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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야설 경성백만장자 - 12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2 00:38 1,207회 0건
그날 저녁 경성역.

초췌한 모습의 최수희 (프롤로그 참조)와 그 아버지 최문환은 경성역에서 내린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최수희는 역을 둘러보았다.

만약에 차경수가 사리원에서 내리지 않고 그대로 경성으로 왔으면, 최수희는 차경수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고 그러면 그들이 어떻게 되었을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차경수는 황해도 사리원에 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기다리고 있던 운전수가 몰고 나온 폰티악에 올라 필동에 있는 집으로 간다.

운전수가 말했다. “사장님. 수형(어음)들이 계속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최문환이 말했다.
“융자금도 상환해야 할 기한이 거의 다…”
“다 필요없어, 다!” 최문환이 말한다. “지금 당장 민영초 자작 댁으로 가자.”

민영초는 원래 이름은 민영관이지만 민영초로 개명한 지 꽤 오래 되었다.

민영초 자작 저택은 가회동에 있었다. 물론 그 수리비용은 최문환이 댔다. 문환은 씩씩거리면서 내렸고, 수희도 따라 내린다.

“아니, 연락도 없이 갑자기 웬 일이십니까?” 민 자작 집 집사가 묻는다.

“웬 일? 사돈네 집에 오는 게 웬 일인가?”

이 때 한복 입은 젊은 여자가 나왔다… 민 자작의 첩인 거 같았다. 민 자작 첩이 어디 한두명이냐마는.

“여보세요.. 안녕…” 그녀는 최문환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문환도 마찬가지였다 .. 국양관에서 그가 총애하던 계운이 아닌가?

민 자작에게 지참금으로 5만원이나 주고 기타 온갖 명목으로 4만 원을 더 줬더니, 결국 그걸로 집수리 하고 내가 품던 계집을 지가 가졌구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차라리 차경수와 결혼을 시켰다면 백만장자인데!

“안녕하시오? 자작님 계신가요?” “네.”

두 사람 사이에는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계운은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았고 문환과 수희는 들어간다. 좌우에는 국보급 석등들이 있었다… 권력을 갖고 뺏어온 것이리라. 정원은 한 치도 흐트러짐 없이 정돈되었고, 전등까지 켜져 있다.

조선인 중에서도 상류층들은 이렇게 살았다.

한옥 한 채, 양옥 한 채가 서 있다. 민 자작은 주로 양옥에서 살았다. 저걸 위해 내가 돈을 썼구나 … 최문환은 열불이 터진다.

잠시 후 최문환과 수희는 민영초 자작 거실에 들어갔다. 민 자작은 양복을 입고 비스듬히 누워 여송연을 피우고 있었다. 계운과 또 한 명의 첩이 그의 옆에 시중을 든다.

“이 저녁에 무슨 일이십니까?”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한겨울을 나려면 나무를 때고, 이불을 싸매는 것이 전부였다. (연탄조차 때기 힘든 집이 그 시절에는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집은 그 비싼 가소링(가솔린)을 때는 중앙난방이었다.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딸과 저는 지금 미국 나성(LA)에서 돌아오는 길입니다.”

“그래서요?”
민영초는 관심 없어 보인다. 문환은 하나뿐인 자식이 이 모양이 되어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데, 민영초에게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댁의 아드님에게서 화류병이 옮아 제 자식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그걸 내가 왜 알아야 하는데요? 그건 통식이와 새아기가 알아서 할 일이 아닙니까?”

수희는 할 말이 없어 입을 닫고 있다. 최문환이 소리친다.

“나성에서 제일 좋은 의사가 말하기를 제 딸아이의 난관이 녹아내렸다고 하더군요.”

“그게 그렇게 나를 방해할 만큼 중요한 일인가?” 민 자작은 화를 냈다.

민 자작은 어렸을 때 민씨 척족의 일원으로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천만석이나 되는 자산을 마련했지만, 일본이다 지나(支那)다 놀러 다니면서 재산을 탕진하여, 최문환이 아니었다면 지금쯤은 이미 파산했을 것이다.

그런데 은혜를 원수로 갚아?

