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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들은... - 93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1 23:50 1,296회 0건
93화.














그녀들과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별을 겪고 난 뒤, 영희와 준수는 한동안 그녀들을 잊지 못하는듯 했다. 특히 그런 경향은 준수보다는 영희가 더 심했다. 준수와 사랑을 나누며 행복감을 느낄때마다 자연스럽게 그녀들이 떠오른 영희는 준수의 품에서 눈물을 흘리기 일쑤였고, 준수는 자신의 품에서 눈물을 흘리는 영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에 매우 안타까워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녀들과 재회했을때 부끄럽지 않게끔 영희와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라 생각하는것 뿐이였다.

준수의 마음이 영희에게 전해져서일까, 그녀들에 대한 그리움이나 미안함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영희의 눈물은 줄어들었고, 영희 또한 자신이 매일같이 준수의 품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그녀들이 알게된다면 자신을 흉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을 위해서, 준수를 위해서, 그리고 그녀들을 위해서라도 준수와의 행복한 나날들에 빠져들어갔다.

"늦어?"

"응... 미안해요 여보... 오늘은 당신이랑 같이 있고 싶었는데..."

"괜찮아. 어쩔 수 없지..."

외출을 준비하는 영희는 화장을 마무리하며 아쉽다는듯 거울에 비치는 준수를 바라보았다. 방학기간이라 특별한 날이 아니면 영희는 그와 함께 하루종일 같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오늘 친구들과의 약속때문에 외출을 해야한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치... 당신은 제가 나가는데 아쉽지도 않아요?"

"... 내가 왜...?"

"흥... 몰라... 콱... 나가서 안들어올까보다..."

영희는 내심 준수가 그냥 약속을 나가지 말라는 한마디정도는 해줬으면, 아니, 말이 아니라도 약속을 나가지 말라는 눈치 한번이라도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지만, 준수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듯 무심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내심 심통이 났다. 자신은 준수가 약속에 나갈때마다 누굴 만나는지, 언제 들어올 것인지 궁금했고, 심지어는 준수가 그냥 나가지 않고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었기 때문이였다. 거울에 비친 영희의 얼굴에서 그런 생각을 읽어서인 준수는 살며시 영희에게로 다가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당신 안들어오면 나는 어떻게 살라고..."

"흥... 몰라요..."

"나도 당신이랑 계속 같이 있고싶지... 근데 친구들 만나는거잖아... 나때문에 친구들 하나도 안만나고 그런건 원치 않아..."

"... 나... 그냥 나가지 말까요...?"

"에이... 왜그래. 그러다가 친구들이 흉봐. 그러지말고 그냥 갔다와 여보. 정 그러면 일찍 들어오면 되잖아. 그치? 안자고 당신 기다릴테니까..."

"정말...? 정말로 안주무시고 저 기다릴거에요?"

영희의 질문에 준수는 대답 대신 그녀의 뺨에 입을 맞추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그럼, 당신도 없는데 내가 그냥 잘거같아?"

영희는 귓가에서 화끈한 열기를 느끼며 그녀의 셔츠 위로 가슴을 만지작거리는 준수의 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대로 준수의 손을 조금 더 허용하면 약속이고뭐고 준수를 침대로 넘어뜨릴것같은 생각에 그는 준수의 손을 때렸다.

"이이는... 참..."

"알았지? 기다릴테니까 늦으면 안되."

말을 마치고 준수의 입술을 립스틱이 묻은 영희의 입술을 훔쳤다. 하지말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준수의 입술이 포개져서 영희는 순간 당황하기도 했고, 자칫 잘못하면 약속에 늦을것같아서 준수를 말리고 싶었지만, 그녀의 마음과 달리 그녀는 준수의 혀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뜨거운 그녀의 혀로 타액교환을 하며 준수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마치 몸이 하늘에 떠있는것같은 기분을 느끼며 더욱 깊이 그를 느끼고싶다는 생각이 들때쯤, 준수는 장난스럽게 그녀의 젖꼭지를 꼬집고는 그녀의 입술에서 떨어져나갔다.

