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이 동그란 눈을 깜박거리던 이유성이 이내 결정한 듯이 날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리를 좀 옮기시는 건 어떠십니까?”
“왜? 여긴 불편한가?”
“예. 조금... 잠깐 생각을 정리할 것도 있어서... 괜찮으시면 제가 잘 아는 조용한 찻집이 있는 데 그 쪽으로 가시죠. 이동할 차량은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여기서 얼마나 걸리지?”
“30분 정도 걸립니다.”
“난 술을 한 잔 더 했으면 하는데...”
“거기서 술을 드셔도 됩니다.”
완강히 거부하기는 애매해져서 잠시 후 일식집을 나와 이유성의 매장이 있는 건물로 다시 걸었다. 식사비용도 내가 내려고 했으나 이미 이유성이 계산을 끝난 상태였고 녀석은 술에 취한 기색도 없이 건물 지하주차장에 있는 SM7 승용차 앞으로 나를 안내했다.
“잠시 담배 한 대 피우고 계십시오. 직원들에게 매장 문 닫고 들어가라고 이야기만 하고 오겠습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유성의 표정이나 말투가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 여유가 있다.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기는 것도 녀석의 의도이고... 뭐지? 술에 취해서 그런가?
특별히 꼬투리를 잡을 만한 일도 없고 담배 한 대를 다 피울 때 쯤 녀석이 대리운전 기사처럼 보이는 남자와 함께 나타났다. 내가 경찰 간부라는 이야기를 안했다면 대리기사는 녀석과 한 패 일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나는 자신에게 위해가 된다고 함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어쨌든 이유성은 얼굴만 미소년처럼 생긴 게 아니라 눈빛마저 선해서 날 어디론가 납치하겠다는 의도로 이런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뒷좌석에 올라타자 기사는 행선지를 이미 들었는지 아무 말 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올림픽대로를 타고 미사리 방향으로 내려간 차량은 곧 국도로 빠져 10여분을 더 달렸고 팔당호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는 아담한 전원카페에 도착했다.
잔디가 깔려 있는 대지에 지어진 카페는 불이 모두 꺼져 있었는데 대리기사를 보낸 이유성이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전등을 켜자 테이블이 몇 개가 놓인 실내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더 늦어지면 대리기사들이 돈을 더 준다고 해도 이쪽 방면으로는 잘 안 옵니다. 그래서... 추우시죠. 온풍기를 틀었으니 조금만 기다리시면 따뜻해질 겁니다. 이쪽으로...”
난 이유성이 가리키는 테이블 의자에 앉았고 녀석이 냉장고를 뒤지더니 맥주 몇 병과 마른 안주거리를 가지고 왔다. 이유성이 따라 주는 술을 받으며 내가 물었다.
“영업을 안 하나? 온기가 전혀 없네.”
“겨울엔 문을 닫고 봄부터 가을까지는 영업을 합니다.”
“사장하고는 어떤 관계지?”
“음... 제가 사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영업을 할 때도 제가 사람을 고용하거든요. 남는 건 별로 없는데... 그래도... 가끔 쉬러오고 싶어서요.”
“이 곳 경치가 괜찮아서 장사가 아예 안돼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다 이곳에서 카페를 하게 된 거지?”
“근처에 식당이나 전원주택이 모여 있고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오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주중에는 좀 한가한 편이고요. 카페는 월요일과 화요일, 수요일 오전까지는 쉬고 수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만 영업을 합니다.
아. 그리고 이 카페 건물은 제 소유는 아닙니다. 여기하고 이 뒤쪽 언덕에 있는 별장은 아시는 분의 건물인데 전 관리인인 셈이죠.“
“별장?”
“예. 사정이 있어서 어떤 분의 별장인지는 말씀드리기 힘들지만 고급 전원주택 같은 거죠. 그 곳 관리는 카페가 문을 여는 계절에는 여기서 근무하시는 여사님이 일주일에 한두 번 청소를 해주시고 정원이나 시설물 관리, 잔디 깎기 같은 건 제가 가끔 시간을 내서 들립니다. 전문적인 업체에 맡길 때도 있지만...”
“그런데 왜 날 이곳으로 데리고 온 거지? 조용히 대화를 나눌 곳이야 근처에도 많았을 텐데...”
“그건 형님이 저한테 원하시는 걸 설명하기가 만만치 않아서 그랬습니다. 이언주 원장님, 언주 누나죠. 어떤 방법이었는지 알고 싶다고 하셔서...”
“이 곳과 관계가 있나?”
“예... 시간이 너무 늦었기는 한데 별장에 한 번 가보시겠습니까?”
밤 10시가 넘어가고 있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안 간다고 하는 건 이상하다.
“그러지.”
카페 뒤 언덕을 50m 쯤 걸어 오르자 잔디가 깔려 있는 상당히 넓은 부지에 지어진 멋진 현대식 건물이 나타났다. 1층보다 2층 면적이 더 넓고 테라스가 밖으로 돌출된 형식의 전원주택이었는데 2층은 유리 새시로 되어 있어서 안이 들여다보이고 있었다.
이유성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서자 소파와 벽걸이 TV가 눈에 들어왔고 강화마루가 깔려 있는 거실을 따라 양쪽에 방이 있고 끝에는 주방이 있었다.