“저는 이 자리에서 자작님의 아드님과 제 딸의 부부관계를 청산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자직님께 준 돈 총 9만 원도 돌려받아야 겠습니다.”
“청산? 누구 맘대로 청산이야?” 민영초가 소리친다. 그의 첩 중 한 명이 거든다.
“댁의 따님이 난관이 녹아내린 게 우리 도련님 때문이란 증거는 있어요?”

“통식이가 화류병을 옮기고 다닌다는 건 경성이 다 아는 일입니다.” 문환이 말했다.

그러자 한때는 문환의 품에서 애교를 부리던 계운이 말했다.

“실례지만 댁의 따님이 시집올 때 처녀였나요, 아니었나요?”
“그게 무슨 말인가?”

계운이 애교 있게, 하지만 단호하게 입을 놀린다.

“혹시 도쿄 주오대 다니던 김장석을 아나요?”

문환과 수희는 갑자기 입을 다문다. 김장석은 지금 만주국 어디서 관리로 일하고 있다고 들었다.

민영초가 말한다. “계운이는 뭔가 아는 거 같으니 말을 들어 보게나.”

계운은 최문환에게 쏘아붙인다. “김장석은 내 동기인 춘상이와 꽤 가까이 지냈어요. 춘상이가 그러더군요. ‘있잖아? 김장석이 내게 말했어. 자기가 민 자작 댁 큰며느리인 최수희를 임신시켰었다고.’”

최문환은 발끈했다. 김장석, 이 새끼가 끝내 이런 식으로 내 발목을 잡는구나!

민영초가 말한다. “최 사장. 계운이의 말이 사실이오, 거짓이오?”

이럴 때는 무조건 잡아 떼야 한다. 문환과 수희는 입을 모아, “거짓말이예요. 증거 있어요?” 라 했다.

계운이 말했다. “동경 규총정 동원산과 동원창부 (도쿄 오기즈카정 히가시바라 산부인과 히가시바라 마사오) 를 기억하시는지요?”

“몰라요. 그런 사람은!” 수희는 울기 시작한다.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민영초는 고함을 친다. “처녀도 아닌 몸으로 시집와서는, 감히 누구 아들에게 화류병을 뒤집어씌워? 위자료는 당신이 아닌 내가 받아야겠네. :

“계운이. 그럼 안 되지. 내가 얼마나 너를 귀여워했는데?” 최문환은 이제 더 이상 볼 거 없었다. 다 뒤집어 엎는 거야.

“그거 삼천리(당시의 대중잡지) 에 내면 재밌겠네요? 나야 별로 잃을 게 없어요. 이미 고향에 전답도 마련해 놨으니까.” 계운은 낄낄 웃는다.

민영초는 헛기침을 한다.
“부부 사이의 일은 부부끼리 해결할 일이오. 정작 본인은 아무 말도 안하는데 왜 사돈이 말합니까? 수희야. 네 생각은 어떠냐?”

“저도 아버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해요.” “아버님? 나? 아님 최 사장?”

수희가 말했다. “저는 아버님께 부끄러울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없으면 됐고, 이혼을 하든지 삼혼을 하든지 나는 신경 안쓸테니 통식이와 이야기해라. 부부 사이의 일을 왜 나에게까지 가져오나? 에이 씨.”

민 자작은 다시 드러누워 첩들의 애무를 받기 시작했다. 계운이 말했다. “안 가시고 뭐 하세요?”

=

같은 시각, 동대문 근처 안성화의 고아원.

고아원 아이들은 그나마 1년에 정성을 바치는 유일한 날인 성탄절이 다가오니 기쁨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소망과는 관계없이, 사무실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평당 75원 이하는 절대 안 됩니다.” 안동식이 말했다. 싸구려 양복 차림의 조선인이 말한다. “우리 다이쇼(상사)는 평당 60원 이상 절대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이 고아원이 500평이나 됩니다. 7500원 상관인데 어떻게 싸구려로 팔아요? 전차역도 걸어서 겨우 7분인데.”

“연말이 되기 전에 이 거래를 완성지으라고 …” 조선인이 말했다.

“댁의 다이쇼를 직접 뵈어야겠군요. 71원까지는 낮추어 줄 수 있지만 그 이하로는 절대로 안됩니다.” 안동식은 배를 튕기며 말한다.

조만간 이 지역에 주택단지가 들어선다. (주: 당시 신도시는 동대문 지역에 많았습니다.)

