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망은 결핍과 충만의 반복이다. 달성한 욕구에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욕망을 소유하려고 자신을 불태운다. 어쩌면 인간의 이율배반적인 생리적인 욕구 개념이다. 남편을 원망하는 지연 자신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탈에 빠진 자신의 감정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남편을 바라보던 그녀는 준태가 사라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
지연은 준태가 주차장으로 갔으리라고 짐작했었다. 그런데 그가 해수욕장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손짓하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가족들이 쳐다볼 것만 같아서 두려운 그녀는 갈팡질팡하다가 일어섰다. 어찌되었든 친척들에게 들어내 보이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다. 그녀는 챙이 넓은 모자와 큰 타월을 집어 들고 준태가 보이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성민은 피서를 떠나기 전에 이 은주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혹시나 교양리 해수욕장에 와서 전화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텐트 앞으로 바캉스를 즐기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지나치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젖가슴 계곡과 허벅지를 들어난 비키니 여인들이 전혀 부끄러움 없이 오락가락했다.
성민은 기대고 있는 침낭이 불편해서 몸을 일으켰다. 침낭을 편하게 세우려던 그의 시선이 무의식적으로 아내가 앉아있던 방향을 향했다. 그는 은연중에 이 은주에게 찾아갔다는 아내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다시 몸을 눕히려던 그는 멈칫했다.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거리던 그의 시선이 멀리 사라지고 있는 아내의 뒷모습을 향했다.
“........!?”
평소 같으면 아내에게 관심조차 없을 성민은 예민해졌다. 주위 식구와 친척들을 둘러보던 그는 준태가 보이지 않는 것을 의식했다.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바닷가 어디에도 준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너무 과민한 것 같아서 침낭에 등을 기대고 누웠다. 갈매기들이 선회하는 하늘에는 솜처럼 흰 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친척들에게서 벗어난 지연은 이따금 뒤를 돌아보며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준태는 지연이 일어나서 쫓아오는 모습을 보고 승용차에 올라앉아 있었다. 엔진 시동과 함께 에어컨을 틀어놓은 그는 멀리서부터 다가오고 있는 그녀를 바라봤다. 승용차 앞에서 머뭇거리던 그녀가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앉았다.
뜨거운 태양 밑을 걸어왔던 지연은 에어컨 바람에 안정감을 느꼈다. 그녀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집착하는 그에게서 벗어날 방도를 궁리했다. 당장은 백화점 매장에 전념하느라 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집안에서 수시로 마주치는 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준태는 지연이 다소곳이 따라오는 것 같아서 흐뭇했다. 그녀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는 시간이 갈수록 그녀가 자신의 완전한 여자가 되간다고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말없이 이따금 시선을 마주치며 각기 다른 생각을 했다. 침묵을 지키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우리 냉정하게 현실을 생각해야 돼! 지난 시간은 실수라고 잊어버리면 좋겠어. 순간적인 감정에 집착하면 앞으로 생활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아. 오히려 큰 상처가 될 뿐이잖아.......”
“그럼, 내가 순간적인 감정이라고.....!? 난 어떤 여자를 생각할 수도 없고, 결혼도 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잖아.”
“그만은 단지 자신을 속이는 변명에 불과해.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있잖아. 물론 그것도 젊은 시절의 일시적인 감정 일수도 있지만.......우리에겐 각자 다른 운명이 있다는 걸 알잖아....... ”
“무슨 말이지!? 형 때문인가!? 형은 무관심하잖아?”
“형이 뭐라고 그래.......!?”
“아니, 언제 형하고 마음에 있는 얘기하는 거 봤어!?”
“........!?”
“난, 허락된 운명이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지금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감정에 만족하고 싶어. 나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거던.......”
지연은 남편이 준태뿐 만아니라 가족 누구와도 평소에 대화가 별로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준태가 남편에게서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을 것이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응이 없는 남편의 표정을 떠올리니 더욱 답답했다. 또한 조금도 집착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준태의 말이 혼란스럽기만 했다.
준태가 스스로 자신의 의지를 굳힌 듯이 가속페달을 밟았다. 주춤하던 승용차가 주차장을 빠져 나갔다. 지연은 어쩌면 준태의 말이 옮은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을 보듯이 뻔한 불안함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받아 드릴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하려고 해도 점점 더 깊은 늪 속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았다.
지연이 혼란스러움에 잠겨 있는 사이에 승용차는 별장 정원 앞에 도착했다. 이층 구조의 슬래브 별장은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숲길 끝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망각 속에 잠겨있던 그녀는 승용차가 멈추고 나서야 별장에 도착한 것을 알고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준태를 쳐다봤다.
“별장에는 왜.......!?”
“더워서........”
준태가 말없이 지연의 어깨를 보듬어 안았다. 그녀는 이글거리는 그의 눈빛을 의식했다. 그가 불렀던 이유를 비로소 그녀는 인수. 흠칫하는 그녀는 그의 손길을 거부해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가오는 그의 입술을 의식하며 눈을 감았다. 얼마 전 까 지만해도 그에게 입술만큼은 허락하지 않았던 그녀였다. 그녀는 마치 거부도 반응도 포기한 사람처럼 그의 가슴에 안겼다.
지연의 입술을 탐닉하는 준태의 손길이 그녀의 원피스 앞자락을 풀어헤쳤다. 브래지어 속으로 들어간 그의 손아귀에 젖가슴이 갇히고 그녀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그의 손길에 익숙해지는 그녀의 육체가 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그가 그녀의 젖가슴에 머리를 묻었다. 죽은 듯이 누워있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등을 껴안았다.
“........”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준태의 손길에 지연의 원피스 앞가슴을 풀어헤쳐졌다. 그리고 밀려 내려간 브래지어 위로 탐스러운 그녀의 젖가슴이 들어났다. 젖가슴을 더듬던 그가 젖꼭지를 입속으로 빨아 당겼다. 그녀는 온 몸의 세포가 한 곳으로 몰리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질근 깨물며 젖가슴에 묻힌 그의 머리를 밀어냈다.
“음......!?”
“.........”
지연이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새삼스럽게 그녀는 젖가슴이 완연하게 들어나는 대낮이라는 것을 의식한 것이다. 멋쩍은 웃음을 흘린 준태가 운전석에서 내려서더니 조수석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녀는 자석에 이끌리듯이 피동적으로 그에게 이끌려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준태는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이층 방으로 지연을 끌고 들어갔다. 침대가 놓여있는 방의 창문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어 햇빛을 차단하고 있었다. 그는 마치 계획한 행동처럼 에어컨 스위치를 누르고 허수아비처럼 이끌려온 그녀를 침대 위에 눕혔다. 허겁지겁 상체를 벗은 그가 그녀의 원피스를 벗겨냈다.
“.........”
정신적으로 성민의 아내인 지연의 육체는 이미 준태의 여자가 되어 있었다.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피해 그녀는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알몸을 들어낸 그의 손길에 그녀의 몸도 발가벗겨졌다. 그녀를 내려다보는 그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커튼으로 닫힌 방이라고 하지만 한창 성적으로 단련되어가는 그녀의 육체는 선정적이었다. 그는 그녀의 알몸 위에 체중을 실었다.