"후후... 약속시간 늦겠다. 빨리 준비해야지."

"다... 당신... 정말... 당신때문에 이게 뭐에요... 립스틱도 다시 해야되고..."

"그래? 음... 그럼 앞으로 당신이 립스틱하면 키스하지 말아야겠다. 그치?"

"저... 정말... 하지 말란말은 안했거든요!!"

"하하... 장난이야 장난..."

"진짜... 당신... 좀있다가 봐요 정말... 오늘 잘생각은 하지도 말고!!"

영희의 으름장에 준수는 그저 웃으며 그녀를 더이상 방해하지 않겠다는듯 영희의 방에서 빠져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영희의 불만스러운 눈빛은 금새 애틋한 눈빛으로 바뀌어있었다. 그리고 다시 거울을 바라보며 준수와의 키스로 인해 엉망이 된 그녀의 화장을 고쳤다.













"어머, 영희야. 오랫만이다 얘. 그나저나 너 너무 예뻐졌다... 애인이라도 생겼니?"

"얘.... 얘는..."

"호호... 지연이 쟤는 하여튼 입이 방정이라니까. 어서 앉아 얘. 어떻게 지냈니?"

정말 오랫만에 보는 친구들이였다. 준수의 훼방으로 인해 생각보다 집에서 나오는데 시간이 걸린 그녀는 그녀의 친구들이 그녀가 늦은 것에 대해 화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친구이기 문일까, 아니면 먼저 와서 수다를 떠느라 영희가 늦은건 신경도 쓰지 않아서일까 영희가 늦은 것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영희의 앞에 앉은 친구인 은영과 희숙은 그녀의 몇 안되는 친구들이였다. 은영의 경우는 전에 영희가 준수, 수혁, 수정과 함께 여행을 갔을 때 잠깐 봤던 사이였고, 희숙의 경우는 2년전 그녀가 아팠을 때 내진을 왔었던 친구였다. 어쨋든 그녀들은 준수의 얼굴을 알고 있어서 왠지 만나기가 껄끄러웠기 때문에 영희는 그녀들을 만나는 것을 피해왔었지만 희숙이 남편과 이혼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더이상 만나는 것을 미룰수가 없었던 것이였다.

"얘, 오늘 시간 많지? 희숙이 저년 어차피 남편도 없으니까 오늘은 질펀하게 한번 놀아보자는데."

"응...? 나... 나는..."

"치... 기지배. 어차피 너도 혼자고 나도 혼자잖아. 뭐가 문제야?"

"아... 아니... 나는 술도 잘 못마시고..."

"술 못마시면 어때. 술자리를 뭐 술마시려고 가는거니? 분위기때문에 가는거지. 아니면 왜, 숨겨둔 서방이라도 있어?"

영희는 희숙과 은영의 말에 차마 준수가 자신의 서방이고, 지금 집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을 포함해 여자 3명이서 밥을 먹고 간단하게 술을 한잔 하고나면 헤어질 것이고, 그렇게 하면 귀가시간이 그렇게까지 늦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일단은 그녀들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희의 생각은 큰 착각이였다. 밥을 먹고 커피를 한잔 할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그녀들은 여자들끼리만 할 수 있는 무난한 얘기들을 쉴새없이 속사포처럼 내뱉으며 눈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흘러갔다. 딱히 영희의 양심을 건드리는 말도 없었다. 얼마전에 이혼을 한 희숙도 희숙이지만 은영 또한 오래전 남편과의 아픔이 있었기에 서로 민감한 부분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저 희숙이 이혼을 한 후 위자료를 받은 것으로 자신의 병원을 옮긴 얘기, 은영이 은영하는 팬션에 대한 얘기정도밖에 없었기에 술자리에서도 무난할것 같았고, 그렇게 많이 마실 것이라고는 이때의 영희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캬아~ 역시 찌개에는 소주지. 안그래?"

영희는 술이 센 편이 아니였다. 그래서 희숙과 은영이 소주 한 잔을 이미 마셨음에도 그녀는 그녀의 잔의 소주를 들이삼키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 그런 영희를 희숙과 은영이 못마땅한 눈치로 쳐다보고는 불만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얘, 이런날 안마시면 언제 마시려고 그러니?"

