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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정(慾 情) - 32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2 00:12 900회 0건
오후 늦게까지 카페에서 대리점 안을 지켜보다 화장실을 갔다 온 사이에 여직원만 남고 민현규는 사라지고 없었다. 할 수 없이 바깥 공기도 쐴 겸해서 밖으로 나와 차를 골목 안에 언제든지 뺄 수 있는 곳으로 주차해두고 나이키 매장 안으로 들어갔는데 손님이 없어서인지 여직원이 반기며 인사를 한다.

“어서오세요.”

내가 신발 매대 앞으로 걸어가자 그녀가 따라 붙었다.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아... 그냥... 신발 좀 보려구요.”

머뭇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 살짝 그녀가 웃는다. 2층에서 볼 때도 대충 느낌이 왔지만 안경이 지적으로 잘 어울리는데다가 볼륨 있는 몸매를 잘 드러내는 옷차림이 30대 초반의 미시였고 그렇게 따지면 민현규보다 나이가 더 많은 걸로 보였는데 친척이나 가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장은 상당히 넓고 쾌적해서 교생 실습을 나갔던 대학생이 5년 만에 소유하기는 불가능할 듯 했고 민현규 부친이 차려준거라면 녀석은 아버지를 잘 만나서 20대 후반의 나이에 나이키 매장을 운영하는 사업가가 된 셈이고 덕분에 이렇게 잘 빠진 여직원에게 사장님 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모자 하나를 사서 매장을 나온 난 카페에 다시 들어가기는 뭐해서 차에 들어가 앉아 있었고 늦여름 저녁 무렵 습도가 높아서 창문을 열어두었지만 졸음이 밀려왔다. 잠깐 잠이 들었다고 생각하고 일어나 매장 쪽을 바라보니 문이 닫힌 상태였고 시간은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할 수 없이 가까운 식당에서 밥을 대충 챙겨 먹고 허름한 여관을 찾아 장터 주위를 돌았다. 2층짜리 다 쓰러져가는 여인숙이 보여 들어가서 쪽방을 보름간 쓰겠다고 여주인에게 이야기하자 15만원을 달라고 했는데 만원을 깎아 14만원에 방을 하나 얻었다.

낙서 투성이 벽지마저 제대로 붙어 있지 않은 쪽방에 누워 잠을 청하자니 아무도 모르는 곳에 와서 괜한 짓거리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휴직원을 낼 때 이유가 있었던 것처럼 돌아갈 이유도 있어야 한다고 마음을 달래며 여러 가지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다 잠이 들었고 아침이 왔다.

9시 무렵 대리점 앞에 가서 있자니 민현규가 와서 문을 열었고 10시쯤 여직원이 모습을 보였다. 그 때쯤 해서 카페도 문을 열기에 들어가서 차를 시키고 다시 매장 안을 지켜보고 있자니 녀석이 11시 경에 밖으로 나와 걸어서 길을 건넜다. 부리나케 쫓아갔는데 골목을 지나 5분쯤 걸어 도착한 곳은 시장 옆에 있는 사우나였고 같이 들어가고 싶었지만 마주쳐서 좋을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사우나 입구 옆 중국집에 들어가 대충 무언가를 시켜 먹었다.

12시 쯤 사우나를 나온 민현규는 다시 매장으로 가 여자 직원과 함께 근처 식당에서 밥을 시켜 먹은 후 간간히 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며 오후 내내 그 곳을 지키고 있었고 난 근처 건물 입구에 있던 신문 한 부를 주워 들고 차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차는 그늘에 주차되어 있었지만 너무 더웠고 가끔씩 아이스크림 같은 것을 슈퍼에서 사서 먹으며 버텼는데 오후 3시가 지날 무렵 이상한 일을 볼 수 있었다.

매장 안 카운터 뒤쪽 창고에 여직원이 들어가서 민현규 혼자 있는 듯 했는데 잠깐 시선을 돌린 사이 사라진 것이다. 난 골목 안에 있던 차에서 내려 매장 앞 2차선 도로로 뛰어 갔지만 녀석은 보이지 않았고 5분 쯤 후에 창고 문이 열리더니 민현규가 나오고 다시 몇 분 후에 여직원도 창고 문을 열고 나왔다.

