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따듯하게 내리 쬐는 햇살이 기분 좋다.
신록이 아름답게 펼쳐진 봄날의 정경..
4월 중순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벚꽃이 거의 지고 있는 모습이 아쉽다.
시원한 바람에 잔잔하게 흩날리며
한 잎 한 잎 차분한 그림을 그리며 내려오는 벚꽃을 보고 있으면
마음도 왠지 푸근해진다.
영애는 학교 안에 들어와서 잠시 아름다운 벚꽃을 바라보며 넋을 잃고 서 있었다.
작은 학교지만 정갈한 깨끗한 분위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시계를 들여다보며 아직은 괜찮겠지.. 하고서 산책을 하며 꽂 향기를 마셔 보았다.
‘옛날 생각나네 후후. 이렇게 학교 분위기를 제대로 느껴본 적은 없었는데
오늘은 참관 수업 덕분에 이런 호사도 누려보고..’
괜스레 옛날 학창 시절 생각도 떠오르고 잠시 추억에 잠겨서
벚꽃이 우거진 나무들 아래를 걸어가는 여인의 뒷 모습이 참 아름답다.
영애는 작게 심호흡을 하고 교무실 문을 열었다.
“실례합니다.. 1학년 1반 김태식 선생님 계신가요?”
“안녕하세요. 어떻게 찾아오셨죠?”
“이쪽으로 오시죠! 제가 교감을 맡고 있는 최중훈이라고 합니다.
아이구 참, 윤선생님도. 오늘 오신 분이면 당연히 학부모 참관수업 때문이죠 허허”
“아 맞다.. 오늘부터 시작이었군요.. 죄송합니다.”
윤선생이라고 불린 젊은 남자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사라졌다.
최중훈 교감은 영애의 얼굴을 힐끗- 힐끗 바라보며 교무실을 나와서
조금 떨어져 있는 손님맞이 교실로 안내했다.
영애는 복도를 지나면서 눈을 마주치는 선생들과 가벼운 목례를 나누며 따라갔다.
손님맞이를 위한 접객실로 보이는 방은 의외로 규모가 큰 세미나 실이었다.
이미 드문 드문 여러명의 여자들이 앉아 있었다.
영애는 아들 지우의 중학교때만 생각하고 작은 골방같은(?) 상상을 하고 있다가
강의실 같은 규모를 보고 사실 무척 놀랐다.
“와아~~ 지우 어머니 오셨구나~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아주 반가운 말투로 다정하게 다가와 팔짱을 끼는 여인.
지우의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 민규 엄마였다.
그녀는 진심으로 반가워하며 환한 웃음 가득한 얼굴로 맞이해주었다.
“민규 어머니 안녕하세요! 호호. 오랜만에 뵈서 저도 너무나 반갑네요..
얼마만에 뵙는거죠? 저번에 백화점에서 우연히 본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요.”
영애는 지우의 담임 선생인 강태식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문화숙이라는 이름의 민규 어머니 옆에 나란히 앉았다.
곧 어느 정도 자리가 찬 것을 보자
김태식 선생은 앞의 단상으로 올라가 마이크를 손에 쥔다.
“안녕하세요. 1학년 1반의 담임을 맡은 강태식이라고 합니다.
다시 한번 오늘 오신 학부모님들께 인사드립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학부모들의 열화와 같은 뜨거운 박수소리가 울려퍼졌다.
나이가 젊어 보인다. 20대 중~후반? 30대 초반정도 되 보이는 젊은 얼굴에
꽤 남자답게 잘생긴 든든한 느낌의 호감형이다.
담임 선생님이 인사를 하며 간략한 자기 소개를 마치고 잠깐 뜸을 들인다.
그 짧은 사이에 화숙은 영애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귓속말로 말했다.
[지우 엄마. 선생님 참 잘생기시지 않았어요?
전 오늘 얼굴 처음 뵈었는데 의외로 젊고 멋있어 보이네요]
[그러네요.. 호호.. 성격도 씩씩하고 믿음직스러운 분 같아요.]
“현재 참석하신 학부모님들 숫자를 세어보니.. 마흔 분 모두 와주셨군요.
아직 한시 정각이 되지 않았지만, 이른 시간에 빠짐없이 전원 참석해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하하. 그럼, 지금부터 설명을 시작드리겠습니다”
영애는 차분히 선생님의 말을 경청하며, 그제서야 눈앞에 자리마다 놓여있는
음료수들과 몇가지 다과들을 보고- 출출해서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으.. 살 것 같다.. 급하게 나오느라 샌드위치 하나 먹었는데 배가 고파서 혼났네..’
내용은 뭐 간단했다.
사전에 나눠준 가정통신문대로, 한주에 한명씩 학부모들이 돌아가며 교실 강단에
서서 가르치고 싶은 내용과 주제를 자유롭게 선별하여 아이들과 나누면 된다.
그리고 담임의 인도에 따라 학부모들은 1학년 1반으로 이동하였다.
드르륵. 뒷문을 통하여 부모들은 미리 교실 뒤쪽에 준비된 의자에 착석했다.
당연히 아이들은 웅성- 웅성- 거리며 부모들을 보고 반가운 얼굴을 짓는다.
강태식 선생의 과목은 국사였다. 학생들은 선생의 지시대로 조용히 수업에 집중하였지만
조그만 목소리로 자기들끼리 조용조용 떠드는 소리는 어쩔 수 없었다.
지우는 엄마가 눈인사를 하며 방긋 웃으면서 손을 흔들자, 피식 웃으면서 작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뒷자리 창가에 앉은 지우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 비교적 자유롭게 뒤에 앉은 학부모들을 바라볼 수 있다.
힐끔 힐끔 어머니들의 얼굴을 구경하듯 훔쳐 본다.
‘오늘도 역시.. 단연 울 엄마가 튀는군... 제일 이쁜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오호.. 저 아줌마도 만만찮게 세련되고 이쁜데..?’
지우는 엄마의 단아한 미모에 괜히 즐거웠다.
40명의 학부모들 중에 남성은 단 세 명이고 나머지는 전부 여성이다.
지우와 마찬가지로, 학급의 절반을 차지하는 남학생들은 뒤에 앉아 있는 어머니들의
미모와 스타일을 몰래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개중에는 많은 어머니들 중에서 군계일학인 영애의 화려한 미모를 보고 놀라는 녀석도 물론 있다.
조심스럽게 보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자꾸만 자기 엄마를 대놓고
바라보는 몇 놈의 게슴츠레한 눈빛이 눈에 들어와서..
우쭐한 기분이 들면서도, 어째 좀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새끼들이.. 이쁜 건 알아갖구... 쳇..’
태식은 수업을 하다가 시계를 스윽- 보고 말했다.
“자, 오늘 수업은 일찍 끝내고..
학부모님들은 휴식시간이 지나면 아까 세미나 실로 2시 50분까지 와주시면 됩니다.”
수업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이 되자 지우는 엄마에게 다가갔다.
“오늘 안늦었어? 크크. 허둥대다가 지각했을 것 같아서 왠지 불안하더라.”
“킥킥. 제대로 일찍 왔거든? 차타고 오다가 길이 꼬여버리는 바람에
조금 위기는 왔지.. 헤헤. 우리 아들 아까 계속 보는데..
참 잘생겼더라 후후. 교복도 이쁘고.”
“뭐래.. 하핫. 그렇게 보이는건 엄마니까 그런 거야..
엄마야말로 아까 죽 내가 봤는데.. 진짜 이뻐 보이던걸?”
“에이.. 내가 네 엄마니까 그래 보이지.. 기분은 나쁘지 않네. 호호”
“아니야. 객관적으로 봐도 그렇다니까.. 내 눈은 정확하다구.
오늘 수수하게 입어서 보기도 좋더라. 헤헤”
“아이구 이쁜 말만 골라서 해주니까 참 고맙네요.. 사랑하는 우리 아들 호호.
에고.. 벌써 시간이 되었네. 가야겠다.
공부 열심히 하고 이따 집에서 보자 지우야?”
“응. 조심해서 가. 안녕~”
서둘러 교실을 나서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지우는 피식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덤벙거리는 버릇은 어떻게 안 고쳐지나.. 하하.’
다음 시간은 마지막 수업인 체육이다.
