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어떻게 잘 마무리하고 계신가요? 내일 올려드릴려고 했는데... 이놈의 조급함이 오늘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프롤로그에 대인배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어느 친절한 독자분께서 잘못된 표현이란 사실을 쪽지로 알려주시여 수정하였습니다. 저도 앞으로 신경 써서 올바른 표현을 사용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재미가 있든 없든 칭찬의 댓글 또는 비난의 댓글은 여러분들의 센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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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상에... 이런 당황스러운 일이...
잠이 오지 않는다. 시간은 벌써 새벽 2시 30분. 집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졸립다는 느낌을 받지 않고 있는 중이다. 머릿속이 하얗게 된 것 같은 느낌에 잠이 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가 계속 생각이 났고 다방에서 커피를 배달한다는 사실과 유부녀였다는 사실에 복잡했을 뿐이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내 방 창문을 열고 잘 보이지도 않는 별을 찾기 위해 노력중이다. 별이라도 세며 누워 있으면 잠이라도 올까 하는 마음에서다. 새벽 공기가 차다. 찬 공기가 창문을 통해 내 피부로 전해졌고 그녀가 입고 있던 복장이 떠올랐다. 정말 추울 건데... 이 시간까지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채 일을 하고 있을 그녀가 걱정되었다.
“치마라도 길게 입고 다니지...”
답답한 마음에 뒤척이기만 하기를 30여분... 내 귀에서 여자의 구두소리가 들려왔다.
“또각, 또각...”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가 퇴근을 하고 돌아오는 모양이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 걸어 들어와야 우리 하숙집이다. 골목에서 울리는 구두 뒤꿈치 소리는 마치 엄마가 갓난아이를 제울 때 불러주는 자장가와 비슷하다. 안심이 되었다고 느낄 때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고 거실의 문이 옆으로 밀리는 소리가 들렸다.
“드르륵...”
“삐그덕, 삐드덕...”
나무 복도를 지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모양이다. 그녀의 방문이 열렸다 닫치는 소리를 듣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방문을 조용히 열어 그녀의 방쪽을 쳐다봤다. 혼자 왔겠지... 설마 이 시간에 다른 누군가와 함께 오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렇게 걱정하고 있는 나에게 다녀왔다며 인사라도 하고 들어가지...
그 순간, 그녀의 방문이 열렸다. 순간 열린 방문 뒤로 서 있는 그녀와 내가 눈이 마주치고 만다.
“어...”
“어머나, 당구장에서 뵌 분이시네요? 아직 안 주무셨어요?”
“아, 더워서요... 잠시 문 좀 열어 놓으려고...”
“그러시구나, 안녕히 주무세요.”
그러더니 다시 문을 닫는다. 왜 문을 열었을까? 혹시... 내가 마음으로 빈 바람을 듣기라도 한 것일까. 이유야 어찌되었던 친절하게 잘 자라며 인사까지 해준 그녀가 고마웠다. 의도된 일은 아니었지만 의도치 않게 오늘 두 번의 인사를 받게 되어 기뻤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준 것에 감사했다.
길 것 같았던 짧은 새벽이 지나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늦게 잔 탓에 몸이 천근만근으로 무거웠지만 그래도 수업이 있는 날이라 일찍 일어나야 했다. 기지개를 펴며 무거운 몸을 일으킨 채 맨발로 하숙집 거실로 향했고 그곳에서 다시 그녀를 만났다.
“어머, 또 만나네요.”
어제도 봤는데... 이상한 소리나 하고...
“아, 안녕히 주무셨어요.”
“물 드릴까요?”
“감사합니다.”
친절도 하셔라, 이렇게 친절한 여자가 왜 다방에서 야간 배달을... 그것도 불량스러운 복장을 한 채 사람 가슴 철렁이게 만드나.
“하하하! 아침이 밝았으니, 하루를 상큼하게 시작해야겠어!”
진상 같은 집주인 아저씨도 나온다. 어제 잠을 들지 못하게 한 주범이다. 지난 밤, 잠자리에 들어 눈을 감은 채 단잠에 빠질 무렵... 어디선가 전쟁이 난 것 같았다. 우람한 탱크 부태가 우리 동네를 지나며 나의 단잠을 방해했는데 탱크 부대의 위치가 나와 가까이가 아닌 약가 거리감이 있었고 벽 뒤에서 들려왔었다.
코를 고는 소리와 위치, 방향은 분명 개념 없는 집주인 아저씨가 잠들어 있는 주인 방이 확실했다. 잠을 설쳤더니 면상이 곱게 보일리가 없었고 그런 집주인 아저씨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김 군! 이렇게 일찍 무슨 일이야?”
너 때문에요... 잠을 못 잤어요. 그래서 일찍 일어났어요.
“아침에 일찍 수업이 있어서요.”
“그렇군! 이따 저녁에 2차전 한 번 더 할까? 물론 내가 이기겠지만... 하하하!”“됐습니다. 오늘 바빠요.”
“겁을 먹었네? 오늘은 살살 쳐줄게.”
“사기꾼.”
그녀가 건넨 물을 마시고 세수를 한 뒤 책가방을 싸며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내 방문은 닫혀 있었지만 건너편 그녀의 방 쪽으로 시선은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와 어떻게 하면 대화를 할 수 있을까... 그냥 평범한 대화라도 한 번 솔찍하게 해보고 싶은데... 건수가 없다. 그렇게 들이 댈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이 부족하다. 괴롭다...
