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앞에 나란 놈은 또 다시 약해져버렸다. 매몰차게 몰아붙이면 그녀가 내게 잘못했다 용
서를 구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결과는 내가 빌고 말았다. 누가 상대방을 더 좋아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녀가 없으면 안된다는 걸 재차 깨달았고 이제는 지울
래야 지울 수 없는 낙인처럼 그녀를 평생 가슴이라는 공간에 새겨놓은 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랑에 자존심 따윈 필요없어!’
드라마의 대사처럼 나는 내 자신을 타이르고 두둔했다. 자존심으로 그녀를 지우려 했다면
나는 아마도 지금쯤 정신병원에 갇혀 평생을 낙오한 듯 후회와 체념을 되풀이하며 살고 있
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난 그녀를 버리지 않았다. 아니 놓지 않았다. 멀어지는 그녀를
쫒아가 발목을 붙잡았고, 나를 버리려는 그녀에게 매달려 애원을 했다.
사랑?
아직은 어린 내게 사랑이란 그저 같이 있으면 좋고, 곁에 두고도 보고 싶은 것이 전부였다.
그녀가 다른 남자에게 두 다리를 벌려주는 것도 사랑이겠지만 그보다도 나를 향한 마음이
수줍은 여고생과도 같은 그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쓰는 것도 사랑이었다. 난 그 사랑을
지키고 갖기 위해 나의 모든 걸 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나는 버스를 타고 석민의 학교 앞으로 갔다. 무작정 찾아갔다. 요즘처럼
휴대폰이 있거나 삐삐가 있어서 약속을 따로 할 수 있는 장치도 없었지만 나는 그의 행적을
꿰뚫고 있었다.
먼저 찾아본 곳은 인근의 당구장이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학생들이 즐길만한 꺼리는 별로
없었다. 오로지 당구 아니면, 노래방, 그것도 아니면 농구 뿐이었다. 가끔은 오락실에 진을
치고 앉았을 때도 있었다. 지금은 동네에 한 두 군데나 있는 당구장이지만 그 때는 경쟁이
라도 하듯 줄지어 있던 당구장이기도 했다. 나는 석민의 학교 주변의 당구장을 돌며 그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노래방도 동시에 찾아 헤멨다.
‘학교 근처에 없으면... 시내에 있을텐데...’
학교 인근에는 석민의 흔적이 없었다. 간간이 중학교 시절 동창을 만나 그의 흔적을 물었지
만 정확히 알고 있는 친구는 없었다. 답답하기만 했다. 내가 왜 그를 이리도 애타게 찾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단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건, 바로 내일 밤 치러질 수도
있는 첫경험에 대한 대비였다. 석민의 첫경험 이야기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는 있었지만
만반의 준비를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려면 그를 찾는 게 급선무였다. 누군가에게 첫경
험의 준비를 묻고 준비한다는 게 다소 창피한 일일수도 있었지만 그녀 앞에서 창피한 것보
다는 낫다는 판단이기도 했다.
시내에 있다면 석민은 민영과 함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의 질문 공세는 헛된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아예 질문 자체를 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가 학교 부근에 있
길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흔적은 이미 지워졌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아~ 친구란 놈이 찾으면 꼭....’
한동안 그녀에게 빠져 석민을 비롯한 내 주변인들에게 너무도 소홀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후회되거나 크게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누구나 자신이 정해놓은 가치관
에 따라 행해지는 일의 우선순위가 정해지듯 단연 내겐 그녀가 1순위 였을뿐이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검게
틴팅이 된 도로가의 허름한 상가로 삼삼오오 몰려 들어가는 한 무리의 학생들을 볼 수 있었
다. 만화방이었다. 속는셈치고 나도 그들 무리를 따라 만화방으로 들어서자 이미 빼곡하게
소파를 차지하고 있는 학생무리들이 보였다. 테이블엔 만화책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라면
그릇부터 왕소라 같은 과자봉지까지 테이블을 헝클인 채 말 그대로 초만원 상태였다.
뿌연 담배연기 사이로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간간히 낯이 익은 얼굴을 가진 녀석들이 보
이기는 했지만 석민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뒤돌아 나오려는데 무척이나 익숙한
뒷통수를 가진 녀석이 보였다. 석민이었다.
“으이그~ 보라모델 두고 청승맞게 뭐하냐?”
석민은 내가 다가온지도 모른 채 성인 만화에 푹 빠져 있었다. ‘미아리 텍사스 블루스’라는
만화였는데, 제목만 봐도 딱 사창가에서 주먹 쓰는 내용이 그려지는 표지를 가지고 있었다.
“어? 왠일이냐? 니가?”
“왠일은... 재밌냐? 나가자!”
“나, 이것만 보고~”
“아~ 씨발! 친구가 찾아왔는데... 만화나 처 볼 생각이냐?”
총 14권 완결에 이제 2권째를 보던 석민은 한참 재미있게 보던 만화책을 카운터에 맡기며
계산을 했고 곧 함께 만화방을 나섰다. 그리고 인근의 커피숍으로 발걸음을 옮겨 파르페 두
개를 시켜놓고 자연스럽게 담배를 입에 꼬라 물었다.
“근데 니가 여기까지 왠일이야?”
“친구보러 왔는데 왠일은......”
“병신~ 뭐냐? 니 얼굴만 봐도 다 알아~ 뭐야?”
“뭐긴...”
석민은 음흉한 눈빛을 해서는 아주 얄밉게 담배를 빨아댔다.
“근데 너 그 누나는 뭐야~ 졸라 미인이던데... 어디서 만난거야?”
“큭! 채영이?”
“캬~ 이름도 채영이... 뒤에 ‘영’자가 들어가는 애들이 예쁜 애가 많은가 봐~”
“민영이... 채영이?”