하필이면 시간표를 이따위로 짜놔서 운동장에서 한바탕 구른 뒤에 다시 들어와서 옷갈아 입고
집에 가는 패턴이 꽤나 불만이다.
체육복을 갈아 입고 교실을 나가는데, 친한 친구 기태가 어깨를 툭 쳤다.
“야. 나 아까 봤어. 너희 엄마 맞지?? 난 누나나 이모인줄 알았지 뭐야.. 대박 이쁘던데??”
“쿡쿡. 너희 엄마나 신경써.. 언제 그 짧은 사이에 훔쳐봤어?”
“훔쳐본건 아니지.. 대놓고.. 흠흠. 그냥 봐도 니네 엄마가 오늘 온 학부모중에서 젤 튀던데..
무슨 탤런트처럼 이쁘더라.. 어머니 몇 살이셔?”
“풉.. 니가 나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 이 새끼.. 큭큭.
나이? 나도 정확히 몰라 아직 마흔은 안됐지..”
“헉. 그렇다는 얘기는 서른 중반은 넘었다는 말이네... 우와... 진짜 동안이구나.
우리 엄마는 42인가로 기억하는데.”
“엄마가 나랑 스무살 차인가 그랬을 거야. 결혼을 일찍 하셨거든.”
“그래? 그래도 최소 서른 일곱 정도잖아. 대박이다.. 내가 5년 정도만 일찍 태어났어도
지금쯤 대학생이 돼서 멋지게~ 너희 엄니한테 데이트 신청하고 싶은데?”
“-.- 디질라고.. 허튼 소리 말고 얼른 나가기나 해”
체육 수업 시간에 그렇게 다가와서 말을 거는 사람은 기태 뿐이 아니었다.
그날 수업은 배드민턴이었는데, 몇 명의 아이들이 슬금 슬금 눈치를 보며
짬이 날 때 지우에게 다가와 엄마에 관해 물어보는 게 아닌가..
속으로 픽 웃으면서, 지우는 싫은 내색 없이 대꾸해주었다.
그리고 종례를 마친 시간.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학교 현관을 막 나서려고 하는 지우에게,
크게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휴~~ 헉..헉.. 너 무슨 걸음이 그렇게 빠르니? 쫓아오느라 힘들었다 얘.”
“수경아.. 무슨 일로.. 뛰어온 거야? 얼굴 빨개졌네 숨도 헥헥 거리고”
“그래~! 너 따라 잡으려고 운동장에서부터 뛰어 왔잖아 바보야.. 휴우..
지금 집에 가는 거야?”
“응. 오늘은 부활동도 없고.. 일찍 집에 가서 과외 숙제나 할려구.”
“흐음~ 나 오늘 아까 너희 어머니 봤어. 엄청 멋지시더라구..
같은 여자가 봐도 완전! 이쁘시고.. 킥.. 그래서 니가 잘 생겼구나.. 이해가 되더라”
“헤에.. 너 나 좋아하냐..?”
“뭐야? --.. 이 자식이..”
수경은 지우의 뒷통수를 탁- 때렸다.
터프한 구석이 있는 아이다. 시원 시원하고 화끈한 면이 있었다.
차수경. 지우의 1반 반장을 맡고 있는 그녀는 털털한 성격이고
리더다운 기질과 함께 사람의 마음을 잘 휘어잡는 카리스마도 가지고 있다.
성적은 물론 꾸준하게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수경이 학기초 반장선거에 나섰을 때 별 어려움 없이 쉽게 당선된 것은..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당시 20명의 남학생표가 몰표로 몰리다시피 했으니..
남자들 사이에서 수경의 인기는 절대적이었던 것이다.
여학생들도 수경은 대체로 평이 좋았고 두루 두루 모나지 않게 잘 대하는 성격 덕분에
모두가 그녀를 좋아했다.
그런 아이니 만큼 남학생들과도 스스럼 없이 잘 지내고
지우와도 평소에 편하게 대하는 사이인 편이다.
문제는 수 틀리면 가끔 지우를 편하게 여기고 때린다는 점..
“나.. 배고파아~~ 먹을 것 사줘...”
“너 돈 없어? -- 나 거의 차비밖에 안 남았는데.”
“아 그래.. 요즘은 차비가 만원정도 나오나? 아까 매점에 갔을 때 너 지갑에서
배춧잎 몇장 보인 것 같던데.. 오호호호”
“그.. 그거는... 니미..--.. 뭐 먹고 싶은데?”
“깔깔. 역시 넌 놀리기 쉽다니까. 그래서 좋아~~ 흐흐.
움.. 일단 잠실로 가자. 집 가는 길에 뭐 골라 보자구.”
“그래.. 아씨.. 돈 모아서 살 것 있는데 또 낚였네..”
"옳지 착하다.. 근데 좀 아까 뭐랬지? 욕은 하면 안돼~!!"
"시끄러.. 빨리 오기나 해"
저녁 8시쯤이 돼서야 지우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집에 왔다.
영애는 화사한 꽃무늬 타입의 에이프런을 걸치고,
기분 좋은 미소로 아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어서와 호호. 왜 이렇게 늦었어.. 오늘 학원도 안 가잖니?”
“에휴. 친구랑 잠실역 가서 밥 먹고 왔어..”
“그래? 그럼 미리 연락해주지 그랬어. 밥 다 해놨는데..”
“미안해 엄마.. 메뉴는 뭔데?”
“응! 오늘은 간단하게 메밀 국수 해놨어.”
“엇..? 그럼 얘기가 달라지지! 나 옷 좀 벗고 나올게”
후루룩 후룩-
메밀 국수를 워낙 좋아하는 지우는, 아까 먹은 밥은 이미 소화가 됐는지
거침없이 면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영애는 가히 빛의 속도로 먹어치우는 아들을 보고 재밌어하는 표정이다.
“잘 먹네.. 저녁 먹고 온 것 맞아..?”
“후루룹- 한창 먹을 나이잖.. 켁.. 푸붑”
“천천히 먹어 얘.. 사래 들렸네~ 야. 여기 물 마셔”
“콜록.. 으... 고마워. 후우..
아, 아까 그래서 참여 수업 어떻게 됐어?”
“아~ 또 가서 주의사항만 듣고 그랬지.. 금요일에 다시 오라던데? 뭐랬더라..
너희 담임 선생님이 아이템 알아서 짜갖고 오라드라. 교실에서 해도 되고~
필요한 경우는 재료나 장소 다 빌려주겠다고..”
“흐음~ 그래? 후루룩 쩝쩝”
“응. 근데 천천히 먹으면 안될까.. 다 흘리네. 이궁.. 친구는 누구 만났어?”
“친구? 있어.. 수경이라고.”
“응? 여자애야..??”
“어. 밥사달라고 기집애가 조르잖아 자꾸.. 전에도 사달라는 걸 튕겼더니..
오늘 어떻게 알고 쫓아와서 기어이 뜯기고 말았어..”
“푸하하~ 그럴 수도 있지.. 가끔씩 친구들이랑 밖에서 밥 먹으면 좋지.”
“그게 아니야.. 걔는 상습적으로 나한테서 늘 뭔가를 갈취해 가거든 --..”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지나서 금요일.
영애가 일일교사로 강단에 서기로 약속된 날이다.
영애는 전날 저녁 큰 아들이 뭐뭐 입으라고 알아서 골라준 대로..
아침이 되자 맞춰 입고 괜찮나.. 거울에 비춰보았다.
본인이 일부러 반 장난 삼아 어젯밤 지우에게
‘네가 원하는대로 학교에 입고 갈테니까 골라봐’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오전 10시. 적절한 시간에 학교에 도착한다.
집을 나설 때만 해도 크게 떨리거나 두려운 마음은 없었는데
학교에 도착하고 나니.. 교문을 들어설 때부터 이상하게 심장박동이
쿵-쾅-쿵-쾅 일렁이듯 요동치며 엄청 떨리는 거다.
‘왜 이렇게 떨리지..? 후우.. 청심환이라도 먹어야 할 기세네.. 에구구..’
영애는 차에서 내려 차분한 마음으로 호흡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몇 번 숨을 천천히.. 들이마쉬며 조금씩 진정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고..
차츰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자, 교사 쪽으로 걸어갔다.
