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 ... - Ja"dore -
112. 오빠 말 잘 들으면 ...
오후 3시쯤이 돼서 아이린이 내 텔로 들어왔다. 그런데 그녀는 우리에게 간식만 챙겨주고 바로 나갔다. 내일 출근하려고 준비를 해야 한단다.
윤기숙은 스트레스를 엄청 받으면서 공부를 하다가, 오후 5시가 돼서야 집으로 갔다. 집에서 그녀는 밤을 새워가며 자기가 부실공사 한 곳을 때워야 한다고 했다. 지혜도 그 때까지 기다렸다가 윤기숙과 같이 나갔다.
둘이 모두 나가고 나자, 지난 밤에 내가 최은희에게서 잠을 너무 조금 잤기 때문인지, 나에게는 잠이 쏟아졌다. 그래도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집으로 엄마에게 갔다. 엄마는 나에게 저녁을 먹으라고 했지만, 나는 그냥 내 침대로 가서 누웠는데, 눕자마자 바로 코를 골면서 잤다.
내가 잠에서 개어난 것은 밤 9시가 넘어서이다. 엄마는 그 시간까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다가, 나에게 저녁밥을 차려주셨다.
"오랜만에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으니까 진짜 맛있어요."
"허구헌날 사먹지만 날고, 자주 와서 먹으라니까."
"알았어요."
"젊은 나이에 너무 돈 돈 하면, 몸 축나서 못써."
"알았다니까."
"요새 공부는 하니?"
"이제 다시 손 대야죠. 방학 하면 시작하려고 .."
"으이구우. 저래서 졸업이나 제대로 할라나 몰라."
"아직 편입도 안했는데, 졸업을 어떻게 해요?
나는 밥을 먹고 내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혜가 내 오피스텔에 없다.
그런데 한수정이 아프다는 말이 생각난다. 나는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을 켜고 포털 사이트의 내 이메일을 열었다. 받은 메일 목록에 한수정이 보낸 이메일이 분명히 들어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는 마우스로 클릭을 했다.
To : 사랑하는 태현.
한국은 한창 가을이지? 여기 토론토는 엄청 쌀쌀해. 가을이 서서히 막을 내리고, 겨울이 시작되는 것 같아. 도심에 있는 공원에도 낙엽이 쌓인다. 어제부터는 머리도 지끈거리면서 아프고, 춥고, 몸이 으실으실 떨리네. 감기겠지?
그래도 신선한 호수 바람을 쐬려고, 오후에는 차를 몰고 레이크쇼어 애브뉴(Lakeshore Ave.)에 갔다. 마치 바다처럼 넓은 온타리오 호를 보면서 지난 여름에 너와 같이 태종대를 걸어서 한 바퀴 돌던 그 때를 생각했다. 혼자 수평선을 쳐다보면서 너의 모습을 생각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태현아. 내꺼 1등아. 너는 아프지 마.
이번 성탄절은 꼭 너랑 같이 보내고 싶어. 그래서 지금 이를 악물고 작업하는 중이야. 너도 그 때에는 꼭 시간을 내야 한다. 우리가 다시 만날 일을 생각만 해도, 벌써 가슴이 막 콩콩거려. 기분이 너무 좋다. 너무 행복해.
사랑해.
From : 니꺼 2등. 수정.
한수정이 보내온 이메일을 읽을 때면 나는 언제나 가슴이 울컥 하면서 눈물이 흐른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창가로 갔다. 티슈를 뽑아서 눈을 훔쳤다. 시간이 한참 지나자 떨리던 가슴이 진정된다. 나는 책상으로 돌아갔다.
나도 수정이에게 메일을 쓰기 시작한다.
To : 한수정.
네가 나를 사랑한다고 했지?
수정이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고 해도, 내가 수정이를 사랑하는 것만큼은 아닐 것 같다. 너는 나를 2등으로 사랑하겠지만, 아무래도 나는 너를 1등으로 사랑하니까.
수정이가 아프다니 유감이야. 그래도 혼자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지 않고, 용기를 내어 밖으로 나가서, 신선한 공기를 마신다니 다행이야. 두통에는 아스피린보다 신선한 공기가 훨씬 건강할테니까. 내일은 의사에게 가서 보이고, 엉덩이에 왕주사 한 방 맞도록 해. 아프다고 겁먹지 말고 꾹 참아야 해. 알았지?
수정이가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니, 꼭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수정이를 보는 느낌이네. 이번 성탄절에는 선물 대신에, 나를 만나려고 기대하고 있다니 너무 고마워. 네가 서울에 올 수 없다면, 내가 토론토에 가기라도 해야 할텐데, 아직은 내가 그럴 수 없음을 용서해라. 이번 에 네가 서울에 온다면, 나에게 가장 큰 크리스마스 선물은 바로 한수정일거야.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을 너도 기다리겠지만, 너보다는 훨씬 더 많이 내가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아줘. 너는 2등이지만, 나는 1등이잖아? 이것은 사랑에서도 또 기다림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
앞으로 두 달을 기다려야 하는 우리에게 만남이라는 선물이 주어지도록, 신에게 기도하자. 우리가 이번 성탄절에 다시 만나는 것을 통하여, 우리의 크리스마스를 가장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되도록 하자. 헤어져서 서로 그리워하며 살고 있는 우리에게, 우리가 다시 만난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크고 귀한 선물이 아닐까?
