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와 터덜터덜 피시방으로 향하던 민기는 벨소리를 듣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걸음을 멈추고 액정화면을 들여다 본 그는 다시 발신자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분명히 그가 잊고 있었던 장 미랑의 휴대폰 번호였다. 호주에 있을 그녀가 온 것이었다. 망설이던 그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미랑의 낭랑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저에요! 요즘 재미있으세요?”
“아......!? 미랑이!”
“재혼했다면서........”
“..........”
민기는 반갑기도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미랑을 만났을 때와는 달리 그는 엄연히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왠지 두렵기도 해서 망설였다. 잠시 정지된 순간이 지나고 미랑의 당돌한 목소리가 다시 흘러 나왔다.
“오늘 만나요!”
“.........”
“왜, 싫어요? 재혼한 여자가 있어서 나올 수 없어요?”
“그,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저녁 7시에 무교동 XX일식집에서 기다릴게요.”
“............”
민기가 미랑과 같이 갔었던 음식점이었다. 난처해진 민기가 망설이며 대답도 하기 전에 미랑은 전화를 끊었다. 피시방에 들어간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왠지 시간이 갈수록 멀어지는 아내가 불안한 그에게 미랑의 습기어린 목소리는 뿌리칠 수없는 유혹이었다. 그는 어차피 운명을 같이 할 수없는 미랑과는 마지막 만남이라고 스스로 변명을 했다.
미랑을 만나려고 결심을 굳힌 민기는 옷을 갈아입으려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열려있는 은주의 방을 힐끔 바라봤다. 며칠 동안 외출을 하지 않은 은주는 여전히 팬티 차림으로 엎드려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옷을 갈아입고 나서려는데 은주가 쪼르르 나왔다.
“아저씨 어디 가려고......!?”
“친구 초상집에........”
변명을 하는 민기를 은주가 의혹어린 눈빛으로 빤히 쳐다봤다. 그가 현관으로 가니 은주가 쫓아와서 섰다. 그가 구두를 신는 모습을 그녀가 쳐다보고 서 있었다. 그는 은주의 시선을 느끼면서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피시방 뒤의 주차장으로 가려던 그는 발걸음을 돌려 대로로 나갔다. 술이라도 마셔야 할 것 같은 주차되어 있는 택시 문을 열고 올라탔다.
민기가 약속 장소인 일식집으로 들어가니 구석진 곳에 앉아있던 미랑이 손을 흔들었다. 그는 그녀가 반가우면서도 정색을 하였다. 미리 와서 기다리던 그녀는 정종 한잔을 마신 상태였다. 외국생활을 해서인지 그녀는 이국적인 분위기가 흘렀다. 배시시 미소를 지었던 그녀가 뽀로통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더, 훤해 졌네요. 여자가 잘해 주나 봐요.”
“잘해주기는........”
씁쓸한 미소를 지은 민기가 손짓을 해서 종업원을 불렀다. 종업원이 다가오고 그는 미랑에게 주문을 시키라고 했다. 종업원에게 음식을 주문한 그녀가 그의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여 두리번거리던 그녀가 바짝 다가앉아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민기가 은랑이 내미는 입술에 키스를 했다. 그들은 말이 필요 없이 서로의 표정만으로도 감정을 알 수 있었다. 짙은 속눈썹을 깜박인 그녀가 그의 팔을 잡아 자신의 허리를 감싸게 했다. 주문한 음식이 탁자 위에 놓이고 그들은 서로의 잔을 채워 주었다. 술을 마시기 시작한 그녀는 호주에서의 생활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술기운에 다시 옛날의 분위기로 돌아간 그들에게 어색함은 없었다. 술이 얼큰해진 민기가 미랑의 허리를 감쌌던 손을 블라우스 속으로 밀어 넣었다. 브래지어 밑으로 들어간 그의 손에 그녀의 젖가슴이 움켜쥐어졌다. 그녀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탁자에 팔을 의지하고 가슴을 감추었다.
종알거리며 말을 하던 미랑은 그의 손가락이 젖꼭지 돌기를 거칠게 누르는 아픔에 입술을 벌렸다. 말을 중단한 그녀는 그를 쳐다보며 하얗게 눈을 흘겼다. 그러나 그는 입가에 웃음을 띠며 여전히 그녀의 젖꼭지를 주물렀다. 다시 말을 시작한 그녀는 짜릿한 쾌감에 이따금 흠칫하였다. 그녀의 말을 듣고만 있던 그가 넌지시 물었다.
“아주, 들어 온 거야?”
“아뇨! 친정 엄마 생일이라 잠시 들어 왔는데, 모레 갈 거예요
“애, 아빠하고는......?”
“곧, 이혼 판결 날 거예요. 혼자 사는 게 편해요.”
그들은 부담 없이 얘기들을 나누면서 술을 마셨다. 그들이 일식집을 나오니 어둠이 짙은 하늘에서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고 호텔로 들어갔다. 미랑은 스스로 발가벗고 침대위로 올라갔다. 그녀는 옷을 벗고 침대에 눕는 민기의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나, 잊었었지요?”
“글쎄........!? 랑이가 나를 잊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
“피 잇~!”
민기가 삐죽 내미는 미랑의 입술을 덮쳤다. 발가벗은 그녀는 발정 난 암고양이처럼 그에게 매달렸다. 이미 서로의 성감대에 익숙한 그들은 뜨거운 호흡을 흘렸다. 그는 그녀의 몸이 더 매끄럽고 탄력이 넘친다고 느꼈다. 그의 손길이 그녀의 알몸을 샅샅이 누비고 다녔다. 그의 혀와 입김이 닿을 때마다 그녀는 몸을 비틀며 터져 나오는 신음을 흘렸다.
“으 흡! 아......! 보고 싶었어요.”
“나도.......”
요염한 눈빛으로 희열을 갈구하는 미랑의 눈빛! 민기는 다리를 들어 올려 허리를 휘감는 미랑의 허벅지를 벌리고 무릎을 꿇었다. 상체를 들어 올린 그녀는 우람하게 발기한 그의 페니슬 잡아 보지 입구에 대고 문질렀다. 그는 그녀의 꿈틀거리는 보지 속으로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아! 자기야.........”
“읍.........”
미랑은 오래간만에 민기의 우람한 페니스가 보지 속으로 들어오는 촉감을 음미하느라 벌린 입술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천천히 보지 속으로 페니슬 넣었다가 빼내기를 반복했다. 한동안 서로의 몸을 애무하던 그들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그리고 그는 폭풍처럼 그녀를 몰아붙였고 그녀의 발가벗은 몸은 파도에 밀려 출렁거렸다.
“아 으! 미. 미치겠어,........”
“허 읍.........”
민기는 멈추지 않는 거친 숨을 토해내고 미랑은 숨이 끊어지는 신음을 연달아 흘렸다. 그녀는 바들바들 떨면서 상체를 들어 올렸다가 축 늘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는 사정을 하고도 그녀의 보지 속에 페니스를 넣고 헐떡거렸다. 그리고 다시 페니스가 발기되면 그녀의 둔부를 들어 올리며 다시 허리를 진퇴시켰다. 그녀는 잇달아 느끼는 오르가즘에 지쳐 늘어지면서도 안간힘을 쓰며 매달렸다.