타이트하게 달라붙는 검정색 미니스커트가 조금씩 신경 쓰인다.
상의는 귀여운 핑크빛이 감도는 산뜻한 기본 블라우스를 입었다.
세로 방향으로 스트라이프가 있는 옷이라서 스포티하고 어려보인다.
웃옷은 큰 불만이 없다.
그런데 하의는.. 어째서 지난 번에 왔을 때보다 훨 짧은 미니스커트에..
커피색 밴드 스타킹을 신고, 검은 하이힐을 신도록 주문한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뭐? 오히려 미니스커트를 입으라니 무슨 소리야..?]
[왜 어때서 그래? 짧고 시원해서 보기 좋구만.. 엄마 원래 좋아하잖아.]
[아니.. 그건 쇼핑 갈때나 얘기지.. 너 미쳤니?]
[하하하. 지극히 정상이니까 걱정마. 멋들어지게 보이고 싶잖아.
나도 은근히 엄마가 그렇게 보였으면 했다고 흐흐.. 그리고 내가
골라주는 대로 입겠다고 했잖아? 그럼 시키는 대로 입어.. 킥]
어제의 기억을 떠올리며 영애는 혹시 아들에게
엄마로 하여금 노출이 (그래봤자 조금인데..) 있는 옷을 입혀놓고
조금 난처해하는 모습을 즐기는.. 악취미가 있는 게 아닐까..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흥.. 못된 놈.. 엄마한테 어쩜 이럴 수가 있어..?
음.. 근데 보고 있으니.. 이쁘긴 하네.. 호호호’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집에서 봤을 때 보다는 아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며,
영애는 핸드폰을 꺼내어 강태식 선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냥 교무실로 향하면 되는데.. 월요일날 예비 참여 수업을 하러 왔을 당시에
담임 선생 왈 본인에게 먼저 당일날 도착하거든 전화를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아, 안녕하세요. 어머님 도착하셨나요?”
“네에.. 선생님. 지금 학교 주차장 근처예요. 어디에 계세요?”
“아하. 제가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어머님께서는 1층 현관으로 와주세요.”
태식은 영애를 현관에서 반갑게 맞이했다. 말쑥해 보이는 네이비 색 정장을 빼입은
모습이 근사하다. 영애는 잠시 그의 단정한 옷차림에 시선을 고정하였다.
“제 옷에.. 뭔가 묻었나요..?”
“아.. 그런게 아니예요.. 후훗. 그냥 정장이 멋지셔서요.”
“하하. 감사합니다. 아름다우신 지우 어머님을 뵙는데 조금이라도 잘 보이고 싶어서요.
헤헷. 그럼.. 아직 시간은 조금 여유 있으니까 카페로 가실까요?”
“까페라구요? 학교 밖으로 말씀이세요..?”
영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아, 죄송합니다. 교직원 식당에 붙어 있는 조그만 다과실이 있거든요. 하하..
저희는 그곳을 은어로 까페라고 부릅니다.”
“아하~ 그렇군요.”
조그만 다과실인 줄 알았는데 제법 넉넉한 규모의 분위기 괜찮은
말 그대로의 까페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공간이었다.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 하며..
아늑하고 편안한 쿠션과 테이블이 구비되어 있어서 일반의 커피숍과 비슷한 느낌이다.
‘호~ 이런 데가 있구나.. 좋다..
근데 이럴거면 뭐하러 그렇게 일찍 오라고 한거냐구? --..’
영애는 속마음과는 다르게.. 애써 환하게 웃으며 안내해주는 자리에 앉는다.
태식은 에스프레소 두 잔을 가져와서 영애에게 건넸다.
진하면서, 부드러운 향기가 좋은 커피였다.
천천히 한 모금 마신 뒤.. 영애는 마음이 푸근해는 걸 느꼈다.
“저, 그런데 어머님.. 교적부를 보니까 실례지만 올해 37세라고 되어 있으신데요..
정말 젊으셔서 사실은 그날 깜짝 놀랐습니다.. 하하”
“네.. 그런 말을 종종 듣고는 합니다만.. 호호.. 죄송합니다.
장난이예요.. 선생님께서도 아주 젊고 멋있으신 걸요?”
“감사합니다.. 하핫. 이렇게 아름다우신 어머님께서 칭찬해주시니까..
빈말이라도 기분이 괜히 날아갈 것 같은 걸요? 하하”
“어머, 빈말이라뇨..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서 말씀드린건데.. 호호.
그런데 선생님은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데요”
“옙. 저는 서른 셋입니다. 어머님보다 많이 어리니까 편하게 생각하셔도 돼요.”
“아.. 그렇게 안보였는데.. 20대 후반정도 같았어요..!”
“하하. 이거 참.. 기분 좋네요.. 감사합니다..”
좀 전에 만나서 대뜸 왠.. 교내에 까페를 가자고 했을 때에는
은연중에 담임 선생이긴 하지만 남자에 대해서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남자의 재밌는 화술을 들으며 정신없이 이야기를 주고 받다보니
영애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 매우 기분이 편안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로서의 강태식이 아닌, 아이의 교사로서의 선생님을 향한
호감이라는 것 만은 분명했다.
“음..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군요.. 아쉽네요. 되도록이면 아름다운 어머님과
즐거운 시간을 더 갖고 싶었는데.. 이제 일어나실까요?“
영애는 미소지으며 태식과 까페를 나와, 또각 또각 복도를 걸어갔다.
태식은 아까 다과실에서 영애와 대화를 나누는 내내..
그녀의 몸에서 풍겨오는 은은하고 맑은 향기와, 달콤한 체취에 푹 빠져 있었다.
이야기 하는 사이에.. 은근하게 눈길을 주지 않는 척 하면서
옷 맵시와 몸매가 끝내주는 그녀의 잘빠진 볼륨과..
아래로는 길고 아름다운 곡선을 자랑하는 멋진 다리를.. 열심히 훔쳐 보았다.
그래서 지금도 사실, 나란히 복도를 걸어가면서..
웃으면서 대화를 하는 사이 정말 무의식적으로,
연인처럼 자연스럽게 영애의 부드러운 팔을 어루만지며
팔짱을 끼고 싶은 욕구가 자꾸만 밀려와서..
스스로 자제심을 갖기가 무척 힘들었다.
‘저 풍만한 가슴이 팔에 닿으면 얼마나 짜릿하고 부드러울까... 흐흐....’
상상만 하는데도.. 사타구니가 그만 빳빳하게 곤두서는 바람에,
태식은 복도를 걷는 그 짧은 사이에도 두 세 번정도 바지를 가다듬어야 했다.
‘젠장할.. 자꾸 이런 생각하면 안되는데.. 이 아줌마를 보면 참기가 어렵다니까...’
속으로 아쉬운 입맛을 다시며..
도착하자 드르륵- 문이 열린다.
“자, 조용히 해! 오늘 일일교사를 하기로 한 학부모님 오셨다.
어머님. 인사 부탁드립니다. 편안하게 하세요.”
‘어라? 여기는 일반 교실이 아니잖아..! 허얼....’
당황스러운 영애.
문을 열고 보니, 교실이 아닌 조리 실습실이 아닌가.
가벼운 요리 레시피를 알려주겠다고 했을 뿐인데, 아예 실습실을 전세 낸 모양이다.
영애는 들어오기 전까지 두근 두근.. 떨리는 마음이 가시지 않았는데
막상 들어와서.. 실습실 내벽을 빙 둘러싸고 서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거짓말 같이- 죽을 만큼 긴장되던 두려움이.. 사르륵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하하.. 신기해라.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네..’
고개를 드니, 지우가 한가운데에서 엄마를 바라보고 있다가
모자의 눈이 서로 마주치자 ‘엄마 힘내!’라고 속으로 말하며 방긋 웃어준다.
그 격려의 눈빛을 보자, 영애는 힘이 절로 솟아나는 걸 느꼈다.
“안녕하세요.. 황 영애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호호”
그녀의 입이 열리고 옥구슬 흘러가는 낭랑한 목소리가 나옴과 동시에,
우렁찬 박수소리가 실습실을 떠들썩하게 뒤흔들 만큼 크게 터져나온다.