신이여. 우리에게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From : 태현.
나는 여러 번 읽고 고치면서 간신히 끝냈다. 발송 버튼을 눌러서 이메일을 전송했다. 아직 10월 중순인데, 벌써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는 것이 엄청 어색하다. 그렇지만 한수정을 생각하면 엄청 진지해진다.
그런데 아이린이 지혜와 같이 들어온다. 아이린은 청바지에 남방을 입었지만, 지혜는 아슬아슬하게 짧은 청치마에 끈나시를 입고, 가디건을 걸쳤다. 아마 밖에서 놀고 들어오는 모양이다. 그런데 지혜를 보자 가슴이 울컥 한다. 너무 반갑다.
"지혜. 잘 놀고 왔나?"
"어? 오빠 집에 있었네?"
"나도 집에 온 지 얼마 안돼."
"어디 갔다 왔어?"
"집에. 엄마한테."
"태현씨 어머님게서, 태현씨 걱정을 많이 하시죠?"
"돈에 빠져서 공부 안한다고 혼났어요."
"헤에. .. 오빠네 엄마가 완전 심각하게 오해 하시네."
"우리 엄마가 무슨 오해를 해?"
"오빠는 요새 돈에 빠진 것이 아니고, 여자에 빠진 것 같은데. .. 하하."
"얘가 무슨 소리를 이렇게 해?"
"엄마는 왜 그래? 내가 뭐 틀린 말이라도 했어?"
"야아. 시끄러워. 누가 들으면 진짜인 줄 알겠다."
"진짜라니까. 엄마. 나랑 내기 할까?"
"됐다니까."
지혜가 하는 말에, 나는 가슴이 뜨끔했던 것이 사실이다. 아이린은 지혜를 흘겨보면서 지혜의 어깨를 툭 친다.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서 와인을 마셨다. 그런데 표정 관리를 해서 아무 일이 없던 것처럼 넘어갔다.
지혜는 이번 수학여행을 포기했고, 조해수는 그냥 간다고 했다.
"지혜도 같이 가지 그래?"
"아니야. 나, 이번 일주일 동안 확률과 통계를 아작낼거야."
"그것도 나쁜 생각은 아닌데 .."
그런데 지혜가 생각지도 않았던, 전혀 다른 얘기를 한다.
"괜찮아. 나 대학 가면 아빠가 외국으로국 보내준댔어."
"외국? 어디?"
"배낭 여행을 가든지, 아니면 어학연수를 가든지, 나보고 알아서 하래."
"그럼 너 완전 실속있는 장사를 했네. 하하."
"그런데, 여행은 꼭 오빠랑 같이 갈 생각이거든요."
"아니 왜? 너도 참."
"여행을 무슨 맛으로 나 혼자 가? 안그래?
내가 여행을 가면 오빠 말고 또 누구랑 가?"
"어디로 가고 싶은데?"
"유럽. 알프스. 스위스. 파리. 남미 안데스. 남극. 북극. "
이건 뭐. 지구 구석구석을 이 잡듯이 다 뒤지겠다는 말이다. 그것도 자기 혼자가 아니고 나랑 같이. 나에게 웃음이 터져버렸다. 지혜가 진짜 완전 귀엽다. 깨물어주고 싶다.
"뭐라고? 하하하 하하하. 그거 다 다니려면, 지혜 환갑은 지나겠다. 하하하."
"그럼 어때?
내가 오빠 말을 잘 들으면, 오빠는 나를 여기 저기 다 데리고 가는거다? 알았지?"
"당근이지. 그 대신 한꺼번에는 안되고."
"몰라. 몰라. 그건 오빠 마음대로 해."
"알았으니까, 우리 지혜는 우선 대학부터 가자."
"무조건 콜. .. 이제부터 오빠 말 잘 듣고, 오빠가 시키는 대로 할께."
"언제는 안그랬나? 지혜는 지금까지 내 말만큼은 잘 들었거든요."
"여행 가서 구박 안받으려면, 지금 보다는 엄청 더 잘 들어야지. 안그래?"
"그런데 내 말 안듣고, 약속 안지키고 꼴통짓을 해도 나는 지혜를 꼭 데리고 간다."
"뭐? 그 말 진짜야?"
"그래. 너를 데리고 나갔다가, 나중에 여행 끝나고 같이 돌아올 지는 나도 모르지."
"뭐야? 에잇."
아이린이 빤히 보고 있는데도, 지혜는 얼른 내 입술을 빨면서 키스를 한다. 여리고 부드러운 빨간 입술이 내 입술을 빠는 것은 너무 오랜만이다. 나는 참고 있었으나, 막판에 가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두세 번을 빨았다. 우리를 보고 있던 아이린은 고개를 돌린다.
아무튼 나와 지혜는 뜻하지 않게 극적인 합의를 이끌어냈다. 지혜가 내 말을 잘 듣겠다고 했으므로, 나에게 덤벼드는 것은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자정은 이미 넘었다. 와인 잔을 비운 후에 우리는 내 오피스텔을 나섰다. 아이린이 집으로 가서 자겠다고 해서, 나와 지혜는 아이린을 아파트 입구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내 앞에서 지혜와 아이린은 팔짱을 끼고 걷는다. 나는 그녀들의 뒷태를 보면서 걸었다. 지혜가 엉덩이를 일부러 씰룩거린다. 가끔씩 뒤를 돌아보며 나와 눈길을 마주치기도 한다.
