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부
수경은 주원을 홈베이스의 사물함 근처로 데리고 갔다.
주원은 따라가는 뒤에서.. 수경의 처음 보는 여름 하복차림을 감상한다.
분명 참한 교복 스타일인데, 뒷태의 야리야리한 가는 선을 보고..
묘한 색기가 느껴진다고 생각해서
호흡이 두근거리고, 침이 꼴깍 꼴깍 넘어가고 있었다.
‘진짜 맛있겠다...... 꿀꺽....’
온 세상에 불만이 넘치고 순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로 중무장한 녀석.
그렇게 유아독존 캐릭터인 이놈도 최소한의 도덕이라든가 양심은 가지고 있다.
수경 같이 순수한 호의와 선한 마음씨로 다가와 준 사람을 배신하거나
작은 친절이긴 하나, 그 상냥한 베품을 악으로 갚을 생각은 조금도 없다..
자존심은 무지 강해서..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받은 것은 꼭 갚아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학교 내에서 자길 이해해주는 우군이 단 하나도 없던 그에게
단 하나의 내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수경의 존재는 ‘가뭄의 단비’ 훨씬 이상인 셈이다.
일단 얼굴이 예쁘니까..
그리고 겉보기만으로는 깍쟁이 같고,
자기 기분에 수틀리면 변덕이 심한 나쁜 성격일 거 같은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고.. 대체로 온순하고 감정을 잘 절제할 줄도 아는 것 같다.
거의 정확하게 들여다보긴 했다.
단.. 자기 기분에 거슬리면 못된 성질을 부리고, 변덕이 심한 부분은 예외다 (...)
학기초에 수경을 볼 때부터
‘스타일 발군이고 성격 좋고.. 이상적인 여자’라는 생각은 했어도
감히 나같은 놈하고는 격이 아예 다르다 싶어 가까워질 기대를 전혀 못했다.
저런 A급 여자를 한번 뜨겁게 품어보고 싶고..
미친 듯이 질펀하게 몸을 적시고 싶다는 욕구도 물론 있었지만,
현실과는 괴리가 있는 캐릭터이기에, 괜한 호기에 잘못 건드려서 사고치지나 말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집나간 탕아처럼 학교를 무단으로 째버리고 지멋대로 구는 자신에게..
몸소 찾아와주시기까지 하고..
겉으로는 쿨한 척 그녀를 대했지만 당연히 남자라면,
이런 사려심 깊은 여성의 상냥함에 심장이 쿵쾅 거리고.. 기대감을 갖는게 당연하잖은가.
예전의 수경과 전혀 접촉이 없었을 당시와 비교해 다른 점이라면
동경의 대상, 연예인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같은 비현실적 존재에서
얼마든지 대화도 나눌 수 있고, 마음도 소통할 수 있는,
살가운 대상으로서 기적적으로 관계가 바뀐 것이다..
“여기면 되겠지. 학생들 거의 다 등교했으니까 사람도 없고..”
“무슨 얘기를 할건데 이런데로 사람을 끌고 오나?”
“그.. 그냥 별 뜻 없어.. 왜 이상..하게 나를 보고 그래! 흥..
교실 안에서는 쳐다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 피하고 싶었던 것뿐야..”
“큭큭. 그러냐.. 알았고, 할 말 있으면 해봐”
“할 말..? 그러네. 내가 왜 나오자고 했지? 특별한 이야기는 없어.. 헤헤!
참, 저번에는 재밌었어.. 너 찾으러 간 거 였지만 그 덕분에 복싱체육관이라는 곳도 구경해보고..
경민이 삼촌도 만나고.. 히힛. 좋은 분이신 것 같아. 매너 좋으시고..”
“아아? 체육관이 좋았다 뭐 이런 말을 하나 했더니.. 경민형 얘기를 하려던 거네? 크크크”
“아니야. 그런거! 이상한 오해하면 안돼 얘! ....호호... 누가 들으면 큰일날 소리를..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딱 정해져 있단 말야...”
“.......그.. 조그만 꼬맹이.. 윤지우라고 하는 애 말이냐?”
“꼬, 꼬맹이라니.. 그런 말 하지마 -.-... 나 화낸다..”
“크크크. 뭐 어때? 쪼매난 놈을 보고 꼬마라고 하지 캬캬캬”
그러자 수경은 정말 언짢은 눈길로, 주원을 살짝 노려보았다.
다른 일은 몰라도 지우의 험담을 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별 생각없이 실실 쪼개던 무대가리도, 수경의 날카로운 눈을 보자 헙, 웃던 걸 멈췄다.
“....쳇....눈이 뭐 그렇게 매섭냐 기집애가..”
“호호.. 그러니까 누가 없다고 해서, 함부로 험담을 하면 안돼요오, 주원 군~?”
“으으.. 닭살스럽게 군이 뭐야 군이..”
“킥킥.. 나도 화난 얼굴로 쳐다본게 미안해져서.. 이제 정색 안할게..히히”
“쳇..... 그 웃는 얼굴을 보면......”
“....응? 웃는 얼굴이 왜..?”
“아, 아니다,, 아무 것도..”
사물함 앞에 나란히 마주 서서
꽃처럼 아름다운 미소녀와 이야기를 하는 내내
주원은 이것이 꿈은 아니겠지..하는 생각을 하였다.
지난번 체육관에 수경이 찾아왔을 때도 내심 기뻤지만..
당시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임박했기 때문이었고,
그래선지 격하게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이 덜했다.
그에 비해, 지금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등교한 후라 인적이 드문 홈베이스에
황홀한 미모의 여자 아이와.. 단 둘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니..
설레이는 긴장감과, 격하게 흥분되는 심경은 지난 번과 아예 차원이 다르다.
한달이 지나 등교하면서, 소년은 용케 하복을 챙겨입고 왔다.
여학생의 예쁜 하복입은 자태를, 한참 눈 앞에서 보게 되는 것은 수경이 처음이다.
그렇잖아도 예쁘게 생겨서 설레는 아이를..
단아하고 청순한 이미지의 교복 차림으로
단 둘이서 눈 앞에 두고 대화를 하고 있는 상황이..
얼마나 이 굶주린 열혈남에게 큰 자극일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청초한 수경의 앳띤 모습..
가녀린 이미지를 주는 새하얀 교복을 입고 있는 정갈한 느낌.
그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육감적인 가슴과.. 탄력 좋은 히프의 어울림.
비현실적인.. 잘록한 허리와 너무나도 예쁜 긴 다리.
얼굴은 전체적으로 순한 인상이고 참 귀여운 얼굴이다.
크고 맑은 또렷한 눈과 차분한 눈매..
칠흑같이 검고, 맑고 잡티 하나 없는 깨끗한 눈동자..
정성들여 세심하게 손으로 빚은 듯한 감각의 오똑한 코..
근사한 솜씨로 조각한 느낌의, 적당한 크기와 아름다운 볼륨감이 두드러지는 입술..
백옥이라는 말이 더없이 어울리는.. 희고 매끄러워 윤이 반짝 나는 살결..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단아한 달걀형의 얼굴..
이와 같은 아리따운 미녀를 곁에 두고, 흑심을 품지 않는 도덕군자가 어디 있겠는가..
하물며 평소에 ‘욕정 덩어리’임을 자부하고 사는.. 음욕의 신 주원은 말할 것이 없다.
주원은 수경과 조용히 대화를 잘 하다가도,
본인 스스로가 평온한 분위기에서 대화하고 있는 게 어색해서 견딜 수 없었다.
차라리 이 자리를 피했으면 피하고 말지..
그런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게, 자꾸만 수경의 근사한 몸매를 눈으로 훑으며
불같은 욕정이 치밀어올라 미칠 것 같기 때문이다.
스르르.. 벌개진 눈으로.. 안그래도 인상도 지저분한데
험상궂은 눈을 희번뜩 거리면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훑어본다고 상상해보라..
아무리 사람좋고 배려 깊은 수경이라고 해도, 혐오감을 안 느낄 수가 없다.
그렇잖아도 조금 전부터 수경은 이야기 도중에, 자꾸 자신을 힐끔거리는
주원의 노골적인 시선을 마주 보고 있기가 왠지 힘겨웠다.
처음 사물함으로 데려와서 말을 꺼낼 땐 아무렇지 않던 애가..
조금 이야기하다보니, 이상하게 얼굴이 뻘개지고, 집어삼킬 듯 쳐다보는 것이다.
수경은.. 그럴 리는 없겠지.. 라고 이해하려 했지만.. 본능적으로 오싹한 기분이었다.
자연히 뒤로 스슥- 스슥- 뒷걸음치는 그녀..
곧, 주원이 손을 스윽, 내밀며 한걸음 다가오려 하자,
몸을 덜덜.. 떨며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이다.
“....미, 미안해, 주, 주원아.. 나, 뭐 생각난게 있어서 얼른 가볼게....”
“.......어...?... 근데.. 교무실은....”
“...이, 이따가 같이 가!....”
수경은 후닥닥 교실을 향해 뛰어가며, 멀어지는 동시에 이따가 가자는 말을 남겼다.
남겨진 주원은 멍~ 한 얼굴로 달려가는 소녀의 이쁜 뒷태만 바라보며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봐서.. 이상하게 느꼈나..
드르윽-
교실 안에는 40명의 아이들 전원이, 수경 주원을 제외하고 모두 앉아 있었다.
정적을 깨뜨리는 뒷문 여는 소리에 모든 아이들이 뒤를 돌아본다.
수경은 생각지도 못하게 시선을 확 끌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슬금 슬금 눈치를 보며 세 번째 줄에 위치한 자기 자리를 향해 간다.
주변의 쏟아지는 무언의 시선이 제법 뜨겁다.
수경은 그동안 그녀에게 호의적이던 학생들의 말하지 않는 눈빛이..
숨이 막히듯 온 몸에 와서 화악- 꽂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이것 참 뭐라 해명할 수도 없고.. 그래.. 너희들 마음대로 상상하렴..
라고 생각하며 조용하게 자리에 앉았다.
0교시의 의무 자율학습시간 내내,
수경은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얼른 지우에게 가서 이상한 오해하지마.. 라고 말하고 싶었다.
종이 울리고 드륵, 의자를 빼며 일어나려는 순간.
깜짝이야.. 수경보다 동작이 더 빠른 주변의 아이들이 우루루-! 덤벼들었다.
난리가 났다....
반에서 가장 HOT한 인기녀에게 궁금한 걸 못참는 아이들이 질문 세례를 퍼붓는 것이다.
지우도 수경에게 아무 말이라도 듣고 싶어, 속이 타는 심정으로 다가가려다..
구름처럼 몰려든 수경 주위의 인파를 보고 놀라서 눈이 동그래졌다.
‘이 녀석들 뭐냐...?? 무섭.... 나도 수경이랑 얘기하고 싶다구....’
그렇게 어색한 상태로 4교시가 마치자, 그제야 학생들의 압박에서 겨우 홀가분해진 수경이..
배시시.. 어색하지만 최대한 밝은 미소를 지으며 지우에게 다가왔다.
지우는 급식실로 가려고 일어서다가, 수경의 접근에 흠칫- 놀랐다.
그런데 둘 다 서로 마주만 보고 쭈볏, 쭈볏.. 거리며 가까이 가질 못한다.
“......바, 밥 먹으러 어서 가자 지우야...”
“어 그..래... 가자구 얼른..”
“쿠쿡쿡.. 왜 이렇게 어색하지?”
“그런가..? 하하하..”
“아이, 참! 남자가 이렇게 숫기가 없어서 어떡하니~? 호호호”
수경이 지우와의 어색함을 풀어주려고, 갑자기 확- 다가와서 그의 팔짱을 꽉 꼈다.
지우는 글래머 수경의 큰 가슴 골 사이에 팔이 끼자, 얼굴이 후끈.. 달아올라 빨개진다.
누구 때문인지도 모르고, 소년의 변화에
‘??’ 의아해하며 애꿎은 그의 이마에 손을 얹는 소녀.
에헤헤~ 거리며 꼬옥 잡은 지우의 팔을 잡아 질질 끌며 데려간다.
둘은 주원과의 화제를 의식해서.. 그 날 내내 교내에서 주원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 이야기가 나온 것은 언제나처럼 둘이 나란히 걷는 하교길에서였다.
“주원이랑은 무슨 사이냐? 이제 편하게 물어볼 수 있겠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주원이한테 다녀왔다는 그 이야기 말야..?”
“...그래, 어떻게 된거야 대체? 그리고 단둘이 어딜 나가서 한참 있다가 들어오던데..”
“...그거는.. 1교시 시작 전에 교무실에 다녀온 거잖아...”
