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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익장전기 - 1부3장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19:10 696회 0건
키이이이이잉--!

한상기는 오늘 무척 마음이 뿌듯했다. 역시 남자는 남자로서의 자신을 증명해야 남자인 것일까?

10년이 넘었다. 그가 자신이 남자라는 사실을 잊은 것이 벌써 10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마지막이 새벽에 잠을 깨어 우연히 본 흐물거리는 작은 텐트였다. 그리고 끝이었다. 한 번도 그 뒤로 어떤 상황에서도 한 번 잠든 그의 자지는 깨어날 줄 몰랐다.

불능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자신은 남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자로서의 자신을 잊었다. 어차피 별 상관도 없었다. 아내도 죽고 더 이상 여자를 사랑할 자신도 없었기에 그렇게 살다가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나중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 사귀기까지 하게 되고서도 남자로서의 능력이 무슨 상관이냐 그렇게 여겼었다. 가족이면 되지 않겠느냐, 가족으로서 서로 사랑하고 보듬어주면 되지 않겠느냐, 그렇게 스스로 납득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지난밤 진선과의 기억은 그에게 남자로서의 자신을 되찾게 해 주었다. 그것은 자신감이었다. 살아있다는 존재감이었다. 성취감이고 충만감이었다.

그는 지난밤 진선의 보지에 마음껏 정액을 토해낸 자신의 자지가 자랑스러웠다. 그녀를 그리 신음하게 하고 그리 비명지르게 하고 그리 허덕거리게 만든 자신의 자지가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그런 자지를 가진 자신도 자랑스러웠다.

아마 처음 전처와 섹스를 하고 나서도 이랬을 터였다. 열여덟이었던가? 대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와 첫키스를 나누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감미로운 그녀의 입술에 그만 그녀를 품에 안고 말았다. 그녀는 떨고 있었다. 떨면서도 그의 품에 매달리듯 안겨왔었다. 가슴을 만질 때 움찔 떨면서도 열기에 들뜬 눈으로 자신을 보는 그녀의 까만 눈을 보면서 그는 더 이상 자제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아마 뒷산 공터였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가방에서 시합에서 입었던 운동복을 꺼내 바닥에 깔았다. 그리고 그 위에 다시 자신의 옷을 벗어 깔았다. 그리고 그녀를 뉘였다. 그리고 그녀를 벗겼다.

아름다웠다.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다. 깊은 겨울 밤 달빛에 비친 그녀의 알몸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웠다. 그래서 맹세했다. 평생을 오로지 그녀를 위해 살아가겠노라고.

그날 그는 처음으로 섹스를 경험했다. 사실 너무 서툴고 서두르느라 뭐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몰랐다. 솔직히 아팠다. 그녀만큼은 아니었지만 전혀 경험없는 처녀의 생보지를 뚫느라 그의 자지는 벌겋게 부어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쓰라렸다. 하지만 설마 그녀보다 더 아팠을까? 미간을 찌푸리며 신음하고 있는 그녀를 보며 무슨 큰 일이라도 난 줄 알았었으니까.

첫날밤의 기억은 그것이 끝이었다. 그의 옷에 묻어 있는 점점한 붉은 혈흔과 정액과 피가 엉켜 있던 그녀의 하얀 보지와 그의 잇자국으로 잔뜩 더럽혀져 있던 하얀 젖가슴과 그리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를 위해 웃어주던 그녀. 과연 그는 평생을 그때의 약속처럼 그녀를 위해 살았다 자신할 수 있을까? 그 날을 생각할 때면 가슴 한 구석이 아련히 아려왔다.

"훗...!"

그러고 보면 참 옛날 일이었다. 벌써 몇 년 전 일이던가? 42년 전이었다. 그때는 서울에 지하철도 없었다. 경부고속도로도 없었다. 이곳은 그저 허허벌판 가는 이도 없는 빈 논에 빈 밭이었다.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한 집들과 가난한 거리... 지금 본다면 차라리 다른 세상이라 여기고 싶을 정도로 너무 긴 시간이었다.

이제 그녀는 죽고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대신해 새로운 아내를 맞았다. 죽을 당시의 그녀보다 더 젊은, 그에 비해서도 한참 젊은 아름다운 아내를. 그렇다고 그녀를 잊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녀 위에 새로운 그가 책임져야 할 가족을 더한 것 뿐이었다.

"원망할까...?"

