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면 울렁이는 기분 탓에 나도 모르게
바람 불면 저편에서 그대여 니 모습이 자꾸 겹쳐
오 또 울렁이는 기분 탓에 나도 모르게
바람 불면 저편에서 그대여 니 모습이 자꾸 겹쳐..."
- 봄의 캐럴,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 중 -]
4월이 되자 봄 기운이 완연해졌다. 거리 곳곳에 꽃들이 흐드러졌다. 잘 가꿔진 거리에는 벚꽃이 만개했다. 잠시 쉬며 거리를 바라보노라면 달콤한 꽃내음이 코 끝을 스치는 그런 계절이다.
여느 때와 같은 조용한 오전이 지나갔다. 점심을 먹고 은행에 다녀왔다. 통장에 찍힌 잔고를 보니 저절로 한숨이 난다. 턱 없이 부족하다.
3월에 마지막 주에 원장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왠지 모를 섭섭함이 느껴졌다.
시설의 아이들은 20살이 되면 시설을 나가야 한다. 독립이 힘들 경우 조금 더 연장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없는 케이스였다. 시설보조금이라던가, 운영이라던가 다 큰 아이를 시설에 두는 건 여러모로 곤란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시설 출신인 선미 언니처럼 자격증을 따서 직원으로 시설에 남는 경우도 일부 있지만, 시현이는 그럴 생각은 없었다. 자신의 집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어릴 적부터 해왔던 생각이다.
생각에 잠겨 누가 부르는지도 모르고 걸었다. 카페 앞에 다달아 유리문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누군가 어깨를 홱 잡아챘다. 무방비였던 시현이의 몸이 크게 한바퀴 돌았다.
"이, 씨발년아!"
눈 앞이 번쩍했다. 고개가 돌아가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꽃 냄새 대신 술 냄새가 물씬 풍긴다. 얼얼한 얼굴을 붙잡고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웬 남자가 서있었다. 낯선 남자였지만, 처음 본 사람은 아니었다. 언뜻 생각이 나질 않았다.
"이 개같은 년, 니 년이 잘나면 얼마나 잘났다고 사람을 무시해?!"
낯선 남자는 주저앉은 시현이의 옆구리를 걷어 찼다. 퍽- 둔착한 소리와 함께 강한 통증이 느껴진다. "어흑" 저도 모르게 입에서 신음이 나왔다.
카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같은 타임에 일하는 알바 오빠가 그 남자의 가슴을 거칠게 밀었다. 뒤이어 쏟아져 나온 카페 손님들이 주위를 둘러쌌다. 시현이의 머리채를 잡으려던 낯선 남자는 금세 저만치 떠밀렸다. 사장님이 뛰쳐나와 시현이를 감싸 안았다. "괜찮아?! 시현아, 괜찮아?" 귀에서 삐이- 하는 소리가 났다.
진우는 학교를 마치자마자 미친듯이 뛰었다. "헉..헉..헉" 매일 아침 로드웍으로 단련 된 진우였지만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시현이는 카페 안 쪽 매니저실에 앉아있었다. 진우를 본 시현이가 힘 없이 웃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나자 머리 끝까지 분노가 치솟았다. 많고 많은 카페 죽돌이 중 하나였다. 몇 달전인가 시현이에게 고백을 했다가 거절당했다고 했다. 한동안 카페에 나타나지 않다가 만취한 채 나타나 이런 짓을 벌였다.
시현이의 볼이 살짝 부었다. 쓰러지면서 손을 잘못 짚었는지 오른 손목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병원에 가서 간단하게 검사만 받고, 카페에 돌아왔다. 심장이 뛰고 다리에 힘이 빠져서 걸을 수가 없었다. 진우에게 데리러 오라고 연락했다.
"이 개새끼를..." 진우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두 눈에서 불이 뿜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말 하지 말랬지.." 시현이가 힘 없이 고개를 저었다. 왼손을 뻗어 진우의 손을 살짝 잡았다. 하루종일 떨리던 가슴이 진우를 보자 조금 안정되는 기분이다. 가해자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카페 손님들이 둘러싸는 바람에 도망도 가지 못했다.
"지금 그게 중요해!" 근처에 있는 뭐라도 걷어차고 싶은 기분이었다. 살의가 끓어오른다.