“우와와아아아~~~” 하는 소리에
영애는 얼떨떨..해서 껌뻑- 껌뻑거리며 아이들의 힘찬 반응을 보고 있었다.
“저, 선생님 이게 어떻게 된..?”
괜히 살짝 움츠러 들며 태식에게 SOS를 보내자 담임이 피식 웃는다.
“걱정마세요. 요녀석들 부모님이 오실때마다 이러긴 하지만..
오늘 같은 경우는 황영애 학부모님이 오시기 전부터 아이들이 기대감이 많았거든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이 웅성거리며 외친다.
“그래요~!! 선생님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헤헤 정말 예쁘고 늘씬하시네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모델 같으세요.. 완전 쭉쭉빵빵 근사해요~~!”
........
대충 이런 반응이다. 누가 애들 아니랄까봐..
너도 나도 앞다투어 그동안 하고 싶던 말과 질문들을 신나게 쏟아내는 학생들이다.
일단은 태식 선생이 “허, 흐흠!” 헛기침을 하며 탁-탁- 창문을 두드려
아이들의 광기(?)를 어떻게든 잠재워놓긴 하였다.
일단 에이프런을 두른 뒤,
준비되어 있는 편안한 쿠션 의자에 앉아서.. 일일 교사가 된 영애는
간단하게 집에서 해먹을 수 있는 요리 몇가지를 아이템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예상보다도
훨씬 더-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가 하는 말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똘망똘망하게 안광을 빛내면서 주의 깊게 경청하고 있었다.
이렇게 집중되는 시선이 부담될 법도 한데..
의외로 영애는 다소 무대체질이 있어서인지,
초반에 긴장했던 기색은 이미 온데 간데 사라지고.. 편안하게 아이들과 눈을
마주보면서 생긋- 웃어주었다.
원래 학부모의 일일교사 체험 시간만큼은..
그날 초대된 부모에게 모든 전권을 일임하고서,
담임 선생이 굳이 자리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심 영애에게 연모하는 마음을.. 아니
조금 사실적으로 표현하면, 흑심을 품고 있는 그가 자릴 비울 리가 있을까.
지우는 내심 엄마가 잘 진행할까 불안했는데, 너무나도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주자.. 안심하며 편하게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잘하겠지.. 똑 부러지는 엄마니까 하하.. 으..
내가 긴장이 돼서 한참 있었더니 졸음이 오네..’
말로 계속하여 학생들에게 설명을 늘어 놓던 영애.
이제 잠시 쉬면서 아이들의 직접 요리를 만들어보도록 시켜 본다.
아까전의 영애 한명만 둘러싸고 집단적으로 환호성을 보내고 들떴을 때와 달리,
지금은 학생들끼리 스스로 두세명씩 탁자를 두고 모여서
서툰 솜씨로나마 음식을 만드는 시간인 셈이다.
영애는 천천히 한 테이블 씩 돌아다니며, 미소 지은 얼굴로 지켜 보았다.
지우는 피곤했는지, 때마침 이런 시간에 머리를 의자에 묻고 자고 있었다.
‘헐... 내가 부끄러운가.. 어떻게 잠이 올 수가 있니 너는..??’
아들 놈이 대놓고 자는 모습이 황당해서 잠시 그 얼굴을 들여다보던 영애는..
피식 웃으며 애써 못본척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당연한 일이지만
황홀한 자태를 뽐내는.. S 라인의 근사한 여성이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면서, 길고 늘씬한 다리로
섹시한 멋을 뽐내며 걸어 다니는 모습을
순수한 눈빛으로 보지 않는 녀석들이 있었다.
그중의 한명은 주먹 좀 쓴다고 알려진.. 서주원 이라는 녀석이다.
이놈은 드러내놓고 사람들 앞에서 주먹을 과시하는 체질은 아닌데
사실 프로복서를 지망하고 있는 권투 매니아다.
중학교 때는 사람 꽤나 패고 다닌 모양인데..
고등학교에 들어오고 부터는 싸움을 접었다.
그렇지만 특유의 더러운 인상.. 때문인지 가끔씩 불필요한 오해도 받고
심심찮게 한판 붙자는 껄렁한 녀석들과 시비가 일어나기도 한다.
여하튼 이 녀석이 매의 눈으로 영애의 근사한 자태를 주시하고 있다.
다른 남학생들은 대놓고 쳐다볼 수 없어서 힐끔 거리며 영애가 지나갈때마다..
섹시한 모습을 몰래 보면서 얼굴을 붉히거나 군침을 삼켰지만..
이놈은 진짜 대놓고 초지일관 본다..!!
‘저년을 어떻게.. 자빠트릴 방법이 없나.. 아.. 꼴려 미치겠네..’
이미 머릿속으로는 황영애가 서주원의 성노리개가 되어서
온갖 능욕을 당하는 중이다..
이놈의 머릿속은 그녀와의 음탕한 짓으로 꽉 차있고,
눈에는 무서울 정도로 핏발이 곤두 서있으며..
아까부터 앉아 있어서 잘 티가 안날 뿐이지, 거기가 발기되서 바지가 터질 지경이었다.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영애는.. 뭣도 모르고 또각 또각 걸어와서는
하필이면, 주원의 정면으로 보이는 앞에 떡하니 서서 뒷태를 드러내며
그 자리에 서서 요리중인 학생들의 실습을 흥미롭게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의 모든 행동을 놓칠세라 사나운 눈매로
지켜보고 있던 주원이.. 드디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슬금 슬금 다가와 영애의 바로 뒤 가까이에 서서,
은근 슬쩍 그녀와 함께 앞 테이블의 요리를 내려다보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거친 숨결을 들키지 않으려고 조용하게 숨을 내쉬면서.
몹시도 흥분한 녀석은 조금이라도 영애의 짧은 스커트 아래로
자신의 발기한 물건을 들이대고 싶어서 낑- 낑- 거리며 몸부림을 친다.
그리고 그 모습은 약간 멀리서 보고 있던 최현준 이라는 이름의
남학생의 시야에 들어 왔다.
현준은 ‘저 놈이 뭐하는 거지? 설마...?’
하는 생각을 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살그머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는 주원의 생각이 어떤지 알길이 없었지만..
계속하여 욕정에 가득찬 빨간 눈으로 뒤에 바짝 붙어서 침을 흘리는 걸 보고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가까이 다가온 것이다.
“아주머니. 저 모르는 게 좀 있는데요..”
아줌마라고 부르는 소리에, 영애는 반가운 얼굴로 뒤를 돌아 본다.
그랬더니 뒤에는 두명의 건장한 두 남성이 서서 쳐다보고 있었다.
“누가 불렀니?”
영애는 부드럽게 눈웃음을 치며 말을 건넸다.
그녀가 돌아보자 욕정으로 몸이 실컷 달아올랐던 주원은 깜짝, 놀라서
차마 눈을 제대로 마주보지 못하고 애써 눈길을 돌린다.
반면 현준은 방긋 웃으며 영애와 이야기 한다.
“저예요. 잠깐 이쪽으로 와주실래요?”
“응, 뭔데.. 내가 직접 가서 봐줘야 하는 거야? 호호”
주원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현준이라는 놈은 예전에도 단 한번이지만, 처음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이들을 상대로 나름 거들먹거리려고 하는 찰나.. 멋지게 자기 앞을
가로막으며,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설전을 벌였던 녀석이다.
그때는 정말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밀려났었는데..
지금도 뭔가 낌새를 챘으니까, 저렇게 와서 방해하는 것 아닌가?
그 생각을 하자 주원은 알 수 없는 무서운 질투심과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존만한 새끼가.. 두고 보니까 아주 기어오르네...
폭력은 안쓰고 살자는 주의인데.. 이 씨발놈이 기어이 인내심을 건드는 구나...’
사소한 계기로 뚜껑이 제대로 열린 주원이다.
내심 억눌려 있던 그에 대한 열등감이 아주 작은 도화선으로 불붙어 버린 것이다.
현준 또한 영애에 대한 호감이 있었기에,
속으로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뒀다고 자신만만해 하면서..
조용한 구석의 소파에 영애와 나란히 앉아서 사근 사근 웃으면서 대화하고 있었다.
그 둘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천불이 나는 주원.
조용히 속에서 분노를 삭히며, 잠시 후 쉬는 시간을 대비하여
나름대로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따듯하게 내리 쬐는 햇살이 기분 좋다.