"맞아. 어차피 많이 마실것도 아니고 한잔정도는 마셔도 되잖아."

"나 술 약한거 알잖아..."

"으이구... 누군 술이 쎄서 잘마시니? 살다보니 이런저런 일이 있고, 잊고 싶은 일도 있고 하니까 술로 달래는거지. 희숙이 저기지배가 오죽했으면 우리 만나자고 했겠어? 그리고 오랫만인데 한잔정도는 마셔줄수도 있잖아."

게속되는 눈치에 영희는 더이상 술을 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영희는 한숨을 내쉬고는 울며겨자먹기로 소주를 한번에 털어넣었다. 하지만 영희의 생각과는 달리 오랫만임에도 오늘따라 소주가 달게 느껴져 불쾌감은 없었다. 다만 늦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뿐...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그녀들의 이야기에 영희는 어느덧 빠져들었다.

"얘, 희숙아. 너도 이제 그냥 남편 눈치보지말고 이남자 저남자 마음껏 만나고 다녀봐."

"만나고 싶어도 남자가 없다. 크으~"

"왜? 소개시켜줄까?"

"치... 너도 얼마전에 젊은 남자놈이랑 헤어졌다며."

"얘. 세상에 남자가 한둘이니? 게다가 걔는 너무 어려서 내가 헤어지자고 한거야. 어린놈이 쑥맥이라 밤일도 못해서 마음에 안들었어."

"호호... 못하는 얘기가 없네그래."

"하아~ 그냥 엔조이로 만나는 남자는 있어~ 애가 수영강사라 그런지 힘도 얼마나 좋은지... 쿡쿡. 너도 경험해보면 알거야. 관심가면 소개시켜줄까?"

"獰?.. 나같이 나이먹은 여자를 누가 만난다고..."

"어허... 모르는소리. 얘, 우리 아직 잘나가는나이야. 게다가 우리같은 여자들 좋아하는 남자들도 얼마나 많은데. 너 전남편은 밤일 잘 못했다며?"

"말도마... 하여튼 토끼가 따로없어. 근데 지가 만족하면 나도 만족하는줄 알고... 어휴... 지금 생각해도 내가 어떻게 그걸 참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술이 넘어가면서 그녀들의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희숙의 전남편의 이야기로 넘어갔다. 희숙의 부부관계 이야기, 그리고 전남편의 바람, 이혼... 이렇게 이야기가 넘어가면서 그녀들은 점점 남자들에 대한 험담과 섹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영희는 내심 이런 이야기를 누가 들으면 어떻게하나, 라는 생각에 주위의 눈치를 살폈다. 물론 술집의 다른 사람들도 유난히 큰 목소리로 떠들어대서 그녀들의 목소리가 남의 귀에 들어갈것 같진 않았지만 괜히 초조해지며 영희는 불안감을 달래기위해 그녀도 모르게 술잔을 홀짝홀짝 비워나갔고, 그러던 사이에 어느덧 영희는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얘, 벌써 취했니? 아니지?"

"응? 아니야. 안취했어. 누가 취했다고그래."

"호호... 그나저나 난 너가 제일 궁금하다. 얘, 너는 외롭지 않니?"

"나? 응.... 안외로운데..."

"그래? 어떻게 그래? 남자 그리울때 없어?"

준수로 인해 남자에 대한 그리움을 느낄 틈이 없는 영희였기에 그녀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것을 보며 은영, 그리고 특히 희숙은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영희를 바라봤다.

"얘, 너 얼마전까지 상사병을 앓아놓고선... 솔직히 말해봐. 지금 만나는 남자 있지? 그때 그 남자야?"

"내... 내가 언제...!"

"그때 기억 안나? 비오던 날 왜..."

영희는 문득 지난날 준수의 간호를 받았던 때가 떠올랐다. 분명 그때 비를 맞아서 감기에 걸렸던것 같은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때는 한창 그녀가 준수에 대한 마음때문에 고생을 하던 때기도 했었고... 영희는 자신의 속마음을 들킨것같아 희숙의 말에 심하게 부정했지만 오히려 그녀의 그런 반응이 그녀들의 의심을 샀다.