아파트 입구에서 아이린은 나에게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와 지혜는 그녀가 탄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는 것을 보고 건물을 나왔다. 지혜는 얼른 내 팔짱을 낀다.
"오빠도 외국에 가봤지?"
"응."
"대학에 빨리 들어 가고싶은데 .."
"그게 아니라 시간이 있어서 부족한 공부를 더 할 수 있다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지."
"네. 알겠습니다. 헤헤."
"그렇지."
"사실 오빠랑 나랑. .. 공부한 것 말고는 추억도 거지같이 없잖아.
외국 여행 다니면서 우리 좋은 추억 많이 만들자. 알았지?"
"건전한 추억이라면, 나도 오케이야."
"하아. .. 오빠. 자꾸 까칠할래?"
그런데 지혜는 내 팔을 놓지 않고 내 텔까지 왔다. 나는 마음으로는 같이 들어가자고 하고 싶었지만, 그 마음을 숨겼다.
"이제 내려가서 자야지."
"나 내일 학교 안가잖아. 와인 딱 한잔만 더 마시고 내려가서 잘께."
"두 잔이면 많은 것 아니니?"
"잘건데 뭐 어때? 한 병도 마시고 잔 적도 있거든요."
나와 지혜는 와인 병과 와인 잔을 들고 소파로 가서 앉았다. 나는 잔에 와인을 따랐고, 지혜는 누군가와 카톡을 한다. 나는 TV를 켰다. 그런데 화면에 뜨는 것이 성인 영화의 베드신이다. 나는 감짝 놀라서 얼른 채널을 돌렸다. 지혜가 깔깔대고 웃는다.
"하하하. 겨우 모텔 포르노인데 뭘 놀라고 그래?"
"너는 아직 나이가 아니잖아?"
"알았어. 우리는 저런 나부랭이는 유치해서 안보거든요. 하하."
나는 스포츠 채널을 찾았다. 여자 테니스이다. 러시아 선수와 호주 선수가 한참 공을 치고 받는다. 나는 테니스 경기를 보고 있고, 지혜는 카톡울 계속한다. 한참 후에 지혜가 카톡을 끝내고 잔을 든다.
"아오오. 계집애들. 내일 꼭두 새벽에 나가려면 잠이나 일찍 자지않고 .."
"왜?"
"얘들 괜히 간다고. 지들도 가기 싫대. 나를 엄청 부러워하네. 하하."
"부러워할 것이 그렇게도 없나?"
"솔까말로 수학 여행이라는 것은 이제 구시대의 유물 아닌가?
요새 좋은 여행 패키지들이 얼마나 많은데 .."
나는 지혜의 말에 간간이 말대꾸를 하면서 계속 TV를 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혜에게 신경이 언청 쏠린다. 테니스가 눈에 잘 안들어와서 경기의 흐름을 자주 놓친다.
"오빠."
"어?"
"오빠 지금 나한테 엄청 까칠한 것 알아?"
"내가? 내가 왜? 난 그런 것 전혀 없거든요."
"어쭈?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하네."
"테니스 좀 보자."
"하아. .. 여자들 치마가 들썩거리는 것? 하하."
지혜가 팔을 뻗어서 내 목에 건다. 나는 지혜의 손을 잡았다.
"지혜야."
"어?"
"이러지 말고, 가서 자라. 나도 내일 아침에 출근해야지."
"그렇구나. 그럼 내가 오빠 재워줄까?"
"나 지금 엄청 피곤하거든요. 눕기만 해도 바로 잠 들어. 그런 걱정 안해도 돼요."
"오빠. .. 아잉. 이이이잉."
그 때 전화벨이 울린다. 내 전화기이다. 발신인은 송실장이다. 그녀는 자기가 내일 아침에 8시까지 건물 입구에 와서 기다릴테니까, 날보고 내려오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내일 나는 아이린과 같이 출근하여야 하므로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에 전화를 걸어준 송실장이 정말 고맙다.
"거봐. 내일 출근 때문에 나는 이제 그만 자야 해요. 안그러면 내일 개망신 당해."
"알았어. 이 잔 마저 마시고 내려갈께."
"와아. 진짜 말 잘 듣네."
"헤헤. 그런데 아까 윤기숙 언니랑 진짜 아무 일 없었지?"
"너랑 같이 나가지 않았나? 그 뒤로 나는 바로 엄마한테 갔거든요."
"하긴. 그 언니 열공 완전 쩔더라."
"너도 대학에 가면 그 보다 엄청 더 빡씨게 공부해야 하거든요."
"알았다고. 일단 들어가는 것부터 해결하자."
지혜는 말한 것처럼 잔을 비우고 일어섰다. 우리는 계단으로 내려갔지만, 중간에 이상한 짓거리를 하지 않고 곧장 내려갔다. 지혜는 내 입술에 키스하고 텔 안으로 들어가고, 나는 다시 올라왔다.
다음날 아침에 아이린이 와서 나를 깨운다.
"아이 참. 내 정신이 .."
"왜?"
"지혜가 학교에 가는 줄 알고 일찍 와서 .."