석민의 말을 들어보니 그럴싸 한 것 같기도 했다. 워낙 이것저것 잘 끼워 맞추기도 하는 녀
석이었지만 왠지 그의 말은 신임이 가기도 했다. 잡기에 능한 친구이기에 그 머리로 공부를
했더라면 하버드를 수석으로 졸업을 했어도 했을 놈이었다.
“뭐야~ 진짜 찾아온 이유가?”
“이유는 무슨....”
“솔직히 안 깔래? 너 진짜 서운하려고 한다~”
“알았어... 알았어...”
나는 속으로만 앓고 있는 나의 첫사랑이 너무나 아련해 석민에게 털어놓으려 했지만 왠지
그의 입에서는 좋은 얘기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소심하고 겁 많은 성격에다 자존심마저
센 내 성격상 모조리 말을 하기란 정말 큰 마음을 먹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용기가
없었다.
“뭐야... 답답하다!”
“나, 내일 채영이랑 자기로 했는데...”
나는 차마 그녀가 누구이고, 나이가 몇인지에 대해서는 비밀이 붙이기로 했고 석민을 찾은
진짜 목적만을 말하기 시작했다.
“오~~~~~~ 미친놈! 자랑하러 왔냐?”
“자랑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돼?”
“공짜로?”
“또 뭐~ 파르페 내가 살 게!”
“아! 쪼잔한 새끼! 집도 잘 살면서...”
“그게 그거랑 뭔 상관이야! 알았어.. 나중에 밥 살게!”
대충 석민에겐 그녀를 어떻게 만났는지, 어디서 만났는지와 같은 과정적인 설명을 무시한
채 오로지 나의 궁금증에 대한 말로 이끌었다. 대충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성적 지식이란 그저 앞 위 다 자른 알맹이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차근차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각 같아선 노트와 필기구를 꺼내 메모까지
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었다.
“짜식! 그럼 지금부터 강의 들어갈 테니까 형 얘기 잘 들어 둬!”
“빨리 시작이나 해~”
아마 나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초롱초롱 빛나고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한 여자를 위해 이
렇게 철두철미하게 준비를 하는 것을 그녀는 알까? 그녀의 마음이 어떻건, 그녀가 나를 부
른 목적이 어떻건 간에 만반의 대비를 해 놓는 게 절대적 효율가치로 따져봤을 때 쓸데없는
소모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장 먼저 중요한 건, 분위기야...”
“분위기?”
“솔직히 나도 첫경험을 할 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했지만, 알고 보니까 그게 가장 중
요해... 쓸데없이 긴장을 하게 되면 실수를 많이 하고, 또! 경험상 졸라 빨리 쌀 수도 있다는
거지”
“분위기는 어떻게 잡아야 하는데?”
“그러니까... 뭐 술을 간단히 마신다던가~ 아니면 작은 스킨십부터 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흥분을 끌어올릴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필요한데... 솔직히 그게 졸라 어려워”
“그 어려운 걸 어떻게 하냐?”
“그건 니가 알아서 하고! 두 번째는 거칠게 굴면 안 된다는 거지! 솔직히 발가벗은 여자가
눈 앞에 딱 나타나면 아주 눈알이 돌아서 가슴을 빨고 보지를 우왁스럽게 만지게 되어 있
어, 여자들은 그런 거 진짜 싫어하거든? 그러니까 할 줄도 모르면서 흉내나 내는 거라면 차
라리 애무단계를 건너 뛰어!”
“그럼 아예 만지지도, 빨지도 말라는 거야?”
“아! 멍청아! 어설프게 흥분시키려고 들지 말란거지... 첫경험이잖아~ 채영인가 걔도 뭐 처
음이나 다름 없을 텐데 뭘 알겠어? 괜히 흥분시키려다 흥이 깨질 수도 있으니까 너무 애무
에 몰두하지 말라고~”
“아... 그... 그런 거야?”
석민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나는 결국 잘못된 선생에게 잘못된 지식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
이 들었다. 사실 나는 처음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손가락으로 셀 수도 없이 많은 섹스를 경
험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석민의 첫경험을 받아준 민영 역시 해봐야 고등학생이 얼마나 해
봤겠는가? 확실한 건 나는 석민과는 다른 첫경험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너! 선생님이 말씀하시는데... 딴 짓하는 것 좀 봐~”
“병신! 그런 건 나도 다 알거든!”
그의 말에 흥미가 없어지고 있었다. 이미 그 남자가 그녀를 범하는 것을 두 번이나 목격한
나로서는 석민의 말이 그저 어린아이가 어른 흉내를 내고 있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이 든 것이다. 솔직히 그 남자는 그녀에게 그 어떤 분위기도 잡지 않았고, 애무도 별
다를 게 없었어도 그녀를 환락으로 충분히 몰고 가버렸던 기억에 나의 고집이 귀를 막아서
고 있었다.
“니가 안 해봐서 그런데... 해 봐라~ 구멍 찾기도 졸라 힘들다!”
“웃기시네... 됐어~”
“어? 정말이라니까? 구멍 찾다가 시간 보내고... 쪽팔리게 여자가 구멍으로 자지를 인도해주
지... 그게 끝인 줄 아냐? 들어가 봐라~ 아마 경험해보지 못한 졸~~~~~~~~~~라 좋은
촉감에 바로 머리가 하얘지면서 좆물을 찍! 싸버리고 말걸?”
“병신! 그래도 너처럼 3초는 아닐거다! 너 아직도 그렇게 빨리 싸냐?”
이미 석민의 대강연은 흐지부지 목적을 잃어 버렸다. 결국 그 목적을 흐린 건 나였지만 아
쉽거나 다시 목적을 바로 잡고 싶지는 않았다.