“그거 말고, 2교시 끝나고 같이 어딜 붙어서 가던데.. 너 나한테 숨기는 거 없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니, 지우야.. 너 나를 설마 의심하는 건 아니지..?”
“후~.. 그니까 지금 멍석 깔아줬잖아. 얘기해”
식은 땀을 살며시 흘리던 수경은, 어렵사리 입을 열고
0교시때는 주의사항을 일러주기 위해 데리고 나갔던 것이고, 진짜 교무실로 동행했던 것은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2,3교시 사이의 쉬는 시간이었음을 설명해주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도 지우는 미심쩍고 불만 가득한 얼굴이다.
뚱~해 있는 소년을 보고, 난감한 소녀는 아무 말 못하고.. 조용히 뒤에 서서 따라간다.
수경의 집은 방이사거리를 기준으로, 길 건너 방이 2동 주민센터 근처의 빌라형 아파트다.
지우와 영애는 석촌호수 동호에서 가까운 송파 1동에 살고 있다.
둘의 집은 걸어서 5~10분 남짓의 거리라, 이렇게 편하게 걸어서 같이 집에 가곤 한다.
그런데 늘상 걸어다니는 오늘의 하교길은 유독 분위기가 무겁다.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수경은 이런 어색한 분위기가 너무 싫다..
방이동 먹자골목을 지나, 석촌호수가 보이자 수경은 슬그머니..
지우의 팔을 붙잡고 밝게 웃으며 호숫가로 이끌었다.
“지우야~아~♡~ 히히히~ 나 이런 어색한 기분 싫단 말이야~♪ 오호호~~ 바람 쐬자 우리~~!”
“흥... 애교는 이상하게 많이 늘어가지구...”
“키킥킥. 기분 좀 나아진거지? 이제야 얼굴이 좀 펴지네 쿠쿠쿠. 빨랑와~”
정말 문자 그대로 "선남선녀"다..
호숫가 주변의 산책길을 활보하며, 혹은 잔잔한 걸음걸이로 걸어다니는..
어르신들과, 운동하는 젊은 여대생, 아직 좀 이른 시간이라 가족 단위로는 안보이지만
드문 인파 속을 걷고 있는 잘생기고 이쁜 남녀 커플은 사람들의 이목을 자연히 끌었다.
수경은 오늘 점심때 했던.. 과감한 팔짱끼기를 차마 쉽게 할 수 없어, 손을 드르르...
떨면서 여러번 슬그머니 다가가 눈치 못채게 팔짱을 끼려했다.
지우는 그런 한편, 수경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이미 기분이 풀린 상태다.
아무 일 없었던 듯 둘은 다시 사이좋게 재밌는 이야기를 하며 걸어갔고
주로 떠드는 쪽은 활달한 성격의 수경.. 쫑알 쫑알 옆에서 귀여운 참새처럼 재잘거리면
지우는 옆에서 피식 피식 웃으며 예쁜 수경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편이다.
“수경아, 나 이제 기분 다 풀렸어. 너무 열심히 노력 안해도 돼, 이제.. 하하, 집에 가자”
“으응... 벌써..? 아직 여섯시 밖에 안됐는데... 더 바람 쐬고 싶은뎅..”
“여섯시가 아직이냐.. 슬슬 어두워지잖아 후후. 밥먹어야지 이제..”
“아! 맞아~~ 나 있잖아, 오늘은 너네 집에 가볼래.. 쿡쿡, 생각났어!”
“헤에.. 지금 같이 가자고? 아니면 집에 갔다가 온다는..”
“지금~~ 지금 같이 가자! 히히히.. 언제 집에 갔다가 귀찮게 옷 갈아입어.. 응?
생각났을 때에 같이 가게 해줘..”
“.....상관없어 나는.. 갑자기 우리 집을 간다니까 의외긴 해도.. 좋아, 가자!”
그리하여 기태에 이어, 말이 나온 김에 오늘 처음으로 지우에 집에 오게된 수경!
두근- 두근- 설레는 맘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현준이 그랬던 것처럼 수경은 ‘역시.. 좋은 엘리베이터야 음음♪’하며 코를 킁킁거린다.
집에 도착해보니, 영애는 어디 나갔는지 안 보인다.
“집 좋다.... 넓고 시원해서 좋아.. 에어컨도 안틀었는데 왠지 서늘하고.. 헤헷”
“크크.. 앉아 편하게~ 엄마 어디 마트 간 것 같으니까 곧 있으면 올거야”
“응! 아주머니 얼굴 꼭 보고 싶어.. 그때 이후로 뵌 적이 없어서..”
“진짜 그리고 한번도 울 엄마 못 만났나??”
“그럼~? 이렇게 가까운 동네 살면서 말이야 호호호.. 백화점에 가야 뵐 수 있다니.. 키키”
“하하. 둘다 된장기질이 있어서..
쇼핑이나 하러 가야 만날 수 있는 사이라는게 얼마나 웃기냐. 캬캬.
에어컨 틀자 덥다.. 후~ 자.. 이거 마셔”
수경은 지우의 집에 처음 온 것이 아니다.
전에도 집 바로 앞까지 와서 지우를 나오라고 재촉한 적은 있었다.
그래서 집안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라.. 설레고 두근거리는 게 당연하다.
(* 3부에서 데이트 전에 찾아왔었습니다)
지우는 확실히 예전보다 성격이 너그러워졌다.
여유가 제법 있어보이고, 수경과 어울렸던 초반의 느낌과 비교해보면..
쪼잔하고 화만 잘내고, 쌀쌀 맞던 싸~한 느낌이.. 지금은 많이 어른스러워 진 느낌이다.
되도록 편안하게 집에 놀러온 수경을 배려해주고, 세심하게 이것저것 챙겨주려는 모습에서..
수경은 그런 지우의 놀라운 변화를 피부로 체감할 수 있었다.
시시콜콜한 연예인 얘기서부터, 주변의 재미난 일들과 학교에서의 에피소드 등..
사이가 원체 좋은 두 아이는 어떤 이야기를 나눠도 둘이 성격이 잘 맞는다.
유쾌하게 재밌는 이야기를 피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정겹고 참 보기 좋다.
이야기 꽃을 피우던 소년 소녀..
영애의 전화를 받는 지우의 손을 보고 수경이 눈을 떼지 못한다.
“핸드폰 바꿨어? 이거 뭐야.. 신기하다.. 슬라이드야?”
“응. 얼마전에.. 스카이야, 색깔 하얀색 이쁘지? 심플하고~”
“응응! 너무 이쁘다 와아.. 나도 갖고 싶어.. 디자인 참 잘 만들었네..
예뻐... 이리 좀 줘봐, 보게..”
“글쎄~? 이리 와서 직접 가져가봐 크크크”
“뭐? 장난치려고..? 쿡쿡쿡”
장난을 치는 지우의 손에 담긴 폰을 뺏으려고, 몸을 가까이 들이밀면서 기대는 수경.
지우는 당연히 일어나서 자기 손을 나꿔챌 줄 알았는데..
귀찮은 수경은 거실 바닥에 앉은 채로 허리만 꼿꼿이 세워 손을 뻗는 것이었다.
그러니.. 지우는 엉겁결에 눈 앞에 수경의 향긋한 체취를 맡게 되며..
순백의 예쁜 교복이 시야를 가리게 되었고, 수경은 풍만한 가슴으로 지우의 얼굴을 덮어버린다.
당황한 지우는 장난을 치려다가 폰을 놓쳤고, 그와 함께 무게 중심을 잃고..
스르르.. 뒤로 쿠당 넘어지고 말았다.
그 바람에 수경도 ‘엄마야?!’ 놀라며 지우의 위로 풀썩- 쓰러진다.
“............”
“......미안해... 폰에 정신이 팔려서 그만...”
“아니야.. 나도 장난치느라.. 아야.. 머리가 아프네..”
“핫..? 어, 어떻게 해.. 머리.. 다쳤어.. 넘어지면서?”
“아니야 살짝 뒷통수 부딪친 거야.. 어..?”
“어디 봐봐....”
지우는 점점 눈동자가 커져 간다..
수경이 태연한 표정으로 쓰러진 지우의 몸 위에 올라탄 채, 머리를 만져주려고
큰 가슴을 지우의 얼굴에 바싹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경계심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아니면.. 일부러 밀착하는 걸까..
지우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수경에게서 나는 기분 좋은 향기를 맡으며 기분이 몽롱해진다..
그런걸 아는지 모르는지... 수경은 허리를 구부려 지우의 머리를 살피고,
핸드폰을 신기한 듯 구경하며 그대로 앉아 있었다.
문제는.. 지금 자세가 아주 야릇하다.
똑똑하고 센스있고, 현명한 수경은 의외로 허당 기질이 강하고, 백치미가 있어서..
지금 같은 경우도..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벌떡- 일어날 수도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지우의 배 위에 히프를 깔고 올라타서,
조금 야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 지우의 배 양 옆으로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다.
지우는 수경이 무겁다는 생각은 안 들었지만, 민망하고 어색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정작 그의 위에 타고 앉아.. 포근한 감촉을 전해주며 살을 맞대고 있는
예쁘고 천진난만한 이 아가씨는 핸드폰만 신기한 눈으로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다.
“수경..아... 저.. 우리...”
“응...? 왜...”
“....나... 내 위에 올라와 있는데... 이상하지..않아...?”
“...?? 뭐가 이상해..? 호호.. 내가 몸무게가 많이 나가서... 무거웠구나.. 미안..”
“...아니, 그게 아니고.. 바보야.. 우리 이렇게 가까이 살을 대고 있는데...”
“.......아.. 미안해.. 난 이상하게 생각을 안해서.. 그냥 핸드폰... 어...??”
수경은 푸르르- 약하게 떨리는 눈망울로, 벌떡, 허리를 그대로 일으킨 지우를 보았다.
이쁜 다리를 구부려 한쪽으로 모으고 있던 수경은, 급작스럽게 일어난 지우에게..
꽈아악, 끌어안는 소년의 품에 쏙 안겨버리고 만다.
당황스러운 얼굴로, 금방 화끈-거리며 얼굴이 온통 붉어진 어여쁜 소녀..
얘가 대체 왜 이러지?? 하는 눈빛으로 혼란스러워서, 어쩔 줄 모르고
몸만 부들.. 부들.. 가볍게 떨고 있다.
“지우야...?? 왜, 왜 갑자기 이래...”
“...수경아... 우리.. 키스하자..”
“.......키스..하자구...??....”
“그래, 나 못참겠어, 네가 좋아.. 키스하고 싶어 미칠 것 같아..”
“잠..깐만, 지우야..?? 갑자기.. 키스라니..? 얘, 기다려...”
수경은 새빨개진 얼굴로 파르르- 떨리는 가슴을 억누를 수가 없이 쿵쾅 쿵쾅 거렸다.
그리고 입술을 열려 해도, 그 다음의 말은 꺼낼 수 없었다.
지우가 더 이상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수경의 목덜미를 한 손으로 와락- 끌어 안고
강렬하게 입술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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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일치’라는 단어는 어쩔 때는 참으로 신기하고,
묘한 운명의 뉘앙스를 안겨 주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수경이 지우의 집에 처음 놀러온 바로 그 날.
월요일 오후.. 현준은 정확히 한주만에 다시 영애를 만나게 되었다.
사전에 서로 만나자는 약속을 정해놓은 것도 아니었다.
현준은 학교가 파하자마자, 서둘러 버스를 타고 방이삼거리 앞에서 하차한 뒤,
용케 지난번에 영애의 집에 왔던 주소를 기억해서 그 단지의 입구에 서 있었다.
정확한 동 수는 몰랐고,
자신을 자꾸 만나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피하는 영애를..
어떻게 해서든 만나야겠다는 고집에, 그녀에게 말도 안 하고 불쑥 찾아온 것이다.
지금은 배째라-! 는 심경으로 영애의 차만 기다리고 있다.
오늘도 좀 아까 문자를 교환했다. 하긴 했는데..
뭐하냐고, 지금 어디에 있냐고 묻는 현준의 질문에 영애는
지인을 만나러 나갔다가 곧 집으로 들어갈 예정이라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면 집에 당도하겠다..
나름대로의 통밥을 굴리고 ..이렇게 재빠르게 집 근처에 와서 대기중인 것이다.
물론 모험이다. 영애가 진짜 그 말대로 나갔는지, 이미 귀가해서 집에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전화로 연락을.. 여기까지 온 마당에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여기서 끈기 있게 기다려 볼 참이다.
현준의 감이 맞았다...
30분 정도 지나자, 저 멀리서부터 빌리지 입구를 향해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오는
눈에 익숙한 영애의 빨간색 미니 쿠퍼가 보인다.
