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天上)의 향기 285(운명(運命)이란?)-7
화산의 연화봉 주위에 숨어든 배화교 무사들이 화산파를 향해 다가갔다. 시간을 보내 자시가 가까웠다. 벽안환요는 시간을 가름해보고 공격 명령을 내렸다. 밝은 달빛을 등지고 검은색과 붉은색 물결이 화산을 향해 밀려간다. 화산를 경비하던 무사들은 붉은 물결을 발견하고 비상종을 올렸다.
“비상. 비상. 적(敵)이 나타났다.”
정적을 깨트리는 비상종소리에 잠에 취해 있던 무사들의 무기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검은 하늘에 온갖 암기들과 화살들이 날아오르고, 병장기 소리와 비명소리가 화산의 정적을 깨트리고 있다.
벽안환요는 난장판으로 변한 화산을 뒤로하고 화원명과 태청진인이 있다는 암자를 향해 달려갔다. 화산의 주력이 건재한 이상 2천의 혈영대와 흑풍대만으로 화산를 초토화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 혈영대와 흑풍대에게 적당히 싸우다 후퇴하라고 했으니 함정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크게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벽안환요의 목표는 화원명과 태청진인이다. 백도가 자랑하는 절대기제와 우내십기를 잡는다면 중원 무림을 충격에 몰아넣을 수 있을 것이다.
화원명은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무기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냐.”
“적(敵)이 쳐들어온 모양입니다.”
“감히 화산을 공격해. 간덩이가 배 밖으로 튀어나온 놈들이군.”
“어라. 저건 또 뭐야.”
암자를 향해 금발의 미녀가 바람처럼 날아오고 있다. 태청진인이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화원명 앞에 금발미녀가 사뿐히 착지하는 모습이 보인다.
“고녀. 참 착하게(?) 생겼네.”
태청진인이 벽안환요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입맛을 다신다. 화산이 습격을 당했는데도 전혀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그건 화원명도 마찬가지다.
“죽이는데! 사부. 혹시 숨겨둔 애인이유. 나이도 있으신 분이 무리하시면 골로 가는 수가 있습니다.”
“쩝~ 저런 애첩이 있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하지만 생전 처음 보는 년이다.”
“정말이유. 하하하~ 그럼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말이죠. 사부! 나한테 맡겨요. 내가 요리할게요.”
“미친놈. 저년 눈깔이나 보고 이야기해라. 저런 눈빛을 가진 년은 독살스러워서 못서. 여자란 자고로 남자 알기를 하늘같이 알고 고분고분한 년이 최고지.”
“아따. 외모만 받쳐 준다면야 성격이야 두들겨 패서 고치면 되죠.”
벽안환요가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입술을 씹고 있다. 자기들 멋대로 도마 위에 오려놓고 칼질을 하고 있다. 여자를 장난감처럼 대하는 놈들은 가랑이를 찢어버려야 한다.
“빠드득~ 다 떠들었어요? 다 떠들었으면 목이나 내밀어요.”
“킥킥킥~ 말하는걸 보니 두들겨 팬다고 고쳐질 년이 아닌 것 같은데?”
“쩝~ 상판대기 하나는 반반하니 한번 시도라도 해보죠.”
“조심해라. 여기까지 기어 올라온 걸보면 보통 년은 아닐 것이다.”
화원명은 피식 웃으며 검(劍)을 뽑았다.
“사부는 구경이나 하세요. 이봐~ 네가 누군지는 대충 알고 있을 것 같고, 넌 누구지. 이름이나 알고 싸우자.”
“그래요. 누구한테 죽는지 정도는 알고 죽어야겠죠. 벽안환요라고 해요. 배화교 십대마왕 중 서열 4위에 있죠.”
“십대마왕~ 가만 있자.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그래. 그래. 배화교가 심열(心熱)을 기울여 키웠다는 그 십대마왕. 근데 십대마왕이라면 나이가 장난이 아니잖아. 이런 쌍~ 이제 보니 꼬부랑할망구 아니야.”
“킥킥킥~ 이놈아.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 홀딱 벗겨서 올라타면 그년이 다 그년이다.”
“하긴 평생 끼고 살년도 아니고 대충 즐기다 버릴 년인데 무슨 상관이겠어.”
벽안환요의 분노(忿怒)가 폭발했다. 세상에 태어나 지금처럼 분노하긴 처음이다.
“파파파~”
일체도 소리도 없이, 하얀 손이 번쩍하며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은 속도로 심장을 파고들자 화원명은 검(劍)을 빙글 둘렸다.
“깡깡깡~”
“싸가지 없는 년. 어디서 서방님께 손찌검이야.”
화원명이 새처럼 날아 벽안환요의 머리를 덮친다. 벽안환요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뒤로 물려나며 검(劍)을 막았다. 놈이 소수마장을 막아냈다. 지금까지 실패를 모르던 소수마장이 막힌 것이다. 벽안환요가 내공을 끌어올라 장(掌)을 펼치니 빛처럼 빠른 하얀 손이 현원자의 단중(가슴), 비중(목)혈을 향해 날아온다.
“원명아. 그년이 장을 쓰는 모양이다. 파장식(破掌式)을 펼쳐라.”
독고구검은 오로지 공격만 생각하는 검술로 적(敵)의 빈틈을 찾아내 먼저 기선을 제압하는 선발제인(先發制人)을 목표로 한다. 수비만 해서는 답이 없다는 것이다. 화원명의 검(劍)이 넓게 펼쳐지며 단중과 비중을 향해 날아오던 장(掌)을 베어버리는 것과 동시에 벽안환요의 심장을 찔려온다. 벽안환요가 당황하여 손발이 엉킨다. 말도 안 된다. 소수마장을 막아내는 것으로 모자라 반격을 하고 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검법(劍法)이란 말인가? 벽안환요가 몸을 비틀며 검(劍)을 피했다. 그런데 현원자의 손을 떠난 검(劍)이 팽이처럼 회전하며 기해(배)혈을 찔려온다. 상대가 어검술이라도 쓴단 말인가? 아니다. 상대는 내공의 힘으로 검(劍)을 조정하고 있다. 어검술과는 다른 것이다. 그럼 무엇이란 말인가?
“윽~”
벽안환요가 옆구리를 잡고 비틀거린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옆구리를 할퀴고 지나간 검(劍)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며 운월(어깨)혈을 향해 날아온다. 운월혈이 상하면 팔을 쓸 수가 없다. 벽안환요는 바닥을 굴려 검(劍)을 피했다.
“피~ 내가 너무 심했나 보군?”
화원명이 검(劍)을 잡고 혀를 찬다. 벽안환요의 옆구리가 붉게 물들고 있다.