“이 문으로 나가면 뒤 쪽은 산이고 정원 한 쪽에는 텃밭과 수영장이 있는데 그리 크지 않다보니 온수로 채울 수도 있습니다. 봄, 가을에 온수로 채우고 들어가 있으면 온천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뒤 쪽에 있는 소로를 따라 산에 오르면 조그만 개울이 흐르는데 물이 고이는 곳은 사람 허리 정도 차는 곳도 있습니다.“
“멋지군. 서울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이런 곳이 있다니... ”
“예. 하지만 가뭄 때는 개울에 거의 물이 없고 가는 길이 좀 험해서 사람들이 자주 가는 곳은 아닙니다.”
이유성은 주방 옆에 있는 욕실로 나를 데리고 갔다.
“이 곳은 욕실이고 안에 샤워부스가 있는데 욕실 문을 유리문으로 달았고 안에 샤워부스 문에는 불투명한 시트지를 붙여서 안이 잘 안보이도록 해놓았지만 무릎 아래와 얼굴 위로는 시트지가 없는데다가 시트지 자체도 좀 틈이 있어서 안에 누군가가 샤워를 하면 몸매가 훤하게 드러납니다.”
“왜 이렇게 만들었지? 러브호텔도 아니고...”
“욕실 문 앞에 블라인드가 있어요. 안에서 문을 잠그고 블라인드를 내리면 안을 볼 수 없습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지만 욕실은 주방 앞에 있는 식탁 바로 옆에 있어서 식탁 의자에 앉아 있으면 샤워장이 정면으로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야밤에 산에 올라갈 수는 없으니 이제 카페로 다시 가시죠. 실내가 따뜻해졌을 겁니다.”
잠시 뒤 카페로 돌아온 우리는 마주 앉았고 이유성이 내 맥주 잔을 채우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형님이 물어보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간단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내연관계를 알게 되면 여자가 바람기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그냥 서로 눈이 맞았다라고 이야기 하는 데 왜 저만의 비법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난 이 녀석이 오정희, 김유미, 이언주, 황지연까지 네 명의 절대 미녀들을 거느린 마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황지연과는 지금 헤어졌지만...
“지연이를 동문 모임에서 처음 봤을 때 그 애의 미모는 독보적이었네. 흔히 말하는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있었지. 그리고 내가 직접 본 이언주는 세련된 얼굴을 능가하는 섹시한 몸매가 인상적 이었고 공항 사진 속의 그 여인도 대단한 미모였어.
물론 자네 역시 남자가 봐도 반할 정도의 잘생긴 얼굴, 탄탄한 근육, 그리고 선한 눈빛을 가지고 있지만 유명한 연예인이나 정치인, 스포츠 스타, 재력이 넘치는 사업가도 아닌데 이미 애인이나 남편이 있는 경찰 조직의 엘리트 간부와 어학원을 경영하는 미모의 유부녀가 외모만 보고 허물어 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네.
자네에게 무언가 비법이 있지 않고는...“
“비법... 형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없는 비법을 만들어서라도 말씀을 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어렵네요.
음... 아... 그런데 형님! 시간은 어떠십니까? 이야기가 좀 길어져도 괜찮으시겠어요?“
“상관없네.”
이유성은 자신의 이야기를 천천히 시작했다.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어머니는 몇 가지 일에 대해서는 아주 엄격하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어떤 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면 방에 가두고 뉘우치는 기미가 보일 때까지 밥도 주지 않으셨어요. 2~3일을 갇혀 있어 본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 예의에 어긋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면 매를 많이 맞았지만 방에 가두지는 않으셨습니다.
사춘기 시절이 돼서야 그 이유를 짐작하게 됐는데 어머니는 제가 저희 모자를 두고 다른 여자에게 가버린 아버지처럼 자라는 게 싫으셨던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건 중,고등학교 시절 제게 관심을 보이고 좋아한다고 고백까지 했던 여자애들이 꽤 있었고 그런 애들과 성관계도 안 해본 건 아닌데 또래 친구들에 비해 전 그런 관계에 별다르게 흥미를 못 느꼈습니다. 아마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사춘기 여학생들을 건드리다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걸 두려워 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 우연히 제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분과 관계가 시작 됐는데... 여학생들에게는 느낄 수 없었던 엄청난 흥분감과 쾌락이 따라 오더군요.“
“그런 걱정을 안 해도 된다?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면 이미 결혼을 한 사람... 유부녀란 말인가?”
“예.. 정확히 말하면 남편과 사별한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영업을 하시던 분이었는데 저와 만났을 때는 이렇다 할 남자관계도 없이 혼자 계셨던 분이셨어요.
어쨌든 그 분과 관계를 하면서 전 제가 매력을 느끼는 여자, 아니 여자를 보는 제 시각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은 홀로 서기가 가능했고 누군가에게 들키지만 않는다면 어떠한 상황이 벌어져도 제가 책임질 일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 무렵이 되자 전 좀 더 많은 여자들이 안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고민을 하다가...“
이유성은 잠깐 말을 멈추더니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맥주 한 잔을 천천히 들이켰고 난 이야기가 끊기는 것이 싫어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떤 고민이지? 어떻게 하면 여자를 많이 안아볼 수 있을까 이런 건가?”
“아니요. 비슷하긴 한데... 전 제가 책임을 져야 하는 여자는 안는 게 부담이 되는데 그 분처럼 아무런 문제없이 균형 잡힌 삶을 사는 여자를 찾는 건 쉽지 않아서...