신당동에서 왜인 도덕이가 천만 원이나 벌었다지? (주: 전에 언급한 시마 도쿠조를 한국식으로 읽으면 도덕장이 되는데 조선에서는 도덕이 도덕이라 불렀다 합니다)

나도 도덕이만큼은 못하지만 몇천 원을 앉아서 손해볼 수는 없지.

이 때 안성화가 들어온다. “아버지?”
“마침 잘 왔다. 이놈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구나. 이 동네 땅값이 얼마인데 겨우 평당 60원으로 이 고아원을 사려느냐?”

“제발입니다. 제가 겨우 얻은 직장입니다. 안 된다고 하시면 저 짤립니다. 이 추운 겨울에 …”
“자네 같이 말이 안 되는 요구나 하는 고원(직원)을 거느린 회사는 망할 만 하지. 짤릴 만하니까 짤리는 것이니 나를 원망 말도록.”

이 때 또 순사 탁세청이 들어왔다. 안동식이 말한다.
“순사 나리. 저 자를 좀 내쫓아 주세요. “ “알았습니다.”

탁세청이 눈을 부라리자 사내는 혼비백산 도망간다. 순사의 말은 천황의 말과 같은 시절이니, 사람들은 순사에게 밉보이지 않으려고 애쓸 뿐이었다. 순사는 나이에 상관없이 나리 대접을 받았다.

잠시 후, 안채에서는 저녁상이 차려졌다. 고아원 원아들은 암죽이나 풀뿌리가 고작이었는데, 안에서는 비교적 잘 먹는다. 물론 차경수가 있을 때는 경수나 성화 등도 같은 식사를 했지만, 탁세청 앞에서는 그런 가식을 떨 필요가 없다.

“고아원을 팔고 고향인 전북 금산으로 내려갈 생각이네.”
(주: 당시에는 금산은 전북에 있었습니다. 충남으로 옮겨진 건 60년대임)

“그러시군요.” 탁세청은 삶은 돼지고기를 젓가락으로 집으면서 말했다.

“순사 나리,. 혹시 우리 성화에게 마음이 있으신가요?” “네?” 세청은 놀라 물었다. 하지만 그때,

성화가 말했다. “누구 맘대로 제가 순사 나리와 결혼하지요?”

“너, 아직도 그 차경수 놈을 못 잊는 거냐? 순사 나리가 차경수보다 훨씬 낫지 않나?”

“저는 차경수에게서 빚을 받아야 딴 사람과 결혼하겠어요.”

이 때 세청이 말했다. “만약에 내가 차경수를 잡아 들인다면, 나와 결혼할 겁니까?”

“일단 차경수에게 이야기를 듣고요. 왜 도망갔는지 알아보고 내게 끼친 손해를 보상받기 전까지는 안 돼요.”

세청은 안성화를 훑어보았다. 고아원을 팔면 적어도 3만 원은 들어온다. 이 정도면 괜찮은 재산이다.

“알겠습니다. 차경수를 어떻게든 잡아 들이고 싶지만, 구실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순사 잘리면, 책임질 수 있습니까?”

안성화가 말했다. “아빠. 책임진다고 말씀해 주세요.”

안동식은 잠시 뜸을 들인다.

“글쎄… 내가 그것까지 책임지기는 힘들지요.”

“아빠!” 안성화가 소리친다. “제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다 해 준다고 하셨잖아요?”

“이건 …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잘못하다간 우리에게 불똥이 튄다고!”

탁세청은 고기를 뜯으며 막걸리를 한 잔 마신다. “그렇습니다. 이유 없이 사람을 잡아들이면, 나중에 문제가 우리에게까지 미칠 수 있어요.”

차경수 하나 잡으려고 그의 장래를 망가뜨릴 순 없다. 차경수가 그에게 잡힐 운명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 잡히게 되리라. 서두를 건 없다.

--

황해도 사리원 읍내 봉산여관.

사리원은 재령평야의 곡식이 모두 모이는 곳이라 비교적 풍족한 곳이었지만, 역시 생긴 지 얼마 안 되어 틀이 잡히지 않은 감이 있었다. 택시도 없어 걸어다녀야만 했다.

그나마 사리원에서 제일 좋다는 봉산여관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한 경수는, 여관에서 내놓은 상을 받았다. 그래도 여기 음식은 평양보다는 나았다.