“시간을 주면 안 돼. 끝장을 내버려.”
태청진인이 버럭 소리를 지르지만 화원명은 곤란한 표정으로 망설이고 있다. 상대가 여자라 마음이 약해진 모양이다.
“헉~ 헉~ 헉~”
벽안환요가 재빨리 일어나 거침 숨을 몰아쉬며 화원명을 놀려본다. 검(劍)이 허공에서 춤추고 약점을 파고든다.
수비를 배제하고 철저하게 상대의 허점을 파고드는 극강의 검술(劍術).
설마 전설로 전해진다는 독고구검이란 말인가? 독고구검은 무당의 태극검과 함께 백도를 대표하는 전설의 검법(劍法)이다.
“설마! 독고구검?”
“어라. 당신이 독고구검을 어떻게 알고 있지.”
벽안환요의 가슴이 철썩 내려앉았다. 상대는 자신이 익히고 있는 소수마장에 절대 밀리지 않은 전설의 독고구검을 익히고 있었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도 승리(勝利)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상대의 격장지계(激將之計)에 걸려들어 스스로 화를 자초한 것이다. 옆구리가 따끔거린다. 큰 부상은 아니라 싸울 수는 있지만 더 이상의 대결은 무의미하다.
“졌어요.”
“..............”
“오늘은 이만 물려갈게요. 하지만 오늘 치욕(恥辱)은 반드시 갚을게요.”
“누구 맘대로 간다는 거야. 순순히 보내줄 것 같아.”
“당신을 이기긴 힘들지만 도망칠 실력은 돼요. 그리고 저를 붙잡기보다는 밑에 있는 동료들을 구하는 것이 급하지 않을까요?”
“그년 말이 맞다. 그녀는 내게 맡기고 너는 내려가 보거라.”
태청진인이 자리를 탈고 일어나며 말하니 화원명은 입맛을 다시다가 몸을 날린다.
“자네는 어떻게 할 건가? 나랑 한번 뒹굴러 볼까?”
“이미 졌다고 말씀드렸어요.”
“패배를 인정하기 쉽지 않는데 대단하군. 그만 돌아가게. 나도 제자들한테 가보아야겠네.”
“한수 배우고 갑니다. 다음에 다시 만나죠.”
벽안환요가 어깨를 붙잡고 몸을 날린다.
“보기 드문 여장부야. 허허. 참~ 중원 무림에 저런 인재가 있어야 하는데. 급하다. 가보자.”
혈영대와 흑풍대가 기습을 하였으나 화산의 대응은 빨랐다. 주변을 수비하던 경비무사들이 후퇴하고, 그들의 앞에 매화검수들로 이루어진 매화검진(梅花劍陣)과 만화천검진(萬花天劍陣)이 나타났다.
“대장님. 매화검수들입니다. 포위당하면 위험합니다.”
“나도 알고 있어. 혈영대진을 펼쳐라.”
경비무사들을 쫓아 사방으로 흩어졌던 혈영대가 대오를 정비하며 혈영대진을 펼치고, 흑풍대도 자기들끼리 모여 흑풍진을 펼친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양쪽으로 갈라진 무사들이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이미 배화교에 대한 소문이나 화산에 대한 명성을 알고 있으니 쌍방이 공격을 꺼리고 있는 것이다.
“빌어먹을.........기습은 완전히 실패했어.”
“대장! 어떻게 합니까?”
“사마(四魔)님께서 적당히 공격하고 빠지라고 하셨다. 죽기 살기로 싸운다면 모를까 지금 상태에서 공격하기도 껄끄럽잖아”
“그렇다고 이대로 시간만 죽이고 있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십팔~ 일이 더럽게 됐군.”
배화교 무사들이 고민하는 사이에 화산파 진영에서 외팔이 도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잡놈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용기 있는 놈들은 앞으로 나서라. 모두들 모가지를 썰어주마.”
좀처럼 도사 입에서 나오기 힘든 욕설이 거침없이 솟아진다.
“넌 누구야 새끼야.”
“주둥이로만 떠들지 말고 나와 새끼야.”
“이런 쌍놈의 새끼를 보았나. 어디대고 막말이야.”
“새끼들!............겁은 많아가지고, 왜 무섭냐?”
“이런 쌍! 저놈의 주둥이를 뭉겨버리고 만다.”
울화통을 참지 못한 혈영대 무사 한명이 도사들에게 날아가니 도사 두 명이 차갑게 웃으며 검(劍)을 휘두르는데 한쪽은 좌수검으로, 한쪽은 우수검을 쓰고 있다.
“깡~ 크아아악~”
땅에 착지하기도 전에 혈영대 무사의 몸뚱이가 좌우로 갈라지며 살덩이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저, 저건 혹시~”
혈영대 대장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쳐가는 검진이 있었다. 화산에서도 좀처럼 익힌 사람들이 없어 이제는 명맥이 끊어졌다고 알려진 양의합벽검진이다. 양의합벽검진은 2명으로 이루어지는데 2명 모두 한 팔씩을 잘라야 익히는 것이 가능하다. 서로의 약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킨 검법이다.
“양의합벽검진까지 익힌 놈들도 있었네. 어떻게 하지.”
“십팔! 이판사판인데 한판 신나게 놀아볼까?”
“여기서 다 같이 죽자는 말이냐.”
“싸워보지도 않고 누가 이길지 어떻게 알아.”
“우리가 이길지도 모르지. 하지만 전멸(全滅)할 각오를 해야 한다.”
쌍방이 대치하고 있는 사이에도 화산진영의 무사들 무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자고 있던 무사들과 다른 곳을 수비하던 무사들까지 한곳으로 모여든 것이다. 혈영대 대장은 결딴을 내려야 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퇴로(退路)까지 막혀 오도 가도 못할 수 있다.
“승산이 없어. 후퇴한다.”
“빌어먹을........이대로 물려가잔 말이야.”
혈영대 무사들이 실랑이를 하고 있는 사이에 장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검은 하늘을 뚫고 날아오는 사내가 있었다.
“받아라. 천류신화검(天流神火劍)”
밤하늘에 꽃비가 내리듯 아름다운 검화(劍化)가 피어나 혈영대 무사들을 향해 떨어지고, 혈영대진과 흑풍진으로 포진하고 있던 혈영대와 흑풍대가 반사적으로 돌아가며 검우(劍雨)을 막는다.
“깡~ 가가가가가깡~”
청명한 금속음과 더불어 불꽃이 사방으로 날아간다.
“사숙. 사숙이 오셨다.”
