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사(不死)의 유혹(誘惑) ]----------------------------------------------------------------------------
<제 2 편>
진시황제 (秦始皇帝) - 2
연회장을 나온 설비는 시녀를 대동하여 수라청으로 향하였다. 지나치는 상궁 내관들 모두 바쁜 걸음을 하며 지나가는데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무엇이 저리도 저들을 기쁘게 하는지 설비는 궁금하기만 하다. 황제의 후궁이 되는 것도 황제의 총애를 받는 것도 모두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금군이 오기 전에는 모두들 자기를 사랑해주었고 웃음이 넘쳤다. 비록 첩의 자식이었지만 아버지나 어머니 배다른 오빠, 심지어는 큰어머니까지도 모두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가 자신을 미워한다. 아버지, 어머니와 오빠가 그립다.
이것이 다 저주스러운 몸 때문이다. 할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줘버리고 싶다.
수라청에 도착하니 수라청 상궁이 영접을 나온다.
“향비님께 중추절 음식을 대접하려고 해요”
“향비님에게 말씀이십니까?”
“네”
“으으음.. 곧 준비하겠습니다. “
상궁은 잠시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 곧 수라간으로 사라진다.
“설비님 모시겠습니다….“
수라청 큰 상궁이 고개를 숙이며 내당으로 안내했다.
시녀가 차와 간단한 다과를 내어온다
큰 상궁은 설비가 차와 다과를 들지 않고 내당 바깥 풍경을 바라보자 먼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과자 한쪽을 살며시 깨물어 삼킨다
“황궁의 소문은 바람보다 빠르군요”
“황공하옵니다 설비님… 지난 밤의 불미스러운 일은 저희 수라청하고는 무관합니다”
“그것을 문책하려고 온 것은 아니에요. 조용히 쉬고 싶어 향비님에게 음식을 가져가는걸 자청했어요”
“잘 하셨습니다. 태중의 아기씨에게도 아주 좋을 것입니다.”
“향비님은 어떤 분이신지요. 어떤 연유로 후원에 은둔하시게 된 것인지요”
“굳이 아시려 하지 마세요 설비님…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들으셔야 할 때입니다”
“향비님을 뵙고 결례를 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말씀해주세요”
큰 상궁은 한숨을 쉬고 잠시 말이 없다. 황제의 총애를 받는 어린 후궁이다. 아들을 내세워서 권력을 움켜쥐려는 후궁들과는 달리 이 어린 후궁은 권력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고있다. 수태중인 아이가 아들이면 이 어린 후궁도 권력의 암투에 휘말릴 것이다.
“황제폐하는 불로장생에 관심이 지대하시지요. 중원 통일을 하신 이후에 주변국가에 금군을 파견하는 이유 중 하나가 불로장생하는 영약이나 진귀한 약재를 구하기 위함입니다. 이십 여년쯤 전에 도가에서 방사(方士)를 파견하여 황실에 설법을 강의하였는데 그 자리에서불사의 비법 하나를 황제께 진언 드렸다고 합니다.”
“불사의 비법 ??? 사람은 모두 죽는데 그런 비법이 있을까요.. “
“설법을 들었던 대신들과 장군들 역시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황제께옵서는 어의들을 불러서 도가의 방사와 심도 있는 토론을 하시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방사에게 불사의 비법을 연구하게 자리를 마련해 주시었지요. 그것이 황궁에 있는 귀영옥(鬼靈獄) 입니다”
“귀영옥(鬼靈獄)이 그런 곳이었군요”
“지금껏 모르고 계셨습니까…??”
“단순히 지하 감옥이라고만 알고 있었어요..관심도 없었구요… 말씀 계속해주세요 상궁님”
“네..네.. 설비님… 귀영옥에는 도가의 방사와 황실의 어의가 전속되어서 불사의 비법을 실험하였다고 합니다. 어떤 비법을 실험하는지는 아무도 아는 것이 없지만 한가지 그 다양한 실험의 재료가 ‘사람’ 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영약을 만들어서 그걸 사람에게 실험을 한다는 말씀이군요”
“아마도 그럴 것이라 추측하옵니다 그런 실험을 몇 년에 걸쳐 하던 중에 황실의 어의가 실험에 회의를 느끼고 황제께 유서를 남겨 간언하고는 자살을 하였습니다. 유서를 읽은 황제께서 대노하시고 그 식솔을 잡아 오라 하셨는데 그 첩의 딸이 절세미인 이었습니다. 황제께서 첫눈에 반하시어 식솔을 살리는 대가로첩의 딸을 후궁으로 들이셨죠”
“그분이 향비님 이시었군요”
“네 짐작하신 그대로 입니다”
단순히 지하 감옥 이라고 만 알고 있었던 귀영옥이 그런 곳이라니…
죄인들이 수시로 끌려들어가서는 죽어서 나오는 곳이라 무시무시한 줄 알았지만 그런 내막이 있는 줄은 몰랐다.