창고가 넓어서 재고 정리를 같이 했다고 볼 수도 있었지만 좀 석연치가 않았는데 창고 문을 닫은 상태라면 매장에 손님이 와도 모를 수도 있으니 문을 열어두고 일을 하는 게 자연스러울 듯 했고 뒤늦게 나온 여자 직원이 거울 앞에서 자꾸 흰색 치마의 엉덩이 부분을 쳐다보며 옷매무새를 다듬는 것도 수상해 보였다.

섹스를 하기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고 또 매장문을 닫는 걸 보지 못했지만 혹시 저 연놈들이...? 하는 의혹이 생겼으나 그 걸 빼고는 별다른 일 없이 하루가 지나갔고 다시 하루가 지나갔다. 그 사이 민현규의 차가 그랜저라는 걸 알아냈고 매장 문은 밤 9시가 조금 넘는 시간에 주로 본인이 닫는 다는 것과 가끔 그 녀석의 아내가 온다는 것도 알아냈다. 젖먹이 아이를 흰색 레죠 승용차에 태우고 온 그녀는 한가한 낮 시간에 매장에 와서 시간을 보내다 가곤 했는데 여직원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듯 했다.

광양에 온지 3일째 되던 날 전날과 마찬가지로 저녁 무렵까지 대리점 안을 지켜보다 민현규가 매장을 나서자 미행했는데 녀석은 그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불고기집까지 걸어가서 친구로 보이는 남자 둘을 만나 저녁을 먹었다. 난 그 무리들의 좌석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생고기비빔밥을 시켜 먹으면서 계속 민현규를 주시했다.

녀석을 처음 사진에서 봤을 때는 눈이 찢어지고 턱선이 날카로워 전혀 호감이 가지 않았는데 실제로 가까이서 본 민현규는 그렇지 않았다. 5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살이 좀 붙어 얼굴형이 좀 부드러워진데다가 젊은 나이에 나이키 매장을 운영하기 때문인지 몰라도 깔끔한 옷차림에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으로 친구들을 주도하고 있었다.

친구들과 대화가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꽤 활기가 넘쳤고 잠시 후에는 녀석 친구의 애인으로 보이는 아가씨 한 명이 합류했는데 민현규를 보자마자 오빠라는 호칭을 쓰며 반갑게 인사를 하는 걸 보니 벌써부터 안면이 있는 사이인 듯 했다.

대충 계산을 해보면 녀석의 나이는 나보다 두 살 정도 아래지만 약간 곱슬곱슬한 머리 스타일과 잘 차려 입은 스포츠 웨어, 금목걸이, 고급시계 등이 잘 어울려 여자들에게 호감을 이끌어내기 충분할 듯 보였고 그건 녀석의 친구 두 명도 마찬가지였으며 합석한 아가씨 역시 늘씬한 몸매에 파랑색 브래지어가 비쳐 보이는 하얀색 원피스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데다 얼굴 또한 서구형 마스크의 상당한 미인이었다.

난 그런 자연스럽고 괜찮은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가족들이 소불고기를 구워 먹으러 오는 큰 식당에서 혼자 앉아 비빔밥을 먹고 있었고 괜히 처량한 생각이 들어 술 한잔 생각이 간절히 났지만 민현규가 차로 이동을 하면 따라 붙을 생각으로 꾹 참고 있었다. 8시 무렵까지 비빔밥을 앞에 놓고 한시간 이상을 버티던 나는 차라리 바깥에서 기다릴 생각으로 계산을 한 후 식당을 나섰다.

식당 앞에 놓인 나무벤치에 앉아 담배를 붙여 입에 물고 시선을 식당 안으로 돌렸을 때 민현규가 핸드폰을 들고 통화를 하며 식당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녀석은 나와 5m쯤 떨어진 길가에서 누군가와 2~3분 정도 전화 통화를 하더니 식당 안으로 다시 들어갔고 난 녀석 일행이 다시 나올 때까지 벤치에서 멍하니 앉아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내가 앉아 있는 등 뒤쪽으로 작은 강이 흐르고 있었고 주변에 아파트가 있어서 그런지 산책을 하러 나온 사람들이 간간히 지나다녔다.