현준은 입에 침이 바싹, 바싹 마르고 있었다. 긴장해서 손에 땀이 다 난다.
영애는 아직 그를 보지 못했다. 영애 차 뒤엔 다행이 따라오는 차가 없다.
두근 두근 떨리는 심정으로, 현준은 에잇-! 하며
주차장 쪽으로 향해오는 영애의 차 앞에 팟! 갑자기 뛰어들었다.
....... 끼이이이익-!! 강렬한 제동음을 내며 영애의 차가 멈춰섰다...
“.........현, 현준아...?!?....”
“헤헤.... 누나.. 잘 지냈어요..?”
“이.. 이게 무슨 짓이니..? 달리는 차 앞으로.. 뛰어들다니.... 괜..찮아?”
“응, 보다시피 말짱해요.. 헤헤..”
“......너...너... 왜 이런... 하아... 일단, 얼른 차에 타...”
영애는 당황해서 창백해진 하얀 얼굴로..
덜덜 떨며.. 차 앞에 쓰러진 사람을 확인하러 내렸고,
놀랍게도 그것이 현준이라는 것을 알자..
순간적으로 여러 가지 감정이 동시에 교차하며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반갑지도, 싫지도 않은 알 수 없는 얼굴..
일단 사고는 나지 않아서 다행이고,
이 아이를 태워서 얼른 이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부우웅- 현준을 태운 영애의 차는 그렇게 단지 밖으로 유턴해서 어딘가로 향한다.
현준은 영애의 눈치만 조용히 곁눈질로 살피고 있다.
영애는 가만히.. 침묵을 한참 지키고 있었다.
그녀 스스로가 입을 열 때까지는,
지은 잘못이 있기에.. 겁이 나 절대 입을 열지 않으려는 현준.
마침내 영애가 한참만에 무겁게.. 살짝 젖어 있는 예쁜 음성으로 입을 연다.
“어쩔려고 그랬어? 무슨 생각이었니, 대체?”
“미안해요.. 죄송해요 누나. 누나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냥 와버렸어요..”
“........온 것만 묻는게 아니잖아.. 어쩌자고 위험한 짓을 했니..?”
“그야.. 집 주소도 모르고... 앞에서 나타나자.. 이런 생각밖엔 없었어요..”
“...사고라도 났으면 어쩔 거냐고 묻고 있잖아!!!!”
영애는 도저히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현준은 처음 보는 영애의 분노하는 모습에.. 얼이 휙- 빠져 버렸다.
파들.. 파들... 온 몸을 부르르.. 떨면서 진심어린 얼굴로 화를 내는 영애의 모습..
파래진 얼굴로, 몸은 미약하게 흔들리며.. 아름다운 여인은 눈물을 글썽거린다.
당황해서 그녀를 쳐다보는 청년..
여인은 후흐- 가쁘게 호흡을 토하고.. 침을 작은 소리로 삼키며,
달리던 차를 5호선 오금역에 다다르자 세웠다.
힘없이 시트를 뒤로 젖히는 그녀의 하얀 얼굴 위로.. 주르르- 눈물이 떨어진다.
영애의 기백에 압도당한 현준은.. 차가 정지하고 나서..
하아, 하아.. 가벼운 숨을 들이 쉬며 몸을 약하게 떨고 있는 영애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손을 가져가.. 안쓰러운 등을 어루만진다.
“누나.......”
“.......미안해.. 아까는 정말 놀라서.. 화를 내버렸어.... 미안해..”
“...아니예요, 제가 죽을 죄를 지었는데요 뭘... 이제는 괜찮아요..?”
“응... 괜찮아.. 아깐 너무 화가 나서 나 스스로 진정을 못한거야..”
“후후후.. 다행이군요.. 눈물부터 좀 닦아줄게요”
현준은 아직도 가볍게 떨리고 있는 영애의 작은 몸을..
사랑스러운 손길로 어루만지며 품 안에 꾸욱- 담았다.
눈물을 닦아주겠다 해놓고
막상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 보자..
가슴이 떨리고 다시 두근거려서.. 도저히 못참고 그냥 껴안은 것이다.
영애는 현준의 품에 와락 안기며, 비로소 떨리는 가슴을.. 겨우 추스른다.
“귀엽다니까 하여튼.. 다 큰 어른이 걸핏하면 눈물이나 흘리고.. 크큭..
이렇게 귀엽게 덜덜 떠는 모습을 보면.. 안 설렐 수가 없지요..”
“...치이... 미워.. 바보야.... 이렇게 막 끌어안는 건 반칙이라구...”
“하하하. 그래요. 옐로 카드? 이런 반칙은 실컷 퇴장당해도 괜찮겠네요 키키키”
“흥.... 바보.... 혼 좀 나야.. 정신차릴려구...”
현준은 잔뜩 긴장했던 조금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학교가 끝나고, 바로 일주일 전의 지난 월요일처럼..
얼마나 설레이고 힘들었는가..
아무런 사전 연락도 없이 반 미친 척을 하고,
냅다 버스만 타고 익숙치도 않은 길을 찾아 이 촌놈이 용기를 발휘해 찾아 온 것이다.
까짓거- 와서 영애가 이미 집에 들어가 있거나, 여차한 사정으로 못 만나면 어떤가?
그런 결과는 중요치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돌발 행동이라도 하지 않고서는
가슴이 터지고 미쳐버릴 것 같은 극심한 통증과 뜨거운 갑갑함을 견딜 수 없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만 놓고 보면....
용기 있는 행동을 한 것이 지극히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영애는 그렇게 현준의 연락을 피하고,
전화를 일부러 안받고.. 문자 답장도 주지도 않고..
요리조리 현준의 접근을 의도적으로 피한다는 느낌을 요 일주일간 계속 주었기 때문에..
차라리 이런 식으로 충격 요법을 주는 편이
정신도 번쩍 들게 하고..
스토커처럼 보일 수야 있겠지만..
자꾸 피하려 드는 그 마음을.. 효율적으로 확 붙잡기에 가장 좋은 수가 아니었을까..
결과적으로는 이렇게 내 품 안에 안겨 있잖은가?
위험하고 무모한 짓을 했지만, 성공했으니까 됐지 뭐!..
현준은 기분 좋은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품에 안긴 영애의 등을 다독거린다.
“어디 다녀 왔어요? 오늘 옷차림이 화려하고 이쁘네..”
“응.. 이뻐..? 고마워 히힛... 칭찬해줘서...
예전에 알고 지내던 분 동생이.. 오늘부터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갖는다고 그래서..
삼성역에 있는 갤러리 다녀오는 길이야.. 후훗..”
“그랬구나, 어쩐지 패션이 다르다 싶더니.. 역시 누나는 진짜 이쁘고 멋지다니까요”
“쿡쿡쿡, 기분 좋아.. 그런 아첨도.. 호호..”
“어어~? 그냥 막연히 듣기만 좋으라고 하는 아부 이런게 아닌데요..?? 흐흐흐
진짜로 눈 빠지게 이쁘고 근사하다구요...
누나는.. 최고로 이쁜 사람이예요..”
“호호호. 알았어. 알겠으니까.. 거기까지 적당히 하고 그만 좀 해..
학교, 끝나고 아까 곧바로 온 거였어?”
“그렇죠. 잘 모르는 길이라 낯설기는 한데..
저번에 누나랑 같이 차 타고 온 기억이 있으니까..
떠듬 떠듬.. 어떻게든 떠올리면서 버스 타고 왔어요. 대충은 기억하니깐요”
“하하하하. 잘 했어..키득.. 머리 좋네.. 한번 온 길을 기억해내고.. 똑똑하다..”
“그런가? 헤헤헤.. 누나를 보기 위해서라면.. 없던 기억도 막 되살아나게 되죠..”
현준과 영애는 오금 공원 구석의 한적한 주차장에 차를 일단 세워 두고,
차에서 내려 가볍게 심호흡을 한다.
시간은 아직 오후 4시 50분..
해가 쨍쨍하다.
“여기가 어디예요?”
“응.. 오금 공원이야.. 우리 집에서 좀 멀지.. 일부러 여기까지 데리고 왔어..”
“...왜요? 집 앞에 좋은 호수 공원도 있으면서..”
“으이구.. 바보야.. 이럴 땐 누가 어린 애 아니랄까봐.. 쿡쿡..
생각을 해봐, 우리 집 근처에서 자꾸 왔다갔다 하다가.. 누구 눈에 띄면 위험하잖아..”
“아~~ 역시.. 용의주도한 누나네..
하하, 난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이 안 났어요.. 히히”
“푸훗..♡ 바부.. 여기 경치 좋은 곳이야. 가끔 지나가다 들르거든..
우리 좀 걸을래, 현준아? 바람 쐬자”
“좋아요...”
두 사람은 영애의 표현대로, 집에서 일부러 먼 곳까지 차를 타고 왔다.
하지만 사실 멀리 온 것도 아니다. 그래봤자 작은 송파구 내의 반경안에 머물 뿐..
현준은 살며시.. 영애의 작은 오른 손을 꼬옥- 감싸 쥐었다.
그러자 영애는 주위를 살짝, 둘러보며..
현준의 손가락 깍지를 포옥- 끼우며 더 살갑게 잡는다.
“저기 보이는 데가 오금역이야.
봐봐? 생각난 김에 알려줄게.. 지하철 타봐서 알지?”
“응 알죠! 그 정도는 알아요.. 아무리 촌놈이라두. 큭큭큭”
“호호 미안해. 혹시 몰라서.. 지난 번에 어디 산다고 그랬지.. 방이동?”
“어.. 아니에요.. 그렇게 말했구나 그때는..
누나가 차 타고 데려다준다고 하길래, 멋쩍어서 거짓말을 좀 했어요.
우리 집은 더 멀어요.. 천호동 현대백화점 알죠? 그 뒤에 있어요”
“뭐야~~ 왜 사람한테 거짓말을 해? -.- 나는 몽촌토성 쯤인 줄 알았네..
혼난다.. 또 뭐 속이고 그러기만 해봐.. 쿡쿡..
암튼, 음.. 천호역도 편해! 5,8호선 환승역이니까..
이대로 쭈욱~ 타고 가면 바로 너네 집이야”
“아는데요... 뭐하러 이런 걸 설명해줘요?
날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닌가..? 크크크~~ 전철 한두번 타본 것도 아닌데..”
“그, 그래? 혹시나 잘 모를까봐서... 미안..? 호호”
오랜만에 만나서 고작 하는 얘기가 이런 지하철 노선 얘기였다..
가볍게 화제를 나누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이런 느낌이.. 오히려 살갑고 좋지 않은가.
현준은 영애의 밝고 경쾌한 모습을 보고 있으니까 무척 행복해졌다.
조금 출출해진 모양이다. 아까 그 난리 쇼를 벌이며 무리를 했더니..
꼬로록~~ 울리는 배를 쥐고, 무안해진 현준은 영애의 눈치를 살핀다.
역시나.. 영애는 소리를 듣고 웃음을 참지 못한다.
“키득키득키득... 건강하다는 증거야, 얘.. 얼마나 몸이 정직하니..? 쿡쿡쿡”
“헤헤... 오늘도 에너지를 너무 썼나봐요.. 누나, 나 배고파.. 밥 먹으러 가요”
“그래. 호호. 오늘은 현준이한테 뭘 얻어 먹으러 갈까??”
“잉?? 그런 무서운 말을 하면.. 나 돈 없는데.. 누나....”
장난으로 한 마디 던져봤다가, 현준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심각한 얼굴이 되자,
영애는 빵- 터지며 현준의 볼을 꼬옥, 꼬집었다.
둘은 송파 경찰서 뒷 골목을 타고 조용한 한식집으로 들어갔다.
현준은 영애와 같이 걸으려니까.. 어째 ‘경찰서’라는 현판이 눈에 보이기만 해도,
양심에 꺼림찍한 기분이 들어 살짝 어깨를 움츠리게 된다.
영애는 그런 현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살짝 웃는다.
“이런데.. 경찰서가 있어요..? 크다..”
“응! 우리 같이 나쁜 짓 몰래 하는 사람들 잡아가려고 상시 대기중이지 쿄쿄쿄”
“뭐라구요..? 캬캬캬.. 누나 화끈하네....”
“호호. 장난이야. 자, 뭐 먹을까요~~ 일단 메뉴판부터 봅시당~”
생선양념구이와 두부젓국찌개를 시켜놓고, 맛있게 먹는 두 사람..
영애는 한우를 먹고 싶다며 고집을 부렸지만..
그렇게 이쁘게 차려 입고 와서 냄새 배게.. 철딱서니 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현준에게 혼나기만 했다. 풀이 죽어서 순순히 말을 들으면서도 배시시 웃는다.