하늘에서 착지하는 사내를 보고 화산의 제자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른다. 화산이 자랑하는 화원명의 등장과 함께 화산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것이다.
“적(敵)이 쳐들어 왔다고요. 어떤 멍청한 놈들이 감히 화산의 담을 넘어왔습니까?”
“멍청한 배화교의 혈영대와 흑풍대라는 놈들입니다.”
“그래요. 그럼 뭐하고 있는 겁니까? 놈들에게 화산이 어떤 문파인지 똑똑해 보여줘야죠.”
“하하하~ 저희들끼리 다 쓸어버리면 사숙께서 섭섭해 하실 것 같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하하~ 잘 하셨어요. 추월이검.”
화원명에 부름에 외팔이 검수들이 앞으로 나섰다.
“부르셨습니까?”
“너희들이 선봉이야. 매화검진을 이루고 있는 매화검수들과 함께 흑풍대를 쓸어버려. 나는 만화천검진(萬花天劍陣)의 검수들과 함께 혈영대를 맡겠다.”
“알겠습니다. 맡겨주세요.”
“내가 먼저 출발하겠다.”
화원명이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혈영대진을 향해 돌진한다.
“광풍쾌검(狂風快劍), 오행매화검(五行梅花劍), 무극태을검(無極太乙劍)”
화원명의 손에서 화산이 자랑하는 절대검식들이 줄줄이 쏟아진다. 혈영대 대장도 검(劍)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진격하는 것보다 후퇴하는 것이 더욱 힘든 법이다. 적(敵)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 아군(我軍)은 바닥을 기고 있다. 전쟁에서 아군(我軍)이 전멸(全滅)하는 경우는 막무가내로 도망치다가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대로 후퇴하다가는 전멸(全滅)당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몰려서지 마라. 배화교 혈영대가 어떤 놈들인지 똑똑하게 보여줘라.”
대장의 명령에 혈영대 무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돌격한다. 지난 50년 동안 오직 중원 무림 정복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흘린 땀방울과 피눈물이 얼마든가? 혈영대 무사들은 개인의 삶을 포기하다시피하며 오직 무공연마에 젊음을 바친 용사들이다. 매화검수들이 화산이 자랑하는 절대검수들이라고 하지만 혈영대 무사들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깡깡~”
검(劍)과 검(劍)이 충돌하고, 진과 진이 충돌하며 연무장에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난다.
“윽~ 이놈 죽어라.”
가슴이 관통당한 매화검수가 혈영대의 검(劍)을 잡고 반대편 손으로 머리를 부셔버린다. 하지만 심장이 쫓겨진 매화검수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흑풍진을 펼치고 있던 흑풍대 무사들도 매화검수들과 엉켜 어지럽게 싸우고 있다. 피아(彼我)를 식별하기 어려운 싸움판에 홀로 빛나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지나는 길에는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피가 강물을 이루고 있다. 화산의 자랑이자 화산의 모든 것을 물려받는 화원명은 토끼무리에 뛰어든 호랑이처럼 혈영대 무사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한사람이 전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될까? 수천, 수만의 무사들이 어지럽게 엉켜있는 싸움판에서 한 개인의 존재는 미미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절대고수 한명은 절대 미미한 존재가 아니다. 상대의 기를 꺾고, 아군의 사기를 올리며, 아군의 정신적 지주가 된다. 그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가와 용기가 용솟음치며, 그와 함께 싸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신뢰와 힘을 얻는다.
개개인의 능력이 혈영대에 미치지 못하는 매화검수들이 혈영대와 대등하게 싸우고 있다는 것. 아니 오히려 혈영대를 밀어 붙이고 있는 것은 화원명의 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에 있는 매화검수를 저세상으로 보낸 혈영대 대장은 주위를 돌아보며 이를 갈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전멸(全滅)이다. 화산파 놈들은 매화검수들만 전투에 참여하고 했다. 실력이 미치지 못하는 이대제자와 삼대제자들은 주위를 포위하고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다. 자신들이 지치면 언제라도 맹수로 돌변해 물어뜯을 것이다. 하지만 더욱 무서운 것이 있다. 장문인이나 장로들로 보이는 늙은이들이 차가운 눈으로 전투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빌어먹을.........사자의 수염을 뽑은 꼴인가?”
“대장. 무사들이 치쳐갑니다.”
부장이 달여와 소리를 지른다.
“나도 알아.”
“계속 싸우는 겁니까?”
“방법이 없잖아. 죽기 살기로 싸워~”
후퇴하긴 틀렸다.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져 후퇴를 명령했다가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전멸(全滅)당할 수도 있다. 이젠 명예롭게 싸우다 죽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파파팍~”
“크아악~”
연무장을 포위하고 있던 화산파 무사들을 가르며 하얀 인영(人影)이 나타났다.
“와야. 환요님이 오셨다.”
“힘을 내라. 환요님이 오셨다.”
혈영대와 흑풍대 무사들이 하얀 인영을 보고 함성을 지른다. 벽안환요가 나타난 것이다. 화원명이 화산의 정신적 지주라면, 십대마왕은 배화교 무사들의 정신적인 지주다. 특히나 벽안환요는 냉정한 손속과 차가운 이성으로 부하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배화교 무사들이 평소에는 벽안환요의 차가움에 치를 떨지만 전장(戰場)에서의 벽안환요는 자신들을 지켜주는 수호신인 것이다.
“여긴 나에게 맡기고 모두 후퇴하세요.”
벽안환요의 명령에 어지럽게 싸우고 있던 혈영대와 흑풍대가 밀물처럼 빠져나간다. 벽안환요에 대한 믿음이 혈영대와 흑풍대를 무사들을 하나로 만든 것이다. 주위를 포위하고 있던 화산의 무사들은 밀물처럼 몰려오는 배화교 무사들을 막지 못하고 길을 열어주었고, 흑풍대를 선두로 혈영대가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간다. 하지만 벽안환요는 단단한 바위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살아남은 마지막 한명까지 빠져나갈 동안 자리를 지키려는 모양이다.
“환요님. 가시죠. 저들이 모시겠습니다.”
“먼저 가세요. 나중에 따라갈게요.”
혈영대 대장과 몇 명의 부장들의 벽안환요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저희들도 남겠습니다.”
“부하들을 인솔하세요. 여긴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부장들.......너희들은 후퇴해라. 여긴 나와 환요님이 지키겠다.”
벽안환요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대장이 먼저 선수를 쳤다. 부장들이 입술을 깨물고 후퇴한다. 화원명도 벽안환요를 발견했다.
“크아악~”
도망치는 배화교 무사들을 추격하던 매화검수가 소리 없이 날아온 소수마장에 피를 토하며 쓰려진다.