그리고 오늘 또 하나의 인연을 만들었다.

한진선.

그가 오늘 만든 또 하나의 깊은 인연이었다. 어쩌면 지금이 아내보다도 더 깊은, 죽은 아내에 이어 두 번 째로 그가 자신의 정을 심은 여인이었다.

올해 스물두 살. 공교롭게도 그와 지금의 아내와의 나이차이와 같은 나이였다. 둘이 동갑이었고 그래서 만나 결혼했다면 진선만한 아이를 가질 수 있었을까?

그런데 그런 그녀가 그의 밑에서 울부짖었었다. 달뜬 신음을 토하고, 아파 비명을 지르고, 도저히 못하겠다 애원을 했었다. 헐떡이는 숨소리와 쇳소리 섞인 신음소리와 간간이 끊기던 조그만 말소리와, 그리고 손을 대면 와락 무너질 듯 부드럽던 그녀의 피부와,

그 느낌이 생생했다. 기름때와 쇳가루가 범벅이 되어 있는 그의 이 거친 손에 그 부드럽고 달콤하던 느낌이 너무나도 생생했다.

꿈은 아니었다. 절대 꿈은 아니었다.


키이이이이잉--!

"아...!"

잠깐 딴 생각에 빠져들었다. 기계라는 것이 편리한 만큼 위험한 물건인데.

지금 그가 하는 것은 기계를 깎아 물건을 만드는 일이었다. 어차피 정년퇴직을 하고 집으로 물러나 앉으면서 할 일도 없고 해서 시작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취미생활이었다.

원래 그는 기계공 출신이었다. 그가 처음 태실산업에 입사했을 때 태실산업은 작은 가내공장이었고, 그는 그곳에서 기계공 보조를 했었다.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두고, 아내의 임신으로 어쩔 수 없기 결혼을 하게 되면서 뭐라도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 일로 10년만에 대학도 졸업할 수 있었고, 자식도 낳고, 나중에는 집도 지어 아내의 소망을 이루어주었으니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좋은 기억은 거의 없었다. 매일 맞고 구르고 욕먹고, 더구나 허구헌날 잔업에, 야근에, 철야까지 빈번했다. 2년 남은 대학을 8년에 걸쳐 더 다녔던 것도 그래서였다. 공부할 시간 자체가 없었으니까.

그래도 당시 가내공장이던 태실산업의 단 네 명 있던 직원 가운데 하나라고 나중에는 관리직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대학졸업장도 있었기 때문에 바로 과장으로 시작할 수 있었고 이내 사장의 비서로서 가장 최측근으로 일하게 되었었다. 그래봐야 그것도 벌써 30년 전의 일이었지만 말이다.

지금이야 그때와는 당연히 사정이 달랐다. 이걸 해서 돈을 벌겠는가? 이걸 잘 해서 출세를 하겠는가? 그러기에는 그의 나이 벌써 예순둘이었다. 당장 무덤에 들어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나이에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할 이유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말 그대로 취미였다. 그냥 기계 만지고 뭐라도 만드는 게 좋아서 쇳덩이를 깎고 다듬고 붙이고 자르는 일을 하고 있는 것 뿐이었다. 온통 기계기름에 쇳가루에 범벅이 되어서는.

그래도 오늘은 여느 때보다 작업도 잘 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역시 남자는 남자여야 하는 모양이었다. 아직도 자신이 남자라는 자신감을 갖게 되자 아무것도 아닌 기계일조차 어쩐지 수월하게 되어 가는 것 같았다.

"읏차!"

보라. 이 무거운 쇳덩이가 이리 가볍지 않은가 말이다. 어제까지였다면 아마 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으리라. 머리를 쥐어짜내며, 이것저것 도구를 동원해가며 그제서야 겨우 움직일 수 있었을 것이다.

남자로 돌아온 댓가는 이렇게 컸다.

문득 어느새 원뿔 모양으로 일어선 자신의 자지가 대견스러웠다. 지난 밤 그에게 남자임을 확인시켜준 자지였다.

"훗...."

진선의 알몸이 떠올랐다. 진선의 가늘디 가는 하얗고 여린 알몸이 가득 떠올랐다. 그가 직접 만든 매끈한 보지도, 그 안에 숨은 분홍빛 살점들도... 그리고 발갛게 달아오른 채 그에게 매달리던 몸짓도, 흥건히 땀에 젖어 번들거리던 그녀의 그 모습도, 젖가슴은 얼마나 달고, 어깨는 얼마나 부드러웠던가...

