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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1 23:52 1,277회 0건






74. 김태현 비서?



회장은 우리를 소파로 앉게 했다. 다른 여비서가 커피와 차를 내온다. 회장도 우리에게로 와서 앉았다. 부장도 헐레벌떡 들어와서 우리와 같이 앉았다. 회장은 우리와 간단한 인사만 주고 받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조금 있으면 11시에 인사과에서 발표가 있을 예정입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분기의 업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을 먼저 오시도록 했습니다.
오늘부터 한태규 부장님은 나라마트 분야의 업무를 총괄하는 상무님이십니다.
오늘부터 최수희씨는 한상무님 비서로 근무하시고, 김태현씨는 회장 비서길에 합류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수고를 많이 했으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회장은 우리와 일일이 악수를 하고 칭찬과 부탁하는 말을 간단하게 했다. 그리고 우리는 회장실을 나왔다. 부장과 최수희는 내려갔다.


임영선은 나를 회장실 옆에 있는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 방이 앞으로 내가 일할 방이란다. 그런데 그 방은 회장실보다 훨씬 큰 것 같다. 방은 큰데, 가구가 없으니 너무 썰렁하다. 이 큰 방에서 도대체 날더러 임영선과 같이 무엇을 하라는 말인가?



"하아. .. 이 큰 방에서 나 혼자 일하는 줄 알았는데.
파트너가 생겨서 진짜 다행이다."

"그런데 내가 왜 회장님 비서가 됐지?"
"왜? 불만 있어?"

"불만 없거든. 이유나 알자니까."
"가르쳐 주려고 어제 만나자고 하니까 씹었잖아?"

"노동자에게 일요일이나 공휴일은 신성불가침이거든.
쉬는 날을 왜 회사일로 쓰란 말이야?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말 해봐."

"그게 그렇게도 궁금해?"

"아아뇨오. 전혀거든요?
문제는 난 모르면 아무 일도 안하는 습관이 있거든."

"허쭈? 이거 완전 협박 아냐?"

"협박 전혀 아닌데?
내가 할 일이 없어서 연약한 아녀자를 협박이나 해?
무슨 일을, 어떻게, 왜 해야 하는가를 모르면 나는 일을 시작도 할 수 없어.
나는 시키는 대로 닥치고 일만 하는 그런 사람 아니거든."


"뭐가 이렇게 까칠해?"
"나 오늘 면도 안했잖아."

"엄청 썰렁이거든요?"
"히터 켜줄까요?"

"돌겠네."
"돌든가."

"업무 얘기는 11시에 발표가 나면, 그 다음에 점심 먹으면서 할꺼야."
"밥맛 떨어지게 왜 하필 식사 중에 그런 말을 해?"

"아오.. 얄미워."



임영선은 열 받았는지 밖으로 나갔다.


나는 창 가에 있는 자리를 내 자리로 점령했다. 그 자리에 내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에 깊숙이 앉아서 방금 사용한 까도남 전략에 대해서 점검을 했다. 그런데 이 전략은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지 미리 생각해 둔 컨셉은 결코 아니다.

앞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일하려면 임비서의 기를 꺾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직원과 기싸움이나 해야 한다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다. 유치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주에 임비서가 나와 같이 외근 나갔던 날에는 제법 고분고분한 편이었다. 그런데 주말에 만나주지 않았다는 것을 꼬투리로 잡아서 그녀의 도도한 기세가 하늘을 찌를 것 같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방책을 세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임영선은 나보다 나이가 한두살 많은 것 같다. 만일 임영선이 나에게 누나라고 부르라고 한다면 내 인생은 엄청 꼬일 것 같다. 나는 이런 일은 끝까지 거부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내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내가 한강유통이라는 이 회사를 오래 다닐 것도 아닌데 너무 깊이 개입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앞으로 몇달만 다니면 그만둘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 회사가 나를 이렇게 하는 이유가 뭘까? 혹시 회장과 임영선이 무슨 작당을 하는 것은 아닐까? 만일 그게 아니라면 임영선이 회장을 앞세워 나에게 횡포를 부리려는 것은 아닐까? 그녀와 내가 전생에 무슨 앙숙이었다고 그런 일이 생길까?


이 큰 방에 할 일도 없이 혼자 있으려니까 엄청 심심하다. 나는 2층 총무과로 내려갔다. 나는 내 자리에 있는 짐을 챙겨서 비닐팩에 담고 있었다. 그런데 강과장이 최수희와 같이 들어왔다.



"김비서님, 섭섭해서 어떡해?"
"자기야. 우리는 자주 보자."

"내가 뭐 다른 회사로 가기라도 했나?
2층이랑 8층이 먼 거리도 아닌데."

"김태현씨 송별회를 해야 할텐데, 주말 아니고는 안되지?"
"이달 말까지는 주말에도 안돼요. 애들이 학교에서 시험이 있거든요."