그들은 지구상의 마지막 종말을 맞이한 듯이 서로의 몸을 부둥켜안고 격정의 몸부림을 했다. 미랑의 허벅지와 보지 속은 진액으로 흥건해졌다. 그들의 불같은 광란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잠시 눈을 붙인 그들은 동이 틀 무렵 눈을 떴다. 호텔을 나오기 전에 그녀는 또다시 만날지는 모르지만, 그에게 행복하기를 바란다면서 손목시계를 주었다. 남자들이 선망하는 까르띠에 명품이었다.
미랑과 헤어진 민기는 허전함에 젖어 집으로 들어갔다. 현관 문소리를 듣고 은주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가 옷을 갈아입고 세면장에 들어갔다 나올 때까지 은주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는 간단하게 라면을 먹으려고 냄비에 물을 붓고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았다. 은주가 불쑥 그의 앞을 가로막고 서서 빤히 올려다보았다.
“아저씨! 어디서 자고 온 거야?”
“초상집에 갔다 온다고 했잖니.”
“거짓말이지?”
“허.......!”
민기는 은주가 마치 아내라도 된 듯이 꼬치꼬치 캐묻는 말에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은주는 초췌한 그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은주도 여자이고 여자의 직감인지 모른다. 공연히 심통이 난 은주는 통통거리는 발걸음으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며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았다.
빗살무늬의 베란다 창문으로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소파에 쭈그리고 앉은 난정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언제나 아침에 일을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오기를 반복하던 곽 태식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자주 낮에 들어와서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앉았다가 집을 나갔다. 그녀는 평소와 다른 그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문득 그녀는 눈에 뜨이는 쓰레기 봉지를 버리려고 문을 열고 나섰다.
복도 층계에는 연립주택에 사는 여자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난정은 주위시선을 의식하여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었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던 그녀는 시선을 외면하고 층계를 내려갔다. 여자들이 그녀를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쓰레기를 버리고 층계를 올라가려던 그녀는 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췄다. 그녀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귀를 기울였다.
“곽 씨가 여자를 또 들였나본데.”
“초등학교도 못 나오고, 노동일을 하면서 재주도 좋아.”
“재주가 좋기는! 호프집 여자도 곽 씨의 그게 시원치 않아 갔다던데!”
“호호호........”
“호호......! 생활비나 제대로 줬겠어!”
“여자들이 눈이 삐었지.”
“그러니까, 세 여자 모두 가버렸지.”
여자들의 말을 듣는 난정은 분해서 다리가 후들거리고 떨렸다. 그녀의 불안이 현실이 된 것이었다. 그녀는 덜컹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층계를 올라갔다. 여자들이 얘기를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여자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좌절과 함께 분통이 터진 그녀는 집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부셔버리고 싶었다.
난정은 어떻게 하든지 곽 태식에게 분풀이를 하고 싶었다. 그녀는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움에 빠졌다. 신용회복 할부금도 밀려있고, 은주는 용돈을 입금시켜 달라고 아우성이며 그녀는 남편 볼 면목도 없었다. 그녀는 저녁에 들어온 곽 태식에게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도리어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요즘 일이 힘드세요?”
“왜.......!?”
“피곤해 보이는 것 같아서요.”
“조금.......! 그래.”
“쉬어가며 일하세요. 건강을 생각해야지요.”
“고마워.........!”
난정의 나긋나긋한 말에 곽 태식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싱크대에서 소주와 안주를 꺼내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좋아하는 술 한 잔 하시고, 마음을 편하게 하세요. 세상 사람들도 힘들게 사니까요.”
“당신말만 들어도 힘이 나네.”
곽 태식이 술을 단숨에 들이마셨다. 난정은 안주까지 집어 주며 그의 표정을 살폈다.
“남들도 돈이 안 풀리면 대출이나 카드로 생활비를 충당하잖아요.”
“그렇지 뭐!”
“고지식해서 그런 건, 사용할 줄 모르지요?”
“내가 바본가, 마이너스 통장도 있고, 비시카드도 있어.”
난정에게 무시당하는 느낌에 곽 태식이 발끈했다. 그는 안주머니에서 통장과 통장카드, 그리고 비시카드를 꺼내 자랑스럽게 보여 주었다. 그녀는 태연하게 통장을 펴 보았다. 대출 한도가 천만 원인 통장 잔액이 마이너스 백만 원을 넘기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기대면서 눈웃음을 쳤다.
“그런데 당신은 나를 못 믿나 봐요.”
“아닌데.......”
“그럼 왜! 이런 것들을 나한테는 안 보여줘요.”
“그, 그러려고 했지.......”
곽 태식이 흠칫하며 말을 더듬었다. 난정이 그의 점퍼 속으로 손을 넣어 더듬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눈을 흘기며 그의 셔츠 속으로 손을 넣었다. 그리고 그의 젖꼭지를 문질렀다. 충혈 된 눈으로 바라보던 그도 그녀의 블라우스 속으로 손을 넣었다. 그녀의 젖가슴을 움켜쥔 그는 급히 숨을 들이마셨다.
난정은 최 태식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흥분하는 그의 심장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바지 혁대를 끌렀다. 바지 속으로 들어오는 그녀의 손을 느낀 그는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 그의 왜소한 페니스가 발기되기 시작했다. 숨결이 거칠어지는 그는 그녀의 젖가슴을 움켜쥐고 주물렀다.
쾌감을 느낀 곽 태식은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허리를 들썩거렸다. 희미한 미소를 흘린 난정은 무릎을 꿇고 앉아 그의 바지를 끌어 내리고 페니스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페니스를 아래위로 마찰했다. 그녀의 젖가슴을 움켜쥔 그는 하반신을 뻗어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 페니스를 쥐고 흔드는 그녀가 그를 노려보다가 배시시 웃었다.
“좋아요?”
“헉~! 으, 음.......! 보지, 보지에 넣는 것보다 조, 좋아........”
“통장하고 카드 내가 가지고 있으면 안 돼요?”
난정은 곽 태식이 흥분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애교스러운 목소리를 뱉어냈다. 그는 이발소에서 면도사가 손으로 수음을 받아 보았었다. 그러나 같이 사는 여자가 해주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그만큼 그녀가 자신을 믿는다고 생각도 했지만 몹시 흥분해 있었다.
“으 읍! 그, 그래.......다, 당신이 관리........해.......”
“비밀 번호가 뭔데요?”
“헉! 싸, 싸겠어. 내 생일 거꾸로. XXXX........."
숨넘어가는 신음을 내뱉은 곽 태식이 난정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날카롭게 그를 올려다 본 그녀는 움켜쥐고 있는 페니스 귀두를 혀끝에 댔다. 극도로 흥분한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우적거렸다. 그녀는 페니스를 입속으로 넣어 핥았다. 그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흘렸다.
“허 억! 미, 미치겠다.”
“.........”