“아~ 씨발... 말도 마! 진짜 해 봐... 해 봐야 내 마음 안다!”
“맞구나? 아직도 10초냐?”
“솔직히 졸라 쪽팔리다니까? 그래도 10초는 넘는데 1분을 못 넘기겠어...”
“그렇게 좋냐?”
“진짜 장난 아니라니까~ 아... 진짜 민영이를 빌려주고 싶지만 그건 안 되고... 아무튼 해
봐.. 해보면 알아~”
“고맙다! 시간 내줘서...”
“고맙긴... 사까시도 해달라고 하고! 그건 더 죽여~”
“민영이도 해주냐?”
“씨발... 말도 마! 빨리면 뿌리가 뽑힐 것 같을 정도로 쭉쭉 잘 빤다!”
“그래? 좋겠다! 씨발놈아!”
“아... 안 되겠다! 민영이 만나러 가야지~”
“왜? 오늘 한 떡 치게?”
“너 때문에 졸라 꼴렸잖아!”
“그게 왜 나 때문이냐?”
“같이 갈래?”
“됐다! 눈치 없이 니들 빠구리 뜨는데 내가 왜 끼냐! 됐고 내일은 나, 니네 집에서 자는 거
다~ 알았지?”
솔직히 석민이 너무 부러웠다. 그 녀석이 그렇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걸 보니 섹스라는
게 정말 좋긴 좋은 것인가 보다. 나를 두고 먼저 가버린 적이 별로 없던 녀석이었는데 파르
페도 절반이나 남긴 채 쏜살같이 달려 나가는 모습을 보니 어린 내가 감당해 내기가 쉽지
않은 커다란 쾌감과 흥분이 도사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결국 석민의 몫까지 전부 비우고
난 뒤 나는 커피숍을 빠져 나왔다.
석민과 함께 한 1시간여가 나름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시간이었다. 버스를 타려다 결국 걷기
로 한 나는 땅바닥에 채이는 돌멩이를 몰고 가며 그녀를 떠올렸다. 자전거는 학교 거치대에
단단히 묶어 두고 왔기 때문에 결국 빠른 버스 대신 걷는 것을 택한 것이다. 아침에 그렇게
날을 세우고 싸운 기억부터 울고불고 매달린 기억, 그리고 의미심장하게 남긴 내일의 약속,
과연 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밤에 나를 오라 했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밤이라는 것을 해
석하면 내게도 다리를 한 번 벌려주겠다는 뜻이라고 생각됐지만 지금까지의 그녀는 결코 나
와는 섹스를 하려하지 않을 것이다.
‘밤이라고 하면... 하아~ 모르겠다.’
정말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순순히 몸을 허락한다면 마다하지는 않겠지만 저번처
럼 강제로 그녀를 안으려는 실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야만 했다. 나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나이니까...
정말 더디게 가던 시간이었다. 겨우 다음날이 됐고, 겨우 수업이 끝났다. 그리고 겨우 집에
도착을 해서 밤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어제부터 이어져 온 첫경험의 환상은 밤이 다가올수
록 점점 고조되어 가고 있었고, 떨림과 걱정으로 머리는 쥐가 날 것만 같았다. 든든하게 저
녁을 먹었고 혹시 몰라 마렵지도 않은 똥을 싸기 위해 변기에 죽치고 앉아 있기도 했다.
“석민이냐?”
나는 걸리지도 않은 전화기를 붙들고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수단
이었지만 엄마는 드라마에만 정신이 팔려 정작 나의 연기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어? 니네 집에? 잠깐만... 엄마! 나 오늘 석민이네 가서 자도 돼?”
“맘대로 해”
전화를 끊고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더위에 지쳤는지 잔뜩 쪼그라든 자지가 몇
가닥의 털을 머금고 있었다. 어느 때보다 정성스레 자지를 닦고 아빠의 면도기로 아직은 솜
털이지만 거뭇하게 자란 콧수염까지 밀어냈다. 볼에 올라온 몇 개의 여드름을 손질하고 엄
마의 보디클렌저로 말끔히 샤워를 마쳤다. 그리고 오늘만큼은 그녀의 팬티가 아닌 검정색
삼각팬티를 찾아 입었다.
‘준비 끝!’
첫경험의 기대와 그녀와 첫날밤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꿈만 같은 기분이었다. 물기를 말리고
말끔한 교복을 챙겨 입으면서도 연신 미소가 떠나지 않는 내 얼굴을 거울에 비쳐보며 콧노
래까지 흥얼거렸다. 만약 주택복권 1등에 당첨되고 난 후 당첨금을 받으러 갈 때의 기분이
그보다 좋을까? 세상에 태어나서 그토록 긴장되고 기대되는 느낌은 또 없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엄마! 갔다 올게!!”
“말 시키지 마! 이누무새꺄! 지금 얼마나 중요한 시점인데!”
여전히 드라마에 푹 빠진 엄마는 짜증까지 내며 나의 외박을 허락했다. ‘저벅 저벅’ 발에 채
이는 몽돌의 기분이 좋았다. 발에 밟혀 바그락대는 소리도 그녀의 창문을 훔쳐볼 때와는 달
리 기분 좋게 울렸다.
‘완전 범죄...’
대문을 열었다 나가는 척 다시 닫고 나서야 나는 미미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그녀의 집으로
발길을 옮겨갔다. 비록 내일 학교가는 날이기에 옷을 쫙 빼입지는 못했지만 깔끔하게 다려
진 교복으로 갈아입었고 좋은 냄새가 나는 샴푸와 클렌저로 몸을 닦은 나는 영혼까지 깨끗
해진 느낌이었다.
‘채영이는 무슨 옷을 입고 있을까?’