시현이는 진우를 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그러지마. 응? 진우야, 나 힘들어. 여기 좀 앉아." 시현이가 살짝 옆으로 비켜 앉았다. 진우는 씩씩거리며 화를 삭이지 못했다. 몇 번이나 진우의 손을 당긴 다음에야 옆에 앉혔다.
"봐봐." 진우가 손을 들어 시현이의 머리카락을 살짝 쓸어넘겼다. 손이 올라오자 시현이의 몸이 살짝 움찔했다. 볼이 빨갛게 부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가볍게 맞은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폭행이었다. 진우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시현이는 진우의 팔을 잡은 손에 다시 힘을 준다. "괜찮아, 지금은 안아파. 어디 가지 말고 옆에 앉아있어. 누나 힘들어." 시현이가 살짝 고개를 기울여 진우의 어깨에 기댔다.
그런 상황에 처하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진우였다. 하지만 막상 진우를 보니 또 다른 걱정이 들었다. 보기와는 달리 다혈질적인 면이 있는 진우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더 진우에게 기댔다.
진우의 숨소리, 진우의 냄새, 진우의 어깨. 안심이 됐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핑 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랫입술 끝을 살짝 앙물었다.
평소와 달리 기대어오는 시현이를 보며 진우의 화도 한층 누그러졌다. 가느다랗게 떨리는 시현이의 몸이 느껴졌다.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시현이의 어깨를 감쌌다. 계산 없는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보호해주고 싶었다. 잠시 말 없이 그렇게 앉아있었다.
문 밖에서는 작은 소음들이 들려 왔다. 평범한 봄 날의 오후였다. 주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달그락 거리는 접시소리, "차르르--" 수돗물 흘러가는 소리.
고개를 돌려 시현이를 내려다봤다. 시현이는 살짝 눈을 감고 있었다. 진우의 팔에 안기자 절로 마음이 진정됐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따뜻하고 포근했다. 천장에 달린 누르스름한 전등 불빛이 시현이의 입술을 반짝 반짝 빛냈다. 진우는 어릴 적 즐겨먹던 사탕을 떠올렸다. 하얀 막대에 꽂혀있는 동그란 모양의 사탕이었다. 겉은 달콤하고, 속은 새콤한 맛이 났다. 사탕 하나를 둘이 나눠먹기도 했다. 어린 시현이와 진우는 번갈아 한 입씩 빨아 먹었다. 더럽다거나 하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작은 사탕을 맛있게도 빨아 먹었다. 쫍쫍-
눈을 감고 진우의 어깨에 기대있었다. 몇 시간동안 딱딱하게 몸을 굳히던 긴장이 풀리자 나른한 느낌이 엄습했다. 어깨를 감싸안은 진우의 손을 느꼈지만 뿌리치지 않았다. 아니, 뿌리치기 싫었다. 그 포근함이 좋았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갑작스레 낯선 느낌이 시현이의 입술을 덮었다. 처음엔 무슨 상황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른해진 몸은 막 잠에서 깬 것 마냥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조금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입술을 덮은 "그것"이 조금 서툴게 움찔거린 다음에야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진우의 입술이었다. 어릴 때 쪽-하고 하던 뽀뽀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상상했던 느낌과도 조금 달랐다. 갑자기 퍼뜩 정신이 돌아왔다.
"읍!" 시현이는 손들 들어 진우를 밀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진우는 떨어져 나가기는 커녕 더 가까이 다가왔다. 진우는 팔에 힘을 주며 시현이를 부둥켜 안았다. 이제 시현이는 완전히 진우의 품에 안긴 모양새다.
빠져나갈 수 없게 된 시현이가 고개를 돌려 피하려고 했지만, 진우의 입술은 집요하게 시현이의 입술을 탐했다. 접착제로 붙은 것 마냥 떨어지지 않았다. 시현이는 입술에 진우의 혀가 닿는 것을 느꼈다. 의식은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지만, 감정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안겨!, 안기라고!" 손에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똑똑-"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시현아 안에 일회용 컵 꺼내야 되는데." 밖에서 들려오는 알바 오빠의 목소리.
그제야 진우의 손이 시현이를 놔줬다. 시현이는 황급히 일어나 문을 열었다. 왠지 모르게 죄라도 지은 사람 마냥 고개가 숙여졌다.