“물려나. 저 여인은 내가 상대한다.”
화원명이 다시 독고구검을 펼치며 벽안환요를 향해 날아갔다.
“패배는 한번으로 족해요. 물려가세요.”
벽안환요의 손이 어지럽게 춤추며 화원명의 검(劍)을 상대한다. 처음에는 모르고 당했지만 두 번은 당하지 않겠다는 결언한 의지가 엿보인다.
“물려나. 당신은 내 상대가 아니야.”
“독고구검이 대단한 무공이라는 것은 인정해요. 하지만 당신도 저를 쉽게 꺾지 못해요.”
손과 검(劍)의 대결.
어찌 보면 당연히 검(劍)이 이겨야 정상이다. 하지만 소수마장을 익힌 벽안환요의 손은 겉으로 보기에 유약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강철보다 단단하다. 허공에 불꽃이 튀고, 수영(手影)과 검영(劍影)이 춤을 춘다. 누구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팽팽한 대결이다. 소수마장이나 독고구검은 선발제인(先發制人)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동질의 무공이라고 할 수 있다. 공격이 수비라는 철저한 논리로 수비를 무시하고 집요하게 상대의 허점을 물고 늘어진다. 하지만 상대의 의도를 간파하고 공격을 버리고 수비만 한다면 상대도 쉽게 자신을 이길 수 없다. 자존심 강한 벽안환요가 공격을 버리고 수비를 선택했다. 혼자라면 절대 이런 식의 대결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죽는 한이 있어도 상대와 생사결(生死結)을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존심보다는 부하들의 생명이 더욱 소중하다. 잠깐의 치욕으로 부하들을 살릴 수 있다면 벽환환요는 치욕을 당하는 것을 선택한다.
“사숙. 저년은 저희들이 상대하겠습니다.”
어느새 날아온 추월이검이 화원명을 도아 벽안환요를 공격한다.
“흥~ 너희들 상대는 여기야.”
혈영대 대장이 추월이검을 향해 검을 뿌린다.
“저도 깨워주세요. 간다. 화령마검.”
흑풍대 대장도 빠지지 않고 혈영대 대장과 힘을 합친다.
“자네가 어떻게..........후퇴하지 않았어.”
“하하하~ 제가 빠지면 섭섭하죠.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래. 한번 멋지게 싸워보세.”
혈영대와 흑풍대 대장이 힘을 합쳐 추월이검을 상대한다. 화산이 자랑하는 양의합벽검진도 혈영대와 흑풍대 대장이 힘을 합치자 쉽게 상대를 제압하지 못한다. 화원명과 벽안환요 그리고 추월이검과 혈영대 및 흑풍대 대장들의 대결은 매화검수들도 쉽게 끼어들지 못할 정도다. 쌍방이 워낙 치열하게 싸우고 있어 실력이 미쳐한 자신들이 끼어들었다가는 오히려 아군(我軍)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만하면 됐다. 그만 물려나라.”
연무장이 쩌렁쩌렁 울린다. 태청진인이 나타난 것이다. 화원명이 검을 거두고 물려나니, 추월이검도 물려난다.
“이제 자네들만 남았네. 그만 항복하게.”
태청진인의 말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벽안환요일행이 주위를 돌아보니 혈영대와 흑풍대는 보이지 않고 겹겹이 포위한 화산의 무사들만 보인다. 모두가 후퇴하고 자신들만 남는 것이다.
“항복하라고 하셨나요. 항복하면 살려주실 건가요.”
“자네가 우리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나.”
“가차 없이 죽이겠죠.”
“이미 답은 이미 나왔군.”
벽안환요가 씁쓸하게 웃는다. 화산의 포위망을 뚫고 도망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제 죽는 길만 남은 것이다.
“항복해도 살길이 없는데, 항복하라는 말씀은 무의미하지 않을까요? 끝까지 싸우다 명예롭게 죽겠어요.”
태청진인과 벽안환요의 대화를 듣고 있던 화원명이 검(劍)을 거두고 돌아선다.
“사부가 직접 처리하세요. 저는 그만 갈레요.”
“자, 잠깐. 방금 뭐라고 했냐.”
“놀만큼 놀았으니 그만 가보겠다고 했습니다.”
“늙은 사부보고 저것들을 상대하란 말이냐?”
“싫으면 하지 마세요. 그냥 두면 자기들이 알아서 가겠죠.”
“기가 막혀. 장문인 저놈 좀 붙잡아요.”
태청진인이 소리치자 장문인과 장로들이 고개를 돌려버린다. 요상한 사제지간에 끼어들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이럴 때는 모른 척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이런 잡것들........예라~ 모르겠다. 네놈 마음대로 해라.”
장문인과 장로들이 외면하자 태청진인도 발을 빼버린다. 꼴통인 화원명에게 시비 걸어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화원명은 피식 웃더니 다시 앞으로 나선다.
“거기 여자. 끝까지 싸우고 싶어.”
“항복해도 죽는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잖아요. 끝까지 싸우다 죽겠어요.”
“당신들을 죽이려면 우리 피해도 만만치 않겠지. 그렇다고 그냥 보내주긴 뭐하고.......우리 이렇게 합시다. 당신이 대표로 팔 하나만 잘라. 그럼 보내 줄게.”
“팔 하나로 우리들을 보내주시겠다는 건가요.”
“보내준다.”
“믿어도 됩니까?”
“화산의 명예를 걸고 명세 한다.”
“좋아요.”
“안됩니다.”
혈영대 대장과 흑풍대 대장이 동시에 소리친다.
“차라리 제가 팔을 내놓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내놓겠습니다.”
혈영대와 흑풍대 대장이 서로 팔을 내놓겠다고 소리친다.
“그 새끼들 더럽게 시끄럽네. 둘 다 잘라. 그럼 보내 줄게.”
“한입으로 두말하지 않겠지.”
“저것들을 그냥 꽉~ 화산의 명예를 건다고 했지. 더 필요해.”
화원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혈영대와 흑풍대 대장이 팔을 잘라버린다. 자신들의 팔로 벽안환요의 팔을 대신할 수 있다면 두 팔도 자를 수 있다. 화원명은 복잡한 표정으로 벽안환요 일행을 바라본다. 서습 없이 자신의 팔을 자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것도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될 일이였다.
“대단한 친구들이군. 가라. 다시 만날 때는 오늘 같은 자비는 없을 것이다.”
벽안환요가 침통한 표정으로 대장들을 바라보다가 힘없이 돌아선다.
“오늘 패배는 잊지 않을게요.”
벽안환요 일행이 떠났다. 백도 무림이 배화교와 싸워 최초로 거둔 승리였다.