방에서 나와 책가방을 한 쪽 어깨에 둘러매며 신발을 신고 있는데 세수를 하고 나온 그녀와 마딱 들이게 되었다. 백옥 같은 피부... 볼에 크림이라도 발라주고 싶은 피부... 그녀만 보면 침이 자동으로 넘어간다. 헛기침을 하며 어정쩡한 상태로 다시 내 행동을 하자 가만히 지켜보던 그녀가 나에게 먼저 입을 연다.
“저기...”
“네?”
“뭐 할 말이라도 있어요?”
“누구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나는 아닐 것이라는 행동을 지었고...
“저요?”
“네, 그냥... 어제부터 절 바라보는 기분이 그렇게 느껴져서요.”
“오해하셨네요.”
부정을 통한 자기방어... 나는 정말 한심한 놈이다.
“그... 그런가? 혹시... 저에게 뭐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면 제방으로 오세요.”
“방은 저도 있는데 왜 그 방에...”
뭐라고? 자기 방으로 오라고? 그 말을 듣고 내가 그녀에게 한 말이 지금 가당치나 하단 말인가. 알겠다고... 꼭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젠장.
“싫으시면 말고요.”
삐진 듯 토라진 그녀의 말투가 내 귀에는 가시처럼 들렸다. 진심이 아닌 말에 상처를 받은 듯한 그녀의 모습, 미안했고 죄송했으며 죽을 죄였다. 돌아서며 학교로 향하는데 반드시 사과를 해야 한다는 강한 마음이 들었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그녀의 방 쪽으로 향한다. 노크를 해야지... 여자 혼자 사용하는 방인데... 그냥 문을 열면 안 되지.
“똑똑똑...”
“드르륵~ 왜요?”
“저... 아까는 제가...”
“사과를 하려면 이렇게 할 게 아니라 술이라도 사셔야죠.”
“네, 술을 사드려야... 네? 술이요?”
“오빠 몇 살이에요? 나보다 어리게 보이는데.”
술이라... 술... 난 소주 한 잔에 필름이 끊긴다. 최대 약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술을 여자가 먼저 마시자고 제안을 했다. 바로 한심한 나에게.
“저... 저는 올해 20살입니다.”
“어쩐지... 어려보이더라.”
“실례지만... 올해 연세가...”
“찌릿...!”
“응?”
나를 죽일 듯 쳐다보는 그녀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작은 살기를 느끼며 불쾌해하고 있는 그녀가 왜 그런지 궁금해졌다.
“연세라니... 내가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나?”
“초면인데... 그래도 그렇게 얘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 요.”
“나 올해 24살이야! 누나라고 불러!”
“아, 24살...”
나이를 알아냈다. 어쩌다 알아낸 정보치고는 정말 고급정보다. 이제 이름을...
“그... 그럼... 성함... 은?”
“뭐?! 성함? 푸하하!”
“?”
도무지 갈피를 못 잡겠다. 그녀는 왜 내가 말만하면 이렇게 까칠해지고 웃는 것일까.
“대학생이지?”
“네, 맞습니다.”
“선배들에게 ‘성함이 뭐예요’라고 물어봐?”
“아니, 뭐...”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이렇게 말해봐.”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훗... 귀엽네. 시키면 다하고.”
“...”
날 희롱하고 있는 것 까지는 참을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마음에 담고 있는 여자이기에 이정도 쯤이야... 또한 나보다 늙었으니... 참아야 하지.
“그건 비밀, 한 번에 모든 것을 다 밝히면 재미없잖아? 다음에 동생이 술 사주면 그 때 알려줄게.”
“네...”
“학교 가는 거 아니었어? 빨리 가봐. 지각하겠네.”
“그럼, 다음에 뵐게요.”
“푸하하!”
“쿵.”
닫쳐진 그녀의 방문 밖으로 나는 고개를 숙인 모습이었고 숙여진 고개 밑으로 밝게 웃는 내 표정이 있었다.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녀의 나이를 알아냈고 다음에 함께 할 수 있는 약속을 받았다. 비록 성함을... 아니, 이름은 알아내지 못했지만 약속으로 남겨둔 보증이라 생각하고 있다. 학교로 걸어가는 내 발걸음이 너무 가볍다.
“이야호!”
***
그녀는 아침부터 외출을 하기 위해 화장을 시작했다. 앵두 같은 두 입술, 수술을 하지는 않았지만 태생적으로 오뚝한 코, 짙은 아이라인에 숨겨진 살짝 풀린 두 눈. 화장은 변장으로 변해 갔고 그녀가 외출복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갈아입은 옷 위로 남자를 꼬실 것 같은 향수가 뿌려지며 모든 외출 준비가 끝났다.
“드르륵~”
“어, 미스 최. 어디 가?”
“네, 잠시 외출 좀 하려고요. 사장님은 오늘 뭐하세요?”
방 밖으로 나선 그녀 앞에 집주인 아저씨가 말을 건다.
“이런 명언이 있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별로 없다. 그래서 지금 고민 중이야. 하하하!”
“사장님은 참 유쾌하신 분 같아요.”
“내가 소실적에 한 유머 했어. 우리 마누라가 그래서 나랑 결혼 했고.”
“어련하실까요.”
“하하하! 미스 최 오늘 너무 예쁜데? 애인 만나로 가나?”
“무슨... 애인 만날 시간이 어디 있어요.”
“그러면?”
“부업으로 일자리 하나 더 구하려고요.”
“열심히 사네, 내가 참 부끄러워.”
“그래도 사장님은 하숙집이라도 운영하시잖아요. 방세만 받아도 한 달에 얼만데...”
“그렇지, 하지만... 방세가 모두 내 돈이 아니라는 팩트가 있지.”
“다녀 올게요.”