우리가 이런 얘기를 하는데 다른 여직원들이 모두 우리에게로 몰려왔다. 나는 그녀들과 작별을 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등 뒤에서 그녀들이 쑤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지금 말이 되는거니?"
"쟤는 전생에 나라와 민족을 몇 개나 구한거야?"
"하아. .. 저러다가 회장님 사위가 될 것 같은 이 예감은 도대체 뭐지?"
"왜도 아냐? 임비서 그 불야시 꼬리 치는 것이 보통이 아니잖아."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서 내가 점령한 자리에 내 짐들을 정리했다. 임영선이 들어와서 나를 데리고 나간다.



"이 방에 들어올 가구를 신청해야 하니까 여기좀 볼래요?"



임영선은 나에게 와서 자기가 작성한 가구 목록을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컴퓨터, 노트북, 소파, 책장 등이 적혀있었다. 나는 거기에 정수기와 커피메이커 등 몇 가지를 더 추가해달라고 했다. 그녀는 가구 목록을 들고 다시 나갔다.

드디어 기다리던 11시이다.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가 너무 궁금했다. 그런데 임영선이 와서 나에게 들어왔다.



"김태현 비서님."
"어?"

"김태현 비서님의 인사 명령이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제부터 김비서님의 업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와아아. 드디어. .. 기대된다."

"김비서님께서는 한상무님과 회장님을 동시에 보필하셔야 합니다."
"나 한 사람이 무슨 재주로 두 분을 보필하지?"

"그런데 이것은 명목적인 과제입니다.
김비서님은 직함은 비서지만, 실제로는 비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또 무슨 말이죠?
비서라면서 또 아니라면 도대체 뭐라는 거야?"


"김비서님은 직함만 회장님의 비서입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하시는 일은 비서실 업무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알아듣기 쉽게 말해."


"김비서님은 그 동안 마트에서 경험한 것이 많거든요.
그 중에서 장기적인 대책과 단기적인 대책을 기획해서 실행하여야 합니다.
실행하는 모든 과정은 한상무님께서 관리하십니다.
모든 결과를 평가해서 상무님과 회장님께 동시에 보고하시면 됩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김비서님의 업무는 마트 사업에서 실적을 확실하게 올리시는 것입니다."

"복잡하네."

"원래는 이 일을 기획부에서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여러 부서나 임원들로부터 감독이나 지시를 받거든요.
그것을 피하는 방법은 회장 비서실에서 아무도 모르게 기획을 하는 것입니다.
그 기획이 한상무님 손에 넘어가면 실행은 그쪽에서 합니다."

"이건 뭐 스파이들이 작전하는 것 같네."

"솔직히 말하면 그 말이 맞습니다.
이것은 업무를 비밀리에 해야 하는 문제가 전혀 아닙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김비서님만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쓸데없이 김비서님이 하는 일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회장님의 생각은 김비서님을 자유롭게 일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나 한상무님은 김비서님을 최대한 도울 것입니다."


"으음 .."

"오랜 기간 동안에 마트 사업은 실적이 거의 없었거나 아니면 적자였습니다.
그래서 한강유통은 마트 사업을 포기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분기 때 실적이 급성장을 하는 바람에 방침이 바뀐 것입니다.
이 계획은 회장님과 한상무님 두분께서 추진하십니다.
그래서 회장님께서는 이번 분기에는 마트 사업의 실적에 거의 모든 것을 걸고 계십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한강유통이 마트 사업을 계속하느냐 아니면 포기하느냐가 문제네?"

"그것이 지금 김비서님 손에 달려있습니다.
만일 실적이 전처럼 부진하면, 한강 유통은 이 사업을 접고, 회장님께서도 은퇴하실 것입니다."

"이거 원. .."

"간단하게 말하면 김비서님의 업무 영역은 제가 말씀드린 대로 입니다.
그러나 무슨 일을 어떻게 하시든 그것은 김비서님 생각대로 하시면 됩니다."

"내가 이 회사에 앞으로 몇 달만 다닐꺼니까, 그 동인에 이 일을 해내라고?"
"바로 그래서 우선 짧은 기간 동안에 큰 성과를 내기에는 김비서님이야말로 가장 적합한 인물입니다."

"살떨려서 일이나 제대로 하겠어?"
"필요하신 것이 있으면 나나 비서실에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그럼.. 임비서는 누구 비서죠?"
"겉으로 보면 나는 회장님 비서지만, 저는 오직 김비서님만을 보필합니다."

"아하. .."

"김비서님. 내가 이런 식으로 말씀드리면 딱딱하지 않습니까?"
"딱딱, 어색, 이상, 등등 전부 다야."

"그럼 이렇게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십시오.
그 말씀을 하시지 않으면 저는 앞으로 계속 이렇게만 이야기 해야 합니다."

"이것도 나쁘지 않고 좋은데?"
"김비서님, 참 나쁘십니다."

"알았어. 농담이야. 이제 그만 해."
"야. 김비서. 너 지인짜. .."

"그래? 그럼 아까처럼 원래대로 할까?"
"아.. 아닙니다. 조심하겠습니다."

"알았어. 그렇다면 이제 그만 해도 돼."
"고마워. 필요한 것 뭐 있어?"

"여기 머그잔에 커피 부탁해요."
"어? 기다려."




임영선은 아예 비서실에 있는 커피메이커를 가져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마치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뭔가에 홀렸거나.

시간이 지나면 뭔가가 드러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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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일 202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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