카페를 나와서 한참을 걸었다. 시현이가 앞장서고, 조용히 진우가 뒤를 따랐다. 4월 중순의 오후 5시는 아직 쨍쨍한 시간이다. 보육원으로 돌아가면 선미와 동생들로 시끄러울 것이다. 왠지 모르게 지금 돌아가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처 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진우는 말 없이 따라왔다.
공원은 아직 한산했다. 드문드문 유모차를 끌고 나온 아기 엄마들이 보였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순 없었지만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하교하는 학생들이 여기저기 무리지어 걸어다니고 있었다. 꺄르르 웃거나 비명같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시끄러울 정도였지만 그 풋풋함이 10대 다웠다.
공원 입구를 지나서도 한참을 말 없이 걸었다. 사장님의 취향에 따라 비교적 조용한 시내 외곽에 위치한 카페에서도 조금 더 떨어져 있는 공원은 일반적인 도심 속의 공원보다는 좀 더 큰 규모였다. 입구를 지나 안 쪽으로 들어가자 한층 한산해졌다. 오후에 봄 햇살이 하얀 벚꽃 위에 바스라졌다.
"그만 가." 돌아보니 진우가 저만치 떨어져 서 있다. 담담한 표정이다.
"후..." 시현이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해서 걷고 싶었다.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돌아서서 진우를 바라봤다. 봄 바람이 살짝 머리카락을 흔든다. 찬 기운은 전혀 없는 풋풋한 봄 내음.
바야흐로 봄이었다.
"진우야..." 시현이가 가까스로 입을 뗐다. "안된다고 하지마." 그 말을 덮듯이 진우가 말했다.
시현이는 고개를 들어 진우의 눈을 바라봤다. 작은 갈색의 눈동자에는 단호함이 묻어 나온다. 왠지 계속 쳐다볼 수없어 고개를 돌렸다.
"안 돼." 괜스레 가만 있는 머리를 쓸어넘겼다. "알잖아. 안되는 건...." 목이 살짝 타는 기분이다. 침을 꼴깍- 삼켰다. "안되는거야."
"뭘 알아?" 진우가 성큼 앞으로 나섰다. 조금 떨어져 있던 거리가 금세 좁혀진다. "왜 안되는데?" 다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진우에게 망설임은 없었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더 이상은 물러설 수 없었다. 충동적이긴 했지만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 여기서 물러서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현이는 죄 없는 오른손에 붕대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 죽을 힘을 다 했었는데.
삐죽 나온 실 한 올이 봄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혀로 입술을 살짝 핥았다. 입술이 마르는 것 같다. 순간, 조금 전 진우의 입술 감촉이 생각났다. 정신이 아뜩했다. 달콤했다. 그래서 위험했다. 여기서 잘라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금니를 앙물고 용기를 짜냈다.
"고집 피우지 마." 시현이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진우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내가 그랬지.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다시 그런 말 하면..." "평생 안 본다고?" 진우가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또 그 말 하려고? 평생 안 보고 살꺼라고?" 진우가 성큼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진우는 시현이에 바로 앞에 섰다. 진우는 시현이를 내려다 봤고, 시현이는 진우를 올려다 봐야 했다. "그 말이 그렇게 쉬운 말이야?"
진우가 다그치듯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 조금 화난 기색이 실렸다.
시현이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기껏 짜낸 용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진우의 단호한 태도와 달리 시현이는 갈팡질팡 했다. 머리는 "안돼!"를 외쳤지만, 가슴은 "난 왜 안돼?"를 외치고 있었다.
별안간 강한 돌풍이 불었다. 봄날에 으레히 있는 그런 바람이었다. 나무와 풀들이 사르르르- 하는 소리를 내며 서로 몸을 비볐다. 차가운 기운은 전혀 없었지만, 바람을 핑계삼아 서로에게 몸을 비비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진우도 시현이를 부둥켜 안았다. 시현이의 왼손을 붙잡아 당겼다. 다시 시현이의 입술을 덮었다. 카페에서보다 더 격렬하게 입술을 비볐다. 고민이 있거나 당황하면 곧 잘 깨물던 시현이의 아랫입술. 진우는 입술을 내밀어 시현이의 아랫입술을 빨았다.
"하..읍"
숨 막히는 소리와 함께 시현이의 입술이 봉해졌다. 얇은 진우의 입술이 도톰한 시현이의 입술을 덮었다. 카페에서와는 달리 서있는 상태였기에 완강히 손을 뿌리쳐보려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진우가 잡은 왼손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붕대를 감은 손을 들어 진우의 어깨를 때리려고 했다. 그제야 진우의 입술이 떨어졌다.