보지의 조임도, 주름벽의 꿈틀거림도, 정신없이 뛰던 그녀의 심장 고동소리도, 귓가를 간질이던 그녀의 숨소리도, 등에 박히던 그녀의 손톱도, 허리를 조이던 그녀의 기름진 허벅지도...

흐뭇했다. 너무 흐뭇해서 가랑이가 안 다물어져 도저히 걸음을 떼어 놓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좋았다. 그래도 그저 좋았다.

그러나,

키이잉--!

"앗차!"

하마터면 선반에 손을 집어넣을 뻔 했다. 힘이 넘치는 건 좋은데 이래서야 도저히 작업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방금 목숨을 잃을 뻔한 손의 신세를 지기는 싫었다.

해는 아직 너무 높았다. 해가 떨어지고도 더 기다려야 했다. 그의 평생 이렇게 하루가 길어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는 선반 위에 올려진 쇳덩이를 쥔 손에 잔뜩 힘을 주었다. 정말 힘이 너무 넘쳐나고 있었다. 도저히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늦바람이 아주 제대로 난 모양이었다.


한상기가 지난밤의 기억에 흐뭇해 하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을 때, 민경 역시 자신만의 고민에 빠져 있었다.

원래는 학교에 출근해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재단이사장으로서 학교에 나가 여러 가지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오전 중에 처리해야 할 것들도 적잖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집에 남아 있었다. 출근하겠다고 말하고서는 다시 돌아와 그녀의 집 지하실에 들어와 있었다.

알고 있었다. 남편이 간밤에 누구와 섹스를 나누었는가를. 설마 자신의 친구인 큰며느리는 아닐 터였다. 그렇다고 자신의 딸일 리도 없었다. 하물며 피가 이어져 있는 손녀나 종손녀들은 더더욱 아닐 것이었다. 옥탑박 대학생 처녀들은 어제 돌아오지 않았다. 남은 것은 하나, 동생인 진유도 들어오지 않았다 하니 지하방 자매의 언니 한진선 뿐이었다.

이제 겨우 스물두 살, 아직 너무나도 어리고 싱싱한, 질투나도록 싱싱하고 부드러울 것 같던 그 아가씨였다.

마침 진선이라는 아가씨는 출근을 않고 집에 있는 것 같았다. 더 이상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직접 이렇게 자신의 남자를 앗아간 여자가 어떻게 생겼는가 보려 찾아온 것이었다. 그랬는데...

"으으... 으으으으... 으으으..."

정작 찾아온 그녀의 지하방에서 그녀는 누워 앓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누워 식은땀까지 흘리며 끙끙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몸을 뒤채고 있었다.

"후우..."

지난밤 그녀는 한상기에게 모든 것을 용서했노라 선언했었다. 괜찮다고, 모두 괜찮다고, 그저 남편으로서 곁에만 있어달라 애원했었다.

굴욕이었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는데도 그것을 따지기는커녕 그래도 버리지만 말아 달라 울면서 애원하는 너무나도 추하고 굴욕적인 모습이었다. 그것은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녀의 높은 긍지와 자존심에 그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찾아왔다. 남편 모르게, 혹시라도 남편이 알까 몰래 그녀를 찾아왔다. 지난밤 그의 남편을 빼앗아갔던 그녀를.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녀가 이렇게 앓아누워 있는 것이었다. 현관문도 방문도 제대로 잠그지 못하고 채 이불도 덮지 못한 알몸으로, 아마도 어젯밤 그 모습 그대로일 모습으로 누워서는 사람이 온 것도 모르고 답답한 신음만 흘리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보았다. 진선이라는 아가씨의 가랑이를.

참혹했다. 어떻게 이렇게 참혹한 몰골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순간 남편을 의심했다. 남편이 여자를 학대하며 쾌락을 얻는 변태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녀의 전남편도 그랬으니까. 그녀의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 전남편도 역시 그랬으니까.

그래서 한참을 겨우 현관만 닫은 채 부엌에 서서 앓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도저히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남편에 대한 의심과, 혹시나 싶은 증오와, 그리고 어쩌면 그녀와 같은 처지일지 모르는 그녀의 경쟁자에 대한 동정과, 모든 것이 뒤엉키며 그녀는 어떻게 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어찌해야 할까? 도대체 어찌해야 할까?