경수는 그 동안 강원도,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를 여행하며, 식탁에 고기가 나온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가끔 가다 닭고기가 나올까, 쇠고기 돼지고기 같은 건 외국인용의 외금강 호텔에서 모리스가 특별주문한 고기를 빼고는 식당에서 팔지 않았다.

이곳은 바다가 아니라 그나마 생선도 없었다. 어쨌든 경수는 야채로만 도배한 상을 비웠다. 모처럼 계집질을 하지 않고 평안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니 기분이 괜찮았다.

“여자 넣어 드릴까요?” 여관 주인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경수가 대답했다. 이런 데에 있는 은근짜 (혹은 2패 기생, 즉 춤이나 노래를 할 수 없는 섹스만 파는 창녀) 들은 관리가 덜 되어서 화류병에 옮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경수는 문을 잠그고 오랫만에 경건한 마음으로 신문을 본다.

“문환상사10만원 수형 부도”

뭐? 최문환의 회사가 부도라고? 10만원이나? 그는 놀랐다. 최문환이 미국에 가 있는 사이에 일이 터진 모양이다.

이 때 갑자기 느낌이 이상해진다. 경수는 잠시 밖으로 나가 주위를 돌아본다.

어떤 일본인이 서툰 조선말로 말한다. “여기 차견수란 자가 무꼬 이쏘?”

“차견수요? … 네. 제일 좋은 방에 계시는데요?”

여관 주인이야 강한 자에게 무릎을 꿇는다. 이거, 안 나와 봤으면 큰일날 뻔했다.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우리 다이쇼가 꼭 데려오라고 해서…”

간타로는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서 데려온 어깨들을 들여보낸다.

상해로 쫓겨가던 간타로는 중간에 봉천(심양)에 내려서,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다. 일본내의 동료로부터 차마동이 강원도 어느 산골에서 도망쳤다는 소리를 듣고, 분명히 경성 아니면 평양으로 갔을 것이라 생각하고 평양에서부터 쫓아오는 길이었다.

경성으로 갔으면 간타로의 친구가 경성역에서 잡았을 텐데 이놈이 머리를 써서 사리원에서 내렸다. 하지만 사리원에서 곧바로 해주로 안 가고 하룻밤 잔 게 실수였지. 이놈을 잡으면 나는 복직한다. 모리스 개인비서로 착복하는 돈이 한 달에 얼만데 이놈을 어떻게 놓쳐!


하지만 경수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는 뒷담을 넘어 도망쳤다. 짐? 그따위 거 버리고 다닌 게 어디 한두 번인가?

경수는 밤에 희미한 불빛에 의지하여 도망친다.

사리원읍은 작다. 10분 정도 도망가다 보니 더 이상 건물은 없고 벌써 논밭이다. 한겨울이라 땅은 얼음같이 차갑다. 이런 데서 숨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더우기 경수는 사리원의 지리를 모른다. 한밤중이라 다니는 차나 우마차도 없다.

하지만 구원자가 나타났다 … 아이러니하게도 순사였다.

“여보쇼.” “순사 나으리. 살려 주십시오.” 경수는 빌었다.

좀 어리숙한 듯한 조선인 순사가 말한다. “너를 내가 어떻게 살려 주는데?”
“주먹들이 (깡패란 말은 해방후 Gang이란 말에 패를 붙여서 나왔으므로 당시는 주먹들이라고 했음) 저를 쫓고 있습니다. 살려 주시오. 사례는 충분히 하겠소.”

경수는 백 원 짜리 지폐를 내놓는다.

순사는 경수의 옷을 훑어본다.

경수의 옷이 허름했다면 순사는 경수의 말을 무시했으리라. 하지만 경수의 옷을 보니 예사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밤도 늦었으니 일단 우리 집으로 가시오.”
“저는 사리원의 지리를 모릅니다.”
“할 수 없군. 내가 같이 가야겠어.”

경수는 조택기 순사와 함께 사리원 읍내로 걸어 들어간다. 간타로 일당들은 그런 경수를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비록 순사가 조선인이라 해도 엄연히 공권력이다. 함부로 손댔다가는 큰코 다치는 것이다.
--

비록 순사라고는 해도, 신분이 보장될 뿐 급여는 한 달에 40원 정도였다.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완장 찬 사람이 봉급으로 사는 거 봤는가?