"아니야. 나 오늘 일찍 가야 하거든. 잘 깨웠어요."
내가 씻고 나오자 그녀는 벌써 내가 입을 옷을 골라두었다. 아이린도 준비를 끝냈다. 청바지에 갈색 블라우스, 그리고 가을 점퍼를 걸치고 있다. 잠시 후에는 지혜도 올라왔다. 지혜는 나 없는 사이에 여기에서 공부하고 있겠다고 했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다는 표정이다. 나와 아이린은 내 오피스텔을 나선다. 지혜는 남아서 손을 흔들며 우리를 배웅한다.
"엄마랑 오빠랑. .. 둘이 진짜 잘 어울린다. 꼭 부부같아."
"야아아. 내가 40대로 보인다는 말이냐?"
"그게 아니라 엄마가 20대로 보인다고. 하하."
"쟤가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 미리 손쓰는 것 같다. 하하."
"엄마는? 내 말을 왜 그렇게 색안경을 끼고 그러셔?"
나는 아이린을 차에 태워서 회사로 출근했다. 차 안에서 아이린은 버얼개진 얼굴로 노래를 흥얼거린다.
"누나. 기분 좋아요?"
"좋기만 해? 자기랑 같이 출근하는데, .. 하하."
송실장이 우리를 맞이하는데, 그녀는 다시 얼음공주 모드이다. 차갑고 쌀쌀맞은 표정이다. 찬바람이 쌩쌩이다.
송실장은 제일 먼저 내 자리를 회장실로 옮기라고 했다. 나는 비서들과 함께 내 자리에 있는 것들을 모두 회장실로 옮겼다.
그래도 임영신, 최수희, 주은혜 그리고 송실장과 갖는 커피타임은 옆방에서 계속되었다. 오늘 커피타임에는 아이린도 같이 있다.
이 자리에서 나는 중국에 진출하는 문제를 거론했다. 베이징과 샹하이 두 군데에 있는 백화점에 입점을 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상품은 일단 화장품으로 시작을 하기로 했다. 이제 문제는 중국으로 누가 가느냐가 문제이다. 이 문제는 송실장이 한상무와 구전무에게 알아보기로 했다.
커피타임을 마치고 최수희는 전산실에서 지난 주말의 매출 상황을 들고 왔다. 아직 50% 증가라는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는 의류 상품의 매출액이 기대 이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제 일요일에는 상품이 일찍 다 팔리는 바람에, 상품이 부족한 매장도 있다. 없어서 팔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수희가 주은혜에게 말했다.
"당분간은 은혜 언니가 고생을 할 것 같네."
"진짜 큰 일이야. 이제 바로 겨울 신상품 내보내야 하는데."
"언니. 다음 패션쇼 할 때에는 우리도 껴주면 안돼요?"
"누구누구? 희망자는 신청해. 그 대신 심사를 해야 하거든요."
"무슨 심사를 해?"
"카메라 테스트"
"옷 다 벗고?"
"그럼. 나중에는 비키니 차림으로도 하고."
"와아아. 재미있겠다."
"남성복 할 때에는 잘생기신 회장님도 끼세요."
"에이. 우리 회장님을 그러면 안되죠"
"뭐 어때? 정 그러면 야구 모자 쓰고, 큼직한 썬그라스 끼고 하든가. .."
임영신과 주은혜는 아이린을 데리고 디자인 작업실로 올라갔다. 나는 방효은과 함께 웹사이트를 점검했다. 방효은은 고객의 정보 관리 때문에 보안이 취약하므로 이쯤 해서 전산실로 넘기자는 제안을 했다.
상품 대금을 결제하는 문제와 연결되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고객들의 데이터를 어느 정도는 저장하고 있어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 해커들이 뚫기로 마음먹고 덤벼들면, 우리는 여지없이 당하게 되어있다.
내가 아이린과 함께 점심을 먹고 들어왔는데, 임영신의 엄마가 찾아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한 후에, 회장실에 앉아서 중국 진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침에 회장님께서 그 말씀을 하셨다면서요?"
"그것도 임회장님 살아계실 때의 꿈이 아니었습니까?"
"그래요. 맞아요. 영신이한테 그 얘기를 듣고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당장 달려 왔어요."
"잘 오셨습니다."
"이번에 중국에 가는 문제는 .. 내가 직접 가면 안될까요?"
"처음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중국 전문가라야 합니다.
정 생각이 있으시면, 지금 말고, 나중에 경험이 쌓이면, 그 때에 가시지요?"
"혼자 가겠다는 것이 아니고, 팀에 껴달라고 드린 부탁입니다."
"가서 무엇을 하시고 싶으십니까?"
"밥이라도 하고, 청소랑 빨래도 해주면서 돕고 싶어요."
"둘째가 아직 학생인데 어떻게 하시게요?
그런 정도면 현지에서 가사도우미가 잇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유학 가는 것처럼, .. 데리고 가면 되죠."
"잘 알겠습니다. 그럼 이 일을 추진하는 팀에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나는 할 일을 모두 마친 후에 아이린과 함께 일찍 퇴근했다. 집에서 지혜가 혼자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 오피스텔로 갔다. 그런데 지혜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얘는 또 어디로 샌거야?”
아이린은 지혜의 텔로 내려갔다.