그래서 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그런 분들을 더 만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약간 발상을 바꿨죠. 저와 관계를 하더라도 아무런 책임을 요구할 수 없는 여자들을 만나는 것으로...”
난 이유성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 고개를 끄덕였고 그걸 본 녀석이 불쑥 질문을 던졌다.
“여쭤볼게 있는데요. 제 이야기가 재미있으세요? 형님이 원하시는 건 언주 누나 같은 사람을 내 여자로 만드는 방법인데 왜 제 예전 이야기들을 그렇게 열심히 듣고 계시죠?”
“응? 내가 20대 시절에 했던 생각들과 비슷해서 공감이 가. 난 그 때 다방이나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여자들을 만나곤 했어.”
“예... 하지만 좀 이상해서... 비법을 물으시던 분이... 별 상관없는 이야기가 계속 되는데도 관심을 보이시는 게...”
“내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야. 나이는 내가 연장자일지 몰라도 내가 보기엔 이런 분야에서 자네는 엄청난 고수라고 생각되네. 말 한마디도 놓치고 싶질 않아.”
“음... 그런가요?”
그런가요 하며 내뱉는 이유성의 음성은 무언가 좀 미심적다는, 아니 의심스럽다는 뉘앙스가 풍기고 있었지만 이내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고민 끝에 전... 유흥업소에서 일하기로 했습니다. 그것도 남자들을 찾는 여자들이 가득한 호스트바에서요.”
“뭐?”
깜짝 놀라 내뱉은 내 목소리가 실내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고 이유성은 눈동자가 휘둥그레진 날 담담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 곳을 찾는 여자들에게 제가 책임을 질 필요는 없으니까요.
호스트바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남자들에게 웃음을 팔며 번 돈을 쓰기 위해 온 호스티스부터 사업가의 부인, 고소득 전문직 여성, 의사 사모님, 여성 시의원, 변호사...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여자들을 안아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분들은 절 노예처럼 대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여하튼 전 단골들이 꽤 있는, 잘 나가는 호스트 중 한 명이었죠.
거기서 전... 뭐랄까... 여자들 역시 남자와 마찬가지로 탈선을 하고 싶어 하고 자유롭게 성을 즐기고 싶은 욕망이 강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여인들도 젊은 남자들이 시중을 들어주고 자신의 몸을 만져주길 원하는 걸 수도 없이 봤으니까요.“
선승철은 2년간 호스트바에 있었던 이유성의 행적은 알아내지 못했다. 이 녀석의 몸 아래에서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교성을 토해냈을까? 김유미, 오정희, 이언주, 황지연은 빙산의 일각도 되지 않을 것이다.
“놀랍군... 자네가 그런 곳에서 일했을지는 전혀 생각 못해봤네. 나쁜 의미로 하는 말은 아니고... 부럽기도 하고... 그런 경험을 했었다면 섹스를 할 때 여자들에게 황홀감과 쾌락을 줄 수 있는 스킬들이 엄청나겠어...
하지만 그 건 그녀들이 자신들과의 밤을 허락할 때나 가능한 일 아닌가? 내가 궁금한 건 어떻게 지연이나 이언주 원장의 벽을 허물 수 있었는가 하는 거네.“
“지연 누나의 경우는 저도 뜻하지 않게 그렇게 됐습니다. 다분히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이니... 그 일 때문에 결혼을 하게 되고 많은 것들이 달라졌어요.
하지만 언주 누나의 경우는... 음... 제가 벽을 허물었다기보다는 무너질 때까지 기다렸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제대 후 헬스클럽에서 트레이너로 일하게 되면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은... 홀로 서기가 가능한 균형 잡힌 여자를 찾는 거였습니다. 언주 누나는 그 중에서 군계일학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 매력적이긴 했지만 운동 외에 별다른 대화를 하지도 않을뿐더러 워낙 바빠서 운동 시간이 끝나면 바로 가시곤 했죠.
물론 운동과 관련된 대화들을 하곤 했지만 그 외에 강습생에게 작업을 하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라 몇 달을 지켜보던 중에 누가 그 분이 어학원 원장이라고 말을 해 줬어요.
전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학원으로 찾아가서 등록을 했고 며칠 뒤 그 곳 복도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를 드렸습니다. 좀 놀라시는 눈치였지만 영어회화에 관심이 많다고 했더니 반가와 하시더군요.
그 때부터 운동을 하러 오셨을 때도 영어회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데 물론 저도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 누나에게 원어민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더니 며칠 후 학원에서 근무하는 미국인 여강사와 누나, 그리고 저 셋이서 식사를 함께 하는 약속을 잡아 주셨어요.
모자란 회화 실력으로 같이 대화하는 게 힘들긴 했지만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고... 다음 날인가 누나가 운동을 하러 오셔서 하는 말이 그 백인 강사가 너한테 관심을 많이 보이는데 만나볼 생각이 있냐고 하시더군요. 전 1초도 생각하지 않고 거절을 했습니다.
너무 빨리 거절을 하니까 외국인이라 그러는지 아니면 여자 친구가 따로 있냐고 물으셨고 없다고 했더니 그럼 좋아하는 여자 스타일이 뭐냐고 하시기에 잠깐 생각하는 척 하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누나 같은 스타일이라고 했습니다. 살짝 얼굴이 상기되면서 좋아하는 눈치였어요.