신록이 아름답게 펼쳐진 봄날의 정경..
4월 중순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벚꽃이 거의 지고 있는 모습이 아쉽다.
시원한 바람에 잔잔하게 흩날리며
한 잎 한 잎 차분한 그림을 그리며 내려오는 벚꽃을 보고 있으면
마음도 왠지 푸근해진다.
영애는 학교 안에 들어와서 잠시 아름다운 벚꽃을 바라보며 넋을 잃고 서 있었다.
작은 학교지만 정갈한 깨끗한 분위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시계를 들여다보며 아직은 괜찮겠지.. 하고서 산책을 하며 꽂 향기를 마셔 보았다.
‘옛날 생각나네 후후. 이렇게 학교 분위기를 제대로 느껴본 적은 없었는데
오늘은 참관 수업 덕분에 이런 호사도 누려보고..’
괜스레 옛날 학창 시절 생각도 떠오르고 잠시 추억에 잠겨서
벚꽃이 우거진 나무들 아래를 걸어가는 여인의 뒷 모습이 참 아름답다.
영애는 작게 심호흡을 하고 교무실 문을 열었다.
“실례합니다.. 1학년 1반 김태식 선생님 계신가요?”
“안녕하세요. 어떻게 찾아오셨죠?”
“이쪽으로 오시죠! 제가 교감을 맡고 있는 최중훈이라고 합니다.
아이구 참, 윤선생님도. 오늘 오신 분이면 당연히 학부모 참관수업 때문이죠 허허”
“아 맞다.. 오늘부터 시작이었군요.. 죄송합니다.”
윤선생이라고 불린 젊은 남자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사라졌다.
최중훈 교감은 영애의 얼굴을 힐끗- 힐끗 바라보며 교무실을 나와서
조금 떨어져 있는 손님맞이 교실로 안내했다.
영애는 복도를 지나면서 눈을 마주치는 선생들과 가벼운 목례를 나누며 따라갔다.
손님맞이를 위한 접객실로 보이는 방은 의외로 규모가 큰 세미나 실이었다.
이미 드문 드문 여러명의 여자들이 앉아 있었다.
영애는 아들 지우의 중학교때만 생각하고 작은 골방같은(?) 상상을 하고 있다가
강의실 같은 규모를 보고 사실 무척 놀랐다.
“와아~~ 지우 어머니 오셨구나~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아주 반가운 말투로 다정하게 다가와 팔짱을 끼는 여인.
지우의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 민규 엄마였다.
그녀는 진심으로 반가워하며 환한 웃음 가득한 얼굴로 맞이해주었다.
“민규 어머니 안녕하세요! 호호. 오랜만에 뵈서 저도 너무나 반갑네요..
얼마만에 뵙는거죠? 저번에 백화점에서 우연히 본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요.”
영애는 지우의 담임 선생인 강태식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문화숙이라는 이름의 민규 어머니 옆에 나란히 앉았다.
곧 어느 정도 자리가 찬 것을 보자
김태식 선생은 앞의 단상으로 올라가 마이크를 손에 쥔다.
“안녕하세요. 1학년 1반의 담임을 맡은 강태식이라고 합니다.
다시 한번 오늘 오신 학부모님들께 인사드립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학부모들의 열화와 같은 뜨거운 박수소리가 울려퍼졌다.
나이가 젊어 보인다. 20대 중~후반? 30대 초반정도 되 보이는 젊은 얼굴에
꽤 남자답게 잘생긴 든든한 느낌의 호감형이다.
담임 선생님이 인사를 하며 간략한 자기 소개를 마치고 잠깐 뜸을 들인다.
그 짧은 사이에 화숙은 영애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귓속말로 말했다.
[지우 엄마. 선생님 참 잘생기시지 않았어요?
전 오늘 얼굴 처음 뵈었는데 의외로 젊고 멋있어 보이네요]
[그러네요.. 호호.. 성격도 씩씩하고 믿음직스러운 분 같아요.]
“현재 참석하신 학부모님들 숫자를 세어보니.. 마흔 분 모두 와주셨군요.
아직 한시 정각이 되지 않았지만, 이른 시간에 빠짐없이 전원 참석해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하하. 그럼, 지금부터 설명을 시작드리겠습니다”
영애는 차분히 선생님의 말을 경청하며, 그제서야 눈앞에 자리마다 놓여있는
음료수들과 몇가지 다과들을 보고- 출출해서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으.. 살 것 같다.. 급하게 나오느라 샌드위치 하나 먹었는데 배가 고파서 혼났네..’
내용은 뭐 간단했다.
사전에 나눠준 가정통신문대로, 한주에 한명씩 학부모들이 돌아가며 교실 강단에
서서 가르치고 싶은 내용과 주제를 자유롭게 선별하여 아이들과 나누면 된다.
그리고 담임의 인도에 따라 학부모들은 1학년 1반으로 이동하였다.
드르륵. 뒷문을 통하여 부모들은 미리 교실 뒤쪽에 준비된 의자에 착석했다.
당연히 아이들은 웅성- 웅성- 거리며 부모들을 보고 반가운 얼굴을 짓는다.
강태식 선생의 과목은 국사였다. 학생들은 선생의 지시대로 조용히 수업에 집중하였지만
조그만 목소리로 자기들끼리 조용조용 떠드는 소리는 어쩔 수 없었다.
지우는 엄마가 눈인사를 하며 방긋 웃으면서 손을 흔들자, 피식 웃으면서 작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뒷자리 창가에 앉은 지우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 비교적 자유롭게 뒤에 앉은 학부모들을 바라볼 수 있다.
힐끔 힐끔 어머니들의 얼굴을 구경하듯 훔쳐 본다.
‘오늘도 역시.. 단연 울 엄마가 튀는군... 제일 이쁜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오호.. 저 아줌마도 만만찮게 세련되고 이쁜데..?’
지우는 엄마의 단아한 미모에 괜히 즐거웠다.
40명의 학부모들 중에 남성은 단 세 명이고 나머지는 전부 여성이다.
지우와 마찬가지로, 학급의 절반을 차지하는 남학생들은 뒤에 앉아 있는 어머니들의
미모와 스타일을 몰래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개중에는 많은 어머니들 중에서 군계일학인 영애의 화려한 미모를 보고 놀라는 녀석도 물론 있다.
조심스럽게 보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자꾸만 자기 엄마를 대놓고
바라보는 몇 놈의 게슴츠레한 눈빛이 눈에 들어와서..
우쭐한 기분이 들면서도, 어째 좀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새끼들이.. 이쁜 건 알아갖구... 쳇..’
태식은 수업을 하다가 시계를 스윽- 보고 말했다.
“자, 오늘 수업은 일찍 끝내고..
학부모님들은 휴식시간이 지나면 아까 세미나 실로 2시 50분까지 와주시면 됩니다.”
수업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이 되자 지우는 엄마에게 다가갔다.
“오늘 안늦었어? 크크. 허둥대다가 지각했을 것 같아서 왠지 불안하더라.”
“킥킥. 제대로 일찍 왔거든? 차타고 오다가 길이 꼬여버리는 바람에
조금 위기는 왔지.. 헤헤. 우리 아들 아까 계속 보는데..
참 잘생겼더라 후후. 교복도 이쁘고.”
“뭐래.. 하핫. 그렇게 보이는건 엄마니까 그런 거야..
엄마야말로 아까 죽 내가 봤는데.. 진짜 이뻐 보이던걸?”
“에이.. 내가 네 엄마니까 그래 보이지.. 기분은 나쁘지 않네. 호호”
“아니야. 객관적으로 봐도 그렇다니까.. 내 눈은 정확하다구.
오늘 수수하게 입어서 보기도 좋더라. 헤헤”
“아이구 이쁜 말만 골라서 해주니까 참 고맙네요.. 사랑하는 우리 아들 호호.
에고.. 벌써 시간이 되었네. 가야겠다.
공부 열심히 하고 이따 집에서 보자 지우야?”
“응. 조심해서 가. 안녕~”
서둘러 교실을 나서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지우는 피식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덤벙거리는 버릇은 어떻게 안 고쳐지나.. 하하.’
다음 시간은 마지막 수업인 체육이다.