30여분쯤 후에 민현규가 혼자 일행들보다 먼저 식당을 나왔고 자신의 대리점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난 조금 뒤에서 녀석을 쫓아갔는데 민현규는 대리점 앞에서 여직원을 만나더니 그녀에게 자동차키를 건넸고 둘이 같이 대리점 뒤에 있는 주차장으로 걸어가더니 차에 올라탔다.

난 건너편 카페 옆 골목에 주차해놓은 내 차에 올라타서 황급히 차를 몰고 검은색그랜저를 따라갔다. 여자가 운전하는 차라 그리 어렵지 않게 미행할 수 있었는데 그랜저 차량은 15분 쯤 달려 순천시 외곽에 있는 모텔로 들어갔다. 지체 없이 차양이 처져있는 주차장 안으로 그랜저를 따라 들어간 난 녀석의 차와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시켰리고 핸드폰을 꺼내 두 연놈들이 내릴 때 그리고 모텔 입구로 들어가기 위해 걸어가고 있을 때 그 모습을 차 안에서 찍었는데 그들이 들어간 후에 확인해보니 플래시 기능을 켜두지 않은 터라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잠깐 고민 후에 난 카운터로 들어가서 신분증을 들이 밀었다. 간통신고가 접수되어 왔는데 방금 들어간 커플이 들어간 방이 몇 층 몇 호인지 알려달라고 하자 머리가 벗겨지고 50대 정도로 보이는 주인 남자가 머뭇거리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확인만 하려고 혼자 왔어요. 시끄럽게 굴지 않을 테니 빨리 협조합시다...”

“음... 505호로 들어갔어요. 5층에 손님들이 있어서 소란피우면 안되는데...”

“혹시 그 옆방 빈 곳 있어요? 504호나 506호... 지금 가서 문을 안 열어주면 여러모로 시끄러워지고 문이 박살날 수 있으니 옆방에서 우선 기다릴게요. 혼자 덮치면 저항이 심할지도 모르고... 우리 직원들도 좀 더 오라고 해야 되겠네. 이렇게 합시다. 내가 옆방에서 기다리면서 상황을 좀 파악할테니 야식 같은 걸 시키면 연락 줘요. 그럼 야식배달부처럼 문 열어달라고 하면 열어주겠지. 이거... 고소장이 접수된 상태라 잘못 처리되면 복잡한데...”

“예? 504호가 비었기는 한데...”

“키 좀 주세요. 아.. 그냥 앉아만 있을테니... 만원만 받으세요. 직원들이 빨리 오지 않으면 오늘은 그냥 조용히 갈게요. 확실한 장면을 포착하지 않으면 증거 불충분이니...”

나는 안주셔도 된다고 손사래 치는 주인에게 만 원 지폐 한 장을 쥐어준 후 엘리베이터를 탔고 그 연놈들의 옆방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그리고 숨을 죽이면서 505호쪽 벽에 귀를 대고 몇 분이 흐르자 여인의 교성이 조그맣게 들려왔다.

“아.. 아.. 하아... 아아... 아아... 하... 아아... 하아.. 응 ... 응.. 아하... 응”

나이키 매장에서 만난 똑똑하고 당찬 분위기를 풍기는 젊은 여직원의 교성이라고 생각하니 상당한 흥분감이 밀려들었지만 그건 그거고 난 두 연놈들이 모텔에서 같이 있는 사진을 확보해서 민현규에게 들이밀어야 했다. 낮이라면 어렵지 않게 사진을 확보할 수 있지만 밤이고 505호 안까지 들어갈 수는 없는 상황이라 고민을 하다 복도로 나갔다. 계단참에 숨어 있다가 둘이 나와서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는 순간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지 확인해보았으나 가능은 한데 복도가 어두워 플래시를 터트려야 하고 그 연놈들이 움직이면 제대로 얼굴이 찍히지 않을 가능성이 많았다.