왠지 그녀도 아주 청순한 속옷과 함께 티 없이 깨끗한 흰 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데이트를 하자며 입고 있었던 그 하이얀 민소매 원피스와 그
녀는 너무도 잘 어울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청순하면서도 깨끗한 이미지, 전혀 아줌마라고
느낄 수 없는 새내기 여대생의 느낌이었다.
“똑, 똑~ 누나~~~”
떨리면서도 부푼 가슴을 안고 나는 조용히 그녀의 현관을 두드렸다. 아직 9시도 되지 않은
저녁이었지만 내겐 충분히 밤이었다.
“누나~ 똑! 똑! 똑!”
혹시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누나라는 호칭으로 그녀를 불렀다.
엄마가 들을까 목소리도 크게 내지 못했지만 충분히 집안의 그녀는 들을 수 있는 목소리였
다.
“누나! 누나~~~”
“들어와!”
현관 안쪽으로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만으로는
그녀의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잽싸게 문을 열고 들어가
서는 현관문을 잠그고 집안의 모든 창과 커튼부터 닫아버렸다.
‘씻나보구나? 으흐흐흐흐’
음흉한 생각을 굳이 하려고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물소리에 나의
오감은 온통 붉은빛 욕정으로 가득차고 있었다. 의식적이 아닌 무조건적인 반응이었다.
나는 책가방을 소파 옆으로 두고 교복 상의를 벗어 구겨지지 않게 소파의 팔걸이에 올렸다.
흰색 면티 만을 입은 채 그녀가 씻고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기를 얼마 지나지
않아 샤워기에서는 물소리가 끊겼다. 그리고 몸의 물기를 닦아내는지 수건의 마찰소리가 들
려오는 것 같았다.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르릉...”
전화벨 소리에 평화로이 끓어오르던 심장이 놀랐다.
‘왜 나만 있으면 이렇게 전화가 오는 거야!’
굳이 내가 있을 때만 전화가 오는 건 아니겠지만 유독 그렇게 느껴졌다. 누군가 그녀를 감
시하고 있다는 망상도 가져보지만 그럴리는 없을 것이다. 요즘처럼 CCTV나 몰카라는 개념
이 흔치 않았던 그 시절엔 미행이나 나처럼 훔쳐보는 게 아니면 영화에서나 나오는 허구라
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채영아~ 전화 오는데?”
“신경 쓰지 마~”
“계속 울려~”
“괜찮아~ 이따 또 전화 하겠지”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했던가? 사실 나는 뜨끔할만큼 못된 짓을 했거나 부적절한 짓을 하
지 않았음에도 가슴이 떨려왔다. 불순한 생각을 한 탓일 것이었다. 나는 벽면에 걸린 그녀
의 결혼사진을 다시 들여다봤다. 사진에서만큼은 누가 뭐래도 너무도 행복함이 감도는 느낌
이었다.
‘아저씨도 참... 불쌍한 사람이네요’
그녀를 바라보며 한없이 웃음을 짓고 있는 그녀의 남편이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불뚝
이 사내에게 다리를 벌려주는 것도, 나 같이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그녀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며 잔뜩 추파를 던지는 걸 그는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녀를 위해, 한 가정을
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그는 밤낮없이 삶의 전쟁터에서 땀을 흘리고 있지만 그 땀이 과
연 누구를 위한 땀일까? 라는 의문이 들곤 했다.
‘아저씨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누나를 포기할 순 없어요’
웃고 있는 그에게 죄송스레 머리를 꾸벅 수그렸다. 내가 그녀의 남편에게 할 수 있는 건 진
심을 다 한 사과 뿐이었다.
그녀의 집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깨끗하게 느껴졌다. 씽크대며 침실의 침대, 바닥까지 반짝
반짝 빛나는 느낌이었다. 왠지 나에게 오늘 밤이란 평생에 잊지 못 할 무언가를 선사해 줄
것 같은 예감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때 그녀가 욕실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허~읍!’
비록 내가 바라던 흰색의 원피스는 아니었지만 짧은 빨간색의 반바지와 작디 작은 흰색의
티셔츠가 그녀의 몸통에 감겨 있었다. 아무것도 프린팅 되지 않은 흰색티는 깔끔한 느낌이
었고 허리부분이 고무줄로 된 빨간색 반바지는 무척이나 편해보였다. 특히 그녀의 골반과
엉덩이에 찰싹 달라붙은 반바지에서는 그녀 특유의 육감적인 체형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
었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
아직 물기를 잃지 않은 그녀의 고운 얼굴이 마치 꿀을 발라 놓은 것처럼 은은하게 광채를
띄고 있었고 아직 말리지 않은 머리위엔 수건 하나가 물기 머금은 머리카락을 감싸 안고 있
었다.
“채... 채영아~”
귀신에라도 홀린 사람처럼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얀 피부 톤에 매료된 나는 자연
스럽게 그녀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뭐야~ 앉아 있어~ 나 머리 말려야 해~”
“내... 내가 해줄게~”
“됐어~ 할 줄도 모르면서...”
“아니, 할 수 있어! 엄마 하는 거 봤단 말이야~”
머리에 두른 수건을 풀며 젖은 머리의 물기를 닦아내던 그녀가 안방으로 걸었고 나 역시 그
녀의 뒤를 따랐다.
“뭐야? 더운데 커텐이랑 창문은 왜 죄다 닫아버렸어?”
“아... 그... 그게...”
“너! 혹시...”
“호... 혹시 뭐! 엄마한테 걸리기라도 할까봐 그런거지 나 아무런 생각도 안했어!”
“누가 뭐래? 풋!”
“뭐... 그... 그렇다고!”