순간 난정은 숨이 막히고 구역질이 났다. 곽 태식의 페니스에서 뿜어져 나온 분비물이 그녀의 입 속에 가득했다. 그녀는 얼른 옆에 놓인 휴지를 집어 입속의 분비물을 뱉어냈다. 다리를 벌리고 축 늘어진 그의 눈에는 눈동자가 몽롱해져 있었다. 그녀가 그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좋았어요?”
“음! 당신이 최고야.......”
한동안 넋을 잃고 있던 곽 태식은 세면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세면장에서 나온 그는 탁자 위를 바라봤다. 탁자위에 놓인 통장과 카드를 다시 집어들 수 없는지 그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그의 통장을 제외하고 통장카드와 비시카드를 손가방에 넣었다. 그녀는 다른 날보다 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난 곽 태식은 평상시나 다름없이 세면을 하고 식사를 했다. 그는 탁자위에 놓인 통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안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갔다. 그가 나가고 그녀는 소지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정오가 되기 전에 그녀는 곽 태식의 집을 나섰다. 충주를 떠나려는 마음을 다짐한 그녀의 다리가 후들거리고 떨렸다.
독기를 품은 난정은 먼저 은행에 들려 최 태식의 통장에서 오백만원을 인출했다. 그리고 백화점으로 갔다. 집안에서 가장 오래된 살림이 무엇인가를 미리 생각했던 그녀였다. 그녀는 제일 비싸고 고급 메이커의 김치 냉장고를 구입하여 서울로 배송시켰다. 백화점을 급히 나온 그녀는 손을 흔들어 지나가는 택시를 세웠다.
택시에 오른 난정은 다시 곽 태식의 집으로 돌아왔다. 통장 커드와 비시카드를 탁자위에 올려놓은 난정은 심호흡을 했다. 그녀는 침착하게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 곽 태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응! 웬일이야?”
“당신! 경찰에 고소할 테니 그렇게 알아요.”
“무슨....... 말이야!?”
“왜 거짓말만 하고 약속을 안 지켜요.”
“.........”
난정의 차가운 목소리에 곽 태식이 대답하기를 주춤거렸다. 그녀는 당황하는 곽 태식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의 언성을 높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약속을 안 지켰다는 거야! 통장과 카드까지 줬잖아.”
“통장, 카드 놔두고 갈 테니, 그렇게 알아요.”
“갑자기 왜 그래?”
“건축업을 한다고!? 초등학교도 못 나와 날품팔이를 하면서! 여자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면서!? 거짓말로 날 속이고 강간한 거 아냐? 결혼빙자로 고소할거야.”
“이런 쌍년! 너, 꽃뱀이지?”
“나쁜 놈! 어디다가 욕지거리야!”
통화를 끝낸 난정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미리 정리한 소지품가방과 손가방을 집어 들었다. 곽 태식의 집을 나온 그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택시를 집어타고 기차역으로 갔다. 서울로 올라가는 KTX 기차 안에서도 그녀는 곽 태식이 쫓아 올 것 같아서 안심이 되지 않았다.
서울로 올라온 난정은 곽 태식의 통장에서 인출한 돈으로 밀린 산용회복 할부금을 내고, 일부는 자신의 통장에 입금시켰다. 그녀는 진정이 되지 않은 심정으로 남편을 위한 저녁식사 준비를 했다. 그녀의 휴대폰 벨이 수없이 진동했다. 곽 태식에게서 걸려온 것이기에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려움에 젖은 난정은 휴대폰의 배터리를 빼 놓았다. 그녀는 죄책감에 집에 들어온 남편과 시선을 마주할 수 없었다. 잠자리에 들어가서 그녀는 돈을 대가로 육체를 더럽혔다는 생각에 예전같이 남편에게 안길 수도 없었다. 그녀는 남편과 등을 돌리고 누워 잠을 청했다. 그러나 그녀는 곽 태식에게서 계속 전화를 걸려오고 있을 휴대폰에 신경이 쓰였다.
결국 난정은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나왔다. 손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배터리를 끼웠다. 통화 내역을 살피니 곽 태식에게서 지겹도록 결려왔던 전화 흔적을 확인했다. 그녀는 휴대폰을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그녀가 전화를 걸기 전에 휴대폰이 진동하였다. 곽 태식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통화 버튼을 누른 그녀는 작지만 날카로운 목소리를 흘렸다.
“정말, 고소당하고 싶지 않으면 전화 걸지 마!”
“뭐라고!? 개보지 같은 년! 너, 쌍년아! 내 돈 내놔!”
“네가 약속한 돈이야. 어디다가 욕이야? 개만도 못한 놈! 전화번호 바꿀 거야!”
“맘대로 해! 꽃뱀으로 고소했으니 경찰서에서 만나! 죽여 버릴 거야.”
“그래! 잘 됐어. 공사판이나 돌아다니는 놈이!”
“개년아! 얼마나 많은 놈들에게 가랑이 벌렸어!”
“무식한 놈! 전화 다시 하지 마.”
난정은 전화를 끊고 배터리를 빼버렸다. 곽 태식의 막말과 욕설에 분통이 터진 그녀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안방 문 앞에는 민기가 베란다에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치미는 분노에 남편이 듣고 있는 줄도 모르고 통화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베란다로 통하는 문이 닫혀 아내의 목소리를 자세히 듣지 못했지만 민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이 들려던 민기는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나다가 아내가 보이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는 어렴풋이 들었던 아내의 통화내용이 의아스러웠다. 하지만 환자 보호자와 언쟁을 하는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화장실을 다녀온 그는 아내를 끌어안으며 젖가슴을 더듬었다. 그녀는 젖가슴을 더듬던 곽 태식을 생각하고 소름이 끼쳤다. 그러나 남편에게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의 가슴에 머리를 묻으며 그녀는 속삭였다.
“여보! 나, 일이 힘들어서 피곤해요. 며칠 쉬려고 그래요.”
“음.......! 그래. 일찍 자.”
민기는 더 이상 아내의 몸을 더듬지 않고 잠에 빠져 들었다. 그러나 난정은 곽 태식의 성난 얼굴을 떠올라 시간이 갈수록 정신이 맑아졌다. 그녀는 자정이 지나서 은주가 집에 들어오는 것을 알았다. 잠을 설쳐서 머리가 뻐근한 그녀는 간신히 아침에 일어났다. 그녀는 은주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늦게 다니는 은주를 야단치며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었다.
은주는 난정이 야단을 쳐도 반응 없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난정은 남편에게 며칠 집에서 쉰다고 했지만 안정이 되지 않았다. 초조하게 며칠을 보낸 그녀는 우편배달부로부터 등기우편을 받고 놀랐다. 곽 태식의 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서에서 보낸 것이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된 그녀는 현기증이 났다.
난정은 무엇보다도 남편이 눈치 챌 것이 두려웠다. 이틀 후 아침에 그녀는 경찰에 출두하기 위해 남편의 눈치를 살폈다. 민기는 아침식사를 하고도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가구점을 넘겼기 때문에 그는 바쁘게 서두를 필요가 없었고 천천히 피시방의 야간영업만 점검하면 되는 것이었다. 외출준비를 하는 그녀를 보고 그가 물었다.