후딱 맛있게 밥을 파바밧- 먹어 치우는 영애 현준..
현준은 사실 영애가 밥을 이렇게 빨리 먹을 줄은 몰라서, 신기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역시 배가 고팠는지, 맛있게 먹고는 행복하게 웃는 그녀..
둘은 식혜를 마시며 이제 뭐할까..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뭘하지? 집에 들어가기도 애매한 시간이고...
오늘은 우리 지우, 선우 둘다 집에 있을거야.. 시간대가 어중간하네..”
“에이, 누나 집에 안가요~ 위험하게.. 지우랑 마주칠 수도 있는데..
일단은 나가서 좀 걷죠. 차에 가서 정해요”
“싫어~ 안돼. 킥킥. 나는 미리 정해놓고 움직이지 않으면 안 나가는 스타일이란 말야..”
“-.- 까다롭네.. 하하 그래요. 그럼 뭐.. 모텔이나 가든가..”
“........뭐....? 모.. 거기를 왜가...?”
장난으로 한 마디 휙~~ 던져 놓고, 모른 척하고 고개를 돌리며 웃고 있는 현준.
짖궂은 장난인줄 알면서도, 영애는 빨개진 얼굴로 찌릿- 귀엽게 노려본다.
은근히 성희롱 비슷한 농담을 가끔 던지는 것도 재밌겠네.. 하며 키득키득 웃는 소년.
잠시 무안한 얼굴로 새치롬해진 영애..
현준이 아무 말이 없이 그냥 웃자, 피시식- 자기도 따라 웃는다.
“일단 나가자 그럼.. 어디를 가든.. 모.. 테... 그런 데를 가든지 말이야..”
“...뭐라구요? 모테..엘에 가겠다는 말이예요..??”
“쉬잇! 조용히 해 여기 아직 가게 안이잖아.. 바보얏...”
서둘러 계산을 마치고 나와서 영애는 현준의 단단한 가슴팍을 가볍게 툭- 밀쳤다.
“으휴~~ 못 말려.. 그런 말은 크게 하지마.. 현준아.. 쿡쿡쿡”
“하하하. 미안해요.. 눈치가 없었네요.. 좀 전에 너무 놀라서... 히히
그, 근데.. 진짜.. 모텔 갈.. 생각이 있어요..?”
“......안 가지! 바보야... 누구 좋, 좋으라고 그런 데를 가겠니....”
“....누구 좋기는요.. 혹시라도 가게 되면 서로 좋아지는 거 아닌가..?”
“-.- 또 장난쳐.. 혼나려구..?”
“큭큭큭. 재밌잖아요... 장난을 치는 건 맞는데..
툭 까놓고 그럼 얘기해봅시다, 모텔 가면 또 어때요??
가서 그냥 건전하게 둘이 껴안고 영화 보고.. 잔잔하게 누워서 좀 쉬고..
그러다가.. 편안하게 휴식하고 나오면 되는 거죠.. 요즘 모텔은 그런 데예요..
꼭.. 그.. 섹스만.. 하는 곳이 아니라.. 에헴..”
자기가 생각해도 좀 유치하고, 말이 안되는 구차한 얘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일부러 말을 질-질- 끌어가면서,
이런식으로 반 농담삼아 영애의 반응을 살펴보고도 싶었다.
그럴 듯한 말을 듣자..
영애는 의외로 진지한 눈빛을 지으며 생각에 잠기는 것 같다 (...)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는 얼굴..
현준은.. 어라, 이렇게만 말해도 먹혀들어간다.. 이거지??
영애의 뜻밖의 모습을 보고, 두근- 두근- 설레기 시작한다.
잘, 잘하면 오늘.. 또 기회가 오는 건가..?
그런데 이걸 어쩌나.. 영애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피식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역시 안돼. 있을 수 없는 얘기야.. 잠깐 그럴듯한 말을 듣고 나도 고민했네..
아무리 연인들 편하게 쉬어가는 곳이라고 해도..
들어가면 분위기 때문에 생각이 바뀔텐데..”
“그, 그렇지 않아요..! 내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니까요 누나....
누나를 끔찍하게 좋아하지만.. 거짓말을 막 하면서까지.. 나쁜 짓을 할 생각은 없어요..
말 그대로 들어가도 잠시 쉬고 나오면 되는 거죠.. 헤헤..
에구, 나도 진땀이 나네.. 후.. 에이~ 일단 차까지 가면서 얘기하시죠..”
“푸하하~~ 바로 포기하다니.. 귀여워, 그런 모습도.. 후훗..♡
일단 드라이브나 좀 하고.. 편안하게 마음 먹자, 현준아”
영애는 자연스럽게 현준의 팔짱을 꼬옥, 끼며
한번 만져본 적이 있는 부드러운 가슴을 뭉클- 하게 그의 팔에 기대 왔다.
현준은 사랑스러운 여인의 탱탱한 가슴이 팔에 닿자..
1초, 2초.. 3초가 지나서 바로 교복 바지가 터질 만큼 파아앗- 꼭대기까지 발기했다...
왜 이렇게 서지..?? 소년은 두근, 거리는 가슴으로 침만 꿀꺽 삼킨다.
아마 현준이 조금 전에, 영애가 고민하는 얼굴일 때..
더 망설일 틈을 주지 않고
그냥 ‘생각 그만하고 그냥 가봐요’ 라고 우겼으면
.....또 어떻게 되었을 지 모를 일이다.
영애도 순간 눈빛이 미세하게 스르르- 흔들렸던 건 사실이니까..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현준은 영애의 기분 좋은 가슴을 느끼며,
뭐 더 좋은 생각이 없나.. 열심히 머리를 굴린다.
“좋은 생각이 났어요, 그럼.. 천호 현대백화점 쪽으로 가죠!”
“그럴까? 나쁘지 않은 생각인데.. 아직 시간은 여섯시니까.. 쇼핑하려구?”
“뭐, 겸사 겸사- 우리 집도 가깝구요 하하”
이렇게 해서 또 즉흥적으로 방향은 결정!
현준이 사는 천호동으로 행선지를 정하고 액셀을 밟는다.
번개 같이 막히지 않는 길을 내달린 차.. 금방 백화점 앞에 도착했고
주차장으로 들어서려는 찰나, 현준이 영애의 오른 손을 턱, 잡는다.
“그쪽이 아니구요.. 백화점 가자는 소리는 안했어요 히히”
“....? 그럼 뭐하게..?”
“여기 근처 아무데나 일단 세우세요. 커피숍을 가던지.. 내려서 산책해요 누나”
“쿡쿡.. 뭐야아.. 그러면 아까 오금동에서 그렇게 해도 되는 건데..”
“거기 좀 삭막한 동네던데.. 잘은 모르지만 하하..
그쪽보다야 이렇게 인파가 붐비는 동네가 훨 낫지 않아요?”
“맞아, 그건 네 말이 맞네.. 호호호. 나도 시끌벅적한데가 좋더라..”
사실 천호 3동의 사이 사이 골목길로 들어가다 보면..
모텔들이 우후죽순이다..
사람 많고 밝은 초저녁의 분위기를 즐기면서, 기분 좋은 산책도 하고..
저녁 바람을 맞으면서 상쾌하게 데이트를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술같은 걸 마시지 않아도, 대화하는 도중에 아까처럼 기회는 올 것이고,
그러면 틀림없이 오늘, 다시 생각지 못한 기회를 얻을 거라.. 확신하는 현준이었다.
“저기 콩다방 있네! 일단 들어가자. 키키킥”
“엥... 먼저는 걸어다니고 싶다고 얘기하시더니.. 하하하”
“내가 그랬어? 쿠쿠. 저녁이 되니까 따듯한게 마시고 싶거든.. 가자~”
“화이트 초콜릿 모카랑, 카페 라떼 둘다 미디움으로 주세요”
“초콜릿 모카는 뭐지? 사진 보니까 그게 더 땡겨요.. 헤헤”
“쿡쿡. 그럼 니가 그거 마셔.. 내가 라떼 마실게~”
“그래도 돼요..? 누나 정말 착하셔...
아, 누나 지금 흘러나오는 이 음악 제목 뭔지 혹시.. 아세요?
전에 우연히 들었는데.. 듣자마자 진짜 감동받았어요..”
현준은 영애가 다양한 팝음악에 대한 지식이 있다는 걸
익히 알고 있어서.. 이번에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물었다.
“이거...? 알고 있어.. 나도 좋아하는 곡이야..
뭐더라.... 무슨 옛날 영화 음악인데..
아..! 모베터 블루스야.. 모베터 블루스라는 영화 사운드 트랙일걸? 호호..
잔잔하게 깔리는 재즈음이 정말.. 기분을 아늑하게 녹여주지..
나는 이런 음악 들으면 어쩔 수 없나봐.. 눈물이 맺혀..
이 영화 1990년 껀데.. 덴젤 워싱턴이 주연으로 나와..
흑인들이 주연이라서 느낌이 편안하더라 오히려..
웨슬리 스나입스도 나올걸?”
“별 걸 다아네..?! 우와... 하나만 툭, 건드려도 잡다한 지식이 줄줄줄~~ 나오네요..?
덴젤 워싱턴.. 누구지.. 찾아봐야겠다.. 이름은 익숙해요.. 하하..
맞아.. 누나는 역시 나하고 감성이 비슷해요.. 그래서 좋아요..
모베터 블루스.. 고마워요, 꼭 기억하고 있어야지.. 히히..
이런 포근하고.. 사람을 달래주는 편안한 안식의 음악이 좋아요..”
“.............후후..”
“....왜 아무 말 없이 그냥 웃어요..? 흐흐”
“그냥.. 신기해서.. 너처럼 나랑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아직 한참 어리다면 어린 아이가..
이런 옛날 노래에 진한 감동을 받고.. 나랑 같은 감성을 지니다니..
......좋아서.. 호호.. 반가워서 웃었어..”
“뭐야~ 크크. 나 이래뵈도, 어릴 때는 뮤지션이 되고 싶었다구요...
작곡하는 것도 좋아하구...”
“어머.. 작곡도.. 할 줄 알아..?”
“....어, 말이 헛 나왔네.. 으음... 작곡을 배운 건 아니구요..
노래를 워낙 좋아하고 그러다보니.. 내가 스스로 음률..이라고 하나..
그런걸 머릿속에 악상을 그려보는 걸.. 좋아해요, 가끔은.. 하하..”
“호호호.... 그런 면이 있구나..? 작곡이라... 참 좋다.....”
영애는 생각했다.
이상하게 이 아이와 같이 있으면..
그렇게 지난 일주일간 죄책감에 두려워하고, 무서워 했던 감정들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편안해지는 느낌이 든다.
몸이 사뿐하게.. 가벼워지고..
걱정과 근심도 짧은 순간이지만, 머리에서 홀가분하게 떠나간다고 할까..
잠시의 마음의 피난처, 도피처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준상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었는데..
어째서.. 현준을 만나기만 하면 거짓말처럼 포근한 기분이.. 왜 들까..?
이 아이를 다시 만나서 마음을 주려고도 안했고..
얼굴만 봐도 두근거리는 감정이 되살아날 게 뻔하고, 무서웠다.
걱정을 많이 했었다..
아까 집 바로 앞에서 현준이 돌발 행동을 했을 때도..
차에 태우고 오금로를 달리는 내내 침묵을 지키던 시간에도..
영애는 현준이 무섭다는 생각도 했고,
역시 적당히 타이르고 돌려보내야겠어..
라고 어중간한 자기 마음 속의 타협을 하며.. 그를 공원으로 데려간 거였다.
진짜 그랬는데... 사람 마음이 가는 곳은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모양이다.
함께 있으면서 따듯한 이야기를 나누고..
편안하게 웃어주는 아들 또래의 미소를 보면
예전에 자기가 좋아했던.. 그 기억들이 떠오르고, 진솔한 감정이 피어난다..
그래, 생각났어.. 내가 현준이를 처음 보자마자 좋아하게..
바로 사랑을 예감할 수 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가..
영애는 희미했던 지난 날의 기억이, 서서히 또렷하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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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애-현준, 수경-지우 두 주인공 커플의 차분한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며 적어 보았습니다.
11부의 댓글에 대한 대답을 드립니다.
제가 마음에 두고 있는 주인공의 실제 모델이 있지만.. 그걸 알려드리면,
여러분 상상력이 제한되고 식어버려서 재미 없지 않으신가요? 하하
세명중에서 "30대 중반" 영애의 모델은 "내 딸 서영이" [이보영] 입니다.
그리고..
새벽에 [먹튀]만 하고 가시는 염치없는 분들께 화가 나 글을 적었습니다.
즐감하셨다면 [추천]을 눌러주시는 것이 최소한의 에티켓이라고 생각합니다.