그건 차안이나 주차장 구석에 숨어서 모텔 입구에서 차에 타는 장면을 찍어도 마찬가지 일듯했고 난 그 둘이 나오는 시간에 맞춰 6층 엘리베이터 안에서 기다리다가 5층에서 버튼을 누르면 내려와서 문이 열리는 순간에 사진을 찍으려 했으나 그 것도 잠시 생각해보니 그 둘이 자신들이 찍히는 걸 모르게 찍을 방도가 없었다.

어쨌든 두 연놈들이 질펀하게 정사를 치르는 동안 난 504호와 복도, 엘리베이터를 오가며 사진을 몰래 찍을 방법을 강구했고 1층에 내려가서야 그럴 듯한 방법을 찾아냈다. 엘리베이터 앞 대형 거울에 그 둘이 모습을 나타낼 때 거울을 향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었는데 순간포착만 잘되면 가능할 듯 했다. 문제는 그 사진이 모텔에서 찍은 것이라는 게 입증이 되야 하는 터라 그리고 나서 모텔 출입구 쪽으로 걸어 나가는 뒷모습을 찍으면 입구 상단에 네온으로 스카이모텔이라는 상호가 나오니 두 장의 사진을 같이 들이밀면 별 문제는 없어 보였다.

드라마에서 들이대는 사진들은 순간 포착이 잘 되는 좋은 렌즈를 쓴 카메라 사진일 거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고 다시 504호로 올라갔다. 그리고 벽에 귀를 대고 있으려니 울려서 잘 들리지는 않지만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고 대충 시간을 보아하니 모텔로 들어간지가 한 시간은 족히 넘은 상태라 다시 1층 카운터로 내려가 근처에서 대기했다. 가정이 있는 놈이니 시간을 많이 끌지 않고 나와주길 바라면서...

대기 중에 모텔 주차장에서 찍힌 차량 사진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주차장에 가서 부리나케 번호판과 모텔 간판이 같이 나오는 사진을 확보한 나는 마침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비디오 진열대에서 영화를 고르는 척하며 시간을 보냈고 휴대폰을 비디오테이프와 같이 들고 거울을 향해 순간적으로 사진을 찍는 연습을 반복 했다. 나한테 주어진 과제는 5층에서 선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고 문이 열리자마자 찍는 것은 물론 그 동작이 자연스러워서 들키지 않아야 하며 그 둘이 출입구를 향해 걸어가는 뒷모습까지 휴대폰에 담는 것이었다.

그 둘이 아닌 다른 커플이 한 번 지나갔는데 난 동작을 멈추고 비디오테이프를 보는 척하며 서 있었다. 그리고 10여분이 흐른 뒤 5층에서 출발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나이키매장의 연인들이 모습을 보였을 때 난 연습한 대로 거울을 향해 두 번 휴대폰의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두 연놈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재빨리 테이프가 꽂혀 있는 장식장 쪽으로 몸을 돌렸고 출입구 쪽으로 걸어가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다시 돌아서서 사진을 두 컷 찍었다.

그리고 출입구에서 주차장을 보며 기다리다 그랜저가 모텔 밖으로 사라지는 순간 뛰어나와 다시 내 차에 올라타 그랜저를 쫓았다. 나이키 커플은 매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민현규의 집이 있는 00면으로 향했고 다리 건너 집 근처에 녀석을 내려준 뒤 다시 00읍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난 골목에서 유턴을 해 민현규 애인을 다시 쫓아갔는데 그 이유는 내 짐작대로 그녀가 유부녀라면, 혹시 그게 아니라도 민현규나 그의 아내와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나 친척이라면 내가 가진 카드가 강력해질 수 있겠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00읍으로 들어온 차량은 시계탑 방향이 아닌 외곽도로를 따라 3~4분쯤 달려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 멈춰 섰다. 5층 짜리 엘리베이터도 없는 아파트였는데 그녀가 들어간 직후 계단참에 있는 창문으로 바라보니 303호로 들어갔고 그 집의 불이 민현규의 애인이 들어가기 전부터 켜져 있는 걸로 봐선 혼자 사는 것 같지는 않았다.