“..........”
준태는 지연의 양팔을 잡아 벌리고 눌렀다. 양팔이 눌린 그녀는 비로소 눈을 떴다가 감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나이 어린 시동생이 아니고 균형 잡힌 상체를 들어낸 남자의 눈빛이었다. 입술과 입술이 잇닿았다. 피동적이던 그녀는 입술을 벌리고 그의 혀를 받아 들였다. 그리고 그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간 그녀의 혀가 뜨거운 열기에 휘말렸다.
“음.......”
“음........”
그들에게 존재하는 것은 단지 원초적인 본능뿐이었다. 농도 깊은 키스를 하는 준태의 혀끝이 그녀의 젖가슴과 목덜미, 그리고 점점 하복부로 향했다. 그는 윤기 흐르는 그녀의 살갗들을 어루만지며 가지런한 그녀의 음모를 타액으로 적셨다.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그녀의 허벅지가 파르르 떨렸다.
“음......”
지연은 허벅지 사이를 오르내리는 습한 열기에 정신마저 아득해졌다. 허벅지의 세포들을 일으켜 세운 준태의 혀끝이 그녀의 음부를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뼈마디가 녹아내리는 열기를 감당할 수 없어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보지 입구를 넘나드는 그의 혀끝에서 전달되는 열기가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아 읍~! 나.........”
“........”
준태는 클리토리스의 돌기를 문지르는 혓바닥이 촉촉한 샘물로 적셔지는 것을 느꼈다. 둔부를 들어 올리는 지연의 표정을 내려다봤다. 몽롱한 표정으로 달아오른 그녀가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녀의 젖꼭지는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마찰을 당하고 있었다. 눈을 뜨고 올려다보는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둔부를 들어 올렸던 그녀가 고개를 돌리며 외면했다.
“형수는 정말, 아름다워.......”
중얼거린 준태가 지연의 허벅지를 벌리고 무릎을 꿇었다. 그는 잔득 발기한 페니스를 쥐고 그녀의 보지 입구에 대고 문질렀다. 그녀의 허리가 꿈틀거리고 보지 입구의 진홍빛 음순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그는 익숙하게 그녀의 허벅지 사이로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미끄러지듯이 페니스가 빨려 들어가고 그녀가 그의 허리를 왈칵 움켜쥐었다.
“하 읍........!”
“음........”
이미 준태의 여자일 수밖에 없는 지연은 예전처럼 두려워하거나 수동적이지 않았다. 그녀는 몸속을 채운 남성을 깊이 받아드리려고 둔부를 들어 올렸다. 깊게 들이마시는 두 사람의 숨소리와 함께 그들의 육체는 하나가 되었다. 숨겨진 살갗의 세포를 헤집는 율동이 시작되고 방안은 습한 열기로 가득해졌다.
“하 우~~! 아 으~~~~!”
“하 읍........”
지연은 보지 속의 남성이 빠져 나갈 때마다 반사적으로 둔부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깊이 밀려들어오면 허리를 비틀며 안개 속의 황홀함에 빠져들었다. 그에게 안길 때마다 점점 강렬한 엑스터시에 빠져드는 그녀는 문득 얼마 동안 생리가 없었기에 예민해진 것은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깊이 들이마셨던 그들의 숨소리가 신음과 함께 점점 빨라졌다.
“아하~~!! 아~~! 하 읍~~! 하~! 읍~! 아........”
“읍.......! 하.......! 읍........”
그들은 이미 서로에게 익숙해진 성감의 열기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준태의 남성이 먼 길을 달리는 야수처럼 거칠고 빠르게 움직였다. 하복부가 부딪는 소리와 보지 속을 채운 남성이 마찰할 때마다 그녀의 몸속에서 환희의 샘물이 흘러 넘쳤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땀방울로 적셔진 그들의 발가벗은 육체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아~! 으읍. 하읍~! 으읍! 아 우~! 하으.....”
“읍, 하읍, 으읍........”
준태의 남성이 빠르게 진퇴하고 지연의 발가벗은 알몸이 진동하듯이 흔들렸다. 그는 그녀의 몸속 끝까지 페니스를 밀어 넣으려고 그녀의 허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페니스를 돌진시켰다. 그는 참을 수 없는 희열에 사정할 것만 같아서 동작을 멈추었다. 안간힘을 쓰며 매달리는 그녀의 입술 사이로 안타까운 신음이 스며나왔다.
“아~! 조, 조금 더........하 읍........”
“음......!?”
준태는 지연의 보지 속 질 벽이 페니스를 휘감는 감각에 치를 떨었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잡아 일으켜 허벅지 위에 앉혔다. 그를 마주보고 앉은 그녀는 낯선 성교 자세에 새삼스럽게 부끄러웠다. 그러나 그의 손에 의해 들어 올려졌던 그녀의 알몸이 내려앉으며 그녀는 벌린 입술을 다물지 못했다.
“하 읍~!”
“허 으......”
지연은 몸속 뼈끝까지 잇닿는 충격을 감당하기 힘들어 준태의 목덜미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리고 익숙한 몸 놀림으로 치솟았다가 추락하기를 거듭했다. 페니스로 몸속의 세포들이 짓이겨질 때마다 더욱 빠르게 움직이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출렁거렸다. 그녀는 어느 순간 숨을 쉴 수조차 없는 환희의 절정감에 몸부림쳤다.
“하 아~! 나, 나,,,,,,,,하 읍~!”
“허 억~!”
준태는 아등바등 매달리는 지연의 행위를 멈추게 할 수도 없었다. 단지 그녀를 부둥켜안으며 부르르 떨었다. 동시에 깊은 나락으로 빠져드는 그녀는 보지 속을 적시는 뜨거운 용액을 느꼈다. 그들은 한 치의 여유도 없이 부둥켜안고 단지 잇닿은 하복부만 좌우로 꿈틀거렸다. 잠시 숨을 몰아쉰 그는 그녀를 바로 눕히고 진액으로 흥건한 보지 속으로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이글거리는 태양은 해변의 모래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피서객들은 걷기도 힘겨운 모래사장을 피해 그늘을 찾거나 파도치는 바닷물에 몸을 적시고 있었다. 성민은 시간이 갈수록 예민해졌다. 아내와 준태가 사라진지 벌써 한 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가족들이 과일과 간식을 먹고 있는 근처에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
과일을 집어 먹으려던 포크를 든 채 성민은 멍하니 한곳을 응시했다. 모래사장 한편에서 다가오고 있는 준태의 모습이 보였다. 무의식적으로 과일을 먹으려던 그는 포크로 입술을 찌르고 미간을 찌푸렸다. 포크를 내려놓은 그는 혼자 여유롭게 걸어오는 준태 주변을 살폈다. 주차장 방향에서 걸어오는 아내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왠지 아내의 발걸음이 흐느적거리는 것만 같았다.