"손 다쳐." 그러고는 시현이의 오른팔을 잡았다. 양 쪽 팔이 모두 잡혔다. 시현이는 애원했다.
"그만 해, 진우야..제바..ㄹ" 재차 진우의 입술이 시현이의 입술을 덮었다.
진우는 자신이 있었다. 아니, 자신감은 1년 전 고백 때도 있었다. 시현이도 같은 마음을 품고 있을꺼라는 자신감. 그래서 생각 외로 완강한 시현이의 거절에 당황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카페에서의 키스는 충동적이었지만, 그 키스는 시현이의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 주었다. 만약 누군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거기서 게임은 끝났을 것이다. 같은 마음인 걸 알았으니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시현이의 왼손을 잡았던 손으로 허리를 감쌌다. 시현이는 더 이상 팔을 휘두르지 않았다. 진우의 리드에 따라 자연스레 입술이 포개어졌다. 혀로 입술을 핥자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금세 진우의 혀와 시현이의 혀가 뒤엉켰다.
따뜻한 봄 바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놀란 가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이런 날을 기다리고 있었던걸까. 시현이의 수다스런 이성은 더 이상 아무 말도 외치지 않았다.
그저 심장이 콩콩 거리는 소리만이 들렸다.
"그런 찌질한 새...ㄲ" 까지 말하던 선미가 말을 삼켰다. 티비를 보던 동생들이 멀뚱멀뚱 선미를 쳐다봤다. 와하하하- 악당의 웃음소리에 다시금 티비로 시선이 돌아간다.
"...그래. 다른 곳은 다친 곳 없어?" 선미가 시현이의 오른손을 가만히 쥐었다. 붕대가 감긴 손이다.
"으응...괜찮아."
시현이와 진우는 저녁시간이 다 되어서야 돌아왔다. 진우를 통해 미리 연락을 받았던 선미가 왜 이렇게 늦었냐고 타박했지만,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선미는 그런 놈은 콩밥을 먹여야 한다며 길길이 뛰었다. 교회에 이런 것에 대해 잘 아는 분이 있을꺼라며 원장선생님을 찾아갔다.
시현이는 슬쩍 진우를 쳐다봤다. 막냇동생을 끌어안고 티비 앞에 자리잡은 진우는 싱글벙글이다.
너무 긴 하루였다.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난 하루였다.
시현이는 간단히 씻고 나와 홀로 방에 앉았다. 이불을 돌돌 말아 감고 오늘 일에 대해 생각해봤다. 모든 일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자신을 흔들어 놓은 것 같았다.
"과연, 내 의지가 아니었을까." 머릿속에 불쑥 생각이 떠오른다.
"띠링-"
시현이의 낡은 피처폰 액정에 파란 불이 켜졌다. 손을 뻗어 폴더를 열었다. 이제는 단종 된 폴더폰이다.
"자?" 진우의 문자였다. 어둔 방 안에서 핸드폰의 화면이 밝았다. 한참을 가만히 내려봤다.
"아니, 아직 안자. 너 빨리 자. 아침에 달리기 하잖아." 왠지 모르게 어색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른손을 삔 시현이는 흔들리는 버스가 불편했다. 진우는 시현이를 살짝 감싸 안았다. 목 뒤로 진우의 숨결이 느껴졌다.
"띠링-" 다시 핸드폰이 울었다.
"이제 너 내꺼다. 무르기 없음."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방 안에 가득 한 파란 밤이 평소보다 더 부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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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는 흥미, 추천수는 만족, 댓글수는 관심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제 생각)
추천수가 무려 35를 찍었네요. 고맙습니다.
소라의가이드 시절부터 열심히 눈팅을 해오던 저였지만(벌써 10년이 훌쩍 넘었군요.)
처음으로 스팸이 아닌 쪽지를 받아봤습니다. 재밌다며, 열심히 해달라고 격려해주시는 쪽지였습니다.
감동적입니다.
따뜻한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2천여명이 넘으시는 분들이 제 글을 읽어주신다는 사실이 마냥 기쁩니다.
사실 욕심 같아서는 트렌스젠더보다는 로맨스 혹은 연애로 분류하고 싶은 소프트한 글입니다. 언제까지 소프트일 지는 모르겠지만요. 나름의 기준으로는 이제 프롤로그가 끝난 느낌입니다.