그런데 그때,

"어... 엄마... 엄마... 흑흑흑... 흑흑... 엄마 잘못했어요, 엄마..."

진선은 울고 있었다. 스물두 살이면 다 큰 나이인데도 마치 아이처럼 엉엉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어른이라지만 스물두 살이면 아직 한참은 어린 나이였다. 더구나 그녀는 중학교 때 부모를 잃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한창 부모에게 어리광을 부릴 나이에 졸지에 소녀가장이 되어 동생까지 돌보며 지금까지 살아왔을 터이니 그만큼 속에 자라지 않고 쌓은 것도 많았을 터였다.

그런 그녀에게 어제의 경험이 어떻게 다가왔으리라는 건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민경은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남편의 정체를 알고, 남편에 의해 굴욕과 치욕을 알게 되었던 그 순간, 자신이 느껴야 했던 그 감정을.

외로웠었다. 외롭고 죄스러웠었다. 어쩐지 죄를 지은 것 같아 차마 부모님 얼굴을 보기가 부끄러웠었다. 그래서 연락도 끊었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부모님이 알아주시기를 바랬었다. 부모님이 그 사실을 알고 그녀를 그만 용서해주기를 바랬었다. 용서한다는 그 한 마디를 해 주기를 바랬었다. 그러면 정말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님은 그러한 사실을 죽는 그 순간까지 알지 못했다. 그녀가 말하지 않았고, 그녀의 남편이 철저히 그들을 기만했던 때문이었다. 그저 착하고 이해심 많은 남편으로만 알았다. 처가식구에게도 잘하는 성실한 사위인 줄만 알고 있었다. 얼마나 그 사실이 억울하고 괴로웠던가.

아마 진선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처녀였다. 아직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는 이불 위의 붉은 핏자국이 다른 곳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그녀는 분명 처녀였을 것이었다. 민경 자신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다 늙은 한상기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성으로 관심을 가지고 호감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진선과 같은 나이어린 아가씨라면 더 그랬을 것이었다. 그녀 나이 또래의 아가씨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이성에 대한 꿈과 섹스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을 터이니.

그런데 그녀의 처녀를 그 다 늙은 집주인이 가져가 버렸다. 평소 친절한 얼굴로 그녀를 보살펴주던 집주인이 어느새 탐욕스런 짐승이 되어 그녀를 유린하고 그녀의 첫경험을 가져가 버렸다.

몸이 아팠다. 온몸에 새겨진 잇자국이며 멍자국이며, 새빨갛게 퉁퉁 부어 있는 보지며 지난밤 그녀가 얼마나 가혹하게 시달렸는가를 보여주었다. 아팠을 것이었다. 몹시도 아팠을 것이었다. 얼마나 서러웠을까? 아무도 없는 데 혼자 앓고 있는 것이. 거기다 너무나도 허무하게, 그녀의 뜻과는 달리 치러진 첫경험과 어느새 잃어버린 처녀는 그녀의 죄의식을 자극했을 것이었다. 내가 잘못했다고. 내가 잘못해서 그랬다고.

민경 자신도 그랬기에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너무 착하고 순진했기에 차마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못하고 더욱 자신을 학대하려 들었을 것이었다.

민경은 가만히 방 한 쪽에 놓여 있는 세숫대야를 집어 그 안에 안에 따뜻한 물을 받았다.

촤아아아아--!

그리고 피와 땀과 체액으로 얼룩진 수건을 빨았다. 핏자국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빨아도 빨아도 화인처럼 하얀 수건 위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자신이 아니라 그녀를 위해 펑펑 눈물을 흘리며 울고 싶었다. 저래서는 안 되었다. 저렇게 되어서는 안 되었다. 저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아이였다.

민경이라고 진선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녀는 착한 아가씨였다. 다정다감하고 순진한 아가씨였다. 대가 약하다는 게 조금 단점일 뿐, 그조차도 자신의 동생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단호해질 수 있는 상냥하면서도 강한 아가씨였다. 정말이지 저래서는 안 되었다.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뺨으로 눈물이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세숫대야를 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진선의 알몸을 닦아주었다.

터럭 하나 없이 매끈한 진선의 보지가 보였다. 너무나도 하얗고 매끄러운 보지는 그녀의 균열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주고 있었다. 균열이 시작되는 곳 빨갛게 충혈되어 부풀어 있는 그것이 보였다. 얇은 살점을 헤집고 비져나온 작은 덩어리가 보였다.