얼마 후 강의를 하다 보면 다리가 아파서 하체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제게 상의를 하시기에 실내에서만 운동을 하는 건 지루할 수 있으니 자전거 라이딩을 권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밖에서 둘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한 달에 한두 번 쯤 가까운 공원이나 자전거 전용 도로에서 함께 자전거를 타게 됐죠.
그 때쯤 단 둘이 있을 때는 누나라고 부르라고 하셔서 그렇게 불러 드렸지만 그 이상은 잘 다가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누나를 여자로 본다는 느낌이 들 수 있는 말이나 그런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어요. 어설피 그렇게 하면 누나 입장에서 어떤 선을 그으려고 할 수가 있고 그렇게 되면 거의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들인 노력이 헛수고가 될 수 있으니까요.“
“1년? 그럼 이언주와 관계를 가지기 까지 1년이나 걸렸나?”
“아니요. 훨씬 더... 2년은 안 걸린 것 같고... 거기서 몇 개월 더... 워낙 흐트러짐이나 빈 틈이 없으신 분이라... 나름 준비를 하고 있기는 했지만... 누나는 제 영어 회화를 도와주고 전 누나의 몸 관리를 해주는 명분으로 만나서 자전거 라이딩을 하게 된 것만 해도 엄청난 성과였죠.
그러던 어느 날은 만나기로 한 날 비가 왔고 자전거를 탈 수 없으니 약속을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 됐는데 누나가 이왕 시간을 비워 둔거니까 영화나 보러 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더군요. 많이 가까워 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로도 전 누나가 헬스클럽에 나오는 시간이나 자전거를 탈 때, 아니면 가끔 식사를 같이 하게 되는 경우 그림자처럼 붙어 있었어요. 누나가 일상에서 벗어나는 시간들 대부분에 제가 함께 있었던 거죠. 그래도 언주 누나는 한 번도 가정이나 남편, 회사 때문에 힘들다거나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말씀 한 번도 하신 적 없었던 분이지만...
다시 몇 개월의 시간이 흘러갔고 아마 그 때가 6월 초 쯤 이었던 것 같습니다. 며칠 동안 비가 계속 내리다가 갠 날이었는데 날씨가 좋으면 누나와 자전거를 타기로 약속을 했었어요. 약속 장소에 가서 두리번거리며 누나를 찾고 있는 데 골목길 안에서 자전거를 옆에 세워 두고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시고 계셨습니다.
인사를 하려다 말고 모퉁이에 서서 대화를 듣자니... 당신은 일주일이면 몇 번씩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면서 내가 친구들하고 어쩌다 술 한 잔하고 좀 늦은 건 이해 못해줘요? 아니 당신이 해외로 출장 간 틈을 타서 논게 아니라 한 달 전부터 만나기로 한 거였다니까요... 이런 이야기들을 하셨고요.
정리해보면 남편이 해외로 출장을 갔고 누나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새벽에 집에 들어 갔는데 그게 문제가 된 것 같았습니다. 한참을 전화로 다투는 걸 듣고 있다가 나중에 누나가 전화상으로 잘못했다고 다음부터 조심하겠다고 이야기하고 끊었을 때 전 재빨리 그 곳으로부터 좀 떨어진 편의점 앞에서 두리번거리며 누나를 찾는 척 했어요.
그 때 뒤에서 절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고 뒤돌아 인사를 하며 누나에게 다가가면서 오늘을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날이었나? 이언주 원장을 안게 된 날이?”
이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는데 만일 그런 기회가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2년이 넘고 3년이 되도록.. 아니면 5년이 넘어도...”
“그게... 어려운데.... 아마... 기다렸을 겁니다. 언주누나 이야기를 해서 누나와 관계된 일만 말하고 있지만 제겐 성욕을 해소할 수 있는 다른 분들도 이미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수성보다 공성은 몇 배 어렵거든요. 누군가 성을 공격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하면 지키는 입장에서 성문을 닫고 버티게 되고... 많은 출혈을 감수해야 하는데... 하지만 공격을 할 의지를 숨기고 성 주변에서 매복하고 있으면... 가끔은 무방비 상태로 성이 열릴 때가 있어요. 그 때 공성전을 시작하면 가능성이 많아지니까요.”
“다른 분들? 같이 섹스를 하는 여자들이 여러 명이란 말인가?”
“음... 예리하시네요. 그 부분은 노코멘트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을 정도로만 말씀 드릴게요. 죄송합니다.”
“아니야. 죄송할 것까지야 없네.
그건 그렇고 자연스럽게 기회를 만들면 되지 않나? 자네라면 가능할 것 같은데...”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겠죠. 기회 같은 거 안 만들고 가만히 있어도 어떻게든 저와 인연을 만들려고 하는 여자 분들도 많이 있으니.. 그게 아니라면 꽤 괜찮게 보이는 분들도 가지고 있는 문제들 때문에 빈틈이 노출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일 그런 분들과 관계가 시작되면 제가 책임져야 할 일들이 많아질 수 있어요. 문제는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거든요.
언주 누나처럼 균형이 잘 잡혀 있는 분들에게 기회를 만들려고 하다가 그런 의도가 조금이라도 드러나면... 다음은 보장이 없습니다.“
맞는 말이다. 결국 이 녀석이 만들어준 지연의 빈틈을 파고들어 그녀를 안았지만 그 것 때문에 난 다시 녀석과 마주 앉게 된 것이다. 마왕의 이야기에 지연의 내상을 치료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를 기대하면서...