"있구나? 호호... 있으면 있다고 하면 되지 뭘 그렇게 숨기니? 남편이 있는것도 아니고, 남자만나는게 뭐가 그리 큰 잘못이라고."

"냅둬 얘... 우리한테 말해주기 싫은가보지 뭐. 호호... 그나저나 영희야, 네 남자 몇살이야?"

마치 영희에게 남자가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시켜서 말하는 그녀들때문에 영희는 답답함에 화가 치밀 지경이였다. 물론 그녀들의 예상대로 영희에게는 준수라는 남자, 아니... 내연남을 떠나서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있는것이 사실이였지만, 그것이 사실이기때문에 더 화가 났다. 영희는 자신의 술잔이 빈것을 확인하고 그녀들 곁에 있는 소주병을 빼앗아 술을 따른 후 또 한잔을 입에 털어넣었다. 이미 그녀의 얼굴은 화가 나서인지 술에 취해서인지 모를정도로 시뻘개진 상태였다.

"알았어 알았어. 어휴... 방금전까지 술 못마신다고 해놓고는... 알았어 알았어. 말 안꺼낼게..."

영희가 째려보는 시선에 부담을 느낀 은영은 더이상 영희에게 남자에 대해 추궁하는 것을 포기했다. 더이상 캐물었다가는 영희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그녀들사이에는 어색함이 흘러나왔다. 영희는 괜히 자신의 반응으로 인해 좋았던 그녀들의 분위기를 깨버렸다는 생각에 후회감이 몰려왔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뭐라도 말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며 영희는 그동안 은영에게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얘... 은영아... 너는 젊은 남자들을 그렇게 만난다면서... 결혼생각은 없니?"

"결혼? 음... 아예 없진 않은데. 지금 만나는 남자들중에는 글쎄..."

"사랑... 하는사람은 없어...?"

"사랑? 호호호호... 사랑이라... 글쎄... 없진 않은데... 결혼까지는 하고싶지 않아."

"왜... 결혼 좋잖아... 굳이 다른 사람 눈치보면서 만날 필요도 없고... 왜... 밤일도 마음껏 할 수 있고..."

"어휴, 싫어. 얘. 남자는 말이야... 원래 한번 내 여자로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면 그때부터는 다른 여자한테 눈길을 돌리게 되있어. 그건 어린놈들이나 늙은놈들이나 똑같아. 아... 어린 놈들이 여자 꼬시기에는 더 유리하다는 면에서는 어린놈들이 더할수도 있겠네. 그래서 나는 어린놈들한테는 마음을 안줘. 사랑? 물론 뭐... 사랑한다고 말하기는 하지. 왜, 그렇잖아.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더 좋아하는거. 그냥 그거 뿐이야."

"다... 그런건 아닐텐데..."

"풋... 영희야. 네가 남자를 몰라서 그래. 지숙이도 봐봐. 쟤 남편 처음 연애할때는 그렇게 지숙이 좋다고 못죽어서 난리치드만, 지금와서 봐라. 어휴... 세상에 남자 입이랑 손이랑 좆은 믿지 말라는 말도 모르니?"

영희는 계속된 은영의 말에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말하는 연애관이나 남자에 대한 생각은 마치 자신의 연인인 준수를 욕하는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이 마치 네 남자도 결국은 평범한 남자일 뿐이다, 언젠가는 널 떠나갈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것으로 들렸다.

"얘, 생각해봐. 그리고 20살짜리 젊은 놈이랑 만난다고 쳐봐. 걔가 결혼할 나이인 30이 되면 우리는 벌써 40대 중반을 넘어. 그런데 걔가 날 여자로 봐주겠니?"

영희는 알 수 없는 갑갑함을 느끼며 또다시 술잔을 비웠다....














