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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1 23:52 1,228회 0건





75. 지금은 실패할 시간도 없다.




임영선은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끝냈다. 그리고 나서 점심시간이니까 점심 먹으러 나가자고 했다. 그런데 오늘은 최수희와 같이 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 전화기에는 벌써 최수희가 나에게 보낸 카톡이 와있다. 최수희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고, 내 연락을 기다린다고 했다. 나는 최수희에게 전화를 해서 이리로 오라고 했다. 최수희는 금방 내 방으로 들어왔다.



"와아아. 사무실이 뭐 이렇게 커? 운동장만큼 넓네."

"언니. 맞죠? 너무 넓죠?
여기도 이번 주말에 칸막이 공사를 해요."

"그럼 이 방에서 이제 자기가 일하는거네?
자기 진짜 좋겠다."

"언니는 말끝마다 자기 자기 하는데, 진짜 둘이 무슨 사이인 것 맞죠?"

"사이는 무슨 사이?
김비서가 처음에 들어와서 띨빵하게 어리버리하고 있을 때 일을 가르치고 배운 사이지.
왜? 내가 자기라고 부르는 것이 듣기 거슬러?"

"아니.. 뭐.. 거스르다기 보다 .. 꼭 그런 것이 아니라 ..
언니가 자기라고 부르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것처럼 자연스럽잖아요.
그런다고 그 말을 당연하다는 듯이 그대로 듣고 있는 김비서도 그렇고.
저 남성이 나한테는 엄청 까칠한데, 언니한테는 전혀 그런 것도 없고 .."

"그런 것은 다 자기 하기 나름 아니겠어?"



우리 셋은 밖으로 나갔다. 임비서는 우리를 데리고 한식집으로 갔다. 우리 셋은 보글보글 끓는 생선찌개를 한가운데에 놓고 오손도손 밥을 먹는다. 밥이 맛있어야 하는데, 밥알이 모래알 같다.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생각 때문이다. 내가 무슨 재주로 마트 사업에 날개를 달아준다는 말인가? 일하는 사무실 방이 크고 작은 것이 지금 나한테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런데도 최수희는 마치 어린애처럼 흥분해있다.



"자기야. 나 아직 꿈꾸는 기분이다."
"무슨 꿈?"

"내가 임원의 비서라니."
"언니, 축하해요. 일은 마음에 드세요?"

"당연하죠. 한상무님은 워낙 좋으신 분이시잖아?"
"다행이네요."

"아까 우리가 지금까지 써둔 업무일지랑 업무 보고서를 보고 있었거든.
자기 할 일 진짜 많겠더라."

"누나, 나랑 같이 구리시 직영 매장에 갔었던 날 생각 나요?"
"맞아. 그러고 보니까 바로 그 날이 오늘의 시작이었네."



식사 후에 우리는 내 방에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최수희와 임영선은 커피를 준비하고, 나는 내가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시작했다. 회장이나 한상무는 내가 조만간에 어떤 일을 착수할 것이라는 것을 엄청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임영선과 최수희가 커피를 가져왔다. 오전에 긴장했던 탓인지 피로가 밀려온다. 커피를 마셔도 정신이 몽롱해진다. 나는 벌떡 일어서서 창문 앞을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자기야.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상무님은 어디 계시죠?"

"이틀 동안은 출장 가셨어."
"오늘 오후에는 가까이에 있는 매장을 한두군데 돌아보자."

"우리도 나가자고?"
"이 방에서 노닥거린다고 무슨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

"이 근처에는 우리 매장도 없는데?"
"아무 매장이면 어때?"



임영선은 길 건너편 골목 안쪽에 보이는 오성마트로 가자고 했다. 경험이 풍부한 최수희는 고객이 입장하는 곳에서부터 상품이 진열되어있는 곳곳을 둘러본다. 그런데 내 눈에 거슬르는 것이 몇 가지가 있었다. 임영선과 최수희는 상품의 가격들을 비교하는 것 같다.

우리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A4 용지에 메모를 했다.


"각 매장은 골든존을 확실하게 정하고 전담 직원을 배치하여 특별히 관리하도록 한다.
매출액을 기준으로 대표브랜드를 선정하고, 또 특별히 기획한 상품을 선정해서 골든존에 전시한다.
계절이나 주말, 공휴일에 따라 민감하게 골든존에 전시되는 상품을 교체하여야 한다.
방효은과 이경숙은 이 골든존이 어떻게 관리되는지 지켜본다."



임영선은 내 메모를 읽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골든존이 뭐야?"

"상품을 진열하는 선반에서는 성인을 기준으로 눈높이에 해당하는 부분이야. 평균 3단과 4단 정도쯤이고, 또 선반이 아닌 경우는 주요 통로가 되겠지?
골든존은 판매를 위한 전략을 세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위치야.
중요한 상품을 진열하거나 발견하기가 가장 좋은 곳이거든.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 또 야심을 갖고 새로 선보이는 기획 상품들이 여기로 진열돼요."