그녀가 피식 웃음을 번졌다. 화장대의 거울에 비친 그녀의 표정이 티 없이 맑게만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 남자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뒤에서 흡혈귀처럼 그녀의 가는 목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어흐~ 너 뭐야~ 절루 가서 티비나 보고 있어!”
“싫어!”
거실엔 커다랗지는 않았지만 생생하고 바른 목소리로 여자 앵커가 뉴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녀는 스킨과 로션을 찍어 바르며 거울을 통해 나를 바라보다. 여전히 검고 길다란 머리카
락에서는 물기가 흐르고 있었고 그녀의 흰 티셔츠가 물기에 조금씩 젖어가고 있었다.
로션을 다 바른 그녀는 곧 드라이어를 집어 들었고 전원버튼을 눌러 따뜻한 기운의 바람이
나오도록 했다.
“해줄래?”
“으... 으응!”
귀여웠다. 그리고 사랑스러웠다. 내게 드라이어를 넘겨주고 그녀는 자신의 무릎에 손을 짚
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천사가 따로 없다. 정말이지 이런 여자가 어떻게 자신의 남편을 두
고 다른 남자에게 몸을 허락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괜찮아... 넌 내꺼야’
촉촉한 머리카락이 손에 닿았다. 향긋한 샴푸냄새와 함께 매끈한 느낌이 가득했다.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그녀의 머리카락에 드라이어 바람을 대어 주며 싱그러움을 화사하게 바꿔나
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덜미와 무릎에 올려진 손에는 긴장감이 옅보였다. 아마 그녀에게
도 지금 시간이 나처럼 긴장되고 있는 모양이다.
“잘 하는데?”
“잘 해? 나 말고 또 누가 머리 말려준 적 있어?”
그녀가 살랑살랑 도리질을 쳤다. 기분이 좋았다. 어찌되었건 그녀에게도 나는 첫경험을 안
겨 준 남자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에 기분이 째질 것 만 같았다.
“안 힘들어? 힘들지?”
“힘들긴... 근데 머리가 생각보다 길다~”
“완벽하게 말리려면 20분 정도는 말려야 해~”
“그렇게나 오래?”
촉촉함에서 점차 보들거리는 부드러움으로 변해가는 머리카락이었다. 은근슬쩍 그녀의 목줄
기를 스치는 나의 손가락도, 긴장감 있게 목에 힘줄을 세운 그녀도, 시끄럽기까지 한 드라
이어의 소음 속에서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느껴갔다. 모르긴 모르지만 분명 그녀도 나의 손
길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됐다! 고마워~”
여자의 튕김이란 것, 무작정 튕기고 거부하는 건 매력이 없다. 그렇다고 줄 듯 말 듯 약올
리는 것 또한 남자 입장에선 매력이 없다. 그러나 그녀는 아쉬울 정도의 마음만 주었고, 아
쉬울 정도의 스킨십을 허락했으며 아쉬울 정도의 시간만을 허락했다.
“조금 덜 마른 것 같은데?”
아쉬움에 나온 말이었다. 그저 그렇게 그녀의 머리를 말리며 밤을 새워도 좋을 만큼의 시간
을 잘라내며 웃어주었다.
“괜찮아... 이 정도면 자연스럽게 말려도 돼~”
“그... 그래...”
나는 어쩔 수 없이 손에 쥐고 있던 드라이어를 그녀에게 넘겼다. 할 일이 없어지다 보니 아
쉬움과 함께 허탈함마저 감돌았다. 드라이어를 정리하고 있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다 괜스
레 뻘쭘해진 나는 다시 거실로 나와 소파에 기대앉았다.
‘일부러 저러는 건가? 나 애닳아 죽으라고?’
정말 그런 것 같았다. 그녀의 표정은 전과 다름없이 무척이나 차분하고 밝은 표정이었지만
가까이 다가서려 하면 계속해서 밀어내고, 멀어졌다 싶으면 조금씩 다가와 주는 거리싸움을
끈질기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거리싸움이 짜증이 나거나 신경질이 나지
는 않았다. 그러려고 하면 눈 녹듯 녹아버릴 만큼 달콤한 스킨십으로 나를 제어했다.
얼마 후 그녀가 다시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음료 두 잔을 따라 다시 내 옆으로 다가와 앉
았다. 방금 샤워를 마친 그녀였던 만큼 향기로운 향내음이 물씬 풍겨오고 있었다.
“저녁은 먹었어?”
“응... 엄마가 차려줘서... 먹고 왔어~ 채영이는?”
“난, 별로 생각이 없어서..."
"그래도 뭣 좀 먹어야지~“
아주 간단하고 간결하게 저녁식사 여부와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로 대화를 꾸려갔다. 어떻
게 보면 누나와 동생 사이라고 보여졌고, 또 어떻게 보면 신혼부부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해 나갔다. 그러다 다시 그녀의 집으로 전화벨이 울려 퍼졌고 그녀는 자연스럽게 무선전화
기를 집어 들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오늘 그이 들어오는 날이야”
“몰라~ 온다는 데 내가 어떻게 알아”
“내일!”
“됐어... 바쁘다며 됐어... 혼자가라며? 혼자 갈거야!”
“몰라... 끊어!”
그녀가 담담하지만 딱딱한 말투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 내용만 들어보아도 그 남자라는 것
이 느껴졌다. 남녀 사이라는 게 한순간에 비틀어 질 수도 있는 것이라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녀와 그 남자의 애정전선에 이상한 기류를 느낀 건 어제 오늘이 아니었다. 그토록 강렬한
신음을 뿜어내며 정열적인 육체의 대화에는 별 다른 것을 느끼지 못했지만 그녀와 그 남자
의 대화에는 항상 날선 칼날이 곤두서 있는 느낌이었다.