“차 조심하고... 밥은 먹고 다녀야 해. 다이어트 같은 거 한다고 굶지 말고.”
“네, 수고하세요.”
그녀가 하숙집 대문을 나서자 씁쓸한 듯 주인집 아저씨가 혼잣말을 한다.
“수고할 게 하나도 없어서 죽겠는데... 오늘은 뭐하며 시간을 때우나... 쩝쩝.”
바쁜 걸음으로 하숙집을 나선 그녀가 우리 동네 큰길가에 있는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평소에도 차량의 이동이 많은 곳이라 신경을 쓰지 않으면 바로 사고로 이어지는 약간 위험한 곳이다. 하지만 그녀가 가려는 목적지로 버스를 타려면 이곳을 반드시 지나야 했다.
“오늘도 차가 많네.”
쌩쌩 달리는 차들이 바쁜 아침 사람들의 사이를 번개처럼 내 달리고 있었고 그녀는 파란불이 켜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가 기다리는 파란불이 신호등에 켜지며 보행자 신호로 신호가 바뀌게 되었다. 손목에 찬 시계를 한 번 바라본 그녀가 약속된 시간보다 약간 늦었음을 인식하고 신호가 바뀌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
“끼이익!!”
순간 그녀가 튀어나오자 미쳐 신호를 보지 못했던 차량과 사고가 날 뻔 한다. 운전자는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며 당황해 하고 있는 그녀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야, 죽고 싶어?!”
“어머...”
“앞을 잘 보고 지나가야 할 것 아니야?! 아니면 집에서 살림이나 하던가!!”
운전자의 실수는 인정되지 않고 자기의 기분대로 소리만 지르고 있는데 그녀가 욱했다.
“아저씨, 지금 신호가 무슨 색이에요?!”
“뭐?!”
“눈깔은 폼으로 달고 다니나? 저기 신호등 색깔 안 보여요?!”
“어디서 말대꾸야?! 죽고 싶어?!”
“별 꼴이야... 에이, 아침부터 재수없게.”
“뭐?! 야, 이 썅년이...”
“꺼져! 병신아!”
상종도 하기 싫어 그녀가 깜빡이는 신호등을 확인하며 빠르게 건널목을 달리기 시작했고 중간 쯤 도착했을 때 파란불은 빨간불로 바뀌고 말았다. 그 신호에 덤프트럭이 속도를 멈추지 못한 채 내 달렸고 그녀가 신경질 적인 표정으로 건널목을 건널 때 충돌하고 말았다.
“끼이익! 쾅!”
그녀에게 욕을 하던 자동차의 운전사는 깜짝 놀란 눈으로 그 장면을 바라만 보고 있었고 건널목 주변 사람들이 사고를 확인 한 채 비명만 질렀다. 덤프트럭의 운전사는 차에서 내려 경찰과 구급차를 불러달라는 애절한 신음 소리만 가득 울려 퍼진다.
“삐뽀삐뽀~”
.........................
..................
............
달리고 있는 기차 안.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예전을 회상하고 있다.
“다음 우리 열차 도착할 역은 대전역, 대전역입니다. 대전역에서 가실 분 안녕히 가십쇼.”
“덜컹, 덜컹.”
어느덧 내가 가려는 역에 도착하고 있다는 기차의 안내방송을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쌓았다. 짐이라고 해봐야 작은 서류가방 하나, 그리고 둘둘 말린 스포츠신문 한 부가 전부다. 대전역에 도착하여 기차를 내리고 출구를 향해 서둘러 움직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하차를 하고 자신들만의 목적지를 찾아가는 바쁜 움직임이 보인다.
“어, 여깁니다! 김 교수님.”
“마중을 왜 나오셨어요? 혼자 가면 되는데.”
“그래도 오신다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제가 모시러 와야죠.”
“민망하게...”
“짐 이리 주세요.”
나를 반갑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내 짐을 받아주며 자신이 타고 온 승용차로 인도한다. 일 년에 두 번 정도 이곳에 오지만 올 때마다 느낌이 달랐다. 처음 그녀와 이곳으로 올 때도 느낌이 달랐다.
............
..................
.........................
“삐뽀삐뽀~”
“잠시 만요, 길 좀 비켜주세요! 응급 환자입니다.”
응급차에 실린 그녀와 함께 도착한 대전의 한 병원,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은 그녀의 가족이 필요했고 보호자가 필요했으며 과다출혈로 인한 수혈을 하기 위해서다. 수혈을 하는데 굳이 이렇게 서울에서 대전까지 와야 했던 이유는 그녀가 필요한 피가 이곳에 많이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이고 사고 소식에 남편과 연락이 되었다.
“제가 있는 대전으로 집사람을 후송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직업군인이었고 대전 근처에서 복무를 하고 있었는데 자신과 가장 가까운 거리의 군병원이 대전에 있었다. 나는 대전으로 함께 후송되는 차에 몸을 실었고 서울에서부터 대전까지 오는 응급차 안에서 흐르는 피가 굳어진 손을 잡으며 도착했다.
“빨리, 지체하면 안 돼!”
“RH- 혈액 가져와!”
“블루드 서플라이(blood supply, 혈액공급) 실시합니다.”
“블루드 볼륨(blood volume, 혈액양) 확인해.”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쁜 모습이다. 그런 그녀의 손을 놓고 나는 응급실 한 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양손으로 코를 감싸며 그녀가 살아 있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의사들의 바쁜 걸음이 내 심장 뛰는 박자와 얼추 비슷하게 느껴졌다. 아직 그녀와 나는 해야 할 약속이 있는데... 이렇게 그녀를 보내야만 하는 것인지 걱정스러웠다.