바람 불면 저편에서 그대여 니 모습이 자꾸 겹쳐
오 또 울렁이는 기분 탓에 나도 모르게
바람 불면 저편에서 그대여 니 모습이 자꾸 겹쳐..."
- 봄의 캐럴,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 중 -]
4월이 되자 봄 기운이 완연해졌다. 거리 곳곳에 꽃들이 흐드러졌다. 잘 가꿔진 거리에는 벚꽃이 만개했다. 잠시 쉬며 거리를 바라보노라면 달콤한 꽃내음이 코 끝을 스치는 그런 계절이다.
여느 때와 같은 조용한 오전이 지나갔다. 점심을 먹고 은행에 다녀왔다. 통장에 찍힌 잔고를 보니 저절로 한숨이 난다. 턱 없이 부족하다.
3월에 마지막 주에 원장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왠지 모를 섭섭함이 느껴졌다.
시설의 아이들은 20살이 되면 시설을 나가야 한다. 독립이 힘들 경우 조금 더 연장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없는 케이스였다. 시설보조금이라던가, 운영이라던가 다 큰 아이를 시설에 두는 건 여러모로 곤란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시설 출신인 선미 언니처럼 자격증을 따서 직원으로 시설에 남는 경우도 일부 있지만, 시현이는 그럴 생각은 없었다. 자신의 집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어릴 적부터 해왔던 생각이다.
생각에 잠겨 누가 부르는지도 모르고 걸었다. 카페 앞에 다달아 유리문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누군가 어깨를 홱 잡아챘다. 무방비였던 시현이의 몸이 크게 한바퀴 돌았다.
"이, 씨발년아!"
눈 앞이 번쩍했다. 고개가 돌아가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꽃 냄새 대신 술 냄새가 물씬 풍긴다. 얼얼한 얼굴을 붙잡고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웬 남자가 서있었다. 낯선 남자였지만, 처음 본 사람은 아니었다. 언뜻 생각이 나질 않았다.
"이 개같은 년, 니 년이 잘나면 얼마나 잘났다고 사람을 무시해?!"
낯선 남자는 주저앉은 시현이의 옆구리를 걷어 찼다. 퍽- 둔착한 소리와 함께 강한 통증이 느껴진다. "어흑" 저도 모르게 입에서 신음이 나왔다.
카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같은 타임에 일하는 알바 오빠가 그 남자의 가슴을 거칠게 밀었다. 뒤이어 쏟아져 나온 카페 손님들이 주위를 둘러쌌다. 시현이의 머리채를 잡으려던 낯선 남자는 금세 저만치 떠밀렸다. 사장님이 뛰쳐나와 시현이를 감싸 안았다. "괜찮아?! 시현아, 괜찮아?" 귀에서 삐이- 하는 소리가 났다.
진우는 학교를 마치자마자 미친듯이 뛰었다. "헉..헉..헉" 매일 아침 로드웍으로 단련 된 진우였지만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시현이는 카페 안 쪽 매니저실에 앉아있었다. 진우를 본 시현이가 힘 없이 웃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나자 머리 끝까지 분노가 치솟았다. 많고 많은 카페 죽돌이 중 하나였다. 몇 달전인가 시현이에게 고백을 했다가 거절당했다고 했다. 한동안 카페에 나타나지 않다가 만취한 채 나타나 이런 짓을 벌였다.
시현이의 볼이 살짝 부었다. 쓰러지면서 손을 잘못 짚었는지 오른 손목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병원에 가서 간단하게 검사만 받고, 카페에 돌아왔다. 심장이 뛰고 다리에 힘이 빠져서 걸을 수가 없었다. 진우에게 데리러 오라고 연락했다.
"이 개새끼를..." 진우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두 눈에서 불이 뿜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말 하지 말랬지.." 시현이가 힘 없이 고개를 저었다. 왼손을 뻗어 진우의 손을 살짝 잡았다. 하루종일 떨리던 가슴이 진우를 보자 조금 안정되는 기분이다. 가해자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카페 손님들이 둘러싸는 바람에 도망도 가지 못했다.
"지금 그게 중요해!" 근처에 있는 뭐라도 걷어차고 싶은 기분이었다. 살의가 끓어오른다.