준수는 저녁을 먹고 설겆이까지 한 후 티비를 켜서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그동안 영희와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에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려서 그녀 없이 혼자서 밥을 먹는것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만큼 자신이 그녀와의 삶에 익숙해졌고, 그녀 없는 삶은 더이상 상상할 수 없는 그런 것이였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영희를 떠올리고는 빨리 그녀가 보고싶어졌다.

시계바늘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였다. 이제쯤 올 시간이 됐으니, 잠시 후면 오겠지, 라는 생각을 했지만 야속하게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 혹시 자리가 늦어지는것은 아닌가 싶어 휴대폰을 꺼냈지만, 액정에는 그녀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전화해볼까? 아니면 문자라도? 이런 생각을 한 것이 한두번이 아니였지만 괜히 연락해서 그녀가 재미있게 놀고 있는 것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오고 있는 길일수도 있지 않은가. 괜히 연락해서 자신이 그녀를 의심한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벌써 11시가 되었다. 그때까지도 연락이 없었다. 지금쯤이면 슬슬 막차를 걱정해야할 시간이 아닌가. 그는 베란다 밖을 보며 이미 어두워질대로 어두어진 겨울하늘을 보면서 괜한 불안감에 사로잡였다. 혹시라도 술을 너무 많이 마신것은 아닌가, 어디에 쓰러져버린 것이 아닌지, 아니면 혹시 만취한 그녀를 누군가 납치한 것은 아닌지, 오만가지 생각이 그를 괴롭힐때쯤, 그의 휴대폰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그것은 영희로부터의 전화였다. 그는 자신이 걱정했던 것을 괜히 내비치지 않기 위해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디...."

-야, 너가 그렇게 잘났어?

준수는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핸드폰을 귀에서 떼고는 다시 한번 발신자를 확인했다. 하지만 발신자에는 영희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었다.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고는 다시 핸드폰을 귀에 댔지만, 통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영락없는 영희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술에 많이 취한듯 혀꼬인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을 했다. 준수는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에 끓어오르는 화를 참으며 그녀에게 말을 했다.

"... 술 많이 마셨어요?"

-술? 그래. 많이 마셨다. 왜? 뭐 보태준거 있냐? 많이 마시면 안되?

"... 많이 취하셨나보네... 어디에요. 데리러 갈게요."

-뭐? 니가 왜? 니가 뭔데 날 데리러온다 만다 난리야? 아이고... 혹시 나 걱정해주는거야? 킵? 친구들이랑 더 놀다가 갈거거든요? 헤헤... 준수야... 있잖아. 아까 우리 자리에 남자들이 와서 같이 합석해도 되냐고 물어봤었다? 나 잘나가지? 그치? 히히...

"......"

-왜~? 기분나빠? 아잉~~ 기분나쁠건 또 뭔데~? 화났어? 왜 말이 없어? 야, 니가 그렇게 잘났냐? 니가 뭔데! 그래... 젊다 이거지? 알았어... 잘나셨어요... 흥이다 흥. 너 말고 다른 젊은 남자들도 많거든~?

아무리 술김이라지만 영희의 말 한마디한마디에 준수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것 같았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취한 그녀를 말리는듯 티격태격하는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 전화를 끊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그닥했고, 준수가 마침내 통화종료버튼을 누르려고 한 순간, 차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준수니? 나 희숙이야. 그때 본 영희 친구의사. 여기가 어디냐면...















"왜~~ 더마시자. 응~? 3차가자 3차. 아니 4차인가?"

"그만마셔 좀..."

"얼레? 아까는 못마신다고 뭐라고 하더니 이제는 그만마시래네~? 취했나보구나 은영이? 그러니까 맨정신에 한 말을 들을래. 아저씨~ 여기 소주 한병 더요~~"

"아... 아직 술 안딴것도 있어! 어휴... 죄송해요... 술은 더 안시킬게요... 어휴... 쟤 술 누가 먹였니?"

"... 그러게..."

은영과 희숙은 만취해버린 영희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수다를떠느라 신경을 못쓰던사이 여느새 영희는 소주 2병을 넘게 마신 상태였었고, 지금도 술을 따르고 있었던 것이였다. 그녀들은 영희를 말리려고 했지만, 취한주제에 어디서 힘이 그렇게 나오는지, 그녀들이 제지하는 손을 가볍게 뿌리쳐버리고 영희는 계속해서 술을 들이켰다.