=*=*=*=*=*=*=*=
다음 글로 가시기 전에,
댓글, 추천 잊지 마시길. .. ㅋㅋㅋ ... - Ja"dore -
112. 오빠 말 잘 들으면 ...
오후 3시쯤이 돼서 아이린이 내 텔로 들어왔다. 그런데 그녀는 우리에게 간식만 챙겨주고 바로 나갔다. 내일 출근하려고 준비를 해야 한단다.
윤기숙은 스트레스를 엄청 받으면서 공부를 하다가, 오후 5시가 돼서야 집으로 갔다. 집에서 그녀는 밤을 새워가며 자기가 부실공사 한 곳을 때워야 한다고 했다. 지혜도 그 때까지 기다렸다가 윤기숙과 같이 나갔다.
둘이 모두 나가고 나자, 지난 밤에 내가 최은희에게서 잠을 너무 조금 잤기 때문인지, 나에게는 잠이 쏟아졌다. 그래도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집으로 엄마에게 갔다. 엄마는 나에게 저녁을 먹으라고 했지만, 나는 그냥 내 침대로 가서 누웠는데, 눕자마자 바로 코를 골면서 잤다.
내가 잠에서 개어난 것은 밤 9시가 넘어서이다. 엄마는 그 시간까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다가, 나에게 저녁밥을 차려주셨다.
"오랜만에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으니까 진짜 맛있어요."
"허구헌날 사먹지만 날고, 자주 와서 먹으라니까."
"알았어요."
"젊은 나이에 너무 돈 돈 하면, 몸 축나서 못써."
"알았다니까."
"요새 공부는 하니?"
"이제 다시 손 대야죠. 방학 하면 시작하려고 .."
"으이구우. 저래서 졸업이나 제대로 할라나 몰라."
"아직 편입도 안했는데, 졸업을 어떻게 해요?
나는 밥을 먹고 내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혜가 내 오피스텔에 없다.
그런데 한수정이 아프다는 말이 생각난다. 나는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을 켜고 포털 사이트의 내 이메일을 열었다. 받은 메일 목록에 한수정이 보낸 이메일이 분명히 들어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는 마우스로 클릭을 했다.
To : 사랑하는 태현.
한국은 한창 가을이지? 여기 토론토는 엄청 쌀쌀해. 가을이 서서히 막을 내리고, 겨울이 시작되는 것 같아. 도심에 있는 공원에도 낙엽이 쌓인다. 어제부터는 머리도 지끈거리면서 아프고, 춥고, 몸이 으실으실 떨리네. 감기겠지?
그래도 신선한 호수 바람을 쐬려고, 오후에는 차를 몰고 레이크쇼어 애브뉴(Lakeshore Ave.)에 갔다. 마치 바다처럼 넓은 온타리오 호를 보면서 지난 여름에 너와 같이 태종대를 걸어서 한 바퀴 돌던 그 때를 생각했다. 혼자 수평선을 쳐다보면서 너의 모습을 생각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태현아. 내꺼 1등아. 너는 아프지 마.
이번 성탄절은 꼭 너랑 같이 보내고 싶어. 그래서 지금 이를 악물고 작업하는 중이야. 너도 그 때에는 꼭 시간을 내야 한다. 우리가 다시 만날 일을 생각만 해도, 벌써 가슴이 막 콩콩거려. 기분이 너무 좋다. 너무 행복해.
사랑해.
From : 니꺼 2등. 수정.
한수정이 보내온 이메일을 읽을 때면 나는 언제나 가슴이 울컥 하면서 눈물이 흐른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창가로 갔다. 티슈를 뽑아서 눈을 훔쳤다. 시간이 한참 지나자 떨리던 가슴이 진정된다. 나는 책상으로 돌아갔다.
나도 수정이에게 메일을 쓰기 시작한다.
To : 한수정.
네가 나를 사랑한다고 했지?
수정이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고 해도, 내가 수정이를 사랑하는 것만큼은 아닐 것 같다. 너는 나를 2등으로 사랑하겠지만, 아무래도 나는 너를 1등으로 사랑하니까.
수정이가 아프다니 유감이야. 그래도 혼자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지 않고, 용기를 내어 밖으로 나가서, 신선한 공기를 마신다니 다행이야. 두통에는 아스피린보다 신선한 공기가 훨씬 건강할테니까. 내일은 의사에게 가서 보이고, 엉덩이에 왕주사 한 방 맞도록 해. 아프다고 겁먹지 말고 꾹 참아야 해. 알았지?
수정이가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니, 꼭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수정이를 보는 느낌이네. 이번 성탄절에는 선물 대신에, 나를 만나려고 기대하고 있다니 너무 고마워. 네가 서울에 올 수 없다면, 내가 토론토에 가기라도 해야 할텐데, 아직은 내가 그럴 수 없음을 용서해라. 이번 에 네가 서울에 온다면, 나에게 가장 큰 크리스마스 선물은 바로 한수정일거야.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을 너도 기다리겠지만, 너보다는 훨씬 더 많이 내가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아줘. 너는 2등이지만, 나는 1등이잖아? 이것은 사랑에서도 또 기다림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
앞으로 두 달을 기다려야 하는 우리에게 만남이라는 선물이 주어지도록, 신에게 기도하자. 우리가 이번 성탄절에 다시 만나는 것을 통하여, 우리의 크리스마스를 가장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되도록 하자. 헤어져서 서로 그리워하며 살고 있는 우리에게, 우리가 다시 만난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크고 귀한 선물이 아닐까?