산과 바다에 인파가 몰렸던 바캉스 계절이 끝나가고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지는 가을의 문턱이지만, 낮에는 여전히 뜨거운 태양이 사람들을 가로수 밑으로 몰아낸다. 또한 전국 체전의 열기가 달아오르고 스포츠 선수들이 매스컴의 화제가 되고 있었다. 준태는 언론에 유미의 이름이 오르내릴수록 주눅이 들었다.
준태는 여전히 그림자처럼 유미의 흔적을 찾아 다녔다. 그러나 그와 시선을 마주치고도 그녀는 형의 승용차에 올라앉아 사라져 버렸다. 멀거니 유미를 바라보기만 하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더욱 형수를 찾게 되었다. 하지만 또한 요즘 자주 늦게 귀가하는 그녀에게도 접근하기는 쉽지 않았다.
거실을 어슬렁거리던 준태는 호기심을 갖고 형의 침실로 들어갔다. 왠지 그녀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부부만의 침실로 들어선 그는 문득 유미를 태우고 사라졌던 형에 대한 질투를 느꼈다. 자신만의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던 유미를 형에게 빼앗기고 있는 심정이었다.
성민의 침실에서 나오던 준태는 멈칫했다. 가정부 문 정임이 버티고 서서 쳐다보고 있었다. 도둑질하다가 들킨 심정이어서 머리를 긁적거리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처음 파출부로 일하러 들어왔던 그녀의 첫인상에 깊은 호기심을 가졌었다. 삼십 초반이라고 하지만 동안이고 붙임성이 있어 친근감을 느꼈었다.
준태는 젊은 나이인데도 정임이 남편이 사망하고 홀로 되었다는 것과 사망한 남편과 사이에서 낳은 어린 딸이 있으나 시어머니가 맡아서 키우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삭막한 분위기의 집안에서 사근사근하게 대화를 받아주는 그녀이기에 친근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여성스러운 매력을 느끼게 되는 그녀에게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준태가 난처하게 생각하면서도 정임에 대한 관심과 함께 난처하게 생각하는 것은 형수와 관계를 눈치 채고 있다는 예감 때문이다. 평소에도 생각했던 바이지만 이번 기회에 그녀와 우호적인 관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항상 눈웃음이 깃들어 있는 그녀가 왠지 의미 있는 시선으로 다소곳이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준태는 책상 서랍을 뒤적거렸다. 언젠가 어머니가 유미에게 선물로 주라고 했던 목걸이가 들어있는 상자를 꺼내들었다. 유미에게 몇 번인가 선물로 주려다가 여건이 되지 않아서 갖고 있던 상자였다. 아까운 생각에 망설이다가 상자를 들고 방을 나왔다. 주방 안을 살피다가 싱크대 앞에 등을 지고 서있는 정임에게 다가갔다.
막상 정임에게 상자를 주려니까 준태는 멋쩍었다. 인기척을 느낀 그녀가 돌아섰다. 어색한 표정으로 말없이 그녀에게 상자를 내밀었다. 그녀가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는 말없이 입가에 엷은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의 팔을 잡아 당겼다. 그녀의 손바닥에 상자를 올려놓고 뒤돌아섰다.
“작은 도련님~! 이건 ........!?”
얼떨결에 상자를 받아든 정임은 의아스런 표정으로 준태를 바라봤다. 뒤돌아보는 그가 게슴츠레한 눈동자로 다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무심코 상자를 열어본 그녀는 얼이 빠진 듯이 서있었다. 그가 무슨 의미로 고가의 목걸이를 주는지 알수가 없었다. 다만 그윽하게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았다. 왠지 심장이 두근거리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수빈과 성민은 전국체전 예선전에 참가하는 유미가 단순히 대회 경험을 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매년 선수들을 지도했던 경험에서 느꼈던 예감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과 다르게 예선을 통과한 유미는 전국 체조 본선에 오른 것이다. 유미의 훈련 과정을 지켜본 그들은 실낱같은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유미는 그들의 기대를 희망으로 바꾸어 주었다.
본선 준비를 하는 동안 유미는 어려운 난도를 소화시키며 놀랍도록 성장했고 수빈은 지도를 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유미는 확실히 리듬체조 선수로서 재질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이해력도 빨랐지만 발가락이 짓무르도록 연습에 집착하는 끈질긴 성격이었다. 수빈은 혼자 생각이지만 유미가 본선마저 통과하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수빈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유미는 본선마저 통과하고 결승 조에 들어갔다. 유미 스스로도 감격했지만 성민은 누구보다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기계체조에 출전한 시청 선수들을 지도 감독하느라고 분주한 성민은 수빈을 통해 유미가 결승 조에 올라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그는 기쁜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성민의 희망은 유미가 단지 전국체전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유미가 자신의 꿈을 대신하여 리듬체조 계의 역사를 다시 쓰는 선수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유미는 매스컴을 통해 리듬체조 계의 샛별이라고 주목받기 시작했다. 관중들은 그녀가 연기를 끝낼 때마다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일부 스포츠 신문에서는 우승 후보 선수들과 함께 유미를 장차 리듬체조의 요정이 될 만한 유망주라고 극찬을 했다.
성민은 유미가 마지막 리본 연기를 하는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다. 종목마다 2위와 4위를 오르내리는 유미는 종합 3위에 올라가 있었다. 신들린 듯이 환상적인 연기를 펼치는 유미의 모습에 그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스러스트로 피봇을 하고 마지막 난도를 연기하기 전에 율동적인 댄스 스탭을 하던 유미의 밸런스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수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수빈은 유미의 밸런스가 흔들리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본선을 통과하면서 유미는 발가락 부상을 당하고 있었다. 평범한 부상이 아니라, 발가락뼈가 들어날 정도였다. 도저히 경기를 치룰 수 없는 상황이라서 수빈은 고심했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경기 운도 따르고 항상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수빈은 유미에게 포기하라고 권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통증으로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유미는 대답도 하지 않고 결승 대회를 치루고 있는 것이다.
사실 라스트 난도를 연기하기 전에 유미는 주저 앉을 것만 같았다. 통증을 느끼다 못해 발을 디딜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오직 그녀만을 바라보는 아버지, 체조를 그만두라고 협박하는 신 감독 부인, 그리고 독기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이 은주의 모습이 찰나에 스쳐갔다. 그녀는 이내 관중을 매혹시키는 눈빛으로 라스트 난도를 마무리했다.
체육관 안은 관중들의 함성과 박수 소리로 가득해졌다. 유미의 경기를 보고 있던 수빈이나 성민은 감정이 북받쳤다. 그리고 이어서 전광판에 선수들의 마지막 종목 성적이 표시되었다. 유미의 마지막 종목인 리본 연기 2위로 표시되고 종합 3위가 된 것이다. 또 다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매트를 벗어나 대기석에서 수빈에게 안겼던 유미가 관중을 향해 일어섰다. 그리고 손을 흔들어 답례를 했다.
메달을 수여하는 수상식이 있기 전에 성민은 선수 대기실에서 수빈과 유미를 만났다. 그를 바라보는 유미의 눈동자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든 그녀를 지탱하게 해준 사람은 아버지보다 어쩌면 신 감독이었다. 그녀가 다리를 절며 성민에게 다가왔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끌어안은 유미의 등을 토닥거렸다.