“어디 가나?”
“동창 모임에 나갔다 올게요.”
“웬, 동창 모임!?”
“오랫동안 모임에 안 갔더니 보고 싶다고 친구들이 나오래요.”
갑자기 모임에 나간다는 아내의 말에 민기는 의아스러운 눈빛을 했다. 아내가 나가고 그도 집을 나왔다. 피시방에 나간 그는 야간 근무 아르바이트와 영업실적을 점검하고 수입금을 챙겼다. 가구점을 넘겼기에 그는 한결 여유로웠다. 요즘 그는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전이라 백여 개의 컴퓨터 앞에는 많지 않은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구석진 자리로 가서 컴퓨터 스위치를 누른 민기는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 가량 지나니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스커트를 걸친 여자가 그의 옆 자리에 와서 앉았다. 그녀는 피시방 회원으로 가입된 단골손님이었다. 회원 명부에 등록된 그녀의 이름은 고 신애이고 나이가 스물여덟이었다. 그녀가 그에게 고개를 까닥였다.
“안녕하세요!”
“아! 왔어.”
오후에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고 신애는 주로 오전에 피시방에 들어왔다. 민기는 붙임성이 좋은 그녀와 친숙한 사이가 되었기에 외상으로 이용하게 하거나 요금을 받지 않기도 했다. 도 했다. 얼마 전에 그는 우연히 그녀와 술을 같이 마시기도 했다. 그녀는 게임에 관해 자주 그에게 질문을 하기도 했다.
고 신애가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 두 잔을 뽑아서 한 잔은 민기 탁자에 올려놓아 주었다. 게임에 열중한 그는 말없이 싱긋 웃었다. 컴퓨터 스위치를 올린 그녀는 그의 모니터를 힐끔 거리며 살폈다. 그녀도 그와 같은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녀도 게임을 실행시키고 그에게 말했다.
“사장님! 그 아이템 갖고 싶어요!”
“하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줘야지. 여기로 들어와.”
모니터를 들여다 본 신애는 마우스를 쥐고 캐릭터를 민기의 캐릭터가 있는 장소로 이동시켰다. 그가 그녀의 캐릭터에 아이템을 넘겨주었다. 그들이 하는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갖고 싶은 아이템이었다. 아이템을 받은 그녀는 활짝 웃으며 팔을 뻗어 그의 팔을 토닥거렸다. 다리를 꼬고 앉은 그녀는 의자를 좌우로 흔들었다. 스커트가 밀려 올라가 그녀의 뽀얀 허벅지가 드러나 보였다.
문득 인기척을 느낀 민기가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 왔는지 은주가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은주는 그의 옆에 앉아 있는 신애를 빤히 쳐다봤다. 은주는 그녀와 그가 다정하게 대화를 하는 모습에 시샘이 났던 것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그의 왼쪽 좌석에 가서 앉았다.
은주도 민기와 같은 게임을 시작하고 있었다. 컴퓨터 스위치를 누르고 게임을 시작한 은주는 힐끔거리며 그와 신애를 살폈다. 세 사람은 침묵 속에 같은 게임에 몰두했다. 그러나 은주는 이따금 민기와 신애의 캐릭터가 같은 장소에서 게임을 하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한 시간 가량 게임을 하던 고 신애가 컴퓨터를 끄고 일어섰다.
“재미있는 시간되세요!”
“아! 가려고?”
“네, 약속이 있어서.”
고 신애는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고개를 까닥하였다. 민기는 날씬한 자태로 카운터로 가는 그녀를 힐끗 쳐다봤다. 그리고 그는 다시 게임에 몰두했다. 그의 표정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던 은주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아저씨! 저 여자 누구야?”
“단골손님이지.”
“뭐, 단골손님이라고 그런 아이템도 주며, 다정하게 하나!?”
“손님인데........”
“피 잇~! 아저씨 이상하다.”
입술을 삐죽 내민 은주는 민기에게 눈을 흘겼다. 그리고 다시 게임을 하던 그녀는 그의 옆으로 의자를 바짝 당겼다. 게임에 흥이 난 그녀는 아이들처럼 웃음을 흘렸다. 흥을 돋우던 그녀는 바짝 불어 앉은 그의 허벅지위에 다리를 올려놓고 흔들었다. 손님들의 시선을 의식한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집을 나섰던 난정은 출두통지서에 적힌 서울의 경찰서로 나갔다. 곽 태식이 충주에서 올라와 있었다. 그가 그녀를 보자마자 난동을 피우니 경찰이 제지하였다. 담당형사 앞에 앉은 그녀는 침착하게 질문에 응답하고 경위를 설명하였다. 담담형사는 곽 태식이 사기로 결혼을 하려고 했다는 것에 조사중점을 두었다.
담당형사는 먼저 조사를 끝낸 난정에게 검찰에 고소장이 송치 될 테니 돌아가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녀는 곽 태식이 두려워 먼저 경찰서에서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더욱 남편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특히 경찰이나 검찰에서 보내 올 우편물을 남편이 볼 수 있기에 신경을 썼다.
삼일이 지나고 난정은 검찰 출두 통지서를 받았다. 그녀는 남편에게 간병인 일을 알아본다는 핑계로 집을 나섰다. 민기는 외출하는 아내를 의아심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검찰에 나간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범죄 경험도 없고 고의로 저지른 행위가 아니라는 점에서 무고하다고 판결을 내렸다.
곽 태식은 검찰에서 나오며 난정의 손가방을 붙잡고 돈 내놓으라며 행패를 부렸다. 그를 뿌리치느라고 그녀의 손가방이 찢어졌다. 간신히 그를 피한 그녀는 달음질쳐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그녀는 무고죄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오백만원이라는 벌금이 문제였다.
난정이 곽 태식의 통장에서 인출한 돈은 이미 은주의 용돈과 신용회복 채무로 사용하였다. 그녀는 남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고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더욱이나 곽 태식은 자신의 고소장이 받아 드리지 않고 도리어 벌금만 납부하게 되었기에 그녀에게 수시로 전화를 했다. 그녀는 그에게서 오는 전화는 받지도 않았다.
하루, 하루를 보내는 난정의 생활은 또 다른 고통이었다. 그녀는 벌금을 납부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간병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곽 태식의 전화에 시달리는 그녀는 간병인 센터의 연락을 기다려야 하겠기에 휴대폰 배터리를 빼냈다가 끼워 넣기를 반복했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그녀는 남편마저 두려워졌다.
민기는 유난히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아내에게 점점 의혹을 느꼈다. 잠이 들었던 그는 아내의 잠꼬대를 듣고 눈을 떴다. 집에서 쉬고 있는 아내이지만 등을 돌리고 자는 아내의 모습이 왠지 피곤해 보였다. 그는 화장실을 다녀 올 생각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방문을 열고나선 그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진동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진동 소리는 옷걸이에 걸려있는 난정의 주방 가운이었다. 민기는 누가 한밤중에 아내에게 전화를 하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는 아내의 가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액정 화면에는 충주라는 문자만 있었다. 아내가 대전에서 일했다는 것만 떠올린 그는 혼란스러웠다. 우선 상대 전화번호를 메모한 그는 불길한 생각들을 떠올렸다.---------------------
“저에요! 요즘 재미있으세요?”