별달리 더 할게 없는 터라 일단 여인숙으로 돌아와 휴대폰 사진을 확인해보니 식별은 가능할 정도로 찍혀 있었지만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여서 민현규가 강하게 아니라고 우기면서 넌 뭐냐고 따지게 되면 상당한 무리수를 동반해야 할 것 같았다. 거기다가 간통은 친고죄이고 이혼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수사조차 할 수 없으니...

그 때 난 무언가 지적이고 당당한 이미지를 풍기는 그 녀석의 애인을 공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민현규의 아내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어서 그 사실이 드러나는 걸 두려워한다든지, 아니면 유부녀라서 남편을 겁낸다면 의외로 순순히 내게 내연관계를 털어놓을 가능성이 다분했다. 법적인 처벌이 문제가 아니라 알려지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여자에게 없는 사실도 아니고 모텔에 갔던 사진을 들이민다면 오래 버티기는 힘들 것이고 아니라고 발뺌하더라도 그렇다면 남편이나 민현규의 아내에게 이야기하는 거 괜찮겠죠?라고 툭 던지면 내 바지가랑이를 붙잡고 한 번만 눈감아 달라고 빌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서 그녀의 자백을 바탕으로 녀석을 몰아붙이고 간통 사실을 덮는 조건으로 미정이와 있었던 일에 대해 듣는다면 내가 원하는 답에 근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가능성이 충분했다. 어설피 몰아붙이게 되면 그 녀석이 어떻게 나올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수영을 했던 탄탄한 체격의 민현규를 힘으로 제압하려는 것은 힘들 것이고 순진한 녀석이라면 경찰신분증 만으로도 굴복이 가능하지만 섣불리 공권력이라는 걸 사용하다가는 역공을 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기도에서 순경으로 근무하는 놈이 전라도 땅에서 무슨 간통수사를 할 것이며 놈이 아내에게 바람피우는 걸 몇 번 걸린 전력이 있다면 특별히 약발이 설 일이 없을 것이다. 간통이 친고죄라는 건 웬만한 남자들은 다 알고 있을 터...

다음 날 아침에 늦잠을 자고 점심 무렵 일어나 장터에서 국밥 한 그릇을 먹은 후에 매장 앞 카페로 출근했다. 어차피 매장 문을 닫고 퇴근하는 그녀에게 접근할 생각이어서 그 날은 민현규의 존재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늦은 오후 그 놈의 애인이 혼자 매장을 보고 있을 때 녀석의 아내가 모습을 보였다. 가만히 애인과 아내를 지켜보고 있자니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수다를 떨고 있었고 아주 친한 언니와 동생사이로 보였다.

난 그 틈에 매장 앞에 주차해놓은 레죠 승용차의 번호를 적어와 같이 근무하는 직원에게 차적 조회를 부탁했다. 차가 민현규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다면 녀석 아내의 이름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고 그걸 알아야 매장 여직원에게 접근하기가 용이하다. 한 가지 걱정은 그녀가 민현규의 아내와 너무 잘 아는 사이여서 내가 하는 말을 믿지 않는 것이었는데 그건 그때 상황 봐서 둘러대면 될 듯 했다.

일은 그런대로 잘 풀리고 있었지만 처음 보았던 여직원의 이미지가 자신보다 나이어린 유부남을 유혹해서 즐기고 태연히 그 남자의 부인과 수다를 떨 정도로 밝히는 여자처럼은 보이지 않았다는 것과 혹시 민현규와 내연녀 이전에 친척이나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는 사이가 아닌가 하는 것들이 좀 마음에 걸렸다.

내가 민현규를 옭아매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녀석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내가 그녀에게 하는 말들이나 행동들을 녀석에게 자세히 말할 가능성이 있다면 난 여러모로 제약을 받게 되고 여자 쪽에서 의심을 할 수도 있는 앞뒤가 안 맞는 말이나 행동을 전혀 해서는 안될 것이다.