“잘했어. 해 낼줄 알았어!”
“헤 헷~! 고맙습니다......”
울먹이려는 유미의 얼굴을 성민이 양손으로 감싸며 빤히 내려다봤다. 그리고 볼그스름해지는 그녀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고 흔들었다. 그는 경기 중에 유미가 순간적이지만 밸런스가 흔들렸던 것이 걱정되어 물었다.
“다리는 괜찮아......!?”
“유미 발가락 좀 보세요.....!”
수빈이 유미를 대신해서 대답했다. 슈즈를 벗고 맨발로 서있는 유미가 멋쩍은 표정으로 성민을 눈치를 살폈다. 습기 어린 그녀의 눈동자에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허리를 굽힌 성민이 유미의 발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발을 감고 있는 붕대가 핏물로 적셔져 있었다. 등 뒤에 서서 바라보는 수빈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지독한 계집애! 발가락뼈가 드러나서 치료 받더라도 쉽게 아물지 않을 것 같은데......”
“.........!”
수빈은 욕설이 아니라 그만큼 유미를 아끼는 애착심이었다. 성민이 유미의 뺨을 양손으로 잡고 흔들었다. 수빈이 지독하다고 표현하지만 그녀의 얼굴 표정은 순수한 청순미가 깃들어 보였다.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성민의 시선을 의식하는 그녀의 눈동자에 수줍은 미소가 가득했다.
전국체전이 끝나고 언론 매체에 각 종목마다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에 대한 기사들이 살렸다. 기존의 기록을 보유한 선수들뿐 만아니라, 유망주들에 대한 기사가 관심을 끌었다. 특히 리듬체조 부분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한 기존 선수보다는 송 유미를 집중보도했다. 하루아침에 리듬체조 게의 샛별로 떠오른 유미는 많은 언론 기자들의 인터뷰를 받게 되었다. 어느 스포츠 신문에서는 유미를 리듬체조 요정이라는 표현도 했다.
자연스럽게 유미의 스폰서가 JS그룹 신 회장의 아들 신 성민이라는 것이 알려졌다. 표면적으로는 정 수빈이 유미의 일정 관리를 담당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성민의 결정에 의한 것이다. 여성 언더웨어 사업체에서 정 수빈을 통해 유미를 광고 모델로 기용하고 싶다고 했다. 유미는 들뜬 마음으로 찬성했다. 그러나 수빈의 말을 들은 성민이 화를 벌컥 냈다.
“모델이 되고 싶은 거야!? 돈이 필요한 거야! 필요하다면 내가 줄게.”
“그게 아니라, 그만큼 인지도가 높아지면 더욱 열심히 할 수 있잖아.”
정 수빈은 의외로 강하게 어필하는 성민의 모습에 당황했다. 스포츠계나 연예계 선수들은 누구나 바라는 사항이기에 수빈은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성민은 몹시 불쾌한 표정을 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유미가 리듬체조를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선수가 되기를 바랄뿐이야. 만약 수빈이나 유미 생각이 내 뜻과 다르다면 나는 이제부터 간섭하지 않을게.”
“.........!?”
“.........!?
한마디 내뱉은 성민은 싸늘한 표정으로 가버렸다. 수빈과 유미는 아쉽기는 하지만 성민의 뜻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선수촌 감독 물망에 올랐던 성민은 체조 협회 운영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의 지도력을 인정받은 것이지만 JS그룹 회장의 장남이기에 그룹 차원의 지원을 받으려는 의도이기도 했다.
서울시 체조 감독을 하던 성민의 일상생활은 단순해졌다. 체조 협회 운영 위원으로 특별히 해야할 업무는 없었다. 이따금 대회 출전할 선수선발 결정과 운영에 관한 미팅이 있을 뿐이었다. 성민은 협회에 들려 위원들이나 실무진들과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고는 주로 정 수빈이 운영하는 학원에 들렀다. 수빈의 애제자가 된 유미가 훈련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성민은 주로 밖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귀가하는 생활을 반복하게 되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일정해진다고 해도 성민이 가족과 대화가 많아진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나 백화점 배장 관리로 바빠진 아내하고는 서먹서먹한 상태였다. 부부간의 대화가 단절되었기에 부부간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표현하고 싶은 감정을 억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성민은 평상시나 다름없이 씻고 거실에서 혼자 TV를 켜놓고 신문을 들척였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뒤적이던 성민은 옆에 다가와서 앉는 아내를 휠끗 쳐다봤다. 다른 날 같으면 늦게 들어오거나 거들떠보지도 않던 아내가 새침한 표정으로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여러 번 준태와 아내 관계를 의아스럽게 여겼던 그는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연이 불쑥 입을 열었다.
“당신~! 어머님 생일이라 오늘 저녁 식사 같이 한다는 거 아시죠?”
“그랬던가.......!?”
“그렇게 관심이 없어요!?”
“가식적인 관심은 보이고 싶지 않아.”
“당신! 나한테 관심 없으니 내가 매장을 운영한다는 것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거죠?”
“매장.......!? 잘하고 있겠지........”
“한번도 와보지 않았잖아요? 내가 당신 아내 맞아요!?”
“각자 생활에 충실하면 되지.....”
준태와 은밀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지연은 한동안 남편을 마주할 용기조차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죄의식이 무뎌지고 오히려 반응이 없는 남편이 저주스러웠다. 그녀는 분명 남편이 이 은주에게 무슨 말이던 들었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남편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벼르고 있던 그녀는 일찍 귀가해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각자 생활이라고요!? 당신은 마음이 뭔지, 정말 알고 싶어요.”
“왜.....! 부족한 게 있어!? 있으면 말해.”
“아내로 대우받고 싶어요. 난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어떻게 대우를 해주기를 원해? JS그룹의 며느리로 부족한게 없잖아.”
“정말, 당신 이럴 수 있어요!? 내가 누구 때문에 이 집안에 있는데요. 이건 아니라고요.”
지연은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언성을 높였다. 성민은 결혼 후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아내의 모습에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가증스러워 보였다. 왠지 아내가 예전과 다르게 가식적이고 가증스러운 여자로 보여 그도 화가 치밀었다.
“왜 이래!? 뭐가 부족한 거야? 이제는 재산 욕심이라도 생긴 건가!”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시간이 갈수록 나를 사람 취급 안하는 까닭이 뭐에요? 나도 행복한 가정에서 아기를 키우며 살고 싶은 여자라고요.”