“자리를 좀 옮기시는 건 어떠십니까?”
“왜? 여긴 불편한가?”
“예. 조금... 잠깐 생각을 정리할 것도 있어서... 괜찮으시면 제가 잘 아는 조용한 찻집이 있는 데 그 쪽으로 가시죠. 이동할 차량은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여기서 얼마나 걸리지?”
“30분 정도 걸립니다.”
“난 술을 한 잔 더 했으면 하는데...”
“거기서 술을 드셔도 됩니다.”
완강히 거부하기는 애매해져서 잠시 후 일식집을 나와 이유성의 매장이 있는 건물로 다시 걸었다. 식사비용도 내가 내려고 했으나 이미 이유성이 계산을 끝난 상태였고 녀석은 술에 취한 기색도 없이 건물 지하주차장에 있는 SM7 승용차 앞으로 나를 안내했다.
“잠시 담배 한 대 피우고 계십시오. 직원들에게 매장 문 닫고 들어가라고 이야기만 하고 오겠습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유성의 표정이나 말투가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 여유가 있다.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기는 것도 녀석의 의도이고... 뭐지? 술에 취해서 그런가?
특별히 꼬투리를 잡을 만한 일도 없고 담배 한 대를 다 피울 때 쯤 녀석이 대리운전 기사처럼 보이는 남자와 함께 나타났다. 내가 경찰 간부라는 이야기를 안했다면 대리기사는 녀석과 한 패 일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나는 자신에게 위해가 된다고 함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어쨌든 이유성은 얼굴만 미소년처럼 생긴 게 아니라 눈빛마저 선해서 날 어디론가 납치하겠다는 의도로 이런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뒷좌석에 올라타자 기사는 행선지를 이미 들었는지 아무 말 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올림픽대로를 타고 미사리 방향으로 내려간 차량은 곧 국도로 빠져 10여분을 더 달렸고 팔당호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는 아담한 전원카페에 도착했다.
잔디가 깔려 있는 대지에 지어진 카페는 불이 모두 꺼져 있었는데 대리기사를 보낸 이유성이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전등을 켜자 테이블이 몇 개가 놓인 실내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더 늦어지면 대리기사들이 돈을 더 준다고 해도 이쪽 방면으로는 잘 안 옵니다. 그래서... 추우시죠. 온풍기를 틀었으니 조금만 기다리시면 따뜻해질 겁니다. 이쪽으로...”
난 이유성이 가리키는 테이블 의자에 앉았고 녀석이 냉장고를 뒤지더니 맥주 몇 병과 마른 안주거리를 가지고 왔다. 이유성이 따라 주는 술을 받으며 내가 물었다.
“영업을 안 하나? 온기가 전혀 없네.”
“겨울엔 문을 닫고 봄부터 가을까지는 영업을 합니다.”
“사장하고는 어떤 관계지?”
“음... 제가 사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영업을 할 때도 제가 사람을 고용하거든요. 남는 건 별로 없는데... 그래도... 가끔 쉬러오고 싶어서요.”
“이 곳 경치가 괜찮아서 장사가 아예 안돼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다 이곳에서 카페를 하게 된 거지?”
“근처에 식당이나 전원주택이 모여 있고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오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주중에는 좀 한가한 편이고요. 카페는 월요일과 화요일, 수요일 오전까지는 쉬고 수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만 영업을 합니다.
아. 그리고 이 카페 건물은 제 소유는 아닙니다. 여기하고 이 뒤쪽 언덕에 있는 별장은 아시는 분의 건물인데 전 관리인인 셈이죠.“
“별장?”
“예. 사정이 있어서 어떤 분의 별장인지는 말씀드리기 힘들지만 고급 전원주택 같은 거죠. 그 곳 관리는 카페가 문을 여는 계절에는 여기서 근무하시는 여사님이 일주일에 한두 번 청소를 해주시고 정원이나 시설물 관리, 잔디 깎기 같은 건 제가 가끔 시간을 내서 들립니다. 전문적인 업체에 맡길 때도 있지만...”
“그런데 왜 날 이곳으로 데리고 온 거지? 조용히 대화를 나눌 곳이야 근처에도 많았을 텐데...”
“그건 형님이 저한테 원하시는 걸 설명하기가 만만치 않아서 그랬습니다. 이언주 원장님, 언주 누나죠. 어떤 방법이었는지 알고 싶다고 하셔서...”
“이 곳과 관계가 있나?”
“예... 시간이 너무 늦었기는 한데 별장에 한 번 가보시겠습니까?”
밤 10시가 넘어가고 있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안 간다고 하는 건 이상하다.
“그러지.”
카페 뒤 언덕을 50m 쯤 걸어 오르자 잔디가 깔려 있는 상당히 넓은 부지에 지어진 멋진 현대식 건물이 나타났다. 1층보다 2층 면적이 더 넓고 테라스가 밖으로 돌출된 형식의 전원주택이었는데 2층은 유리 새시로 되어 있어서 안이 들여다보이고 있었다.
이유성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서자 소파와 벽걸이 TV가 눈에 들어왔고 강화마루가 깔려 있는 거실을 따라 양쪽에 방이 있고 끝에는 주방이 있었다.