시현이는 진우를 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그러지마. 응? 진우야, 나 힘들어. 여기 좀 앉아." 시현이가 살짝 옆으로 비켜 앉았다. 진우는 씩씩거리며 화를 삭이지 못했다. 몇 번이나 진우의 손을 당긴 다음에야 옆에 앉혔다.
"봐봐." 진우가 손을 들어 시현이의 머리카락을 살짝 쓸어넘겼다. 손이 올라오자 시현이의 몸이 살짝 움찔했다. 볼이 빨갛게 부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가볍게 맞은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폭행이었다. 진우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시현이는 진우의 팔을 잡은 손에 다시 힘을 준다. "괜찮아, 지금은 안아파. 어디 가지 말고 옆에 앉아있어. 누나 힘들어." 시현이가 살짝 고개를 기울여 진우의 어깨에 기댔다.
그런 상황에 처하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진우였다. 하지만 막상 진우를 보니 또 다른 걱정이 들었다. 보기와는 달리 다혈질적인 면이 있는 진우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더 진우에게 기댔다.
진우의 숨소리, 진우의 냄새, 진우의 어깨. 안심이 됐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핑 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랫입술 끝을 살짝 앙물었다.
평소와 달리 기대어오는 시현이를 보며 진우의 화도 한층 누그러졌다. 가느다랗게 떨리는 시현이의 몸이 느껴졌다.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시현이의 어깨를 감쌌다. 계산 없는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보호해주고 싶었다. 잠시 말 없이 그렇게 앉아있었다.
문 밖에서는 작은 소음들이 들려 왔다. 평범한 봄 날의 오후였다. 주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달그락 거리는 접시소리, "차르르--" 수돗물 흘러가는 소리.
고개를 돌려 시현이를 내려다봤다. 시현이는 살짝 눈을 감고 있었다. 진우의 팔에 안기자 절로 마음이 진정됐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따뜻하고 포근했다. 천장에 달린 누르스름한 전등 불빛이 시현이의 입술을 반짝 반짝 빛냈다. 진우는 어릴 적 즐겨먹던 사탕을 떠올렸다. 하얀 막대에 꽂혀있는 동그란 모양의 사탕이었다. 겉은 달콤하고, 속은 새콤한 맛이 났다. 사탕 하나를 둘이 나눠먹기도 했다. 어린 시현이와 진우는 번갈아 한 입씩 빨아 먹었다. 더럽다거나 하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작은 사탕을 맛있게도 빨아 먹었다. 쫍쫍-
눈을 감고 진우의 어깨에 기대있었다. 몇 시간동안 딱딱하게 몸을 굳히던 긴장이 풀리자 나른한 느낌이 엄습했다. 어깨를 감싸안은 진우의 손을 느꼈지만 뿌리치지 않았다. 아니, 뿌리치기 싫었다. 그 포근함이 좋았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갑작스레 낯선 느낌이 시현이의 입술을 덮었다. 처음엔 무슨 상황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른해진 몸은 막 잠에서 깬 것 마냥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조금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입술을 덮은 "그것"이 조금 서툴게 움찔거린 다음에야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진우의 입술이었다. 어릴 때 쪽-하고 하던 뽀뽀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상상했던 느낌과도 조금 달랐다. 갑자기 퍼뜩 정신이 돌아왔다.
"읍!" 시현이는 손들 들어 진우를 밀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진우는 떨어져 나가기는 커녕 더 가까이 다가왔다. 진우는 팔에 힘을 주며 시현이를 부둥켜 안았다. 이제 시현이는 완전히 진우의 품에 안긴 모양새다.
빠져나갈 수 없게 된 시현이가 고개를 돌려 피하려고 했지만, 진우의 입술은 집요하게 시현이의 입술을 탐했다. 접착제로 붙은 것 마냥 떨어지지 않았다. 시현이는 입술에 진우의 혀가 닿는 것을 느꼈다. 의식은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지만, 감정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안겨!, 안기라고!" 손에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똑똑-"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시현아 안에 일회용 컵 꺼내야 되는데." 밖에서 들려오는 알바 오빠의 목소리.
그제야 진우의 손이 시현이를 놔줬다. 시현이는 황급히 일어나 문을 열었다. 왠지 모르게 죄라도 지은 사람 마냥 고개가 숙여졌다.
카페를 나와서 한참을 걸었다. 시현이가 앞장서고, 조용히 진우가 뒤를 따랐다. 4월 중순의 오후 5시는 아직 쨍쨍한 시간이다. 보육원으로 돌아가면 선미와 동생들로 시끄러울 것이다. 왠지 모르게 지금 돌아가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처 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진우는 말 없이 따라왔다.