성민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아내를 빤히 쳐다봤다. 그때 주방에 있던 가정부 정임이 거실로 나오려다가 주춤하는 모습이 보였다. 정임은 스킨십을 하던 지연과 준태가 당황하는 광경을 여러 번 목격했었다. 그러나 항상 대화가 없던 지연과 성민 부부간에 언성을 높여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정임은 자신도 여자지만 정숙하게만 보였던 지연의 다른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임은 지연이 나이 어린 시동생과 은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짐작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매사에 긍정적인 성격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죄의식도 없이 남편에게 대드는 지연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임은 그들 부부가 겉보기와 다르게 갈등으로 말다툼을 한다고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지연이 준태를 유혹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지연은 준태가 주차장으로 갔으리라고 짐작했었다. 그런데 그가 해수욕장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손짓하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가족들이 쳐다볼 것만 같아서 두려운 그녀는 갈팡질팡하다가 일어섰다. 어찌되었든 친척들에게 들어내 보이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다. 그녀는 챙이 넓은 모자와 큰 타월을 집어 들고 준태가 보이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성민은 피서를 떠나기 전에 이 은주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혹시나 교양리 해수욕장에 와서 전화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텐트 앞으로 바캉스를 즐기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지나치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젖가슴 계곡과 허벅지를 들어난 비키니 여인들이 전혀 부끄러움 없이 오락가락했다.
성민은 기대고 있는 침낭이 불편해서 몸을 일으켰다. 침낭을 편하게 세우려던 그의 시선이 무의식적으로 아내가 앉아있던 방향을 향했다. 그는 은연중에 이 은주에게 찾아갔다는 아내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다시 몸을 눕히려던 그는 멈칫했다.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거리던 그의 시선이 멀리 사라지고 있는 아내의 뒷모습을 향했다.
“........!?”
평소 같으면 아내에게 관심조차 없을 성민은 예민해졌다. 주위 식구와 친척들을 둘러보던 그는 준태가 보이지 않는 것을 의식했다.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바닷가 어디에도 준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너무 과민한 것 같아서 침낭에 등을 기대고 누웠다. 갈매기들이 선회하는 하늘에는 솜처럼 흰 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친척들에게서 벗어난 지연은 이따금 뒤를 돌아보며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준태는 지연이 일어나서 쫓아오는 모습을 보고 승용차에 올라앉아 있었다. 엔진 시동과 함께 에어컨을 틀어놓은 그는 멀리서부터 다가오고 있는 그녀를 바라봤다. 승용차 앞에서 머뭇거리던 그녀가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앉았다.
뜨거운 태양 밑을 걸어왔던 지연은 에어컨 바람에 안정감을 느꼈다. 그녀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집착하는 그에게서 벗어날 방도를 궁리했다. 당장은 백화점 매장에 전념하느라 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집안에서 수시로 마주치는 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준태는 지연이 다소곳이 따라오는 것 같아서 흐뭇했다. 그녀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는 시간이 갈수록 그녀가 자신의 완전한 여자가 되간다고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말없이 이따금 시선을 마주치며 각기 다른 생각을 했다. 침묵을 지키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우리 냉정하게 현실을 생각해야 돼! 지난 시간은 실수라고 잊어버리면 좋겠어. 순간적인 감정에 집착하면 앞으로 생활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아. 오히려 큰 상처가 될 뿐이잖아.......”
“그럼, 내가 순간적인 감정이라고.....!? 난 어떤 여자를 생각할 수도 없고, 결혼도 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잖아.”
“그만은 단지 자신을 속이는 변명에 불과해.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있잖아. 물론 그것도 젊은 시절의 일시적인 감정 일수도 있지만.......우리에겐 각자 다른 운명이 있다는 걸 알잖아....... ”
“무슨 말이지!? 형 때문인가!? 형은 무관심하잖아?”
“형이 뭐라고 그래.......!?”
“아니, 언제 형하고 마음에 있는 얘기하는 거 봤어!?”
“........!?”
“난, 허락된 운명이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지금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감정에 만족하고 싶어. 나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거던.......”
지연은 남편이 준태뿐 만아니라 가족 누구와도 평소에 대화가 별로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준태가 남편에게서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을 것이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응이 없는 남편의 표정을 떠올리니 더욱 답답했다. 또한 조금도 집착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준태의 말이 혼란스럽기만 했다.
준태가 스스로 자신의 의지를 굳힌 듯이 가속페달을 밟았다. 주춤하던 승용차가 주차장을 빠져 나갔다. 지연은 어쩌면 준태의 말이 옮은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을 보듯이 뻔한 불안함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받아 드릴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하려고 해도 점점 더 깊은 늪 속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았다.
지연이 혼란스러움에 잠겨 있는 사이에 승용차는 별장 정원 앞에 도착했다. 이층 구조의 슬래브 별장은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숲길 끝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망각 속에 잠겨있던 그녀는 승용차가 멈추고 나서야 별장에 도착한 것을 알고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준태를 쳐다봤다.
“별장에는 왜.......!?”
“더워서........”
준태가 말없이 지연의 어깨를 보듬어 안았다. 그녀는 이글거리는 그의 눈빛을 의식했다. 그가 불렀던 이유를 비로소 그녀는 인수. 흠칫하는 그녀는 그의 손길을 거부해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가오는 그의 입술을 의식하며 눈을 감았다. 얼마 전 까 지만해도 그에게 입술만큼은 허락하지 않았던 그녀였다. 그녀는 마치 거부도 반응도 포기한 사람처럼 그의 가슴에 안겼다.
지연의 입술을 탐닉하는 준태의 손길이 그녀의 원피스 앞자락을 풀어헤쳤다. 브래지어 속으로 들어간 그의 손아귀에 젖가슴이 갇히고 그녀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그의 손길에 익숙해지는 그녀의 육체가 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그가 그녀의 젖가슴에 머리를 묻었다. 죽은 듯이 누워있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등을 껴안았다.
“........”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준태의 손길에 지연의 원피스 앞가슴을 풀어헤쳐졌다. 그리고 밀려 내려간 브래지어 위로 탐스러운 그녀의 젖가슴이 들어났다. 젖가슴을 더듬던 그가 젖꼭지를 입속으로 빨아 당겼다. 그녀는 온 몸의 세포가 한 곳으로 몰리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질근 깨물며 젖가슴에 묻힌 그의 머리를 밀어냈다.
“음......!?”
“.........”
지연이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새삼스럽게 그녀는 젖가슴이 완연하게 들어나는 대낮이라는 것을 의식한 것이다. 멋쩍은 웃음을 흘린 준태가 운전석에서 내려서더니 조수석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녀는 자석에 이끌리듯이 피동적으로 그에게 이끌려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준태는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이층 방으로 지연을 끌고 들어갔다. 침대가 놓여있는 방의 창문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어 햇빛을 차단하고 있었다. 그는 마치 계획한 행동처럼 에어컨 스위치를 누르고 허수아비처럼 이끌려온 그녀를 침대 위에 눕혔다. 허겁지겁 상체를 벗은 그가 그녀의 원피스를 벗겨냈다.
“.........”
정신적으로 성민의 아내인 지연의 육체는 이미 준태의 여자가 되어 있었다.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피해 그녀는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알몸을 들어낸 그의 손길에 그녀의 몸도 발가벗겨졌다. 그녀를 내려다보는 그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커튼으로 닫힌 방이라고 하지만 한창 성적으로 단련되어가는 그녀의 육체는 선정적이었다. 그는 그녀의 알몸 위에 체중을 실었다.
“..........”
