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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0:07 783회 0건
자정이 되었고, 이제는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통 자정이라는 시간에는 잠에 빠져 있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섹스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다. 바뀐 잠자리가 문제일 수도 있었고, 아침에 진행 될 3라운드 세 번째 게임이 신경이 쓰여 잠을 못 이룰 수도 있었다.

물론, 또 다른 이유로 잠을 자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수영과 영호가 그러했다.

수영은 영호의 두 번째 조건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명진이 잠들기를 기다려 조심스레 방을 나와 영호가 지시한대로 자정이 약간 넘은 시간에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 도착한 수영은 영호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늦었네?”

“그게... 어쩔 수 없었어요.”

“몰래 나왔나 보지?”

수영을 본 영호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이죽이죽 웃고 있었다.

“남편이 깨기 전에... 일찍 가봐야 해요.”

수영은 1초라도 영호에게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을 거야. 내가 왜 불렀을 것 같아?”

수영이 영호의 질문에 대답대신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물론, 수영 역시 영호가 무엇을 요구할지 짐작은 했지만, 굳이 입으로 대답을 하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알잖아? 얼굴에 다 쓰였네. 가볍게 섹스나 하고 가자. 알았지?”

영호는 돌려서 말하지 않았다. 수영을 보고 아주 쉽게 관계를 맺자고 했다. 수영은 막상 영호 입에서 ‘섹스’라는 말이 나오자, 표정이 어두워졌다. 늦은 시간에 남편 몰래 화장실에서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꼭 그래야 해요?”

“응. 꼭 그래야 해.”

수영은 영호의 손길을 피할 수 없음을 느꼈다. 반지를 포기하면 그만이었지만, 명진이 준 결혼반지를 빼앗길 수는 없었다.

“사실 수영이 너랑 섹스를 하고 싶은 이유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거든. 내가 원래 나보다 어린 여자와 섹스를 하게 되면... 일이 잘 풀려. 더구나 자정이 넘었으니... 세 번째 게임 당일이 되었단 말이야. 수영이 너랑 섹스를 해야만 운도 따르고 좋은 기운도 받을 것 같은데? 후훗.”

수영이 듣기에는 영호의 말은 비상식적이었다. 과격하게 표현을 하자면 그저 ‘미친 소리’일 뿐이었다.

“두 번째 조건이... 그거인가요?”

“그렇지.”

수영은 영호의 제안에서 벗어날 방법을 궁리했다. 그리고 금방 머릿속으로 영호보다 유리한 점이 떠올랐는데, 그것은 역시 서영 부부와 연합을 맺고 있다는 것이었다.

“꼭 해야 하나요? 취소 해주면... 저도 그에 대한 보답을 할게요.”

“보답?”

“네. 영호님도 아시겠지만... 우리가 유리해요. 영호님은 탈락할 수도 있지요. 제가 서영 언니 부부를 설득해서 세 번째 게임에서는 영호님 부부를 꼭 4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게 해드릴게요.”

영호와의 섹스를 피하기 위해서 수영이 제안을 했다. 그런 수영을 바라보며 영호는 재밌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왜 웃어요?”

“재밌으니까. 뭐... 내가 1번 부부와 직접 대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수영이 네 제안은 참 그렇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이미 5번 부부를 탈락시켜야 한다라고 합의한 거 아니야?”

영호의 말에 순간 수영이 뜨끔했다.

“나 예리하지? 하하하. 물론, 너희들이 작정하고 나를 죽이려면 못할 것도 없겠지. 그런데 전제 조건은 투표권이 2개가 있을 때나 가능하지. 안 그래?”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부인하지는 않겠어. 하지만... 하나만 알아 둬. 수영이 부부나 1번 부부나 반드시 이 둘 중에서 피해자가 나올 거야. 결국 투표권은 하나지. 그 상황에서 나를 죽일 수 있을까? 하하하.”

수영이 보기에 영호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나 그 자신감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 길이 없었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서영 언니 부부와 자신의 부부 중 피해자가 나온다고 장담을 하는 것일까. 수영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피해자가 반드시 나온다... 그걸 어떻게 알죠?”

“훗. 내가 알려줄 이유는 없는데...”

“속임수를 썼나요?”

수영은 영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기에 수영은 영호가 무슨 속임수라도 써서 투표를 조작한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마술이지... 후훗.”

“설마?”

수영은 영호가 추행범을 결정하는 뽑기를 할 때, 뽑기 순서를 바꾸자며 치킨 박에게 요구를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당시에 서영이 반대 했었고, 수영은 이유는 몰랐지만, 서영의 의견에 따라 역시 반대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설마가 맞겠지.”