“이 문으로 나가면 뒤 쪽은 산이고 정원 한 쪽에는 텃밭과 수영장이 있는데 그리 크지 않다보니 온수로 채울 수도 있습니다. 봄, 가을에 온수로 채우고 들어가 있으면 온천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뒤 쪽에 있는 소로를 따라 산에 오르면 조그만 개울이 흐르는데 물이 고이는 곳은 사람 허리 정도 차는 곳도 있습니다.“
“멋지군. 서울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이런 곳이 있다니... ”
“예. 하지만 가뭄 때는 개울에 거의 물이 없고 가는 길이 좀 험해서 사람들이 자주 가는 곳은 아닙니다.”
이유성은 주방 옆에 있는 욕실로 나를 데리고 갔다.
“이 곳은 욕실이고 안에 샤워부스가 있는데 욕실 문을 유리문으로 달았고 안에 샤워부스 문에는 불투명한 시트지를 붙여서 안이 잘 안보이도록 해놓았지만 무릎 아래와 얼굴 위로는 시트지가 없는데다가 시트지 자체도 좀 틈이 있어서 안에 누군가가 샤워를 하면 몸매가 훤하게 드러납니다.”
“왜 이렇게 만들었지? 러브호텔도 아니고...”
“욕실 문 앞에 블라인드가 있어요. 안에서 문을 잠그고 블라인드를 내리면 안을 볼 수 없습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지만 욕실은 주방 앞에 있는 식탁 바로 옆에 있어서 식탁 의자에 앉아 있으면 샤워장이 정면으로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야밤에 산에 올라갈 수는 없으니 이제 카페로 다시 가시죠. 실내가 따뜻해졌을 겁니다.”
잠시 뒤 카페로 돌아온 우리는 마주 앉았고 이유성이 내 맥주 잔을 채우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형님이 물어보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간단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내연관계를 알게 되면 여자가 바람기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그냥 서로 눈이 맞았다라고 이야기 하는 데 왜 저만의 비법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난 이 녀석이 오정희, 김유미, 이언주, 황지연까지 네 명의 절대 미녀들을 거느린 마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황지연과는 지금 헤어졌지만...
“지연이를 동문 모임에서 처음 봤을 때 그 애의 미모는 독보적이었네. 흔히 말하는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있었지. 그리고 내가 직접 본 이언주는 세련된 얼굴을 능가하는 섹시한 몸매가 인상적 이었고 공항 사진 속의 그 여인도 대단한 미모였어.
물론 자네 역시 남자가 봐도 반할 정도의 잘생긴 얼굴, 탄탄한 근육, 그리고 선한 눈빛을 가지고 있지만 유명한 연예인이나 정치인, 스포츠 스타, 재력이 넘치는 사업가도 아닌데 이미 애인이나 남편이 있는 경찰 조직의 엘리트 간부와 어학원을 경영하는 미모의 유부녀가 외모만 보고 허물어 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네.
자네에게 무언가 비법이 있지 않고는...“
“비법... 형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없는 비법을 만들어서라도 말씀을 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어렵네요.
음... 아... 그런데 형님! 시간은 어떠십니까? 이야기가 좀 길어져도 괜찮으시겠어요?“
“상관없네.”
이유성은 자신의 이야기를 천천히 시작했다.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어머니는 몇 가지 일에 대해서는 아주 엄격하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어떤 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면 방에 가두고 뉘우치는 기미가 보일 때까지 밥도 주지 않으셨어요. 2~3일을 갇혀 있어 본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 예의에 어긋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면 매를 많이 맞았지만 방에 가두지는 않으셨습니다.
사춘기 시절이 돼서야 그 이유를 짐작하게 됐는데 어머니는 제가 저희 모자를 두고 다른 여자에게 가버린 아버지처럼 자라는 게 싫으셨던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건 중,고등학교 시절 제게 관심을 보이고 좋아한다고 고백까지 했던 여자애들이 꽤 있었고 그런 애들과 성관계도 안 해본 건 아닌데 또래 친구들에 비해 전 그런 관계에 별다르게 흥미를 못 느꼈습니다. 아마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사춘기 여학생들을 건드리다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걸 두려워 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 우연히 제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분과 관계가 시작 됐는데... 여학생들에게는 느낄 수 없었던 엄청난 흥분감과 쾌락이 따라 오더군요.“
“그런 걱정을 안 해도 된다?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면 이미 결혼을 한 사람... 유부녀란 말인가?”
“예.. 정확히 말하면 남편과 사별한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영업을 하시던 분이었는데 저와 만났을 때는 이렇다 할 남자관계도 없이 혼자 계셨던 분이셨어요.
어쨌든 그 분과 관계를 하면서 전 제가 매력을 느끼는 여자, 아니 여자를 보는 제 시각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은 홀로 서기가 가능했고 누군가에게 들키지만 않는다면 어떠한 상황이 벌어져도 제가 책임질 일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 무렵이 되자 전 좀 더 많은 여자들이 안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고민을 하다가...“
이유성은 잠깐 말을 멈추더니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맥주 한 잔을 천천히 들이켰고 난 이야기가 끊기는 것이 싫어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떤 고민이지? 어떻게 하면 여자를 많이 안아볼 수 있을까 이런 건가?”
“아니요. 비슷하긴 한데... 전 제가 책임을 져야 하는 여자는 안는 게 부담이 되는데 그 분처럼 아무런 문제없이 균형 잡힌 삶을 사는 여자를 찾는 건 쉽지 않아서...