"그런데 왜 우리는 지금까지 이 골든존을 전혀 관리하지 않았지?"
"그건 회장님이나 한상무님께서 아시겠지?"

"이건 뭐 .. 점심 먹고 나니까 당장 한 껀 올렸네?
당장 회장님께 보고할까?"

"그건 임비서가 알아서 하고.
보고를 하려면 수희 누나가 기획서를 잘 만들어서 한상무님 결재 받아서 갖다 드려."

"한상무님 지금 출장중이시라니까."

"이메일로 보내드리고, 수정할 곳을 말씀하시면 수정해요."
"회장님께서는 쓸데없는 서류 많이 만들지 말라고 하시던데."

"이것은 쓸데없는 서류가 아니야.
반드시 기록에 남겨두고 수시로 체크해야 해요.
이 일은 두 사람에게 넘어갔으니까 알아서 처리해.
나는 이만 퇴근합니다."

"지금이 몇시인데 벌써 퇴근을 해?"

"오늘 우리 동네에 있는 매장에도 가보려고.
거기는 엄청 큰 대형 매장이니까 시간이 꽤 걸릴꺼야.
이런 생각은 사무실에서 해도 되지만, 현장에 나가서 보니까 훨씬 유리하네."

"자기 오늘 하는 것 보니까 그런 것 같다."



어제 밤에 잠을 너무 조금 잔 탓인지 쏟아지는 잠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퇴근해서 집으로 와서 바로 잤다.




저녁에는 애들과 같이 시험공부를 했다. 이제는 둘이 아니고 셋이다. 겨우 한 명이 늘었는데도 엄청 바쁘다. 조해수는 지혜나 경식이와는 달리 손이 엄청 많이 간다. 그런데 지혜나 경식이도 처음에는 이런 정도였던 것 같다.

공부가 끝나고 나서 조해수는 조해수의 엄마가 와서 데려갔다. 아이린을 아파트로 데려다 주는데 아이린이 나에게 말했다.



"조해수의 엄마가 자기를 만나고 싶어하는데, 어떻게 하지?"

"굳이 나를 만날 필요 없잖아?
웬만한 것은 누나가 다 말해주면 되겠구만."

"그래도 자기를 만나는 것이 모양새가 좋지."
"내일은 정상으로 퇴근할꺼니까 애들보다 조금 더 일찍 오면 되겠네."

"그게 아니라 낮에 만나서 점심이라도 .."
"그럼 회사로 올꺼야?"

"여기서 가깝잖아? 못 갈 것도 없지.
내일 전화하고 데리고 갈께."



다음날 아침에 내가 출근 준비를 하는데 임영선이 전화를 했다.



"내려와. 기다릴께."
"여기 왔어? 웬일이야?"

"아침에 잠도 안오고, 딱히 할 일도 없고 ..
일찍부터 설쳤더니 시간도 남고 해서 왔어."



나는 준비를 끝내고 내려갔다. 임영선의 그랜져가 서있고 그 앞에 임영선이 서있다. 검은 스커트 그리고 하얀 남방, 외근 처럼 야구모자는 잊지 않고 쓰고있다. 길 던너 PC방 입구에서는 아이린이 나에게 잠시 와보라고 손짓을 한다. 나는 임영선에게 기다리라고 말하고 아이린에게로 건너갔다.



"이따 갈꺼라고."
"진짜로 올꺼야?"

"뭐. .. 사무실 구경도 하고. 겸사겸사"
"뭐 볼 것이 있다고? 오면 점심이나 같이 먹으면 되지."

"빨리 가."



나는 임영선의 차에 탔다. 우리 차는 출발했다. 아이린은 그 자리에 서서 나에게 손을 흔든다. 마치 다시 돌아오지 않을 사람을 보내는 것 같다. 임영선이 내게 물었다.



"누구야?"
"과외하는 학생 엄마."

"그런데 김비서가 아침에 출근한다고 밖에 나와서 배웅하면서 인사하는 거야?"
"아니야. 집에 들어가다가 만난거지."



그런데 임영선은 회사로 가는 것이 아니라, 최수희네 아파트로 간다. 그녀는 최수희와 전화통화를 한다. 최수희는 아파트 입구에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둘이 이렇게 친해졌나? 최수희는 뒷자리로 차면서 말했다.



"임비서가 이제 매일 우리를 실어 나를 생각이야?"

"우리가 어제 한 일을 아빠한테 말씀드렸거든요.
아빠가 완전 감탄하셨어요.
오늘은 새벽부터 깨워서 이렇게 하라고 시키는데, 낸들 어쩌겠어? 하하."

"아이. 참. .. 회장님은 왜 그렇게까지 하신대?"
"아빠는 김비서가 혹시라도 출근을 안 할까봐, 겁나시나봐. 하하."

"아오. .. 말도 안돼. 회사 직원이 왜 출근을 안해? 하하."