신이여. 우리에게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From : 태현.
나는 여러 번 읽고 고치면서 간신히 끝냈다. 발송 버튼을 눌러서 이메일을 전송했다. 아직 10월 중순인데, 벌써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는 것이 엄청 어색하다. 그렇지만 한수정을 생각하면 엄청 진지해진다.
그런데 아이린이 지혜와 같이 들어온다. 아이린은 청바지에 남방을 입었지만, 지혜는 아슬아슬하게 짧은 청치마에 끈나시를 입고, 가디건을 걸쳤다. 아마 밖에서 놀고 들어오는 모양이다. 그런데 지혜를 보자 가슴이 울컥 한다. 너무 반갑다.
"지혜. 잘 놀고 왔나?"
"어? 오빠 집에 있었네?"
"나도 집에 온 지 얼마 안돼."
"어디 갔다 왔어?"
"집에. 엄마한테."
"태현씨 어머님게서, 태현씨 걱정을 많이 하시죠?"
"돈에 빠져서 공부 안한다고 혼났어요."
"헤에. .. 오빠네 엄마가 완전 심각하게 오해 하시네."
"우리 엄마가 무슨 오해를 해?"
"오빠는 요새 돈에 빠진 것이 아니고, 여자에 빠진 것 같은데. .. 하하."
"얘가 무슨 소리를 이렇게 해?"
"엄마는 왜 그래? 내가 뭐 틀린 말이라도 했어?"
"야아. 시끄러워. 누가 들으면 진짜인 줄 알겠다."
"진짜라니까. 엄마. 나랑 내기 할까?"
"됐다니까."
지혜가 하는 말에, 나는 가슴이 뜨끔했던 것이 사실이다. 아이린은 지혜를 흘겨보면서 지혜의 어깨를 툭 친다.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서 와인을 마셨다. 그런데 표정 관리를 해서 아무 일이 없던 것처럼 넘어갔다.
지혜는 이번 수학여행을 포기했고, 조해수는 그냥 간다고 했다.
"지혜도 같이 가지 그래?"
"아니야. 나, 이번 일주일 동안 확률과 통계를 아작낼거야."
"그것도 나쁜 생각은 아닌데 .."
그런데 지혜가 생각지도 않았던, 전혀 다른 얘기를 한다.
"괜찮아. 나 대학 가면 아빠가 외국으로국 보내준댔어."
"외국? 어디?"
"배낭 여행을 가든지, 아니면 어학연수를 가든지, 나보고 알아서 하래."
"그럼 너 완전 실속있는 장사를 했네. 하하."
"그런데, 여행은 꼭 오빠랑 같이 갈 생각이거든요."
"아니 왜? 너도 참."
"여행을 무슨 맛으로 나 혼자 가? 안그래?
내가 여행을 가면 오빠 말고 또 누구랑 가?"
"어디로 가고 싶은데?"
"유럽. 알프스. 스위스. 파리. 남미 안데스. 남극. 북극. "
이건 뭐. 지구 구석구석을 이 잡듯이 다 뒤지겠다는 말이다. 그것도 자기 혼자가 아니고 나랑 같이. 나에게 웃음이 터져버렸다. 지혜가 진짜 완전 귀엽다. 깨물어주고 싶다.
"뭐라고? 하하하 하하하. 그거 다 다니려면, 지혜 환갑은 지나겠다. 하하하."
"그럼 어때?
내가 오빠 말을 잘 들으면, 오빠는 나를 여기 저기 다 데리고 가는거다? 알았지?"
"당근이지. 그 대신 한꺼번에는 안되고."
"몰라. 몰라. 그건 오빠 마음대로 해."
"알았으니까, 우리 지혜는 우선 대학부터 가자."
"무조건 콜. .. 이제부터 오빠 말 잘 듣고, 오빠가 시키는 대로 할께."
"언제는 안그랬나? 지혜는 지금까지 내 말만큼은 잘 들었거든요."
"여행 가서 구박 안받으려면, 지금 보다는 엄청 더 잘 들어야지. 안그래?"
"그런데 내 말 안듣고, 약속 안지키고 꼴통짓을 해도 나는 지혜를 꼭 데리고 간다."
"뭐? 그 말 진짜야?"
"그래. 너를 데리고 나갔다가, 나중에 여행 끝나고 같이 돌아올 지는 나도 모르지."
"뭐야? 에잇."
아이린이 빤히 보고 있는데도, 지혜는 얼른 내 입술을 빨면서 키스를 한다. 여리고 부드러운 빨간 입술이 내 입술을 빠는 것은 너무 오랜만이다. 나는 참고 있었으나, 막판에 가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두세 번을 빨았다. 우리를 보고 있던 아이린은 고개를 돌린다.
아무튼 나와 지혜는 뜻하지 않게 극적인 합의를 이끌어냈다. 지혜가 내 말을 잘 듣겠다고 했으므로, 나에게 덤벼드는 것은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자정은 이미 넘었다. 와인 잔을 비운 후에 우리는 내 오피스텔을 나섰다. 아이린이 집으로 가서 자겠다고 해서, 나와 지혜는 아이린을 아파트 입구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내 앞에서 지혜와 아이린은 팔짱을 끼고 걷는다. 나는 그녀들의 뒷태를 보면서 걸었다. 지혜가 엉덩이를 일부러 씰룩거린다. 가끔씩 뒤를 돌아보며 나와 눈길을 마주치기도 한다.