‘언젠가는 일이 터져도 터지겠구만...’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와 그 남자 사이에 지독히도 못된 저주를 퍼부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남자의 곁에 있는 그녀가 안쓰럽다고 할까? 헤어지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나
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아... 아냐...”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
“그럴 리가~ 성현이랑 같이 있게 돼서 얼마나 기분이 좋은데...”
가까이 다가오는 그녀를 살포시 받아주었다. 나의 어깨에 가벼이 느껴지는 그녀의 머리가
와 닿자 참으로 약한 여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성현아... 내가 왜 좋아?”
그녀가 조용히 물었다. 나도 가끔은 그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곤 했었다. 그러나 나조차
도 왜 그녀가 좋은지 해답을 찾지 못했었다. 단순히 그녀의 색스러움이 좋았다던가, 아니면
예쁜 얼굴이 좋았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 그녀의 가슴에 새겨질 수 있는 근사
한 말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
“없어? 좋은 이유?”
“아.. 아니... 그냥 다 좋아~”
“피~~~”
왠지 모를 답답함이 나를 가로막아서고 있었다. 나는 바지주머니에 든 담배를 꺼내 입에 물
었고 불을 붙였다.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이자 조금은 불안함이 사그라지는 것 같
았다.
“나, 나쁜 사람이지? 학생이 이렇게 담배를 피우는데도 그냥 내버려두니 말이야~”
“쳇! 그런 게 어딨어?”
“아냐... 나 나빠... 그래서 성현이한테 미안해...”
“됐거든! 너 자꾸 그러면 나 정말 나쁜 짓 한다?”
“그러면 못써~ 난 성현이가 정말 잘 돼서 다시는 나 같은 여자 안 만나기를 바래”
“또! 자꾸 그런 말하면 나 정말 화낼거야~”
“정말이야...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
“됐어! 난 너만 있으면 돼!”
급격히 우울해진 그녀를 느꼈다. 말투도, 표정도 그녀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쇠잔해지는 느
낌이었다. 어떻게든 다시 그녀의 얼굴에서 따뜻한 기운의 미소를 짓게 하고 싶었다.
“아~ 그래도 성현이가 지금 옆에 있어서 누나가 얼마나 든든한지 알아?”
“칫! 맨날 어린애 취급하더니...”
“아니야... 어린애... 다 컸다! 우리 성현이...”
“으이구~ 사랑스런 내 마누라!!”
그녀가 나의 엉덩이를 토닥여주었고 질세라 나도 그녀의 엉덩이와 골반을 토닥여주었다. 그
제서야 작게나마 미소를 보여주는 그녀였다.
“근데... 내일 어디가?”
나는 그녀가 전화통화를 할 때부터 묻고 싶었던 것을 그제서야 묻고 있었다. 분명히 전화통
화로는 그 남자가 같이 가주었으면 하는 뜻으로 말을 했지만 그 남자는 바쁘다는 말로 그녀
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 같았다.
“응? 으응... 내일 낮에... 갈 데가 있어~”
“어디? 어딘데?”
“있어~ 뭘 그렇게 맨날 꼬치꼬치 캐물어?”
“궁금하니까 그렇지, 내 마누라가 혼자가야 한다는데... 같이 갈 수 있으면 가주려고”
“됐네요! 됐어~ 혼자가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쳇!”
역시나 그녀는 순순히 말을 해주지 않았다. 뭐 이런 경우가 한 두 번인가? 언제나 그녀는
나의 물음에 속 시원히 대답해 주지를 않았다. 잠시 그렇게 그녀를 안고 있다 보니 마음이
무척이나 평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내 곁에 없으면 안 될 사람이라고 확신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의 작은 몸짓이 그녀를 위로했고 그녀의 존재가 나를 위로하고 있으니 천생
연분이 따로 없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잠깐만...”
그녀가 나를 벗어났다. 그러더니 안방으로 천천히 사라졌다가 곧 무언가를 들고 다시 소파
로 왔다. 손에는 아세톤과 화장솜이 들려 있었다.
“에고고... 나이 먹으니까 움직이는 것도 힘들다... 헤헷!”
“나이는 무슨, 진짜 가끔 말하는 거 보면 완전 아줌마라니까?”
“그럼 내가 아줌마지! 처녀냐?”
“뭐야? 그건?”
“매니큐어 좀 지울려고~”
“왜? 이쁜데?”
“응? 으... 응... 벗겨지고... 색이 마음에 안 들어서... 지워야 해~”
“내가 해줄게!”
“됐어~”
“아... 아아아아... 내가 해줄게... 응?”
나도 모르게 어리광을 부리고 말았다. 어른처럼 행동해야겠다는 다짐은 뒤로 한 채 무작정
그녀의 손에 들린 아세톤과 화장솜을 뺏어냈다.
“그래... 그럼... 니가 해 줘...”
“앗싸~~”
화장솜에 아세톤을 적셨다. 그리고 가녀린 그녀의 예쁜 손을 잡아 나의 무릎위로 올렸다.
그리고 엄지손가락부터 말끔하게 매니큐어를 지워나갔다.
“잘 하네... 성현이?”
“잘하지? 그치?”
나는 엄마 손의 매니큐어를 몇 번 지워준 적이 있었다. 독하게 붙어있던 매니큐어가 녹아내
리며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게 신기했던 기억이다. 그리고 그 기억만큼 말끔하고 깨끗하게
그녀의 손에 있는 빨간 자욱들이 지워지고 있었다.
“깨끗하게 해 줘~ 알았지?”
“걱정 마셔~ 지우고 나면 무슨 색 바를 거야? 내가 칠해줄까?”
“응? 그... 그래... 무슨 색 바를까?”
“글세... 손톱이 예뻐서 안 발라도 될 것 같은데?”
“그.. 그래? 그럼 바르지 말까?”