“아......!? 미랑이!”
“재혼했다면서........”
“..........”
민기는 반갑기도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미랑을 만났을 때와는 달리 그는 엄연히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왠지 두렵기도 해서 망설였다. 잠시 정지된 순간이 지나고 미랑의 당돌한 목소리가 다시 흘러 나왔다.
“오늘 만나요!”
“.........”
“왜, 싫어요? 재혼한 여자가 있어서 나올 수 없어요?”
“그,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저녁 7시에 무교동 XX일식집에서 기다릴게요.”
“............”
민기가 미랑과 같이 갔었던 음식점이었다. 난처해진 민기가 망설이며 대답도 하기 전에 미랑은 전화를 끊었다. 피시방에 들어간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왠지 시간이 갈수록 멀어지는 아내가 불안한 그에게 미랑의 습기어린 목소리는 뿌리칠 수없는 유혹이었다. 그는 어차피 운명을 같이 할 수없는 미랑과는 마지막 만남이라고 스스로 변명을 했다.
미랑을 만나려고 결심을 굳힌 민기는 옷을 갈아입으려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열려있는 은주의 방을 힐끔 바라봤다. 며칠 동안 외출을 하지 않은 은주는 여전히 팬티 차림으로 엎드려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옷을 갈아입고 나서려는데 은주가 쪼르르 나왔다.
“아저씨 어디 가려고......!?”
“친구 초상집에........”
변명을 하는 민기를 은주가 의혹어린 눈빛으로 빤히 쳐다봤다. 그가 현관으로 가니 은주가 쫓아와서 섰다. 그가 구두를 신는 모습을 그녀가 쳐다보고 서 있었다. 그는 은주의 시선을 느끼면서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피시방 뒤의 주차장으로 가려던 그는 발걸음을 돌려 대로로 나갔다. 술이라도 마셔야 할 것 같은 주차되어 있는 택시 문을 열고 올라탔다.
민기가 약속 장소인 일식집으로 들어가니 구석진 곳에 앉아있던 미랑이 손을 흔들었다. 그는 그녀가 반가우면서도 정색을 하였다. 미리 와서 기다리던 그녀는 정종 한잔을 마신 상태였다. 외국생활을 해서인지 그녀는 이국적인 분위기가 흘렀다. 배시시 미소를 지었던 그녀가 뽀로통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더, 훤해 졌네요. 여자가 잘해 주나 봐요.”
“잘해주기는........”
씁쓸한 미소를 지은 민기가 손짓을 해서 종업원을 불렀다. 종업원이 다가오고 그는 미랑에게 주문을 시키라고 했다. 종업원에게 음식을 주문한 그녀가 그의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여 두리번거리던 그녀가 바짝 다가앉아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민기가 은랑이 내미는 입술에 키스를 했다. 그들은 말이 필요 없이 서로의 표정만으로도 감정을 알 수 있었다. 짙은 속눈썹을 깜박인 그녀가 그의 팔을 잡아 자신의 허리를 감싸게 했다. 주문한 음식이 탁자 위에 놓이고 그들은 서로의 잔을 채워 주었다. 술을 마시기 시작한 그녀는 호주에서의 생활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술기운에 다시 옛날의 분위기로 돌아간 그들에게 어색함은 없었다. 술이 얼큰해진 민기가 미랑의 허리를 감쌌던 손을 블라우스 속으로 밀어 넣었다. 브래지어 밑으로 들어간 그의 손에 그녀의 젖가슴이 움켜쥐어졌다. 그녀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탁자에 팔을 의지하고 가슴을 감추었다.
종알거리며 말을 하던 미랑은 그의 손가락이 젖꼭지 돌기를 거칠게 누르는 아픔에 입술을 벌렸다. 말을 중단한 그녀는 그를 쳐다보며 하얗게 눈을 흘겼다. 그러나 그는 입가에 웃음을 띠며 여전히 그녀의 젖꼭지를 주물렀다. 다시 말을 시작한 그녀는 짜릿한 쾌감에 이따금 흠칫하였다. 그녀의 말을 듣고만 있던 그가 넌지시 물었다.
“아주, 들어 온 거야?”
“아뇨! 친정 엄마 생일이라 잠시 들어 왔는데, 모레 갈 거예요
“애, 아빠하고는......?”
“곧, 이혼 판결 날 거예요. 혼자 사는 게 편해요.”
그들은 부담 없이 얘기들을 나누면서 술을 마셨다. 그들이 일식집을 나오니 어둠이 짙은 하늘에서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고 호텔로 들어갔다. 미랑은 스스로 발가벗고 침대위로 올라갔다. 그녀는 옷을 벗고 침대에 눕는 민기의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나, 잊었었지요?”
“글쎄........!? 랑이가 나를 잊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
“피 잇~!”
민기가 삐죽 내미는 미랑의 입술을 덮쳤다. 발가벗은 그녀는 발정 난 암고양이처럼 그에게 매달렸다. 이미 서로의 성감대에 익숙한 그들은 뜨거운 호흡을 흘렸다. 그는 그녀의 몸이 더 매끄럽고 탄력이 넘친다고 느꼈다. 그의 손길이 그녀의 알몸을 샅샅이 누비고 다녔다. 그의 혀와 입김이 닿을 때마다 그녀는 몸을 비틀며 터져 나오는 신음을 흘렸다.
“으 흡! 아......! 보고 싶었어요.”
“나도.......”
요염한 눈빛으로 희열을 갈구하는 미랑의 눈빛! 민기는 다리를 들어 올려 허리를 휘감는 미랑의 허벅지를 벌리고 무릎을 꿇었다. 상체를 들어 올린 그녀는 우람하게 발기한 그의 페니슬 잡아 보지 입구에 대고 문질렀다. 그는 그녀의 꿈틀거리는 보지 속으로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아! 자기야.........”
“읍.........”
미랑은 오래간만에 민기의 우람한 페니스가 보지 속으로 들어오는 촉감을 음미하느라 벌린 입술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천천히 보지 속으로 페니슬 넣었다가 빼내기를 반복했다. 한동안 서로의 몸을 애무하던 그들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그리고 그는 폭풍처럼 그녀를 몰아붙였고 그녀의 발가벗은 몸은 파도에 밀려 출렁거렸다.
“아 으! 미. 미치겠어,........”
“허 읍.........”
민기는 멈추지 않는 거친 숨을 토해내고 미랑은 숨이 끊어지는 신음을 연달아 흘렸다. 그녀는 바들바들 떨면서 상체를 들어 올렸다가 축 늘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는 사정을 하고도 그녀의 보지 속에 페니스를 넣고 헐떡거렸다. 그리고 다시 페니스가 발기되면 그녀의 둔부를 들어 올리며 다시 허리를 진퇴시켰다. 그녀는 잇달아 느끼는 오르가즘에 지쳐 늘어지면서도 안간힘을 쓰며 매달렸다.