아파트 입구에서 아이린은 나에게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와 지혜는 그녀가 탄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는 것을 보고 건물을 나왔다. 지혜는 얼른 내 팔짱을 낀다.
"오빠도 외국에 가봤지?"
"응."
"대학에 빨리 들어 가고싶은데 .."
"그게 아니라 시간이 있어서 부족한 공부를 더 할 수 있다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지."
"네. 알겠습니다. 헤헤."
"그렇지."
"사실 오빠랑 나랑. .. 공부한 것 말고는 추억도 거지같이 없잖아.
외국 여행 다니면서 우리 좋은 추억 많이 만들자. 알았지?"
"건전한 추억이라면, 나도 오케이야."
"하아. .. 오빠. 자꾸 까칠할래?"
그런데 지혜는 내 팔을 놓지 않고 내 텔까지 왔다. 나는 마음으로는 같이 들어가자고 하고 싶었지만, 그 마음을 숨겼다.
"이제 내려가서 자야지."
"나 내일 학교 안가잖아. 와인 딱 한잔만 더 마시고 내려가서 잘께."
"두 잔이면 많은 것 아니니?"
"잘건데 뭐 어때? 한 병도 마시고 잔 적도 있거든요."
나와 지혜는 와인 병과 와인 잔을 들고 소파로 가서 앉았다. 나는 잔에 와인을 따랐고, 지혜는 누군가와 카톡을 한다. 나는 TV를 켰다. 그런데 화면에 뜨는 것이 성인 영화의 베드신이다. 나는 감짝 놀라서 얼른 채널을 돌렸다. 지혜가 깔깔대고 웃는다.
"하하하. 겨우 모텔 포르노인데 뭘 놀라고 그래?"
"너는 아직 나이가 아니잖아?"
"알았어. 우리는 저런 나부랭이는 유치해서 안보거든요. 하하."
나는 스포츠 채널을 찾았다. 여자 테니스이다. 러시아 선수와 호주 선수가 한참 공을 치고 받는다. 나는 테니스 경기를 보고 있고, 지혜는 카톡울 계속한다. 한참 후에 지혜가 카톡을 끝내고 잔을 든다.
"아오오. 계집애들. 내일 꼭두 새벽에 나가려면 잠이나 일찍 자지않고 .."
"왜?"
"얘들 괜히 간다고. 지들도 가기 싫대. 나를 엄청 부러워하네. 하하."
"부러워할 것이 그렇게도 없나?"
"솔까말로 수학 여행이라는 것은 이제 구시대의 유물 아닌가?
요새 좋은 여행 패키지들이 얼마나 많은데 .."
나는 지혜의 말에 간간이 말대꾸를 하면서 계속 TV를 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혜에게 신경이 언청 쏠린다. 테니스가 눈에 잘 안들어와서 경기의 흐름을 자주 놓친다.
"오빠."
"어?"
"오빠 지금 나한테 엄청 까칠한 것 알아?"
"내가? 내가 왜? 난 그런 것 전혀 없거든요."
"어쭈?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하네."
"테니스 좀 보자."
"하아. .. 여자들 치마가 들썩거리는 것? 하하."
지혜가 팔을 뻗어서 내 목에 건다. 나는 지혜의 손을 잡았다.
"지혜야."
"어?"
"이러지 말고, 가서 자라. 나도 내일 아침에 출근해야지."
"그렇구나. 그럼 내가 오빠 재워줄까?"
"나 지금 엄청 피곤하거든요. 눕기만 해도 바로 잠 들어. 그런 걱정 안해도 돼요."
"오빠. .. 아잉. 이이이잉."
그 때 전화벨이 울린다. 내 전화기이다. 발신인은 송실장이다. 그녀는 자기가 내일 아침에 8시까지 건물 입구에 와서 기다릴테니까, 날보고 내려오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내일 나는 아이린과 같이 출근하여야 하므로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에 전화를 걸어준 송실장이 정말 고맙다.
"거봐. 내일 출근 때문에 나는 이제 그만 자야 해요. 안그러면 내일 개망신 당해."
"알았어. 이 잔 마저 마시고 내려갈께."
"와아. 진짜 말 잘 듣네."
"헤헤. 그런데 아까 윤기숙 언니랑 진짜 아무 일 없었지?"
"너랑 같이 나가지 않았나? 그 뒤로 나는 바로 엄마한테 갔거든요."
"하긴. 그 언니 열공 완전 쩔더라."
"너도 대학에 가면 그 보다 엄청 더 빡씨게 공부해야 하거든요."
"알았다고. 일단 들어가는 것부터 해결하자."
지혜는 말한 것처럼 잔을 비우고 일어섰다. 우리는 계단으로 내려갔지만, 중간에 이상한 짓거리를 하지 않고 곧장 내려갔다. 지혜는 내 입술에 키스하고 텔 안으로 들어가고, 나는 다시 올라왔다.
다음날 아침에 아이린이 와서 나를 깨운다.
"아이 참. 내 정신이 .."
"왜?"