준태는 지연의 양팔을 잡아 벌리고 눌렀다. 양팔이 눌린 그녀는 비로소 눈을 떴다가 감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나이 어린 시동생이 아니고 균형 잡힌 상체를 들어낸 남자의 눈빛이었다. 입술과 입술이 잇닿았다. 피동적이던 그녀는 입술을 벌리고 그의 혀를 받아 들였다. 그리고 그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간 그녀의 혀가 뜨거운 열기에 휘말렸다.
“음.......”
“음........”
그들에게 존재하는 것은 단지 원초적인 본능뿐이었다. 농도 깊은 키스를 하는 준태의 혀끝이 그녀의 젖가슴과 목덜미, 그리고 점점 하복부로 향했다. 그는 윤기 흐르는 그녀의 살갗들을 어루만지며 가지런한 그녀의 음모를 타액으로 적셨다.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그녀의 허벅지가 파르르 떨렸다.
“음......”
지연은 허벅지 사이를 오르내리는 습한 열기에 정신마저 아득해졌다. 허벅지의 세포들을 일으켜 세운 준태의 혀끝이 그녀의 음부를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뼈마디가 녹아내리는 열기를 감당할 수 없어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보지 입구를 넘나드는 그의 혀끝에서 전달되는 열기가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아 읍~! 나.........”
“........”
준태는 클리토리스의 돌기를 문지르는 혓바닥이 촉촉한 샘물로 적셔지는 것을 느꼈다. 둔부를 들어 올리는 지연의 표정을 내려다봤다. 몽롱한 표정으로 달아오른 그녀가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녀의 젖꼭지는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마찰을 당하고 있었다. 눈을 뜨고 올려다보는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둔부를 들어 올렸던 그녀가 고개를 돌리며 외면했다.
“형수는 정말, 아름다워.......”
중얼거린 준태가 지연의 허벅지를 벌리고 무릎을 꿇었다. 그는 잔득 발기한 페니스를 쥐고 그녀의 보지 입구에 대고 문질렀다. 그녀의 허리가 꿈틀거리고 보지 입구의 진홍빛 음순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그는 익숙하게 그녀의 허벅지 사이로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미끄러지듯이 페니스가 빨려 들어가고 그녀가 그의 허리를 왈칵 움켜쥐었다.
“하 읍........!”
“음........”
이미 준태의 여자일 수밖에 없는 지연은 예전처럼 두려워하거나 수동적이지 않았다. 그녀는 몸속을 채운 남성을 깊이 받아드리려고 둔부를 들어 올렸다. 깊게 들이마시는 두 사람의 숨소리와 함께 그들의 육체는 하나가 되었다. 숨겨진 살갗의 세포를 헤집는 율동이 시작되고 방안은 습한 열기로 가득해졌다.
“하 우~~! 아 으~~~~!”
“하 읍........”
지연은 보지 속의 남성이 빠져 나갈 때마다 반사적으로 둔부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깊이 밀려들어오면 허리를 비틀며 안개 속의 황홀함에 빠져들었다. 그에게 안길 때마다 점점 강렬한 엑스터시에 빠져드는 그녀는 문득 얼마 동안 생리가 없었기에 예민해진 것은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깊이 들이마셨던 그들의 숨소리가 신음과 함께 점점 빨라졌다.
“아하~~!! 아~~! 하 읍~~! 하~! 읍~! 아........”
“읍.......! 하.......! 읍........”
그들은 이미 서로에게 익숙해진 성감의 열기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준태의 남성이 먼 길을 달리는 야수처럼 거칠고 빠르게 움직였다. 하복부가 부딪는 소리와 보지 속을 채운 남성이 마찰할 때마다 그녀의 몸속에서 환희의 샘물이 흘러 넘쳤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땀방울로 적셔진 그들의 발가벗은 육체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아~! 으읍. 하읍~! 으읍! 아 우~! 하으.....”
“읍, 하읍, 으읍........”
준태의 남성이 빠르게 진퇴하고 지연의 발가벗은 알몸이 진동하듯이 흔들렸다. 그는 그녀의 몸속 끝까지 페니스를 밀어 넣으려고 그녀의 허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페니스를 돌진시켰다. 그는 참을 수 없는 희열에 사정할 것만 같아서 동작을 멈추었다. 안간힘을 쓰며 매달리는 그녀의 입술 사이로 안타까운 신음이 스며나왔다.
“아~! 조, 조금 더........하 읍........”
“음......!?”
준태는 지연의 보지 속 질 벽이 페니스를 휘감는 감각에 치를 떨었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잡아 일으켜 허벅지 위에 앉혔다. 그를 마주보고 앉은 그녀는 낯선 성교 자세에 새삼스럽게 부끄러웠다. 그러나 그의 손에 의해 들어 올려졌던 그녀의 알몸이 내려앉으며 그녀는 벌린 입술을 다물지 못했다.
“하 읍~!”
“허 으......”
지연은 몸속 뼈끝까지 잇닿는 충격을 감당하기 힘들어 준태의 목덜미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리고 익숙한 몸 놀림으로 치솟았다가 추락하기를 거듭했다. 페니스로 몸속의 세포들이 짓이겨질 때마다 더욱 빠르게 움직이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출렁거렸다. 그녀는 어느 순간 숨을 쉴 수조차 없는 환희의 절정감에 몸부림쳤다.
“하 아~! 나, 나,,,,,,,,하 읍~!”
“허 억~!”
준태는 아등바등 매달리는 지연의 행위를 멈추게 할 수도 없었다. 단지 그녀를 부둥켜안으며 부르르 떨었다. 동시에 깊은 나락으로 빠져드는 그녀는 보지 속을 적시는 뜨거운 용액을 느꼈다. 그들은 한 치의 여유도 없이 부둥켜안고 단지 잇닿은 하복부만 좌우로 꿈틀거렸다. 잠시 숨을 몰아쉰 그는 그녀를 바로 눕히고 진액으로 흥건한 보지 속으로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이글거리는 태양은 해변의 모래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피서객들은 걷기도 힘겨운 모래사장을 피해 그늘을 찾거나 파도치는 바닷물에 몸을 적시고 있었다. 성민은 시간이 갈수록 예민해졌다. 아내와 준태가 사라진지 벌써 한 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가족들이 과일과 간식을 먹고 있는 근처에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
과일을 집어 먹으려던 포크를 든 채 성민은 멍하니 한곳을 응시했다. 모래사장 한편에서 다가오고 있는 준태의 모습이 보였다. 무의식적으로 과일을 먹으려던 그는 포크로 입술을 찌르고 미간을 찌푸렸다. 포크를 내려놓은 그는 혼자 여유롭게 걸어오는 준태 주변을 살폈다. 주차장 방향에서 걸어오는 아내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왠지 아내의 발걸음이 흐느적거리는 것만 같았다.
산과 바다에 인파가 몰렸던 바캉스 계절이 끝나가고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지는 가을의 문턱이지만, 낮에는 여전히 뜨거운 태양이 사람들을 가로수 밑으로 몰아낸다. 또한 전국 체전의 열기가 달아오르고 스포츠 선수들이 매스컴의 화제가 되고 있었다. 준태는 언론에 유미의 이름이 오르내릴수록 주눅이 들었다.