하필이면 시간표를 이따위로 짜놔서 운동장에서 한바탕 구른 뒤에 다시 들어와서 옷갈아 입고
집에 가는 패턴이 꽤나 불만이다.
체육복을 갈아 입고 교실을 나가는데, 친한 친구 기태가 어깨를 툭 쳤다.
“야. 나 아까 봤어. 너희 엄마 맞지?? 난 누나나 이모인줄 알았지 뭐야.. 대박 이쁘던데??”
“쿡쿡. 너희 엄마나 신경써.. 언제 그 짧은 사이에 훔쳐봤어?”
“훔쳐본건 아니지.. 대놓고.. 흠흠. 그냥 봐도 니네 엄마가 오늘 온 학부모중에서 젤 튀던데..
무슨 탤런트처럼 이쁘더라.. 어머니 몇 살이셔?”
“풉.. 니가 나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 이 새끼.. 큭큭.
나이? 나도 정확히 몰라 아직 마흔은 안됐지..”
“헉. 그렇다는 얘기는 서른 중반은 넘었다는 말이네... 우와... 진짜 동안이구나.
우리 엄마는 42인가로 기억하는데.”
“엄마가 나랑 스무살 차인가 그랬을 거야. 결혼을 일찍 하셨거든.”
“그래? 그래도 최소 서른 일곱 정도잖아. 대박이다.. 내가 5년 정도만 일찍 태어났어도
지금쯤 대학생이 돼서 멋지게~ 너희 엄니한테 데이트 신청하고 싶은데?”
“-.- 디질라고.. 허튼 소리 말고 얼른 나가기나 해”
체육 수업 시간에 그렇게 다가와서 말을 거는 사람은 기태 뿐이 아니었다.
그날 수업은 배드민턴이었는데, 몇 명의 아이들이 슬금 슬금 눈치를 보며
짬이 날 때 지우에게 다가와 엄마에 관해 물어보는 게 아닌가..
속으로 픽 웃으면서, 지우는 싫은 내색 없이 대꾸해주었다.
그리고 종례를 마친 시간.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학교 현관을 막 나서려고 하는 지우에게,
크게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휴~~ 헉..헉.. 너 무슨 걸음이 그렇게 빠르니? 쫓아오느라 힘들었다 얘.”
“수경아.. 무슨 일로.. 뛰어온 거야? 얼굴 빨개졌네 숨도 헥헥 거리고”
“그래~! 너 따라 잡으려고 운동장에서부터 뛰어 왔잖아 바보야.. 휴우..
지금 집에 가는 거야?”
“응. 오늘은 부활동도 없고.. 일찍 집에 가서 과외 숙제나 할려구.”
“흐음~ 나 오늘 아까 너희 어머니 봤어. 엄청 멋지시더라구..
같은 여자가 봐도 완전! 이쁘시고.. 킥.. 그래서 니가 잘 생겼구나.. 이해가 되더라”
“헤에.. 너 나 좋아하냐..?”
“뭐야? --.. 이 자식이..”
수경은 지우의 뒷통수를 탁- 때렸다.
터프한 구석이 있는 아이다. 시원 시원하고 화끈한 면이 있었다.
차수경. 지우의 1반 반장을 맡고 있는 그녀는 털털한 성격이고
리더다운 기질과 함께 사람의 마음을 잘 휘어잡는 카리스마도 가지고 있다.
성적은 물론 꾸준하게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수경이 학기초 반장선거에 나섰을 때 별 어려움 없이 쉽게 당선된 것은..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당시 20명의 남학생표가 몰표로 몰리다시피 했으니..
남자들 사이에서 수경의 인기는 절대적이었던 것이다.
여학생들도 수경은 대체로 평이 좋았고 두루 두루 모나지 않게 잘 대하는 성격 덕분에
모두가 그녀를 좋아했다.
그런 아이니 만큼 남학생들과도 스스럼 없이 잘 지내고
지우와도 평소에 편하게 대하는 사이인 편이다.
문제는 수 틀리면 가끔 지우를 편하게 여기고 때린다는 점..
“나.. 배고파아~~ 먹을 것 사줘...”
“너 돈 없어? -- 나 거의 차비밖에 안 남았는데.”
“아 그래.. 요즘은 차비가 만원정도 나오나? 아까 매점에 갔을 때 너 지갑에서
배춧잎 몇장 보인 것 같던데.. 오호호호”
“그.. 그거는... 니미..--.. 뭐 먹고 싶은데?”
“깔깔. 역시 넌 놀리기 쉽다니까. 그래서 좋아~~ 흐흐.
움.. 일단 잠실로 가자. 집 가는 길에 뭐 골라 보자구.”
“그래.. 아씨.. 돈 모아서 살 것 있는데 또 낚였네..”
"옳지 착하다.. 근데 좀 아까 뭐랬지? 욕은 하면 안돼~!!"
"시끄러.. 빨리 오기나 해"
저녁 8시쯤이 돼서야 지우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집에 왔다.
영애는 화사한 꽃무늬 타입의 에이프런을 걸치고,
기분 좋은 미소로 아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어서와 호호. 왜 이렇게 늦었어.. 오늘 학원도 안 가잖니?”
“에휴. 친구랑 잠실역 가서 밥 먹고 왔어..”
“그래? 그럼 미리 연락해주지 그랬어. 밥 다 해놨는데..”
“미안해 엄마.. 메뉴는 뭔데?”
“응! 오늘은 간단하게 메밀 국수 해놨어.”
“엇..? 그럼 얘기가 달라지지! 나 옷 좀 벗고 나올게”
후루룩 후룩-
메밀 국수를 워낙 좋아하는 지우는, 아까 먹은 밥은 이미 소화가 됐는지
거침없이 면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영애는 가히 빛의 속도로 먹어치우는 아들을 보고 재밌어하는 표정이다.
“잘 먹네.. 저녁 먹고 온 것 맞아..?”
“후루룹- 한창 먹을 나이잖.. 켁.. 푸붑”
“천천히 먹어 얘.. 사래 들렸네~ 야. 여기 물 마셔”
“콜록.. 으... 고마워. 후우..
아, 아까 그래서 참여 수업 어떻게 됐어?”
“아~ 또 가서 주의사항만 듣고 그랬지.. 금요일에 다시 오라던데? 뭐랬더라..
너희 담임 선생님이 아이템 알아서 짜갖고 오라드라. 교실에서 해도 되고~
필요한 경우는 재료나 장소 다 빌려주겠다고..”
“흐음~ 그래? 후루룩 쩝쩝”
“응. 근데 천천히 먹으면 안될까.. 다 흘리네. 이궁.. 친구는 누구 만났어?”
“친구? 있어.. 수경이라고.”
“응? 여자애야..??”
“어. 밥사달라고 기집애가 조르잖아 자꾸.. 전에도 사달라는 걸 튕겼더니..
오늘 어떻게 알고 쫓아와서 기어이 뜯기고 말았어..”
“푸하하~ 그럴 수도 있지.. 가끔씩 친구들이랑 밖에서 밥 먹으면 좋지.”
“그게 아니야.. 걔는 상습적으로 나한테서 늘 뭔가를 갈취해 가거든 --..”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지나서 금요일.
영애가 일일교사로 강단에 서기로 약속된 날이다.
영애는 전날 저녁 큰 아들이 뭐뭐 입으라고 알아서 골라준 대로..
아침이 되자 맞춰 입고 괜찮나.. 거울에 비춰보았다.
본인이 일부러 반 장난 삼아 어젯밤 지우에게
‘네가 원하는대로 학교에 입고 갈테니까 골라봐’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오전 10시. 적절한 시간에 학교에 도착한다.
집을 나설 때만 해도 크게 떨리거나 두려운 마음은 없었는데
학교에 도착하고 나니.. 교문을 들어설 때부터 이상하게 심장박동이
쿵-쾅-쿵-쾅 일렁이듯 요동치며 엄청 떨리는 거다.
‘왜 이렇게 떨리지..? 후우.. 청심환이라도 먹어야 할 기세네.. 에구구..’
영애는 차에서 내려 차분한 마음으로 호흡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몇 번 숨을 천천히.. 들이마쉬며 조금씩 진정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고..
차츰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자, 교사 쪽으로 걸어갔다.