황실에 자신이 모르는 비밀은 또 얼마나 될까 자신이 아는 비밀은 또 얼마나 되나 사방이 꽉 막힌 것 같고 절벽 위에 홀로 놓여진 심정이다. 어젯밤에 자신을 독살하려던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 ?
정비(正妃) 정희? 매비(梅妃)? 누구던 자신의 아들을 황제로 만들고 싶은 여인들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누군지 알았다고 하더라도 뭔가 어떻게 하려는 생각도 없다
답답한 가슴이 시원해지기는 하겠지.
“향비께서는 총명하신 데다가 성품이 인자하셔서 황실에 많은 상궁들과 내시들이 좋아하였습니다. 나아가서는 대신들과도 교류가 깊었습니다. 몇대에 걸쳐 명의를 배출한 가문이라 민초들에 대한 의술 봉사에 각별한 애정을 쏟으셨고 그런 향비님을 대신들도 존경하셨습니다. 황제께옵서도 그런 것을 높게 보시어 총애가 각별하셨지요. 신분이 높아져도 항상 자신을 낮추시고 아랫사람을 잘 돌보셨습니다. 그리고는 수태를 하여서 쌍둥이를 출산하셨는데 왕자님 한 분과 공주님 한 분이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지시게 되셨군요.. 헌데 …”
“왕자님과 공주님이 첫 돌을 맞이하신 날 이었습니다. 돌 잔치의 상에 누군가가 독을 타서 두 분을 암살하려고 했었습니다”
“저.. 저런.. 아무리 그래도 이제 첫 돌을 맞이하는 어린 분을 독살하려 하다니..”
가슴이 콱 막힌다. 바로 어제 자신이 당할 뻔했던 바로 그것이다 시녀가 먼저 먹고 알려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지금쯤 사늘한 시신이 되어 있을 것이다. 자신이 당한 것처럼 등골이 오싹하다. 어찌 이리도 잔인하다는 말인가. 이제 한살이 된 아기들이 대체 얼마나 위험하길래 독살을 시도한단 말인가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보니 목이 메어온다. 향비의 아들 딸은 세상에 나오기라도 했지만 자신은 이제 수태한지 두 달이 겨우 넘은 상태가 아닌가.
대체 내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죽이려 한단 말인가. 수태를 한 것이 죄인가 ?? 수태를 하고싶어서 한 게 아니었다. 황제가 보름 넘게 잡고 놓아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다. 황제의 애무를 받을 때마다 싫으면서 타오르는 육체가 저주스러울 뿐이다
“향비께서 어의의 집안 따님이시라 의술과 영약에 조예가 아주 깊으셨습니다. 그래서 중독의 증상을 바로 알아차리시고는 두 분의 목숨을 살리셨지요. 만약 향비님의 치료가 아니었다면 두 분은 모두 그날 숨을 거두셨을 겁니다”
“그리고는 후궁전이 발칵 뒤집혀져서 범인을 찾았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돌 잔칫상의 음식을 낸 수라전과 내시부가 크게 다칠 위기에 접하였는데향비님께서 황제폐하께 눈물로 간청하셔서 수라청과 내시부 모두 가벼운 경고만 받았습니다. 두 부서가 향비님께 커다란 은혜를 입은 것이지요.”
“참으로 현명하신 분이시군요.. 죄없는 많은 분들을 살리셨네요..”
“네.. 그때만 하더라도 황실에 닥친 큰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다들 피바람이 잠잠해진 줄 알았지만 그게 피의 폭풍으로 변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폭풍이라니요 ?? 대체 그게.. “
“향비님의 생일 잔칫날이었지요. 모든 후궁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향비님이 한사람 한사람 술을 따르고 음식을 나누어 잔치를 즐겼는데 그날 밤 절반이 넘는후궁과 왕자들 공주들이 갑자기 죽었습니다. 어의의 부검 결과 모두 독살되신 걸로 판명되었습니다”
“그.. 그런 일을… 어떻게.. “
“범인을 찾아내지 못하게 되자 향비님께서는 평소 자신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후궁들 그러니까 왕자님과 공주님을 살해 할거 같은 후궁들 모두를 독살시켜 버리신 겁니다.”