수경은 주원을 홈베이스의 사물함 근처로 데리고 갔다.
주원은 따라가는 뒤에서.. 수경의 처음 보는 여름 하복차림을 감상한다.
분명 참한 교복 스타일인데, 뒷태의 야리야리한 가는 선을 보고..
묘한 색기가 느껴진다고 생각해서
호흡이 두근거리고, 침이 꼴깍 꼴깍 넘어가고 있었다.
‘진짜 맛있겠다...... 꿀꺽....’
온 세상에 불만이 넘치고 순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로 중무장한 녀석.
그렇게 유아독존 캐릭터인 이놈도 최소한의 도덕이라든가 양심은 가지고 있다.
수경 같이 순수한 호의와 선한 마음씨로 다가와 준 사람을 배신하거나
작은 친절이긴 하나, 그 상냥한 베품을 악으로 갚을 생각은 조금도 없다..
자존심은 무지 강해서..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받은 것은 꼭 갚아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학교 내에서 자길 이해해주는 우군이 단 하나도 없던 그에게
단 하나의 내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수경의 존재는 ‘가뭄의 단비’ 훨씬 이상인 셈이다.
일단 얼굴이 예쁘니까..
그리고 겉보기만으로는 깍쟁이 같고,
자기 기분에 수틀리면 변덕이 심한 나쁜 성격일 거 같은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고.. 대체로 온순하고 감정을 잘 절제할 줄도 아는 것 같다.
거의 정확하게 들여다보긴 했다.
단.. 자기 기분에 거슬리면 못된 성질을 부리고, 변덕이 심한 부분은 예외다 (...)
학기초에 수경을 볼 때부터
‘스타일 발군이고 성격 좋고.. 이상적인 여자’라는 생각은 했어도
감히 나같은 놈하고는 격이 아예 다르다 싶어 가까워질 기대를 전혀 못했다.
저런 A급 여자를 한번 뜨겁게 품어보고 싶고..
미친 듯이 질펀하게 몸을 적시고 싶다는 욕구도 물론 있었지만,
현실과는 괴리가 있는 캐릭터이기에, 괜한 호기에 잘못 건드려서 사고치지나 말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집나간 탕아처럼 학교를 무단으로 째버리고 지멋대로 구는 자신에게..
몸소 찾아와주시기까지 하고..
겉으로는 쿨한 척 그녀를 대했지만 당연히 남자라면,
이런 사려심 깊은 여성의 상냥함에 심장이 쿵쾅 거리고.. 기대감을 갖는게 당연하잖은가.
예전의 수경과 전혀 접촉이 없었을 당시와 비교해 다른 점이라면
동경의 대상, 연예인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같은 비현실적 존재에서
얼마든지 대화도 나눌 수 있고, 마음도 소통할 수 있는,
살가운 대상으로서 기적적으로 관계가 바뀐 것이다..
“여기면 되겠지. 학생들 거의 다 등교했으니까 사람도 없고..”
“무슨 얘기를 할건데 이런데로 사람을 끌고 오나?”
“그.. 그냥 별 뜻 없어.. 왜 이상..하게 나를 보고 그래! 흥..
교실 안에서는 쳐다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 피하고 싶었던 것뿐야..”
“큭큭. 그러냐.. 알았고, 할 말 있으면 해봐”
“할 말..? 그러네. 내가 왜 나오자고 했지? 특별한 이야기는 없어.. 헤헤!
참, 저번에는 재밌었어.. 너 찾으러 간 거 였지만 그 덕분에 복싱체육관이라는 곳도 구경해보고..
경민이 삼촌도 만나고.. 히힛. 좋은 분이신 것 같아. 매너 좋으시고..”
“아아? 체육관이 좋았다 뭐 이런 말을 하나 했더니.. 경민형 얘기를 하려던 거네? 크크크”
“아니야. 그런거! 이상한 오해하면 안돼 얘! ....호호... 누가 들으면 큰일날 소리를..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딱 정해져 있단 말야...”
“.......그.. 조그만 꼬맹이.. 윤지우라고 하는 애 말이냐?”
“꼬, 꼬맹이라니.. 그런 말 하지마 -.-... 나 화낸다..”
“크크크. 뭐 어때? 쪼매난 놈을 보고 꼬마라고 하지 캬캬캬”
그러자 수경은 정말 언짢은 눈길로, 주원을 살짝 노려보았다.
다른 일은 몰라도 지우의 험담을 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별 생각없이 실실 쪼개던 무대가리도, 수경의 날카로운 눈을 보자 헙, 웃던 걸 멈췄다.
“....쳇....눈이 뭐 그렇게 매섭냐 기집애가..”
“호호.. 그러니까 누가 없다고 해서, 함부로 험담을 하면 안돼요오, 주원 군~?”
“으으.. 닭살스럽게 군이 뭐야 군이..”
“킥킥.. 나도 화난 얼굴로 쳐다본게 미안해져서.. 이제 정색 안할게..히히”
“쳇..... 그 웃는 얼굴을 보면......”
“....응? 웃는 얼굴이 왜..?”
“아, 아니다,, 아무 것도..”
사물함 앞에 나란히 마주 서서
꽃처럼 아름다운 미소녀와 이야기를 하는 내내
주원은 이것이 꿈은 아니겠지..하는 생각을 하였다.
지난번 체육관에 수경이 찾아왔을 때도 내심 기뻤지만..
당시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임박했기 때문이었고,
그래선지 격하게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이 덜했다.
그에 비해, 지금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등교한 후라 인적이 드문 홈베이스에
황홀한 미모의 여자 아이와.. 단 둘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니..
설레이는 긴장감과, 격하게 흥분되는 심경은 지난 번과 아예 차원이 다르다.
한달이 지나 등교하면서, 소년은 용케 하복을 챙겨입고 왔다.
여학생의 예쁜 하복입은 자태를, 한참 눈 앞에서 보게 되는 것은 수경이 처음이다.
그렇잖아도 예쁘게 생겨서 설레는 아이를..
단아하고 청순한 이미지의 교복 차림으로
단 둘이서 눈 앞에 두고 대화를 하고 있는 상황이..
얼마나 이 굶주린 열혈남에게 큰 자극일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청초한 수경의 앳띤 모습..
가녀린 이미지를 주는 새하얀 교복을 입고 있는 정갈한 느낌.
그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육감적인 가슴과.. 탄력 좋은 히프의 어울림.
비현실적인.. 잘록한 허리와 너무나도 예쁜 긴 다리.
얼굴은 전체적으로 순한 인상이고 참 귀여운 얼굴이다.
크고 맑은 또렷한 눈과 차분한 눈매..
칠흑같이 검고, 맑고 잡티 하나 없는 깨끗한 눈동자..
정성들여 세심하게 손으로 빚은 듯한 감각의 오똑한 코..
근사한 솜씨로 조각한 느낌의, 적당한 크기와 아름다운 볼륨감이 두드러지는 입술..
백옥이라는 말이 더없이 어울리는.. 희고 매끄러워 윤이 반짝 나는 살결..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단아한 달걀형의 얼굴..
이와 같은 아리따운 미녀를 곁에 두고, 흑심을 품지 않는 도덕군자가 어디 있겠는가..
하물며 평소에 ‘욕정 덩어리’임을 자부하고 사는.. 음욕의 신 주원은 말할 것이 없다.
주원은 수경과 조용히 대화를 잘 하다가도,
본인 스스로가 평온한 분위기에서 대화하고 있는 게 어색해서 견딜 수 없었다.
차라리 이 자리를 피했으면 피하고 말지..
그런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게, 자꾸만 수경의 근사한 몸매를 눈으로 훑으며
불같은 욕정이 치밀어올라 미칠 것 같기 때문이다.
스르르.. 벌개진 눈으로.. 안그래도 인상도 지저분한데
험상궂은 눈을 희번뜩 거리면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훑어본다고 상상해보라..
아무리 사람좋고 배려 깊은 수경이라고 해도, 혐오감을 안 느낄 수가 없다.
그렇잖아도 조금 전부터 수경은 이야기 도중에, 자꾸 자신을 힐끔거리는
주원의 노골적인 시선을 마주 보고 있기가 왠지 힘겨웠다.
처음 사물함으로 데려와서 말을 꺼낼 땐 아무렇지 않던 애가..
조금 이야기하다보니, 이상하게 얼굴이 뻘개지고, 집어삼킬 듯 쳐다보는 것이다.
수경은.. 그럴 리는 없겠지.. 라고 이해하려 했지만.. 본능적으로 오싹한 기분이었다.
자연히 뒤로 스슥- 스슥- 뒷걸음치는 그녀..
곧, 주원이 손을 스윽, 내밀며 한걸음 다가오려 하자,
몸을 덜덜.. 떨며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이다.
“....미, 미안해, 주, 주원아.. 나, 뭐 생각난게 있어서 얼른 가볼게....”
“.......어...?... 근데.. 교무실은....”
“...이, 이따가 같이 가!....”
수경은 후닥닥 교실을 향해 뛰어가며, 멀어지는 동시에 이따가 가자는 말을 남겼다.
남겨진 주원은 멍~ 한 얼굴로 달려가는 소녀의 이쁜 뒷태만 바라보며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봐서.. 이상하게 느꼈나..
드르윽-
교실 안에는 40명의 아이들 전원이, 수경 주원을 제외하고 모두 앉아 있었다.
정적을 깨뜨리는 뒷문 여는 소리에 모든 아이들이 뒤를 돌아본다.
수경은 생각지도 못하게 시선을 확 끌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슬금 슬금 눈치를 보며 세 번째 줄에 위치한 자기 자리를 향해 간다.
주변의 쏟아지는 무언의 시선이 제법 뜨겁다.
수경은 그동안 그녀에게 호의적이던 학생들의 말하지 않는 눈빛이..
숨이 막히듯 온 몸에 와서 화악- 꽂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이것 참 뭐라 해명할 수도 없고.. 그래.. 너희들 마음대로 상상하렴..
라고 생각하며 조용하게 자리에 앉았다.
0교시의 의무 자율학습시간 내내,
수경은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얼른 지우에게 가서 이상한 오해하지마.. 라고 말하고 싶었다.
종이 울리고 드륵, 의자를 빼며 일어나려는 순간.
깜짝이야.. 수경보다 동작이 더 빠른 주변의 아이들이 우루루-! 덤벼들었다.
난리가 났다....
반에서 가장 HOT한 인기녀에게 궁금한 걸 못참는 아이들이 질문 세례를 퍼붓는 것이다.
지우도 수경에게 아무 말이라도 듣고 싶어, 속이 타는 심정으로 다가가려다..
구름처럼 몰려든 수경 주위의 인파를 보고 놀라서 눈이 동그래졌다.
‘이 녀석들 뭐냐...?? 무섭.... 나도 수경이랑 얘기하고 싶다구....’
그렇게 어색한 상태로 4교시가 마치자, 그제야 학생들의 압박에서 겨우 홀가분해진 수경이..
배시시.. 어색하지만 최대한 밝은 미소를 지으며 지우에게 다가왔다.
지우는 급식실로 가려고 일어서다가, 수경의 접근에 흠칫- 놀랐다.
그런데 둘 다 서로 마주만 보고 쭈볏, 쭈볏.. 거리며 가까이 가질 못한다.
“......바, 밥 먹으러 어서 가자 지우야...”
“어 그..래... 가자구 얼른..”
“쿠쿡쿡.. 왜 이렇게 어색하지?”
“그런가..? 하하하..”
“아이, 참! 남자가 이렇게 숫기가 없어서 어떡하니~? 호호호”
수경이 지우와의 어색함을 풀어주려고, 갑자기 확- 다가와서 그의 팔짱을 꽉 꼈다.
지우는 글래머 수경의 큰 가슴 골 사이에 팔이 끼자, 얼굴이 후끈.. 달아올라 빨개진다.
누구 때문인지도 모르고, 소년의 변화에
‘??’ 의아해하며 애꿎은 그의 이마에 손을 얹는 소녀.
에헤헤~ 거리며 꼬옥 잡은 지우의 팔을 잡아 질질 끌며 데려간다.
둘은 주원과의 화제를 의식해서.. 그 날 내내 교내에서 주원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 이야기가 나온 것은 언제나처럼 둘이 나란히 걷는 하교길에서였다.
“주원이랑은 무슨 사이냐? 이제 편하게 물어볼 수 있겠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주원이한테 다녀왔다는 그 이야기 말야..?”
“...그래, 어떻게 된거야 대체? 그리고 단둘이 어딜 나가서 한참 있다가 들어오던데..”
“...그거는.. 1교시 시작 전에 교무실에 다녀온 거잖아...”