그녀는 무심코 그것을 건드려 보았다.

"아읏!"

아파 신음하는 와중에도 그녀는 화들짝 몸을 움츠리며 반응을 보였다.

아픈 것일까? 아니면 또다른 자극 때문이었을까?

문득 그녀는 웃음이 나는 것을 느꼈다. 우스웠다. 지금 상황이 너무나도 우스웠다.

진선은 경쟁자였다. 그녀의 남편과 섹스를 나눈 그녀의 경쟁자이자 시앗이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당장 깨워 따져야 했다. 한참을 따지고 그녀가 울면 돈봉투 하나 던지며 그녀에게 헤어지라 큰소리로 요구해야 했다. 그러면서 우는 그녀를 내려다 보아야 했다.

머리끄댕이를 잡고 싸우는 것도 생각해 보았다. 별로 모양새는 좋지 않지만 진선 정도라면 어떻게 이길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잔뜩 헝클어진 모양새로 한 쪽에 뒹굴고 있으면 울고 있는 그녀를 향해 역시 돈봉투를 던져주는 것이었다. 얼마를 넣을까? 얼마를 넣으면 확실한 우월감을 느낄 수 있을까?

확실히 아침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았다. 학교에 출근해서도 심심하면 보았었는데... 상상력이 너무 지나쳤다.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민경은 자신이 진선을 동정하고 있음을 느꼈다. 땀으로 흥건한 그녀의 몸을 닦아주면서, 그녀의 상처투성이 젖가슴과 빨갛게 부어 있는 보지를 꼼꼼히 직접 닦아주면서, 민경은 자신이 진선에게 어떠한 악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어떠한 적의도 어떠한 경계심도 갖고 있지 않았다.

물론 아주 그런 것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었다. 그러나 진선의 몸을 닦아주는 그녀의 정성스런 손길은 분명 민경의 진심이었다. 그녀를 불쌍히 이겨고, 그녀를 안쓰러워하고, 그녀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어쩌면 민경은 진선을 마치 딸, 아니 막내동생을 대하듯 여기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마 그럴 것이었다. 남이라면 이리 기꺼이 보기에도 흉측한 알몸을 구석구석까지 꼼꼼히 닦아주거나 할 리 없었으니. 더구나 그 모습들이 자신의 남자가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그녀는 더 이상 질투해봐야 의미없다는 것을 알았다. 두 가지였다. 남편을 생각만큼 사랑하지 않거나, 아니면 남편을 생각한 그 이상으로 사랑하거나. 그조차도 아니면 어느새 이 자그마한 아가씨를 남편보다 더 사랑하게 되었거나.

진선의 부푼 보지를 닦아주는 민경의 손길에 조금 힘이 들어가 있었다.



똑똑--!

진선은 꿈을 꾸었다.

엄마가 자신의 머리맡에서 이마를 만져주는 꿈이었다. 엄마의 손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시원했다. 그래서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 차마 말도 꺼내지 못하고 가만히 그러고 있었다.

그러다 잠이 들었다. 살풋 그러나 오랜만에 깊이 잠들 수 있었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그녀는 반가운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
"괜찮니?"

한상기였다.

그녀는 자신의 곁에 있어준 것이 한상기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이마를 만져주던 그 그리운 따뜻한 손도 아마 그의 크고 거친 손일 거라고 생각했다.

고마웠다.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이런, 아직 아프니? 웬 눈물은..."

눈물을 닦아주는 상기의 손을 그냥 내버려두고 그 온기를 느꼈다.

다정했다. 할아버지는 너무나 다정했다. 울음이 터져나올 정도로.

"미안하구나."
"아... 아니요..."
"설마 이렇게까지 될 줄은..."
"괘... 괜찮아요. 벌써 다 나았는 걸요?"

거짓말이었다. 그녀는 지금도 바로 앉지 못할 정도로 사타구니가 욱신거리고 있었다. 아마 제대로 걷자면 며칠은 이대로 정양을 해야 할 터였다.

그러나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다. 사랑받고 싶었다. 사랑하고 싶었다. 그를, 그에게서, 진심으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다. 거추장스러운 존재는 되기 싫었다. 부담스러운 존재도 되기 싫었다. 버려지기 싫었다. 그래서 그녀는 애써 아픔을 참으며 눈물이 흥건한 얼굴로 그를 향해 웃어 보여 주었다.

