같은 콧날, 분분이 날아드는 나비같이 나긋한 자태(姿態). 가히 절세가인(絶世佳人)이라 할 수 있다.
소금호와 소류진의 시선이 설 무영에게 머물러 있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모습인데.......!?"
그들은 동시에 설 무영의 용모에 의아심을 가졌다. 그의 관옥(冠玉)같이 빛나는 얼굴, 짙고 검은 눈썹이 귀까지 뻗었고, 우뚝 솟은 코와 투명한 듯이 붉은 입술, 오관이 반듯한 영준한 모습, 허나 지극히 청기함속에 냉막함이 깃들어 있다. 언제 어디선가 본 듯 낯이 익었다.
"누구지........?"
소금호는 공연히 울화가 치밀었다.
"뭐야? 애송이가 무인 흉내를~!? 나 참 더러워서…! 훽…!퉤~!"
소금호가 뱉은 침이 설 무영의 발밑에 떨어졌다.
"............!"
설 무영은 무관심한 듯 미동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건너편에 몰려 앉은 다섯 명의 청색도포의 사내들이 천금호를 힐끗 쳐다봤다.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잠시 그들에게서 살기가 흘렀다. 그러나 다시 그들은 반점의 분위기에 무관심하다는 듯 그들의 소담에 몰두했다.
설무영은 청포의 사내들에게 심후한 기도가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에게서 적어도 일 갑자 이상의 내공이 있음을 느꼈다. 좌측 창가에는 일남삼녀가 앉아 있다가 소금호를 주시했다.
그런데 세 명의 여인 모두 월하의 선녀처럼 미모가 빼어났다. 세인들이 중원삼미(中原三美)라 일컬을 만큼 뭇 사내들의 간장을 녹일 자태를 갖는 여인들이었다.
취라백궁(就羅帛宮)의 궁주. 취선진후(就扇眞后)의 수제자이며 용란궁(龍卵宮) 궁제(宮帝) 진제송(振濟松)의 영애 취선옥녀(就扇鈺女) 진소랑(振笑浪).
용란궁(龍卵宮) 궁제(宮帝) 진제송(振濟松)의 영애 용선옥면(龍扇玉面) 진소이(振笑姨).
용란궁(龍卵宮) 가신(家臣) 수호광(壽昊光)의 영애 은하비선(銀霞妃嬋) 수여빈(壽汝嬪).
세 명의 여인들은 각기 옥석 같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진소랑은 버들가지처럼 가녀린 허리와 날렵한 몸매, 진소이는 귀엽고 깜찍한 외모, 수여빈은 통통하면서도 선정적인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진소랑은 진소이 보다 두 살 위의 자매였다. 나이가 가장어린 진소이가 앙칼스럽게 뇌까렸다.
"모란장원의 아이들 아냐?"
"소이야! 쓸데없는 데에 참견하지 마!"
진소이는 성격이 온후한 진소랑에 비해 성격이 날카롭고 도도하기 짝이 없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진소랑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진소이는 비소를 터트렸다.
"피이~! 뭐가 두려워서......!"
"......!"
두 여인의 대화와는 무관하게 설 무영을 주시하는 수여빈의 눈빛이 반짝였다. 아직은 약관으로 보이는 설 무영의 비범한 인상을 풍기는 완벽한 균형의 골격과 용모에 호기심이 일어난 것이다.
"뭘 그렇게 보니?"
진소랑이 수여빈의 손을 잡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
수여빈의 봉옥이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붉게 물들었다. 진소랑과 수여빈은 방년 십팔 세의 동갑내기였다. 진소랑도 수여빈이 바라보던 창가로 시선을 향했다. 영준한 모습에 청기(淸氣)한 용모, 웅위(雄威)한 풍도의 설 무영의 모습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진소랑의 눈빛이 반짝였다.
"넌 뭘 보니...?"
이번에는 수여빈이 짓궂은 표정으로 미소를 띠며 진소랑의 허리를 건드렸다. 그녀들의 옆에 앉은 이십대의 청년도 묵묵히 설 무영을 처다 보았다.
청년의 이름은 천검성(天劍城) 성주 천검성왕(天劍城王) 능치성(凌治成)의 영식 능서문(凌瑞雯)이다. 능서문은 진소이와 그들 부모에 의해 혼인하기로 되어 있는 사이였다. 그때 또 다시 소금호의 높은 언성이 들려왔다.
"뭐야? 거들먹거리는 꼴이란…! 훽, 퉤!"
소금호가 설무영을 향하여 다시 침을 뱉었다.
"오빠! 그러지 마세요...."
완전히 설 무영을 무시하며 시비조인 소금호의 거친 행동을 말리는 소류진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금호가 목청을 높였다.
"아니꼽고 더러워서 못 봐주겠네......."
잠시 후, 점소이가 주문한 음식을 설 무영의 탁자에 올려놓았다. 만두에서 김이 서렸다.