“그거 말고, 2교시 끝나고 같이 어딜 붙어서 가던데.. 너 나한테 숨기는 거 없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니, 지우야.. 너 나를 설마 의심하는 건 아니지..?”
“후~.. 그니까 지금 멍석 깔아줬잖아. 얘기해”
식은 땀을 살며시 흘리던 수경은, 어렵사리 입을 열고
0교시때는 주의사항을 일러주기 위해 데리고 나갔던 것이고, 진짜 교무실로 동행했던 것은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2,3교시 사이의 쉬는 시간이었음을 설명해주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도 지우는 미심쩍고 불만 가득한 얼굴이다.
뚱~해 있는 소년을 보고, 난감한 소녀는 아무 말 못하고.. 조용히 뒤에 서서 따라간다.
수경의 집은 방이사거리를 기준으로, 길 건너 방이 2동 주민센터 근처의 빌라형 아파트다.
지우와 영애는 석촌호수 동호에서 가까운 송파 1동에 살고 있다.
둘의 집은 걸어서 5~10분 남짓의 거리라, 이렇게 편하게 걸어서 같이 집에 가곤 한다.
그런데 늘상 걸어다니는 오늘의 하교길은 유독 분위기가 무겁다.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수경은 이런 어색한 분위기가 너무 싫다..
방이동 먹자골목을 지나, 석촌호수가 보이자 수경은 슬그머니..
지우의 팔을 붙잡고 밝게 웃으며 호숫가로 이끌었다.
“지우야~아~♡~ 히히히~ 나 이런 어색한 기분 싫단 말이야~♪ 오호호~~ 바람 쐬자 우리~~!”
“흥... 애교는 이상하게 많이 늘어가지구...”
“키킥킥. 기분 좀 나아진거지? 이제야 얼굴이 좀 펴지네 쿠쿠쿠. 빨랑와~”
정말 문자 그대로 "선남선녀"다..
호숫가 주변의 산책길을 활보하며, 혹은 잔잔한 걸음걸이로 걸어다니는..
어르신들과, 운동하는 젊은 여대생, 아직 좀 이른 시간이라 가족 단위로는 안보이지만
드문 인파 속을 걷고 있는 잘생기고 이쁜 남녀 커플은 사람들의 이목을 자연히 끌었다.
수경은 오늘 점심때 했던.. 과감한 팔짱끼기를 차마 쉽게 할 수 없어, 손을 드르르...
떨면서 여러번 슬그머니 다가가 눈치 못채게 팔짱을 끼려했다.
지우는 그런 한편, 수경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이미 기분이 풀린 상태다.
아무 일 없었던 듯 둘은 다시 사이좋게 재밌는 이야기를 하며 걸어갔고
주로 떠드는 쪽은 활달한 성격의 수경.. 쫑알 쫑알 옆에서 귀여운 참새처럼 재잘거리면
지우는 옆에서 피식 피식 웃으며 예쁜 수경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편이다.
“수경아, 나 이제 기분 다 풀렸어. 너무 열심히 노력 안해도 돼, 이제.. 하하, 집에 가자”
“으응... 벌써..? 아직 여섯시 밖에 안됐는데... 더 바람 쐬고 싶은뎅..”
“여섯시가 아직이냐.. 슬슬 어두워지잖아 후후. 밥먹어야지 이제..”
“아! 맞아~~ 나 있잖아, 오늘은 너네 집에 가볼래.. 쿡쿡, 생각났어!”
“헤에.. 지금 같이 가자고? 아니면 집에 갔다가 온다는..”
“지금~~ 지금 같이 가자! 히히히.. 언제 집에 갔다가 귀찮게 옷 갈아입어.. 응?
생각났을 때에 같이 가게 해줘..”
“.....상관없어 나는.. 갑자기 우리 집을 간다니까 의외긴 해도.. 좋아, 가자!”
그리하여 기태에 이어, 말이 나온 김에 오늘 처음으로 지우에 집에 오게된 수경!
두근- 두근- 설레는 맘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현준이 그랬던 것처럼 수경은 ‘역시.. 좋은 엘리베이터야 음음♪’하며 코를 킁킁거린다.
집에 도착해보니, 영애는 어디 나갔는지 안 보인다.
“집 좋다.... 넓고 시원해서 좋아.. 에어컨도 안틀었는데 왠지 서늘하고.. 헤헷”
“크크.. 앉아 편하게~ 엄마 어디 마트 간 것 같으니까 곧 있으면 올거야”
“응! 아주머니 얼굴 꼭 보고 싶어.. 그때 이후로 뵌 적이 없어서..”
“진짜 그리고 한번도 울 엄마 못 만났나??”
“그럼~? 이렇게 가까운 동네 살면서 말이야 호호호.. 백화점에 가야 뵐 수 있다니.. 키키”
“하하. 둘다 된장기질이 있어서..
쇼핑이나 하러 가야 만날 수 있는 사이라는게 얼마나 웃기냐. 캬캬.
에어컨 틀자 덥다.. 후~ 자.. 이거 마셔”
수경은 지우의 집에 처음 온 것이 아니다.
전에도 집 바로 앞까지 와서 지우를 나오라고 재촉한 적은 있었다.
그래서 집안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라.. 설레고 두근거리는 게 당연하다.
(* 3부에서 데이트 전에 찾아왔었습니다)
지우는 확실히 예전보다 성격이 너그러워졌다.
여유가 제법 있어보이고, 수경과 어울렸던 초반의 느낌과 비교해보면..
쪼잔하고 화만 잘내고, 쌀쌀 맞던 싸~한 느낌이.. 지금은 많이 어른스러워 진 느낌이다.
되도록 편안하게 집에 놀러온 수경을 배려해주고, 세심하게 이것저것 챙겨주려는 모습에서..
수경은 그런 지우의 놀라운 변화를 피부로 체감할 수 있었다.
시시콜콜한 연예인 얘기서부터, 주변의 재미난 일들과 학교에서의 에피소드 등..
사이가 원체 좋은 두 아이는 어떤 이야기를 나눠도 둘이 성격이 잘 맞는다.
유쾌하게 재밌는 이야기를 피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정겹고 참 보기 좋다.
이야기 꽃을 피우던 소년 소녀..
영애의 전화를 받는 지우의 손을 보고 수경이 눈을 떼지 못한다.
“핸드폰 바꿨어? 이거 뭐야.. 신기하다.. 슬라이드야?”
“응. 얼마전에.. 스카이야, 색깔 하얀색 이쁘지? 심플하고~”
“응응! 너무 이쁘다 와아.. 나도 갖고 싶어.. 디자인 참 잘 만들었네..
예뻐... 이리 좀 줘봐, 보게..”
“글쎄~? 이리 와서 직접 가져가봐 크크크”
“뭐? 장난치려고..? 쿡쿡쿡”
장난을 치는 지우의 손에 담긴 폰을 뺏으려고, 몸을 가까이 들이밀면서 기대는 수경.
지우는 당연히 일어나서 자기 손을 나꿔챌 줄 알았는데..
귀찮은 수경은 거실 바닥에 앉은 채로 허리만 꼿꼿이 세워 손을 뻗는 것이었다.
그러니.. 지우는 엉겁결에 눈 앞에 수경의 향긋한 체취를 맡게 되며..
순백의 예쁜 교복이 시야를 가리게 되었고, 수경은 풍만한 가슴으로 지우의 얼굴을 덮어버린다.
당황한 지우는 장난을 치려다가 폰을 놓쳤고, 그와 함께 무게 중심을 잃고..
스르르.. 뒤로 쿠당 넘어지고 말았다.
그 바람에 수경도 ‘엄마야?!’ 놀라며 지우의 위로 풀썩- 쓰러진다.
“............”
“......미안해... 폰에 정신이 팔려서 그만...”
“아니야.. 나도 장난치느라.. 아야.. 머리가 아프네..”
“핫..? 어, 어떻게 해.. 머리.. 다쳤어.. 넘어지면서?”
“아니야 살짝 뒷통수 부딪친 거야.. 어..?”
“어디 봐봐....”
지우는 점점 눈동자가 커져 간다..
수경이 태연한 표정으로 쓰러진 지우의 몸 위에 올라탄 채, 머리를 만져주려고
큰 가슴을 지우의 얼굴에 바싹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경계심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아니면.. 일부러 밀착하는 걸까..
지우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수경에게서 나는 기분 좋은 향기를 맡으며 기분이 몽롱해진다..
그런걸 아는지 모르는지... 수경은 허리를 구부려 지우의 머리를 살피고,
핸드폰을 신기한 듯 구경하며 그대로 앉아 있었다.
문제는.. 지금 자세가 아주 야릇하다.
똑똑하고 센스있고, 현명한 수경은 의외로 허당 기질이 강하고, 백치미가 있어서..
지금 같은 경우도..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벌떡- 일어날 수도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지우의 배 위에 히프를 깔고 올라타서,
조금 야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 지우의 배 양 옆으로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다.
지우는 수경이 무겁다는 생각은 안 들었지만, 민망하고 어색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정작 그의 위에 타고 앉아.. 포근한 감촉을 전해주며 살을 맞대고 있는
예쁘고 천진난만한 이 아가씨는 핸드폰만 신기한 눈으로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다.
“수경..아... 저.. 우리...”
“응...? 왜...”
“....나... 내 위에 올라와 있는데... 이상하지..않아...?”
“...?? 뭐가 이상해..? 호호.. 내가 몸무게가 많이 나가서... 무거웠구나.. 미안..”
“...아니, 그게 아니고.. 바보야.. 우리 이렇게 가까이 살을 대고 있는데...”
“.......아.. 미안해.. 난 이상하게 생각을 안해서.. 그냥 핸드폰... 어...??”
수경은 푸르르- 약하게 떨리는 눈망울로, 벌떡, 허리를 그대로 일으킨 지우를 보았다.
이쁜 다리를 구부려 한쪽으로 모으고 있던 수경은, 급작스럽게 일어난 지우에게..
꽈아악, 끌어안는 소년의 품에 쏙 안겨버리고 만다.
당황스러운 얼굴로, 금방 화끈-거리며 얼굴이 온통 붉어진 어여쁜 소녀..
얘가 대체 왜 이러지?? 하는 눈빛으로 혼란스러워서, 어쩔 줄 모르고
몸만 부들.. 부들.. 가볍게 떨고 있다.
“지우야...?? 왜, 왜 갑자기 이래...”
“...수경아... 우리.. 키스하자..”
“.......키스..하자구...??....”
“그래, 나 못참겠어, 네가 좋아.. 키스하고 싶어 미칠 것 같아..”
“잠..깐만, 지우야..?? 갑자기.. 키스라니..? 얘, 기다려...”
수경은 새빨개진 얼굴로 파르르- 떨리는 가슴을 억누를 수가 없이 쿵쾅 쿵쾅 거렸다.
그리고 입술을 열려 해도, 그 다음의 말은 꺼낼 수 없었다.
지우가 더 이상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수경의 목덜미를 한 손으로 와락- 끌어 안고
강렬하게 입술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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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일치’라는 단어는 어쩔 때는 참으로 신기하고,
묘한 운명의 뉘앙스를 안겨 주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수경이 지우의 집에 처음 놀러온 바로 그 날.
월요일 오후.. 현준은 정확히 한주만에 다시 영애를 만나게 되었다.
사전에 서로 만나자는 약속을 정해놓은 것도 아니었다.
현준은 학교가 파하자마자, 서둘러 버스를 타고 방이삼거리 앞에서 하차한 뒤,
용케 지난번에 영애의 집에 왔던 주소를 기억해서 그 단지의 입구에 서 있었다.
정확한 동 수는 몰랐고,
자신을 자꾸 만나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피하는 영애를..
어떻게 해서든 만나야겠다는 고집에, 그녀에게 말도 안 하고 불쑥 찾아온 것이다.
지금은 배째라-! 는 심경으로 영애의 차만 기다리고 있다.
오늘도 좀 아까 문자를 교환했다. 하긴 했는데..
뭐하냐고, 지금 어디에 있냐고 묻는 현준의 질문에 영애는
지인을 만나러 나갔다가 곧 집으로 들어갈 예정이라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면 집에 당도하겠다..
나름대로의 통밥을 굴리고 ..이렇게 재빠르게 집 근처에 와서 대기중인 것이다.
물론 모험이다. 영애가 진짜 그 말대로 나갔는지, 이미 귀가해서 집에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전화로 연락을.. 여기까지 온 마당에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여기서 끈기 있게 기다려 볼 참이다.
현준의 감이 맞았다...
30분 정도 지나자, 저 멀리서부터 빌리지 입구를 향해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오는
눈에 익숙한 영애의 빨간색 미니 쿠퍼가 보인다.