"다행이구나..."

상기도 그것을 알았다. 진선의 그같은 순진한 속내따위 모르기엔 슬프게도 그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 그러나 모른 체 했다. 그 역시 진선이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오늘은 무리일 것 같았다. 이 상태라면 자칫 큰 탈이 날 수도 있었다.

"다시 누우려므나. 내가 죽 데워다 줄 테니. 아직 밥 안 먹었지?"
"아... 아뇨..."
"있어라. 아주머니가 죽 맛있게 끌여서는 가져다 주라더라."
"아주머니...?"
"우리 마누라!"
"...!"

그녀는 잠시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아주머니라니? 그의 아내라니?

설마... 설마... 알고 있었던 것일까? 어떻게? 어떻게?

당황하는 진선을 보며 상기는 안심하라는 듯 보충해 설명해 주었다.

"알고 있어."
"알고... 있어요...?"
"응. 알고 있어. 알고 있으면서 죽 갖다주라 한 거야."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한 편으론 분했다. 할아버지의 사모님에게 경쟁상대조차 되지 못한다 여겨지는 자신이 너무 서럽고 분했다. 차라리 찾아와 머리끄댕이 붙들고 화라도 냈다면, 차라리 부엌칼 들고 찌르겠다 협박이라도 했다면,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격동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그런 그녀를 한상기가 가만히 다가와 어깨를 쓰다듬어주었다. 그의 손은 여전히 크고 여전히 거칠고 여전히 따뜻했다. 그녀는 조용히 그의 품에 자신을 기댔다.

"그녀에게도 그녀 나름의 사정이 있단다."
"...!"
"언젠가 알게 될 거야.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우리 사이를 인정했는가를..."
"아...!"

그의 다른 손이 그녀의 젖은 뺨을 쓰다듬고 있었다. 거칠고 따뜻한... 매캐한 기름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 손에 자신의 뺨을 기댔다. 마음이 놓였다. 한결 들끓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괘... 괜찮아요... 나는... 나는..."
"그래. 괜찮다면 됐다. 아니, 괜찮아야 돼."
"네... 네..."
"자, 죽 먹자. 조금만 기다려라?"

부드러우면서도 또 단호했다. 상냥하면서도 또 엄격했다. 조금전 그녀를 보던 한상기의 강한 눈빛에서 그녀는 그의 또 다른 모습을 느꼈다. 더욱 그가 자신이 남자라고 생각했다. 누구의 남편이든 그는 자신의 남자라고 생각했다.

누워 눈을 감는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행복은 아니더라도 마음은 안정되었다. 좋았다. 그저. 그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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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마검천황, 살성지, 천녀랑군, 죄다 리메이크 할 겁니다. 다만 리메이크하기 전에 기존의 내용을 싹 다 포맷해 버리려구요. 그래야 제대로 쓸 수 있을 것 같거든요. 특히 살성지와 천녀랑군, 원래 이런 계획이 아니었는데 어디서 꼬였는지 제 글쓰기 스타일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딱 색마검천황이 쓰기도 쉽고 또 저 자신도 재밌고 아주 즐겁게 쓴 놈이었는데 말이죠. 아마 조금 비슷한 냄새가 날 겁니다. 초반에 힘을 받아 탄력을 얻어가는 과정이 아주 조금 비슷합니다. 덕분에 다시 쓸 생각이 들었죠. 요거 끝나면 색마검천황 - 부제 환상동탁전입니다.

그리고 이거 무협입니다. 프롤로그에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미 기연은 얻은 상태입니다. 다만 모종의 오류로 인해 그 기연의 내용을 주인공은 모르고 있습니다. 단지 무의식적으로 그 기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이죠. 주변인물들의 이해할 수 없는 반응들도 그와 연관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그때부터 마교와의 싸움이 시작되죠. 옙. 마교입니다. 천녀랑군과도 이어지고, 살성지와도 이어지고, 색마검천황만 별개네요. 그밖에 아마 제가 쓰는 무협은 전부 이것과 연관이 있을 듯. 다 쓸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ㅋㅋㅋ

아, 슬슬 카페도 다시 운영해야겠네요. 설정도 또 올려봐야죠. 아직 따로 만들어둔 건 없지만... 완결 날 수 있기를 모두 기도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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