우리가 회사에 도착해서 최수희는 자기 방으로 가고, 나와 임비서는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임영선은 나를 회장실로 가자고 했다.



"벌써 나오셨어?"
"기다리고 계셔."

"아침부터 왜 찾으시는데?"
"가요. 가면 알게 되잖아?"

"뭐. 바로 옆방인데. 갑시다."



우리를 맞이하는 회장은 너무 반가워한다. 그에게서 진심이 느껴진다.


그는 어제 있었던 일을 얘기하면서 그 일은 한상무가 직접 지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다음 계획은 뭐지?"

"이번에는 가격 문제와 붙을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간단하지 않아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생각이 정리되는 대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래. 그 문제는 어쩌면 전쟁이 될 수도 있는데?"

"섣불리 시작을 못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또 저도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습니다."

"그래. 이번에도 꼭 성공하자."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여기서 회장의 말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아침에 영선이가 김비서 태우러 간다고 갔는데, 출근은 잘 했나?"
"예. 감사합니다."

"나한테 고맙다고 할 일이 아니야.
새벽부터 일어나서 김비서한테 간다고 설쳐댔으니까.
간다고 나서는데 애비인 내가 못 가게 할 수도 없고,
저 고집이 내가 말린다고 해서 들을 애도 아니고 .."

"아이. 참. 아빠는. 내가 언제 그랬다고. .."

"김비서가 당분간은 참아야 할꺼야.
조금 지나면 제 풀에 나가떨어질꺼야. 안그런가? 하하하."



임영선은 모기소리 만큼이나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나를 보는 임영선의 볼에 홍조가 돋는다. 그럼 차 안에서 최수희랑 한 얘기는 뻥인가?

임영선은 내 팔을 잡아 끌다시피 하여 회장실을 나왔다. 우리는 내 방으로 왔다. 나는 뭐라고 말을 할까 생각했지만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회장 말대로 우리는 성공해야만 한다. 실패란 지금 사치이다. 실패도 중요한 스승이기는 하지만, 나에게는 지금은 실패할 시간도 없다. 나나 회장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임영선은 나에게 커피를 갖다 주고 주말에 있을 공사를 준비하고 있다. 인테리어 하는 사람들이 와서 설계도 도면을 보면서 임영선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갔다.



"공사를 크게 할꺼야?"
"두고 봐. 여기를 아예 아방궁으로 만들꺼니까. 하하."




나는 나라마트의 판매 가격이 다른 마트와 비교할 때 약간 높다고 생각한다. 가격이 결정되는 곳에는 항상 비리와 리베이트가 문제가 된다. 회장은 아까 이것을 염려하여 전쟁이라는 말을 했다. 지금 이 문제를 건드린다는 것은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은 PB 상품으로 가야할 것 같다. 그것은 짧은 시간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단 생산자가 승인해야 한다.

가야 할 길은 곳곳이 지뢰밭이다. 이 지뢰밭을 해결할 사람이 바로 한상무가 아닐까? 나는 최수희를 불렀다.



"임비서는 과거에 우리가 PB 상품을 기획했던 적이 있는가 자료를 찾아볼래?"

"나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고, 그게 뭔지도 몰라.
그런데 그런 자료가 전혀 없을 것 같은데 어디 가서 찾지?
차라리 언니가 한상무님께 전화로 알아보면 빠르지 않나?"



최수희는 한상무와 전화를 했다. 한상무의 말로는 나라마트에서는 그런 것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 .. 우리가 기획을 해두었다가 내일 상무님 오시면 의논을 해보자."
"그게 그렇게 빨리 될까?"

"대형 매장들을 다니면서 PB 상품이랑 NB 상품 가격비교를 해볼래요?"
"언니, PB 상품이랑 NB 상품인가를 알아야 .."

"나가요. 가면서 얘기해줄께.
점심시간 전까지 들어오려면 서둘러야 해."




우리는 임영선의 차를 타고 대형 마트들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아이린과 조해수의 엄마 때문에 나는 점심 시간에는 들어와야 했다.





=*=*=*=*=*=


지난 73화 (2부 50장)에서 보여주신 52개의 댓글, 초련1919님은 4개를 얹으셨으니까, 49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칭찬도, 충고도, 질책도 .. 모두 엄청 환영합니다.

빵터짐 : 언제나홀로님의 일본 공격. ㅋㅋㅋ

저는 제 글을 제 고집으로 씁니다. 충고는 감사히 접수하지만, 누가 뭐라고 한다고 제가 지금 쓰고있는 글의 방향을 함부로 바꾸지는 않습니다.

bluele123님, 2부가 너무 길어져서 지루하시죠? 3부를 쓸 계획은 있습니다. 내년에 학교로 복학하고 난 이후의 사건들입니다.

참슬와인님, 서지혜가 넘어가면 이 글이 끝입니다. ㅋㅋ.

독자 여러분들의 관심과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알찬 결실의 계절 가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Ja"d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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