현준은 입에 침이 바싹, 바싹 마르고 있었다. 긴장해서 손에 땀이 다 난다.
영애는 아직 그를 보지 못했다. 영애 차 뒤엔 다행이 따라오는 차가 없다.
두근 두근 떨리는 심정으로, 현준은 에잇-! 하며
주차장 쪽으로 향해오는 영애의 차 앞에 팟! 갑자기 뛰어들었다.
....... 끼이이이익-!! 강렬한 제동음을 내며 영애의 차가 멈춰섰다...
“.........현, 현준아...?!?....”
“헤헤.... 누나.. 잘 지냈어요..?”
“이.. 이게 무슨 짓이니..? 달리는 차 앞으로.. 뛰어들다니.... 괜..찮아?”
“응, 보다시피 말짱해요.. 헤헤..”
“......너...너... 왜 이런... 하아... 일단, 얼른 차에 타...”
영애는 당황해서 창백해진 하얀 얼굴로..
덜덜 떨며.. 차 앞에 쓰러진 사람을 확인하러 내렸고,
놀랍게도 그것이 현준이라는 것을 알자..
순간적으로 여러 가지 감정이 동시에 교차하며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반갑지도, 싫지도 않은 알 수 없는 얼굴..
일단 사고는 나지 않아서 다행이고,
이 아이를 태워서 얼른 이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부우웅- 현준을 태운 영애의 차는 그렇게 단지 밖으로 유턴해서 어딘가로 향한다.
현준은 영애의 눈치만 조용히 곁눈질로 살피고 있다.
영애는 가만히.. 침묵을 한참 지키고 있었다.
그녀 스스로가 입을 열 때까지는,
지은 잘못이 있기에.. 겁이 나 절대 입을 열지 않으려는 현준.
마침내 영애가 한참만에 무겁게.. 살짝 젖어 있는 예쁜 음성으로 입을 연다.
“어쩔려고 그랬어? 무슨 생각이었니, 대체?”
“미안해요.. 죄송해요 누나. 누나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냥 와버렸어요..”
“........온 것만 묻는게 아니잖아.. 어쩌자고 위험한 짓을 했니..?”
“그야.. 집 주소도 모르고... 앞에서 나타나자.. 이런 생각밖엔 없었어요..”
“...사고라도 났으면 어쩔 거냐고 묻고 있잖아!!!!”
영애는 도저히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현준은 처음 보는 영애의 분노하는 모습에.. 얼이 휙- 빠져 버렸다.
파들.. 파들... 온 몸을 부르르.. 떨면서 진심어린 얼굴로 화를 내는 영애의 모습..
파래진 얼굴로, 몸은 미약하게 흔들리며.. 아름다운 여인은 눈물을 글썽거린다.
당황해서 그녀를 쳐다보는 청년..
여인은 후흐- 가쁘게 호흡을 토하고.. 침을 작은 소리로 삼키며,
달리던 차를 5호선 오금역에 다다르자 세웠다.
힘없이 시트를 뒤로 젖히는 그녀의 하얀 얼굴 위로.. 주르르- 눈물이 떨어진다.
영애의 기백에 압도당한 현준은.. 차가 정지하고 나서..
하아, 하아.. 가벼운 숨을 들이 쉬며 몸을 약하게 떨고 있는 영애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손을 가져가.. 안쓰러운 등을 어루만진다.
“누나.......”
“.......미안해.. 아까는 정말 놀라서.. 화를 내버렸어.... 미안해..”
“...아니예요, 제가 죽을 죄를 지었는데요 뭘... 이제는 괜찮아요..?”
“응... 괜찮아.. 아깐 너무 화가 나서 나 스스로 진정을 못한거야..”
“후후후.. 다행이군요.. 눈물부터 좀 닦아줄게요”
현준은 아직도 가볍게 떨리고 있는 영애의 작은 몸을..
사랑스러운 손길로 어루만지며 품 안에 꾸욱- 담았다.
눈물을 닦아주겠다 해놓고
막상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 보자..
가슴이 떨리고 다시 두근거려서.. 도저히 못참고 그냥 껴안은 것이다.
영애는 현준의 품에 와락 안기며, 비로소 떨리는 가슴을.. 겨우 추스른다.
“귀엽다니까 하여튼.. 다 큰 어른이 걸핏하면 눈물이나 흘리고.. 크큭..
이렇게 귀엽게 덜덜 떠는 모습을 보면.. 안 설렐 수가 없지요..”
“...치이... 미워.. 바보야.... 이렇게 막 끌어안는 건 반칙이라구...”
“하하하. 그래요. 옐로 카드? 이런 반칙은 실컷 퇴장당해도 괜찮겠네요 키키키”
“흥.... 바보.... 혼 좀 나야.. 정신차릴려구...”
현준은 잔뜩 긴장했던 조금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학교가 끝나고, 바로 일주일 전의 지난 월요일처럼..
얼마나 설레이고 힘들었는가..
아무런 사전 연락도 없이 반 미친 척을 하고,
냅다 버스만 타고 익숙치도 않은 길을 찾아 이 촌놈이 용기를 발휘해 찾아 온 것이다.
까짓거- 와서 영애가 이미 집에 들어가 있거나, 여차한 사정으로 못 만나면 어떤가?
그런 결과는 중요치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돌발 행동이라도 하지 않고서는
가슴이 터지고 미쳐버릴 것 같은 극심한 통증과 뜨거운 갑갑함을 견딜 수 없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만 놓고 보면....
용기 있는 행동을 한 것이 지극히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영애는 그렇게 현준의 연락을 피하고,
전화를 일부러 안받고.. 문자 답장도 주지도 않고..
요리조리 현준의 접근을 의도적으로 피한다는 느낌을 요 일주일간 계속 주었기 때문에..
차라리 이런 식으로 충격 요법을 주는 편이
정신도 번쩍 들게 하고..
스토커처럼 보일 수야 있겠지만..
자꾸 피하려 드는 그 마음을.. 효율적으로 확 붙잡기에 가장 좋은 수가 아니었을까..
결과적으로는 이렇게 내 품 안에 안겨 있잖은가?
위험하고 무모한 짓을 했지만, 성공했으니까 됐지 뭐!..
현준은 기분 좋은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품에 안긴 영애의 등을 다독거린다.
“어디 다녀 왔어요? 오늘 옷차림이 화려하고 이쁘네..”
“응.. 이뻐..? 고마워 히힛... 칭찬해줘서...
예전에 알고 지내던 분 동생이.. 오늘부터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갖는다고 그래서..
삼성역에 있는 갤러리 다녀오는 길이야.. 후훗..”
“그랬구나, 어쩐지 패션이 다르다 싶더니.. 역시 누나는 진짜 이쁘고 멋지다니까요”
“쿡쿡쿡, 기분 좋아.. 그런 아첨도.. 호호..”
“어어~? 그냥 막연히 듣기만 좋으라고 하는 아부 이런게 아닌데요..?? 흐흐흐
진짜로 눈 빠지게 이쁘고 근사하다구요...
누나는.. 최고로 이쁜 사람이예요..”
“호호호. 알았어. 알겠으니까.. 거기까지 적당히 하고 그만 좀 해..
학교, 끝나고 아까 곧바로 온 거였어?”
“그렇죠. 잘 모르는 길이라 낯설기는 한데..
저번에 누나랑 같이 차 타고 온 기억이 있으니까..
떠듬 떠듬.. 어떻게든 떠올리면서 버스 타고 왔어요. 대충은 기억하니깐요”
“하하하하. 잘 했어..키득.. 머리 좋네.. 한번 온 길을 기억해내고.. 똑똑하다..”
“그런가? 헤헤헤.. 누나를 보기 위해서라면.. 없던 기억도 막 되살아나게 되죠..”
현준과 영애는 오금 공원 구석의 한적한 주차장에 차를 일단 세워 두고,
차에서 내려 가볍게 심호흡을 한다.
시간은 아직 오후 4시 50분..
해가 쨍쨍하다.
“여기가 어디예요?”
“응.. 오금 공원이야.. 우리 집에서 좀 멀지.. 일부러 여기까지 데리고 왔어..”
“...왜요? 집 앞에 좋은 호수 공원도 있으면서..”
“으이구.. 바보야.. 이럴 땐 누가 어린 애 아니랄까봐.. 쿡쿡..
생각을 해봐, 우리 집 근처에서 자꾸 왔다갔다 하다가.. 누구 눈에 띄면 위험하잖아..”
“아~~ 역시.. 용의주도한 누나네..
하하, 난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이 안 났어요.. 히히”
“푸훗..♡ 바부.. 여기 경치 좋은 곳이야. 가끔 지나가다 들르거든..
우리 좀 걸을래, 현준아? 바람 쐬자”
“좋아요...”
두 사람은 영애의 표현대로, 집에서 일부러 먼 곳까지 차를 타고 왔다.
하지만 사실 멀리 온 것도 아니다. 그래봤자 작은 송파구 내의 반경안에 머물 뿐..
현준은 살며시.. 영애의 작은 오른 손을 꼬옥- 감싸 쥐었다.
그러자 영애는 주위를 살짝, 둘러보며..
현준의 손가락 깍지를 포옥- 끼우며 더 살갑게 잡는다.
“저기 보이는 데가 오금역이야.
봐봐? 생각난 김에 알려줄게.. 지하철 타봐서 알지?”
“응 알죠! 그 정도는 알아요.. 아무리 촌놈이라두. 큭큭큭”
“호호 미안해. 혹시 몰라서.. 지난 번에 어디 산다고 그랬지.. 방이동?”
“어.. 아니에요.. 그렇게 말했구나 그때는..
누나가 차 타고 데려다준다고 하길래, 멋쩍어서 거짓말을 좀 했어요.
우리 집은 더 멀어요.. 천호동 현대백화점 알죠? 그 뒤에 있어요”
“뭐야~~ 왜 사람한테 거짓말을 해? -.- 나는 몽촌토성 쯤인 줄 알았네..
혼난다.. 또 뭐 속이고 그러기만 해봐.. 쿡쿡..
암튼, 음.. 천호역도 편해! 5,8호선 환승역이니까..
이대로 쭈욱~ 타고 가면 바로 너네 집이야”
“아는데요... 뭐하러 이런 걸 설명해줘요?
날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닌가..? 크크크~~ 전철 한두번 타본 것도 아닌데..”
“그, 그래? 혹시나 잘 모를까봐서... 미안..? 호호”
오랜만에 만나서 고작 하는 얘기가 이런 지하철 노선 얘기였다..
가볍게 화제를 나누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이런 느낌이.. 오히려 살갑고 좋지 않은가.
현준은 영애의 밝고 경쾌한 모습을 보고 있으니까 무척 행복해졌다.
조금 출출해진 모양이다. 아까 그 난리 쇼를 벌이며 무리를 했더니..
꼬로록~~ 울리는 배를 쥐고, 무안해진 현준은 영애의 눈치를 살핀다.
역시나.. 영애는 소리를 듣고 웃음을 참지 못한다.
“키득키득키득... 건강하다는 증거야, 얘.. 얼마나 몸이 정직하니..? 쿡쿡쿡”
“헤헤... 오늘도 에너지를 너무 썼나봐요.. 누나, 나 배고파.. 밥 먹으러 가요”
“그래. 호호. 오늘은 현준이한테 뭘 얻어 먹으러 갈까??”
“잉?? 그런 무서운 말을 하면.. 나 돈 없는데.. 누나....”
장난으로 한 마디 던져봤다가, 현준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심각한 얼굴이 되자,
영애는 빵- 터지며 현준의 볼을 꼬옥, 꼬집었다.
둘은 송파 경찰서 뒷 골목을 타고 조용한 한식집으로 들어갔다.
현준은 영애와 같이 걸으려니까.. 어째 ‘경찰서’라는 현판이 눈에 보이기만 해도,
양심에 꺼림찍한 기분이 들어 살짝 어깨를 움츠리게 된다.
영애는 그런 현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살짝 웃는다.
“이런데.. 경찰서가 있어요..? 크다..”
“응! 우리 같이 나쁜 짓 몰래 하는 사람들 잡아가려고 상시 대기중이지 쿄쿄쿄”
“뭐라구요..? 캬캬캬.. 누나 화끈하네....”
“호호. 장난이야. 자, 뭐 먹을까요~~ 일단 메뉴판부터 봅시당~”
생선양념구이와 두부젓국찌개를 시켜놓고, 맛있게 먹는 두 사람..
영애는 한우를 먹고 싶다며 고집을 부렸지만..
그렇게 이쁘게 차려 입고 와서 냄새 배게.. 철딱서니 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현준에게 혼나기만 했다. 풀이 죽어서 순순히 말을 들으면서도 배시시 웃는다.