“그냥 투....명.....”
나는 우쭐한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를 보자마자 몸이 굳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울고 있었다.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고, 툭 건드리기만 해도 주륵 흘러내
릴 것 같았다.
“뭐해... 빨리 지워주지 않고...”
“왜..... 그래?”
“뭐... 뭐가...”
“왜 우냐고!”
“아... 아냐... 아무것도...”
“뭐가 아무것도 아냐?”
“그... 그냥... 성현이가 이렇게 손톱도 지워주고, 날 사랑해줘서... 고마워서...”
“쳇! 별게 다..... 울지 마!”
“아...알았어... 안 울게...”
“울지 마~ 울면 내 마음이 너무 아프니까... 울지 마...”
나는 결국 그녀를 안아주기 보다는 고개를 숙여 다시 손톱을 지워주기로 했다. 왠지 그녀를
위로한답시고 안아 주다보면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흐를 것 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은
태어나서 본 슬픈 눈 중에 가장 슬픈 눈이었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나 때문이라고는 했지만
난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한쪽 손을 다 지우고 나머지 손의 매니큐어를 지워나갔다. 아주 꼼꼼하고 말끔하게 그녀의
손톱을 지워나가며 왜 그녀가 불쌍하게 여겨지는지 알 수 없었다. 괜히 불쌍했다.
“성현아~”
“왜!”
나의 슬픈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퉁명스레 대답을 했다.
“아... 아니다...”
“왜! 왜 그러냐고~”
“아무 것도 아니야....”
“싱겁기는.... 쳇!”
그녀의 손과 발톱에 칠해진 붉은 색 매니큐어를 전부 지우자 그녀는 욕실로 가서 손과 발을
씻고 나왔다. 여전히 눈에는 눈물의 흔적이 남은 듯 촉촉이 젖어 있었다.
‘오늘따라 이상하네...’
첫경험을 생각하고 부푼 마음으로 그녀를 찾아온 나였지만 그녀의 눈물로 마음이 경건해지
기까지 했다. 그녀는 내게 기댄 채 티비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나는 그저 무성영화를 보는
것처럼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냥 기분 탓인가?’
어쩌면 그녀가 부끄러워 그러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입으로 밤에 내려오라
는 말을 했고 막상 시간이 지나니 그 말의 후회와 부끄럼 때문에 그러는 거라고 생각도 해
봤다.
“뭘 이런 걸 봐~”
“왜! 이게 얼마나 재밌는데...”
“느낌 안 봐?”
“느낌? 그거 누구 나오는건데?”
“우와~ 진짜... 이정재랑 김민종이랑 우희진 나오는 거... 몰라?”
“에이~ 그런 건 애들이나 보는 거지~”
“야망이 뭐냐! 야망이... 진짜 아줌마도 아니고...”
“으유! 요게!”
그녀가 나를 보며 조막막한 주먹을 쥐어 보인다. 어설프게 막는 척을 하며 그녀를 와락 끌
어안았고 그녀는 그대로 내 품 안으로 안겨왔다. 하늘하늘한 머리카락이 볼에 닿아 부벼지
며 순식간에 잠자고 있던 나의 성욕이 심장을 벌렁이며 용솟음쳤다.
나는 그녀를 감고 있던 두 손을 풀어 은근슬쩍 그녀의 가슴을 잡았다. 한 손에 가득 들어
오는 크기의 가슴에서는 말랑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이 전해져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몸을 피하지도 않았고 내 손을 저지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는 조금 더 용기를 내 그녀의 티셔츠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티셔츠가 밀려올라가며 얇
은 허리가 드러나고 실크와 비슷한 느낌의 브래지어가 손 안으로 가득 들어왔음에도 그녀는
그저 티비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부드럽다... 따뜻해...’
점차 복잡한 머리가 단순해지기 시작했다. 처음 목표 그대로 나는 첫경험의 딱지를 떼기 위
한 단순목적형의 두뇌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숨이 빨라지고 거칠어졌다. 이미 커질대
로 커져버린 자지는 부러질 것 같았고 매끈한 그녀의 속살에 정신마저 아득해지고 있었다.
다시 손을 움직여 그녀의 브래지어 안으로 손을 욱여넣었다. 옷 위에서 만지는 것과는 확연
히 다른 느낌의 양감이 느껴졌다. 세상 그 무엇보다도 푹신하면서도 탄력이 넘치는 부드러
움과 처음 만져보는 여자의 유방이라는 사실이 완전히 나의 욕정을 끓게 해버렸다.
“아파... 살살...”
나도 모르게 그 느낌을 강하게 느끼고 싶어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 모양이다. 그녀의 입에서
는 무한한 허락의 멘트가 흘러나왔고 그 목소리에 더욱 간절해지고 있었다. 서두르지 않으
려 했다. 석민의 말대로 서두르기보다는 천천히 그리고 무드있게 행동하려 했다. 하지만 서
툰 나의 손은 다시 그녀를 아프게 했다.
“아파~ 뒤에 후크 좀 풀어줄래?”
내게 기대고 있던 그녀의 상체가 적당히 간격을 두며 떨어졌다. 나는 그녀의 등 뒤에 붙어
있는 브래지어 후크를 찾았다. 그리고 양손에 잡힌 그것을 비틀어 한 번에 분리를 해냈다.
‘어? 쉽네?’
아마도 그녀의 속옷을 가지고 놀던 경력이 한 몫 했을 것이다. 석민은 결국 풀어내지 못한
것을 나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풀어낸 것에 자신감이 붙었다. 최소한 그 녀석보다는 첫
경험을 잘 치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었다.