“마.. 맙소사.. 어떻게 그런 일을.. 하셨다는 말씀이신가요.”
“온화하신 분이 한번 화를 내시니 겉잡을 수가 없게 되어버리더군요. 황실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황제께서 그만큼 진노하시는걸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황제께서 직접 금군을 통솔해서 향비님께 가셨지요.. ”
막힌 가슴이 확 뚫리는 것 같다. 생각할수록 통쾌하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숨결이 가빠온다. 향비라는 분 정말 대단하시다. 어찌 그런 일을 하셨단 말인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매일 매일 독살 될 두려움에 떨고있는데 그분은 그런 두려움을 떨쳐내고 오히려 어둠 저편에 숨어있는 적에게 죽음을 선물했다.
자신에게 적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그 통찰력과 독약을 제조한 학식 그리고 숨은 적에게 독배를 마시게 하였던 그분의 결단력은 놀랍다. 그분의 용기가 부럽고 그분의 학식이 부럽다. 자신 같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설비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과자를 먹는다.
후원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향비님의 처소에 도착했을 때 황제께서 본 것은 피를 토하고 쓰러져 계시는 향비님 이셨습니다. 자결을 시도하신 것이지요. 그것을 목격하신 황제께서는 더 진노하시어 어의와 방사를 불러 향비님을 살려내시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극독을 마시기는 하셨으나 평소 독약에 내성을 키우셨던 것 때문에 죽음에 이르지는 못하고 며칠간 혼절 하셨다가 되살아 나셨습니다.”
“휴.. 정말 다행이네요… 황제께서 살리셨다니.. 왜죠.. 왜 살리신 걸까요..??”
“둘 중 하나이셨을 겁니다. 직접 죽이시고 싶으셨던가 아니면 사랑하셔서 살리고 싶으셨겠지요”
“향비님이 사경을 헤메이고 계시던 시각에 황제께서는 거의 매 경마다 상태에 대한 보고를 받으시고 향비님께 가셔서 상태를 보시고는 하셨습니다”
“향비님께서는 되살아 나시자 황제께서는 장시간에 걸쳐서 독대를 하시고 귀영옥 인근 후원에 정자를 내어서 살게 하셨습니다. 왕자님과 공주님도 함께 기거하기를 허락하시었구요. 그리고는 황실 전체와 대신들에게 함구령을 내리셨습니다. 더 이상 향비님을 일을 거론하지 말라고 엄명하셨지요”
“그렇게 해서 후원에 기거하시게 된 것이로군요”
“네.. 그렇습니다.. 향비님에게 많은 은혜를 입은 상궁들과 내시들은 향비님이 살아 오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였지요..”
시녀가 들어와서 음식이 준비되었음을 알렸다. 수라청에 들어왔을 때에는 갑갑한 마음 뿐이었지만 지금은 웬지 모르게 마음이 뿌듯하다. 설비는 시녀에게 채비를 하라고 일렀다
“되살아 나신 이후로는 몸이 쇠약해지셔서 먹는 것이나 움직이는 것 예전만 못하십니다.. 매 보름마다 어의와 방사들이 진맥을 하여 약을 처방해 드리고 있구요. 수라청이나 내시부에서 수발을 들고있기는 하지만 거동이 불편하십니다... 오래 계시지는 마십시오 설비님”
“네네.. 알겠습니다.. 어떤 분이신지 무척 궁금합니다… 이만 가볼께요”
“내시부에서 안내해 드릴 겁니다 살펴가십시오 설비님 그리고 조심하세요”
내감의 안내를 받아 설비가 수라청을 나서기 시작한다. 수라청 큰 상궁이 허리 숙여 큰 절을 한다. 황제의 총애를 받는 후궁이 이처럼 수라청에 직접 들려서 아래 것들과 소담하는 것은 향비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다. 수라청에 오는 후궁들은 대부분 상궁과 나인들을 뇌물로 포섭하기 위해서이지 사람과 사람으로서의 만남을 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것도 직접오는 경우는 거의 없고 아래 상궁을 통해서 패물과 옷감을 하사하는게 대부분이다.
멀어져가는 설비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수라청 큰 상궁은 새로운 기쁨에 잠겼다. 적어도 이 황실에 비(妃)라고 부를 만한 분이 또 한분 살고 계시구나.