공원은 아직 한산했다. 드문드문 유모차를 끌고 나온 아기 엄마들이 보였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순 없었지만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하교하는 학생들이 여기저기 무리지어 걸어다니고 있었다. 꺄르르 웃거나 비명같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시끄러울 정도였지만 그 풋풋함이 10대 다웠다.
공원 입구를 지나서도 한참을 말 없이 걸었다. 사장님의 취향에 따라 비교적 조용한 시내 외곽에 위치한 카페에서도 조금 더 떨어져 있는 공원은 일반적인 도심 속의 공원보다는 좀 더 큰 규모였다. 입구를 지나 안 쪽으로 들어가자 한층 한산해졌다. 오후에 봄 햇살이 하얀 벚꽃 위에 바스라졌다.
"그만 가." 돌아보니 진우가 저만치 떨어져 서 있다. 담담한 표정이다.
"후..." 시현이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해서 걷고 싶었다.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돌아서서 진우를 바라봤다. 봄 바람이 살짝 머리카락을 흔든다. 찬 기운은 전혀 없는 풋풋한 봄 내음.
바야흐로 봄이었다.
"진우야..." 시현이가 가까스로 입을 뗐다. "안된다고 하지마." 그 말을 덮듯이 진우가 말했다.
시현이는 고개를 들어 진우의 눈을 바라봤다. 작은 갈색의 눈동자에는 단호함이 묻어 나온다. 왠지 계속 쳐다볼 수없어 고개를 돌렸다.
"안 돼." 괜스레 가만 있는 머리를 쓸어넘겼다. "알잖아. 안되는 건...." 목이 살짝 타는 기분이다. 침을 꼴깍- 삼켰다. "안되는거야."
"뭘 알아?" 진우가 성큼 앞으로 나섰다. 조금 떨어져 있던 거리가 금세 좁혀진다. "왜 안되는데?" 다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진우에게 망설임은 없었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더 이상은 물러설 수 없었다. 충동적이긴 했지만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 여기서 물러서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현이는 죄 없는 오른손에 붕대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 죽을 힘을 다 했었는데.
삐죽 나온 실 한 올이 봄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혀로 입술을 살짝 핥았다. 입술이 마르는 것 같다. 순간, 조금 전 진우의 입술 감촉이 생각났다. 정신이 아뜩했다. 달콤했다. 그래서 위험했다. 여기서 잘라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금니를 앙물고 용기를 짜냈다.
"고집 피우지 마." 시현이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진우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내가 그랬지.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다시 그런 말 하면..." "평생 안 본다고?" 진우가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또 그 말 하려고? 평생 안 보고 살꺼라고?" 진우가 성큼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진우는 시현이에 바로 앞에 섰다. 진우는 시현이를 내려다 봤고, 시현이는 진우를 올려다 봐야 했다. "그 말이 그렇게 쉬운 말이야?"
진우가 다그치듯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 조금 화난 기색이 실렸다.
시현이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기껏 짜낸 용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진우의 단호한 태도와 달리 시현이는 갈팡질팡 했다. 머리는 "안돼!"를 외쳤지만, 가슴은 "난 왜 안돼?"를 외치고 있었다.
별안간 강한 돌풍이 불었다. 봄날에 으레히 있는 그런 바람이었다. 나무와 풀들이 사르르르- 하는 소리를 내며 서로 몸을 비볐다. 차가운 기운은 전혀 없었지만, 바람을 핑계삼아 서로에게 몸을 비비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진우도 시현이를 부둥켜 안았다. 시현이의 왼손을 붙잡아 당겼다. 다시 시현이의 입술을 덮었다. 카페에서보다 더 격렬하게 입술을 비볐다. 고민이 있거나 당황하면 곧 잘 깨물던 시현이의 아랫입술. 진우는 입술을 내밀어 시현이의 아랫입술을 빨았다.
"하..읍"
숨 막히는 소리와 함께 시현이의 입술이 봉해졌다. 얇은 진우의 입술이 도톰한 시현이의 입술을 덮었다. 카페에서와는 달리 서있는 상태였기에 완강히 손을 뿌리쳐보려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진우가 잡은 왼손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붕대를 감은 손을 들어 진우의 어깨를 때리려고 했다. 그제야 진우의 입술이 떨어졌다.