<<계속>>
화산의 연화봉 주위에 숨어든 배화교 무사들이 화산파를 향해 다가갔다. 시간을 보내 자시가 가까웠다. 벽안환요는 시간을 가름해보고 공격 명령을 내렸다. 밝은 달빛을 등지고 검은색과 붉은색 물결이 화산을 향해 밀려간다. 화산를 경비하던 무사들은 붉은 물결을 발견하고 비상종을 올렸다.
“비상. 비상. 적(敵)이 나타났다.”
정적을 깨트리는 비상종소리에 잠에 취해 있던 무사들의 무기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검은 하늘에 온갖 암기들과 화살들이 날아오르고, 병장기 소리와 비명소리가 화산의 정적을 깨트리고 있다.
벽안환요는 난장판으로 변한 화산을 뒤로하고 화원명과 태청진인이 있다는 암자를 향해 달려갔다. 화산의 주력이 건재한 이상 2천의 혈영대와 흑풍대만으로 화산를 초토화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 혈영대와 흑풍대에게 적당히 싸우다 후퇴하라고 했으니 함정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크게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벽안환요의 목표는 화원명과 태청진인이다. 백도가 자랑하는 절대기제와 우내십기를 잡는다면 중원 무림을 충격에 몰아넣을 수 있을 것이다.
화원명은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무기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냐.”
“적(敵)이 쳐들어온 모양입니다.”
“감히 화산을 공격해. 간덩이가 배 밖으로 튀어나온 놈들이군.”
“어라. 저건 또 뭐야.”
암자를 향해 금발의 미녀가 바람처럼 날아오고 있다. 태청진인이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화원명 앞에 금발미녀가 사뿐히 착지하는 모습이 보인다.
“고녀. 참 착하게(?) 생겼네.”
태청진인이 벽안환요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입맛을 다신다. 화산이 습격을 당했는데도 전혀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그건 화원명도 마찬가지다.
“죽이는데! 사부. 혹시 숨겨둔 애인이유. 나이도 있으신 분이 무리하시면 골로 가는 수가 있습니다.”
“쩝~ 저런 애첩이 있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하지만 생전 처음 보는 년이다.”
“정말이유. 하하하~ 그럼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말이죠. 사부! 나한테 맡겨요. 내가 요리할게요.”
“미친놈. 저년 눈깔이나 보고 이야기해라. 저런 눈빛을 가진 년은 독살스러워서 못서. 여자란 자고로 남자 알기를 하늘같이 알고 고분고분한 년이 최고지.”
“아따. 외모만 받쳐 준다면야 성격이야 두들겨 패서 고치면 되죠.”
벽안환요가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입술을 씹고 있다. 자기들 멋대로 도마 위에 오려놓고 칼질을 하고 있다. 여자를 장난감처럼 대하는 놈들은 가랑이를 찢어버려야 한다.
“빠드득~ 다 떠들었어요? 다 떠들었으면 목이나 내밀어요.”
“킥킥킥~ 말하는걸 보니 두들겨 팬다고 고쳐질 년이 아닌 것 같은데?”
“쩝~ 상판대기 하나는 반반하니 한번 시도라도 해보죠.”
“조심해라. 여기까지 기어 올라온 걸보면 보통 년은 아닐 것이다.”
화원명은 피식 웃으며 검(劍)을 뽑았다.
“사부는 구경이나 하세요. 이봐~ 네가 누군지는 대충 알고 있을 것 같고, 넌 누구지. 이름이나 알고 싸우자.”
“그래요. 누구한테 죽는지 정도는 알고 죽어야겠죠. 벽안환요라고 해요. 배화교 십대마왕 중 서열 4위에 있죠.”
“십대마왕~ 가만 있자.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그래. 그래. 배화교가 심열(心熱)을 기울여 키웠다는 그 십대마왕. 근데 십대마왕이라면 나이가 장난이 아니잖아. 이런 쌍~ 이제 보니 꼬부랑할망구 아니야.”
“킥킥킥~ 이놈아.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 홀딱 벗겨서 올라타면 그년이 다 그년이다.”
“하긴 평생 끼고 살년도 아니고 대충 즐기다 버릴 년인데 무슨 상관이겠어.”
벽안환요의 분노(忿怒)가 폭발했다. 세상에 태어나 지금처럼 분노하긴 처음이다.
“파파파~”
일체도 소리도 없이, 하얀 손이 번쩍하며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은 속도로 심장을 파고들자 화원명은 검(劍)을 빙글 둘렸다.
“깡깡깡~”
“싸가지 없는 년. 어디서 서방님께 손찌검이야.”
화원명이 새처럼 날아 벽안환요의 머리를 덮친다. 벽안환요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뒤로 물려나며 검(劍)을 막았다. 놈이 소수마장을 막아냈다. 지금까지 실패를 모르던 소수마장이 막힌 것이다. 벽안환요가 내공을 끌어올라 장(掌)을 펼치니 빛처럼 빠른 하얀 손이 현원자의 단중(가슴), 비중(목)혈을 향해 날아온다.
“원명아. 그년이 장을 쓰는 모양이다. 파장식(破掌式)을 펼쳐라.”
독고구검은 오로지 공격만 생각하는 검술로 적(敵)의 빈틈을 찾아내 먼저 기선을 제압하는 선발제인(先發制人)을 목표로 한다. 수비만 해서는 답이 없다는 것이다. 화원명의 검(劍)이 넓게 펼쳐지며 단중과 비중을 향해 날아오던 장(掌)을 베어버리는 것과 동시에 벽안환요의 심장을 찔려온다. 벽안환요가 당황하여 손발이 엉킨다. 말도 안 된다. 소수마장을 막아내는 것으로 모자라 반격을 하고 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검법(劍法)이란 말인가? 벽안환요가 몸을 비틀며 검(劍)을 피했다. 그런데 현원자의 손을 떠난 검(劍)이 팽이처럼 회전하며 기해(배)혈을 찔려온다. 상대가 어검술이라도 쓴단 말인가? 아니다. 상대는 내공의 힘으로 검(劍)을 조정하고 있다. 어검술과는 다른 것이다. 그럼 무엇이란 말인가?
“윽~”
벽안환요가 옆구리를 잡고 비틀거린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옆구리를 할퀴고 지나간 검(劍)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며 운월(어깨)혈을 향해 날아온다. 운월혈이 상하면 팔을 쓸 수가 없다. 벽안환요는 바닥을 굴려 검(劍)을 피했다.
“피~ 내가 너무 심했나 보군?”
화원명이 검(劍)을 잡고 혀를 찬다. 벽안환요의 옆구리가 붉게 물들고 있다.