내감의 안내를 받으면서 설비는 후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제 2 편>
진시황제 (秦始皇帝) - 2
연회장을 나온 설비는 시녀를 대동하여 수라청으로 향하였다. 지나치는 상궁 내관들 모두 바쁜 걸음을 하며 지나가는데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무엇이 저리도 저들을 기쁘게 하는지 설비는 궁금하기만 하다. 황제의 후궁이 되는 것도 황제의 총애를 받는 것도 모두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금군이 오기 전에는 모두들 자기를 사랑해주었고 웃음이 넘쳤다. 비록 첩의 자식이었지만 아버지나 어머니 배다른 오빠, 심지어는 큰어머니까지도 모두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가 자신을 미워한다. 아버지, 어머니와 오빠가 그립다.
이것이 다 저주스러운 몸 때문이다. 할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줘버리고 싶다.
수라청에 도착하니 수라청 상궁이 영접을 나온다.
“향비님께 중추절 음식을 대접하려고 해요”
“향비님에게 말씀이십니까?”
“네”
“으으음.. 곧 준비하겠습니다. “
상궁은 잠시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 곧 수라간으로 사라진다.
“설비님 모시겠습니다….“
수라청 큰 상궁이 고개를 숙이며 내당으로 안내했다.
시녀가 차와 간단한 다과를 내어온다
큰 상궁은 설비가 차와 다과를 들지 않고 내당 바깥 풍경을 바라보자 먼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과자 한쪽을 살며시 깨물어 삼킨다
“황궁의 소문은 바람보다 빠르군요”
“황공하옵니다 설비님… 지난 밤의 불미스러운 일은 저희 수라청하고는 무관합니다”
“그것을 문책하려고 온 것은 아니에요. 조용히 쉬고 싶어 향비님에게 음식을 가져가는걸 자청했어요”
“잘 하셨습니다. 태중의 아기씨에게도 아주 좋을 것입니다.”
“향비님은 어떤 분이신지요. 어떤 연유로 후원에 은둔하시게 된 것인지요”
“굳이 아시려 하지 마세요 설비님…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들으셔야 할 때입니다”
“향비님을 뵙고 결례를 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말씀해주세요”
큰 상궁은 한숨을 쉬고 잠시 말이 없다. 황제의 총애를 받는 어린 후궁이다. 아들을 내세워서 권력을 움켜쥐려는 후궁들과는 달리 이 어린 후궁은 권력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고있다. 수태중인 아이가 아들이면 이 어린 후궁도 권력의 암투에 휘말릴 것이다.
“황제폐하는 불로장생에 관심이 지대하시지요. 중원 통일을 하신 이후에 주변국가에 금군을 파견하는 이유 중 하나가 불로장생하는 영약이나 진귀한 약재를 구하기 위함입니다. 이십 여년쯤 전에 도가에서 방사(方士)를 파견하여 황실에 설법을 강의하였는데 그 자리에서불사의 비법 하나를 황제께 진언 드렸다고 합니다.”
“불사의 비법 ??? 사람은 모두 죽는데 그런 비법이 있을까요.. “
“설법을 들었던 대신들과 장군들 역시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황제께옵서는 어의들을 불러서 도가의 방사와 심도 있는 토론을 하시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방사에게 불사의 비법을 연구하게 자리를 마련해 주시었지요. 그것이 황궁에 있는 귀영옥(鬼靈獄) 입니다”
“귀영옥(鬼靈獄)이 그런 곳이었군요”
“지금껏 모르고 계셨습니까…??”
“단순히 지하 감옥이라고만 알고 있었어요..관심도 없었구요… 말씀 계속해주세요 상궁님”
“네..네.. 설비님… 귀영옥에는 도가의 방사와 황실의 어의가 전속되어서 불사의 비법을 실험하였다고 합니다. 어떤 비법을 실험하는지는 아무도 아는 것이 없지만 한가지 그 다양한 실험의 재료가 ‘사람’ 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영약을 만들어서 그걸 사람에게 실험을 한다는 말씀이군요”
“아마도 그럴 것이라 추측하옵니다 그런 실험을 몇 년에 걸쳐 하던 중에 황실의 어의가 실험에 회의를 느끼고 황제께 유서를 남겨 간언하고는 자살을 하였습니다. 유서를 읽은 황제께서 대노하시고 그 식솔을 잡아 오라 하셨는데 그 첩의 딸이 절세미인 이었습니다. 황제께서 첫눈에 반하시어 식솔을 살리는 대가로첩의 딸을 후궁으로 들이셨죠”
“그분이 향비님 이시었군요”
“네 짐작하신 그대로 입니다”
단순히 지하 감옥 이라고 만 알고 있었던 귀영옥이 그런 곳이라니…
죄인들이 수시로 끌려들어가서는 죽어서 나오는 곳이라 무시무시한 줄 알았지만 그런 내막이 있는 줄은 몰랐다.