며칠 후, 그녀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나는 아직도 그녀의 곁에서 머물고 있다. 언제 깨어날지 모르지만 의식이라도 돌아와 내 얼굴을 보며 밝게 웃고 있어줄 그녀만 생각하게 되었다. 밤을 새며 울었던 시간들이 아깝지 않을 만큼 나의 소망이 곧 희망으로 나타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을 때 쯤...
“스르륵~”
“보호자님, 환자 혈압 좀 체크하겠습니다.”
“네.”
간호사가 그녀의 팔에 혈압계를 대고 바람을 불어 넣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우연히 간호사 등 뒤를 바라보게 되었고 그 곳에는 어떤 군복을 입은 남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누구... 세요?”
“아, 저는 이 여자 남편입니다.”
“!”
그였다. 내 사랑을 갖고 있는 지배자, 남편이라는 표식을 한 채 며칠 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그 사람... 아니, 바로 그 자식!
“그런데 우리 집사람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딱딱한 군인말투, 영락없는 직업군인이다. 그가 본 내 모습이 얼마나 웃겼을까. 아직 누군지도 모르고 며칠을 함께 있는 내가 남편이란 사람에게는 신비로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따지듯 묻는 말투는 아니었지만 자상하게 묻는 말투에 그리 큰 빈정을 상하지도 않았고 묻는 질문에 대답을 해야 했다.
“옆방... 아니, 앞방에 살고 있는 학생입니다.”
“학생?”
“같은 하숙집을 사용해요.”
“아, 사고가 나고 우리 집사람을 보살펴 주었다는 사람이 당신이군요.”
“...”
“감사합니다! 뭐라고 말을 드려야 할지...”
“...”
뭐라고 말하지 말고 그냥 우리 앞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그녀가 행복한 보금자리에서 사랑하며 살 수 있도록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지만 그래도 비현실적인 일들이 많은 요즘 세상 아니겠는가.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해하는 남편이란 작자를 바라보며 조용히 병실 밖으로 향한다.
“여보, 어떻게... 이런 일이...”
내가 병실에서 나오자 그녀의 손을 잡으며 절규하듯 울음을 터트리는 남편은 한 동안 병실 침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혼자 멀뚱한 표정으로 병원 복도 의자에 앉아 남편이 병실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리던 중 그녀의 담당 주치의사가 병실로 향한다. 그 모습에 나도 병실 안으로 허겁지겁 달려 들어갔다.
“남편 되신다고요?”
“네, 선생님. 우리 집사람...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음, 글쎄요... 수술은 잘 됐는데 아직까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네요.”
“설마, 잘 못되지는 않겠죠?”
“그건 환자의 몫입니다. 기력을 빨리 되 찾으셨으면 좋겠네요.”
“큭...”
담당 주치 의사는 다음 주까지 그녀가 깨어나지 않으면 뇌사 상태로 빠질 확률이 많다고 했다. 그 소식을 뒤에서 들은 나는 무너질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녀의 남편도 나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의사의 무릎을 잡은 채 빌듯 사정하는 모습이 마치 내가 지금 하고 싶은 행동을 대변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의사가 병실로 나오며 나를 한 번 슬쩍 바라보더니 질문을 한다.
“응? 혹시... 서울에 있는 xx대학교 의대 학생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절 어떻게...”
“학생, 나 모르겠어요?”
“누구...”
자신을 모르겠냐며 묻는 의사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본다. 나를 알고 있고 인면식이 있었다면 나도 그를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사고 소식에 단기간의 기억들이 소멸 된 것처럼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잡은 의사가 말을 한다.
“예전에 초청강의를 하는데 저에게 앞으로의 의학계의 동향에 대해 질문을 했던 학생 맞지요?”
“의학계의 동향에 대한 질문...”
“이름이... 김... 뭐였더라?”
그 순간 그 당시 내가 질문한 상황과 시점, 질의를 했던 초청 박사가 떠올랐다. 그렇다, 맞다. 나도 이 의사를 만난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말처럼 모든 게 떠올랐다.
“아, 맞습니다. 이제 기억이 나는 군요.”
“이렇게 다시 만나니 반갑군요. 제가 그때 얼마나 당황스러웠던지... 앞으로 훌륭한 의사가 되어 이런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 감사합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네.”
그날 밤, 그녀의 남편은 군부대의 비상으로 다시 복귀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에게 진심이 어린 악수를 청하며 그녀를 잘 부탁한다고... 꼭 옆에서 지켜달라고 사정을 하며 떠났다. 남편이라는 사람이 병원을 떠나고 그녀가 누워 있는 병실 침대 옆에 앉아 의식이 없는 그녀를 바라만 보며 한 없이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렇게 울며 설잠이 들었고 손을 잡은 채 내 얼굴에 올려놓은 모습으로 제발 깨어나라는 잠꼬대를 했다. 잠결에 흐르는 내 눈물이 의식이 없는 그녀의 손등에 닿았고 손등에 닿은 눈물에서 밝은 빛이 나더니...
“으음...”
“동생, 일어나 봐.”
“조금만 더요... 10분만...”
“훗... 귀엽네.”
“누... 누나?”
잠결에 들리는 목소리, 환청이었을까. 포근하고 다정스럽게 나를 부르고 있는 목소리... 내가 알고 있는 여자 목소리 중 가장 사랑스러운 목소리. 누군가 잠들어 있는 내 머릿결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며 설잠에 빠진 나를 깨우고 있다. 설마... 설마...
“응?!”
“일어났어? 그런데 동생, 여기가 어디야?”
“헉...!”