“시간을 주면 안 돼. 끝장을 내버려.”
태청진인이 버럭 소리를 지르지만 화원명은 곤란한 표정으로 망설이고 있다. 상대가 여자라 마음이 약해진 모양이다.
“헉~ 헉~ 헉~”
벽안환요가 재빨리 일어나 거침 숨을 몰아쉬며 화원명을 놀려본다. 검(劍)이 허공에서 춤추고 약점을 파고든다.
수비를 배제하고 철저하게 상대의 허점을 파고드는 극강의 검술(劍術).
설마 전설로 전해진다는 독고구검이란 말인가? 독고구검은 무당의 태극검과 함께 백도를 대표하는 전설의 검법(劍法)이다.
“설마! 독고구검?”
“어라. 당신이 독고구검을 어떻게 알고 있지.”
벽안환요의 가슴이 철썩 내려앉았다. 상대는 자신이 익히고 있는 소수마장에 절대 밀리지 않은 전설의 독고구검을 익히고 있었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도 승리(勝利)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상대의 격장지계(激將之計)에 걸려들어 스스로 화를 자초한 것이다. 옆구리가 따끔거린다. 큰 부상은 아니라 싸울 수는 있지만 더 이상의 대결은 무의미하다.
“졌어요.”
“..............”
“오늘은 이만 물려갈게요. 하지만 오늘 치욕(恥辱)은 반드시 갚을게요.”
“누구 맘대로 간다는 거야. 순순히 보내줄 것 같아.”
“당신을 이기긴 힘들지만 도망칠 실력은 돼요. 그리고 저를 붙잡기보다는 밑에 있는 동료들을 구하는 것이 급하지 않을까요?”
“그년 말이 맞다. 그녀는 내게 맡기고 너는 내려가 보거라.”
태청진인이 자리를 탈고 일어나며 말하니 화원명은 입맛을 다시다가 몸을 날린다.
“자네는 어떻게 할 건가? 나랑 한번 뒹굴러 볼까?”
“이미 졌다고 말씀드렸어요.”
“패배를 인정하기 쉽지 않는데 대단하군. 그만 돌아가게. 나도 제자들한테 가보아야겠네.”
“한수 배우고 갑니다. 다음에 다시 만나죠.”
벽안환요가 어깨를 붙잡고 몸을 날린다.
“보기 드문 여장부야. 허허. 참~ 중원 무림에 저런 인재가 있어야 하는데. 급하다. 가보자.”
혈영대와 흑풍대가 기습을 하였으나 화산의 대응은 빨랐다. 주변을 수비하던 경비무사들이 후퇴하고, 그들의 앞에 매화검수들로 이루어진 매화검진(梅花劍陣)과 만화천검진(萬花天劍陣)이 나타났다.
“대장님. 매화검수들입니다. 포위당하면 위험합니다.”
“나도 알고 있어. 혈영대진을 펼쳐라.”
경비무사들을 쫓아 사방으로 흩어졌던 혈영대가 대오를 정비하며 혈영대진을 펼치고, 흑풍대도 자기들끼리 모여 흑풍진을 펼친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양쪽으로 갈라진 무사들이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이미 배화교에 대한 소문이나 화산에 대한 명성을 알고 있으니 쌍방이 공격을 꺼리고 있는 것이다.
“빌어먹을.........기습은 완전히 실패했어.”
“대장! 어떻게 합니까?”
“사마(四魔)님께서 적당히 공격하고 빠지라고 하셨다. 죽기 살기로 싸운다면 모를까 지금 상태에서 공격하기도 껄끄럽잖아”
“그렇다고 이대로 시간만 죽이고 있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십팔~ 일이 더럽게 됐군.”
배화교 무사들이 고민하는 사이에 화산파 진영에서 외팔이 도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잡놈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용기 있는 놈들은 앞으로 나서라. 모두들 모가지를 썰어주마.”
좀처럼 도사 입에서 나오기 힘든 욕설이 거침없이 솟아진다.
“넌 누구야 새끼야.”
“주둥이로만 떠들지 말고 나와 새끼야.”
“이런 쌍놈의 새끼를 보았나. 어디대고 막말이야.”
“새끼들!............겁은 많아가지고, 왜 무섭냐?”
“이런 쌍! 저놈의 주둥이를 뭉겨버리고 만다.”
울화통을 참지 못한 혈영대 무사 한명이 도사들에게 날아가니 도사 두 명이 차갑게 웃으며 검(劍)을 휘두르는데 한쪽은 좌수검으로, 한쪽은 우수검을 쓰고 있다.
“깡~ 크아아악~”
땅에 착지하기도 전에 혈영대 무사의 몸뚱이가 좌우로 갈라지며 살덩이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저, 저건 혹시~”
혈영대 대장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쳐가는 검진이 있었다. 화산에서도 좀처럼 익힌 사람들이 없어 이제는 명맥이 끊어졌다고 알려진 양의합벽검진이다. 양의합벽검진은 2명으로 이루어지는데 2명 모두 한 팔씩을 잘라야 익히는 것이 가능하다. 서로의 약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킨 검법이다.
“양의합벽검진까지 익힌 놈들도 있었네. 어떻게 하지.”
“십팔! 이판사판인데 한판 신나게 놀아볼까?”
“여기서 다 같이 죽자는 말이냐.”
“싸워보지도 않고 누가 이길지 어떻게 알아.”
“우리가 이길지도 모르지. 하지만 전멸(全滅)할 각오를 해야 한다.”
쌍방이 대치하고 있는 사이에도 화산진영의 무사들 무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자고 있던 무사들과 다른 곳을 수비하던 무사들까지 한곳으로 모여든 것이다. 혈영대 대장은 결딴을 내려야 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퇴로(退路)까지 막혀 오도 가도 못할 수 있다.
“승산이 없어. 후퇴한다.”
“빌어먹을........이대로 물려가잔 말이야.”
혈영대 무사들이 실랑이를 하고 있는 사이에 장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검은 하늘을 뚫고 날아오는 사내가 있었다.
“받아라. 천류신화검(天流神火劍)”
밤하늘에 꽃비가 내리듯 아름다운 검화(劍化)가 피어나 혈영대 무사들을 향해 떨어지고, 혈영대진과 흑풍진으로 포진하고 있던 혈영대와 흑풍대가 반사적으로 돌아가며 검우(劍雨)을 막는다.
“깡~ 가가가가가깡~”
청명한 금속음과 더불어 불꽃이 사방으로 날아간다.
“사숙. 사숙이 오셨다.”
하늘에서 착지하는 사내를 보고 화산의 제자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른다. 화산이 자랑하는 화원명의 등장과 함께 화산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것이다.