황실에 자신이 모르는 비밀은 또 얼마나 될까 자신이 아는 비밀은 또 얼마나 되나 사방이 꽉 막힌 것 같고 절벽 위에 홀로 놓여진 심정이다. 어젯밤에 자신을 독살하려던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 ?
정비(正妃) 정희? 매비(梅妃)? 누구던 자신의 아들을 황제로 만들고 싶은 여인들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누군지 알았다고 하더라도 뭔가 어떻게 하려는 생각도 없다
답답한 가슴이 시원해지기는 하겠지.
“향비께서는 총명하신 데다가 성품이 인자하셔서 황실에 많은 상궁들과 내시들이 좋아하였습니다. 나아가서는 대신들과도 교류가 깊었습니다. 몇대에 걸쳐 명의를 배출한 가문이라 민초들에 대한 의술 봉사에 각별한 애정을 쏟으셨고 그런 향비님을 대신들도 존경하셨습니다. 황제께옵서도 그런 것을 높게 보시어 총애가 각별하셨지요. 신분이 높아져도 항상 자신을 낮추시고 아랫사람을 잘 돌보셨습니다. 그리고는 수태를 하여서 쌍둥이를 출산하셨는데 왕자님 한 분과 공주님 한 분이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지시게 되셨군요.. 헌데 …”
“왕자님과 공주님이 첫 돌을 맞이하신 날 이었습니다. 돌 잔치의 상에 누군가가 독을 타서 두 분을 암살하려고 했었습니다”
“저.. 저런.. 아무리 그래도 이제 첫 돌을 맞이하는 어린 분을 독살하려 하다니..”
가슴이 콱 막힌다. 바로 어제 자신이 당할 뻔했던 바로 그것이다 시녀가 먼저 먹고 알려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지금쯤 사늘한 시신이 되어 있을 것이다. 자신이 당한 것처럼 등골이 오싹하다. 어찌 이리도 잔인하다는 말인가. 이제 한살이 된 아기들이 대체 얼마나 위험하길래 독살을 시도한단 말인가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보니 목이 메어온다. 향비의 아들 딸은 세상에 나오기라도 했지만 자신은 이제 수태한지 두 달이 겨우 넘은 상태가 아닌가.
대체 내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죽이려 한단 말인가. 수태를 한 것이 죄인가 ?? 수태를 하고싶어서 한 게 아니었다. 황제가 보름 넘게 잡고 놓아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다. 황제의 애무를 받을 때마다 싫으면서 타오르는 육체가 저주스러울 뿐이다
“향비께서 어의의 집안 따님이시라 의술과 영약에 조예가 아주 깊으셨습니다. 그래서 중독의 증상을 바로 알아차리시고는 두 분의 목숨을 살리셨지요. 만약 향비님의 치료가 아니었다면 두 분은 모두 그날 숨을 거두셨을 겁니다”
“그리고는 후궁전이 발칵 뒤집혀져서 범인을 찾았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돌 잔칫상의 음식을 낸 수라전과 내시부가 크게 다칠 위기에 접하였는데향비님께서 황제폐하께 눈물로 간청하셔서 수라청과 내시부 모두 가벼운 경고만 받았습니다. 두 부서가 향비님께 커다란 은혜를 입은 것이지요.”
“참으로 현명하신 분이시군요.. 죄없는 많은 분들을 살리셨네요..”
“네.. 그때만 하더라도 황실에 닥친 큰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다들 피바람이 잠잠해진 줄 알았지만 그게 피의 폭풍으로 변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폭풍이라니요 ?? 대체 그게.. “
“향비님의 생일 잔칫날이었지요. 모든 후궁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향비님이 한사람 한사람 술을 따르고 음식을 나누어 잔치를 즐겼는데 그날 밤 절반이 넘는후궁과 왕자들 공주들이 갑자기 죽었습니다. 어의의 부검 결과 모두 독살되신 걸로 판명되었습니다”
“그.. 그런 일을… 어떻게.. “
“범인을 찾아내지 못하게 되자 향비님께서는 평소 자신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후궁들 그러니까 왕자님과 공주님을 살해 할거 같은 후궁들 모두를 독살시켜 버리신 겁니다.”