그래서 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그런 분들을 더 만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약간 발상을 바꿨죠. 저와 관계를 하더라도 아무런 책임을 요구할 수 없는 여자들을 만나는 것으로...”
난 이유성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 고개를 끄덕였고 그걸 본 녀석이 불쑥 질문을 던졌다.
“여쭤볼게 있는데요. 제 이야기가 재미있으세요? 형님이 원하시는 건 언주 누나 같은 사람을 내 여자로 만드는 방법인데 왜 제 예전 이야기들을 그렇게 열심히 듣고 계시죠?”
“응? 내가 20대 시절에 했던 생각들과 비슷해서 공감이 가. 난 그 때 다방이나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여자들을 만나곤 했어.”
“예... 하지만 좀 이상해서... 비법을 물으시던 분이... 별 상관없는 이야기가 계속 되는데도 관심을 보이시는 게...”
“내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야. 나이는 내가 연장자일지 몰라도 내가 보기엔 이런 분야에서 자네는 엄청난 고수라고 생각되네. 말 한마디도 놓치고 싶질 않아.”
“음... 그런가요?”
그런가요 하며 내뱉는 이유성의 음성은 무언가 좀 미심적다는, 아니 의심스럽다는 뉘앙스가 풍기고 있었지만 이내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고민 끝에 전... 유흥업소에서 일하기로 했습니다. 그것도 남자들을 찾는 여자들이 가득한 호스트바에서요.”
“뭐?”
깜짝 놀라 내뱉은 내 목소리가 실내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고 이유성은 눈동자가 휘둥그레진 날 담담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 곳을 찾는 여자들에게 제가 책임을 질 필요는 없으니까요.
호스트바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남자들에게 웃음을 팔며 번 돈을 쓰기 위해 온 호스티스부터 사업가의 부인, 고소득 전문직 여성, 의사 사모님, 여성 시의원, 변호사...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여자들을 안아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분들은 절 노예처럼 대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여하튼 전 단골들이 꽤 있는, 잘 나가는 호스트 중 한 명이었죠.
거기서 전... 뭐랄까... 여자들 역시 남자와 마찬가지로 탈선을 하고 싶어 하고 자유롭게 성을 즐기고 싶은 욕망이 강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여인들도 젊은 남자들이 시중을 들어주고 자신의 몸을 만져주길 원하는 걸 수도 없이 봤으니까요.“
선승철은 2년간 호스트바에 있었던 이유성의 행적은 알아내지 못했다. 이 녀석의 몸 아래에서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교성을 토해냈을까? 김유미, 오정희, 이언주, 황지연은 빙산의 일각도 되지 않을 것이다.
“놀랍군... 자네가 그런 곳에서 일했을지는 전혀 생각 못해봤네. 나쁜 의미로 하는 말은 아니고... 부럽기도 하고... 그런 경험을 했었다면 섹스를 할 때 여자들에게 황홀감과 쾌락을 줄 수 있는 스킬들이 엄청나겠어...
하지만 그 건 그녀들이 자신들과의 밤을 허락할 때나 가능한 일 아닌가? 내가 궁금한 건 어떻게 지연이나 이언주 원장의 벽을 허물 수 있었는가 하는 거네.“
“지연 누나의 경우는 저도 뜻하지 않게 그렇게 됐습니다. 다분히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이니... 그 일 때문에 결혼을 하게 되고 많은 것들이 달라졌어요.
하지만 언주 누나의 경우는... 음... 제가 벽을 허물었다기보다는 무너질 때까지 기다렸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제대 후 헬스클럽에서 트레이너로 일하게 되면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은... 홀로 서기가 가능한 균형 잡힌 여자를 찾는 거였습니다. 언주 누나는 그 중에서 군계일학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 매력적이긴 했지만 운동 외에 별다른 대화를 하지도 않을뿐더러 워낙 바빠서 운동 시간이 끝나면 바로 가시곤 했죠.
물론 운동과 관련된 대화들을 하곤 했지만 그 외에 강습생에게 작업을 하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라 몇 달을 지켜보던 중에 누가 그 분이 어학원 원장이라고 말을 해 줬어요.
전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학원으로 찾아가서 등록을 했고 며칠 뒤 그 곳 복도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를 드렸습니다. 좀 놀라시는 눈치였지만 영어회화에 관심이 많다고 했더니 반가와 하시더군요.
그 때부터 운동을 하러 오셨을 때도 영어회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데 물론 저도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 누나에게 원어민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더니 며칠 후 학원에서 근무하는 미국인 여강사와 누나, 그리고 저 셋이서 식사를 함께 하는 약속을 잡아 주셨어요.
모자란 회화 실력으로 같이 대화하는 게 힘들긴 했지만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고... 다음 날인가 누나가 운동을 하러 오셔서 하는 말이 그 백인 강사가 너한테 관심을 많이 보이는데 만나볼 생각이 있냐고 하시더군요. 전 1초도 생각하지 않고 거절을 했습니다.
너무 빨리 거절을 하니까 외국인이라 그러는지 아니면 여자 친구가 따로 있냐고 물으셨고 없다고 했더니 그럼 좋아하는 여자 스타일이 뭐냐고 하시기에 잠깐 생각하는 척 하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누나 같은 스타일이라고 했습니다. 살짝 얼굴이 상기되면서 좋아하는 눈치였어요.