후딱 맛있게 밥을 파바밧- 먹어 치우는 영애 현준..
현준은 사실 영애가 밥을 이렇게 빨리 먹을 줄은 몰라서, 신기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역시 배가 고팠는지, 맛있게 먹고는 행복하게 웃는 그녀..
둘은 식혜를 마시며 이제 뭐할까..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뭘하지? 집에 들어가기도 애매한 시간이고...
오늘은 우리 지우, 선우 둘다 집에 있을거야.. 시간대가 어중간하네..”
“에이, 누나 집에 안가요~ 위험하게.. 지우랑 마주칠 수도 있는데..
일단은 나가서 좀 걷죠. 차에 가서 정해요”
“싫어~ 안돼. 킥킥. 나는 미리 정해놓고 움직이지 않으면 안 나가는 스타일이란 말야..”
“-.- 까다롭네.. 하하 그래요. 그럼 뭐.. 모텔이나 가든가..”
“........뭐....? 모.. 거기를 왜가...?”
장난으로 한 마디 휙~~ 던져 놓고, 모른 척하고 고개를 돌리며 웃고 있는 현준.
짖궂은 장난인줄 알면서도, 영애는 빨개진 얼굴로 찌릿- 귀엽게 노려본다.
은근히 성희롱 비슷한 농담을 가끔 던지는 것도 재밌겠네.. 하며 키득키득 웃는 소년.
잠시 무안한 얼굴로 새치롬해진 영애..
현준이 아무 말이 없이 그냥 웃자, 피시식- 자기도 따라 웃는다.
“일단 나가자 그럼.. 어디를 가든.. 모.. 테... 그런 데를 가든지 말이야..”
“...뭐라구요? 모테..엘에 가겠다는 말이예요..??”
“쉬잇! 조용히 해 여기 아직 가게 안이잖아.. 바보얏...”
서둘러 계산을 마치고 나와서 영애는 현준의 단단한 가슴팍을 가볍게 툭- 밀쳤다.
“으휴~~ 못 말려.. 그런 말은 크게 하지마.. 현준아.. 쿡쿡쿡”
“하하하. 미안해요.. 눈치가 없었네요.. 좀 전에 너무 놀라서... 히히
그, 근데.. 진짜.. 모텔 갈.. 생각이 있어요..?”
“......안 가지! 바보야... 누구 좋, 좋으라고 그런 데를 가겠니....”
“....누구 좋기는요.. 혹시라도 가게 되면 서로 좋아지는 거 아닌가..?”
“-.- 또 장난쳐.. 혼나려구..?”
“큭큭큭. 재밌잖아요... 장난을 치는 건 맞는데..
툭 까놓고 그럼 얘기해봅시다, 모텔 가면 또 어때요??
가서 그냥 건전하게 둘이 껴안고 영화 보고.. 잔잔하게 누워서 좀 쉬고..
그러다가.. 편안하게 휴식하고 나오면 되는 거죠.. 요즘 모텔은 그런 데예요..
꼭.. 그.. 섹스만.. 하는 곳이 아니라.. 에헴..”
자기가 생각해도 좀 유치하고, 말이 안되는 구차한 얘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일부러 말을 질-질- 끌어가면서,
이런식으로 반 농담삼아 영애의 반응을 살펴보고도 싶었다.
그럴 듯한 말을 듣자..
영애는 의외로 진지한 눈빛을 지으며 생각에 잠기는 것 같다 (...)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는 얼굴..
현준은.. 어라, 이렇게만 말해도 먹혀들어간다.. 이거지??
영애의 뜻밖의 모습을 보고, 두근- 두근- 설레기 시작한다.
잘, 잘하면 오늘.. 또 기회가 오는 건가..?
그런데 이걸 어쩌나.. 영애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피식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역시 안돼. 있을 수 없는 얘기야.. 잠깐 그럴듯한 말을 듣고 나도 고민했네..
아무리 연인들 편하게 쉬어가는 곳이라고 해도..
들어가면 분위기 때문에 생각이 바뀔텐데..”
“그, 그렇지 않아요..! 내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니까요 누나....
누나를 끔찍하게 좋아하지만.. 거짓말을 막 하면서까지.. 나쁜 짓을 할 생각은 없어요..
말 그대로 들어가도 잠시 쉬고 나오면 되는 거죠.. 헤헤..
에구, 나도 진땀이 나네.. 후.. 에이~ 일단 차까지 가면서 얘기하시죠..”
“푸하하~~ 바로 포기하다니.. 귀여워, 그런 모습도.. 후훗..♡
일단 드라이브나 좀 하고.. 편안하게 마음 먹자, 현준아”
영애는 자연스럽게 현준의 팔짱을 꼬옥, 끼며
한번 만져본 적이 있는 부드러운 가슴을 뭉클- 하게 그의 팔에 기대 왔다.
현준은 사랑스러운 여인의 탱탱한 가슴이 팔에 닿자..
1초, 2초.. 3초가 지나서 바로 교복 바지가 터질 만큼 파아앗- 꼭대기까지 발기했다...
왜 이렇게 서지..?? 소년은 두근, 거리는 가슴으로 침만 꿀꺽 삼킨다.
아마 현준이 조금 전에, 영애가 고민하는 얼굴일 때..
더 망설일 틈을 주지 않고
그냥 ‘생각 그만하고 그냥 가봐요’ 라고 우겼으면
.....또 어떻게 되었을 지 모를 일이다.
영애도 순간 눈빛이 미세하게 스르르- 흔들렸던 건 사실이니까..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현준은 영애의 기분 좋은 가슴을 느끼며,
뭐 더 좋은 생각이 없나.. 열심히 머리를 굴린다.
“좋은 생각이 났어요, 그럼.. 천호 현대백화점 쪽으로 가죠!”
“그럴까? 나쁘지 않은 생각인데.. 아직 시간은 여섯시니까.. 쇼핑하려구?”
“뭐, 겸사 겸사- 우리 집도 가깝구요 하하”
이렇게 해서 또 즉흥적으로 방향은 결정!
현준이 사는 천호동으로 행선지를 정하고 액셀을 밟는다.
번개 같이 막히지 않는 길을 내달린 차.. 금방 백화점 앞에 도착했고
주차장으로 들어서려는 찰나, 현준이 영애의 오른 손을 턱, 잡는다.
“그쪽이 아니구요.. 백화점 가자는 소리는 안했어요 히히”
“....? 그럼 뭐하게..?”
“여기 근처 아무데나 일단 세우세요. 커피숍을 가던지.. 내려서 산책해요 누나”
“쿡쿡.. 뭐야아.. 그러면 아까 오금동에서 그렇게 해도 되는 건데..”
“거기 좀 삭막한 동네던데.. 잘은 모르지만 하하..
그쪽보다야 이렇게 인파가 붐비는 동네가 훨 낫지 않아요?”
“맞아, 그건 네 말이 맞네.. 호호호. 나도 시끌벅적한데가 좋더라..”
사실 천호 3동의 사이 사이 골목길로 들어가다 보면..
모텔들이 우후죽순이다..
사람 많고 밝은 초저녁의 분위기를 즐기면서, 기분 좋은 산책도 하고..
저녁 바람을 맞으면서 상쾌하게 데이트를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술같은 걸 마시지 않아도, 대화하는 도중에 아까처럼 기회는 올 것이고,
그러면 틀림없이 오늘, 다시 생각지 못한 기회를 얻을 거라.. 확신하는 현준이었다.
“저기 콩다방 있네! 일단 들어가자. 키키킥”
“엥... 먼저는 걸어다니고 싶다고 얘기하시더니.. 하하하”
“내가 그랬어? 쿠쿠. 저녁이 되니까 따듯한게 마시고 싶거든.. 가자~”
“화이트 초콜릿 모카랑, 카페 라떼 둘다 미디움으로 주세요”
“초콜릿 모카는 뭐지? 사진 보니까 그게 더 땡겨요.. 헤헤”
“쿡쿡. 그럼 니가 그거 마셔.. 내가 라떼 마실게~”
“그래도 돼요..? 누나 정말 착하셔...
아, 누나 지금 흘러나오는 이 음악 제목 뭔지 혹시.. 아세요?
전에 우연히 들었는데.. 듣자마자 진짜 감동받았어요..”
현준은 영애가 다양한 팝음악에 대한 지식이 있다는 걸
익히 알고 있어서.. 이번에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물었다.
“이거...? 알고 있어.. 나도 좋아하는 곡이야..
뭐더라.... 무슨 옛날 영화 음악인데..
아..! 모베터 블루스야.. 모베터 블루스라는 영화 사운드 트랙일걸? 호호..
잔잔하게 깔리는 재즈음이 정말.. 기분을 아늑하게 녹여주지..
나는 이런 음악 들으면 어쩔 수 없나봐.. 눈물이 맺혀..
이 영화 1990년 껀데.. 덴젤 워싱턴이 주연으로 나와..
흑인들이 주연이라서 느낌이 편안하더라 오히려..
웨슬리 스나입스도 나올걸?”
“별 걸 다아네..?! 우와... 하나만 툭, 건드려도 잡다한 지식이 줄줄줄~~ 나오네요..?
덴젤 워싱턴.. 누구지.. 찾아봐야겠다.. 이름은 익숙해요.. 하하..
맞아.. 누나는 역시 나하고 감성이 비슷해요.. 그래서 좋아요..
모베터 블루스.. 고마워요, 꼭 기억하고 있어야지.. 히히..
이런 포근하고.. 사람을 달래주는 편안한 안식의 음악이 좋아요..”
“.............후후..”
“....왜 아무 말 없이 그냥 웃어요..? 흐흐”
“그냥.. 신기해서.. 너처럼 나랑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아직 한참 어리다면 어린 아이가..
이런 옛날 노래에 진한 감동을 받고.. 나랑 같은 감성을 지니다니..
......좋아서.. 호호.. 반가워서 웃었어..”
“뭐야~ 크크. 나 이래뵈도, 어릴 때는 뮤지션이 되고 싶었다구요...
작곡하는 것도 좋아하구...”
“어머.. 작곡도.. 할 줄 알아..?”
“....어, 말이 헛 나왔네.. 으음... 작곡을 배운 건 아니구요..
노래를 워낙 좋아하고 그러다보니.. 내가 스스로 음률..이라고 하나..
그런걸 머릿속에 악상을 그려보는 걸.. 좋아해요, 가끔은.. 하하..”
“호호호.... 그런 면이 있구나..? 작곡이라... 참 좋다.....”
영애는 생각했다.
이상하게 이 아이와 같이 있으면..
그렇게 지난 일주일간 죄책감에 두려워하고, 무서워 했던 감정들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편안해지는 느낌이 든다.
몸이 사뿐하게.. 가벼워지고..
걱정과 근심도 짧은 순간이지만, 머리에서 홀가분하게 떠나간다고 할까..
잠시의 마음의 피난처, 도피처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준상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었는데..
어째서.. 현준을 만나기만 하면 거짓말처럼 포근한 기분이.. 왜 들까..?
이 아이를 다시 만나서 마음을 주려고도 안했고..
얼굴만 봐도 두근거리는 감정이 되살아날 게 뻔하고, 무서웠다.
걱정을 많이 했었다..
아까 집 바로 앞에서 현준이 돌발 행동을 했을 때도..
차에 태우고 오금로를 달리는 내내 침묵을 지키던 시간에도..
영애는 현준이 무섭다는 생각도 했고,
역시 적당히 타이르고 돌려보내야겠어..
라고 어중간한 자기 마음 속의 타협을 하며.. 그를 공원으로 데려간 거였다.
진짜 그랬는데... 사람 마음이 가는 곳은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모양이다.
함께 있으면서 따듯한 이야기를 나누고..
편안하게 웃어주는 아들 또래의 미소를 보면
예전에 자기가 좋아했던.. 그 기억들이 떠오르고, 진솔한 감정이 피어난다..
그래, 생각났어.. 내가 현준이를 처음 보자마자 좋아하게..
바로 사랑을 예감할 수 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가..
영애는 희미했던 지난 날의 기억이, 서서히 또렷하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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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애-현준, 수경-지우 두 주인공 커플의 차분한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며 적어 보았습니다.
11부의 댓글에 대한 대답을 드립니다.
제가 마음에 두고 있는 주인공의 실제 모델이 있지만.. 그걸 알려드리면,
여러분 상상력이 제한되고 식어버려서 재미 없지 않으신가요? 하하
세명중에서 "30대 중반" 영애의 모델은 "내 딸 서영이" [이보영] 입니다.
그리고..
새벽에 [먹튀]만 하고 가시는 염치없는 분들께 화가 나 글을 적었습니다.
즐감하셨다면 [추천]을 눌러주시는 것이 최소한의 에티켓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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