준태는 여전히 그림자처럼 유미의 흔적을 찾아 다녔다. 그러나 그와 시선을 마주치고도 그녀는 형의 승용차에 올라앉아 사라져 버렸다. 멀거니 유미를 바라보기만 하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더욱 형수를 찾게 되었다. 하지만 또한 요즘 자주 늦게 귀가하는 그녀에게도 접근하기는 쉽지 않았다.
거실을 어슬렁거리던 준태는 호기심을 갖고 형의 침실로 들어갔다. 왠지 그녀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부부만의 침실로 들어선 그는 문득 유미를 태우고 사라졌던 형에 대한 질투를 느꼈다. 자신만의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던 유미를 형에게 빼앗기고 있는 심정이었다.
성민의 침실에서 나오던 준태는 멈칫했다. 가정부 문 정임이 버티고 서서 쳐다보고 있었다. 도둑질하다가 들킨 심정이어서 머리를 긁적거리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처음 파출부로 일하러 들어왔던 그녀의 첫인상에 깊은 호기심을 가졌었다. 삼십 초반이라고 하지만 동안이고 붙임성이 있어 친근감을 느꼈었다.
준태는 젊은 나이인데도 정임이 남편이 사망하고 홀로 되었다는 것과 사망한 남편과 사이에서 낳은 어린 딸이 있으나 시어머니가 맡아서 키우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삭막한 분위기의 집안에서 사근사근하게 대화를 받아주는 그녀이기에 친근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여성스러운 매력을 느끼게 되는 그녀에게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준태가 난처하게 생각하면서도 정임에 대한 관심과 함께 난처하게 생각하는 것은 형수와 관계를 눈치 채고 있다는 예감 때문이다. 평소에도 생각했던 바이지만 이번 기회에 그녀와 우호적인 관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항상 눈웃음이 깃들어 있는 그녀가 왠지 의미 있는 시선으로 다소곳이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준태는 책상 서랍을 뒤적거렸다. 언젠가 어머니가 유미에게 선물로 주라고 했던 목걸이가 들어있는 상자를 꺼내들었다. 유미에게 몇 번인가 선물로 주려다가 여건이 되지 않아서 갖고 있던 상자였다. 아까운 생각에 망설이다가 상자를 들고 방을 나왔다. 주방 안을 살피다가 싱크대 앞에 등을 지고 서있는 정임에게 다가갔다.
막상 정임에게 상자를 주려니까 준태는 멋쩍었다. 인기척을 느낀 그녀가 돌아섰다. 어색한 표정으로 말없이 그녀에게 상자를 내밀었다. 그녀가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는 말없이 입가에 엷은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의 팔을 잡아 당겼다. 그녀의 손바닥에 상자를 올려놓고 뒤돌아섰다.
“작은 도련님~! 이건 ........!?”
얼떨결에 상자를 받아든 정임은 의아스런 표정으로 준태를 바라봤다. 뒤돌아보는 그가 게슴츠레한 눈동자로 다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무심코 상자를 열어본 그녀는 얼이 빠진 듯이 서있었다. 그가 무슨 의미로 고가의 목걸이를 주는지 알수가 없었다. 다만 그윽하게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았다. 왠지 심장이 두근거리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수빈과 성민은 전국체전 예선전에 참가하는 유미가 단순히 대회 경험을 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매년 선수들을 지도했던 경험에서 느꼈던 예감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과 다르게 예선을 통과한 유미는 전국 체조 본선에 오른 것이다. 유미의 훈련 과정을 지켜본 그들은 실낱같은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유미는 그들의 기대를 희망으로 바꾸어 주었다.
본선 준비를 하는 동안 유미는 어려운 난도를 소화시키며 놀랍도록 성장했고 수빈은 지도를 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유미는 확실히 리듬체조 선수로서 재질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이해력도 빨랐지만 발가락이 짓무르도록 연습에 집착하는 끈질긴 성격이었다. 수빈은 혼자 생각이지만 유미가 본선마저 통과하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수빈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유미는 본선마저 통과하고 결승 조에 들어갔다. 유미 스스로도 감격했지만 성민은 누구보다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기계체조에 출전한 시청 선수들을 지도 감독하느라고 분주한 성민은 수빈을 통해 유미가 결승 조에 올라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그는 기쁜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성민의 희망은 유미가 단지 전국체전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유미가 자신의 꿈을 대신하여 리듬체조 계의 역사를 다시 쓰는 선수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유미는 매스컴을 통해 리듬체조 계의 샛별이라고 주목받기 시작했다. 관중들은 그녀가 연기를 끝낼 때마다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일부 스포츠 신문에서는 우승 후보 선수들과 함께 유미를 장차 리듬체조의 요정이 될 만한 유망주라고 극찬을 했다.
성민은 유미가 마지막 리본 연기를 하는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다. 종목마다 2위와 4위를 오르내리는 유미는 종합 3위에 올라가 있었다. 신들린 듯이 환상적인 연기를 펼치는 유미의 모습에 그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스러스트로 피봇을 하고 마지막 난도를 연기하기 전에 율동적인 댄스 스탭을 하던 유미의 밸런스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수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수빈은 유미의 밸런스가 흔들리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본선을 통과하면서 유미는 발가락 부상을 당하고 있었다. 평범한 부상이 아니라, 발가락뼈가 들어날 정도였다. 도저히 경기를 치룰 수 없는 상황이라서 수빈은 고심했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경기 운도 따르고 항상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수빈은 유미에게 포기하라고 권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통증으로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유미는 대답도 하지 않고 결승 대회를 치루고 있는 것이다.
사실 라스트 난도를 연기하기 전에 유미는 주저 앉을 것만 같았다. 통증을 느끼다 못해 발을 디딜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오직 그녀만을 바라보는 아버지, 체조를 그만두라고 협박하는 신 감독 부인, 그리고 독기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이 은주의 모습이 찰나에 스쳐갔다. 그녀는 이내 관중을 매혹시키는 눈빛으로 라스트 난도를 마무리했다.
체육관 안은 관중들의 함성과 박수 소리로 가득해졌다. 유미의 경기를 보고 있던 수빈이나 성민은 감정이 북받쳤다. 그리고 이어서 전광판에 선수들의 마지막 종목 성적이 표시되었다. 유미의 마지막 종목인 리본 연기 2위로 표시되고 종합 3위가 된 것이다. 또 다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매트를 벗어나 대기석에서 수빈에게 안겼던 유미가 관중을 향해 일어섰다. 그리고 손을 흔들어 답례를 했다.
메달을 수여하는 수상식이 있기 전에 성민은 선수 대기실에서 수빈과 유미를 만났다. 그를 바라보는 유미의 눈동자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든 그녀를 지탱하게 해준 사람은 아버지보다 어쩌면 신 감독이었다. 그녀가 다리를 절며 성민에게 다가왔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끌어안은 유미의 등을 토닥거렸다.
“잘했어. 해 낼줄 알았어!”