"맛있게 드십시오! 헤헤....돈육으로 만든 특별 안주를 더 들였으니....."
이때, 탁자를 두드리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쾅…! 덜그락~!
"이봐... 점소이!"
외침과 함께 소금호 앞에 있는 탁자위의 음식그릇이 바닥으로 와그르르 쏟아졌다. 게슴츠레한 실눈으로 점소이가 부리나케 그에게 달려갔다.
"네! 네~! 손님! 무슨 일을....."
겁에 질린 듯 점소이의 표정이 굳어있다.
"나! 소공자를 뭘 로 알아? 여기는 손님 차별 대우하나.......?"
"무슨 말씀이신지.....!?"
소금호의 기세가 등등 하였다.
"왜 내게는 특별 안주를 안 주는 거야!"
"그건 저쪽분이 처음 온 손님이라서........"
점소이는 연신 허리를 구부리며 어쩔 줄을 모르며 소금호의 눈치를 살폈다. 고슴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야! 이 새끼가......"
소금호가 탁자위의 목저(木著)를 점소이에게 던졌다.
"피 이~잉…!"
아니 점소이에게 던지는 척 했을 뿐이다. 그의 내공이 실린 목저(木著)는 설 무영에게 던져 진 것이다. 탄월비적(彈月飛適)의 수법으로 점소이의 귀밑을 지나간 목저는 설 무영의 명문혈(命門穴)을 향해 날아갔다. 그런데 소금호가 내심 도리어 놀랬다.
“음…!”
쾌속 강력하게 쏘아져 간 목저는 설 무영의 몸 가까이에서 툭! 하고 힘없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다. 소금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소금호는 고가(高價)의 영약을 섭취하여 일 갑자의 내공으로 단련된 몸이었다. 십성의 공력이 실린 목저가 무력하게 바닥에 떨어졌다니.......
반점 안에 있던 세인들도 경이로운 눈으로 설 무영을 바라봤다. 설 무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술잔을 기우리고 있었다. 그는 건곤자전강(乾坤紫電 )을 일으켜 소금호의 목저의 강기를 무위시켰던 것이다. 만약 설 무영이 살생의 의도가 있어 그 자신의 내공이 실린 반탄강기로 목저를 되돌려 버렸다면, 소금호는 적어도 신체에 구멍을 뚫려 피를 흘리는 지경을 당했을 것이다.
설 무영도 내심 자신의 공력에 놀라고 있었다. 강호에 나와서 처음으로 시전한 자신의 무공의 강기가 대단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 무영에게 풍기는 것은 무형기도(無形氣道), 전혀 기도를 느낄 수 없었다.
"저토록 강한 호신강기라니....? 나의 공력을 무위로 만들다니....."
소금호는 의아스런 마음으로 긴장하였다. 반점 안의 세인들이 경악하여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또한 소류진의 까만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아! 그 소년......! 그런데 무공을.....?"
소류진은 미심적지만 헌헌장부(軒軒丈夫)로 변한 설 무영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거리를 떠돌던 벙어리 걸인 소년의 눈빛이 아니었던가? 소류진은 의구심으로 설 무영을 주시하였다.
"내 눈이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틀림없이 버버리 소년…! 그런데, 변했다......! 많이......."
"흥!........"
소금호가 비소를 흘렸다. 그는 자신의 무공이 무위로 끝난 것에 울화가 치밀었다. 설 무영의 호신강기에 놀라기도 했지만, 여지없이 자존심이 땅에 떨어진 것에 분통이 터졌다. 벌겋게 달아오른 소금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였다.
"바드득~! 제법 이군…! 그럼, 어디 이번에는........"
손안에 목저를 한 움큼 쥔 소금호의 옷소매가 펄럭이었다.
스... 스.... 쉬이잉!
소금호의 손안의 목저가 한꺼번에 벼락같이 쏘아져 날아갔다. 점소이의 목 주변에서 날카로운 파공음이 일어났다.
"허 억~!음........"
기겁을 한 점소이가 뒷걸음치다가 풀썩! 바닥에 쓰러지고 목저는 순식간에 설 무영의 요혈을 노리고 날아갔다.
"어머.......!"
소류진의 가냘픈 신음성이 동시에 들렸다. 그녀는 그의 오라버니가 평소 난폭하다는 것은 알고있지만, 이정도로 악랄한 것은 처음 보았다. 그녀의 아버지 소상확도 아들 소금호가 모란장원(牧丹莊園)을 나설 때는 소류진을 동행하게 할 정도로 소금호의 난폭한 성심을 걱정할 정도였다.
"........!?"
허지만 여전히 설 무영은 무심무동(無心無動)의 지경이었고, 목저는 설 무영의 한자 가까이에서 후드득!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음.....!!"
소금호와 소류진을 비롯한 실내의 세인들은 눈앞의 광경에 놀라고 있었다. 반점 내는 침묵이 흘렀다. 무관심하던 청색도포의 무인들도 경이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
설 무영이 부스스 일어섰다. 그에게서 안개 같은 무거움이 실려 있었다.