“솔직히 정확한 방법은 몰라요. 하지만... 저희가 막겠어요!”

“어떤 방법으로? 내가 무슨 방법을 쓰는지도 모르면서... 하하하.”

“알아 낼 거예요!”

수영이 비장한 각오로 말을 했다. 제법 심각한 분위기였지만, 영호는 수영과 달리 이 분위기가 너무나 유쾌했다. 재미를 떠나서 묘한 쾌감까지 느낄 정도로 즐거웠다. 아니, 행복했다. 무언가 죽어있던 자신이 살아나는 기분이랄까.

“무섭네. 하하. 좋아. 사실 내가 지금까지 너무 쓸데없는 말을 많이 했어. 예정에도 없던 말까지 하다니... 나답지는 않아. 난 그저 섹스만 하고 가려고 했는데... 이 상황이 너무나 재미있다 보니까... 입이 가벼워졌네,”

“.......”

“제안을 하지. 나랑 섹스를 하지 않아도 좋아. 그런데 말이야. 대신 가볍게 두 가지는 내 소원을 들어줘야겠어.”

수영은 대체 영호의 속셈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더구나 이 상황이 즐겁다는 영호가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영호가 어떤 제안을 할지 모르지만, 섹스를 피할 수 있다면 수영은 충분히 받아들일 각오가 있었다.

“그것이 뭐죠?”

“섹스는 안하는 대신... 첫째, 나에게 아름다운 키스를 해줄 걸. 이때 입을 떼고 나에게 기분 좋은 말을 해줘야 해. 쉽지?”

“키... 키스요?”

“왜 그렇게 놀라? 섹스보다 낫지 않아? 어찌 됐든, 난 수영이 너랑 신체 접촉은 해야 해. 행운을 가져가야 하니까. 하하하.”

수영은 잠시 고민을 했지만, 키스가 섹스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했다.

“알았어요.”

“다시 말하지만, 입을 떼면 내가 기분 좋은 말을 해줘야 해.”

“무슨....”

“사랑해요. 좋아해요. 믿어요. 행운을 빌어요 등등. 많은 말들이 있잖아.”

수영은 진심 영호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찌됐든, 영호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알겠어요. 두 번째는 무엇이죠?”

“두 번째는... 사실 이게 중요해. 내가 입방정을 떨어서 그런지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거든. 나름 A 플랜이 있었는데, 수영이 너 때문인지 그게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무슨 말인지 모르지? 그냥 들어. 훗. 내 두 번째 소원은.... 만약 수영이 네가.. 아니 너희 부부가 세 번째 게임에서 추행범이 된다면... 피해자를 1번 부부로 선택해 줘. 쉽지?”

말을 마친 영호가 수영을 보며 웃었다. 그리고 수영의 대답을 기다렸다.

‘서영 언니가... 우리 쪽이 추행범이 되면 반드시 5번 부부나 6번 부부를 피해자로 만들어야 했는데... 그래야 우리가 표가 2개가 생긴다고...’

수영은 영호의 두 번째 제안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서영의 언질 때문이었다.

“그... 그건...”

“왜? 쉬운 결정 아닌가? 난 모든 것을 양보했는데? 예를 들어 수영이 네가 추행범이 되었고, 피해자를 1번 부부로 한다고 하더라도 수영이 너와 내가 5번 부부를 탈락시키면 되잖아? 안 그래?”

영호의 말은 분명 일리가 있었지만, 수영은 내심 마음에 걸렸다. 자신이 추행범으로 결정이 되면, 투표권을 2개 확보할 수 있어서 반드시 서영 부부와 함께 4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었는데, 영호의 제안은 그 100% 확률을 포기하라는 것이었다.

“사실 내가 불리하잖아. 약간은 살길이 필요하지... 수영이 너라면 안 그럴 것 같아? 그리고 말이야. 꼭 너희 부부가 추행범으로 결정된다는 보장이 없잖아.”

영호의 말을 듣고서는 수영이 한참이나 고민을 했다. 그리고 결국 결정을 내렸다.

“조... 좋아요.”

“나도 약속하지. 수영이 네가 내 제안을 잘 따르면... 난 반지를 돌려 줄 거야.”

사실 영호 입장에서는 반지를 미끼로 반드시 5번 부부를 탈락시켜라는 제안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영호는 그러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스릴을 즐기고 싶었고, 무엇보다 3라운드의 결과가 궁금했다. 결과가 예정된 게임은 진정한 게임이 아니었으니...

“그럼 빨리 키스나 하고 사라질까? 멘트는 준비 했어?”

영호가 수영을 바라보며 입술을 내밀었다. 그런 영호를 바라보며 수영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질끈 눈을 감고 얼굴을 점점 앞으로 내밀었다.