내가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보니 의식이 없는 그녀가 나를 향해 밝게 웃고 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의사를 부를 힘도 없었다. 그리고 보이는 또 다른 모습,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모습. 그 위로 침대에 걸터앉아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그녀의 모습... 이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재미가 있든 없든 칭찬의 댓글 또는 비난의 댓글은 여러분들의 센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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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상에... 이런 당황스러운 일이...
잠이 오지 않는다. 시간은 벌써 새벽 2시 30분. 집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졸립다는 느낌을 받지 않고 있는 중이다. 머릿속이 하얗게 된 것 같은 느낌에 잠이 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가 계속 생각이 났고 다방에서 커피를 배달한다는 사실과 유부녀였다는 사실에 복잡했을 뿐이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내 방 창문을 열고 잘 보이지도 않는 별을 찾기 위해 노력중이다. 별이라도 세며 누워 있으면 잠이라도 올까 하는 마음에서다. 새벽 공기가 차다. 찬 공기가 창문을 통해 내 피부로 전해졌고 그녀가 입고 있던 복장이 떠올랐다. 정말 추울 건데... 이 시간까지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채 일을 하고 있을 그녀가 걱정되었다.
“치마라도 길게 입고 다니지...”
답답한 마음에 뒤척이기만 하기를 30여분... 내 귀에서 여자의 구두소리가 들려왔다.
“또각, 또각...”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가 퇴근을 하고 돌아오는 모양이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 걸어 들어와야 우리 하숙집이다. 골목에서 울리는 구두 뒤꿈치 소리는 마치 엄마가 갓난아이를 제울 때 불러주는 자장가와 비슷하다. 안심이 되었다고 느낄 때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고 거실의 문이 옆으로 밀리는 소리가 들렸다.
“드르륵...”
“삐그덕, 삐드덕...”
나무 복도를 지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모양이다. 그녀의 방문이 열렸다 닫치는 소리를 듣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방문을 조용히 열어 그녀의 방쪽을 쳐다봤다. 혼자 왔겠지... 설마 이 시간에 다른 누군가와 함께 오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렇게 걱정하고 있는 나에게 다녀왔다며 인사라도 하고 들어가지...
그 순간, 그녀의 방문이 열렸다. 순간 열린 방문 뒤로 서 있는 그녀와 내가 눈이 마주치고 만다.
“어...”
“어머나, 당구장에서 뵌 분이시네요? 아직 안 주무셨어요?”
“아, 더워서요... 잠시 문 좀 열어 놓으려고...”
“그러시구나, 안녕히 주무세요.”
그러더니 다시 문을 닫는다. 왜 문을 열었을까? 혹시... 내가 마음으로 빈 바람을 듣기라도 한 것일까. 이유야 어찌되었던 친절하게 잘 자라며 인사까지 해준 그녀가 고마웠다. 의도된 일은 아니었지만 의도치 않게 오늘 두 번의 인사를 받게 되어 기뻤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준 것에 감사했다.
길 것 같았던 짧은 새벽이 지나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늦게 잔 탓에 몸이 천근만근으로 무거웠지만 그래도 수업이 있는 날이라 일찍 일어나야 했다. 기지개를 펴며 무거운 몸을 일으킨 채 맨발로 하숙집 거실로 향했고 그곳에서 다시 그녀를 만났다.
“어머, 또 만나네요.”
어제도 봤는데... 이상한 소리나 하고...
“아, 안녕히 주무셨어요.”
“물 드릴까요?”
“감사합니다.”
친절도 하셔라, 이렇게 친절한 여자가 왜 다방에서 야간 배달을... 그것도 불량스러운 복장을 한 채 사람 가슴 철렁이게 만드나.
“하하하! 아침이 밝았으니, 하루를 상큼하게 시작해야겠어!”
진상 같은 집주인 아저씨도 나온다. 어제 잠을 들지 못하게 한 주범이다. 지난 밤, 잠자리에 들어 눈을 감은 채 단잠에 빠질 무렵... 어디선가 전쟁이 난 것 같았다. 우람한 탱크 부태가 우리 동네를 지나며 나의 단잠을 방해했는데 탱크 부대의 위치가 나와 가까이가 아닌 약가 거리감이 있었고 벽 뒤에서 들려왔었다.
코를 고는 소리와 위치, 방향은 분명 개념 없는 집주인 아저씨가 잠들어 있는 주인 방이 확실했다. 잠을 설쳤더니 면상이 곱게 보일리가 없었고 그런 집주인 아저씨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김 군! 이렇게 일찍 무슨 일이야?”
너 때문에요... 잠을 못 잤어요. 그래서 일찍 일어났어요.
“아침에 일찍 수업이 있어서요.”
“그렇군! 이따 저녁에 2차전 한 번 더 할까? 물론 내가 이기겠지만... 하하하!”“됐습니다. 오늘 바빠요.”
“겁을 먹었네? 오늘은 살살 쳐줄게.”
“사기꾼.”
그녀가 건넨 물을 마시고 세수를 한 뒤 책가방을 싸며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내 방문은 닫혀 있었지만 건너편 그녀의 방 쪽으로 시선은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와 어떻게 하면 대화를 할 수 있을까... 그냥 평범한 대화라도 한 번 솔찍하게 해보고 싶은데... 건수가 없다. 그렇게 들이 댈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이 부족하다. 괴롭다...
방에서 나와 책가방을 한 쪽 어깨에 둘러매며 신발을 신고 있는데 세수를 하고 나온 그녀와 마딱 들이게 되었다. 백옥 같은 피부... 볼에 크림이라도 발라주고 싶은 피부... 그녀만 보면 침이 자동으로 넘어간다. 헛기침을 하며 어정쩡한 상태로 다시 내 행동을 하자 가만히 지켜보던 그녀가 나에게 먼저 입을 연다.