“적(敵)이 쳐들어 왔다고요. 어떤 멍청한 놈들이 감히 화산의 담을 넘어왔습니까?”
“멍청한 배화교의 혈영대와 흑풍대라는 놈들입니다.”
“그래요. 그럼 뭐하고 있는 겁니까? 놈들에게 화산이 어떤 문파인지 똑똑해 보여줘야죠.”
“하하하~ 저희들끼리 다 쓸어버리면 사숙께서 섭섭해 하실 것 같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하하~ 잘 하셨어요. 추월이검.”
화원명에 부름에 외팔이 검수들이 앞으로 나섰다.
“부르셨습니까?”
“너희들이 선봉이야. 매화검진을 이루고 있는 매화검수들과 함께 흑풍대를 쓸어버려. 나는 만화천검진(萬花天劍陣)의 검수들과 함께 혈영대를 맡겠다.”
“알겠습니다. 맡겨주세요.”
“내가 먼저 출발하겠다.”
화원명이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혈영대진을 향해 돌진한다.
“광풍쾌검(狂風快劍), 오행매화검(五行梅花劍), 무극태을검(無極太乙劍)”
화원명의 손에서 화산이 자랑하는 절대검식들이 줄줄이 쏟아진다. 혈영대 대장도 검(劍)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진격하는 것보다 후퇴하는 것이 더욱 힘든 법이다. 적(敵)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 아군(我軍)은 바닥을 기고 있다. 전쟁에서 아군(我軍)이 전멸(全滅)하는 경우는 막무가내로 도망치다가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대로 후퇴하다가는 전멸(全滅)당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몰려서지 마라. 배화교 혈영대가 어떤 놈들인지 똑똑하게 보여줘라.”
대장의 명령에 혈영대 무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돌격한다. 지난 50년 동안 오직 중원 무림 정복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흘린 땀방울과 피눈물이 얼마든가? 혈영대 무사들은 개인의 삶을 포기하다시피하며 오직 무공연마에 젊음을 바친 용사들이다. 매화검수들이 화산이 자랑하는 절대검수들이라고 하지만 혈영대 무사들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깡깡~”
검(劍)과 검(劍)이 충돌하고, 진과 진이 충돌하며 연무장에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난다.
“윽~ 이놈 죽어라.”
가슴이 관통당한 매화검수가 혈영대의 검(劍)을 잡고 반대편 손으로 머리를 부셔버린다. 하지만 심장이 쫓겨진 매화검수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흑풍진을 펼치고 있던 흑풍대 무사들도 매화검수들과 엉켜 어지럽게 싸우고 있다. 피아(彼我)를 식별하기 어려운 싸움판에 홀로 빛나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지나는 길에는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피가 강물을 이루고 있다. 화산의 자랑이자 화산의 모든 것을 물려받는 화원명은 토끼무리에 뛰어든 호랑이처럼 혈영대 무사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한사람이 전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될까? 수천, 수만의 무사들이 어지럽게 엉켜있는 싸움판에서 한 개인의 존재는 미미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절대고수 한명은 절대 미미한 존재가 아니다. 상대의 기를 꺾고, 아군의 사기를 올리며, 아군의 정신적 지주가 된다. 그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가와 용기가 용솟음치며, 그와 함께 싸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신뢰와 힘을 얻는다.
개개인의 능력이 혈영대에 미치지 못하는 매화검수들이 혈영대와 대등하게 싸우고 있다는 것. 아니 오히려 혈영대를 밀어 붙이고 있는 것은 화원명의 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에 있는 매화검수를 저세상으로 보낸 혈영대 대장은 주위를 돌아보며 이를 갈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전멸(全滅)이다. 화산파 놈들은 매화검수들만 전투에 참여하고 했다. 실력이 미치지 못하는 이대제자와 삼대제자들은 주위를 포위하고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다. 자신들이 지치면 언제라도 맹수로 돌변해 물어뜯을 것이다. 하지만 더욱 무서운 것이 있다. 장문인이나 장로들로 보이는 늙은이들이 차가운 눈으로 전투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빌어먹을.........사자의 수염을 뽑은 꼴인가?”
“대장. 무사들이 치쳐갑니다.”
부장이 달여와 소리를 지른다.
“나도 알아.”
“계속 싸우는 겁니까?”
“방법이 없잖아. 죽기 살기로 싸워~”
후퇴하긴 틀렸다.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져 후퇴를 명령했다가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전멸(全滅)당할 수도 있다. 이젠 명예롭게 싸우다 죽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파파팍~”
“크아악~”
연무장을 포위하고 있던 화산파 무사들을 가르며 하얀 인영(人影)이 나타났다.
“와야. 환요님이 오셨다.”
“힘을 내라. 환요님이 오셨다.”
혈영대와 흑풍대 무사들이 하얀 인영을 보고 함성을 지른다. 벽안환요가 나타난 것이다. 화원명이 화산의 정신적 지주라면, 십대마왕은 배화교 무사들의 정신적인 지주다. 특히나 벽안환요는 냉정한 손속과 차가운 이성으로 부하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배화교 무사들이 평소에는 벽안환요의 차가움에 치를 떨지만 전장(戰場)에서의 벽안환요는 자신들을 지켜주는 수호신인 것이다.
“여긴 나에게 맡기고 모두 후퇴하세요.”
벽안환요의 명령에 어지럽게 싸우고 있던 혈영대와 흑풍대가 밀물처럼 빠져나간다. 벽안환요에 대한 믿음이 혈영대와 흑풍대를 무사들을 하나로 만든 것이다. 주위를 포위하고 있던 화산의 무사들은 밀물처럼 몰려오는 배화교 무사들을 막지 못하고 길을 열어주었고, 흑풍대를 선두로 혈영대가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간다. 하지만 벽안환요는 단단한 바위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살아남은 마지막 한명까지 빠져나갈 동안 자리를 지키려는 모양이다.
“환요님. 가시죠. 저들이 모시겠습니다.”
“먼저 가세요. 나중에 따라갈게요.”
혈영대 대장과 몇 명의 부장들의 벽안환요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저희들도 남겠습니다.”
“부하들을 인솔하세요. 여긴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부장들.......너희들은 후퇴해라. 여긴 나와 환요님이 지키겠다.”
벽안환요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대장이 먼저 선수를 쳤다. 부장들이 입술을 깨물고 후퇴한다. 화원명도 벽안환요를 발견했다.
“크아악~”
도망치는 배화교 무사들을 추격하던 매화검수가 소리 없이 날아온 소수마장에 피를 토하며 쓰려진다.