쪽.

그리고 키스 같지 않은 입술과 입술이 만남이 이뤄졌다. 입술끼리의 만남이었지만, 오히려 뽀뽀라고 말해도 무방할 만큼 가벼운 입맞춤이었다.

“당신을 믿어요.”

약속대로 수영이 키스가 끝난 후 영호에게 말을 했다. 그리고 영호가 수영의 말에 답변했다.

“나도 수영이 너를 믿어.”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서로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나눈 수영과 영호였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깬 사람은 수영이었다.

“이... 이만 가볼게요.”

“좋아. 우리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질 거야. 그렇지?”

“지... 지킬게요.”

말을 마친 수영이 영호에게서 벗어났다. 그리고 멀어지는 수영을 바라보며 영호가 중얼거렸다.

“이거 복권이라도 사야 하나. 왜 이렇게 딱딱 들어맞지. 정말... 하하하.”

***

민혁은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 여러 의문들이 자신의 머리를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한 번도 대화를 나누지 않은 영호가 자신을 농락하기까지 했다.

‘3번, 5번, 6번... 이게 무엇을 뜻하지?’

민혁은 영호가 자신의 눈앞에서 손가락을 펼쳤던 모습을 떠올렸다. 아무 말 없이 영호는 민혁에게 자신의 손으로 세 손가락, 다섯 손가락, 여섯 손가락을 보여주며 떠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를 탈락시키고... 그 세 팀이 4라운드에 진출한다는 것인데...’

민혁은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결국 3번 부부인 수영 부부가 배신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2라운드에서 한 번 배신을 당했던 경험에 의하면, 수영 부부를 완전히 믿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단 말이야. 수영 부부가 배신을 한다면... 굳이 영호라는 놈이 나에게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는데...’

무릇 배신이라는 뒤통수를 치는 행위였다. 그렇기 때문에 3번 부부와 6번 부부가 손을 잡았다면, 굳이 6번 부부가 그 사실을 알릴 이유는 없었다. 그 점 때문에 민혁의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수영 부부도 믿을 수 없지만... 영호라는 놈도 믿을 수 없으니...’

민혁은 서영과 이 부분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싶었지만, 막상 입을 열기가 쉽지가 않았다. 어차피 무조건 수영이를 믿으라고 할 것이었으니...

‘그렇게 당하고도.. 왜 사람을 의심하지 않고... 무작정 믿는 거야.’

민혁은 서영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그 중심에는 수영이라는 여자가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민혁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작 몇 시간 만에 사람을 믿는다니... 더구나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은 알지도 못하는 컴퍼니가 주관한 섹스게임이라는 곳에서... 사람을 믿는다? 민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잠을 들 수도 없고... 미치겠네...’

침대에서 몸을 뒤척이던 민혁은 결국 일어났다. 그리고 조용히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씨발. 걸으면서 생각 좀 정리해야겠어.”

지하의 공간은 매우 넓은 편이었다. 민혁은 벽에 붙은 채로, 통로를 왔다갔다 걸어 다니며 수영과 영호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민혁의 발걸음은 로비로 향했다. 우측에서 좌측으로 시계 방향으로 걸었던 민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식당을 지나 화장실을 지나게 되었다.

“오줌이나 쌀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이, 화장실에 오니 괜히 소변이 마려운 민혁이었다. 그래서 화장실을 향해 걸어갔고, 이 순간 민혁은 생각지도 못한 장면을 봤다.

‘뭐... 뭐야...’

황급히 민혁은 몸을 숨겼다. 그리고 벽에 기대서 숨을 죽인 채, 기다렸다.

‘영호와... 수영이... 키스하고 있었어.’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민혁은 확실히 두 눈으로 영호와 수영이 입을 맞추고 있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민혁은 영호와 수영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뒤로 자빠질 뻔 할 정도로 매우 놀랐다.

- 당신을 믿어요.

- 나도 수영이 너를 믿어.

영호와 수영이 서로를 믿는다는 대화를 들은 민혁은 지금이 꿈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엄연히 현실이었다.

‘그... 그래... 씨발... 처음부터 그랬던 거야’

민혁은 황급히 화장실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서영이 홀로 자고 있는 통로 좌측 1번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민혁은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호와 수영이 키스하며 대화를 나눈 것을 목격한 시점에서 민혁은 자신의 모든 의문이 풀렸다. 그리고 머릿속의 모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한 민혁이 방에 들어가기 전에 중얼거렸다.

“내가 이번에도 당할 것 같아? 씨발년...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영악한 년이었어. 씨발 좆같은 년. 내가 죽여 버릴 거야.”



@ 44부에서 이어집니다.

- 바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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