잠시 후에 민현규 처가 이름이 서영이이고 나이가 24살이라는 차적 조회 결과를 같이 근무하는 동료가 전화로 알려주었고 난 이른 저녁을 먹고 와 매장 여직원의 집으로 갔다. 늦여름 오후라 해가 길어 주변이 밝은 터라 303호가 보이는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고 있자니 베란다에 7~8살 쯤 돼 보이는 어린 소녀가 나와 무언가를 하는 게 보였는데 베란다에 깔려 있는 장판 위에서 인형 같은 것을 가지고 노는 것 같았고 가끔씩 아파트 입구 쪽을 쳐다보는 걸로 봐선 엄마를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 아이를 보고 아파트 단지에서 나이키 여직원에게 접근하려던 계획을 수정했는데 집 근처에서 말을 거는 건 가족들이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시 매장으로 갔다. 여직원의 집은 걸어서 출퇴근을 해도 충분한 거리이니 중간 어느 지점에서 부딪쳐 보기로 했고 그녀가 오늘은 민현규와 만남 없이 바로 퇴근을 한다면 시도가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았다.

건너편 길가에 도착했을 때는 7시를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민현규와 여직원은 매장에 같이 있었고 30분 쯤 후에 그녀가 녀석에게 손을 흔들며 매장을 나와 길을 건넜다. 그리고 내가 서 있는 쪽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길을 따라 읍사무소가 있는 곳까지 거슬러 올라가다 자신의 집 방향으로 난 도로로 접어들었고 난 그녀를 따라 잡기 위해 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300m쯤 뒤따라 걸어 그녀가 4차선 도로로 나가기 직전 주위에 사람들이 별로 없는 틈을 타 그녀를 불러 세웠다.

“잠깐만요.. 뭐 좀 물어볼게 있어요.”

내 목소리를 듣고 여직원이 뒤를 돌아 보았고 난 말을 이어갔다.

“서영이씨 아시죠? 민사장님 부인되시는 분인데...”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래진 그녀가 며칠 전에 자신에게 샀던 나이키 모자를 쓰고 있는 날 쳐다보았다. 눈썰미가 있다면 나와 구면이라는 것도 알터인데...

“영이요? 알아요. 그런데... 누구시죠?”

서영이와 자신의 관계를 이야기하지 않았고 목소리가 약간 불안에 떨고 있었다. 약간 어둑어둑한 상태지만 완전히 해가 지지 않은데다가 4차선 도로 건너편에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으며 사람들을 상대하는 직업을 가진 여자라는 걸 감안해보면 아무리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갑자기 무언가를 물어보았다고 해도 그렇게 당황할 리는 없을 것 같은 데 반응이 생각 이상이다.

그녀가 서영이와 매장 사장의 부인과 여직원의 관계 이상이 아니라면 상관없으나 그렇지 않다면 걸리는 게 있어서 나 역시 대충 이야기했다.

“전 서영이 씨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이고 직업은 ... ”

난 신분증을 그녀에게 들이 밀었다. 경찰이라고 쓰여진 문구가 크게 보일 수 있도록.

“저한테 부탁을 하더군요. 남편이 요즘 좀 이상하다고... 오빠가 조사 좀 해주면 안되겠냐고... 저도 바쁜터라 시간을 못내다가 요 며칠 좀 한가해서 민현규의 뒤를 좀 따라다녔죠. 그런데... 어젯밤...”

난 거기서 의식적으로 말을 끊었고 그녀의 표정을 살폈는데 내색을 안하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보였지만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하지만 생쥐를 몰아갈 때도 약간의 틈은 주어야 한다. 물릴 수도 있으니...

“아직 영이에게 말하진 않았어요. 그 사실을 알리는 게 도움이 될지 안 될지 판단이 안서서... 괜찮으세요?”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서 말을 끊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 무슨 말씀이신지...”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이미 그녀의 말투는 꼬랑지를 내린 강아지처럼 죽고 있었다. 난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준비하고 있던 멘트를 날렸다.

“어제 밤 9시 경 순천 시 인근 스카이 모텔... 영이 남편과 함께 들어갈 때 같이 보고 있었어요. 혹시 발뺌을 할까봐 사진도 찍어두었는데.... 잠깐만요...”

난 핸드폰을 꺼내들고 사진을 찾는 척하면서 그녀를 주시했는데 민현규와 내연관계를 가지던 젊은 미시는 몸의 중심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비틀 거리고 있었고 이미 다리가 풀린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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