조택기 순사도 짭짤한 부수입을 챙겼고, 덕분에 그다지 좋지는 않지만 자기 집이 있었다. 불령선인(일본에 반대하던 조선인)의 집을 빼앗은 것이다.

조택기의 집에는 그의 아내와 어린 딸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조택기의 아내는 수수한 시골 아낙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일단 여기서 하룻밤 주무시오. 나는 다시 순찰 돌아야 해서.” “네.”

“안녕하세요?” 조택기의 딸인 덕순이가 말했다. “안녕?”

곁방은 원래 덕순이 방이지만, 오늘은 덕순이는 엄마와 자고 경수가 곁방에서 잠들게 된다.

(황해도 사투리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조택기 일가는 개성에서 여기로 온 걸로 설정했습니다. 시대극은 단역도 설정이 어렵네요)

경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모리스의 손이 이런 시골까지 미치다니. 아무래도 조선을 당분간 떠나 있어야겠다.

--
“주무세요?” 조택기의 아내인 오월이가 경수의 곁방을 찾는다. 곁방은 나무를 땠지만 연기만 나지 추웠다.

“아닙니다.”
“경성에서 오셨죠?” “네.”
“어쩌다가 여기서 봉변을 당하셨어요?” “예, 제가 돈을 좀 굴리다 보니 …”

칠흑같이 어둡지만 오월의 몸 윤곽이 보인다. 얼굴은 평범하고 몸매는 펑퍼졌다.

“저희는 개성에서 이사왔어요. 남편이 이곳으로 발령나서…”

조택기는 고지식해 보였다.

“그렇군요.”

그녀는 말했다. “저를 좀 안아 주세요.”
“아니 어떻게…”

“남편은 불령선인이 만들던 폭탄에 양물을 상했어요. 그래서 아이도 하나밖에 없는 거고요.”

“그러면..”

오월은 상의를 벗는다.
“남편은 이렇게 욕구를 풀어요.”

오월의 상체에는 조택기가 혁대로 때린 흔적이 여러 군데 남아 있었다. 특히 유방은 맞은 자국이 역력했다.

“하지만…”
“남편은 해 뜨기 전에는 안 돌아와요.”

이것도 그를 파멸시키려는 함정인가? 조택기는 좋은 사람 같아 보였는데? 이래도 되나?

그녀는 경수의 벨트를 끄른다.

“당신은 가만 있어요. “

그는 아주머니가 하는 대로 보고만 있었다… 하지만 그의 하체는 반응했다.

오월은 치마를 올리고 경수의 하체 위에 자신의 몸을 올린다. 아기를 낳은 몸이라 경수의 좆은 그녀의 구멍 속에 쑥 들어갔다.

“당신은 경성에 처자가 있나요?” “아니오?”
“좋겠다. 처자가 없는 사람만큼 좋은 건 없어요.”

그는 이상하게 쾌감이 들었다 .. 그녀의 보지는 잘 오므라드는 거 같았다. 흔히 말하는 긴자꾸까지는 아니더라도, 출산한 여자가 이 정도이기는 쉽지 않다.

그녀는 엉덩이를 위아래로 미친듯이 왕복한다.
“혹시 쌀 거 같으면 말해요. 회임이라도 되면 당신이나 나나 다 죽어요.”
“알고 있소.”

그림자가 진다. 여자는 남자의 위에서 몸을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다.

다섯살 된 덕순이는 잠이 깨어 나와서 곁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와 낯선 손님이 이러는 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엄마는 그걸 아빠에게 말하면 엄마는 죽는다고 그랬다.

엄마의 몸은 계속 그네를 뛰듯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안에서는 나지막한 신음소리가 들린다.. 남자가 ‘옵니다’ 라고 말한다.

엄마의 몸은 높이 일어난다. 그리고 엄마는 급히 치마를 올렸다. 물방울 같은 게 튀어 창호지에 닿는다.

엄마는 누워 있는 남자의 아래쪽으로 천 같은 걸 가져갔다. 이건 들어가라는 표시다. 엄마에게 들키면 죽도록 맞는다.. 빨리 들어가야지.

저 아저씨는 참 멋있다 …. 언젠가 내가 크면 저 아저씨와 저걸 해야지. 엄마만 하란 법 있어? 아저씨는 이름도 성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날 만나게 될 거야.