그들은 지구상의 마지막 종말을 맞이한 듯이 서로의 몸을 부둥켜안고 격정의 몸부림을 했다. 미랑의 허벅지와 보지 속은 진액으로 흥건해졌다. 그들의 불같은 광란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잠시 눈을 붙인 그들은 동이 틀 무렵 눈을 떴다. 호텔을 나오기 전에 그녀는 또다시 만날지는 모르지만, 그에게 행복하기를 바란다면서 손목시계를 주었다. 남자들이 선망하는 까르띠에 명품이었다.
미랑과 헤어진 민기는 허전함에 젖어 집으로 들어갔다. 현관 문소리를 듣고 은주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가 옷을 갈아입고 세면장에 들어갔다 나올 때까지 은주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는 간단하게 라면을 먹으려고 냄비에 물을 붓고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았다. 은주가 불쑥 그의 앞을 가로막고 서서 빤히 올려다보았다.
“아저씨! 어디서 자고 온 거야?”
“초상집에 갔다 온다고 했잖니.”
“거짓말이지?”
“허.......!”
민기는 은주가 마치 아내라도 된 듯이 꼬치꼬치 캐묻는 말에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은주는 초췌한 그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은주도 여자이고 여자의 직감인지 모른다. 공연히 심통이 난 은주는 통통거리는 발걸음으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며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았다.
빗살무늬의 베란다 창문으로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소파에 쭈그리고 앉은 난정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언제나 아침에 일을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오기를 반복하던 곽 태식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자주 낮에 들어와서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앉았다가 집을 나갔다. 그녀는 평소와 다른 그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문득 그녀는 눈에 뜨이는 쓰레기 봉지를 버리려고 문을 열고 나섰다.
복도 층계에는 연립주택에 사는 여자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난정은 주위시선을 의식하여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었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던 그녀는 시선을 외면하고 층계를 내려갔다. 여자들이 그녀를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쓰레기를 버리고 층계를 올라가려던 그녀는 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췄다. 그녀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귀를 기울였다.
“곽 씨가 여자를 또 들였나본데.”
“초등학교도 못 나오고, 노동일을 하면서 재주도 좋아.”
“재주가 좋기는! 호프집 여자도 곽 씨의 그게 시원치 않아 갔다던데!”
“호호호........”
“호호......! 생활비나 제대로 줬겠어!”
“여자들이 눈이 삐었지.”
“그러니까, 세 여자 모두 가버렸지.”
여자들의 말을 듣는 난정은 분해서 다리가 후들거리고 떨렸다. 그녀의 불안이 현실이 된 것이었다. 그녀는 덜컹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층계를 올라갔다. 여자들이 얘기를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여자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좌절과 함께 분통이 터진 그녀는 집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부셔버리고 싶었다.
난정은 어떻게 하든지 곽 태식에게 분풀이를 하고 싶었다. 그녀는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움에 빠졌다. 신용회복 할부금도 밀려있고, 은주는 용돈을 입금시켜 달라고 아우성이며 그녀는 남편 볼 면목도 없었다. 그녀는 저녁에 들어온 곽 태식에게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도리어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요즘 일이 힘드세요?”
“왜.......!?”
“피곤해 보이는 것 같아서요.”
“조금.......! 그래.”
“쉬어가며 일하세요. 건강을 생각해야지요.”
“고마워.........!”
난정의 나긋나긋한 말에 곽 태식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싱크대에서 소주와 안주를 꺼내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좋아하는 술 한 잔 하시고, 마음을 편하게 하세요. 세상 사람들도 힘들게 사니까요.”
“당신말만 들어도 힘이 나네.”
곽 태식이 술을 단숨에 들이마셨다. 난정은 안주까지 집어 주며 그의 표정을 살폈다.
“남들도 돈이 안 풀리면 대출이나 카드로 생활비를 충당하잖아요.”
“그렇지 뭐!”
“고지식해서 그런 건, 사용할 줄 모르지요?”
“내가 바본가, 마이너스 통장도 있고, 비시카드도 있어.”
난정에게 무시당하는 느낌에 곽 태식이 발끈했다. 그는 안주머니에서 통장과 통장카드, 그리고 비시카드를 꺼내 자랑스럽게 보여 주었다. 그녀는 태연하게 통장을 펴 보았다. 대출 한도가 천만 원인 통장 잔액이 마이너스 백만 원을 넘기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기대면서 눈웃음을 쳤다.
“그런데 당신은 나를 못 믿나 봐요.”
“아닌데.......”
“그럼 왜! 이런 것들을 나한테는 안 보여줘요.”
“그, 그러려고 했지.......”
곽 태식이 흠칫하며 말을 더듬었다. 난정이 그의 점퍼 속으로 손을 넣어 더듬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눈을 흘기며 그의 셔츠 속으로 손을 넣었다. 그리고 그의 젖꼭지를 문질렀다. 충혈 된 눈으로 바라보던 그도 그녀의 블라우스 속으로 손을 넣었다. 그녀의 젖가슴을 움켜쥔 그는 급히 숨을 들이마셨다.
난정은 최 태식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흥분하는 그의 심장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바지 혁대를 끌렀다. 바지 속으로 들어오는 그녀의 손을 느낀 그는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 그의 왜소한 페니스가 발기되기 시작했다. 숨결이 거칠어지는 그는 그녀의 젖가슴을 움켜쥐고 주물렀다.
쾌감을 느낀 곽 태식은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허리를 들썩거렸다. 희미한 미소를 흘린 난정은 무릎을 꿇고 앉아 그의 바지를 끌어 내리고 페니스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페니스를 아래위로 마찰했다. 그녀의 젖가슴을 움켜쥔 그는 하반신을 뻗어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 페니스를 쥐고 흔드는 그녀가 그를 노려보다가 배시시 웃었다.
“좋아요?”
“헉~! 으, 음.......! 보지, 보지에 넣는 것보다 조, 좋아........”
“통장하고 카드 내가 가지고 있으면 안 돼요?”
난정은 곽 태식이 흥분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애교스러운 목소리를 뱉어냈다. 그는 이발소에서 면도사가 손으로 수음을 받아 보았었다. 그러나 같이 사는 여자가 해주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그만큼 그녀가 자신을 믿는다고 생각도 했지만 몹시 흥분해 있었다.
“으 읍! 그, 그래.......다, 당신이 관리........해.......”
“비밀 번호가 뭔데요?”
“헉! 싸, 싸겠어. 내 생일 거꾸로. XXXX........."
숨넘어가는 신음을 내뱉은 곽 태식이 난정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날카롭게 그를 올려다 본 그녀는 움켜쥐고 있는 페니스 귀두를 혀끝에 댔다. 극도로 흥분한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우적거렸다. 그녀는 페니스를 입속으로 넣어 핥았다. 그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흘렸다.
“허 억! 미, 미치겠다.”
“.........”
순간 난정은 숨이 막히고 구역질이 났다. 곽 태식의 페니스에서 뿜어져 나온 분비물이 그녀의 입 속에 가득했다. 그녀는 얼른 옆에 놓인 휴지를 집어 입속의 분비물을 뱉어냈다. 다리를 벌리고 축 늘어진 그의 눈에는 눈동자가 몽롱해져 있었다. 그녀가 그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좋았어요?”