“헤 헷~! 고맙습니다......”
울먹이려는 유미의 얼굴을 성민이 양손으로 감싸며 빤히 내려다봤다. 그리고 볼그스름해지는 그녀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고 흔들었다. 그는 경기 중에 유미가 순간적이지만 밸런스가 흔들렸던 것이 걱정되어 물었다.
“다리는 괜찮아......!?”
“유미 발가락 좀 보세요.....!”
수빈이 유미를 대신해서 대답했다. 슈즈를 벗고 맨발로 서있는 유미가 멋쩍은 표정으로 성민을 눈치를 살폈다. 습기 어린 그녀의 눈동자에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허리를 굽힌 성민이 유미의 발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발을 감고 있는 붕대가 핏물로 적셔져 있었다. 등 뒤에 서서 바라보는 수빈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지독한 계집애! 발가락뼈가 드러나서 치료 받더라도 쉽게 아물지 않을 것 같은데......”
“.........!”
수빈은 욕설이 아니라 그만큼 유미를 아끼는 애착심이었다. 성민이 유미의 뺨을 양손으로 잡고 흔들었다. 수빈이 지독하다고 표현하지만 그녀의 얼굴 표정은 순수한 청순미가 깃들어 보였다.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성민의 시선을 의식하는 그녀의 눈동자에 수줍은 미소가 가득했다.
전국체전이 끝나고 언론 매체에 각 종목마다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에 대한 기사들이 살렸다. 기존의 기록을 보유한 선수들뿐 만아니라, 유망주들에 대한 기사가 관심을 끌었다. 특히 리듬체조 부분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한 기존 선수보다는 송 유미를 집중보도했다. 하루아침에 리듬체조 게의 샛별로 떠오른 유미는 많은 언론 기자들의 인터뷰를 받게 되었다. 어느 스포츠 신문에서는 유미를 리듬체조 요정이라는 표현도 했다.
자연스럽게 유미의 스폰서가 JS그룹 신 회장의 아들 신 성민이라는 것이 알려졌다. 표면적으로는 정 수빈이 유미의 일정 관리를 담당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성민의 결정에 의한 것이다. 여성 언더웨어 사업체에서 정 수빈을 통해 유미를 광고 모델로 기용하고 싶다고 했다. 유미는 들뜬 마음으로 찬성했다. 그러나 수빈의 말을 들은 성민이 화를 벌컥 냈다.
“모델이 되고 싶은 거야!? 돈이 필요한 거야! 필요하다면 내가 줄게.”
“그게 아니라, 그만큼 인지도가 높아지면 더욱 열심히 할 수 있잖아.”
정 수빈은 의외로 강하게 어필하는 성민의 모습에 당황했다. 스포츠계나 연예계 선수들은 누구나 바라는 사항이기에 수빈은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성민은 몹시 불쾌한 표정을 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유미가 리듬체조를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선수가 되기를 바랄뿐이야. 만약 수빈이나 유미 생각이 내 뜻과 다르다면 나는 이제부터 간섭하지 않을게.”
“.........!?”
“.........!?
한마디 내뱉은 성민은 싸늘한 표정으로 가버렸다. 수빈과 유미는 아쉽기는 하지만 성민의 뜻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선수촌 감독 물망에 올랐던 성민은 체조 협회 운영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의 지도력을 인정받은 것이지만 JS그룹 회장의 장남이기에 그룹 차원의 지원을 받으려는 의도이기도 했다.
서울시 체조 감독을 하던 성민의 일상생활은 단순해졌다. 체조 협회 운영 위원으로 특별히 해야할 업무는 없었다. 이따금 대회 출전할 선수선발 결정과 운영에 관한 미팅이 있을 뿐이었다. 성민은 협회에 들려 위원들이나 실무진들과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고는 주로 정 수빈이 운영하는 학원에 들렀다. 수빈의 애제자가 된 유미가 훈련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성민은 주로 밖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귀가하는 생활을 반복하게 되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일정해진다고 해도 성민이 가족과 대화가 많아진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나 백화점 배장 관리로 바빠진 아내하고는 서먹서먹한 상태였다. 부부간의 대화가 단절되었기에 부부간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표현하고 싶은 감정을 억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성민은 평상시나 다름없이 씻고 거실에서 혼자 TV를 켜놓고 신문을 들척였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뒤적이던 성민은 옆에 다가와서 앉는 아내를 휠끗 쳐다봤다. 다른 날 같으면 늦게 들어오거나 거들떠보지도 않던 아내가 새침한 표정으로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여러 번 준태와 아내 관계를 의아스럽게 여겼던 그는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연이 불쑥 입을 열었다.
“당신~! 어머님 생일이라 오늘 저녁 식사 같이 한다는 거 아시죠?”
“그랬던가.......!?”
“그렇게 관심이 없어요!?”
“가식적인 관심은 보이고 싶지 않아.”
“당신! 나한테 관심 없으니 내가 매장을 운영한다는 것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거죠?”
“매장.......!? 잘하고 있겠지........”
“한번도 와보지 않았잖아요? 내가 당신 아내 맞아요!?”
“각자 생활에 충실하면 되지.....”
준태와 은밀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지연은 한동안 남편을 마주할 용기조차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죄의식이 무뎌지고 오히려 반응이 없는 남편이 저주스러웠다. 그녀는 분명 남편이 이 은주에게 무슨 말이던 들었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남편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벼르고 있던 그녀는 일찍 귀가해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각자 생활이라고요!? 당신은 마음이 뭔지, 정말 알고 싶어요.”
“왜.....! 부족한 게 있어!? 있으면 말해.”
“아내로 대우받고 싶어요. 난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어떻게 대우를 해주기를 원해? JS그룹의 며느리로 부족한게 없잖아.”
“정말, 당신 이럴 수 있어요!? 내가 누구 때문에 이 집안에 있는데요. 이건 아니라고요.”
지연은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언성을 높였다. 성민은 결혼 후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아내의 모습에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가증스러워 보였다. 왠지 아내가 예전과 다르게 가식적이고 가증스러운 여자로 보여 그도 화가 치밀었다.
“왜 이래!? 뭐가 부족한 거야? 이제는 재산 욕심이라도 생긴 건가!”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시간이 갈수록 나를 사람 취급 안하는 까닭이 뭐에요? 나도 행복한 가정에서 아기를 키우며 살고 싶은 여자라고요.”
성민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아내를 빤히 쳐다봤다. 그때 주방에 있던 가정부 정임이 거실로 나오려다가 주춤하는 모습이 보였다. 정임은 스킨십을 하던 지연과 준태가 당황하는 광경을 여러 번 목격했었다. 그러나 항상 대화가 없던 지연과 성민 부부간에 언성을 높여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정임은 자신도 여자지만 정숙하게만 보였던 지연의 다른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임은 지연이 나이 어린 시동생과 은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짐작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매사에 긍정적인 성격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죄의식도 없이 남편에게 대드는 지연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임은 그들 부부가 겉보기와 다르게 갈등으로 말다툼을 한다고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지연이 준태를 유혹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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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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