“들어가자~”
나는 그녀의 귀에 속삭였고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맞췄다. 입술을 앙다물며 눈을
살짝 찡긋하는 그녀의 표정은 ‘Yes"였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고
그녀는 내 목을 감싸며 무한하게 예쁜 미소를 건네주었다.
‘예쓰! 예쓰! 좋아!’
생각보다 가볍지는 않았다. 그녀의 얇은 허리나 작은 어깨만 보면 그랬다. 하지만 풍만하다
싶을 정도로 잘 발달된 엉덩이와 골반에서 느껴지는 탄력은 그 무게를 인정할 수 있었다.
침대에 그녀를 눕혔다. 흰색 티셔츠 안에는 이미 풀어진 브래지어의 끈이 옆구리로 흘러내
려 있었고 침대에 눕혀지자마자 살포시 눈을 내리감아 버리는 그녀는 섹시하다기 보단 나와
동급생의 여고생처럼 가늘게 긴장을 한 모습이었다.
‘예쁘다~’
나는 팬티만 남기고 옷을 훌렁 벗어버린 채 그녀의 곁으로 누웠다. 그리고 우선 거추장스러
운 티셔츠와 브래지어를 벗겨내었다. 눈 앞에 펼쳐진 여체에 나는 침을 꿀꺽 넘길 수 밖에
없었다. 무척이나 희고, 탐스러우며, 매끈한 몸매를 가진 그녀가 떨고 있었다. 꿈에서나 그
리던 그녀가 내 눈앞에 수줍은 자태를 하고 그렇게 유혹해왔다.
그녀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누웠다. 그리고 그녀와 나란히 옆으로 누워 눈과 눈을 맞췄다.
말없이 그녀의 눈과 코와 입술만을 바라보고 있는데도 행복해지는 마음이 너무나 비대해지
고 있는 느낌이었다.
“바보~”
“내가 왜 바보야?”
그녀가 항상 말하듯 나를 바보라 했다. 옆으로 누워 두 팔을 모아 가슴을 가리고 있기는 했
지만 그녀의 가슴골이 나를 미치게 했다.
“널 어쩌면 좋니?”
“어쩌긴... 사랑해 주면 되지~”
나는 그녀를 끌어당겨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눈을 살포시 내리 깔며 나
의 입술을 받아주었다. 처음으로 여자와 침대에 나란히 누워 가녀린 허리를 감싸고 나머지
한 손으론 여체를 안은 내겐 그 어떤 보상보다 값지고 황홀한 경험이 되고 있었다. 그녀의
긴장감 넘치는 허리라인을 쓰다듬을 때 마다 손 끝에는 황금빛 가루가 묻어 날것처럼 보드
라운 느낌이 찾아왔고 뜨거운 입김이 뿜어져 나오는 입술이 느껴질 때는 내 스스로가 가루
가 되어 날아갈 것 만 같았다.
“오늘은... 네게 맡길게... 네게 맡길거야”
잠시 입술이 떨어진 틈을 타 그녀는 밤에 내려오라던 이유에 대해 간접적으로 답을 해 주었
다. 다시 키스를 나누며 그녀의 빨간 반바지를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잘록한 허리 아래로
탄력 넘치는 골반과 탱탱한 엉덩이를 지나 허벅지에 쓸려 내려가는 그녀의 반바지와 팬티는
힘없이 그녀의 몸에서 분리되어 떨어져버렸다.
“허~ 업!”
훔쳐보던 그녀의 여체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시각적인 곡선은 물론이고 베이비 파우더를
잔뜩 뿌려놓은 듯한 고운 피부의 촉감과 상상 이상의 풍만한 가슴선, 그리고 고불거리는 수
풀이 돋아난 영광의 언덕은 신세계를 경험하는 남자의 마음을 만족시키기 충분했다. 특히
가슴은 전에 봤을 때 보다 훨씬 커진 듯한 느낌이었다. 아니, 확실히 커져있었다.
“예쁘다... 정말 아름다워...”
“고마워~ 예쁘다고 해줘서...”
보답이라도 하듯 그녀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내가 그러했듯 천천히 나의 팬티를 분리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팔과 손이 살갗에 스칠 때 마다 전해져오는 전류와 아득한 부드러
움에 혼이 쏙 빠져버릴 것만 같았다.
“채영아!”
발목에서 팬티가 분리되는 순간 나는 그녀를 끌어안고 침대로 다시 쓰러져 버렸다. 그녀의
배에 닿는 자지엔 말로 표현 못 할 기대와 환희가 느껴졌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지?”
그녀가 눈에 힘주어 물었다. 그녀의 말 뜻을 나는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는 그 어떤 후회도 감당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가 얼
굴을 내 가슴에 묻으며 강렬하게 안겨왔다.
“난, 후회할 것 같아... 그런데 성현이 네가 좋다면 따를 수 있어...”
난 서두르지 않았다. 그렇게 안겨온 그녀를 말없이 안아주기만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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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드리는 글>
안녕하세요~ 파랑진주입니다.
"죽도록 갖고 싶었던 첫사랑"은 저의 경험담을 각색한 글이라 나름 애착이 있는 글입니다.
재밌게 읽고 계신가요? 다른 작가님들처럼 재미나거나, 흥분되거나, 또는 자극적으로 쓰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한 걸 이해주세요~
이제 "죽도록 갖고 싶었던 첫사랑"이 끝자락에 와 있네요...
너무 잔잔하거나, 안해도 너~~~~무 안하는거 아니냐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 글의 콘셉트는 읽으면 읽을수록 짜증나는 글입니다. ^^
이해해주세요....
또, 제 나이 때와 비슷한 분들은 잠시나마 첫사랑을 떠올리며 "응답하라 1994"가 되보심이...
그럼 주절댐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비록 1944년도의 노래는 아니지만
이정봉의 "그녀를 위해"라는 곡이 생각납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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