"후움~~ 은영아~~ 좋은 남자 있으면 소개시켜주라~~ 응~? 어린놈으로~~ 부탁~~해요~"

"......."

"아잉~~ 대답해줘엉~~ 웅~? 아니면 우리 희숙이가 소개시켜줄래~? 헤헤... 늙은 남자도 괜찮은데... 웅~? 치... 왜 아무도 말이 없어~? 술이나 마시라 이거지? 알았..."

언제 도착했는지 준수는 술병으로 향하는 영희의 손을 낚아채었다. 하지만 영희는 그때까지도 그녀의 손을 잡은게 준수인지 모르고 취한채로 말을 했다.

"아~~ 누구야~? 내 손 잡지 마요. 이래뵈도 저 임자 있거든요? 우리 자기가 알면 당신 죽어~~ 어라... 오빠 잘생겼다... 오빠 나랑 4차 갈래?"

"... 죄송해요... 저 이모 좀 데리고 가도 되죠...?"

"응... 준수야... 미안해... 우리가 술을 먹인건 아닌데... 정말 미안해..."

"아니에요..."

"... 준수 오랫만이네... 정윤언니는 잘 있지? 그나저나 준수 멋있어졌다..."

"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뵐게요... 이모, 일어나봐요 이모..."

"아잉~~ 오빠~~ 이모가 뭐야 징그럽게... 웅~? 자기야... 아니지아니지... 우리 자기는 따로 있는데... 그래그래. 오빠도 우리 자기하면 되겠다. 괜찮지 오빠~?"

"아이... 참... 좀 일어나요..."

"싫어싫엉~~ 나 4차 가고싶단말이야~~ 오빠가 데려가 줄거지? 4차... 아니... 5차까지... 그래그래. 히히..."

"알았어요 알았어... 4차 가요... 그러니까 좀 일어나요..."

"4차~? 우와~~~ 그래두 그냥 가기 시렁... 그러니까 오빠... 뽀뽀해줘... 웅~? 뽀뽀..."

영희의 추태에 준수는 화가 치밀어올랐지만 차마 그녀들 앞에서 화를 낼수는 없었다. 간신히 표정관리를 하며 준수는 영희를 억지로 일으켰다. 하지만 영희는 아직도 상황파악을 하지 못한듯 준수의 속을 박박 긁는 말을 계속해서 내뱉었다.

"아잉~ 어딜만져... 내 가슴은 우리 자기꺼란말이야... 아니다. 오빠 마음에 드니까 내가 한쪽 가슴은 허락해줄게... 히히... 우리 자기한테는 비밀이다? 알았지?"

"얘! 영희야!! 너 미쳤니!?"

만취한 영희를 희숙과 은영이 도와주고나서야 준수는 가까스로 그녀를 부축할 수 있었다.....














"아... 머리아파... 여기가 어디야...?"

영희는 머리가 깨질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자기가 도대체 어떻게해서 집에 들어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자신의 몸을 더듬더듬거리며 자신이 어제 입고 나갔던 옷이 아닌 잠옷을 입고 있다는 것, 심지어는 속옷마저 갈아입은 상태라는 것정도는 알 수 있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고 침대를 손으로 몇번이고 확인한 후에야 자신의 집인 것을 확인한 영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내가 미쳤지... 어제 어쩌자고 그렇게 술을..."

잃어버린 기억을 떠올리고 싶었지만 머리가 아픈것도 모자라 속도 타들어가는것같은 느낌에 더이상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옆을 돌아보며 자신의 곁에 준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준수의 흔적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린 결과 화장대 위에 준수가 남겨놓은 쪽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북어국 끓여놨으니까 드세요.

술을 먹은 자신을 위한 준수의 배려에 영희는 다시 한번 준수에게 애틋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녀는 부시시한 머리를 대충 정리한 후 거실로 나갔다. 식탁 위에는 준수가 차려놓은 아침이 그대로 있었다. 북어국을 시작으로 계란찜, 김치같은 간단하면서 속이 편한 음식들이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준수와 함께 아침을 먹고 싶었기에 준수를 찾았고, 준수는 그의 방에 있었다.