"소금호..!"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나오듯 묵직한 설 무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의아스러움으로 가득한 소류진이 설 무영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벙어리 소년이었던 그가 말을 하고 있지 않는가. 소금호도 또 한 번 놀라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있었다. 어디인가 낯이 익은데 누구일까? 소금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건방진 놈! 어린놈이…! 이 어른의 함자를 함부로......."
그는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설 무영에게 잔혹한 살수를 가했다. 소금호는 양손을 뻗어 쌍룡뇌격(雙龍雷擊)의 수법으로 장력을 쏟아갔다.
콰쾅! 와장창!
요란한 소리와 함께 주위의 탁자와 의자가 부서져 바닥에 뒹굴었다.
"콰 당탕…!"
그러나 바닥에 벌렁 나동그라진 사람은 설 무영이 아니라 소금호. 그는 한 움큼의 피를 울컥 쏟아냈다. 오히려 설 무영의 반탄강기(反彈剛氣)에 그가 쓸어 진 것이다. 당황한 소금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설 무영을 응시했다. 설 무영은 덤덤한 표정으로 우뚝 버티고 서 있었다.
너무 강하다. 상대를 알아보지 못한 경솔함도 있지만, 소금호로서는 처음으로 당하는 패배다. 치욕을 안겨준 상대가 누구인가를 알고 싶다.
"너는…! 누구냐......!?"
소금호는 입가에 묻은 피를 주먹으로 쓸며 일어났다.
"무영(霧影)!"
말을 싫어하는 까닭일까. 단 한 마디뿐.
"무…영.......!?"
소금호의 머릿속에는 무영이라는 이름이 기억되어 있지 않는다. 설 무영은 절대강자(絶對强子)가 되기 전에 신분을 감추라는 백부의 가르침에 따라 이름만을 말했다. 또 한마디 설 무영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살생할 이유를 갖게 하지마라!"
"감히 소 장주를......."
이때, 일갈과 함께 회색도포가 펄럭이더니 도(刀)가 휘익! 섬광을 번뜩였다. 성품이 노호 같은 노인, 모란장원의 사대호법 중의 일인 서호대장(西虎臺長) 장욱진(張旭珍). 패천도(覇天刀) 하나로 중원을 종횡무진 누비던 도의 달인으로 모란장원에 안주한 칠십의 노인이다. 도강(刀 )이 설 무영의 허리를 두 동강 내려 수평으로 그어갔다.
"아!........"
외마디는 소류진의 앵두 같은 입술에서 흘러 나왔다. 설 무영에게서 흘러나온 강기 속에 장욱진의 도강이 튕겨나고 있었다. 모란산장의 독문무공인 목단살공(牧丹乷功)을 팔성이상 달성한 그녀였다. 그런 그녀로서도 위험을 느낄 수 있는 무공의 극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설 무영은 잠시 우수를 펼쳤다가 거두었을 뿐이다.
그것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어떤 동작이었는지 모르지만 분명히 검법이었다. 신검지경(身劍之境), 손을 검같이 썼단 말인가?
"쩔 그랑~!"
장욱진(張旭珍)의 패천도가 바닥에 떨어졌다. 아울러 장욱진은 선혈이 낭자한 오른쪽 어깨를 우수로 붙들고 비틀거렸다.
"우~욱!"
서호대장 장욱진은 간신히 왼팔로 탁자를 집고 서있었다.
"장 노야...!"
황급히 소류진이 장욱진의 몸을 부축하였다. 소류진의 경악스런 눈동자가 설 무영을 향했다. 그녀는 자신의 가솔이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순간 설 무영에게 신비스러움을 느꼈다.
스 르르렁....!
소금호가 가보(家寶)인 목단검(牧丹劍)을 빼들고 저벅저벅 설 무영의 앞에 다가섰다.
"좋다! 제법 이구나…!...... 너에게 이 어른과 검으로 상대할 수 기회를 주겠다. 검을 빼라~!"
소금호가 모란장윈의 가보인 모란검을 비켜 들고 한걸음 나섰다.
"살생을 하지 않게 하기를 바랐는데.........!"
그러나 혼잣말을 하듯이 읊조리는 설 무영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가소로운 놈…! 빈손으로 죽기를 원한다면......."
꼼짝도 하지 않는 설 무영을 바라보는 소금호의 눈빛에서 살기가 넘쳤다.
"만해창룡(萬海創龍)!"
소금호의 일갈과 함께 모란검에서 노도와 같은 검강이 일어 설 무영의 정수리를 쪼아갔다.
"........!"
설무영의 자세는 무방무공(無防無功)의 자세이다. 그러나 그에게서 홀연히 일어나는 무형검강(無形劍剛)을 소류진은 알고 있었다. 오라버니의 오기(誤氣)와 설무영의 허허실실(虛虛實實)! 허허실실의 속에 숨어있는 무궁무진한 변화가 소금호의 오기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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