“음! 당신이 최고야.......”
한동안 넋을 잃고 있던 곽 태식은 세면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세면장에서 나온 그는 탁자 위를 바라봤다. 탁자위에 놓인 통장과 카드를 다시 집어들 수 없는지 그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그의 통장을 제외하고 통장카드와 비시카드를 손가방에 넣었다. 그녀는 다른 날보다 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난 곽 태식은 평상시나 다름없이 세면을 하고 식사를 했다. 그는 탁자위에 놓인 통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안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갔다. 그가 나가고 그녀는 소지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정오가 되기 전에 그녀는 곽 태식의 집을 나섰다. 충주를 떠나려는 마음을 다짐한 그녀의 다리가 후들거리고 떨렸다.
독기를 품은 난정은 먼저 은행에 들려 최 태식의 통장에서 오백만원을 인출했다. 그리고 백화점으로 갔다. 집안에서 가장 오래된 살림이 무엇인가를 미리 생각했던 그녀였다. 그녀는 제일 비싸고 고급 메이커의 김치 냉장고를 구입하여 서울로 배송시켰다. 백화점을 급히 나온 그녀는 손을 흔들어 지나가는 택시를 세웠다.
택시에 오른 난정은 다시 곽 태식의 집으로 돌아왔다. 통장 커드와 비시카드를 탁자위에 올려놓은 난정은 심호흡을 했다. 그녀는 침착하게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 곽 태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응! 웬일이야?”
“당신! 경찰에 고소할 테니 그렇게 알아요.”
“무슨....... 말이야!?”
“왜 거짓말만 하고 약속을 안 지켜요.”
“.........”
난정의 차가운 목소리에 곽 태식이 대답하기를 주춤거렸다. 그녀는 당황하는 곽 태식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의 언성을 높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약속을 안 지켰다는 거야! 통장과 카드까지 줬잖아.”
“통장, 카드 놔두고 갈 테니, 그렇게 알아요.”
“갑자기 왜 그래?”
“건축업을 한다고!? 초등학교도 못 나와 날품팔이를 하면서! 여자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면서!? 거짓말로 날 속이고 강간한 거 아냐? 결혼빙자로 고소할거야.”
“이런 쌍년! 너, 꽃뱀이지?”
“나쁜 놈! 어디다가 욕지거리야!”
통화를 끝낸 난정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미리 정리한 소지품가방과 손가방을 집어 들었다. 곽 태식의 집을 나온 그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택시를 집어타고 기차역으로 갔다. 서울로 올라가는 KTX 기차 안에서도 그녀는 곽 태식이 쫓아 올 것 같아서 안심이 되지 않았다.
서울로 올라온 난정은 곽 태식의 통장에서 인출한 돈으로 밀린 산용회복 할부금을 내고, 일부는 자신의 통장에 입금시켰다. 그녀는 진정이 되지 않은 심정으로 남편을 위한 저녁식사 준비를 했다. 그녀의 휴대폰 벨이 수없이 진동했다. 곽 태식에게서 걸려온 것이기에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려움에 젖은 난정은 휴대폰의 배터리를 빼 놓았다. 그녀는 죄책감에 집에 들어온 남편과 시선을 마주할 수 없었다. 잠자리에 들어가서 그녀는 돈을 대가로 육체를 더럽혔다는 생각에 예전같이 남편에게 안길 수도 없었다. 그녀는 남편과 등을 돌리고 누워 잠을 청했다. 그러나 그녀는 곽 태식에게서 계속 전화를 걸려오고 있을 휴대폰에 신경이 쓰였다.
결국 난정은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나왔다. 손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배터리를 끼웠다. 통화 내역을 살피니 곽 태식에게서 지겹도록 결려왔던 전화 흔적을 확인했다. 그녀는 휴대폰을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그녀가 전화를 걸기 전에 휴대폰이 진동하였다. 곽 태식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통화 버튼을 누른 그녀는 작지만 날카로운 목소리를 흘렸다.
“정말, 고소당하고 싶지 않으면 전화 걸지 마!”
“뭐라고!? 개보지 같은 년! 너, 쌍년아! 내 돈 내놔!”
“네가 약속한 돈이야. 어디다가 욕이야? 개만도 못한 놈! 전화번호 바꿀 거야!”
“맘대로 해! 꽃뱀으로 고소했으니 경찰서에서 만나! 죽여 버릴 거야.”
“그래! 잘 됐어. 공사판이나 돌아다니는 놈이!”
“개년아! 얼마나 많은 놈들에게 가랑이 벌렸어!”
“무식한 놈! 전화 다시 하지 마.”
난정은 전화를 끊고 배터리를 빼버렸다. 곽 태식의 막말과 욕설에 분통이 터진 그녀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안방 문 앞에는 민기가 베란다에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치미는 분노에 남편이 듣고 있는 줄도 모르고 통화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베란다로 통하는 문이 닫혀 아내의 목소리를 자세히 듣지 못했지만 민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이 들려던 민기는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나다가 아내가 보이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는 어렴풋이 들었던 아내의 통화내용이 의아스러웠다. 하지만 환자 보호자와 언쟁을 하는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화장실을 다녀온 그는 아내를 끌어안으며 젖가슴을 더듬었다. 그녀는 젖가슴을 더듬던 곽 태식을 생각하고 소름이 끼쳤다. 그러나 남편에게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의 가슴에 머리를 묻으며 그녀는 속삭였다.
“여보! 나, 일이 힘들어서 피곤해요. 며칠 쉬려고 그래요.”
“음.......! 그래. 일찍 자.”
민기는 더 이상 아내의 몸을 더듬지 않고 잠에 빠져 들었다. 그러나 난정은 곽 태식의 성난 얼굴을 떠올라 시간이 갈수록 정신이 맑아졌다. 그녀는 자정이 지나서 은주가 집에 들어오는 것을 알았다. 잠을 설쳐서 머리가 뻐근한 그녀는 간신히 아침에 일어났다. 그녀는 은주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늦게 다니는 은주를 야단치며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었다.
은주는 난정이 야단을 쳐도 반응 없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난정은 남편에게 며칠 집에서 쉰다고 했지만 안정이 되지 않았다. 초조하게 며칠을 보낸 그녀는 우편배달부로부터 등기우편을 받고 놀랐다. 곽 태식의 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서에서 보낸 것이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된 그녀는 현기증이 났다.
난정은 무엇보다도 남편이 눈치 챌 것이 두려웠다. 이틀 후 아침에 그녀는 경찰에 출두하기 위해 남편의 눈치를 살폈다. 민기는 아침식사를 하고도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가구점을 넘겼기 때문에 그는 바쁘게 서두를 필요가 없었고 천천히 피시방의 야간영업만 점검하면 되는 것이었다. 외출준비를 하는 그녀를 보고 그가 물었다.
“어디 가나?”
“동창 모임에 나갔다 올게요.”
“웬, 동창 모임!?”