“물려나. 저 여인은 내가 상대한다.”
화원명이 다시 독고구검을 펼치며 벽안환요를 향해 날아갔다.
“패배는 한번으로 족해요. 물려가세요.”
벽안환요의 손이 어지럽게 춤추며 화원명의 검(劍)을 상대한다. 처음에는 모르고 당했지만 두 번은 당하지 않겠다는 결언한 의지가 엿보인다.
“물려나. 당신은 내 상대가 아니야.”
“독고구검이 대단한 무공이라는 것은 인정해요. 하지만 당신도 저를 쉽게 꺾지 못해요.”
손과 검(劍)의 대결.
어찌 보면 당연히 검(劍)이 이겨야 정상이다. 하지만 소수마장을 익힌 벽안환요의 손은 겉으로 보기에 유약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강철보다 단단하다. 허공에 불꽃이 튀고, 수영(手影)과 검영(劍影)이 춤을 춘다. 누구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팽팽한 대결이다. 소수마장이나 독고구검은 선발제인(先發制人)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동질의 무공이라고 할 수 있다. 공격이 수비라는 철저한 논리로 수비를 무시하고 집요하게 상대의 허점을 물고 늘어진다. 하지만 상대의 의도를 간파하고 공격을 버리고 수비만 한다면 상대도 쉽게 자신을 이길 수 없다. 자존심 강한 벽안환요가 공격을 버리고 수비를 선택했다. 혼자라면 절대 이런 식의 대결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죽는 한이 있어도 상대와 생사결(生死結)을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존심보다는 부하들의 생명이 더욱 소중하다. 잠깐의 치욕으로 부하들을 살릴 수 있다면 벽환환요는 치욕을 당하는 것을 선택한다.
“사숙. 저년은 저희들이 상대하겠습니다.”
어느새 날아온 추월이검이 화원명을 도아 벽안환요를 공격한다.
“흥~ 너희들 상대는 여기야.”
혈영대 대장이 추월이검을 향해 검을 뿌린다.
“저도 깨워주세요. 간다. 화령마검.”
흑풍대 대장도 빠지지 않고 혈영대 대장과 힘을 합친다.
“자네가 어떻게..........후퇴하지 않았어.”
“하하하~ 제가 빠지면 섭섭하죠.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래. 한번 멋지게 싸워보세.”
혈영대와 흑풍대 대장이 힘을 합쳐 추월이검을 상대한다. 화산이 자랑하는 양의합벽검진도 혈영대와 흑풍대 대장이 힘을 합치자 쉽게 상대를 제압하지 못한다. 화원명과 벽안환요 그리고 추월이검과 혈영대 및 흑풍대 대장들의 대결은 매화검수들도 쉽게 끼어들지 못할 정도다. 쌍방이 워낙 치열하게 싸우고 있어 실력이 미쳐한 자신들이 끼어들었다가는 오히려 아군(我軍)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만하면 됐다. 그만 물려나라.”
연무장이 쩌렁쩌렁 울린다. 태청진인이 나타난 것이다. 화원명이 검을 거두고 물려나니, 추월이검도 물려난다.
“이제 자네들만 남았네. 그만 항복하게.”
태청진인의 말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벽안환요일행이 주위를 돌아보니 혈영대와 흑풍대는 보이지 않고 겹겹이 포위한 화산의 무사들만 보인다. 모두가 후퇴하고 자신들만 남는 것이다.
“항복하라고 하셨나요. 항복하면 살려주실 건가요.”
“자네가 우리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나.”
“가차 없이 죽이겠죠.”
“이미 답은 이미 나왔군.”
벽안환요가 씁쓸하게 웃는다. 화산의 포위망을 뚫고 도망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제 죽는 길만 남은 것이다.
“항복해도 살길이 없는데, 항복하라는 말씀은 무의미하지 않을까요? 끝까지 싸우다 명예롭게 죽겠어요.”
태청진인과 벽안환요의 대화를 듣고 있던 화원명이 검(劍)을 거두고 돌아선다.
“사부가 직접 처리하세요. 저는 그만 갈레요.”
“자, 잠깐. 방금 뭐라고 했냐.”
“놀만큼 놀았으니 그만 가보겠다고 했습니다.”
“늙은 사부보고 저것들을 상대하란 말이냐?”
“싫으면 하지 마세요. 그냥 두면 자기들이 알아서 가겠죠.”
“기가 막혀. 장문인 저놈 좀 붙잡아요.”
태청진인이 소리치자 장문인과 장로들이 고개를 돌려버린다. 요상한 사제지간에 끼어들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이럴 때는 모른 척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이런 잡것들........예라~ 모르겠다. 네놈 마음대로 해라.”
장문인과 장로들이 외면하자 태청진인도 발을 빼버린다. 꼴통인 화원명에게 시비 걸어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화원명은 피식 웃더니 다시 앞으로 나선다.
“거기 여자. 끝까지 싸우고 싶어.”
“항복해도 죽는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잖아요. 끝까지 싸우다 죽겠어요.”
“당신들을 죽이려면 우리 피해도 만만치 않겠지. 그렇다고 그냥 보내주긴 뭐하고.......우리 이렇게 합시다. 당신이 대표로 팔 하나만 잘라. 그럼 보내 줄게.”
“팔 하나로 우리들을 보내주시겠다는 건가요.”
“보내준다.”
“믿어도 됩니까?”
“화산의 명예를 걸고 명세 한다.”
“좋아요.”
“안됩니다.”
혈영대 대장과 흑풍대 대장이 동시에 소리친다.
“차라리 제가 팔을 내놓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내놓겠습니다.”
혈영대와 흑풍대 대장이 서로 팔을 내놓겠다고 소리친다.
“그 새끼들 더럽게 시끄럽네. 둘 다 잘라. 그럼 보내 줄게.”
“한입으로 두말하지 않겠지.”
“저것들을 그냥 꽉~ 화산의 명예를 건다고 했지. 더 필요해.”
화원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혈영대와 흑풍대 대장이 팔을 잘라버린다. 자신들의 팔로 벽안환요의 팔을 대신할 수 있다면 두 팔도 자를 수 있다. 화원명은 복잡한 표정으로 벽안환요 일행을 바라본다. 서습 없이 자신의 팔을 자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것도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될 일이였다.
“대단한 친구들이군. 가라. 다시 만날 때는 오늘 같은 자비는 없을 것이다.”
벽안환요가 침통한 표정으로 대장들을 바라보다가 힘없이 돌아선다.
“오늘 패배는 잊지 않을게요.”
벽안환요 일행이 떠났다. 백도 무림이 배화교와 싸워 최초로 거둔 승리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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