“마.. 맙소사.. 어떻게 그런 일을.. 하셨다는 말씀이신가요.”
“온화하신 분이 한번 화를 내시니 겉잡을 수가 없게 되어버리더군요. 황실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황제께서 그만큼 진노하시는걸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황제께서 직접 금군을 통솔해서 향비님께 가셨지요.. ”
막힌 가슴이 확 뚫리는 것 같다. 생각할수록 통쾌하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숨결이 가빠온다. 향비라는 분 정말 대단하시다. 어찌 그런 일을 하셨단 말인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매일 매일 독살 될 두려움에 떨고있는데 그분은 그런 두려움을 떨쳐내고 오히려 어둠 저편에 숨어있는 적에게 죽음을 선물했다.
자신에게 적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그 통찰력과 독약을 제조한 학식 그리고 숨은 적에게 독배를 마시게 하였던 그분의 결단력은 놀랍다. 그분의 용기가 부럽고 그분의 학식이 부럽다. 자신 같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설비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과자를 먹는다.
후원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향비님의 처소에 도착했을 때 황제께서 본 것은 피를 토하고 쓰러져 계시는 향비님 이셨습니다. 자결을 시도하신 것이지요. 그것을 목격하신 황제께서는 더 진노하시어 어의와 방사를 불러 향비님을 살려내시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극독을 마시기는 하셨으나 평소 독약에 내성을 키우셨던 것 때문에 죽음에 이르지는 못하고 며칠간 혼절 하셨다가 되살아 나셨습니다.”
“휴.. 정말 다행이네요… 황제께서 살리셨다니.. 왜죠.. 왜 살리신 걸까요..??”
“둘 중 하나이셨을 겁니다. 직접 죽이시고 싶으셨던가 아니면 사랑하셔서 살리고 싶으셨겠지요”
“향비님이 사경을 헤메이고 계시던 시각에 황제께서는 거의 매 경마다 상태에 대한 보고를 받으시고 향비님께 가셔서 상태를 보시고는 하셨습니다”
“향비님께서는 되살아 나시자 황제께서는 장시간에 걸쳐서 독대를 하시고 귀영옥 인근 후원에 정자를 내어서 살게 하셨습니다. 왕자님과 공주님도 함께 기거하기를 허락하시었구요. 그리고는 황실 전체와 대신들에게 함구령을 내리셨습니다. 더 이상 향비님을 일을 거론하지 말라고 엄명하셨지요”
“그렇게 해서 후원에 기거하시게 된 것이로군요”
“네.. 그렇습니다.. 향비님에게 많은 은혜를 입은 상궁들과 내시들은 향비님이 살아 오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였지요..”
시녀가 들어와서 음식이 준비되었음을 알렸다. 수라청에 들어왔을 때에는 갑갑한 마음 뿐이었지만 지금은 웬지 모르게 마음이 뿌듯하다. 설비는 시녀에게 채비를 하라고 일렀다
“되살아 나신 이후로는 몸이 쇠약해지셔서 먹는 것이나 움직이는 것 예전만 못하십니다.. 매 보름마다 어의와 방사들이 진맥을 하여 약을 처방해 드리고 있구요. 수라청이나 내시부에서 수발을 들고있기는 하지만 거동이 불편하십니다... 오래 계시지는 마십시오 설비님”
“네네.. 알겠습니다.. 어떤 분이신지 무척 궁금합니다… 이만 가볼께요”
“내시부에서 안내해 드릴 겁니다 살펴가십시오 설비님 그리고 조심하세요”
내감의 안내를 받아 설비가 수라청을 나서기 시작한다. 수라청 큰 상궁이 허리 숙여 큰 절을 한다. 황제의 총애를 받는 후궁이 이처럼 수라청에 직접 들려서 아래 것들과 소담하는 것은 향비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다. 수라청에 오는 후궁들은 대부분 상궁과 나인들을 뇌물로 포섭하기 위해서이지 사람과 사람으로서의 만남을 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것도 직접오는 경우는 거의 없고 아래 상궁을 통해서 패물과 옷감을 하사하는게 대부분이다.
멀어져가는 설비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수라청 큰 상궁은 새로운 기쁨에 잠겼다. 적어도 이 황실에 비(妃)라고 부를 만한 분이 또 한분 살고 계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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