"손 다쳐." 그러고는 시현이의 오른팔을 잡았다. 양 쪽 팔이 모두 잡혔다. 시현이는 애원했다.
"그만 해, 진우야..제바..ㄹ" 재차 진우의 입술이 시현이의 입술을 덮었다.
진우는 자신이 있었다. 아니, 자신감은 1년 전 고백 때도 있었다. 시현이도 같은 마음을 품고 있을꺼라는 자신감. 그래서 생각 외로 완강한 시현이의 거절에 당황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카페에서의 키스는 충동적이었지만, 그 키스는 시현이의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 주었다. 만약 누군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거기서 게임은 끝났을 것이다. 같은 마음인 걸 알았으니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시현이의 왼손을 잡았던 손으로 허리를 감쌌다. 시현이는 더 이상 팔을 휘두르지 않았다. 진우의 리드에 따라 자연스레 입술이 포개어졌다. 혀로 입술을 핥자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금세 진우의 혀와 시현이의 혀가 뒤엉켰다.
따뜻한 봄 바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놀란 가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이런 날을 기다리고 있었던걸까. 시현이의 수다스런 이성은 더 이상 아무 말도 외치지 않았다.
그저 심장이 콩콩 거리는 소리만이 들렸다.
"그런 찌질한 새...ㄲ" 까지 말하던 선미가 말을 삼켰다. 티비를 보던 동생들이 멀뚱멀뚱 선미를 쳐다봤다. 와하하하- 악당의 웃음소리에 다시금 티비로 시선이 돌아간다.
"...그래. 다른 곳은 다친 곳 없어?" 선미가 시현이의 오른손을 가만히 쥐었다. 붕대가 감긴 손이다.
"으응...괜찮아."
시현이와 진우는 저녁시간이 다 되어서야 돌아왔다. 진우를 통해 미리 연락을 받았던 선미가 왜 이렇게 늦었냐고 타박했지만,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선미는 그런 놈은 콩밥을 먹여야 한다며 길길이 뛰었다. 교회에 이런 것에 대해 잘 아는 분이 있을꺼라며 원장선생님을 찾아갔다.
시현이는 슬쩍 진우를 쳐다봤다. 막냇동생을 끌어안고 티비 앞에 자리잡은 진우는 싱글벙글이다.
너무 긴 하루였다.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난 하루였다.
시현이는 간단히 씻고 나와 홀로 방에 앉았다. 이불을 돌돌 말아 감고 오늘 일에 대해 생각해봤다. 모든 일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자신을 흔들어 놓은 것 같았다.
"과연, 내 의지가 아니었을까." 머릿속에 불쑥 생각이 떠오른다.
"띠링-"
시현이의 낡은 피처폰 액정에 파란 불이 켜졌다. 손을 뻗어 폴더를 열었다. 이제는 단종 된 폴더폰이다.
"자?" 진우의 문자였다. 어둔 방 안에서 핸드폰의 화면이 밝았다. 한참을 가만히 내려봤다.
"아니, 아직 안자. 너 빨리 자. 아침에 달리기 하잖아." 왠지 모르게 어색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른손을 삔 시현이는 흔들리는 버스가 불편했다. 진우는 시현이를 살짝 감싸 안았다. 목 뒤로 진우의 숨결이 느껴졌다.
"띠링-" 다시 핸드폰이 울었다.
"이제 너 내꺼다. 무르기 없음."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방 안에 가득 한 파란 밤이 평소보다 더 부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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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는 흥미, 추천수는 만족, 댓글수는 관심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제 생각)
추천수가 무려 35를 찍었네요. 고맙습니다.
소라의가이드 시절부터 열심히 눈팅을 해오던 저였지만(벌써 10년이 훌쩍 넘었군요.)
처음으로 스팸이 아닌 쪽지를 받아봤습니다. 재밌다며, 열심히 해달라고 격려해주시는 쪽지였습니다.
감동적입니다.
따뜻한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2천여명이 넘으시는 분들이 제 글을 읽어주신다는 사실이 마냥 기쁩니다.
사실 욕심 같아서는 트렌스젠더보다는 로맨스 혹은 연애로 분류하고 싶은 소프트한 글입니다. 언제까지 소프트일 지는 모르겠지만요. 나름의 기준으로는 이제 프롤로그가 끝난 느낌입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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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1-26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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