“저기...”
“네?”
“뭐 할 말이라도 있어요?”
“누구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나는 아닐 것이라는 행동을 지었고...
“저요?”
“네, 그냥... 어제부터 절 바라보는 기분이 그렇게 느껴져서요.”
“오해하셨네요.”
부정을 통한 자기방어... 나는 정말 한심한 놈이다.
“그... 그런가? 혹시... 저에게 뭐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면 제방으로 오세요.”
“방은 저도 있는데 왜 그 방에...”
뭐라고? 자기 방으로 오라고? 그 말을 듣고 내가 그녀에게 한 말이 지금 가당치나 하단 말인가. 알겠다고... 꼭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젠장.
“싫으시면 말고요.”
삐진 듯 토라진 그녀의 말투가 내 귀에는 가시처럼 들렸다. 진심이 아닌 말에 상처를 받은 듯한 그녀의 모습, 미안했고 죄송했으며 죽을 죄였다. 돌아서며 학교로 향하는데 반드시 사과를 해야 한다는 강한 마음이 들었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그녀의 방 쪽으로 향한다. 노크를 해야지... 여자 혼자 사용하는 방인데... 그냥 문을 열면 안 되지.
“똑똑똑...”
“드르륵~ 왜요?”
“저... 아까는 제가...”
“사과를 하려면 이렇게 할 게 아니라 술이라도 사셔야죠.”
“네, 술을 사드려야... 네? 술이요?”
“오빠 몇 살이에요? 나보다 어리게 보이는데.”
술이라... 술... 난 소주 한 잔에 필름이 끊긴다. 최대 약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술을 여자가 먼저 마시자고 제안을 했다. 바로 한심한 나에게.
“저... 저는 올해 20살입니다.”
“어쩐지... 어려보이더라.”
“실례지만... 올해 연세가...”
“찌릿...!”
“응?”
나를 죽일 듯 쳐다보는 그녀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작은 살기를 느끼며 불쾌해하고 있는 그녀가 왜 그런지 궁금해졌다.
“연세라니... 내가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나?”
“초면인데... 그래도 그렇게 얘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 요.”
“나 올해 24살이야! 누나라고 불러!”
“아, 24살...”
나이를 알아냈다. 어쩌다 알아낸 정보치고는 정말 고급정보다. 이제 이름을...
“그... 그럼... 성함... 은?”
“뭐?! 성함? 푸하하!”
“?”
도무지 갈피를 못 잡겠다. 그녀는 왜 내가 말만하면 이렇게 까칠해지고 웃는 것일까.
“대학생이지?”
“네, 맞습니다.”
“선배들에게 ‘성함이 뭐예요’라고 물어봐?”
“아니, 뭐...”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이렇게 말해봐.”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훗... 귀엽네. 시키면 다하고.”
“...”
날 희롱하고 있는 것 까지는 참을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마음에 담고 있는 여자이기에 이정도 쯤이야... 또한 나보다 늙었으니... 참아야 하지.
“그건 비밀, 한 번에 모든 것을 다 밝히면 재미없잖아? 다음에 동생이 술 사주면 그 때 알려줄게.”
“네...”
“학교 가는 거 아니었어? 빨리 가봐. 지각하겠네.”
“그럼, 다음에 뵐게요.”
“푸하하!”
“쿵.”
닫쳐진 그녀의 방문 밖으로 나는 고개를 숙인 모습이었고 숙여진 고개 밑으로 밝게 웃는 내 표정이 있었다.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녀의 나이를 알아냈고 다음에 함께 할 수 있는 약속을 받았다. 비록 성함을... 아니, 이름은 알아내지 못했지만 약속으로 남겨둔 보증이라 생각하고 있다. 학교로 걸어가는 내 발걸음이 너무 가볍다.
“이야호!”
***
그녀는 아침부터 외출을 하기 위해 화장을 시작했다. 앵두 같은 두 입술, 수술을 하지는 않았지만 태생적으로 오뚝한 코, 짙은 아이라인에 숨겨진 살짝 풀린 두 눈. 화장은 변장으로 변해 갔고 그녀가 외출복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갈아입은 옷 위로 남자를 꼬실 것 같은 향수가 뿌려지며 모든 외출 준비가 끝났다.
“드르륵~”
“어, 미스 최. 어디 가?”
“네, 잠시 외출 좀 하려고요. 사장님은 오늘 뭐하세요?”
방 밖으로 나선 그녀 앞에 집주인 아저씨가 말을 건다.
“이런 명언이 있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별로 없다. 그래서 지금 고민 중이야. 하하하!”
“사장님은 참 유쾌하신 분 같아요.”
“내가 소실적에 한 유머 했어. 우리 마누라가 그래서 나랑 결혼 했고.”
“어련하실까요.”
“하하하! 미스 최 오늘 너무 예쁜데? 애인 만나로 가나?”
“무슨... 애인 만날 시간이 어디 있어요.”
“그러면?”
“부업으로 일자리 하나 더 구하려고요.”
“열심히 사네, 내가 참 부끄러워.”
“그래도 사장님은 하숙집이라도 운영하시잖아요. 방세만 받아도 한 달에 얼만데...”
“그렇지, 하지만... 방세가 모두 내 돈이 아니라는 팩트가 있지.”
“다녀 올게요.”
“차 조심하고... 밥은 먹고 다녀야 해. 다이어트 같은 거 한다고 굶지 말고.”
“네, 수고하세요.”
그녀가 하숙집 대문을 나서자 씁쓸한 듯 주인집 아저씨가 혼잣말을 한다.