얼마 후 강의를 하다 보면 다리가 아파서 하체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제게 상의를 하시기에 실내에서만 운동을 하는 건 지루할 수 있으니 자전거 라이딩을 권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밖에서 둘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한 달에 한두 번 쯤 가까운 공원이나 자전거 전용 도로에서 함께 자전거를 타게 됐죠.
그 때쯤 단 둘이 있을 때는 누나라고 부르라고 하셔서 그렇게 불러 드렸지만 그 이상은 잘 다가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누나를 여자로 본다는 느낌이 들 수 있는 말이나 그런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어요. 어설피 그렇게 하면 누나 입장에서 어떤 선을 그으려고 할 수가 있고 그렇게 되면 거의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들인 노력이 헛수고가 될 수 있으니까요.“
“1년? 그럼 이언주와 관계를 가지기 까지 1년이나 걸렸나?”
“아니요. 훨씬 더... 2년은 안 걸린 것 같고... 거기서 몇 개월 더... 워낙 흐트러짐이나 빈 틈이 없으신 분이라... 나름 준비를 하고 있기는 했지만... 누나는 제 영어 회화를 도와주고 전 누나의 몸 관리를 해주는 명분으로 만나서 자전거 라이딩을 하게 된 것만 해도 엄청난 성과였죠.
그러던 어느 날은 만나기로 한 날 비가 왔고 자전거를 탈 수 없으니 약속을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 됐는데 누나가 이왕 시간을 비워 둔거니까 영화나 보러 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더군요. 많이 가까워 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로도 전 누나가 헬스클럽에 나오는 시간이나 자전거를 탈 때, 아니면 가끔 식사를 같이 하게 되는 경우 그림자처럼 붙어 있었어요. 누나가 일상에서 벗어나는 시간들 대부분에 제가 함께 있었던 거죠. 그래도 언주 누나는 한 번도 가정이나 남편, 회사 때문에 힘들다거나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말씀 한 번도 하신 적 없었던 분이지만...
다시 몇 개월의 시간이 흘러갔고 아마 그 때가 6월 초 쯤 이었던 것 같습니다. 며칠 동안 비가 계속 내리다가 갠 날이었는데 날씨가 좋으면 누나와 자전거를 타기로 약속을 했었어요. 약속 장소에 가서 두리번거리며 누나를 찾고 있는 데 골목길 안에서 자전거를 옆에 세워 두고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시고 계셨습니다.
인사를 하려다 말고 모퉁이에 서서 대화를 듣자니... 당신은 일주일이면 몇 번씩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면서 내가 친구들하고 어쩌다 술 한 잔하고 좀 늦은 건 이해 못해줘요? 아니 당신이 해외로 출장 간 틈을 타서 논게 아니라 한 달 전부터 만나기로 한 거였다니까요... 이런 이야기들을 하셨고요.
정리해보면 남편이 해외로 출장을 갔고 누나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새벽에 집에 들어 갔는데 그게 문제가 된 것 같았습니다. 한참을 전화로 다투는 걸 듣고 있다가 나중에 누나가 전화상으로 잘못했다고 다음부터 조심하겠다고 이야기하고 끊었을 때 전 재빨리 그 곳으로부터 좀 떨어진 편의점 앞에서 두리번거리며 누나를 찾는 척 했어요.
그 때 뒤에서 절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고 뒤돌아 인사를 하며 누나에게 다가가면서 오늘을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날이었나? 이언주 원장을 안게 된 날이?”
이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는데 만일 그런 기회가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2년이 넘고 3년이 되도록.. 아니면 5년이 넘어도...”
“그게... 어려운데.... 아마... 기다렸을 겁니다. 언주누나 이야기를 해서 누나와 관계된 일만 말하고 있지만 제겐 성욕을 해소할 수 있는 다른 분들도 이미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수성보다 공성은 몇 배 어렵거든요. 누군가 성을 공격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하면 지키는 입장에서 성문을 닫고 버티게 되고... 많은 출혈을 감수해야 하는데... 하지만 공격을 할 의지를 숨기고 성 주변에서 매복하고 있으면... 가끔은 무방비 상태로 성이 열릴 때가 있어요. 그 때 공성전을 시작하면 가능성이 많아지니까요.”
“다른 분들? 같이 섹스를 하는 여자들이 여러 명이란 말인가?”
“음... 예리하시네요. 그 부분은 노코멘트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을 정도로만 말씀 드릴게요. 죄송합니다.”
“아니야. 죄송할 것까지야 없네.
그건 그렇고 자연스럽게 기회를 만들면 되지 않나? 자네라면 가능할 것 같은데...”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겠죠. 기회 같은 거 안 만들고 가만히 있어도 어떻게든 저와 인연을 만들려고 하는 여자 분들도 많이 있으니.. 그게 아니라면 꽤 괜찮게 보이는 분들도 가지고 있는 문제들 때문에 빈틈이 노출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일 그런 분들과 관계가 시작되면 제가 책임져야 할 일들이 많아질 수 있어요. 문제는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거든요.
언주 누나처럼 균형이 잘 잡혀 있는 분들에게 기회를 만들려고 하다가 그런 의도가 조금이라도 드러나면... 다음은 보장이 없습니다.“
맞는 말이다. 결국 이 녀석이 만들어준 지연의 빈틈을 파고들어 그녀를 안았지만 그 것 때문에 난 다시 녀석과 마주 앉게 된 것이다. 마왕의 이야기에 지연의 내상을 치료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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