다음날 아침, 경수는 순사들의 보호 아래, 해주를 거쳐 경성으로 돌아갔다. 시간이 좀 걸렸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경수는 강원, 함경, 평안, 황해에서 모두 여자를 먹어 봤다. 물론 함경도와 황해도에선 그 지역 출신 여자는 아니었지만.

==

1936년 1월 초순, 조선호텔.

경수는 흥업은행 신년회에 초대장을 받아 여기 와 있었다.

[저자주: 흥업은행은 지금은 신한은행에 합병된 모 은행을 바탕으로 설정했습니다.]

작년 겨울 엄청 고생을 해서 집에 와서는 쭉 쉬었고, 이상허가 보낸 답장은 읽어 보지도 않았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관계가 정리되는 것이다.

신년이 되자 흥업은행에서는 고액예금자들에게 초대장을 보내 예우했고, 경성에서 제일 좋은 이 조선호텔에 모두 모여 사교의 만남을 가졌다.

조선 최고의 자산가인 문휘영 백작의 아들인 문원석, 화신백화점 박흥식 사장, 함흥 갑부 방의석 사장 등이 왔지만,

역시 모두의 관심은 금광왕 최창학에 몰려 있었다.

최창학은 금팔찌, 금장식 한 옷을 입고 나타났다. 촌스러운 건 숨길 수 없었지만, 돈으로 도배를 하니 그정도면 봐줄 만 했다.

일본인 은행장도 최창학에게 인사를 한다. 최창학은 웃으면서 인사를 받았다. 예금만 백만원이 넘는다는데, 그 정도는 해야지.

그런데 문원석, 박흥식, 방의석, 최창학 등의 조선재계의 명사들이 있었지만, 의외로 경수도 여러 군데서 러브콜을 받았다. 물론 위의 인사들은 아니었지만, 시골 부자들로 적잖은 돈을 흥업은행에 예치중인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경쟁적으로 경수에게 묻는다. 질문은 세 가지, “재산이 얼마인가?” “혼인은 했는가? “ “공부는 얼마나 했는가?” 였다.

대개의 남자들은 그 나이면 다 혼인을 해서 아이가 서넛 딸렸다. 조선이나 일본, 혹은 구미에서 공부를 해도 조선에 오면 첩이 되거나 후취가 되어 전실 자식 건사하거나 그리 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부자이면서 공부도 할 만큼 했고 무엇보다도 미혼인 경수는, 아무래도 신랑감으로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경수는 무식하고 돈만 많은 시골 부자들에는 큰 취미가 없었다.

그는 애란 (아일랜드) 독립사를 읽어 보았다. 애란에서도 결국은 영국 통치하에서 교육받은 이들이 출세하고 , 애란 순혈도 아닌 서반아인 혼혈 데 발레라가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조선도 세월이 가면 애란처럼 자치령이 되었다가 독립할 것이다. 독립하고 나면 출세할 사람이 누구겠는가? 아무래도 일본과 연결고리가 많은 지금의 상류층이 아니겠는가?

차라리 돈이 좀 없더라도, 경성제대 교수나, 총독부 관리, 하다 못해 만주국 관리라도 좋았다. 이런 사람과 통혼하면, 나중을 위해 좋을 것이다. 가뜩이나 조실부모하여 친척도 전무한 경수이니, 혼맥을 만드는 건 좋은 일이었다.

이 때 총독부 금융과 계장인 강성칠이 나타났다. 비록 계장이긴 하지만, 어쨌든 총독부 관리면 맹탕은 아니다.

은행장과 여러 거물들은 강성칠과 악수를 한다. 경수도 거물들 뒤에 서서 성칠과 악수한다.

후에 자유당 시절에 재무장관을 지낸 강성칠과 경수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다음 회부터 몇 회는, 강성칠의 딸 강신애와, 그녀를 놓고 겨루는 백만장자 차경수, 그리고 또 하나의 청혼자인 동경제대 출신의 엘리트 김동철의 싸움이 이어집니다.

이 싸움에서 경수가 이길지 동철이 이길지는 이미 첫회 설정에 답이 나와 있을 겁니다. 경수가 한국사회의 엘리트가 되었는지, 아니면 돈만 많은 아웃사이더가 되었는지는 지금까지의 복선들로 충분히 설명되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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