“수고할 게 하나도 없어서 죽겠는데... 오늘은 뭐하며 시간을 때우나... 쩝쩝.”
바쁜 걸음으로 하숙집을 나선 그녀가 우리 동네 큰길가에 있는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평소에도 차량의 이동이 많은 곳이라 신경을 쓰지 않으면 바로 사고로 이어지는 약간 위험한 곳이다. 하지만 그녀가 가려는 목적지로 버스를 타려면 이곳을 반드시 지나야 했다.
“오늘도 차가 많네.”
쌩쌩 달리는 차들이 바쁜 아침 사람들의 사이를 번개처럼 내 달리고 있었고 그녀는 파란불이 켜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가 기다리는 파란불이 신호등에 켜지며 보행자 신호로 신호가 바뀌게 되었다. 손목에 찬 시계를 한 번 바라본 그녀가 약속된 시간보다 약간 늦었음을 인식하고 신호가 바뀌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
“끼이익!!”
순간 그녀가 튀어나오자 미쳐 신호를 보지 못했던 차량과 사고가 날 뻔 한다. 운전자는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며 당황해 하고 있는 그녀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야, 죽고 싶어?!”
“어머...”
“앞을 잘 보고 지나가야 할 것 아니야?! 아니면 집에서 살림이나 하던가!!”
운전자의 실수는 인정되지 않고 자기의 기분대로 소리만 지르고 있는데 그녀가 욱했다.
“아저씨, 지금 신호가 무슨 색이에요?!”
“뭐?!”
“눈깔은 폼으로 달고 다니나? 저기 신호등 색깔 안 보여요?!”
“어디서 말대꾸야?! 죽고 싶어?!”
“별 꼴이야... 에이, 아침부터 재수없게.”
“뭐?! 야, 이 썅년이...”
“꺼져! 병신아!”
상종도 하기 싫어 그녀가 깜빡이는 신호등을 확인하며 빠르게 건널목을 달리기 시작했고 중간 쯤 도착했을 때 파란불은 빨간불로 바뀌고 말았다. 그 신호에 덤프트럭이 속도를 멈추지 못한 채 내 달렸고 그녀가 신경질 적인 표정으로 건널목을 건널 때 충돌하고 말았다.
“끼이익! 쾅!”
그녀에게 욕을 하던 자동차의 운전사는 깜짝 놀란 눈으로 그 장면을 바라만 보고 있었고 건널목 주변 사람들이 사고를 확인 한 채 비명만 질렀다. 덤프트럭의 운전사는 차에서 내려 경찰과 구급차를 불러달라는 애절한 신음 소리만 가득 울려 퍼진다.
“삐뽀삐뽀~”
.........................
..................
............
달리고 있는 기차 안.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예전을 회상하고 있다.
“다음 우리 열차 도착할 역은 대전역, 대전역입니다. 대전역에서 가실 분 안녕히 가십쇼.”
“덜컹, 덜컹.”
어느덧 내가 가려는 역에 도착하고 있다는 기차의 안내방송을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쌓았다. 짐이라고 해봐야 작은 서류가방 하나, 그리고 둘둘 말린 스포츠신문 한 부가 전부다. 대전역에 도착하여 기차를 내리고 출구를 향해 서둘러 움직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하차를 하고 자신들만의 목적지를 찾아가는 바쁜 움직임이 보인다.
“어, 여깁니다! 김 교수님.”
“마중을 왜 나오셨어요? 혼자 가면 되는데.”
“그래도 오신다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제가 모시러 와야죠.”
“민망하게...”
“짐 이리 주세요.”
나를 반갑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내 짐을 받아주며 자신이 타고 온 승용차로 인도한다. 일 년에 두 번 정도 이곳에 오지만 올 때마다 느낌이 달랐다. 처음 그녀와 이곳으로 올 때도 느낌이 달랐다.
............
..................
.........................
“삐뽀삐뽀~”
“잠시 만요, 길 좀 비켜주세요! 응급 환자입니다.”
응급차에 실린 그녀와 함께 도착한 대전의 한 병원,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은 그녀의 가족이 필요했고 보호자가 필요했으며 과다출혈로 인한 수혈을 하기 위해서다. 수혈을 하는데 굳이 이렇게 서울에서 대전까지 와야 했던 이유는 그녀가 필요한 피가 이곳에 많이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이고 사고 소식에 남편과 연락이 되었다.
“제가 있는 대전으로 집사람을 후송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직업군인이었고 대전 근처에서 복무를 하고 있었는데 자신과 가장 가까운 거리의 군병원이 대전에 있었다. 나는 대전으로 함께 후송되는 차에 몸을 실었고 서울에서부터 대전까지 오는 응급차 안에서 흐르는 피가 굳어진 손을 잡으며 도착했다.
“빨리, 지체하면 안 돼!”
“RH- 혈액 가져와!”
“블루드 서플라이(blood supply, 혈액공급) 실시합니다.”
“블루드 볼륨(blood volume, 혈액양) 확인해.”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쁜 모습이다. 그런 그녀의 손을 놓고 나는 응급실 한 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양손으로 코를 감싸며 그녀가 살아 있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의사들의 바쁜 걸음이 내 심장 뛰는 박자와 얼추 비슷하게 느껴졌다. 아직 그녀와 나는 해야 할 약속이 있는데... 이렇게 그녀를 보내야만 하는 것인지 걱정스러웠다.