“오랫동안 모임에 안 갔더니 보고 싶다고 친구들이 나오래요.”
갑자기 모임에 나간다는 아내의 말에 민기는 의아스러운 눈빛을 했다. 아내가 나가고 그도 집을 나왔다. 피시방에 나간 그는 야간 근무 아르바이트와 영업실적을 점검하고 수입금을 챙겼다. 가구점을 넘겼기에 그는 한결 여유로웠다. 요즘 그는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전이라 백여 개의 컴퓨터 앞에는 많지 않은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구석진 자리로 가서 컴퓨터 스위치를 누른 민기는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 가량 지나니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스커트를 걸친 여자가 그의 옆 자리에 와서 앉았다. 그녀는 피시방 회원으로 가입된 단골손님이었다. 회원 명부에 등록된 그녀의 이름은 고 신애이고 나이가 스물여덟이었다. 그녀가 그에게 고개를 까닥였다.
“안녕하세요!”
“아! 왔어.”
오후에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고 신애는 주로 오전에 피시방에 들어왔다. 민기는 붙임성이 좋은 그녀와 친숙한 사이가 되었기에 외상으로 이용하게 하거나 요금을 받지 않기도 했다. 도 했다. 얼마 전에 그는 우연히 그녀와 술을 같이 마시기도 했다. 그녀는 게임에 관해 자주 그에게 질문을 하기도 했다.
고 신애가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 두 잔을 뽑아서 한 잔은 민기 탁자에 올려놓아 주었다. 게임에 열중한 그는 말없이 싱긋 웃었다. 컴퓨터 스위치를 올린 그녀는 그의 모니터를 힐끔 거리며 살폈다. 그녀도 그와 같은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녀도 게임을 실행시키고 그에게 말했다.
“사장님! 그 아이템 갖고 싶어요!”
“하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줘야지. 여기로 들어와.”
모니터를 들여다 본 신애는 마우스를 쥐고 캐릭터를 민기의 캐릭터가 있는 장소로 이동시켰다. 그가 그녀의 캐릭터에 아이템을 넘겨주었다. 그들이 하는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갖고 싶은 아이템이었다. 아이템을 받은 그녀는 활짝 웃으며 팔을 뻗어 그의 팔을 토닥거렸다. 다리를 꼬고 앉은 그녀는 의자를 좌우로 흔들었다. 스커트가 밀려 올라가 그녀의 뽀얀 허벅지가 드러나 보였다.
문득 인기척을 느낀 민기가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 왔는지 은주가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은주는 그의 옆에 앉아 있는 신애를 빤히 쳐다봤다. 은주는 그녀와 그가 다정하게 대화를 하는 모습에 시샘이 났던 것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그의 왼쪽 좌석에 가서 앉았다.
은주도 민기와 같은 게임을 시작하고 있었다. 컴퓨터 스위치를 누르고 게임을 시작한 은주는 힐끔거리며 그와 신애를 살폈다. 세 사람은 침묵 속에 같은 게임에 몰두했다. 그러나 은주는 이따금 민기와 신애의 캐릭터가 같은 장소에서 게임을 하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한 시간 가량 게임을 하던 고 신애가 컴퓨터를 끄고 일어섰다.
“재미있는 시간되세요!”
“아! 가려고?”
“네, 약속이 있어서.”
고 신애는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고개를 까닥하였다. 민기는 날씬한 자태로 카운터로 가는 그녀를 힐끗 쳐다봤다. 그리고 그는 다시 게임에 몰두했다. 그의 표정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던 은주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아저씨! 저 여자 누구야?”
“단골손님이지.”
“뭐, 단골손님이라고 그런 아이템도 주며, 다정하게 하나!?”
“손님인데........”
“피 잇~! 아저씨 이상하다.”
입술을 삐죽 내민 은주는 민기에게 눈을 흘겼다. 그리고 다시 게임을 하던 그녀는 그의 옆으로 의자를 바짝 당겼다. 게임에 흥이 난 그녀는 아이들처럼 웃음을 흘렸다. 흥을 돋우던 그녀는 바짝 불어 앉은 그의 허벅지위에 다리를 올려놓고 흔들었다. 손님들의 시선을 의식한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집을 나섰던 난정은 출두통지서에 적힌 서울의 경찰서로 나갔다. 곽 태식이 충주에서 올라와 있었다. 그가 그녀를 보자마자 난동을 피우니 경찰이 제지하였다. 담당형사 앞에 앉은 그녀는 침착하게 질문에 응답하고 경위를 설명하였다. 담담형사는 곽 태식이 사기로 결혼을 하려고 했다는 것에 조사중점을 두었다.
담당형사는 먼저 조사를 끝낸 난정에게 검찰에 고소장이 송치 될 테니 돌아가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녀는 곽 태식이 두려워 먼저 경찰서에서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더욱 남편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특히 경찰이나 검찰에서 보내 올 우편물을 남편이 볼 수 있기에 신경을 썼다.
삼일이 지나고 난정은 검찰 출두 통지서를 받았다. 그녀는 남편에게 간병인 일을 알아본다는 핑계로 집을 나섰다. 민기는 외출하는 아내를 의아심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검찰에 나간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범죄 경험도 없고 고의로 저지른 행위가 아니라는 점에서 무고하다고 판결을 내렸다.
곽 태식은 검찰에서 나오며 난정의 손가방을 붙잡고 돈 내놓으라며 행패를 부렸다. 그를 뿌리치느라고 그녀의 손가방이 찢어졌다. 간신히 그를 피한 그녀는 달음질쳐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그녀는 무고죄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오백만원이라는 벌금이 문제였다.
난정이 곽 태식의 통장에서 인출한 돈은 이미 은주의 용돈과 신용회복 채무로 사용하였다. 그녀는 남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고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더욱이나 곽 태식은 자신의 고소장이 받아 드리지 않고 도리어 벌금만 납부하게 되었기에 그녀에게 수시로 전화를 했다. 그녀는 그에게서 오는 전화는 받지도 않았다.
하루, 하루를 보내는 난정의 생활은 또 다른 고통이었다. 그녀는 벌금을 납부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간병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곽 태식의 전화에 시달리는 그녀는 간병인 센터의 연락을 기다려야 하겠기에 휴대폰 배터리를 빼냈다가 끼워 넣기를 반복했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그녀는 남편마저 두려워졌다.
민기는 유난히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아내에게 점점 의혹을 느꼈다. 잠이 들었던 그는 아내의 잠꼬대를 듣고 눈을 떴다. 집에서 쉬고 있는 아내이지만 등을 돌리고 자는 아내의 모습이 왠지 피곤해 보였다. 그는 화장실을 다녀 올 생각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방문을 열고나선 그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진동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진동 소리는 옷걸이에 걸려있는 난정의 주방 가운이었다. 민기는 누가 한밤중에 아내에게 전화를 하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는 아내의 가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액정 화면에는 충주라는 문자만 있었다. 아내가 대전에서 일했다는 것만 떠올린 그는 혼란스러웠다. 우선 상대 전화번호를 메모한 그는 불길한 생각들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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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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