타이트하게 달라붙는 검정색 미니스커트가 조금씩 신경 쓰인다.
상의는 귀여운 핑크빛이 감도는 산뜻한 기본 블라우스를 입었다.
세로 방향으로 스트라이프가 있는 옷이라서 스포티하고 어려보인다.
웃옷은 큰 불만이 없다.
그런데 하의는.. 어째서 지난 번에 왔을 때보다 훨 짧은 미니스커트에..
커피색 밴드 스타킹을 신고, 검은 하이힐을 신도록 주문한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뭐? 오히려 미니스커트를 입으라니 무슨 소리야..?]
[왜 어때서 그래? 짧고 시원해서 보기 좋구만.. 엄마 원래 좋아하잖아.]
[아니.. 그건 쇼핑 갈때나 얘기지.. 너 미쳤니?]
[하하하. 지극히 정상이니까 걱정마. 멋들어지게 보이고 싶잖아.
나도 은근히 엄마가 그렇게 보였으면 했다고 흐흐.. 그리고 내가
골라주는 대로 입겠다고 했잖아? 그럼 시키는 대로 입어.. 킥]
어제의 기억을 떠올리며 영애는 혹시 아들에게
엄마로 하여금 노출이 (그래봤자 조금인데..) 있는 옷을 입혀놓고
조금 난처해하는 모습을 즐기는.. 악취미가 있는 게 아닐까..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흥.. 못된 놈.. 엄마한테 어쩜 이럴 수가 있어..?
음.. 근데 보고 있으니.. 이쁘긴 하네.. 호호호’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집에서 봤을 때 보다는 아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며,
영애는 핸드폰을 꺼내어 강태식 선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냥 교무실로 향하면 되는데.. 월요일날 예비 참여 수업을 하러 왔을 당시에
담임 선생 왈 본인에게 먼저 당일날 도착하거든 전화를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아, 안녕하세요. 어머님 도착하셨나요?”
“네에.. 선생님. 지금 학교 주차장 근처예요. 어디에 계세요?”
“아하. 제가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어머님께서는 1층 현관으로 와주세요.”
태식은 영애를 현관에서 반갑게 맞이했다. 말쑥해 보이는 네이비 색 정장을 빼입은
모습이 근사하다. 영애는 잠시 그의 단정한 옷차림에 시선을 고정하였다.
“제 옷에.. 뭔가 묻었나요..?”
“아.. 그런게 아니예요.. 후훗. 그냥 정장이 멋지셔서요.”
“하하. 감사합니다. 아름다우신 지우 어머님을 뵙는데 조금이라도 잘 보이고 싶어서요.
헤헷. 그럼.. 아직 시간은 조금 여유 있으니까 카페로 가실까요?”
“까페라구요? 학교 밖으로 말씀이세요..?”
영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아, 죄송합니다. 교직원 식당에 붙어 있는 조그만 다과실이 있거든요. 하하..
저희는 그곳을 은어로 까페라고 부릅니다.”
“아하~ 그렇군요.”
조그만 다과실인 줄 알았는데 제법 넉넉한 규모의 분위기 괜찮은
말 그대로의 까페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공간이었다.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 하며..
아늑하고 편안한 쿠션과 테이블이 구비되어 있어서 일반의 커피숍과 비슷한 느낌이다.
‘호~ 이런 데가 있구나.. 좋다..
근데 이럴거면 뭐하러 그렇게 일찍 오라고 한거냐구? --..’
영애는 속마음과는 다르게.. 애써 환하게 웃으며 안내해주는 자리에 앉는다.
태식은 에스프레소 두 잔을 가져와서 영애에게 건넸다.
진하면서, 부드러운 향기가 좋은 커피였다.
천천히 한 모금 마신 뒤.. 영애는 마음이 푸근해는 걸 느꼈다.
“저, 그런데 어머님.. 교적부를 보니까 실례지만 올해 37세라고 되어 있으신데요..
정말 젊으셔서 사실은 그날 깜짝 놀랐습니다.. 하하”
“네.. 그런 말을 종종 듣고는 합니다만.. 호호.. 죄송합니다.
장난이예요.. 선생님께서도 아주 젊고 멋있으신 걸요?”
“감사합니다.. 하핫. 이렇게 아름다우신 어머님께서 칭찬해주시니까..
빈말이라도 기분이 괜히 날아갈 것 같은 걸요? 하하”
“어머, 빈말이라뇨..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서 말씀드린건데.. 호호.
그런데 선생님은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데요”
“옙. 저는 서른 셋입니다. 어머님보다 많이 어리니까 편하게 생각하셔도 돼요.”
“아.. 그렇게 안보였는데.. 20대 후반정도 같았어요..!”
“하하. 이거 참.. 기분 좋네요.. 감사합니다..”
좀 전에 만나서 대뜸 왠.. 교내에 까페를 가자고 했을 때에는
은연중에 담임 선생이긴 하지만 남자에 대해서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남자의 재밌는 화술을 들으며 정신없이 이야기를 주고 받다보니
영애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 매우 기분이 편안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로서의 강태식이 아닌, 아이의 교사로서의 선생님을 향한
호감이라는 것 만은 분명했다.
“음..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군요.. 아쉽네요. 되도록이면 아름다운 어머님과
즐거운 시간을 더 갖고 싶었는데.. 이제 일어나실까요?“
영애는 미소지으며 태식과 까페를 나와, 또각 또각 복도를 걸어갔다.
태식은 아까 다과실에서 영애와 대화를 나누는 내내..
그녀의 몸에서 풍겨오는 은은하고 맑은 향기와, 달콤한 체취에 푹 빠져 있었다.
이야기 하는 사이에.. 은근하게 눈길을 주지 않는 척 하면서
옷 맵시와 몸매가 끝내주는 그녀의 잘빠진 볼륨과..
아래로는 길고 아름다운 곡선을 자랑하는 멋진 다리를.. 열심히 훔쳐 보았다.
그래서 지금도 사실, 나란히 복도를 걸어가면서..
웃으면서 대화를 하는 사이 정말 무의식적으로,
연인처럼 자연스럽게 영애의 부드러운 팔을 어루만지며
팔짱을 끼고 싶은 욕구가 자꾸만 밀려와서..
스스로 자제심을 갖기가 무척 힘들었다.
‘저 풍만한 가슴이 팔에 닿으면 얼마나 짜릿하고 부드러울까... 흐흐....’
상상만 하는데도.. 사타구니가 그만 빳빳하게 곤두서는 바람에,
태식은 복도를 걷는 그 짧은 사이에도 두 세 번정도 바지를 가다듬어야 했다.
‘젠장할.. 자꾸 이런 생각하면 안되는데.. 이 아줌마를 보면 참기가 어렵다니까...’
속으로 아쉬운 입맛을 다시며..
도착하자 드르륵- 문이 열린다.
“자, 조용히 해! 오늘 일일교사를 하기로 한 학부모님 오셨다.
어머님. 인사 부탁드립니다. 편안하게 하세요.”
‘어라? 여기는 일반 교실이 아니잖아..! 허얼....’
당황스러운 영애.
문을 열고 보니, 교실이 아닌 조리 실습실이 아닌가.
가벼운 요리 레시피를 알려주겠다고 했을 뿐인데, 아예 실습실을 전세 낸 모양이다.
영애는 들어오기 전까지 두근 두근.. 떨리는 마음이 가시지 않았는데
막상 들어와서.. 실습실 내벽을 빙 둘러싸고 서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거짓말 같이- 죽을 만큼 긴장되던 두려움이.. 사르륵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하하.. 신기해라.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네..’
고개를 드니, 지우가 한가운데에서 엄마를 바라보고 있다가
모자의 눈이 서로 마주치자 ‘엄마 힘내!’라고 속으로 말하며 방긋 웃어준다.
그 격려의 눈빛을 보자, 영애는 힘이 절로 솟아나는 걸 느꼈다.
“안녕하세요.. 황 영애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호호”
그녀의 입이 열리고 옥구슬 흘러가는 낭랑한 목소리가 나옴과 동시에,
우렁찬 박수소리가 실습실을 떠들썩하게 뒤흔들 만큼 크게 터져나온다.