며칠 후, 그녀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나는 아직도 그녀의 곁에서 머물고 있다. 언제 깨어날지 모르지만 의식이라도 돌아와 내 얼굴을 보며 밝게 웃고 있어줄 그녀만 생각하게 되었다. 밤을 새며 울었던 시간들이 아깝지 않을 만큼 나의 소망이 곧 희망으로 나타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을 때 쯤...
“스르륵~”
“보호자님, 환자 혈압 좀 체크하겠습니다.”
“네.”
간호사가 그녀의 팔에 혈압계를 대고 바람을 불어 넣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우연히 간호사 등 뒤를 바라보게 되었고 그 곳에는 어떤 군복을 입은 남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누구... 세요?”
“아, 저는 이 여자 남편입니다.”
“!”
그였다. 내 사랑을 갖고 있는 지배자, 남편이라는 표식을 한 채 며칠 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그 사람... 아니, 바로 그 자식!
“그런데 우리 집사람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딱딱한 군인말투, 영락없는 직업군인이다. 그가 본 내 모습이 얼마나 웃겼을까. 아직 누군지도 모르고 며칠을 함께 있는 내가 남편이란 사람에게는 신비로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따지듯 묻는 말투는 아니었지만 자상하게 묻는 말투에 그리 큰 빈정을 상하지도 않았고 묻는 질문에 대답을 해야 했다.
“옆방... 아니, 앞방에 살고 있는 학생입니다.”
“학생?”
“같은 하숙집을 사용해요.”
“아, 사고가 나고 우리 집사람을 보살펴 주었다는 사람이 당신이군요.”
“...”
“감사합니다! 뭐라고 말을 드려야 할지...”
“...”
뭐라고 말하지 말고 그냥 우리 앞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그녀가 행복한 보금자리에서 사랑하며 살 수 있도록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지만 그래도 비현실적인 일들이 많은 요즘 세상 아니겠는가.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해하는 남편이란 작자를 바라보며 조용히 병실 밖으로 향한다.
“여보, 어떻게... 이런 일이...”
내가 병실에서 나오자 그녀의 손을 잡으며 절규하듯 울음을 터트리는 남편은 한 동안 병실 침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혼자 멀뚱한 표정으로 병원 복도 의자에 앉아 남편이 병실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리던 중 그녀의 담당 주치의사가 병실로 향한다. 그 모습에 나도 병실 안으로 허겁지겁 달려 들어갔다.
“남편 되신다고요?”
“네, 선생님. 우리 집사람...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음, 글쎄요... 수술은 잘 됐는데 아직까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네요.”
“설마, 잘 못되지는 않겠죠?”
“그건 환자의 몫입니다. 기력을 빨리 되 찾으셨으면 좋겠네요.”
“큭...”
담당 주치 의사는 다음 주까지 그녀가 깨어나지 않으면 뇌사 상태로 빠질 확률이 많다고 했다. 그 소식을 뒤에서 들은 나는 무너질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녀의 남편도 나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의사의 무릎을 잡은 채 빌듯 사정하는 모습이 마치 내가 지금 하고 싶은 행동을 대변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의사가 병실로 나오며 나를 한 번 슬쩍 바라보더니 질문을 한다.
“응? 혹시... 서울에 있는 xx대학교 의대 학생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절 어떻게...”
“학생, 나 모르겠어요?”
“누구...”
자신을 모르겠냐며 묻는 의사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본다. 나를 알고 있고 인면식이 있었다면 나도 그를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사고 소식에 단기간의 기억들이 소멸 된 것처럼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잡은 의사가 말을 한다.
“예전에 초청강의를 하는데 저에게 앞으로의 의학계의 동향에 대해 질문을 했던 학생 맞지요?”
“의학계의 동향에 대한 질문...”
“이름이... 김... 뭐였더라?”
그 순간 그 당시 내가 질문한 상황과 시점, 질의를 했던 초청 박사가 떠올랐다. 그렇다, 맞다. 나도 이 의사를 만난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말처럼 모든 게 떠올랐다.
“아, 맞습니다. 이제 기억이 나는 군요.”
“이렇게 다시 만나니 반갑군요. 제가 그때 얼마나 당황스러웠던지... 앞으로 훌륭한 의사가 되어 이런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 감사합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네.”
그날 밤, 그녀의 남편은 군부대의 비상으로 다시 복귀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에게 진심이 어린 악수를 청하며 그녀를 잘 부탁한다고... 꼭 옆에서 지켜달라고 사정을 하며 떠났다. 남편이라는 사람이 병원을 떠나고 그녀가 누워 있는 병실 침대 옆에 앉아 의식이 없는 그녀를 바라만 보며 한 없이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렇게 울며 설잠이 들었고 손을 잡은 채 내 얼굴에 올려놓은 모습으로 제발 깨어나라는 잠꼬대를 했다. 잠결에 흐르는 내 눈물이 의식이 없는 그녀의 손등에 닿았고 손등에 닿은 눈물에서 밝은 빛이 나더니...
“으음...”
“동생, 일어나 봐.”
“조금만 더요... 10분만...”
“훗... 귀엽네.”
“누... 누나?”
잠결에 들리는 목소리, 환청이었을까. 포근하고 다정스럽게 나를 부르고 있는 목소리... 내가 알고 있는 여자 목소리 중 가장 사랑스러운 목소리. 누군가 잠들어 있는 내 머릿결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며 설잠에 빠진 나를 깨우고 있다. 설마... 설마...
“응?!”
“일어났어? 그런데 동생, 여기가 어디야?”
“헉...!”
내가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보니 의식이 없는 그녀가 나를 향해 밝게 웃고 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의사를 부를 힘도 없었다. 그리고 보이는 또 다른 모습,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모습. 그 위로 침대에 걸터앉아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그녀의 모습... 이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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