"지혜가 학교에 가는 줄 알고 일찍 와서 .."
"아니야. 나 오늘 일찍 가야 하거든. 잘 깨웠어요."
내가 씻고 나오자 그녀는 벌써 내가 입을 옷을 골라두었다. 아이린도 준비를 끝냈다. 청바지에 갈색 블라우스, 그리고 가을 점퍼를 걸치고 있다. 잠시 후에는 지혜도 올라왔다. 지혜는 나 없는 사이에 여기에서 공부하고 있겠다고 했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다는 표정이다. 나와 아이린은 내 오피스텔을 나선다. 지혜는 남아서 손을 흔들며 우리를 배웅한다.
"엄마랑 오빠랑. .. 둘이 진짜 잘 어울린다. 꼭 부부같아."
"야아아. 내가 40대로 보인다는 말이냐?"
"그게 아니라 엄마가 20대로 보인다고. 하하."
"쟤가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 미리 손쓰는 것 같다. 하하."
"엄마는? 내 말을 왜 그렇게 색안경을 끼고 그러셔?"
나는 아이린을 차에 태워서 회사로 출근했다. 차 안에서 아이린은 버얼개진 얼굴로 노래를 흥얼거린다.
"누나. 기분 좋아요?"
"좋기만 해? 자기랑 같이 출근하는데, .. 하하."
송실장이 우리를 맞이하는데, 그녀는 다시 얼음공주 모드이다. 차갑고 쌀쌀맞은 표정이다. 찬바람이 쌩쌩이다.
송실장은 제일 먼저 내 자리를 회장실로 옮기라고 했다. 나는 비서들과 함께 내 자리에 있는 것들을 모두 회장실로 옮겼다.
그래도 임영신, 최수희, 주은혜 그리고 송실장과 갖는 커피타임은 옆방에서 계속되었다. 오늘 커피타임에는 아이린도 같이 있다.
이 자리에서 나는 중국에 진출하는 문제를 거론했다. 베이징과 샹하이 두 군데에 있는 백화점에 입점을 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상품은 일단 화장품으로 시작을 하기로 했다. 이제 문제는 중국으로 누가 가느냐가 문제이다. 이 문제는 송실장이 한상무와 구전무에게 알아보기로 했다.
커피타임을 마치고 최수희는 전산실에서 지난 주말의 매출 상황을 들고 왔다. 아직 50% 증가라는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는 의류 상품의 매출액이 기대 이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제 일요일에는 상품이 일찍 다 팔리는 바람에, 상품이 부족한 매장도 있다. 없어서 팔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수희가 주은혜에게 말했다.
"당분간은 은혜 언니가 고생을 할 것 같네."
"진짜 큰 일이야. 이제 바로 겨울 신상품 내보내야 하는데."
"언니. 다음 패션쇼 할 때에는 우리도 껴주면 안돼요?"
"누구누구? 희망자는 신청해. 그 대신 심사를 해야 하거든요."
"무슨 심사를 해?"
"카메라 테스트"
"옷 다 벗고?"
"그럼. 나중에는 비키니 차림으로도 하고."
"와아아. 재미있겠다."
"남성복 할 때에는 잘생기신 회장님도 끼세요."
"에이. 우리 회장님을 그러면 안되죠"
"뭐 어때? 정 그러면 야구 모자 쓰고, 큼직한 썬그라스 끼고 하든가. .."
임영신과 주은혜는 아이린을 데리고 디자인 작업실로 올라갔다. 나는 방효은과 함께 웹사이트를 점검했다. 방효은은 고객의 정보 관리 때문에 보안이 취약하므로 이쯤 해서 전산실로 넘기자는 제안을 했다.
상품 대금을 결제하는 문제와 연결되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고객들의 데이터를 어느 정도는 저장하고 있어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 해커들이 뚫기로 마음먹고 덤벼들면, 우리는 여지없이 당하게 되어있다.
내가 아이린과 함께 점심을 먹고 들어왔는데, 임영신의 엄마가 찾아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한 후에, 회장실에 앉아서 중국 진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침에 회장님께서 그 말씀을 하셨다면서요?"
"그것도 임회장님 살아계실 때의 꿈이 아니었습니까?"
"그래요. 맞아요. 영신이한테 그 얘기를 듣고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당장 달려 왔어요."
"잘 오셨습니다."
"이번에 중국에 가는 문제는 .. 내가 직접 가면 안될까요?"
"처음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중국 전문가라야 합니다.
정 생각이 있으시면, 지금 말고, 나중에 경험이 쌓이면, 그 때에 가시지요?"
"혼자 가겠다는 것이 아니고, 팀에 껴달라고 드린 부탁입니다."
"가서 무엇을 하시고 싶으십니까?"
"밥이라도 하고, 청소랑 빨래도 해주면서 돕고 싶어요."
"둘째가 아직 학생인데 어떻게 하시게요?
그런 정도면 현지에서 가사도우미가 잇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유학 가는 것처럼, .. 데리고 가면 되죠."
"잘 알겠습니다. 그럼 이 일을 추진하는 팀에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나는 할 일을 모두 마친 후에 아이린과 함께 일찍 퇴근했다. 집에서 지혜가 혼자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 오피스텔로 갔다. 그런데 지혜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얘는 또 어디로 샌거야?”
아이린은 지혜의 텔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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