"저... 여보... 식사 하셨어요?"

"전 먹었으니까 밥 드세요 이모."

영희는 준수가 갑자기 왜 자신을 평소처럼 안부르고 다시 이모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고 숟가락을 들었다. 좀 해장을 하고 나서야 속이 편해지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머리가 아직 지끈지끈 아파왔지만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녀는 아직 몸에서 술냄새도 나는것 같고 머리도 정리가 되질 않아 다시 한번 샤워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음... 그나저나 이상하네... 준수가 나한테 왜그러지...? 마치 화난 사람처럼... 내가 뭐 잘못을 했나...?"

샤워 물줄기를 맞으며 그녀는 준수에 대한 생각을 했다. 물줄기가 그녀의 술기운을 씻어주는듯 했고, 어제에 대한 기억, 그리고 준수에 대한 생각을 하자 하나씩 그녀의 잃어버렸던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미쳤어 미쳤어... 진짠가...?"

그녀는 자신에게 돌아온 기억을 믿을수가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대충 샤워를 하는 것을 마무리하고는 재빨리 그녀의 방으로 돌아와 핸드폰을 잡아들었다. 그녀의 핸드폰에는 어제 같이 술을 마신 희숙이 보내온 문자가 있었다.

-기지배. 술좀 적당히 먹지, 준수 앞에서 그게 뭐니? 아무튼 잘 들어가고 다음에 보자.

영희의 손을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아직 그녀에게 술이 취해있어서 그녀의 머릿속의 기억이 거짓된 기억이라고 믿고 싶었다...

자신을 데리러 온 준수에게 온갖 추태를 부린것, 그녀들이 보든말든 준수의 뺨에 계속해서 뽀뽀를 하고, 그의 손을 잡아서 그녀의 가슴을 만지게 했던 것, 그리고 택시에서 그의 어깨에 기대서 잠을 자던 도중 토를 해서 택시와 준수, 영희의 옷에 묻었던 것... 준수가 죄송하다고 몇번이나 사죄를 하고 택시기사에게 사례비를 건네준 것... 택시에 내려서 집에 올때까지도 중간중간에 토를 하고는 준수에게 온갖 투정을 부려댄것... 집에 와서 준수가 그녀의 옷을 갈아입히기 위해 옷을 벗길때 계속해서 준수에게 해서는 안될말을 건넨것...

그녀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얼굴이 화끈거리며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아... 그래서 화가 났구나..."

영희는 그제서야 준수가 아침에 그녀에게 보인 냉랭한 반응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정말 큰일났다고 생각했다. 어떻게해야 그의 마음을 풀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딱히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정도로 그녀가 어제 부린 추태는 그녀 인생에서는 단 한번도 없었던 그런 것이였고, 그녀가 보던 드라마에서의 장면들보다도 더욱 추한 것이였다. 하지만 이대로 이렇게 있을수만은 없었다. 그녀는 용기를 내서 조심스럽게 준수의 방문을 두드렸다.

"저기... 들어가도... 되...?"

"공부중이에요. 방해하지 마요."

역시 그녀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쌀쌀맞은 것이였다. 하지만 이대로 준수에게 아무런 말도 못하면 그녀는 평생을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희는 조심스럽게 준수의 방문 손잡이를 돌렸고, 다행히도 준수의 방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 저... 준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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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섹스신은 없는 93화입니다.
93화는 나름의 개그코드로 영희의 주사를 넣어봤습니다.
잘 묘사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네요...

그리고 희숙은 15편정도에서 나왔던 영희의 친구고
은영같은 경우는 수정, 수혁과 함께 놀러갔던 팬션의 주인입니다.

아, 참고로
영희의 주사는...
물론 배경이나 관계같은것은 조금 다르지만
저의 경험담.... 입니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분노가 폭발해버리죠.
이래서 적당히 마실줄 아는 음주문화가 필요한거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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