“우와와아아아~~~” 하는 소리에
영애는 얼떨떨..해서 껌뻑- 껌뻑거리며 아이들의 힘찬 반응을 보고 있었다.
“저, 선생님 이게 어떻게 된..?”
괜히 살짝 움츠러 들며 태식에게 SOS를 보내자 담임이 피식 웃는다.
“걱정마세요. 요녀석들 부모님이 오실때마다 이러긴 하지만..
오늘 같은 경우는 황영애 학부모님이 오시기 전부터 아이들이 기대감이 많았거든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이 웅성거리며 외친다.
“그래요~!! 선생님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헤헤 정말 예쁘고 늘씬하시네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모델 같으세요.. 완전 쭉쭉빵빵 근사해요~~!”
........
대충 이런 반응이다. 누가 애들 아니랄까봐..
너도 나도 앞다투어 그동안 하고 싶던 말과 질문들을 신나게 쏟아내는 학생들이다.
일단은 태식 선생이 “허, 흐흠!” 헛기침을 하며 탁-탁- 창문을 두드려
아이들의 광기(?)를 어떻게든 잠재워놓긴 하였다.
일단 에이프런을 두른 뒤,
준비되어 있는 편안한 쿠션 의자에 앉아서.. 일일 교사가 된 영애는
간단하게 집에서 해먹을 수 있는 요리 몇가지를 아이템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예상보다도
훨씬 더-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가 하는 말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똘망똘망하게 안광을 빛내면서 주의 깊게 경청하고 있었다.
이렇게 집중되는 시선이 부담될 법도 한데..
의외로 영애는 다소 무대체질이 있어서인지,
초반에 긴장했던 기색은 이미 온데 간데 사라지고.. 편안하게 아이들과 눈을
마주보면서 생긋- 웃어주었다.
원래 학부모의 일일교사 체험 시간만큼은..
그날 초대된 부모에게 모든 전권을 일임하고서,
담임 선생이 굳이 자리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심 영애에게 연모하는 마음을.. 아니
조금 사실적으로 표현하면, 흑심을 품고 있는 그가 자릴 비울 리가 있을까.
지우는 내심 엄마가 잘 진행할까 불안했는데, 너무나도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주자.. 안심하며 편하게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잘하겠지.. 똑 부러지는 엄마니까 하하.. 으..
내가 긴장이 돼서 한참 있었더니 졸음이 오네..’
말로 계속하여 학생들에게 설명을 늘어 놓던 영애.
이제 잠시 쉬면서 아이들의 직접 요리를 만들어보도록 시켜 본다.
아까전의 영애 한명만 둘러싸고 집단적으로 환호성을 보내고 들떴을 때와 달리,
지금은 학생들끼리 스스로 두세명씩 탁자를 두고 모여서
서툰 솜씨로나마 음식을 만드는 시간인 셈이다.
영애는 천천히 한 테이블 씩 돌아다니며, 미소 지은 얼굴로 지켜 보았다.
지우는 피곤했는지, 때마침 이런 시간에 머리를 의자에 묻고 자고 있었다.
‘헐... 내가 부끄러운가.. 어떻게 잠이 올 수가 있니 너는..??’
아들 놈이 대놓고 자는 모습이 황당해서 잠시 그 얼굴을 들여다보던 영애는..
피식 웃으며 애써 못본척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당연한 일이지만
황홀한 자태를 뽐내는.. S 라인의 근사한 여성이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면서, 길고 늘씬한 다리로
섹시한 멋을 뽐내며 걸어 다니는 모습을
순수한 눈빛으로 보지 않는 녀석들이 있었다.
그중의 한명은 주먹 좀 쓴다고 알려진.. 서주원 이라는 녀석이다.
이놈은 드러내놓고 사람들 앞에서 주먹을 과시하는 체질은 아닌데
사실 프로복서를 지망하고 있는 권투 매니아다.
중학교 때는 사람 꽤나 패고 다닌 모양인데..
고등학교에 들어오고 부터는 싸움을 접었다.
그렇지만 특유의 더러운 인상.. 때문인지 가끔씩 불필요한 오해도 받고
심심찮게 한판 붙자는 껄렁한 녀석들과 시비가 일어나기도 한다.
여하튼 이 녀석이 매의 눈으로 영애의 근사한 자태를 주시하고 있다.
다른 남학생들은 대놓고 쳐다볼 수 없어서 힐끔 거리며 영애가 지나갈때마다..
섹시한 모습을 몰래 보면서 얼굴을 붉히거나 군침을 삼켰지만..
이놈은 진짜 대놓고 초지일관 본다..!!
‘저년을 어떻게.. 자빠트릴 방법이 없나.. 아.. 꼴려 미치겠네..’
이미 머릿속으로는 황영애가 서주원의 성노리개가 되어서
온갖 능욕을 당하는 중이다..
이놈의 머릿속은 그녀와의 음탕한 짓으로 꽉 차있고,
눈에는 무서울 정도로 핏발이 곤두 서있으며..
아까부터 앉아 있어서 잘 티가 안날 뿐이지, 거기가 발기되서 바지가 터질 지경이었다.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영애는.. 뭣도 모르고 또각 또각 걸어와서는
하필이면, 주원의 정면으로 보이는 앞에 떡하니 서서 뒷태를 드러내며
그 자리에 서서 요리중인 학생들의 실습을 흥미롭게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의 모든 행동을 놓칠세라 사나운 눈매로
지켜보고 있던 주원이.. 드디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슬금 슬금 다가와 영애의 바로 뒤 가까이에 서서,
은근 슬쩍 그녀와 함께 앞 테이블의 요리를 내려다보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거친 숨결을 들키지 않으려고 조용하게 숨을 내쉬면서.
몹시도 흥분한 녀석은 조금이라도 영애의 짧은 스커트 아래로
자신의 발기한 물건을 들이대고 싶어서 낑- 낑- 거리며 몸부림을 친다.
그리고 그 모습은 약간 멀리서 보고 있던 최현준 이라는 이름의
남학생의 시야에 들어 왔다.
현준은 ‘저 놈이 뭐하는 거지? 설마...?’
하는 생각을 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살그머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는 주원의 생각이 어떤지 알길이 없었지만..
계속하여 욕정에 가득찬 빨간 눈으로 뒤에 바짝 붙어서 침을 흘리는 걸 보고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가까이 다가온 것이다.
“아주머니. 저 모르는 게 좀 있는데요..”
아줌마라고 부르는 소리에, 영애는 반가운 얼굴로 뒤를 돌아 본다.
그랬더니 뒤에는 두명의 건장한 두 남성이 서서 쳐다보고 있었다.
“누가 불렀니?”
영애는 부드럽게 눈웃음을 치며 말을 건넸다.
그녀가 돌아보자 욕정으로 몸이 실컷 달아올랐던 주원은 깜짝, 놀라서
차마 눈을 제대로 마주보지 못하고 애써 눈길을 돌린다.
반면 현준은 방긋 웃으며 영애와 이야기 한다.
“저예요. 잠깐 이쪽으로 와주실래요?”
“응, 뭔데.. 내가 직접 가서 봐줘야 하는 거야? 호호”
주원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현준이라는 놈은 예전에도 단 한번이지만, 처음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이들을 상대로 나름 거들먹거리려고 하는 찰나.. 멋지게 자기 앞을
가로막으며,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설전을 벌였던 녀석이다.
그때는 정말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밀려났었는데..
지금도 뭔가 낌새를 챘으니까, 저렇게 와서 방해하는 것 아닌가?
그 생각을 하자 주원은 알 수 없는 무서운 질투심과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존만한 새끼가.. 두고 보니까 아주 기어오르네...
폭력은 안쓰고 살자는 주의인데.. 이 씨발놈이 기어이 인내심을 건드는 구나...’
사소한 계기로 뚜껑이 제대로 열린 주원이다.
내심 억눌려 있던 그에 대한 열등감이 아주 작은 도화선으로 불붙어 버린 것이다.
현준 또한 영애에 대한 호감이 있었기에,
속으로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뒀다고 자신만만해 하면서..
조용한 구석의 소파에 영애와 나란히 앉아서 사근 사근 웃으면서 대화하고 있었다.
그 둘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천불이 나는 주원.
조용히 속에서 분노를 삭히며, 잠시 후 쉬는 시간을 대비하여
나름대로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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